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말로 잘 부탁해 유화주~ ;) 그러면 첫 일상 말인데, 전에 얘기했던 장례식을 첫 일상으로 하는건 어떨까? 아니면 다른 의견 있으면 편하게 얘기해줘~ 느긋하게 핑퐁하면서 방향성 잡다가 일상 돌려도 좋고, 다른 걸 첫 시작으로 해서 일상 돌려도 좋아. 그리고 오늘은 친구랑 술 마시러 가서, 레스를 써 오는건 조금 힘들것같아 88 미안해!
그러니까 보통의 장례식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초에 부모님의 지인이라는 존재부터가 극히 적었던 것 같아서, 친족도 없다시피한 우리 집에선 장례식도 가볼 일이 거의 없어서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일지도.
물론 내 뒤에선 안그래도 야윈 엄마가 자지러지게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하고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들은 그저 통곡을 하는 엄마 옆에서 눈을 깜빡이며 서있는 날 올려다볼 뿐이었다. 참으로 우스웠다. 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그야, 이 빈소의 주인은 내 아빠였으니까.
" ..... "
언제나처럼 저녁의 편의점 카운터에 앉아서 낡아빠진 스마트폰의 액정을 위로 끌어올렸다 내리는 것을 반복하던 나에게 연락이 한통 온 건 반나절 전의 이야기였다. 뭐라고 했더라, 경찰이었는지 아니면 아빠가 다니던 곳의 직원 분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선 정신을 차리니 나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해선 쓰러져있는 엄마가 있었다. 그걸 수습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만 바라보는 동생들을 재우고 나니, 그제야 이 텅 빈 빈소가 눈에 들어왔다.
" 아무도 안 오는구나. 아, 올 사람이 없나. "
애초에 근조화환 조차 없는 이 빈소에 올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낯설디 낯선 상복을 걸치고 입구에 서서 몇시간 째, 변하지 않는 이 한폭의 우습지도 않은 그림을 보고 있으니 실소가 머금어졌다. 엄마는 다행히도 울기 바빠서 내 중얼거림 조차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저러다 또 쓰러지면 병원비가 걱정인데. 이젠 그나마 몇푼이라도 벌어오던 아버지도 없는데, 책임감 있게 버텨주면 안되려나.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생각보다 덤덤했다. 눈물, 그건 아마도 장례식장에 오기 전, 차갑게 식은 아빠를 보고 나서 몇방울 흘렸던 것 같기는 한데. 아버지 몫까지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그 요동치던 감정마저도 팍 식어버린 기분이었다.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은지, 웃고 있는 사진 속의 아빠를 흘깃 바라보다 한번 더 숨을 뱉어낸다.
" 거기서라도 웃어야지. "
매일매일 다들 자고 있을 시간에 집에 들어와서, 술을 마시며 한숨을 쉬던 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을테니까. 그리고 그 고생을 내가 더 하게 되겠지만, 오늘 정도는 그래도 수긍해주기로 했다. 아무리 빌어먹을 집구석이여도 가족이니까, 아마 아빠도 이 생각으로 여태 버텨오지 않았을까 싶다.
3일, 이 느릿한 시간의 유통기간은 3일일테니까. 그리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싶었다. 아니, 더더 깊숙하고도 질척한 저 시궁창 아래로 헤엄치러 가야겠지만 그냥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내 삶은 그저 한순간에 변하지는 않을테니까, 적어도 이대로 머무를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장례식의 마지막 날까지 아무도 오지 않는 빈소 입구의 의자에 앉아 내가 지켜야 할 자리를 지켰다. 내 이 질척하고 비루한 삶에 무슨 일이 생겨날지 알지도 못 한체로, 그저 이따금 아빠가 내뱉던 한숨과 비슷한 것을 뱉으면서.
대한민국 3대 기업 중 하나인 HN 기업 계열의 명문 사립고등학교. 수많은 걸출한 인물들을 양성해낸 이 학교가, 나는 죽을 만큼 지긋지긋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 통칭 '명문 루트' 를 타고 있는 내게 학교란 일종의 '어린이집' 과 다르지 않았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지금 다니는 고등학교까지. 전부 같은 명문 학교를 나왔으니까.
고등학교 학점제를 빠르게 받아들여 수업은 전부 선택제로 운영되고 있기에, 수업은 전부 내 마음대로. 동아리 활동도 마음대로. 이게 어린이집과 무엇이 다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외의 것은 내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에. 전부 HN 기업의 후계자인 내게 맞추어져 있고, 나를 칭송한다.
'정말 훌륭하네요. 이렇게 높은 수준의 수업인데도 흠 잡을 데가 없어요. 제가 오히려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올림픽에 나가도 될 것 같아요. 운동수행능력이 정말 높습니다.'
'꼭 이번 콩쿠르에 나와주세요. 거기서라면 하나의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을거에요.'
지긋지긋하다.
