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엘리가 뱀파이어일지라도, 말이 통하는 지성체라면 통하는 상식이 있습니다. 누구건 간에 자기 영역을 침범당하면 아주 크게 화가 난다는거죠. 어떤 심보 고약하거나 싸움 좋아하는 치들은 그걸 알고 일부러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엘리는, 적어도 오늘의 엘리는 그런 부류가 아닙니다. 엘리는 짚을 채운 침대 위에 앉아서, 혹시라도 올지 모를 이 동굴의 주인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누군가 들어오는데, 막대기로 땅을 두들기며 들어오고 있습니다. 동굴 입구의 햇빛을 등지고 들어오는 그 모습을 살펴보니 허리춤에 여러가지 짤랑대는 장신구를 차고 얼굴은 얇은 천 같은 것을 씌워 가렸습니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오다가 끌끌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엘리 앞에 서서 묻습니다.
>>307 "무뚝뚝함, 외지인 배척... 생각했던 것보단 약하네요. 말 안 듣는 외지인은 꽁꽁 묶어서 뷔르트겐 호수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살았다는 초거대 메기나 신성한 가재떼한테 산제물로 던질 줄 알았는데."
앨리스 님의 설명대로라면 아마 아앨라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아있었을 때까지는 진짜로 그랬던 것 같습니다만, 외부와 교역을 트면서 외지인이 산제물 이외에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깨닫고는 마을의 사형수와 동급의 죄를 저지른게 아닌 이상은 그렇게까지 외지인을 잔혹하게 대하지는 않게 되었답니다. 너무 늦은 때도 있다지만 너무 이른 때도 있고, 베스니는 검은 숲 마을의 이국적인 풍속을 기록하기에는 너무 늦게 왔지만 동시에 살아서 여길 빠져나가기에는 참 좋은 때에 온 셈입니다.
얼마 안 가 마을을 둘러친 목책이 보일때쯤, 목책 주변을 서성이던 창 든 소녀가 두 사람 가까이로 옵니다. 소녀는 창끝을 베스니에게 겨눈 채로 두 사람을 봅니다. 아앨라나는 한두번 본 눈치인데 베스니는 아마 완전 처음 보는 얼굴이겠죠.
"한 명은 마녀 쪽이고, 이 외말다리는 또 뭐야?"
아앨라나도, 그 꼴로 만든 가말라시엘도 잊고 있던 베스니의 한쪽 말다리를 가리키며 묻는군요.
창을 든 경비들 사이로 곤봉을 든 경비들이 나와 입경하려는 이들을 두들겨팹니다. 물론 그 아낌없는 폭력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당연하게도 그가 '크론'이 되기 전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입니다. 경비들의 곤봉질에 멍과 핏자국이 늘어나고, 옆에서는 대놓고 들으라는 듯 브로커가 장사를 하지만 거지들 상대라 영 장사가 시원찮습니다.
"자, 마도제국 입경서류가 싸다 싸, 단돈 1은화..."
경비들은 크론의 말소리에 곤봉을 치켜들었다가 말끔한 차림새와 아카데미 언급에 곤봉을 내립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뒤탈없이 편하게 두들겨팰 상대는 절대 아니라고 판단한 경비들 중 고참으로 보이는 한명이 앞으로 나오더니,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신사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합니다.
"신분증이나 아카데미 입학증을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둘 다 진짜 크론이 지금의 그에게 남긴 유산입니다. 즉 당장이라도 보여줄 수 있단 뜻이죠.
@@ >>302 "...후흥, 이젠 누누코의 스승 행세가 해보고 싶어진거야?" "이 동행은 분명 그 돼지를 처분하는 것까지라고 했었을텐데." "마음에 안 들어." 누누코가 말로는 적개심을, 몸과 눈으로는 명백한 불편함을 드러내면서 그렇게 말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안쪽으로 송곳니가 보였다. 사람을 찢는 이빨이었다. 요한의 본질이나 사실적인 선택같은 것은 재쳐두고 지금의 누누코에게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증오가 지배적인 것이었다. 후드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숨겨진 귀가 어차피 이곳에선 그녀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안내 해." "너희들의 말로, 누누코가... '야만적' 으로 하기 전에." 그리고 곧 누누코가 결정한듯이 그렇게 말한다. 사실 결정이라기보다는 달리 선택권은 없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일단 숲으로 돌아가면 돈 자루같은건 지방보다 더한 짐덩이에 불과할 뿐이었을테니.
