질문자가 꿈을 꿨다고 해봅시다. 꿈속에서 어머니가 질문자에게 이모 댁에 뭘 가져다 주라는 심부름을 시켰어요. 그런데 꿈속에서 이모 댁에 가다가 도중에 잠에서 깬 거예요. 깨서 보니 이모 댁에 뭘 가져다 주라는 게 꿈인 거예요. 질문자는 꿈에서 깬 뒤에도 이모 댁에 심부름을 가야 될까요, ‘아, 꿈이었네’하고 말아야 할까요.
조금 전 질문자가 이야기한 과거에 있었던 많은 일들은 꿈과 같은 거예요. 자기는 꿈속에서 있었던 일을 가지고 괴로워하고 있는 거예요. 만약 질문자가 ‘꿈속에서 어머니가 심부름을 보냈는데 제가 가다가 깼습니다. 지금 심부름을 가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제가 ‘아직 꿈에서 덜 깼네요’라고 말할 거예요. 마찬가지로 질문자가 어릴 때 겪은 일들은 한갓 꿈에 불과한 거예요.
꿈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일은 모두 다 꿈이에요. 그러니 과거에 일어난 일은 ‘꿈이었구나’하고 끝내야 돼요.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에 걸렸든, 어릴 때 따돌림을 당했든 지금 질문자가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그건 모두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그러니 두 번 다시 꿈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기 보다는 거기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거예요. 과거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도 ‘이건 꿈이다’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잘 안 되고 계속 떠오를 거예요. 그래도 ‘아, 이건 어릴 시절의 꿈일 뿐이다’하고 의미부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도 아직 어린 시절에 꾼 악몽에 대한 생각이 가끔 떠오릅니다. 꿈을 꿀 때는 그게 꼭 실제로 일어나는 것 같지만 눈을 뜨면 그건 꿈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아, 내가 과거에 이런 꿈을 꿨구나, 내가 과거에 저런 꿈을 꿨구나’하고 말아야지 거기에 자꾸 의미부여를 하면 안 돼요. 그걸 붙잡고 있으면 이제 평생 꿈속에서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 우선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입장이 분명해야 합니다.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어떻게 자랐든,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든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방법은 지금 탁 놓아버리는 거예요. 자꾸 옛날 얘기를 꺼내서 ‘어릴 때 어떻게 자랐고’ 어쩌고 저쩌고 얘기를 하면 죽을 때까지 불행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니 과거에 있었던 일은 ‘꿈이다’하고,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해요. 그런데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싶어도 안 차려질 때가 있어요. 어딘가 고장이 났기 때문이에요. 그럴 때는 병원에 가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쉽기 때문이에요. 복권을 사려다가 안 샀는데 다른 사람이 그 복권을 사서 당첨되었다면, ‘아, 내가 사는 건데!’ 하고 후회하죠. 특히 주식이 오르면 ‘그때 사는 건데!’ 하고, 떨어지면 ‘그때 팔았어야 하는 건데!’ 하고 한탄하죠. 그런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소리입니다. 이제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하세요. 부처님께서는 지나간 일은 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명심문은 ‘지금 출발합니다’입니다. 어제까지는 연습이고, 오늘이 본 게임입니다. 오늘 지나고 내일이 오면 오늘까지가 연습이고 내일이 본 게임입니다. 저는 늘 지금에 충실한 편입니다. 제가 예전에 학원에서 강의할 때, 하루에 똑같은 강의를 열 번 해도 늘 처음 하듯이 했습니다. 요즘도 즉문즉설을 보고 ‘스님, 똑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계속해요, 지루하지 않아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시공간이 달라졌고 청중이 달라졌잖아요. 어제는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고 오늘은 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거니까요. 늘 처음 하듯이 합니다. 그렇다고 어제의 경험이 필요 없는 게 아니에요. 어제까지는 연습입니다. 그 연습을 기초로 해서 지금 본게임 하듯이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만약 미래에 아쉬움이 남을 여지가 있다면 지금 과감하게 결정하면 됩니다. 누구나 인생을 돌아보면 ‘그때 그 사람을 잡았으면’, ‘그때 그 선택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과거에는 잘못을 했고, 지금은 잘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과거에는 현실의 나보다 내가 좀 잘났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좀 함부로 대했어요. 그러면 지금은 잘났다는 생각을 버렸느냐?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과거나 지금이나 같다고 말하는 겁니다. 지금은 반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같다고 말할까요?
현실의 나는 잘못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내가 너무 잘난 사람이라서 잘못할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내가 잘못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잘못한 게 부끄러워서 지금 창피해 하는 거예요. 그때 실수한 게 후회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지금 고민이 되는 거예요. 질문자는 아직도 자기가 잘난 사람이라는 것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이해가 되셨나요?”
그런데도 질문자는 자신에 대해서 어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다 안다’, ‘나는 틀릴 수 없다’, ‘나는 잘못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하나 따지면 잘못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냥 막연히 ‘내가 하는 일은 다 옳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옛날에 질문자가 불친절했거나 화를 냈거나 고집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나빠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에요.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고 그냥 한 행동인데 다른 사람한테 많은 상처를 주게 된 거예요. 나이가 들어서 지나 놓고 보니까 ‘내가 조금 건방졌구나. 내가 잘난 척했구나’ 이걸 알게 된 겁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안 하면 되는 거예요. 오히려 옛날 경험을 생각해서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옛날에 잘못한 게 계속 부끄러운 거예요.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잘났다는 생각을 못 버렸기 때문입니다. ‘잘난 내가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이러면서 지금 그런 행위를 한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잘났다는 생각이 옛날에는 남을 괴롭혔다면, 지금은 자기를 괴롭히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 속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실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보세요.
그리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그 사람이 ‘너 예전에 나를 괴롭혔잖아’라고 따진다면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뭘 모르고 어리석어서 그런 실수를 했습니다’ 하고 사과를 해야 됩니다. 지금 질문자가 그걸 부끄러워하는 것은 지금의 자기도 괴롭힐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도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알면 부끄러운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아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문제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자아가 있는지 없는지 이런 것을 따질 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라는 거예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윤회를 하는지 안 하는지, 이런 것은 다 믿음의 문제이고 관념의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은 각자 자기 좋을 대로 하라고 맡겨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금을 직시하는 겁니다. 질문자는 과거 때문에 괴로워해도 안 되고, 지금 때문에 괴로워해도 안 되고, 미래 때문에 괴로워해도 안 됩니다. 과거에 잘못한 게 있다면 지금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와 미래의 나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나서 내가 불친절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면 그 사람은 기억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자 혼자서 환상을 보고 괴로워했다는 것이 되잖아요. 이것은 마치 밤에 꿈을 꾸다가 꿈속에서 남을 때렸는데, 꿈에서 깨어나서도 ‘어제 내가 밤에 사람을 때렸는데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같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