단순히 걷기만 해도, 수저를 제대로 쓰기만 해도 칭찬해주는 어린이집. 지긋지긋한 울타리 속 새장. 주변 인물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탐욕적인 아이들. 어떻게든 나를 이용해보려는 속셈이겠지. 내게 이 모든 것들은 그저 당연한 것이었다. 어렸을때부터 해냈어야 하는 것들. 누구도 나를 진정으로 바라봐 주고 있지 않아. 그렇다면 정말 내가 원하는건 무엇이지? 자아 실현의 욕구인가? 그거라면 이미 충분히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단순히 부모님께 인정 받는게, 고작 그 따위 것의 결핍으로 지금 내가 이렇게 망가져 있는거라고? 웃기지마.
학교 옥상에서 전자담배의 버튼을 연타했다. 깊게 들이 마시고, 내뱉는다. 긴 연기가 구름과 하나 되듯 흩어진다. 코 끝에는 복숭아의 짙은 잔향이 남는다. 평소라면 잠겨 있지만, 수위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늘 학교를 마치면 이곳에서 경치를 바라보며 전자담배를 피운다. 변명은 쉬웠다.
"하늘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바람을 좀 쐬고 싶어서요."
제법 감성적인 문장이지 않은가. 사실 변명은 무엇이 되었든 상관 없었을 거다. 이 학교에서 내게 거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구태여 말을 얹어 소중한 직장을 놓치고 싶지 않겠지. 어쩌면 단순히 그 말을 믿고, 감성적인 사춘기 소녀에게 선의를 베푼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이 눈을 쨍하게 만든다. 눈물 한방울이 흘러 내릴 정도였으니. 그 날은 뭔가 이상했다. 평소였으면 전화가 왔어도 한참 전에 왔어야 하는데, 담배를 너무 피워 머리가 아플 정도가 되어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이럴리가 없는데.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라도 할텐데 말야. 가끔 그런 일이 있었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호출로 종종 늦는 일이. 그럴 때면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틱틱거리곤 했다.
"제 기사님 아니신가요?"
그러면 곤란한듯이 웃곤 했지. 그냥 그정도의 관계였다. 그렇기에 마음에 들었다. 한밤중에 전화해서 "지금 OO호텔로 데려다주세요." 같은 말을 해도, 아무 말 없이 데려다주었다. 평소보다 짙은 화장으로, 평소보다 화려한 옷을 입고 밤거리로 나가는 내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정도의 관계. 그렇기에 마음에 들었다. 다 알테지. 그러면서도 뭐라 하지 않는, 그런 관계. 괜히 아첨을 한다거나, 어른으로써 설교를 했으면 그 입 닥치라고 험하게 말했을 테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선이 분명히 있었다. 그 아저씨는 운전 기사님. 나는 철없는 아가씨. 그 정도의 거리감이, 내겐 무엇보다 필요했다. 모든것을 잊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밤거리로 나가는 내게는.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뚝, 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체 왜 안 오는걸까. 내가 지긋지긋해서 그만두기라도 한걸까.
하.
"짜증나네..."
그렇게 중얼거린걸 후회하게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삼일째다. 부스스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은 나는 잠시 앉아, 전자담배를 피우다...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저에요. 오늘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학교에 못 갈 것 같아요."
"아, 그러니?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내일은 올 수 있고?"
"네, 내일은 갈 거에요. 죄송해요, 갑자기 생긴 일정이라."
"괜찮아, 괜찮아. 나중에 서류 한장만 떼어줄수 있을까? 체험학습으로 해도 괜찮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러면 내일 보자, 하나야. 일정 힘내고."
"네."
뚝, 하고 전화를 끊은 뒤에는, 드레스룸으로 가 어젯 밤 스타일러에 넣어 둔 옷을 꺼냈다. 하얀 셔츠와 검은 자켓, 검은 치마. 지긋지긋한 교복을 입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운 기사님과 함께 가는 길은 짜증으로 가득했다. 그 역시도 과묵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서진 장난감을 새걸로 바꿔주는 꼴이랑 뭐가 달라.'
그 기사님은 적어도 장난감이 아니었다. 내 사람들을 장난감 취급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정부가 죽어도 새걸로 바꿔주겠지. 장난감처럼. 괜히 주먹을 꾹 쥐다가, 견딜 수 없어 가방에서 전자담배를 꺼냈다. 짙은 연기가 차 안에 퍼져나간다.
"하나씨, 학생이 담배를 피우면..."
"닥쳐. 지금 기분 안 좋으니까."
"..."
짙은 한숨이 차 안에 퍼져나간다.
도착하는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례식장은 허했다. 내 집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왜 이렇게 허전한거야.'
"하아..."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데려 온 사람들에게 근조화환을 옮기라고 시켰다. 대체 그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일까. 나를 데리러 오다가 죽은 거잖아. 사고로. 그런데도, 얼굴조차 안 비치고. 아니, 그것까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어. 하나뿐인 자식과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인걸. 그런데, 그런데.
화환 하나조차 보내지 않고, 연락조차 없다니. 내게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빈소 입구에 앉아있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딸이구나. 가족이 있었구나. 그것 마저도 몰랐네.
머릿속이 복잡하다. 하지만 걷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아이의 앞에 서고 나서야 나는 멈추었고.
"너. 운전 기사님의 딸이지? 오늘부터 내가 보살펴 줄게.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까, 나를 모셔."
