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시선과 은근한 미소를 마주하고 있으면 주변이 얼마나 춥든 말든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꼭 유리 덮개를 씌운 것처럼 주변과 유리되고 둘만이 남는 감각이 퍽 기껍다. 차분하고 간결하게 선택지를 고른 랑을 향해 마주 활짝 웃어보이던 리라는, 이어지는 문장에 입술을 살짝 삐죽거렸다.
"그래도 어딜 가는지 정도는 제대로 알아야죠! 이왕이면 언니가 좋아하는 데로 가고 싶단 말이에요~ 물론 랑이 언니도 제가 가고 싶다는 곳으로 가는 게 좋으니까 그러는 거겠지만..."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역시 이런 건 제대로 말해주는 편이 좋으니까. 가고 싶은 데라면 어디든 함께 가주는 것도 싫지는 않지만, 아니 좋지만, 그건 너무 나 하고 싶은 대로만 당신을 끌고 다니는 것 같아서. 다만 이어지는 다정한 손길들에 자잘한 상념은 바람 앞 낙엽처럼 날아간다. 리라는 제 손을 붙잡은 랑의 손을 꼭 마주 잡으며 다시금 웃어보였다.
"좋아요, 가요!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윽고 그는 이게 버틀러인지 내비게이션인지 모를 애매하기 짝이 없는 묘한 말투로 당신을 잡아끈다. 이전에는 학교에서부터 출발하느라 버스를 타고 가야 했지만 지금은 정말 조금만 걸으면 된다. 오늘의 만남 장소와 추억이 깃든 돈가스 맛집, '밤나무 식탁' 은 같은 3학구 중앙로에 위치해있었으니까. 덕분에 두 사람이 추위에 오래 떨 일은 없게 되었다. 방문 전적이 있다고 조금 익숙해진 골목을 걷다 보면 따스한 빛을 내는 식당이 바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 어서오세요, 몇 분이세요? "안녕하세요! 두 명이에요!" - 네.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첫번째 럭키. 수능 당일의 저녁시간인데도 대기 없이 입장이 가능했다! 그것도 학생들이 바글바글할 3학구 중심가에서! 예상치 못한 행운에 리라는 조금 놀란 눈으로 랑을 돌아보며 '우와, 대박.' 하고 입을 뻐끔거린다.
- 물 준비해드릴게요~ 주문은 패드로 부탁드려요!
머잖아 깨끗하게 치워진 2인용 좌석이 준비되었다. 출입문으로부터 멀어서 바람에 추워지지 않고, 어느 정도 중앙에서 벗어난 자리라 지나치게 소란스럽지 않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여기...
"어, 우리 전에 왔을 때도 이 자리에 앉았던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우연이람. 두번째 럭키, 추억의 자리에 배치되었다!
"뭔가 신기하네요~ 고생했다는 의미로 우주의 기운이 축복이라도 내려주나? 아 참, 아까 들어올 때 보니까 결제할 때 수험표 보여주면 할인해준다는데... 역시 이게 수능 끝난 고삼의 진정한 권력인가 봐요."
그리고 이로서 세번째 럭키. 대망의 수험생 할인...! 신이 난 채로 종알거리던 리라는, 문득 무심코 입에 올린 수험표 이야기에 한쪽 어깨에 맨 작은 핸드백 표면을 슬쩍 매만지다가, 이윽고 물병을 들어 물컵 두 개에 각각 물을 따랐다. 그러면서 넌지시 묻는 거다.
"......랑이 언니는 시험 어땠어요? 안 어려웠어요?"
수험표가 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 수능 본 수험생이라는 뜻이다. 즉, 조금 전까지 하루종일 책상에 발이 묶여있다 온 사람들.
"전 어려웠어요... 아까 하교 전에 가채점 했는데... 망한 것 같... 아..."
그래. 그런 존재로서 당연하게 느끼는 다가올 등급에 대한 압박감이 살살 밀려온다...! 물론 이리라야 망해도 그만인 직종으로 가버릴 예정이긴 하지만! 그래서 수능 공부도 중간쯤에 슬쩍 놓고 재데뷔 준비에만 올인했지만! 그래도! 고등학생이라면 멘탈적으로 좀 그게 그것이!
