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사가 죽었다. 자고 일어났다가 불길한 기분에 일어나보니 메이사가 옆에 없었다. 늘 싸우고도 내 옆에 기어들어와 자던 녀석인데 이상했다. 뒷목을 타고 오르는 불길함을 애써 무시하며, 가늘게 빛이 새어나오는 욕실문을 열면...
턱, 하고 걸리는 느낌과 함께 싸늘하게 식은 메이사가 있었다. 코 밑에 손을 대봤지만 느껴지는 건 없었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식은 물로 축축한 메이사의 표정은 기이하게도 편안해보였다. 나랑 있을 때는 절대 지어주지 않던 표정이라, 다행이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메이사의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학교에서 일하던 나를 마주치고는 멱살부터 잡고 한 대 갈기셨다. 장례는 츠나지에서 치르기로 한 모양이다. 친구 한 명 없는 외로운 곳에서보다야 낫겠지. 마지막 날 나도 절 근처를 서성거렸지만,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거 같아 발을 들이진 못했다.
그리고는 끔찍한 일상이었다. 출근하고, 무슨 정신인지도 모른 채 일하느라 폐급짓을 하고, 팀원을 떠나보내고, 상급자에게 한 소리 듣고...... 그러다 못해 쉬고 오는 게 어떻느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래서 쉬기로 했다.
무급 장기 휴가였으므로, 트레센 근처의 막대한 월세를 부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집부터 정리했다. 메이사의 흔적 때문에 괴로웠어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메이사의 향이 남아있던 이불도 베개도 소파도 체르탄도 다 폐기물로 처리해버렸고 왔을 때처럼 간소하게 새 집을 얻었다. 60년 된 목조주택이라 추웠다. 그래서 이불 밖으로 나가고 싶질 않아서... 어차피 사람을 만나지도 않겠다 며칠이고 씻지도 않고 이불 안에서 머물고 뒹굴거리고, 공허하게 숏츠를 내리다가 배가 고프면 옆에 놓인 컵라면만 대충 먹다 말았다.
그렇게 5개월, 폐인의 완성이다. 그걸 자각하게 된 건 환각 때문이었다.
- 이제 일어난 거야? 지금 저녁 7시라구💕 - 우와― 게다가 엄청 구린내 나💕 진짜 노숙자 같다고 유우가💕
덥수룩한 앞머리를 들추며 히죽거리는 건, 이미 없어진 내 동거인. 환각이라고 알면서도 껴안았다. 그렇게 냄새나는 이불에서 메이사를 껴안고 한숨 잤다.
눈을 떴을 때, 내 집안은 전부 메이사로 가득차 있었다. 만원전철처럼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메이사의 틈을 겨우 빠져나와 내다본 바깥은... ...거짓말처럼, 모든 사람이 메이사가 되어있었다. 메이사가 아닌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고.
"헉."
모든 메이사가 나를 돌아보고서 달겨들었다. 악몽이어도 이런 악몽이 없다. 잔뜩 식은 땀을 흘리고 깨어났다. 꿈도 참 이런 악질적인 녀석을 꾸게 될 줄이야. 그것도 몇 년씩이나 되는, 끔찍하게 생생한 꿈을... 시간감각조차 희미해졌다, 덕분에. 시계를 보려 폰 화면을 킨다. 2024년이겠지. 아직 좀 쌀쌀한 걸 봐선 가을이려나 생각을 하고 보면―
2023년 4월 12일. 나의 첫 부임날짜였다.
꿈에서는 긴장해서 양복을 입고 갔었다. 첫날에 프로페셔널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얼이 빠진 덕분에 교문까지 와서 보니 익숙한 검은색 추리닝이었고, 익숙하게 지나치려던 경비는 나를 잡고 부외자가 아닌지를 꼬치꼬치 캐묻다가 직원증을 보고 나서야 보내줬다.