강아지를 줍는 감각으로 그렇게 말을 걸었다. 책임을 지는 건 나다. 언제나. 설령 이 아이에게 이용받고 상처받더라도.
>>11-12 헤헤 고마워~ 어젠 엄청 재밌게 놀았다! 밤새 파티룸 대여해서 아침까지 마셔버렸어~ 데킬라랑 골든블루같은 양주 이것저것 마셨거든. 제법 돈을 많이 써서 큰일인걸~
그렇구나~ :) 덕분에 답레 쓰는것도 편했어. 엄청 즐거웠다~ 답레 열심히 써 봤는데, 마음에 들 지 모르겠네. 언제나 이것저것 맞춰갈 수 있으니까, 그런거 있으면 부담없이 얘기해주면 고맙겠어 ;3
슬쩍 뺨 쓰다듬어 주는거 너무 귀엽다... 모르는 척 하면 약간 어이없어 하면서 웃을지도 모르겠어. 오히려 역으로 자기도 쓰다듬으면서 공격할수도 있겠다. 마저 피우라고 틱틱거리면 겨우 이거 얼마나 한다고, 내가 마음껏 사줄테니까 너 가지라고 하면서도, 버리기엔 좀 뭐해서 유화 입에 물려줄지도 모르겠는걸. 투덜거리면 작게 웃을지도 몰라.
답레 늦어서 미안해~ 88 어젠 좀 많이 마셔버려서 너무 늦게 일어났네. 이것저것 하다보니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 오늘 하루는 휴일인데, 잘 보냈을까? 답레는 언제든지 편하게 달라구~!
>>15 맞아~ 이것저것 시켜 먹으면서 이것저것 마시다보니까 어느새 아침이더라구.... :3 헤헤 그런 것 같아. 어젠 엄청 즐거웠으니까~
마음에 든다니까 다행이다. 아냐~ 유화주 답레도 너무너무 예뻐서 정말 좋아하는걸. 딱 첫 시작에 어울렸던것같아. 앞으로도 기대되구... 응, 편하게 부탁할게. 나도 엄청 설레는 중~ 어떻게 매콤달달하게 이어져나갈지 기대된다. 느긋하게, 편하게 천천히 같이 놀아보자구 ;3
아가씨라고 부르는거 진짜 취저다. 그러면 '강아지 주제에' 같은 험한 말 뱉으면서도 괜히 더 바짝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툭툭 건드리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괜히 새침하게 휙 고개 돌릴 것 같아 ;3
3일 동안 질리도록 하던 것, 식장의 입구에 멍하니 앉아서 오지 않을 사람들을 기다리는 일. 그것도 거의 끝나갈 즈음, 옷감부터 '어디 그냥 굴러다니는 옷감이 아니에요.'라고 자기주장을 하는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온,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이 있는 것만 같은 여자애가 내 앞에 다가와 섰다. 생긴 건 까탈스럽게 생긴 것 같은데 예쁘장한 것 같긴 했다.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맞다. 드라마에서 딱 부잣집 아가씨로 나오면 딱 맞을 것 같은데. 이런 잡생각을 하던 와중에, 생긴 대로 노는 듯한 고운 목소리와 그와 정반대의 까탈스러움과 싹수없음이 뒤섞인 말이 내 귀를 간지럽히고 지나간다.
당당하게 서 있는 모양새를 보니 제정신으로 한 말인 것 같은데. 나는 평소의 습관대로 흘러내린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빈소 앞에 놓이는 화환과 눈앞의 여자애를 번갈아 살폈다.
' 아빠가 딱 딸만한 아가씨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그러거든. 아. 딸이랑 같은 학교다? '
같잖은 말 하지 말고 꺼지라고 하려다가 순간 머릿속에 아빠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언제 들었던 말이더라. 시험 기간이었나, 좁디좁은 방 한편에서 밤새워 공부하다가 아빠가 들어온 날이었나. 그러고 보니 꽤 부잣집에서 일을 한다고 했었는데 그 집안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서 그쪽이 누구…. 하, 아니 그러니까 조문 오신 거면 그냥 들어가셔도 괜찮아요. 딱히 조의금은 안 내셔도 되니까. "
잠을 하도 안 잤더니 내가 헛것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조의금 이야기를 한 걸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워낙 요즘 같은 세상에 듣기 힘들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아서 차라리 그쪽으로 생각을 하는게 맞는 것 같았다.
" 어머니는 수속 때문에 자리 비우셔서 인사는 못 나누실 것 같은데. "
그래도 우리 아빠, 한 명 정도는 와주기는 하는구나? 그게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애라는 게 놀랍다고 할까, 뭔가 우습다고 할까. 눈앞의 여자애는 우리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여기까지 왔을까.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제법 예쁜 얼굴이었다. 뭐, 봐줄만 하네. 입꼬리 아래 박혀있는 점, 그리고 독특한 붉은 눈동자. 무심코 손을 뻗을 것 같은 하얀 피부.
너는 흘러내린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나와 빈소 앞에 놓이는 화환을 번갈아 살폈다.
"네 아빠는 나 때문에 죽었어."
