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아직도 나는 잠에 드는 때, 어릴 적의 꿈을 꾸곤 한다. 어린 아이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수 평 남짓한 방에 네 개의 책상과 이층침대 두개로 이루어진 방이 내 기억이 선명해진 때부터의 기록이다. 그 보육원에는 놀 것이 없었다. 게이트의 시대. 고아란 생각보다 흔한 존재였기에 차별을 받진 않을 수 있었지만 게이트의 시대. 그만큼 가난이 더 절절히 다가오는 세상에 있었다. 티비에서는 성공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절거린다. 그들은 비각성자임에도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갔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런 이들도 소수이고 대부분은 의념 각성자와, 성공한 별의 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들은 항상 자신의 시작에 대해 '운이 좋았다' 고만 말했다.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 운은 단지 그들이 좋아서 향하지만은 않았을테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그러니까, 조금 더 꿈에 대해 조형을 할 수 있게 된 시기부터 내 꿈은 나에게 성공에 대해 속삭였다. 나는 나를 티비를 통해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성공에 대해 얘기했고, 재미 없는 농담을 내뱉었지만 그들은 그 말에 기꺼이 웃어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잠에서 깨어날 때면 2주 가까이 빨지 않은 이불에서, 쿰쿰한 냄새를 맡으며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꿈은 현실과 만나 깎여나갔다.
점점 내 꿈이 성공에서 자리를 잡는 것으로 변해갔다. 고기반찬이 나올 때면 작은 그릇에 담긴, 양념으로 오래된 맛을 숨기려 한 그것을 먹기 위해 친구들과 경쟁해야 했고 누군가가 단지 옷장이 가득 차 버리려고 했을지 모를 입던 옷을 입었다. 옷이 몸에 맞지 않거나 흉이 있음에도 그것조차 기꺼워해야만 했다. 그게 난 지긋지긋했다. 언젠가의 밤, 나는 이제는 키가 커버려 살짝씩 발이 닿는 침대에서 잠들고자 몸을 웅크린다. 천천히, 그 지긋한 공기 속에서 나는 점점 꿈의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이 몇 뼘의 잠들 수 있는 공간을 벗어나고자, 무엇이라도 가능할 그 세계로.
>>112 드높던 하늘이 한순간 어둡게 변하는 것은, 아마도 당신의 답답함이 한없이 이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머리카락은 당신의 추한 모습을 가리려는 듯 끝없이 자라납니다. 답답함을 느끼고 얼굴을 마구 휘젓더라도 얼굴에 늘러붙은 머리카락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치 내 감정을 마구 가리듯 말입니다.
“︎ 답답한가보구나. 이렇게나 길게 자라난 네 머릴 보니까. 네 감정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
답답한 마음 속을 누군가가 바라보듯 천천히 속삭여옵니다. 어둡게 가려진 시야를 헤쳐보려는 듯 손길이 닿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 손길은 썩 부드러울까 싶으면서도 세심해서. 머리카락이 사그락대며 얼굴을 간지를 법도 한데 그렇게 닿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 이 답답한 것들을 잘라줄 수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너는 내 길에 닿아야만 하겠지. ”︎
그녀는 상현의 빽빽한 머리카락을 살짝 들추어 눈을 마주칩니다. 그 분위기가 미묘하게 흔한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평소에 상일이 떠올릴 법한 성좌의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 손에는 빗을, 머리카락을 든 손의 새끼 손가락에는 가위가 메달려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옷은 순백의 원피스처럼 보였는데, 그 키는 상일보다 조금 더 큰 듯 상일을 내려보는 것 같았습니다.
소년은 살고자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눈치챈듯이 돌을 주워다 드는 그 모습을 바라본다. 살고자 한다면 행동해야 한다. 가만히 있어선 안된다. 항상 생각하고 방법을 갈구해라. 소년의 움직임은 마구잡이라 할 수 있겠지만 늑대에겐 효과적이었다. 곧이어 둔탁한 충격음이 울리고 곤죽이 된 늑대머리가 보였다.
작은 한 걸음이지만 분명 이것은 크나큰 업이다. 죽음의 운명에서 맞서싸워 자신의 목숨을 훔쳐낸 크나큰 업.
"잘했다. 남들이 보기엔 미약하겠지만 자신의 생명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도둑이라면 더욱더 잡히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123 무한한 별의 바다에는 이따금 찾지 못했던 별이 나타나는 것 정도가 아니라면 지루함 뿐인 세계에 가깝다. 변화보다는 영원, 이미 완성된 업을 지닌 존재들의 세계에서는 변화는 죽은 개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바다 속, 작은 피로 물든 바다는 작은 호수의 물줄기에 눈을 돌렸다. 그저 고인 물 속은 어떤 풍경일까 하는 변덕일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칼이 있었다. 남자도 있었다. 남자는 의자에 대충 몸을 기대고는 숨을 헐떡거렸다. 쓰고있는 안경에는 진득한 피가 덧붙어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벗지 않았다. 그 피마저도 자신이 낸 결과라는 듯이.