"하지만 인간, 이 결정을 누누코의 나약함이라고 착각하지 마." "이건 단지 누누코가 요한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야."
>>315 솔직히 말해 네가 입학증을 보여줘도 이게 진짠지 아닌지 알 수 있긴 하냐는 비웃음이 새어나옵니다만, 아무튼 크론은 입학증을 보여줍니다. 입학증과 크론을 여러번 번갈아본 고참 경비병은 수건으로 머리를 쓰다듬더니 좀 있어보라며 안으로 들어가고, 성벽에서 다른 경비들보다 척 봐도 좋아보이는, 방어구와 무기의 번드르함만 따지면 기사라 불러도 믿을 이가 나오더니 자신을 이 지역의 국경 검문소장 겸 경비대장이라 소개합니다.
"바토 훈작입니다. 아카데미 입학생을 뵙게 되어 영광이군요. 마음 같아선 식사 대접이라도 하고 싶습니다만 입학 날짜가 얼마 안 남았다니..."
바토 훈작은 휘파람을 불고, 옆에 서 있던 척 봐도 비실비실해보이는 누군가가 나서서 크론 앞으로 돈자루와 종이를 줍니다. 그리고는 바토 훈작이 귓속말을 하는군요.
"제 친필 서명이 되어서 이 지역 일대는 무조건 통할 입경 허가증, 섭섭잖게 마차를 빌릴 돈자루 정도면... 약소하게나마 제 성의를 표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318 "누누코 씨 같이 사냥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생물 병기에게 현상금 사냥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 입장 바꿔 누누코씨라면 참겠습니까?"
요한은 능청스레 이야기하면서 마차에 누누코를 태웁니다. 그리고는 누누코처럼 강한 무력이나 요한과 같은 재치가 없으면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어보이는 빈민굴로 마차를 몰고 가면서 누누코에게 다 잘 되라고 이러는 거라는 투의 설득을 합니다.
"제가 누누코 씨의 고향 들판에 가면 일주일은 버티겠습니까? 당연히 못 버티죠. 그렇듯 누누코 씨도 인간 틈바구니에서는 지금 상태론 유감스럽게도 동족을 찾긴커녕 제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탭니다. 그리 제 도움이 고까우시면 절 호구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아무 대가도 약속받지 않았는데 퍼주고 보는 호구요. 뭐, 저를 호구로 보건 호로자식으로 보건 간에..."
어느새 마차는 거렁뱅이들이 아닌 비루하지만 눈빛 서늘한 이들이 지키는 한 판잣집 앞에 서고, 요한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먼저, 정보상 앞에서 바람은 제가 잡겠습니다. 제가 혀를 끌끌 차면 아무나 한 명, 병신은 안 되지만 며칠에서 몇 주 누워야 할 정도로 때려눕히십시오. 그리고 제가 누누코 씨를 말로 말리면 한 명 병신을 만들고, 제가 몸을 던져 뜯어말리려 하면 절 밀치고 최소 한 명은 죽이십시오."
@@ >>320 "이상한 인간." 요한의 말에 마치 코웃음치듯하는 그런 단편적인 감상을 내놓을 뿐.
"누누코는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 없고." 보팔토끼라면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본능에 의한 살의를, 살육에 최적화 된 몸에 태우고 살아간다. 그리고 상처 입하고 상처 받으며 죽어간다. 적의를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런 굴레에서 누누코를 기꺼이 꺼내준 것이 부락이었다. 누누코는 처음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이제 막 이해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침입자' 들의 등장에 의해 그것은 빠르게 끝이 났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가르칠 여유같은 것은 가질 새가 없었던 것이다. 이어져서 지금도, 사색에 잠겨있을 여유같은 건 없었다. 어느새 변한 주위의 풍경은 도시의 중앙과는 다르게 바깥에서 봤던 작은마을처럼 누추하고 초라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요한의 마차가 멈추고 그의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어차피 인간일 뿐인 요한의 말은, 모조리 누누코에게 있어서 전부 이해하기 어렵거나 쉽게 동의하기 힘든 것들이었지만, 적어도 이해가 일치할만한 구석은 한 가지 있었다.