하. 짧게 코웃음 쳤다.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고려조차 하지 않은 채로. 그저, 분풀이에 가깝게. 멋대로 죽어버리기는. 짜증나. 나는 이제, 관련된 사람조차 죽이는구나. 변명할 여지 조차 없다. 그러니까.
"그거, 가지고 와주세요."
고개를 휙 돌려, 검은 정장을 입은 직원에게 얘기했다. 그러자 큰 가방을 가지고 왔다. 검은색 서류 가방. 철컥, 하고 열리자 그 안에는 5만원짜리 다발이 잔뜩 들어있었다. 얼추 몇천만원은 되겠지. 적당히 뽑았으니까.
"이하나. 우리 부모님은 HN 기업을 운영중이고. 네 아버지는 내 전속 운전기사였지. 나를 데리러 오다가 죽었고."
가방을 받아들어, 네게 건네듯 내밀었다. 조의금이 필요 없다는 말은 단순한 겉치레이리라. 그야,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는걸. 누구나 돈을 원한다. 다만 내겐, 그것이 썩어날 만큼 있을 뿐이었다. 상속세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생활비는 전부 부모님의 블랙 카드로 해결한다. 그러면서도 용돈은 매달 넘쳐날만큼 받는다. 내 이름으로 된 재단도 있다. 탈세는 적어도 내 부모님에겐 익숙한 것이리라. 그깟 세금이 뭐라고, 뒤로는 얼마나 더러운 일들을 하고 있을지 치가 떨린다.
나 역시 얼마나 더러운 사람이던가.
"그럼 나중에 정식으로 인사드릴게."
너무 늦게 왔나. 나는 언제나 그렇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용기가 없다. 그러니까 이 모양으로 살고 있지. 안락한 새장 속에서, 괴로워 하면서도 정작 새장을 떠나지는 못해. 그러면서도 새장 밖을 동경한다. 욕심으로 가득하고, 이기적이게도 추악하다.
시선을 느릿하게 돌린다. 텅 비어있던 빈소. 그나마 화환으로 풍성하게 채워지고 있다. 안쪽에는 어린 아이들. 동생일까. 다시금 눈동자를 움직여 네 붉은 눈동자를 바라본다.
"빨리 이것부터 받지? 무거우니까."
다시 한번 가방을 네 앞에서 흔들어보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얘기하겠는데, 너 오늘부터 내 강아지 해."
"책임져주겠다고. 전부 나 때문이니까. 나를 모셔. 이건 통보야. 거절하지마."
사람을 장난감 취급한다면, 나도 사람을 장난감 취급하겠다. 독하게 마음 먹으리라. 그렇게.
"할줄 알아. 여기저기 많이 다녔으니까. 발인 할 사람도 없지? 우리 직원들이 관 드는것부터 전부 해줄거야."
>>17 헤헤 괜찮아~ 푹 잤더니 상태도 괜찮구, 이제 슬슬 해장하면서 밥 먹구 흑백요리사 조금 보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떤 반응 할지 기대되는걸~ 답레도 그렇구~ :3 헉... 완전 달달하잖아... 그러면 우물거리면서 또 틱틱대겠지. 겨우 이런 간식으로 마음이 풀릴 줄 아냐고 하면서도, 괜히 챙겨온 간식 유화 입에도 넣어줄것같아. 어쩌면 손가락까지 넣을지도 모르겠네 ;3
진짜 저런 말만 골라서 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런 말만 어쩜 쏙쏙 골라서 외면하던 것을 마주하게 만드는 여자애가 눈앞에 서 있다. 주제에 진짜 돈 많은 부잣집 따님이라도 되는 건지 사람들도 부리고, 또박또박 명령을 해선 내 앞에 돈가방을 들이민다.
" 하…. 씨…. "
순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이 새어 나가려던 것을 간신히 집어삼키곤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 넘긴다. 그래그래, 지금 돈 들이대면서 하는 말이 자기 딴에는, 자기 위치에서 하는 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거로 생각하자. 좋게 생각해 주려는 게 그나마 이 정도인데. 솔직히 밤거리를 걷다가 술에 진탕 취한 인간들이 괜히 한번 말이라도 걸어보겠다고 하던 것들이랑 비슷해서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돈, 그래. 없이 태어나고, 없이 자라서 저렇게 대뜸 넘겨주는 돈이 없는 건 사실인데. 그래도 이런 식으로 돈을 들이미니까 익숙해졌던 수치심이 솟아오른다. 뭐지, 난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앉아 있는 꼴이, 텅 빈 체로 나랑 동생들만 있는 빈소의 꼬락서니가 이 정도로 못나 보였나.