"사실 수능 칠 줄 몰랐는데, 그래도 해놓고 나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생각보다 더 못 본 것 같고... 으윽... 하지만 끝났다고 속은 후련하구... 뭔가 허전한 것도 같고..."
데이트 중에 이런 말 하는 게 맞나? 하지만 이미 터진 둑이다... 리라는 랑의 몫으로 따른 컵을 넘겨준 후 제 몫의 물을 깨작깨작 마시기 시작했다.
랑은 리라의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말들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리라가 신이 나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속에는 그녀만의 차분하고 묵직한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던 중 리라가 수능 이야기를 꺼내며 슬슬 멘탈이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자, 랑은 조용히 손을 뻗어 리라의 컵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살짝 두드렸다. 주의를 환기시키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리라의 하소연에 랑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답했다.
"시험? 그냥 그랬는데. 쉽지도, 어렵지도 않았고. 나도 망쳤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근데 어차피 끝난 거니까."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엔 이미 지나간 일에 휘둘리지 않는 그녀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리라가 자신은 못 본 것 같다고 자책하듯 말하자, 랑은 고개를 기울이며 리라를 바라봤다.
"네가 잘 봤든 못 봤든 별로 상관 없지 않을까. 그건 그냥 네가 지나온 하나의 과정일 뿐이니까. 그리고 지금 여기 이렇게 있고. 네가 생각하는 그 ‘망했다’는 거, 앞으로 얼마나 신경 쓰겠어."
랑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리라가 고개를 숙이며 허전함을 말할 때, 다시 고개를 들어 리라의 눈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속이 후련하다는 거면 된 거야. 그 정도면 잘 끝낸 거니까. 허전한 건 당연해. 한참 동안 신경 썼던 게 없어졌으니까."
"쉽지도 어렵지도 않았대. 언니... 방금 약간 어떤 경지에 이른 수능의 고수 같았어요."
또 뭐라는 거지. 평소 같은 헛소리다. (?) 하지만 그렇게 느꼈다는 것 자체가 아무래도, 보통 정말 망했다 싶으면 실제 난이도와 무관하게 한눈에 어려워보이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게 이리라였다. 으으, 조금 부끄러운 것 같아... 하지만 이어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한순간 파도치던 부끄러움도 서서히 가라앉는다. 차분하고 묵직한 분위기. 그리고 그 분위기만큼이나 차분하고 묵직해서 휘청거리는 마음을 잡아주는 목소리와 태도. 지나간 일에 휘둘리지 않는 특유의 성격... 그런 것들이 리라를 다시 이 공간으로 데려와 주었다. 파도치던 마음이 다시 고요해진다.
"그건 그래! 랑이 언니 말이 맞네요. 지나온 과정일 뿐이라는 말... 좋은 것 같아요. 헤헤, 우리 언니는 벌써 어른 같다니까."
늘 의지가 되어주는 사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여자친구. 당신이 이런데 어떻게 하루하루 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나. 어느새 리라의 얼굴에 서렸던 근심이 씻겨나간다. 그 빈 자리를 채우는 건 평소와 같은 맑은 웃음이다.
"맞아요. 사실 당연한 거죠. 언니 말대로 마냥 허전한 것만은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역시 이정도면 잘 끝냈다고 봐야겠죠? 고등학교 생활. 입학부터 시작해서 저지먼트 일에 수능에, 3년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살면서 한번도 걸어보지 않은 궤도를 걸으면서 겪었던 성장통이란 이따금 뼈아팠었다. 그렇지만 이제와 돌아보면 꽤 잘 이겨낸 것 같다.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난 건 물론이고.
작은 감자 고로케 두 개와 우동, 작은 샐러드로 구성된 세트메뉴를 클릭해 장바구니로 옮긴 리라는 랑이 메뉴를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패드를 랑이 앉은 방향으로 살짝 돌려두었다.
"그러고 보니 언니는 졸업하면 협력 연구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저는 담당 연구원님이 곧 목화고 랩실 나오신다고 해서, 타이밍도 맞겠다 같이 계속하는 걸 권유하긴 하는데... 고민 중이에요. 안 한다고 해도 여기저기서 다른 권유들이 들어올 것 같기도 하고... 기왕 5레벨이니까 지원금 생각하면 하고 싶기도 하고..."
