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가 망가졌다고, 내장이 파열되어 재생수술을, 피를 너무 흘려서 수혈을 해야 하는데... 삐,삐 시끄럽게 기계가 울리는 소리와 흰색과 녹색 옷을 입은 의료진들이 그들끼리만 아는 전문용어를 중얼거리며 급박하게 떠돌아다니는 가운데 긴 흑발의 소녀가 창백한 얼굴로 병실 앞에 앉아있었다. 얼마 전에 그녀는 이 병동에 누워있는 사람과 함께 카페에 앉아있었고 찝찝한 기분으로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와 기숙사로 돌아와 있던 참이었다.
그렇다. 불과 그 얼마 동안에 그녀의 앞에 앉아 있던 그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왔다. 평소에도 희었지만 파리하게 질렸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핏기가 사라진 창백한 얼굴에 부은 눈가와 계속 씹어 상처가 덧난 입술만이 붉었다. 긴 수술 끝에 이제서야 문병이 가능하다는 말이 그 수술시간 만큼이나 이어진 무언의 겁박에 질린 메딕의 말에서 흘러나왔다. 반쯤 귀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서 그녀, 마츠시타 린은 휙 소리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모양새가 말이 아니네요. 저와 헤어지고 한 일이 고작 무모하게 격상의 적에게 달려드는 일기토 끝에 장렬한 귀환...현재 치료 중. 이런 거에요?" 입술을 다시 잘근잘근 짓씹다가 핏물이 베어나오는지 마는지 꾹 물고서는 신문 한 단면을 의식을 잃은 듯 미동이 없는 그 옆에 놓인 탁자에 올려놓는다. 신문에는 헌터들의 실종과 그 진상, 알렌의 전투와 게이트에서 조우한 적의 상태, 그리고 그의 상태가 전투 끝에 어떠하였는지 이를 발견한 가디언들의 진술로서 활자의 형태로 나열되어있었다. 단면의 상단에 <여명 길드의 알렌 70레벨의 적과 일기토 끝에 귀환. 수술 중.>이라는 제목이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신문을 놓은 손이 무릎위에 나란히 놓이고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주먹을 말아쥐어 떨린다.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당신은 항상 그래. 뒤에 남은 사람 따위 생각도 안하지. 내가 어떤 심정으로 당신을 바라보는지도 모르고. 미워하는지 좋아하는지...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또 당신을 걱정하는지 알지도 못해. 항상 그 바보같은 얼굴로 곁에서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가 휙 무모하게 어디론가 달려나가 버려." 뚝, 굵은 물방울이 말아쥔 손등위에 떨어진다.
"바보 아니면서...차라리 화라도 내었으면 좋겠는데..." 옆에서 일정하게 그래프를 그리는 기기가 그의 수면 상태를 뜻하는지 의식이 있는 것을 뜻하는지 물이 방울져 흐린눈으로는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만 사체처럼 누워있으니 잠들어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서 퓨즈가 나간 상태로 마구 지껄이다 말을 멈춘다.
"...제멋대로 행동해서 짜증난다고 그리 얘기했다면 뒤돌아서 무시했다면 미련한 그녀가 미련을 버릴 수라도 있을텐데." 당신은 또 돌아와서 내가 왜 이러는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겠지. 다시 입술을 꾹 문다. 눈물이 멈추고 희뿌연 시야가 조금 맑아진다.
"어차피 제가 곁에 없더라도 이렇게 위험해질 거라면, 제가............ 착각해버리잖아요. 알렌군. 그렇지 않을까요.?" 그녀가 없더라도 그는 위험하니까 하야시시타 나시네와 함께하여 위험하게 된다 하더라도 크게 달라진 건 없을테니. 들릴 듯 말듯 말을 속삭이며 붉게 핏물이 든 입술의 입꼬리가 즐거워 하는듯 차가운 온기를 품고 픽 올라간다. 그러다 다시 공허하게 돌아온 눈빛이 감기더니 푹 고개를 침대로 숙여 엎어진다.