" 아뇨. 잠깐만요. 일단 이거 치워요. "
허세 부릴 것도 없을 정도로 비루한 집이지만 일단 거칠게 내 앞에 서 있는 여자애가 내미는 돈가방을 밀어낸다. 지금 저거 받으면 뭔가 불쌍한 아빠를 죽어서도 팔아먹는 기분이라서 받기가 싫었다. 물론 나중에 후회할 거 뻔히 알고 있다. 나같이 없는 애가 주제도 모르고 자존심 바득바득 세우면서 안 받고, 개고생할 것도 알지만 지금 이걸 받으면 그 같잖은 자존심마저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 불쌍해 보인다고 이러시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어요…. 할 줄 안다고 하니까 말할게요. 이 돈은 그냥 가져가시고 조문이나 마저 하고 가세요. 이상한 소리…. 강아지는 무슨…! "
나름의 인내를 발휘해서 으르렁거리듯 한걸음 성큼 다가서며 말했다. 예의가 아니라는 건 아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니, 아니긴 무슨. 그냥 같잖은 자존심을 부리는 거지만.
사람을 뭐로 보는 거야. 나는 기왕 자존심 세우기로 한 거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곤 같았던 눈높이를, 무릎을 굽혀 낮춰선 혀를 베 내밀어 보이곤 이 여자애를 비웃듯이 개 흉내를 내보였다. 다행인 건, 돈가방을 건네준 아저씨가 등을 돌리고 서선 주변을 살피고 있고, 이 장례식장엔 우리 말곤 다행히 다른 사람은 안 보였다는 점일까.
" 응? 진짜 이런 걸 바란 거예요?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네. 어디 사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하고 돌아가요, 알았어요? "
몸을 도로 일으켜 눈을 맞추곤 방긋 웃으며 두 손으로 눈앞 여자애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이쯤 허세를 부렸으면 이 버릇 없고 철없는 아가씨가 물러가지 않을까. 착한 사람이었다면 정이 떨어져서라도 가겠지. 뭐, 나는 원래 이렇게 사는 애라 돌아올 시선 같은 건 괜찮을 것 같았다.
너는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 넘긴다. 하, 씨? 그 모습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앞머리만 쓸어 넘기지, 괜히 나까지 거칠게 밀어내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이걸 원하는 거면서, 왜 비싼 척 하지? 결국 돈이면 다 되는 주제에.'
이 아이만 슬픈게 아니었다. 물론 자신의 아버지니까 우리가 서로 느끼는 슬픔은 다르겠지. 하지만 말야, 나는 내 아버지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슬플 것 같지 않아.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어? 모두 나를 이용하려고만 해. 주변의 추종자들도 결국 내게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원하고 있어. 너라고 다른 사람인 척 하지 마. 결국 속을 열어보면, 너도 나도 시커멓게 물들어있을 뿐이잖아. 그 사실은 누구도 다르지 않아.
비틀거리던 자세를 바로 잡은 뒤, 돈가방을 휙. 직원에게 건네고는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아가씨, 이 이상의 준비는 안 되었습니다만..."
"쯧. 펜이라도 가져다줘요."
명품 가방에서 명품 지갑을 꺼낸다. 하나같이 고급품 뿐. 그 안에서 수표를 꺼내어, 건네받은 펜으로 금액을 휘갈겨 쓴다.
"10억이야. 어느 은행에 가든 바꿔줄거고. 세무사 쪽에서 찾아와서 귀찮게 굴면 얘기해. 우리 쪽 사람 붙여줄테니까."
"조의금이라는 명분은 정당해. 나때문에 죽은 사람이니까, 얘기하면 더 귀찮게 굴지 않겠지. 한마디로 깨끗한, 니 인생 역전할 수 있는 돈이라고. "
"왜, 부족해?"
지갑에 들어있던 5만원짜리 다발을 꺼내어 턱, 하고 수표 위에 얹었다. 현금으로 몇백만원씩 들고 다니는건 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네가 으르렁거리듯, 한걸음 성큼 다가오자 작게 하핫, 하고 웃었다. 손을 뻗어 네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내리려 하며.
"야. 짜증나게 굴지 마. 닥치고 내 전속 하녀 같은거 하라고. 책임져 준다잖아."
왜 자꾸 자존심을 부리는거야. 네 아빠 나 때문에 죽었으니까, 내가 네 인생 책임져 준다고. 네 집 경제사정 같은거 알 바 아니라고. 잘 살든 못 살든, 어차피 내 앞에선 똑같으니까. 전부 내 돈을 원하잖아. 그래서 주겠다고. 대체 뭐가 문제길래 이렇게 틱틱거리는건데.
소녀는 알 수 없었다. 사과같은것을 해본 적도 없는 인생이었고, 뭐든지 마음대로 되는 인생이었다. 자신 주변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대하든 자신을 무지성으로 추앙하며 치켜 세워 올리는 사람들 뿐. 그렇기에 사고 방식이 뒤틀려 있었다. 돈으로 전부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 어차피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상처 입힐 사람이니까. 자신이 먼저 거리를 두겠다고. 그러니까 조용히 쫓아오기나 하라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에 이런식으로밖에 표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네가 눈 높이를 낮추어, 무릎을 굽히고, 혀를 베 내밀어보이자 따라서 너를 비웃었다. 서로가 서로를 비웃는다. 어찌 이리도 아이러니한 광경일까.
"그래. 잘 어울리네. 계속 그렇게 있어. 너, 봐줄만 하니까 곁에 두면 좋겠다고 지금 막 생각이 든 참이야."