그렇게 8시 40분, 조례 시간에 들어섰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무신론자지만, 지금만큼은 신에 대한 얄팍한 신앙이 솟을 지경이었다. 복도에서 빠른 걸음으로 날 지나치는 녀석들 모두 아는 얼굴이었으니까. 그들의 이름을 물었을 때, 속으로 떠올린 여섯글자가 전부 맞아떨어졌으니까.
하지만 단 하나 다른 게 있을 수 있다면, 제발 이 D반에 그 녀석이 없기를...
들어서서, 돌아본다. 엎드려있기도 하고 뒤로 돌아서 수다를 떨기도 하던 녀석들이 모르는 인간의 등장에 하나둘씩 여길 쳐다봤다. 또 시시한 녀석인가 가늠하는 시선들. 그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뚫릴 정도로 날 바라보는 녀석. 노란 눈을 홉뜬 채로, 입을 벙긋거리면서 얼빠진 얼굴을 하는, 기억에 없는 표정.
다른 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가장 바라지 않는 종류의 다름이었다.
날 경멸하다 못해 죽어버린 녀석도 함께 과거로 돌아왔다.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가슴이 쿡쿡 쑤셨다. 하지만 출석부르고 자기소개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을 해낼 수 있었고, 조례를 끝나고 교무실에 돌아왔을 때. 그제서야 팔에 얼굴을 묻고 숨을 몰아쉬었다. 첫 출근부터 울어버리다니 정말 한심했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사람이 살아있는 걸 봐버렸잖아. 이건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바라지 않은 행복이었다.
조례가 끝나고 주변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떠드는 걸 보고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유우가의 얼굴, 아주 잠깐이었지만 동요하는 게 보였다. 표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나와 다르게 그쪽은 제대로 다듬었지만, 그래도 한순간이나마 보았다. 나를 보고, 내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을.
".........."
친구들이 떠드는 내용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마 첫날부터 추리닝이라니 제정신이냐고www 같은 내용이었던 거 같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어울리다가, 화장실이라는 핑계를 대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개인칸에 들어가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은 클래식 시즌. 유우가가 자기소개를 한 걸 보면 아마 부임 첫 날... 그러니까, D반의 담임이 된 날이다. ...유우가도 아마, 나랑 똑같은 걸까. 나는 죽고 나서, 다시 과거로 돌아온 거 같은데. 그럼 유우가도 같은 걸까. ....유우가도 죽은 걸까. ...내가 죽은 후의 일은 모르겠고, 알아도 별 소용이 없을 거 같으니까 그냥 제쳐두자. 그래. 지금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다. 지금 시점에선 프리지아도 아직 없고, 나는 프러시안 소속이고.... 유우가도 팀이나 담당은 없었던 거 같은데.
.......치맛자락을 손으로 꽉 쥐었다. 나랑 엮인 것부터가 잘못인지도 모른다고 그랬었잖아. 그치.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돌아온 건, 우리가 다시 처음으로, 엮이기 전으로 돌아온건 역시, 그거겠지.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분명.
"...흑, 으... 으으....."
분명 그런거겠지. 납득하면서도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입에서는 미처 막지 못한 흐느낌이 새어나온다. 진짜로 우리가 엮인 게 잘못이었던 거라고, 확증된 것 같아서.
엉망이 된 얼굴로 화장실을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반친구를 붙잡고 몸이 안 좋아 보건실에 가겠다고 전했다. 직접 말하러 가지 않는 건, 이제 엮이면 안 될테니까. 그런 변명을 중얼거리면서 보건실로 향했다. 도착해서는 적당한 이유를 둘러대고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누웠다. 단번에 내준 걸 보면 얼굴이 꽤나 엉망이었던 모양이지. 그렇게 침대에 옆으로 누워 훌쩍거린다. 이유같은건 잘 모르겠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쩐지 말이다.
