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최대 15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진행 때에는 #을 달고 써주시면 됩니다. 진행레스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색깔을 입히거나, 쉐도우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도 모두 오케이입니다. 스레주가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쁘게 꾸며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레주도 무협 잘 모릅니다...부담가지지 말고 츄라이츄라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적용하며, 이에 기속됩니다.
하얀 풍경이 익숙했다. 그의 고향에서는 죽은 자를 새에게 먹이는 풍습이 있는데, 새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길 바라는 것인지 자연과의 상생이 이유인지 상일은 몰랐다. 영 바쁜 몸이었던지라 그걸 볼 기회는 한 손에 겨우 꼽을 정도였는데, 그럴 때면 상일은 메마른 몸으로 주저앉아 시체 위를 날아가는 새를 빤히 바라보곤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다 보면 당연하다는 듯이 눈이 내렸는데, 차마 필설로 형용하기에는 실례가 될 모습이 된 시체를 희게 덮어주는 것이 뭐랄지. 수의를 덮어주는 듯 하였다. 그러면 상일은 일전에 본 승려들을 흉내내어 합장을 하곤 했다. 이곳에서 그 생각이 드는 건 아무래도 닮은 냄새가 나서겠지. 상일은 고개를 들어 높은 설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뒤로하고 온 집이 떠오르며 거센 향수에 파묻힌 경험..따위 없는 상일이나 나고 자란 곳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처음에는 어색함을 느낄 정도로 부드럽던 공기도 슬 익숙해지니 서늘한 바람과 시야를 가득 메우는 하얀 눈이 보고싶어졌다. 하여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먼 과거 서장에서 피난을 온 사람들이 만든 문파가 설산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걸어왔다. 시간이 지났다 하나 어찌되었든 동향은 동향이니 설산에서 지내는 것 정도는 허락해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참, 시기가 좋지 않았다.
"거참."
상일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적당한 곳에 주저앉아 가만히 설산을 보았다. 전쟁이라니.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만큼 차라리 다른 곳에 갔다가 오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과 고원이 많다는 운남 좀 돌다 안 끝나면 광서로 빠져서 해산물 좀 먹는 것도 좋아 보였다. 그래도 모처럼 여기까지 온 게 아쉬우니 한동안 기다릴까 하는 마음도 들었는데, 어쩐다. 상일은 고민이 많았다. 산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머리를 두른 두건이 살랑거렸다. 어째 냄새가 익숙하더라니, 새가 쪼아먹을 것 많고, 눈이 덮어줄 수의가 남아나지 않겠구나. 상일은 먼 설산을 향해 중얼거렸다.
마치 하얀 천 위에 그린듯한 무채색의 풍경. 평소라면 사천의 고지 사이를 바삐 날아다니며 울부짖을 새들도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굳이 눈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 토끼나 족제비를 잡아먹기 보다는 저 멀리에서 서로 싸워대는 털 없는 원숭이들의 시체를 쪼아먹는 일이 쉬울 것이다. 자연은 인간과 달리 낭비를 하지 않는다. 예컨대 지금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누군가의 우행처럼.
“으아아아아─!!”
아마 이 주위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난데없이 공중에서 울려퍼지는 비명소리를 맹금의 소리로 오인하고 몸을 피했으리라. 뭐, 아니라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무언가가 떨어진 곳으로 가볼 수도 있겠다. 만약 그랬다면 충격으로 생긴 작은 구덩이 속에서 구름처럼 흑백이 섞인 머리칼의 남자가 검은 구름 무늬 옷에 묻은 눈과 바위의 잔해를 털어내며 투덜대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아아, 허공답보 이거 진짜 어렵네.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느냐를 시험해보는게 아니었어. 하늘 위가 그렇게 쌀쌀할 줄은 상상도 못했고. ...?”
야견은 구덩이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다. 두건을 뒤집어쓴 푸른 빛의 눈동자를 한 남자. 큰 키에 비교적 신체가 잘 훈련되어있다. 대충 위아래로 눈길을 준 야견은 대강 알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싸우기 위해서는 겉으로 보이는 정보로 최대한 많은걸 추출해야했다.
“이보쇼. 보고만 있지 말고 일어나라고 손이나 빌려줘. 계속 하늘 위를 걸었더니 몸이 완전 얼린 육포가 된 기분이라고. 매리곤문의 사람인가? 그쪽 사람들 설산에 살아서 피부가 희더라. 그런데 매리곤문이 활도 다루는 줄은 몰랐는데...방계나, 혹은 먼 인척이신가?”
