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느 수송선의 선상은 그런것과는 관련없이 기분이 나쁠 뿐이었다. 항구가 잘 보이는 어느 커피전문점의 창가에 앉아선 멍한 눈으로 도크에 정박한 우주선들을 바라보는 그녀. 목재운반선 화이트 레이븐호의 선장인 아헨이었다.
다른 상인들은 이곳에 돈을 벌러 왔기때문에 노력여하에 따라 더 수익을 얻을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것도 없었다. 그저 모행성에서 생산된 나무를 가지고 와서 이곳에서 미리 계약된 다른 운송업자에게 목재를 넘기기만 하면 끝나는 일. 돈은 목재가 수도에 도착하면 정산되니 당장 받을 수 있는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돈 받아봤자 전부 가문의 지휘부에 귀속될뿐 자신에게 주어지는건 월급뿐이었다.
창문의 반대편에 걸린 TV를 본다. 외우주 미개척 지역 탐사중 실종되는 사건이 급격히 늘었다는 뉴스. 그래 요즘 저 뉴스 자주 올라오더라. 다음 소식은... 엘프들이 사는 테라 행성계의 암흑물질을 우회할 수 있는 스페이스점프 경로 구축에 들어간다는 소식. 와 이건 성공하면 되겠네. 내 모성에도 관광객 잔뜩 올려나?
자기 방 침대에 누워 맛있게 자고있던중 폰에서 울리는 알람음을 듣고 잠결에 더듬거리며 폰을 찾아내어 화면을 켜본다.
"헐 진짜로 지원하는 사람이 있네"
용병단 지원자가 나타났다. 이름이 뭔지 보자... 클라리스? 잠이 덜깨서 눈 초점도 안맞아서 이름도 잘 안보인다. 이름을 확인한뒤 침대에서 튕겨지듯 일어나선 주섬주섬 옷을 입고 머리 대충 털고는 일단 선장실을 나와 복도를 걷는다. 도크 주소를 알려줬으니 아마 배로 찾아올테니까... 그 다음엔 뭘 해야되더라?
뭔가 하얀것이 나타나더니 초인종을 누르는걸 바로 유리너머로 지켜본다. 일단 얼굴이 달린걸 보니 인간인듯 하다. 용병단 입단신청서를 폰에 다시 띄워서 사진을 한번 보고 출입문 유리 너머의 하얀것을 몇번 번갈아 바라보며 얼굴을 대조해보니 지원자가 맞는듯 하였기에 출입문 개방 버튼을 눌러 문을 연다. 설마 강도라면 함내 경비로봇 호출하면 될테니까.
"............."
문이 열리자 하얀것을 올려다 본다. 에리스 우주스테이션은 자연채광이 안돼서 항상 어두운곳인데 이 하얀것은 전구를 켜놓은 마냥 하얀색이다. 그리고는 아헨은 고개를 숙여서 자신의 의상을 잠시 확인한다.
"...아무래도 내가 옷을 갈아 입어야겠지?"
방금까지 자고 있었기에 헝클어진 세일러복에 한쪽이 떡져서 눌린 머리로 맞이하기엔 너무나 눈부신 그녀였다.
하얀 여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잠시 식당 한켠의 조리기기와 씨름하더니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컵 2개를 가져와선 그녀의 맞은편에 앉더니 녹차티백을 건네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녹차 티백을 뜯어서 물에 담근뒤 다시 입을 열었다.
"400년 전이면 나도 태어나기 전이야. 그리고 그런 클래식함을 유지하려면 돈이 들겠지. 이 배는 그런게 없어서 클래식엔 다가가지도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이야."
말을 마치고는 티백이 덜 우러난 찻잔을 한모금 들이킨다.
"그래서? 용병 모집조건 잘 보고 지원한거 맞지? 이 주변에 해적위협 없어지면 그대로 계약 해지 될거라고. 게다가 테라 본성이랑 여기 에리스 행성만 무한왕복 하면서 화물선 수송만 해야 한단 말이지. 엄청 지루하기도 할거고... 또또 여긴 우주해적도 사실상 안나오는 곳이라서 재미도 없을텐데..."
가문의 지휘부에 보내는 용병단 결성 보고. 선적화물 리스트. 출항 및 도착 예상일자. 고향 행성 입항후 필요한 정비사항 우주공항측에 발송할 선적화물 리스트, 출항보고서, 운항계획서 등등 용병길드에 발송할 클라리스 고용 관련 서류 평소엔 대부분이 딸깍 한번에 자동으로 처리됐지만 용병단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니 새롭게 해야 할 업무가 늘었기에 아헨은 혼자서 온갖 서류와 씨름하고 있던것이다.
"어우 좀 쉬자"
한참을 화면을 보며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이미 식어버린 따끈한 커피를 쪽쪽 들이키며 창밖을 바라본다. 우주외곽 개척자들로 보이는 사람들 한무리가 지나가는게 눈에 띈다. 저 사람들도 돈 많이 벌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
빵집 벽에 걸린 TV에서는 최근 급격히 세력을 늘린 해적집단 '말라카'에 대한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주요 목격지역은... 이쪽과는 영토 반대편의 국경지역이니까 별 신경은 쓰지 않아도 될것 같다. 다른 뉴스는... 엘프족 거주지역 암흑물질 연구를 시작한다는 뉴스인가. 장기적으로 암흑물질을 제거하여 툭하면 고립되는 테라항성계에 대한 원할한 교통환경 제공.
"원 쓸데없는것만 잔뜩이네."
TV에서 시선을 돌려 다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본다. 작성중인 문서에 커서가 깜빡이며 입력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이 짓거리를 몇백년동안 더 해야할텐데 벌써부터 질려온다. 커피나 마저 마시려고 했더니 잔이 비어있다. 한잔 더 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