와! 자본주의의 노예 같은 발언! 근데, 이 녀석 돈이라면 이미 꽤 있지 않나...?
// 여기서 잠깐 질문! 리라는 재데뷔 고민할 때부터 랑이랑 간간히 대화하고 하면서 마음 정하고 정한 뒤에는 준비 과정이랑 데뷔 일정 같은 거 다 알려줬을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랑이가 리라가 내년에 데뷔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해줄 수 있으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수능 끝난 다음에 처음 얘기했을 것 같진 않아서 🤔
그런 뜻으로 벌써 어른 같다는 말을 꺼낸 게 아니란 것 정도는 알지만, 이 정도는 가벼운 농담처럼 주고받는 게 좋다. 분위기도 적당히 풀 수 있고.
"그래, 잊기 어려운 그런 시간들이지."
졸업하면 뭘 하고 싶냐는 리라의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아직 주문을 하지 않았다며 패드를 조작한 리라가 자신 쪽으로 패드를 돌려두자, 천천히 손을 뻗어 패드를 건드리며 메뉴를 고르던 랑은, 협력 연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패드를 톡톡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매일 연구에 어울리는 건 아니겠지만 계속 하겠다고는 했지. 연구가 진전되면 내가 귀찮은 일도 적어질 거 같고."
지원금 쪽은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이미 정상 범주를 벗어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으니까. 그보다, 앞으로 뭘 할 거냐는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돈가스 맛집인 만큼, 돈가스 세트를 하나 시키며 랑은 패드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두었다.
"아직 확정된 건 없는데, 마무리할 일이 좀 남긴 했어. 방금 말한 것처럼 당분간은 협력 연구 외에는 따로 뭘 하진 않을 것 같다."
말을 끝낸 랑은 그러는 너는? 이라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리라를 쳐다본다.
"결심은 좀 섰을까 모르겠다."
//그거 좋다! 그래서 리라가 이미 말해줘서 알고 있다는 느낌으로 마지막 말을 써봤답니다! 리라주도 오늘 좋은 하루 보내고! 그쪽도 연휴...를 지키는지는 모르겠지만 쉴 땐 꼭꼭 잘 쉽시다!
스무 살, 이라는 농담 같은 대꾸는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리라는 가볍게 소리 내어 웃으며 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스무 살이라. 곧 리라가 도달할 곳이고, 동시에 머잖아 당신이 지나갈 곳이다. 막 성인이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건 학생 때보다 더 자유로운 느낌일까. 아니면 비로소 몰아치는 한 인간으로서의 의무들에 숨이 막히는 느낌일까. 하지만 사실 어느 쪽이라도 괜찮을 것 같다. 당신은 단단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특별히 단단하지 않더라도 내가 항상 옆에 있을 테니까. 또한 내 옆에도 당신이 있어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 리라는 비로소 맞이해야만 하는 인생의 새 파트가 별로 두렵지 않았다.
"그렇구나, 하긴 그래. 연구가 진전되면 그런 장점들이 있죠. 이젠 학생 때처럼 매일매일 커리큘럼 받을 일도 없고... 흐으음... 역시 하는 편이 좋을지도...?"
드로잉 액츄얼라이즈라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희귀한 리얼리티 매니퓰레이션이라는 대분류에서도 상당한 자유도를 갖춘 능력이니 연구하지 않고 썩히는 건 사실상 낭비에 가깝긴 하다. 그 자신도 스스로의 능력을 더 알아보고 싶기도 했고. 게다가 랑이 먼저 연구를 지속할 거라고 말해주자 부담이 덜어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사이 패드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리라는 메뉴를 확인한 뒤 곧장 주문 버튼을 눌렀다.
"아무튼 제 일은 제 일이고~ 응, 그렇구나. 그럼 언니는 성환 연구원님이랑 계속 같이 연구할 것 같아요? 라포 쌓인 사람이랑 쭉 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고 저희 연구원님은 그랬거든요. 데이터도 확보되어 있고. 뭐, 꼭 그런 게 아니라도 성환 연구원님은 괜찮은 어른이니까~"
한때 랑의 손바닥 상처로 인해 성환을 격하게 오해했던 것 치곤 꽤 유해진 반응이다. 하긴, 처음 오해한 이후로 1년도 더 지났으니 그 사이에 평가가 번복될 여지는 충분했지.