새 울음 역시 익숙한 사람이니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성을 맹금과 착각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상상도 못한 하늘에서 들려오는 걸 사람 소리라고 생각하기도 힘든 일이니 몸을 일으키고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끝에 뭔가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바위 작살나는 소리와 함께 섞여 터져나오니, 아무렴 호기심은 참기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상일은 뭔가 싶은 걸음으로 구덩이를 향해 걸어갔다. 뽀득, 눈 밟는 소리를 숨기지 않으면서 구덩이 쪽을 보니 뭔 사람이 한 명. 머리색이 검기도 하고 희기도 하니 기묘하고 눈은 또 시뻘건 것이 눈에 띈다. 염주를 걸친 것을 보면 불가의 인물인가 싶으면서도 또 딱히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서장에서 승려를 가끔 본 상일의 느낌으로는 그랬다. 뭔가 연신 투덜거리는데 그 내용을 듣자하니 허공답보를 하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내 생애 첫 허공답보가 가능한 고수를 보는 게 오늘일 줄은 몰랐는데. 상일이 속으로 헛웃음을 짓고 있자니 상대와 눈을 마주쳤다. 자칫 잘못하면 몸에 시원한 바람구멍 날 것 같은 눈이었지만 죽이기야 하겠냐며 그는 곧 손을 뻗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맞는 말도 아니지. 잠시.. 읏-차."
궁은 본디 시위를 당기는 힘이 중요한 도구라 상일의 완력은 퍽 쓸만했다. 당연히 경지를 넘볼 정도는 아니었으나 사람 한 명 정도 끌어 당기기에는 별 어렵지 않았다는 뜻이다. 상대가 하는 말에 적당히 대답하며 끌어올려주려 한 상일은 말을 덧붙였다.
"서장에서 온 객이오. 여기 매리곤문도 서장에서 온 이들이 세웠다고 하니 아예 관련이 없는건 아니지. 동향이라기엔 뭐,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소만."
남자를 끌어올린 뒤 흘깃 곤문이 있을 방향에 시선을 던진 상일은 두어 걸음 눈을 밟으며 멀어진 뒤, 부드럽게 쳐진 눈매로 상대를 살폈다. 살면서 자신이 강하다 여긴 적은 없으나 새삼 최근 보는 인물들은 죄 괴물들 뿐인 것 같다며 상일은 생각했다. 아래서 산을 본들 얼마나 높은지 쉬이 알겠냐만, 일전의 아이와 함께 다니는 녹색 여행자와, 백발 동지인 어느 높으신 분보다도 강하다는 것만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는 산이란 게 오르기 위해 있다는 걸 알지만 올라가면 곧바로 까맣게 탈 걸 아는데 발을 들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몸이 얼었을 때는 따뜻한 걸 마시는 게 좋은데, 아니면 가볍게 몸을 좀 움직이거나. 땀이 나면 오히려 나중에 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뭐 여기는 그리 춥지 않으니 괜찮지 않겠소."
그러고보니 허공답보를 하던 사람이지. 상일은 갑자기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혹시 볼 수 있나? 삼매진화?
사실 하늘에서 운석마냥 떨어진 것은 삭신이 쑤시기는 했지만, 굳이 남의 손을 빌려야 할 정도로 아프지도 않았다. 그저 하늘을 달리며 흑천성으로 돌아가는 길, 우연히 다리가 미끄러져 만나게 된 눈앞의 남자에게 호기심이 생긴 것 뿐이었다. 오호라. 실제로 손을 만져보니 화살을 쥔 덕에 생겼을 굳은살이 박혀있다. 훈련으로 새긴 것 치고는 불규칙하다. 아마도 실전에서 싸우면서 얻은 것일까. 사문을 두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군상인 듯 싶다.
“서장? 그 매리곤문이 살던 서쪽 산맥? 허어, 만약 전쟁통만 아니라면 객지에 온 귀한 송님 취급 받았겠는데.”
야견은 대충 몸을 털어버리며 상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다. 허어, 보아하니 얼어죽지 않기 위한 지식에도 대강 자세한 듯 한데. 역시 타고 난 환경에사서 나오는 지식이라고 해야 할까.
“....뭘 기대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못보여줘. 아직 익숙하지 않다고.”