"누누코의 일을 하라는 거네." 그녀가 사냥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 누누코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자 후드 아래로 진홍색 눈동자가 은은히 빛났다.
@@ >>322 그리고 그 순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누코의 몸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눈 앞의 남자에게 주먹을 내뻗는다. 말이 좋아 '주먹을 내뻗는' 것이었지, 주변인이 누누코가 움직였음을 인지했을 때에는 이미 그 남자는 바닥으로 천천히 낙하하고 있을 때였다. 범인이 육안으로 쫓기 힘든 움직임이었다. 이제보니 그는 목이 위험한 각도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고보면 아주 찰나에 '우득' 거리는 소리가 난 것도 같았다... 순식간에 사람 하나를 쓰러트린 장본인인 누누코는, 태연히 깜빡이는 눈으로 맥없이 쓰러진 눈 앞의 인간과 자신의 주먹을 번갈아 보더니 조용히 말한다.
"미안하군." 그러나 그 사과는 이곳에 있는 주민들에게 아닌, 동행자인 요한에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가요? 제가 전해듣기로는 옛날에는 비슷한 것이 있었다고해요. 그리고... 이곳의 분들이 지금에도 그토록 다른 이들을 싫어하고 억압하려 했다면 제가 먼저 제안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리고 아마도 제 생각에는 메기나 가재는 아닐 거에요"
"이렇기 때문에, 저희가 그들의 근처를 돌아다닐 지라도 문제를 겪지 않아도 될 것이에요. 그러니 그 점에 대해서 만큼은 좋은 것이겠지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살짝 갸웃하고는 제가 알고 있는 한도내의 사실을 말해보았어요. 그녀가 기대했던 것이라고 해야하나요? 그들이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을 택했다면 저는 이곳을 먼저 제안하지는 않았을 것이에요. 다른 이들을 적대하는 그들을 굳이 자극하여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을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이렇게 바뀌었고 그렇다는 것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충분히 교류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공존하려는 성향이 없었다면 바깥 마을과 무역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 당시에는 좀 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기에 이유로 어쩔수 없이 그런 행동들이 이어졌지만 지금은 그것에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몰라요
"안녕하세요, 이전에 방문했던 것에서 꽤나 되었지요? 이 쪽 분은 숲에서 사고을 당하고 고립되어 있었던, 우연히 만나뵈어 지금은 제안을 받아서 함께하고 있어요"
얼마후 저희는 어촌의 경계면이라고 할 수 있을 , 목책들을 보았고 거기에 그 주민인 소녀가 저를 알아보듯이 저도 소녀의 그 모습 만큼은 알아보고 있지만 많이 아는 것은 아니였어요. 소녀의 경계심이 담긴 질문에 저는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려 정중한 태도를 갖추며 상체를 가볍게 앞으로 한번 숙이고는 이후에 베스니를 향하여 양손으로 손바닥이 보이도록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어요
다른 모든 이들처럼 말을 잃은 요한은 그 사람의 맥박을 재봅니다. 그리고는 휘유! 하고 안도하는군요. 안도하는 논리를 들어보니 병신이 된 거지 죽은 건 아니라는 겁니다. 뭐, 목이 꺾인 전신불수 환자 노릇도 일단은 의학적으로 살아는 있어야 가능한 거긴 합니다만 그 설명을 그 동료들이 들어줄지는 의문이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야, 이 새끼들 담ㄱ..."
퍽! 현상금 도둑 때처럼 벌린 아가리에 석궁을 정확히 쏘아 맞추는 기예를 선보이며 한 경비의 말을 끊은 요한이, 이 상황에 과연 적절한가 궁금해지는 사람 좋은 미소로 설명합니다.