"그나저나 마무리할 일? 그게 뭐예요?"
다만 궁금한 건 이쪽인데, 질문하는 동시에 역으로 질문하는 듯한 표정이 다가온다. 리라는 잠시 눈을 데굴 굴렸다가, 천천히 웃어보인다.
"응, 결정했어요. 해가 바뀌면 데뷔 앨범 나올 거예요. 솔로로."
역시 너는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것 같다고 말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말이 놓고 온 것에 대한 일말의 미련과 열정에 다시 불을 붙였다.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티저는 10월 말에 찍었어요. 12월 중으로 타임테이블이랑 인포 올라갈 것 같고요... 아, 뭔가 엄청 두근거리는데 이게 불안한 건지 설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히히."
"......언니는 어때요? 나 다시 무대에 서는 거, 싫거나 이상하게 보이진 않아요? "
어째... 🤔 쓰면 쓸수록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전보다 더 랑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많이 보이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귀찮은 여자친구가 되었어. 하지만 랑이가 의지할 수 있게 곁을 내줬잖아. 유죄여자. 누가 마구 기대고 싶을 만큼 무자비하게 잘생기라구 했나 (대체...)
우후후후후 좋아요 좋아요~ 센스있게 이어줘서 고맙다구!! 여기는 연휴는 아니지만 설 기념으로 한인마트에서 떡국떡 할인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해 🤔 크윽 우리도 연휴 줘 (근데 여기서 더 챙기면 연휴 아닌 날보다 연휴가 더 많아지는 것 같긴 함... 이해합니다)
히히 이제 저녁이니까 슬슬 쉬겠지? 랑주 해피연휴시작이야! 맛난거 잔뜩먹고 푹 쉬고 회복하는 시간 보내요~!!
잘잤따 히히 랑주는 지금쯤 자고 있겠지? 푹 자고 내일도 여유롭고 좋은 하루 보내요 😌 떡국도 먹구~!!
그러고보니 랑이랑 리라 새해맞이 if로 아녜스 센터 가서 한복 입은 썰은 풀었지만 진짜 설(구정)은 아직 썰 풀어본 적이 없... 지? 설 기념으로 떡국 만드는 리라 보고싶다 (랑이야 미리 미안하다)
리라가 만든 떡국
.dice 1 3. = 3
1. 레시피를 강박적으로 지켜서 전반적으로 괜찮게 나왔다. 드문 성공! 하지만 어쩐지 주방이 초토화가 되었다... 2. 양조절 실패! 게다가 어쩐지 떡이 불어버려서 더 많아졌다. 둘이서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3. 위쪽은 살아남았으나 어쩐지 아래쪽은 냄비에 떡이 들러붙고 들러붙은 놈이 탔다... 위는 먹을만하지만 아래는 연옥인 떡국 실존
그리고 또 설에 뭐하더라 🤔 영화채널 틀어놓고 특선영화 방영해주는 거 보기. 어른 캐릭터들에게 세뱃돈 갈취하기. 친척집가기... << 이건 센터 놀러가는 걸로 퉁칩시다. 아니면 글레이프니르 아지트나 성환씨네 집에 쳐들어가 (들여보내준다고 안햇음)
세배 얘기하니까 궁금한건데 비단씨한테 냅다 절하고 세뱃돈주세요 하면 주나? (비단씨: ?) 성환연구원님은 착해서 갈취당해줄 것 같은데 비단씨는... 🤔 흐음... 유정이만 좀 용서받고 나머지는 기합받을지도
랑은 잠시 리라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리라가 무대에 다시 서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그동안 리라가 무대에서 빛날 때마다 늘 멋있다고 느꼈지만, 그녀가 겪는 불안과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미 꽤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귀찮고 끔찍한 일들도 있었으니.
"싫거나 이상하게 보이진 않지. 오히려 응원하는 편일 걸. 네가 잘할 거란 걸 알잖고 있고, 아무리 불안해도, 그건 네가 그만큼 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나한텐 그런 네가 멋져 보이거든."
랑은 말을 이어가며, 리라에게 다가가 살짝 머리를 쓰다듬듯 손을 올렸다.
