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연애를 하고싶냐는 질문에 해인은 역으로 되물었다. 표정은 짓궂음이 가득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장난식으로 물어본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어차피 대답하기에도 곤란할테니 딱히 답을 기다리진 않는듯 해인은 자연스럽게 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 이전 미션을 해보고 싶다면 같이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굳이 미션이 아니더라도 해볼 수 있는거잖아. "
나중에 세나가 유명해지고나서 그 영상이 재발굴 되어 돌아다니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고 해인은 생각했다. 물론 그녀 말대로 좀 더 화려하고 퍼포먼스적인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물론 자기도 춤을 못추는건 아닌데 세나보단 당연하게도 실력이 떨어질테니 연습을 할 시간이 필요하긴 하니까 지금 당장은 무리였지만.
" 조용한 곳을 원했으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어. 거기는 산 근처라서 벚꽃은 좀 적은데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 "
해인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만든 베이컨 말이를 하나 집어 세나의 입에 가져다주며 말했다.
지금 단계에서는 딱히 언급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보이며 그녀는 가볍게 그의 말을 넘겼다. 물론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이들은 비명소리를 지를지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는 어느 한 쪽이 조금 더 진지하고 진심이 되었을 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물론 이러다가 자신 쪽이 생각보다 훨씬 진심이 되어서 그를 꼬실지도 모르지만...그건 지금은 알 수 없는 나중의 이야기였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기분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미션으로 추는 것과 그냥 재미로 추는 것은 분위기부터가 다르잖아요. 방송용으로 추면 괜히 좀 더 이것저것 보여주게 되고. 그렇다고 그냥 출 때 대충 추는 것은 아니지만요. 이래보여도 댄스부의 떠오르는 샛별이라구요. 저."
살짝 자리에서 일어나서 유연한 웨이브를 보여주는 모습이 조금은 섹시하게 비쳤을까? 아니면 그저 귀엽게 비쳤을까? 그것까진 깊게 생각하지 않으며 세나는 작게 웃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편 해인이 베이컨말이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오자 세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베이컨말이를 바라봤다. 엄청 자연스럽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입을 벌려 받어먹었다.
"후훗. 엄청 맛있네요. 저 베이컨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오빠가 싸 온 도시락. 되게 만족스러워요. 맛도 괜찮으니까 금상첨화네요. 아. 그러면 이번엔 제 차례려나?"
이어 그녀는 가만히 도시락 반찬을 바라보다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그리고 해인을 바라보면서 일부러 짓궂은 표정일 지으면서 굳이 '아~' 하는 소리까지 덧붙였다.
"저는 화려한 곳이 좋아요. 사람이 많아도 말이에요. 물론 조용한 곳은 조용한 곳대로 좋긴 하지만... 역시 벚꽃은 화려한 풍경이 일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이어 그녀는 살짝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오른쪽 눈만 살짝 감고 그를 유혹하듯 싱긋 입꼬리를 올렸다.
"다음에 제가 오빠와 미션이 아니라 자의로 데이트를 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땐 둘만 있는 곳으로 가요. 이번엔 모두에게 예쁜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거라면... 다음에는 진짜 저와 오빠. 오직 둘만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곳."
장소는 생각해봐야겠지만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표정을 풀면서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남은 반찬을 천천히 먹으며 젓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이긴 했지만 일단 흥미롭다는 분위기는 풍기며 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이런 얘기는 쉽게 꺼낼 수 있는게 아니었다. 평소엔 그냥 조용한 부장님 느낌이던 해인이니까 이걸 보고 있는 밴드부원들은 아마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해인도 딱히 대답을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세나의 대답은 의외였을지도 모른다.
" 확실히 그렇겠네. 세나는 아이돌이기도 하니까? "
일어나서 보여주는 유연한 웨이브에 해인은 놀랐는지 눈이 잠시 커졌다. 물론 금방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분위기가 아까보단 더 묘하게 변한 것 같기도 했다. 하긴 아이돌이 눈 앞에서 춤까지 살짝 춰줬는데 거기서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해인은 자신의 베이컨말이를 먹고 맛있다며 말한 세나를 웃으며 바라보다가 입으로 다가온 계란말이를 보고선 바로 한 입 먹어버렸다. 이미 아까 하나 집어먹은 계란말이였지만 이렇게 먹으니 맛이 좀 더 좋았다고 해야할까.
" 그런 장소라면 내가 알고 있어. "
세나의 유혹하는듯한 표정에 해인도 지지 않고 눈을 살짝 감은채 세나를 바라보고선 이번에도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물론 이것도 시청자들이 집중하면 들릴법한 목소리 정도긴 했지만 말이다. 대답의 의도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해인의 표정은 만족한듯 싶었다. 다음을 기약한다라 ... 다음에 만났을땐 어떤 관계일지 그도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 다 먹고 하고싶은거 있어? "
데이트라는걸 나왔으니 밥 먹고 산책만 하면 섭섭하지 않을까 싶었다. 해인은 그렇게 물어보고선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 찾아보더니 세나에게 보여주었다.
" 여기 카페ㅡ, 벚꽃이 핀 기간 동안만 파는 한정 굿즈를 판다고 했어. 키링도 있는것 같던데 ... "
여기서 말은 끊어졌지만 해인은 같이 사러가자고 하는듯 했다. 그야 딱봐도 비슷하게 생긴 키링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직 연습생이고 오빠에 비하면 인지도도 많이 떨어지지만요. 두고 봐요. 언젠간 제가 더 인기있을테니까! ...10년 정도면 되려나? 20년?"