"모든 계획은 항상 실행 전까지만 완벽하죠. 그래서 우리가 플랜 B를 두는 거구요. 이번에는 개싸움이 되겠군요."
@@ >>326 "누누코는 플랜 B 얘기는 듣지 못했―" 도중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공격에 누누코는 말을 채 마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상대의 공격이 명중한 것도 아니었다. 우연은 아니었다. 여기에 있는것은, 귀로 상대의 심장 고동을 들으며 눈으로 근육의 움직임을 쫓고, 이빨과 손톱으로 먹이사슬 정점에 선 포식자의 목을 물어 뜯는 보팔토끼. 그에 비해 누누코에겐 그들은 겨우 두 발 달렸을 뿐인 짐승들일 뿐이었다.
"그럼 이제 힘 조절은 필요 없는거겠지? 요한." 누누코가 줄지은 톱날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물었다. 눈으로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탐색하며, 가장 먼저 희생자로 삼을 인간을 고르고 있었다.
>>327 누누코는 가슴이 차가워지면서, 동시에 뜨거워지는 이중적인 느낌에 하아아... 숨을 내쉽니다. 이 느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죽일 각오를 하고 싸울 때의 그 느낌입니다. 누누코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마구 짓쳐냅니다. 정수리에 주먹을 꽂아 박살내고, 칼을 휘두르는 이를 보고는 칼을 뺏어 그대로 목, 간, 폐에 칼자국을 내 줍니다. 시체 두 구 치울 줄 알았던 이들은 어느새 전부 시체가 되어버리고,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이 지키던 판잣집 문 쪽으로 기어가려 하지만, 요한은 그 사람의 양 눈구멍에 각각 검지와 중지를 파넣어 머리를 위로 제끼고는 그 적의 허리춤에 있던 칼을 뽑아 그어버립니다.
푸슉!
그리고는 누누코가 방금 정수리를 터뜨려버린 한 남자의 손에 들린 장도리를 뺏어든 요한은, 판잣집 문을 두들깁니다.
"제멜바이스! 나의 친애하는 위생학자! 열 문이 남아있을 때 어서 이 문 여는 게 좋을 겁니다!"
@@ >>333 '검과 엄니로 길을 연다. 알기 쉬워서 좋군.' 싸움은 순식간에 결판이 났다. 사실 싸움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일방적으로 휘두른 폭력에 멋대로 쓸려나갔을 뿐인 그림이었다.
"..." 주변을 차가운 시선으로 훑고, 적이 더이상 남지 않음을 확인한 그녀는 뺨에 튄 피들을 손목으로 닦아내며 자세를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격해진 움직임에 어느새인가 후드가 뒤로 젖혀져 있었다. 보팔토끼 수인의 자랑인 길게 솟은 귀와, 하나는 그렇지 못한 붕대 감긴 귀였다. 누누코는 다시 후드를 뒤집어 써 그것을 감추며 빗장 풀린 문으로 다가갔다.
이라 말하고, 장님은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치며 돌아 나갑니다. 엘리는 이제 침대 위에 누워서 편히 두 다리 뻗고 해가 질 때까지 쉬려고 합니다. 역시 바깥에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쉴 때는 쉬어줘야 합니다. 특히 대낮에는요. 제아무리 천옷으로 몸을 싸매도 대낮에 돌아다닌다? 인간 아니면 미친놈이나 할 짓이죠. 엘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 잠 열심히 자려는데... 갑자기 동굴 입구 쪽에서 비명이 들려옵니다.
"제기랄, 빨리 들어와! 빨리 들어오라고!"
"여보! 우리 노새는..."
"지금 노새가 중요해?! 제기랄!"
갑자기 뭔 난리인가 싶어서 일어나보니, 한 부부가 아이들을 끌고 들어와서는 엘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뜸 묻는군요.