"네가 원하는 길을 가도록 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일까, 그런 고민을 가끔 해 왔었다.
맞다. 작년 여름, 15주년 기념 행사 이후.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맺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났던 사건과 전후로 발생한 후유증들은 무시할 만한 게 못 됐으니까. 리라 본인도 많이 덤덤해졌을지언정 당시의 상황들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입이 썼고. 그나마 모두의 도움을 받아 잘 풀려서 다행이지만... 별개로, 리라는 아직도 능력자 교도소에 가까이 가기를 꺼려했다.
"......멋져 보인다고 해주니까 뭔가 안심되네요. 응원해준다는 것도 그렇고... 사실 걱정했거든요. 작년에 있었던 그 일도 그렇고, 언니한테 이야기했던 옛날 일도 그렇고."
사실은 이 결정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많았다. 아이돌이라는 건, 다시 연예계로 돌아간다는 건 리라의 재능을 마저 발산할 수 있는 결정일지언정 일련의 과정을 함께 겪은 랑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 있으니까. 직업 특성상 불특정다수에게 더 많이 노출될 예정이기도 하고, 그건 연인으로서 불편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러나 랑은, 이리라의 든든하고 사랑스러운 연인은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사려깊다. 리라는 머리를 쓰다듬는 따스한 손길에 몸을 맡기듯 눈을 살짝 감고 손바닥으로부터 전해지는 온기를 만끽했다.
"고마워요. 내가 뭘 하더라도 믿어준다고 해서. 언니가 이렇게 지지해주니까 남아있던 불안도 싹 녹아내리는 거 같아요."
낮은 웃음소리를 흘린 리라는 천천히 눈을 떠서 랑을 마주보았다가, 이내 제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잡아서 끌어오려고 했다. 그 동작에 따라서 손을 내려주었다면, 리라는 랑의 손등 위에 키스를 남겼을 것이다.
"저도 그래요. 언니가 뭔가를 염원해도,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목적한 길을 똑바로 걸어가거나 혹은 방황하더라도... 언제나 언제나 지지하고 응원할 거예요. 말마따나 세상에 한 사람 정도는 그래야죠. 그쵸?"
방긋 웃어보인 리라는 입을 맞춘 손에 제 뺨을 대고 가볍게 부빈다.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심이었다.
- 왐마야...
......응? 근데 이건 무슨 소리? 어딘가에서 나직히 흘러나오는 제삼자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리면, 그곳에는... 서버가 서 있다. 요리가 담긴 카트와 함께.
- 도, 돈가스 세트와 우동 세트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다 들었다, 저 사람! 백퍼센트 다 들었어! 눈치껏 빠르게 세팅된 음식들과 그보다도 빠르게 멀어지는 서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리라는 문득 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그리고 포크를 쥐어서 세트에 딸려나온 감자 고로케를 한입 크기로 자른 후, 조각난 것 중 하나를 푹 찍어서 랑에게 건네려 한다.
히히 안그래도 오늘 한인마트 가서 떡국떡 한봉지 사왔지롱~ 내일 끓여먹을거야 🤤 떡국... 오랜만이다... 맛있겠다... 참치의 (내일 월요일) << 이게 두렵지 않은 것도 오랜만이구 랑주도 하루 잘 보내고 해피선데이 되길! 확실하진 않지만 한국 내일 눈온다는거 같은데 추위 조심하구~ 여긴 눈 대신 비 온대... 다행이다... 적절히 와서 불 그만 나게 해 줘 🫠🫠 (우리집 근처는 괜찮지만 놀랍게도 아직 안 꺼진 곳이 존재함)
>>생사고락을 함축한 떡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요... 음식이 아니라 의도를 가진 예술작품이었다면 더 잘 먹혔을 이리라 떡국 🫠 하지만? 그렇다. 위에는 살아남았으니까 거기만 잘 떠먹으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랑이가 마법의 스프 뿌려줄거니까 괜찮아...!!