종례 시간, 한 자리 빈 곳을 보고 물었다. 아직 묘하게 낯가림을 하는 녀석들은 얌전히 대답해줬다. 예전이라면 놀려먹었을텐데.
- 기분이 안 좋다고 보건실에 있겠대요~
역시 그런 거겠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고 종례를 끝냈다. 트레이닝을 하러, 자습하러 뿔뿔이 사라지는 녀석들을 뒤로 하고 나는 보건실로 향한다. 걸어가면서 오만 생각을 했다. 이게 맞나. 나 혼자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둘이 함께 과거로 돌아온다니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그럴 거면 차라리 화끈하게 이세계로 가던지, 이건 무슨 장난인가.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들어가보니 보건 선생님도 어디 가신 듯 없고, 훌쩍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커튼으로 가려진 침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일단 보건실의 문부터 잠갔다. 메이사는 나랑 싸우다 보면 그냥 나가기부터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생긴 습관.
"메이사."
내가 부르자, 훌쩍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선생님 가도 돼?"
고민하는 듯한 정적. 3초를 견디기가 힘들어서 발을 슬금슬금 옮겼다. 그렇게 옆 침대에 걸터앉아 반투명하게 보이는 메이사를 앞에 두고 말을 건넸다.
"왜 기분이 안 좋아? 어디 아파?"
마치 담당이라도 된 양, 동거하는 사람인 양 다정하게 묻는 말. 오늘 처음 만난 선생님이라기엔 묘한 기색을 주는 목소리. 모든 게 내 착각일 뿐이라면, 메이사는 여기서 기분 나쁘다고 하겠지. 내가 꾹 참고 있는 말을 내뱉는다면 분명 경멸할 거야. 어쩌면 취직하자마자 짤려버릴지도. 하하.
예전이라면 그런 걱정에 쫄아붙어서 이 커텐을 젖히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자신이 있다. 난 츠나센을 때려치우고 부모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타지로 가서도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자신이. 그래서 커텐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돌아누운 메이사가 보였다.
돌아누워서 훌쩍거리고 있는, 기분나쁠 정도로 생동감이 넘치는 메이사. 그 등에 대고 들이박았다. 예고도 없었다. 보자마자 튀어나왔다고밖에.
계절은 벌써 봄인데도, 겨울이 길게 머무르는 츠나지는 해가 빠르게 기울고 여전히 겨울의 냉기가 남아있었다. 창가로 들어오는 꽤 많이 기울어진 햇빛을 보며, 얼추 종례 시간이 되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종례 시간까지도 훌쩍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거의 반나절은 울고만 있던 거 같아. 눈은 너무 부어서 아플 지경이고, 목도 꽤 아프다. 그래도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로 베갯잎을 적시고 있다보면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보건 선생님.. 아까 나가셨던데 다시 오신 건가.
- 메이사.
그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어째서, 왜 여기에. 학생 하나가 보건실에 있다고 해도 굳이 찾으러 올 정도는 아니잖아. 놀라서 훌쩍거리던 것도 멈춰버렸다. 그리고는 가도 되냐는 물음이 뒤따랐다.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서 망설이는 사이,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바로 옆까지 왔다.
"..........."
오늘 처음 만난 임시 담임과 반 학생이라는 사이에서는 상상도 못할 거리감. 마치 동거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담당이라도 되는 양 다정하게 물어보는 말에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거 같았다. 조례 시간에 본 표정은 착각이 아니었다고. 과거로 돌아온 건 너 혼자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만.....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떼어내기 무섭게, 네가 마저 말을 이었다. 아니, 이었다고 할까... 제멋대로 커튼을 열어젖히고, 제멋대로 던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해, 라고.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그렇게 듣고 싶어했던 말을 이제야 들었다.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 돼서, 잦아들던 훌쩍거림이 한층 더 강하게 흘러나온다.
".....나......"