>>334 문이 열리면, 침침한 촛불에 의지해 온 방을 밝히고 있는 한 노인이 나타납니다. 노인의 주름진 눈가에는 의심과 냉소가 가득해보이고, 그 의심과 냉소는 처음에는 요한을 향했다가 그 다음에는 누누코를 향하는군요. 누누코는 다른 사람들을 보는데 달리 그리 중요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쫄아 있거나 뒤로 물러났는데 이 사람만 테이블에 앉아 두 사람을 당당히 맞고 있으니, 아마 이 사람이 정보상 '제멜바이스'겠지요. 제멜바이스는 누누코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더니 요한에게 말합니다.
"석탄산수를 쓰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또 독한 술로 소독을 했나 보군. 돌팔이."
"있는 대로 하는 거죠. 그리고 덕분에 이 친구는 당신의 그... 봉급 값을 하는지 의문인 어깨들을 때려눕힐 때까지 살아있었고요."
요한은 누누코와 함께 테이블에 앉고, 제멜바이스는 아까 전에 누누코를 개무시하던 이들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누누코의 눈을 똑바로 보고 그녀에게 질문합니다.
"그래. 내가 이 지역의 정보상 겸 전직 위생학자 제멜바이스다. 무슨 문제인지 이야기해주고, 얼마까지 줄 수 있는지 이야기하면, 내가 네 상황에 딱 맞는 정보를 주곤 하지."
"이건 믿어도 됩니다. 제멜바이스가 노인네 될 때까지 정보상들이 수십명이 있었는데, 이 사람하고 다른 몇 명만 남은 건 사실 이 직업윤리를 똑바로 지키는 게 제멜바이스밖에 없어서 그랬거든요."
제멜바이스는 지긋이 요한을 노려보고, 요한은 입을 닫습니다. 여전히 웃고 있지만요. 요한은 누누코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고 옆으로 슬쩍 빠집니다. 제멜바이스는 누누코에게 묻는군요.
건장한 농부가 쇠스랑을 들고 엘리 앞에서 휙휙 내지르고 찌르며 위협하지만, 아내는 엘리를 바라봅니다. 붉은색 계통의 활동성을 극히 강조한 늘씬한 옷에, 흰 머리칼과 그 신비함에 어우러지는 얼굴을 본뜬 가면. 그 가면의 눈구멍너머에 숨은 붉은 눈동자... 이 세상에 제아무리 특이하게 생긴 이들이 많다지만 엘리의 기운은 뭔가 다른지, 아내가 엘리를 보고 말합니다.
"바깥에 뭔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고 있고요?"
뭐, 엘리도 귀 달려있습니다. 대충 늑대들이 컹컹 짖는 소리가... 잠깐, 내 소!!! 내 닭!!!!
@@ >>338 누누코는 자리에 앉는다. 방 안에 가득 들어찬 먼지의 곰팡내, 그리고 인간들의 쉰내와 촛불 특유의 타들어가는 밀랍의 향이 뒤섞이며 범인보다 예민할터인 누누코의 코를 찔러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에선 몸 전체의 상처에 배어있는 술의 냄새가 그나마 나은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조용히 이곳의 주인, 제멜바이스를 그저 보고 있었을 뿐으로-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왔을 때 이렇게 말한다.
"누누코의 동족들을 찾고싶어." 그것은 누누코가 지금 이자리에 있는 이유.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대답이자, 모든 것이 함축된 의미의 요구였다. 그녀는 손 안의 묵직한 탈러 주머니를 무심하게 테이블 위에 툭 얹어놓고서는, 별안간 자신의 어깨에 손을 가져가 옷을 내려재끼고 몸을 가볍게 튼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선명한 노예의 낙인이었다.
"그리고 몇몇 인간들도." 그 목소리는 평탄하기 그지 없었지만, 한 편으로는 마치 포식자의 으르렁거림과 같았다.