" 말하지 않았습니까. 돈은 확실하게 주셔야죠. 하... "
울컥, 토혈이 입을 타고 올라오는지 남자는 입을 슥 닦았다. 억울한 모양새였다. 어쩌면 이 이상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 입꼬리는 웃고 있었다. 욕심이 실현되어 즐거운 듯한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 아니지. 고맙다고 할까요? 책임은 당신이 뒤집어 쓸 수 있으니까요? 책임은 어떤게 좋을까요. 사채로 연명하던 A씨, 도박빚으로 사망? 이정도면 딱 예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당신같은 사건에 엉덩이 무거운 가디언은 움직이지 않을테니까. "
좋다. 좋다는 듯이, 남자는 입꼬리를 파르르 떨다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모르는 곳에서 들려온 소리임에도 남자는 평온했다. 묵묵히 칼에 붙은 핏물을 닦아내다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곧 주위를 두리번대던 남자의 눈이 한 곳에 닿았다. 그곳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창문으로 비친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 그것은 남자가 바다를 바라보는 표현이었다.
" 하. "
남자는 웃었다. 그건 조소였다. 붉은 하늘에 떠오른 별을 바라보며 담배를 잘근거리며 씹는다. 불똥의 일부가 그 피부에 떨어졌지만 그는 고통보단 재밌는 사건을 마주한 듯 싶었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질지 어머닐진 모르겠지만 나를 고르느니 다른 녀석을 고르는 게 나을겁니다. 하다못해 삼십 분 정도 일찍 이 죽은 놈을 골랐어도 나쁘진 않았겠는데 뭐... "
피식. 남자는 농담처럼 웃었다.
" 내가 죽여서 어쩔 수는 없지만. "
남자는 칼을 적당히 시체의 손목에 박아넣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도박에 의한 적당한 빚의 서류를 내던지고, 창문에 기대며 진득한 숨을 내뱉었다. 미처 빠지지 못한 담배연기가 그 숨에 뒤섞여 흘려나왔다.
" 통성명이나 할까요? 나는 이언주입니다. 뒷배라곤 없는 고아고, 방금 전까진 게이트 물장업자였고. 지금은 백수군요. 그쪽은? "
>>136 여화는 당당했습니다. 무엇이라도 넘을 수 있다. 자신이 넘을 수 없는 것이 없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인식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별은 덤덤하고, 또 잔잔하게 여화를 바라봤습니다. 아득히 먼 꿈 속. 여화의 시선이 한참이나 낮아집니다. 익숙하지 않은 꼬리의 감각이 느껴지고, 코로는 여러 역한 냄새들이 느껴지곤 합니다. 입고 있는 갑옷은 쥐 수인의 몸에는 어울리지 않도록 온몸을 압박합니다. 문득, 쥐 수인은 천천히 고개를 숙입니다. 쥐 수인의 장기라고 할 수 있을 손톱은 수없이 깨지고 부르텄습니다. 길쭉한 것이 역겹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상처를 받고, 그들을 싫어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 그런 것으로 상처를 받기에는 그의 정신은 드높았으니까요.
절그럭, 몸을 움직일 때마다 관절은 비틀리듯 아파옵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움직이면서도 쥐 수인은 옆에 보이는 나무들을 바라봅니다.
“ 이것은 나의 세계. ”
그런 여화의 시선 위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환경은 무너졌고 살 수 있는 땅은 점점 줄어들었다. 자연이 적이 되어버린 세계. 비틀린 자연의 폭력이 이 세상을 뒤엎을 때. 사람들은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살기 위해선 이 땅을 벗어나야만 하므로, 잊혀진 유산들을 끌어모아 어떤 차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자 했지. ”
그는 그리운 듯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여화의 눈은 다릅니다. 바람이 우르릉 하며 몰아치면 땅조각이 하늘로 떠오르고 퉁 하고 떨어지다가, 어느 순간에 번개가 쿠르릉 하고 떨어집니다. 그렇게 빈 땅에 작은 원이 벌어지면 그곳으로부터 물과 불과 그런 것들이 한순간 서로 터져오르고 그것은 순식간에 비가 되어 바람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어울리는 표현을 찾기 힘들 짓이기는 폭거, 그것을 바라보는 여화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정신력이 감소합니다. Tip. 왜 '체력'과 '정신력'을 비밀 능력치처럼 해두고 공개하지 않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치화된다면 캐릭터의 처리나 여러 문제에서 단순화가 가능하지만, 그건 제 편의일 뿐 여러분에겐 불편이 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Tip 2. 본진행에서 당황하시거나 왜 이렇냐고 하실 수 있어 판정 형태로 알려드리지만 시작 시점의 여화는 이제 별가루를 모아 별을 완성한 초심자입니다. 그런데 지금, 캐릭터를 묘사하실 때를 보면 캐릭터가 이미 정신적인 완성을 이룬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초인적인 캐릭터 역시 좋아하지만 지금의 어장에는 맞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진행에서 서로의 불편을 야기할 수도 있으니. 성격에 대해 다시 한 번 조형해보는 것도 좋아보입니다:D
“ 차원을 넘는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자신들이 만든 재앙을 두고, 안온한 세상으로 향하겠다는 그 폭거가 얼마나 오만한가.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이리 답한다네. 그러나, 이후의 아이들과. 묵인하는 것 외에 허락받지 못한 이들에게도 그 죄가 전해져야만 하는가 하는 이야기. ”
곧 수인은 발을 꼼지락거립니다. 손가락, 발가락. 그 어디도 부르트고 변형되지 않은 곳이 없음에도 쥐 수인은 땅에 발을 박아넣고, 두 손으로 나무를 짓누릅니다.
“ 그리고 그런 이들을 단죄하듯 세상은 최고의 재앙을 보내왔지. ”
눈 앞의 재앙. 세상의 멸망이라고 해도 어울릴 모습을 향해 쥐 수인은 뒤를 한 번 바라봅니다. 자신을 미워한 사람들, 자신을 더럽다 손가락질하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