그러다 네가, 몸을 도로 일으켜 눈을 맞추고 방긋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린다. 그 광경에 그만 웃음이 터져나올 뻔 한걸 간신히 참아내고서는, 네 목덜미를 잡아 확, 자신의 앞으로 끌어오려 하고서는 씩 웃었다.
"재밌네. 네가 좋든 싫든 상관없어. 넌 지금부터 내거니까.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었거든."
가지고 싶었다. 하나쯤,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을. 하나쯤, 자신의 격에 맞는 아름다운 장난감을.
뭐야, 결국엔 하녀라도 하라는 말이었나. 그냥 고용인으로 취직하라는 말을 참 어렵게도 하는구나. 나는 현금다발과 수표를 내밀며 거만하게 말을 내뱉는 눈앞의 부잣집 아가씨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아빠도 뭐 허드렛일 같은 거 도와주고 그래서 시켜 먹을 사람이 사라지니까 대타라도 구하러 온 건가. 그걸 왜 장례식장에서 구하려는 거지, 괜스레 솟아나는 반발심에 옆머리만 매만지다 돈은 도로 아가씨한테 밀어준다.
"이런 돈은 안 받을 거니까.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안 받을 거예요, 이런 돈. 나도 일해서 돈 벌 줄 알거든요? "
내 목을 잡아끌고 제 것 하라고 시건방지게 구는 아가씨와 눈을 마주한다. 진짜 말하는 거랑 다르게 예쁘긴 했다는 건 잠깐 집어넣어 두고 할 말은 해야겠지. 일단은, 저기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 녀석들이랑 엄마는 먹여 살려야 하니까 고작해야 알바 정도로는 그건 무리겠지. 눈을 맞추고 있는 찰나의 시간 동안 그렇게 머리를 굴리곤 방긋 웃어 보인다. 상복을 잡고 있는 아가씨의 손을 움켜쥐고 떼어내선 자연스럽게 깍지를 낀다.
" 아저씨, 잠깐 저 옆에 좀 다녀올게요. 아가씨 안 다치니까 걱정 말고요.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
동생들의 시선이 느껴져서 아무 일도 없다는 것처럼, 마치 눈앞의 아가씨가 원래 내 친구라는 것처럼 여전히 손을 깍지 껴 잡은 체 동생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곤 비상구로 통하는 빈 복도로 아가씨를 끌고 간다. 좀 건방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거 생각하기엔 이미 내 맘대로 하고 있었는걸. 그리고 아가씨가 하려는 거 방해하면 아저씨도 딱히 좋은 꼴은 못 보실 것 같으니까 다 도와주는 거지.
아무튼 그렇게 아가씨를 끌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복도에 마주 보고 서선 도로 마주 보고 서선 눈을 마주한다.
" 아까부터 주려던 선금 같은 건 안 줘도 되니까요, 아가씨. 장난감이든 하녀든 멍멍이든 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
딱 보아하니 위아래로 훑어보는 게 적어도 내 겉모습은 이 부잣집 아가씨 취향인 모양이니까. 마음에 들었다는 건 이용해 주기로 할게. 이건 당신이 권유해서, 당신이 끌려서 받아들이는 건 아니야. 그냥 당신의 그 취향이랑 돈만 이용하려는 거니까. 그게 다 이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갈 밧줄이 되어줄 테니까.
" 제대로 일하고 돈 받을게요, 아가씨. 대신에 돈은 아쉽지 않게 주셔야 해요. 이렇게 대뜸 돈을 주는 게 아니라. "
천천히 깍지 껴 잡고 있던 아가씨의 손을 내 뺨으로 가져다 댄다.
지금부터 하는 건 모두 당신을 써먹으려고 하는 거니까. 내 눈앞에 던져진 밧줄을 놓칠 생각이 없으니까.
혀끝으로 내 입술을 훑곤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아가씨를 올려다본다.
" 멍멍 짖으라면 짖고, 하라는 거 할 테니까. 알았어요, 아가씨? 월급만 제대로 줘요. 잘 해드릴게요, 제가. "
아가씨를 올려다보다 눈이 마주칠 때쯤, 상냥하게 눈웃음까지 살살 지어주면서 속삭이듯 말한다. 어차피 당신은 날 데려갈 테니까, 이렇게 된 거 나도 당신을 이용해 먹을 거야. 좀 더럽혀지고 수치스러워져도 뭐 어때. 애초에 안 그랬던 것도 아닌데.
너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옆머리를 매만지다 돈을 다시 내게 민다. 대체 왜 내게 돈을 다시 돌려주는거야? 나는 이해 할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네게 물었다.
"너, 좀 살아? 아니면 뭐야, 이해가 안되는거야, 멍청한거야? 10억이 넘는 돈이라고. 니가 아무리 잘 살아도 이정도 돈 있으면 하고싶은거 할 수 있잖아."
"못살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돈이고. 그렇지 않아? 일해서 벌면 얼마나 걸리는데. 한달에 200씩 모아도 연에 2400이야. 10년 일해야 2억 4천이고, 너 50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라고."
그리고 나는, 네 50년 분을 한 턱에 낼 수 있는 사람이고.