저는 소녀의 반응에 살며시 눈웃음을 한번 지어보이고는 그리 말했어요. 이후에 이어지는 반응으로 본다면 다행스럽게도 저의 소개는 충분했던 것 같아요. 그리하여 정식으로 호수의 어촌, 플라베르흐 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저희에게 열린 거에요
"저와 앨리스 님을 그렇게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느끼시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시도 해보겠어요"
저는 스스로를 넬루 로서 칭하는 소녀의 대답에 이번에도 상체를 한번 앞으로 고개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는 그리 말했어요. 마녀 님의 제자이며 거둬져 그 아래서 자라난 아이로서, 그들이 저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저에게도 걸맞게 지켜야 할 것이 있겠지요. 그러니 앞으로도 크게 어긋나는 일 없이 할 수 있기를 바래요
"그렇다면 그녀의 잘못은 만회될 수 있을까요? 저는 가능하다면 잘못된 일은 없도록 하고 싶어요. 저들이 준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그녀가 제대로 계속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칭찬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그러한 일이 없기를 바라며 대답했어요. 그녀의 모습을 곁에서 적지는 않은 시간 동안 보았고, 그녀와 처음 만나게 되었을때 그녀가 그런 상황에 처했는지 약간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숲에서 그녀가 충분히 살아남았던 이유는 적절한 능력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 성향 때문에 무사히 성공할법한 시도가 어긋나는 행동이 되어버려서 스스로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몰라요. 그것으로 인한 조금씩 겹겹히 쌓인 결과로서 최후를 맞이하게 될 뻔했지만 저로 인해 빗겨나게 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진실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요?
>>336 크론은 아주 쉽게, 모두의 질시와 경탄을 한몸에 받으며 국경을 넘어섭니다. 쓰레기 더미 속을 헤매던 그의 얼굴을 흐릿하게나마 알아본 누군가가 더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면 어디서 눈을 흘기냐며 경비들이 머리를 대신 때리고 서류나 가져오고 설치라고 악을 씁니다. 그렇게 한숨 돌린 크론은 국경을 뒤로 하고 마을운 바라보는데, 국경이라 그런지 마을들에 가옥이 별로 없고 대부분 병사들이 머무는 막사와 대장간 따위의 일반인 거주 이외 목적이 확실한 곳들입니다. 아마 이곳에서는 마차 값을 내려면...
>>343 '사도님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판단은 사도님의 몫이고, 어차피 큰일이 난다면 베스니야 마뜩찮지만 사도님이야 당연히 지켜드릴 테니까요.'
가말라시엘은 그 정도만 말하고 더 이상 언급을 멈춥니다. 그리고, 베스니와 아앨라나는 플라베르흐로 들어섭니다. 목책 안의 마을은 여러 집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범람과 침수를 막으려는 것인지 길고 두꺼운 기둥을 사방에 박아서 집을 높이 세웠고, 집도 바닥을 까는 재료를 제외하고 벽은 아카시아나무나 갈대를 엮은 것 따위로, 지붕도 갈대와 나뭇가지를 쌓아 새 둥지처럼 지은 것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생긴 게 참 둥지 같은 지붕에서는 정말로 새들이 알을 낳았고, 마을 사람들은 물새 알을 눈치껏 한두개씩 챙겨 내려옵니다.
"그 물자는 여기다가 내려놔!"
"여기 와서 밧줄 좀 당겨!"
그리고 ㅁ교역을 하는 마을이라는 것을 나타내듯, 작은 돛이나 노 한두짝을 단 배들 한 두대가 나와서 짐을 부리고 있습니다. 베스니는 그걸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자기 자리가 있을까 찾아보고 있습니다.
>>350 ㅇㅇ 최대한 풀어서 설명해줘. 누누코의 말투를 지키면서 이야기하기 어렵다면, 누누코가 이렇게 설명했다... 고 하고 그 다음에 그냥 생각했던 설정 주르륵 다 평어로 풀어놔도 됨. 스토리가 진행되면 될수록 캡틴과 참치가 배경 설정에 대해 가지는 공통 심상이 일치해가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거치는 절차 같은거라.
헬렌의 부탁을 들은 균사의 정령 타톤은, 자신이 다루는 실체인 걸어다니는 버섯의 형태로, 헬렌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그 상태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헬렌은 백작가의 가세가 기울기 전 후원하던 '버섯 키우기 대회'의 출품작을 보는 것 같습니다. 타톤, 정령이자 버섯인 모순적인 존재들은 앞을 꽉 틀어막고, 달려오던 이들은 자기들이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무슨 새끼손가락만한 버섯이나 겨우 자라던 곳에 자기 키만큼 크고 대장장이마냥 어깨가 거대한 버섯이 '피어난' 광경을 보자 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당황합니다.