하지만 분명, 그렇잖아. 나랑 엮인 게 잘못이니까, 이번엔 그렇게 되지 말라고 다시 돌아온 거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 같은...거랑... 엮이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덥석거렸다. 누가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그래도 쥐어짜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안돼..."
기껏 돌아왔는데 다시 엮여서, 또 그렇게 된다면. 그게 더 가슴 아플테니까. 쥐어짜내듯 뱉고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메이사는 한동안 말도 못하고 어깨만 들썩거릴 뿐이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 내뱉은 말은... 그래, 복잡미묘했다.
"나도 좋아해" 라는 반응 따위는 당연하게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꺼져라던가, 너 따위 보고 싶지도 않아 라고 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같은 소파에 앉아서 맨날 듣던 말이니까. 그렇게 말하면, 껴안는 거로 해결이 될 것만 같은 이상야릇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들려온 말은... 나를 적극적으로 원망하고 저주하는 말이기보다는... 이게, 뭐라고 말하기가 진짜 어려운데, 그냥 느낀 그대로 말해보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틀려먹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과 실이 엮이다 못해, 실을 쥔 누군가의 손에서 잔뜩 비벼지고 엉켜서, 더이상 어디서부터 엉킨 건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그런 덩어리가 되어버렸다는 실감.
돌이켜보면, 그 직감은 옳았다.
그래서 나는 욱신거리는 목울대를 억누르고, 통증을 삼키고 애써 웃으며 말한 거다. 알잖아, 이런 건 내 전매 특허라는 거.
그래. 그렇겠지. 엮이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할 정도였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지. 묘하게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머리와 다르게, 눈에서는 또 눈물이 쏟아진다. 스스로에게 지겨움을 느낄 정도로. 그대로 그냥 누운 채, 한번도 널 돌아보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알아... 나도...."
훌쩍거림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고 나니까... 그래,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래, 그런 건 이미 돌아오기 전에도 알고 있었잖아. 새삼스럽게 울 일도 아니다. 그것보다는 그냥 앞으로 어떻게 할 지를 생각해보는 게 좋겠지. 축축한 베갯잎에 얼굴을 묻고서 머리를 굴린다. 어쩔까나. 학교를 아예 안 나가는 것도 좋지만 이건 마마랑 파파도 오래 걱정할거고, 친구들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 엮이지 않으려면 안 나가는 게 제일 좋은데 말이지...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아마도 돌아오기 전의 결론하고 똑같은 거겠지만, 조금은 다른 형태로 가능하겠지.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옆 침대에 걸터앉은 너에겐 눈길 하나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엉망이 된 얼굴을 푹 숙여서 감추고 문을 향해 걸었다. 손을 뻗어서 문을 밀면.... ....열리지 않았다. 문이 잠겨있었네. 잠금을 푸느라 문 앞에서 조금 시간이 지체됐지만... 상관없나. 딱히 시간제한이 있는 일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잘 있어."
아마 이게 마지막 대화가 되겠지. 그런 의미를 담아서 툭 던진 말을 보건실에 남기고, 잠금을 푼 문을 열었다. 따듯했던 보건실과 다르게 복도는 싸늘하고 차가워서 몸이 부르르 떨린다.
잘 있으라고 했다.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말이겠지. 그거로 됐다, 된 거다. 엉킨 실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거다. 더 엉킬 일도 없이, 나랑 무관계하게...
그렇게 생각하니까 슬펐지만, 술을 잔뜩 마시는 거로 잊을 수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때리는 알람 소리에 일어났을 때, 마치 짠 것처럼 클래식반 단체 톡에 알림이 올라왔다. 메이사의 담당 트레이너로부터.
실종된 메이사는 차가운 채 발견됐다. 그리고 메이사의 장례식이 열렸다. 이번에 나는 제대로 초대 받아서 메이사를 보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은 이를 보내주는 건 쉽지 않았다. 특히 그게 메이사라서. 잘 있으라는 말이 그 의미였던 건가. 도대체 왜? 엮이지 말아달라길래 정 떼라고 해줬더니, 왜 돌연 죽어버린 거야. 왜. 난 정말 모르겠다. 예전부터도 그 속은 전혀 모르겠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네 생각이 한 가닥도 이해가지 않는다.