후계자 수업엔 이런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평범한 가정에서는 얼마나 버는지, 물가는 얼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뭘 내고 뭘 빼며 어떻게 가계부를 꾸려나가야 악착같이 살아갈 수 있는지. 그래서 알고는 있었다. 다만 거기까지 뿐. 자신에겐 돈이 썩어 날 정도로 많다. 주변에도 그 돈을 노리고 덤벼드는 사람들 투성이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경제관념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도 지금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돈이 많든 적든, 억이 넘는 단위의 돈이면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든다. 누군가는 하룻밤 클럽에서 놀 돈을 위해서. 누군가는 인생 역전을 위해서. 누군가는 단순히 여흥을 위해서. 너는 어떤 부류인데 이렇게 내게 거절하는거야. 잘 사는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텅 빈 빈소에서 궁상맞게 앉아있던 주제에."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마주치는 너를 바라보며 웃었다. 험한 말이 튀어나온것은, 처음으로 무시당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렇게 해서라도 눈 앞의 소녀가 갖고 싶기 때문일까.
처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만났다. 대체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걸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내 부모님 이후로. 몇마디를 더 얹으려다 네가 방긋 웃으며 내 손을 움켜쥔다. 뭐, 어떻게 하자고. 그런 눈빛으로 너를 쏘아보다 네가 내 손을 떼어내고. 자연스럽게 깍지를 끼자, 눈썹을 치켜올리며 눈을 끔뻑거렸다.
네가 내 손을 여전히 깍지 껴 잡은 채로, 빈소쪽을 향해 흔들어보인다. 동생들 안심시키려고? 하. 나도 네 동생들을 향해 살풋 웃어보이고는. 네가 비상구로 통하는 빈 복도로 나를 끌고 가자, 당황해하는 직원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가만히 있으세요. 얘기 좀 하고 올테니까."
아무도 보이지 않는 복도. 너는 나를 마주보고, 눈을 마주한다. 네 붉은 눈동자를 옅은 자수정 색의 눈동자로 가만히 바라본다.
"이제와서?"
당연한 의문이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이따위 돈은 못받겠느니, 어쩌느니 해놓고서는, 사람 없는 곳으로 데려와서 한다는 소리가 '장난감이든, 하녀든, 멍멍이든 하겠다' 같은 소리라고? 하. 코웃음치고서는, 너를 그대로 벽에 밀어붙이려 했다. 잡히지 않은 한쪽 팔을 벽에 턱 올리고서는.
"당돌한 년. 너, 정말 알 수 없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네가 내 손을 뺨에 가져다 댄다. 손 끝으로 네 뺨을 쓸어내리듯 움직이면서, 네가 혀로 입술을 흝는것을 바라본다. 너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래. 하나쯤 이런 장난감이 갖고 싶었어. 격에 맞는 장난감.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내게 반기를 드는 사람."
"너, 이름은?"
상냥히 내게 눈웃음을 짓는 너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여전히 네 뺨에 손 올린 채였다가, 천천히 손 끝을 네 입술에 대면서. 곧 이 아이도 내게 굴복하리라. 그 예쁜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보고싶었다. 그때부터였다. 너를 향해 뒤틀리게도 집착하게 된 것은. 처음으로 반기를 든 사람. 그러면서도 당당히 나를 이용하겠노라고, 겉으로는 강아지 인 척 다가오며 칼을 갈고 있는 사람. 예쁜 내게 어울리는 사람. 아아.
안녕~ 늦은 새벽에 오게 되어서 미안해 88 오늘 좀 바빴거든. 여기저기 이력서도 넣고 집안일도 좀 하다가 피곤해서 잠깐 잠들었는데, 생활 패턴이 완전히 망가졌는지 이 시간에 깨버렸네. 많이 기다렸겠다. 다음부터는 늦게되면 꼭 이야기하고 올게.
맞아~ 얼마전에 결말까지 나왔다구. 엄청 재밌었어 :) 맞아맞아, 한편씩 보면 괜히 감질맛나구... 나도 몰아서 보는게 취향이야. 헉 주인도 무는 개라 위험하대... 완전 취향이다... 유화주는 천재구나...... 그러면 하나는 오히려 어떻게 물건데? 하면서 도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목에 키스 마크 남긴다던지....(///) 이것도 엄청 좋은걸.
괜찮아~ 나도 늦었구, 답레 오늘도 너무 예쁘네. 정말 고마워! 나도 답레 쓰면서 이것저것 고민하다보니까 한참 더 늦어져버렸다. 어느정도 전체적인 흐름은 처음에 얘기했던 대로 된 것 같은데, 이 다음 흐름은 어떻게 할까? 자연스럽게 맡길까? 아니면 슬슬 헤어지는걸로 하고, 학교에서 다시 만나는걸로 새로 일상 돌릴까? 나는 상관 없으니까 편한대로 해조~
>>29 안녕 하나주 :D 괜찮아. 사정이 있으면 그럴 수 있는거지~ 편하게 말해줘도 괜찮으니까 언제든 가볍게 말해줘.