"뭐, 뭐야 이 씨발?!"
"이 버섯들 뭐야?!"
아무래도 상대들은 이 타톤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건, 그들의 눈에 이 '타톤'들은 그저 아무리 때리고 베어도 맞고 잘려나갈 버섯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타톤들은 마치 자기들이 하급 정령이라도 되는 양, 반격하지 않고 맞아줍니다. 암허슈트는 혀를 차면서 말하는군요.
'저 무뢰한들이 아가씨의 목까지 칠 지경에 이르지 않는 이상 저 버섯들은 저기 가만히 서 있으면 자기네들이 진짜 잘 한다 여길 겁니다.'
그리고, 백과사전의 정령도 한 마디... 아니, 수십마디를 거듭니다.
'타톤: 타톤은 누룩곰팡이, 버섯 포자, 버섯 등을 아우르는 포자와 균사류 전반의 복합적인 생명 작용을 통해 전 세계에 초개체적으로 존재하는 군체의식에 가까운 정령이자 그 정령에 의해 이동과 공격 등 기초적인 행동이 가능한 수준으로 운동 기능이 발달한 균사류 군체 전반을 통칭합니다. 이들은 곰팡이와 버섯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환경, 즉 상온의 다습하고 어두운 환경이라면 발견될 확률이 높고 전 세계를 여행하는 정령사를 각지의 타톤들이 바로 알아볼 정도로 군체의식이 발달되었으나, 그 대가로 중급 정령에 크게 못 미치는 하급 정령과 비견될 정도의 초보적인 지능을 보여주며, 쉽게 제거하기 어려운 버섯과 곰팡이 포자의 특성상 생존의 위협을 잘 느끼지 않아 독자적으로 공격에 반격할 가능성도 낮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 배시는 도움이 되는군요.
'끼끼끼이이...'
헬렌의 부탁을 똑바로 이해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배시는 소름돋는 고주파의 울음소리, 아니, 들리긴 하는지도 애매한 그 소리와 함께 동굴 속에서 수많은 박쥐들을 이끌어내어 병사들을 둘러쌉니다. 병사들은 팔에 달라붙어 마구 물어뜯는 박쥐들을 보고 비명을 지르고, 사람들이 마구 엎어지자 그제야 암허슈트가 껄껄 웃는군요.
"그런가요. 누군가 삶의 방식을 방향을 지시해줄 수는 있어도 결국, 거기까지 가는 것은 자신이고 그것은 스스로의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말이시지요? 후후~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이렇게 지켜주신다고 말해주시니 더욱 의지되고 기쁘네요!"
저는 가말라시엘 님의 말에 이번에도 수긍하면서도 작게 한번 웃고는 그렇게 비유해가며 말했어요. 그렇게 저희는 어촌에 들어섰고 그곳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어요. 호수의 품결에서 살아가는 것 이여서 집들은 그곳의 걸맞는 구조를 갖추게 되어 있었어요. 그 재료도 대체로 숲에서, 호수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요. 마녀 님의 자택이나 책에 보았던 본 바깥 마을의 모양과 숲의 끝, 가장자리에서 희미하게 보여지는 것들 처럼 좀더 다양한 재료로 정교하고 건축물은 아닐지라도 이것들은 좋은 보금자리에 되어 줄거에요
"플라베르흐의 특성상 비슷한 것은 있을 것이겠지만 바깥 마을과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기에는 잘 맞지 않을 것이에요. 그래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좋을 거에요"
어촌을 거닐고자 하며 그 안으로 들어가면 저희가 본 것은 사람들이 분주히 물건들을 옮기는 것이였어요. 저도 그것을 흘깃 한 두번 봐라보았어요. 이후 저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어요. 그녀가 이렇게 물어보는 이유는 호수에 왔고 그렇기에 모처럼 어촌까지 오게되었으니 이곳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