그런 메이사를 이해하고 싶어서 안카자카에서 뛰어내렸다. 술을 먹으니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딛고, 박차고, 시야가 빙글빙글 뒤집히더니 쿵. 끝.
눈을 퍼뜩 떴다.
"...꿈?"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요정따위는 없었다. 그저 머리가 물리적으로 깨지는 듯한 고통만이 엄습해와서, 새벽에 머리를 끌어쥐고 눈물 범벅으로 끙끙댔다.
바닷물은 차갑고 소름끼치고 숨이 막혔다. 친숙하게만 느끼던 바다에 공포를 품을 즈음 의식이 멀어졌고, 그대로 내 삶은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지겹게도 다시 눈이 떠진다. 또다. 차가운 바닷속이 아닌 푹신한 이불과 침대, 하야나미의 2층, 내 방. 날짜까지도, 눈을 뜬 시간까지도 저번과 지겨울 정도로 똑같았다. 딱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저번과 다르게 절망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내 얼굴 정도였다.
교복을 입고 등교한다. 또 다시 부임 첫 날의 네가 교실로 들어와 자기소개를 한다. 본 것을 또 보고 있자니 조금 지겨웠다. 현실에 스킵 버튼은 역시 없는거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저번과 다르게 보건실에 가진 않았다. 가봤자 바뀌는 일은 없고, 그냥 마음이 아플 뿐이니까. 그것보다도 또 돌아왔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실감이 나지 않아서 이걸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런 나를 기어코 점심시간에 옥상으로 불러냈을 땐, 한숨을 애써 삼켰다.
".....죽으면 더 엮일 일도 없을테니까."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학교를 안 나가는 걸로 대응해도 어차피 담임인 이상 엮이게 되어있다. 그럼 아예 학교를 그만두는 건, 마마랑 파파한테는 뭐라고 설명하는데? 제가 죽었다가 다시 회귀했는데요 담임이랑 붙어먹고 자살하는 미래가 예정되어 있으니까 학교 그만둡니다? 미쳤냐고. 결국 가장 쉽고, 빠르고, 가장 파괴적인 방법으로 엮이지 않는 걸 선택했는데, 그것도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다시 돌아와버렸으니까.
"....그보다 그쪽도 다시 돌아온 거야?"
어이가 없었다. 엮인 게 잘못인 거 같다고, 나 같은 거 좋아할 리가 없다고 그렇게 말한 녀석이 같이 되돌아오고 있는 거잖아. ....물론 내 경우랑 똑같은 거면, 마음대로 선택해서 돌아오는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냥 죽으면 다시 돌아오고 그러는 거겠지.
왜 죽었는지, 어쩌다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그런 경위는 밝히지 않았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할 거고, 메이사랑은 이런 식으로 껄끄러운 관계인 편이 나을 거 같아서다.
"내 생각엔 말이지, 우리 둘다 죽어버리면 다시 돌아오는 거 같아. 네가 안 엮이겠다고 죽어봤자 돌아와서 다시 엮일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좀, 어떻게. 어? 죽지 말고 있어보라고."
"같은 팀도 하지 않고, 서로 뭐 사적인 대화도 나누지 않고, 예전 일은 다 잊고." "그냥 담임이랑 학생 관계로 졸업까지 하자. 그러고 나면 알아? 어디의 신님이 안 엮였구나~ 하고 판정해줘서 리셋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속이 상했다. 결국 난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좋아하는 사람의 사체를 두번이나 봤다고. 그마저도 나 때문에 죽은 걸. 마음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오히려 몇번이고 돌아왔기 때문에 그런가 실감이 덜 났다. 오랜 악몽을 꿨다고 치부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