리라: (언니, 믿음직해...!)(감격)(두근)(?)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다 받아주는 거냐고ㅋㅋㅋㅋㅋㅋ 이 너그러운 사람! 저야 좋죠 전부 쳐들어가서 세뱃돈으로 주머니를 불립시다 😎 ㅇ헉 근데 비단씨도 복주머니 줄 수도 있구나?! 비단웅니 🥹 다정해... 물론 지금은 애매하다구 하지만 그래도... 와중에 이유 넘 궁금한데 🤨 이유 머에요!! 이유 머야!! (데굴데굴땡깡) 양귀비 정보랑 일부 교환합시다!! (말?랑이거래 시도)
근데ㅋㅋㅋㅋㅋㅋㅋ 겨우살이 양귀비 협력해버리는 적폐망상 재밌었냐구ㅋㅋㅋㅋㅋ 사실저도재밌었어요. 일단 양귀비 설정 조금 드릴테니 관심있으면 연락다오 (?)
응!! 헤헤 나는 에유썰 자판기니까 ☺️ 마구마구 생각해둘게요 우리 천천히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많이해보자! 🥰❤️👍
인첨공의 암부 단체 중 하나. 상징은 붉은 양귀비. 국가를 위한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양지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비윤리적인 인체실험을 행하고 있는 실험 및 연구 위주 단체다. 인첨공 상부 중 일부,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의 어두운 일부분과 맞닿아 있으며 직접적으로 연결된 상부의 의지를 따라 가까운 미래에 인첨공의 초능력자들을 은밀한 국내외 비밀작전에 투입하며 점점 그 영향력을 넓히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주 연구 목적 - 초능력자 전쟁 병기의 양성. 인첨공 혹은 대한민국 내부뿐만 아닌 세계의 물밑에서 은밀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 해외에 기대지 않는 물자의 100퍼센트 자급자족을 목표로 다양한 초능력을 개발 및 연구. - 보편적으로 초능력자의 한계라고 알려진 부분을 타파 및 추가 개발. (예시: 인첨공 내부 인구 중 레벨 5의 비율을 늘리기, 다중능력 개화를 위한 커리큘럼 진행)
A1. (알 수 없음)
A2. 연구소 시즈SHIZ 와의 연관성 한때의 유착 관계. 암부 오피움은 시즈 연구소가 개업 4년차에 접어들었을 무렵부터 연구소 측의 인력과 연구 성과를 공유받는 대신 차일드에러와 각종 실험용품의 유통 및 처리 따위를 상부상조하고 있었으나, 1대 소장 엄시화의 사망 이후 2대 소장이 된 엄시현의 강경 대응으로 인해서 관계가 끊어졌다. 때문에 적잖은 피해를 받아 암부 내에서 엄시현은 블랙리스트-암살 대상 취급, 티나지 않게 꾸준히 암살 시도를 하고 있다. 반대로 ■ ■■ ■■■의 ■■■였던 ■■■은 예의 주시 중.
머가 미안해잇 연휴인데 그럴수도 있지~!!! 좋은 아침이야 랑주! 아침은 잘 먹었는가!! 푹 잤는가!!! 눈 많이 오는구나 🥺 그렇다고 듣긴 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이 오나보군... 집 안에만 있어야 할 정도라니... 춥지 않게 따뜻하게 있고, 기왕 집콕해야 하는 거 집콕 즐깁시다 (???(
후후 들켰군 (?) 내가 바로 신시대의 레스걸이다... 200도 먹어야만 (꼭 이러면 실패하던데
포근한 시간이었다. 간결하지만 담담하고 따스한 말이 마음을 따스하게 데워주었고 머리를 쓰다듬는 무언의 손길이나 작은 미소, 그리고 건네는 음식을 받아먹어주는 행동. 행복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것 같은 순간순간. 리라는 먹기 좋게 잘라서 내밀어진 돈가스를 왐 하고 받아먹었다. 괜히 맛집은 아니라는 건지, 예전에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훌륭했다는 뜻이다. 물론 랑과 함께하면 뭔들 맛이 없겠느냐만은.
어쨌거나, 그렇게 시작된 식사는 느긋하게 지속된다. 이런저런 잡담을 곁들이고 서로의 음식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접시는 적당히 비워지고 바깥은 한층 더 어두워져 있다. 리라는 창문 너머로 불이 켜진 가게들의 조명에 반짝이는 바깥 골목을 응시하다가, 이윽고 랑에게 눈짓한다.
"다 먹었어요? 그럼 가 볼까요? 다음 목적지."
