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최대 18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진행 때에는 #을 달고 써주시면 됩니다. 진행레스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색깔을 입히거나, 쉐도우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도 모두 오케이입니다. 스레주가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쁘게 꾸며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레주도 무협 잘 모릅니다...부담가지지 말고 츄라이츄라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적용하며, 이에 기속됩니다.
상일이 느끼는 산아래 중원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어디서 자더라도 비교적 괜찮다는 점이다. 물론 정말 어디서든 잔다면 입이 더 이상 쓸모를 잃게 되겠지만(뭘 먹을 필요가 없어질 테니), 안전만 확보된다면 적당히 자리 잡고 눈을 붙여도 괜찮았다. 특히 '위'는 비교적 시야가 덜 쏠리기에 좋았는데, 반대로 기습을 신경쓰는 사람에게 당하거나 '수상하다'며 경계 당할 일이야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인적 드문 숲 속이기에 괜찮았다. 녹림만 뜨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소 서늘하긴 하나 적당한 날씨, 굵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기둥에 등을 기대고 나뭇잎 틈새로 들어오는 햇볕을 느끼며 느긋-히 오수에 잠드려는 찰나, 상일의 눈에 뭔가 스쳤다. 그냥 들짐승이겠거니 싶었는데 하얗다. 토끼인가 싶지만 그게 또 높이가 있다. 응? 그럼? 그런 생각에 몸을 세워 나뭇가지에 앉게 된 상일의 눈에 5척쯤 되는 높이의 하얀 머리칼이 보였다.
중원에는 하얀 머리가 드문 것 아니던가? 그 생각이 든 상일은 읏차- 하고 내려와 그 하얀 사람이 있는 쪽으로 갔다. 손에는 뭔가 달랑달랑 흔들리고 있었는데, 상일이 잘까 싶었던 차에 잡은 산토끼였다. 화살도 안 꽂혔고 그냥 뒷덜미만 덜렁덜렁 잡힌 채. 일부러 부스럭거리며 자신을 숨기지 않아, 적어도 기습할 생각은 없다는 것을 알리며 다가간 상일이 하얀 머리의 소녀에게 인사했다.
무인의 기감이란 본디 주위의 사물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법이라, 짐승은 물론이거니와 사람까지도 모조리 잡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백시아의 입장에 나타난 상일은, 예상 밖의 접근이 아니었다. 두 눈이 빠르게 상대를 훑었다. 백색증. 눈은 하얗다. 풍기는 기운은 무인의 것이나 태양혈을 보니 솟아있지 않아 일류 이하의 무인. 긴장할 필요도 없는 상대이다.
상일 역시 나름 무인 나부랭이라, 어느 정도 상대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경지가 다른만큼 확고히 알 수는 없지만- 백시와 같은 [천재]라, 나름 알아낸 건 있었다. 잘못 개겼다간 부처님 뵙겠다. 다행스럽게도 상일은 호기심과 흥미가 강할 뿐 딱히 거칠고 무례한 성정은 아니......사파 치고는 아니었으므로 오늘은 안전하게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무얼, 그냥 나무에 앉아 오수에 들려다 하얀 것이 보여 왔을 뿐이오."
으쓱, 어깨를 흔든 상일은 팔을 들어 머리를 감싼 두건을 밀어올려 제 하얀 머리카락을 보여주었다. 푸른기가 감도는 하얀 머리카락이 숲의 나무 틈새로 들어오는 햇볕에 따라 빛났다.
"나 말고 하얀 머리를 보는 건 처음이라."
그의 고향에서도 하얀 머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상일이 백시아에게 온 이유는 그것 뿐이었다. 가는 길도 알고 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세상을 보고싶다며 자기 멋대로 집에서 뛰쳐나온 사람이 그렇지 뭐!
조그마한 공 들어있을 잔은 요란스럽게도 움직이고, 시야가 제한되어 하나뿐인 눈은 바쁘게도 잔상을 좇는다. 가운데? 오른쪽? 아니면 왼쪽? 아까는 오른쪽이었는데, 시야가 잡아낸 잔은 가운데였다. 재하는 손가락을 들어 잔을 고르려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자 시선을 돌렸다. 누구지?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익숙하지 않다. 감찰국의 부하는 아니고, 호위도 아니며, 범무구의 것과도 결이 다르다. 다른 행동이야 그러려니 넘길 수 있지만 암살 시도가 하도 잦은 편이었던 재하였기에 소리와 기척에는 몹시도 기민했으니, 낯선 소리와 기척에 의구심을 품으며 허리에 매달린 부채를 꺼내야 할까 생각하다 살의 하나 없는 느린 몸짓이 목덜미를 덮자 눈을 깜빡, 하고 크게 감았다 뜨며 고개를 돌렸다.
"……ㅇ, 아, 찾아다녔구나. 미안, 금방 끝날 줄 알았지 뭐니."
누구지? 일단 악의는 없다. 살가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낯설다. 다행스럽게도 이 부분에서는 눈치가 빨랐던 건지, 처음엔 놀라 어안이 벙벙한 듯 속눈썹이 높이 뜨였던 재하지만 당신이 눈을 찡긋거리자 금세 수긍하듯 미소를 지으며 쉽게도 장단을 맞췄다.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며 입술을 말아올리니 평범한 미소라기엔 어딘가 수심 깊지만, 그마저도 눈 한짝 없는 면구 탓에 퍽 어울리는 인상이었다. 사람 잘 낚았다 생각하던 야바위꾼은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난입에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금세 사람 좋은 미소를 얼굴에 띄우곤 그물 쳐둔 야바위판에 물고기 걸리길 바라듯 손을 싹싹 비볐다.
"자, 자. 형씨. 동생한테 비녀 줄 수 있겠네? 한 번 골라 보쇼!"