그렇게 얼마를 누워있었을까. 희미한 움직임이 느껴져서 린은 화들짝 일어나려고 하였다. 아마도 팔이 잡히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일어났을 것이다. 여전히 눈시울게 붉게 물든 눈으로 가만히 바라본 그가 경황이 없는듯 덜 깬 눈을 깜박였다. 당연히 잡은 힘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린은 그대로 상체를 기울여 바라보는 자세로 있었다.
-미...미안해요... 몇 번 힘겹게 무언가 말을 뱉으려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는 양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 나온 말은 그녀의 예상과 하나 다른게 없었다.
"그 말 하지...!" 울컥 밀려오는 통증과 같은 감정에 다시 입술을 물고 화내려다 기쁜 듯 웃는 것 같은 벽안을 바라보고 한 대 맞은 것처럼 말을 멈추었다.
"무엇이 그렇게 미안하신건가요. 혼자 두지 않겠다고 한 것도 이렇게 지키지 못하면서." 분노를 가장하여 터져나오는 감정을 쏟아낼 수 없으니 가두어 둘 수 없을 정도로 넘친 흐름이 눈물이 되어 소리없이 떨어졌다.
"애초에 알렌군이 그런 약속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는데. 왜 항상 제게 사과하시는 거죠?" 한번 터진 눈물이 주체되지 않았다. 바티칸에서 감정을 자각한 이후로 쭉 그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종잡기 힘든 노도와 같은 마음의 변덕은 계속되었다.
"저는..." 노도는 거대한 벽에 다시 막혔다. 그녀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다시 말을 멈추었다.
"으음..." 그가 반시체가 되어 돌아오고 지금까지 거의 수면을 취하지 않고 버티다 그, 알렌의 의식이 돌아왔음을 확인하고서야 긴장이 풀렸다. .그가 잠시 깨어난걸 확인하고 울고 흥분하다가 평소의 이성이란 것이 조금 돌아왔다. 오랜시간 각성상태에 들어섰던 육체가 긴장이 풀리고서 몰려오는 수마에 잠겼고, 린은 반쯤 졸다 말다 하며 의자에 앉아 의식이 흐려졌다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걱정했어요." 의식이 흐릿하여 몽롱한 와중에 알렌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당장 생각나는 말을 꺼내며 린은 조느라 부스스하게 얼굴까지 내려온 긴 머리를 대충 걷었다. 이미 잠에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 그간 암살자로서 들인 훈련의 결과로 졸린 상태로도 대강 움직였다.
"무서웠어요." 다시 눈물줄기가 한 방울 흐른다. 알렌을 보는건지 살짝 덜 깬 눈으로 반 쯤 몸을 일으킨 그를 바라보다 그대로 껴안고서 침대에 눕힌다. 목을 양 팔로 감고서 알렌의 어깨에 고개를 대어 얼굴을 보지 못하게 침대 쪽으로 엎어진 소녀가 무어라 반쯤 잠결에 중얼거린다.
"혹여나 내가 선을 넘어 당신마저 위험해질까봐 무서워서 맴돌고만 있는데...의미도 없게 계속..." 꾹, 가볍게 안은 팔을 좀 더 죄인다.
"바보 멍청이 정말 싫어..." 말끝에 얼굴을 파묻고 환자복에 뜨거운 것이 방울져 떨어진다.
>>301 알렌(주)가 상상하던 반응: 어머나, 이게 누구야. 여명의 자랑스러운 영웅 알렌 군 아니에요? 저와의 약속마저 내팽겨치고 길드의 이름을 드높인 알렌 군과 같은 길드에 있어서 정말 자랑스럽사와요. 어머?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신걸까요? 저는 알렌 군이 정말로 자랑스러워서 이렇게 밤늦게까지 옆에서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죠. (웃?고있는 린)(아무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