스스로 말하고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며 세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눈앞의 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인지도가 있고 인기가 있는 천재였다. 그런 이의 인기를 따라잡으려면 과연 20년으로도 충분할지. 그동안 해인이 놀기만 할리도 없지 않은가. 조금 분했는지 그녀는 괜히 볼을 약하게 부풀리다가 입 속의 공기를 밖으로 빼냈다. 이어 그녀는 다시 머리카락을 손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어머."
지금 목소리는 시청자들에게 안 들리는 크기이지 않나? 편집으로 들리나? 그보다 알고 있다니. 대체 어떤 장소?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조용히 해인을 바라봤다. 이어 그의 표정을 가만히 살피며 세나는 흐~응 소리를 내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물어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그냥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다 일단은 묻지 않았다. 혹시라도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 그때의 재미로 두는 것이 좋을 듯 했으니까. 무엇보다... 이번 기간이 끝난 후에 자신과 그가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었고. 당장 다음주에 자신이 짐을 빼고 다른 이가 들어와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장소는 저에게만 킵해줘요. 저에게 이렇게 말했는데, 다른 이와 가면 조금 삐질지도 몰라요. 저."
그가 낸 목소리보다 더욱 작게... 정말로 해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말없이 싱긋 웃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냐는 물음이 이내 나오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키링?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빠가 식사 끝내면 바로 가봐요. 거기! 키링은 저도 가지고 싶거든요. 그리고... 음. 글쎄요. 후훗. 벚꽃놀이는 벚꽃을 구경하는 거잖아요. 이미 벚꽃은 여기서 밥 먹으면서 많이 봐서... 지금도 충분히 만족스럽긴 한데..."
이어 세나는 가만히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컵을 완전히 비우고, 조심스럽게 돗자리 아래에 내렸다. 그리고 해인을 바라보며 살며시 제안했다.
"조금 더 걷고 싶어요. 내년에도 벚꽃이 필지도 모르지만.. 올해 벚꽃은 지금뿐이잖아요? 연애 프로그램 상관없이...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어요. 후훗. 너무 소소한가요? 하지만 어떡해요. 난 지금 이 순간이 즐겁고 좋아서 좀 더 즐기고 싶은데."
이건 진심이었다. 해인은 세나가 자신보다 훨씬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연습실에서 춤 추는 것을 우연히 봤을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해인이었기에 그때 바로 세나와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던 것이었다.
" 분명 데뷔하자마자 팬들이 엄청 늘어날껄? "
그렇게 말하며 해인은 세나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톡톡 두드려주었다. 구태여 쓰다듬지 않은 이유는 머리가 망가질까봐 그래서였다. 그래도 방송까지 나와야하는데 머리가 망가지면 수습하기 힘들테니까 말이다.
" 그래. 약속할께. "
해인은 정말로 그럴 생각이라는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세나와 자신이 정말로 이어질거란 생각을 ... 안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확신을 가지진 않았다. 어쨌든 페어가 2주마다 바뀌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세나와 다시 만나게 되었을때는 어떻게 될지 자신도 아직 잘 몰랐다.
" 대신 그때는 좀 각오해야할껄? "
어떤걸 각오하란 것인진 알려주지 않은채 더 걷고싶다는 세나의 말을 듣던 해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음식이 좀 남았지만 배가 좀 부르기도 했고, 어차피 같이 사는 입장이니 저녁으로 먹으면 될 것 같았다.
"당연히 데뷔를 앞둔 아이돌인데 팬이 늘어나지 않으면 곤란한걸요! 하지만... 역시 오빠를 팬이나 음악성으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오빠는 스스로의 매력을 알 필요가 있어요."
이게 자신만 모르는 그거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세나는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물론 이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일단 그런 것보다는 데뷔 후에는 천천히 인기를 올리고 계단을 오를 생각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세나는 그 정도로 생각을 멈췄다. 그 와중에 그녀의 눈은 다시 한번 크고 동그랗게 바뀌었다. 뭘? 뭘 각오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물끄러미 해인을 바라보던 세나는 아무런 말 없이 방금 내려둔 컵을 두 손으로 잡더니 괜히 만지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용히 컵을 아래로 내리면서 살며시 시선을 회피하며 이야기했다.
"...평가란에 어떻게 쓰일려고. 바보 오빠."
인터뷰를 하고 난 뒤에 평론이 있다는 것은 세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렇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뭘 각오해야한느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은... 그렇게 생각하며 세나는 눈을 감으면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표정을 관리하며 숨을 골랐다. 괜히 손으로 제 얼굴을 부채질하던 세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남은 것은 저녁에 먹어요. 그럼."
굳이 억지로 다 먹게 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오늘내일내로만 먹으면 되는 음식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쯤에서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도시락통을 정리했다. 3단으로 나뉘어진 도시락을 다시 하나로 합친 후, 자신의 손가방 안에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다시 신발을 신고, 해인이 돗자리에서 내려오면 같이 접으려고 했을 것이다.
"아. 오빠는 질문하지 않았지만 저 마지막으로 진실로 답하는 질문 하나만 할게요. 오빠는 지금 즐거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소소하긴 해도 이런저런 것을 했다. 자신은 상당히 즐거웠고, 지금 이 순간이 좋았다. 그렇다면 해인은? 오빠는? 궁금증을 가득 품은 눈빛에 그의 얼굴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