맞아. 이젠 몰아서 보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몸이 되버렸어 XD 하나주 마음에 드는 것 같아서 안심이야. 물론 너무 나갔다 싶으면 말해줘야해? :D 하나가 도발하고 키스 마크 남기면 빤히 바라보다가 하나의 왼손 집어들더니 약지를 입으로 가져가선 조금은 아프게 깨물어서 약지 위에 반지 낀 것처럼 잇자국을 남길지도? 물고 있는 체로 눈을 빤히 마주하고.
음, 일단 가볍게 이 상황이 마무리 되면 첫 일상은 마무리 해도 될 것 같아. 말그대로 도입부 같은거니까 좀 짧은 일상이었어도 괜찮을 것 같아. 답레는 저녁에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지만?
애초에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건 한눈에 봐도 안다. 내 또래의 여자애가 저렇게 많은 아저씨들을 끌고 다닌다면, 그 아저씨들이 다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고 어딘가 딱딱해보인다면. 옷 자체에서 절대로 싸구려 옷과는 비교조차 당하지 않겠다고 자기 주장을 하고 있다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저 적선하듯 돈을 주려고 하는 건 줄 알고 밀어냈던거니까.
물론 지금도 썩 달갑다는 건 아니었다. 꽁으로 준다는 돈은 끝까지 안 받을거니까. 그렇지만 내가 직접 굴러서 벌게 될 돈은 또 다르지. 그리고 네 배경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안 이상, 내 욕망이 너라는 줄을 놓지 말라고 지금도 소리치고 있으니까.
" 장난감이든, 뭐든 '마땅한 값'만 주신다면 상관없어요. "
널 받침대로 삼고 위로 올라간다. 그 끝이 어떤 모습일지는 나도 모르고, 아니면 올라가지 못할지도 모르지. 아니면 올라가다 미끄러져 더 한 바닥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 날 진창 속에 던져버리기엔 내 자존심이, 내 욕망이 수긍을 하지 못한다. 분명, 차라리 내 삶을 포기 하는 한이 있더라도 난 이 기회를 잡을거니까. 그래서 리트리버가 주인을 보고 꼬리를 살랑이는 것처럼 해맑게 웃어보인다.
" 아가씨, 제 이름은 '한유화'니까 잊지마세요. 아, 이젠 잊지도 못 하시겠지만. "
여기, 아버지의 장례식 한켠에서 제 삶을 위로 끌어올려줄 사람에게 살랑이는 딸이 있다는 걸 그 누가 알까. 지금의 대화는 나랑 눈 앞의 여자애만 알게 될 비밀, 이런 곳에서 비밀을 만드는 것도 뭐, 색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 위로만 올라갈 수 있다면. 매일밤, 단칸방의 자그마한 창문 밖에서 비춰지는 밝은 빛들이 있는 곳으로 내가 갈 수 있다면 이런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더한 것도 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 아가씨 이름도 알려주세요, 제가 모셔야 할 분이신데. 꼭 외워야죠. "
그리고 조금은 당신에게도 호기심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당신의 외모는 내 취향에 맞는 편인 것 같기도 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나도, 당신도 서로를 본 순간 잠깐잠깐 눈을 뗀 것을 빼면 제대로 눈도 떼지않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우습게도, 아니 반갑게도 나와 당신은 처음 본 순간부터 끌리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게 좋은 감정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 잘 모실게요, 앞으로. 아쉽지 않게. "
그런 마음을 담아 우리 '아가씨'에게 다시 한번 곱게 웃어보였다. 내가 지어보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빛이 날 미소를.
>>30 고마워~~~ 응응, 앞으로는 꼭 얘기해줄게. 유화주도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깐,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얘기해주고 :)
ㅋㅋㅋㅋㅋㅋ 최근에 볼 거 없었는데 재밌게 봐서 만족만족 대만족이야~ 응, 유화주도 언제든 맘에 안 드는거 있으면 얘기해주고! 헉 (///) 약지 아프게 깨물면 읏, 하면서 눈 빤히 바라보다가 "강아지 주제에, 마킹하기는." 같은 말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싫어하진 않을 것 같아. 하나도 똑같이 유화 약지 가져가서 잇자국 남긴다던지, 그러다 결국 엉망진창으로 "내가 네 것이 아니라, 네가 내 것이야. 기어오르지마." 같은 말 하면서 목덜미에 잔뜩 흔적 남길지도 모르겠는걸.
오늘도 확인이 늦어버렸네 88 그러면... 아, 지금 생각 났는데, 장례식장 상황은 가볍게 마무리하고, 바로 이어서 다음날 유화네 집으로 차타고 찾아가는것까지 묶어서 써와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같이 등교하면서 같이 수업 듣는 느낌으로. 원하는 느낌 있으면 말해주면 고맙겠어~ 우선 답레 열심히 적어볼게!
하나가 참다참다가 결국엔 엉망진창으로 흔적남기려고 하면, 그떈 그냥 받아주면서 '우리 아가씨, 또 스위치 들어갔네' 하면서 흔적남기는 동안 유화는 끌어안아주고 있을 것 같네. 그러다 하나 스위치가 조금 내려가면 " 어머, 슬슬 만족하셨어요? 내일 옷은 뭘 입어야 하려나 ' 하고 능청스럽게 굴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