식사가 종료된 후 다시 나선 길은 한결 더 차가워져 있었다. 리라는 허공으로 하얗게 퍼져나가는 입김을 응시하다가 이윽고 랑의 손을 붙잡는다. 아니... 붙잡는 것 이상으로, 품에 폭 파고들었다.
"아으아아아, 추워어어~"
어쭈. 속이 아주 훤히 들여다 보인다.
"원래 양탄자 타고 인첨공 한바퀴 돌까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춥네요. 그건 일단 킵해놓고, 코인노래방이 근처 건물에 새로 생겼대요. 거기 갈까요? 언니 노래하는 거 듣고 싶어. 예전에 밴드부에서도 보컬 제의 받았다는 거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나는데~ 윽, 근데 이제 보니 온갖 동아리가 랑이 언니를 탐냈잖아? 댄스부만 언니를 못 가진 게 아니라 다행이다."
사실 댄스부의 경우엔, 끝내 못 가졌다기보다는 중간에 이리라가 팔볼출에 가까운 소유욕을 발휘해서 영입을 중단했기 때문에 어영부영 마무리된거지만서도.
"그리고, 그 다음엔 어디 갈까~ 코노 옆에 네컷 사진 가게 있으니까 그거 찍으러 가도 괜찮고, 영화는... 흠, 오늘 수능 당일이라서 미리 예매 안 했으면 못 볼 것 같고... 아. 아니면 놀이터 갈까요? 고등학생 타이틀 떼어지면 정말 어른이니까, 그 전에 가서 놀고 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식사를 마치고 나서 바깥으로 나오면 기온이 그동안 크게 변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내가 많이 따뜻했던 만큼 더 춥게 느껴지는 것 같다. 리라와 마찬가지로 허공으로 흩어지는 입김을 응시하던 랑은, 자신의 손을 붙잡던 리라가 품으로 파고들자, 그대로 꼭 안아주며 천천히 걸었다.
"코인노래방 괜찮네."
밴드부 이야기에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덧붙이곤 계속해서 조잘거리는 리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새삼스럽지만 활발함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간은 많으니까, 하고싶은 건 다 해 보자."
말마따나,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될수록.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며 자연스럽게 바빠지곤 한다. 그러니까 시간이 있을 때 놀아둬야지.
뭘 얼마나 놀려고...! 물론 이건 오늘 각자 귀가하지 않고 함께 잠들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에 가까웠으니, 정말 밤새 잠들지 않고 랑을 피로하게 만들 일은 없을 것이다.
머잖아 도착한 코인노래방은, 과연 새로 지었다는 말대로 깔끔한 외관을 자랑했다.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지나치게 바글바글하지도 않고 오히려 한적한 느낌에 가깝다. 오늘 같은 날에 제일 붐빌만한 곳이 이렇다는 건 조금 묘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조용한 건 확실한 메리트니까. 리라는 입구 앞의 자판기에서 생수를 두 병 뽑은 뒤 가까운 부스로 랑을 이끌었다. 꽤 널찍한 내부에는 마이크 커버와 노래방 책자, 노래방 기계, 그리고 마이크 두 개가 놓여있다.
"자~ 누가 먼저 부를까요~ 랑이 언니부터? 아니면 나부터?"
노래방은 정말 오랜만인데. 심장이 마구 두근거린다!
"아! 우리, 점수 대결할래요? 처음 시작에 한번씩 번갈아서 하고 그 점수로 판결!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정보: 몇 개월 뒤에 데뷔할 사람입니다. 양심 있나?
"......어, 언니도 밴드 권유 받은 거면 노래 잘 할 것 같으니까. 그리고 저는 메인보컬도 아니었고! 생각보다 노래 못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나름 공평한 대결... 아닐까요...?"
스레 아카이브는 일단 해놨는데, 혹시 랑주는 뉴참치가 편할까? 아니면 아예 다른 곳으로 갈 생각도 있어? 일단 물어볼게! 애초에 이주라면 어디든지 가도 괜찮을 거🤔 (라고일단생각하는데 아닐시 머리박음... 하지만 구참치어장곧문닫고 그냥일단말은해보려고) 나는 둘 다 괜찮구 일단... 선택지는 있다고 생각하니까? 물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