야견은 그렇게 말하며 살짝 눈을 감는다. 마치 쇠를 달구는 것처럼 붉게 달아오르는 팔다리. 그와 함께 전신에 묻은 눈들이 수증기가 되어 사라진다. 법화심법의 혈불을 간단하게 응용한 정도다. 왜 삼매진화를 쓰지 않느냐고? 말 그대로였다 벼락치기로 너무나 많은 것을 익힌 그다. 잘못하면 스스로에게 불이 붙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 통성명이 늦었군. 야견이요. 흑천성의 무인이고 매리곤문이랑 같이 싸우다 사문으로 가는 길. 그럼 그쪽은 누구실까. 서장의 사람이 왜 매리설산으로? 행색을 보아하니 밀교의 수행자가 성지를 방문하시는 것도 아닐듯한데.”
갑작스래 표변하는 야견의 태도. 바위에 걸터 앉아 시뻘건 눈에서 떠오른 염주 구멍 같은 동공으로 상일을 바라본다. 위협으로 느껴질만한 태도는 아니지만, 대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맞았다. 전쟁 중이니 외부에서 온 자라면 그 진의를 확인해보아야 한다 여긴 것일까. 물론 예전의 야견이었다면 이렇게 물어보는 것 보다는 싸워보는 쪽이 빠르다 여겨 비도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그래 왠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의아한듯 눈을 깜빡였다. 서장불교의 총본산인 포달랍궁을 중심으로 한 혹한의 땅에서 나고 자랐다 한들 모두가 불문에 드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가 살던 곳은 포달랍궁에 가깝지도 않았으니 가끔 보는 승려들을 제외하고는 잘 몰랐다. 서장에서 온 것은 맞으니 근본은 불가인 매리곤문에서 설산 탐방은 허락이 쉬워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만 딱 가지고 있던 것이 상일이었다. 그래도 이곳 사정이야 상일보다 상대가 더 잘 알터이니 상일은 꽤 기대가 들었다.
"생각한 거랑 다른 걸 보긴 했는데 충분히 좋은 걸 봤다고 생각하는데. 오오... 멋진데. 진짜. 진심으로."
삼매진화, 즉 불을 피우는 것은 아니었으나 상일은 충분히 기대가 충족되었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눈을 감았을 뿐인데 팔다리가 붉게 달아오르고 눈들이 녹는 것을 넘어 기화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은 추위에 익숙치 못해 금새 앓곤 하였으니, 그런 아이들이 살아남는 데에 썩 도움이 될 것 같이도 보였다. 또한 그것을 제하더라도 그냥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더욱 많은 신비한 힘들이 많겠지, 여행을 하다보면 하나 둘 정도는 더 만날 것이다. 상일은 주먹으로 턱을 받치고 탄성을 뱉었다. 그러다 순식간에 변모한 상대의 태도에 상일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무난히 헤어지고 좋은 경험했다고 끝나겠다 싶었는데. 허나 듣자하니 저런 태도에 적절한 이유가 있어서 상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리곤문과 공투를 하였다면 갑자기 등장한, 서장에서 왔다 하는 인물을 보고 의아해할만 하지. 그렇기에 상일은 숨기는 것 없이 말을 하였다.
"이름은 '상일'이라 하고, 딱히 사문 없는 낭인이며, 목적이야..."
상일이 잠시 말끝을 흐린 이유는 이 목적을 과연 상대가 믿을 것인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정말 별 거 없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숨긴다고 해서 의미도 없으니 상일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을 완성했다.
"여행이지 뭐."
거짓 한 점 없는 진심이었다. 아예 자리에 주저앉은 상일이 하늘을 빤히 보았다. 파란 하늘 참 맑다. 저 하얀 산에서는 사람들이 붉은 꽃으로 눈밭을 물들이며 설산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 일이라는 듯 하늘은 참 고요하다. 그것을 보며 상일은 묘하게 한탄하는 듯한 어조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안 그래도 고향을 떠나 오래 여행중인데. 서장에서 온 이들이 세운 문파라 하는데다가, 사는 곳도 비슷한 설산이라 하니 흥미가 돌아 와서는, 질릴 정도로 돌아다니다 다음 여행지로 갈 생각이었소. 기대 잔뜩 하고 왔는데 전쟁이다 뭐다 해서 멀찍이 서 산 구경만 하게 되니 거, 참, 아쉬운게 떠나질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