불청객이 있다 한들 사람 낚는 것은 같으니, 외려 돈 더 뜯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야바위꾼의 기대와 달리 재하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현실을 일깨우고 있었다. 왼쪽. 재하는 눈을 슥 흘겨 뒤로 물러나는 당신을 향해 시선을 던진다. 교국에서 많고 많은 사람 보았다지만 처음 보는 인물이다. 당신은 대체 누구길래 자신에게 다른 답을 알려주는지, 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재하는 동생에게 오냐오냐 대해주는 오라버니처럼 나긋나긋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이곳저곳 찾아다니느라 시장했을 터인데, 이거 다 끝나면 객잔에서 뭐라도 먹지 않으련?"
잘 알겠다는 무언의 의미였으리라. 대화로 자연스러움을 더하며 티나지 않게 주변 눈치를 살폈다. 들은 사람은 없는 듯하고, 재하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야바위꾼을 향해 고개를 다시금 돌렸다. 긴 손가락이 잔 하나를 가리키고, 재하는 야바위꾼의 눈을 정확히 마주하며 긴 속눈썹 사이 검은 눈을 반개했다.
"……왼쪽." "형씨, 마지막 기회야. 진짜 왼쪽으로 할 거야?" "낙장불입이지 않소."
재하는 야바위꾼의 불안을 읽었다. 무공을 익혀 단전 자리한 사람이라면 이 자리에서 찰나의 불안 잡지 못할 리가 없다. 재하는 다시금 눈을 흘겨 당신을 보더니, 느릿하게 눈을 휘었다. 야바위꾼이 잔을 들든, 드는 것을 거부하든 완벽하게 재단해 잘라낸 듯한 상냥한 미소는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을 터다.
마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애초에 시아가 마교인지도 모르는 상일은, 자신이 지금 다소 무례했던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았다면 금새 사과했겠지. 시아의 말처럼 뭔가 나올 구석 없는 꼬질꼬질한 낭인인 것이 상일에게는 차라리 다행이었다.
"어이구, 그래그래, 가라."
들고 있던 토끼가 그새 잠에서 깼는지 아니면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온 것인지 버둥거리기 시작하자, 딱히 먹을 생각이 없던 상일은 가볍게 토끼를 놓아주었다. 토끼가 달려나가는 뒷모습을 보다 우연히 시아의 의족을 발견했을 것이나- 상일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그저 토끼가 가는 길만 잠깐 보고 끝냈다. 그리고서는 자연스럽게 시아가 한 말을 받았다.
"호.. 하얀 머리에 대한 이야기가 남은 것들이 좀 많나 보오. ...음, 그런데.."
방금까지 영 태평하던 상일이 슬쩍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듯 눈동자를 살살 흔들었다.
"혹시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오? 말씀에 품격이 느껴지는 게 범상치 않은 분인듯하여."
이제 보니 옷자락도 좋아보이는 것이, 문헌을 많이 읽었다는 것까지 하니, 어디 높으신 분이거나 연이 있거나 귀한 집에 자제분인듯했다. 으음, 하얀 머리가 반가워 눈치 채는 게 한-참 늦었네! 상일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다소 어색한 웃음을 걸쳤다.
소녀는 콧방귀를 힝 끼더니 다리가 다 아프다며 투덜거립니다. 그 말을 강조라도 하듯 몸을 조금 굽혀 제 오른 다리를 통통 두드립니다. 천연덕스럽기 그지없는 태도로군요. 그 모습은 영락없이, 사랑 듬뿍 받고 자란 탓에 몹시도 버릇없으나 천진하고 귀여운 막내동생처럼 보입니다.
당신 뒤에 물러서되 당신 뒤에 꼭 붙은 것도, 짜증난다 표시하듯 입 삐죽이는 모양새마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다 당신이 달래는 듯한 어투로 이야기하면... 소녀의 입꼬리가 움찔움찔하며 올라가려 합니다. 한숨처럼 숨을 푹 내쉬곤, 여즉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시위하는 사람처럼 입매를 도로 굳힙니다. 허리에 양손을 올리곤 으름장을 놓습니다.
"...당과도 사줘야 해! 안 그러면 오라버니랑 따로 집에 돌아갈 줄 알아!"
그러나 목소리는 퍽 누그러진 것이, 별로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이러니 정말로 있지도 않은 동생과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는 당신이 준 속뜻을 잘 알았다 전하기 위해 하는 말일지라도요. 그 말을 끝으로 소녀는 팔짱을 끼고 섭니다. 당신을 하는 모양을 보려는 듯 뒤에 가만 서있습니다.
당신이 결국 소녀가 말한 대로 잔을 고르자, 소녀는 남몰래 웃음 짓습니다. 야바위꾼이 안절부절하는 것이 여기까지도 전해집니다. 아마 시장 사람들도 다 알 것입니다. 그가 한 방 먹었다는 사실을요. 결국 야바위꾼은 떨리는 손길로 잔을 엽니다. 꽤나 꼴좋은 모습이로군요.
공이요? 당연히 있겠지요.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결과이나, 소녀는 부러 뒤에서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척합니다. 사기꾼의 속을 득득 긁을 작정으로 아주 그냥 해맑은 목소리로 떠들어댑니다.
"우와! 잘 됐다, 오라버니, 그치?"
오라버니는 그걸 어떻게 다 안 거야? 대단하다! 종알거리다 말고 무언가 떠오른 사람처럼 고개를 갸웃 기울입니다. 말을 멈춥니다. 그러다 조금 후에야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잠시만... 그러고보니, 딴 돈 전부에다가 비녀까지 얻어준다고 했었지?"
그러면서 야바위꾼을 빤히 바라봅니다. 그게, 분명 웃기는 웃고 있습니다. 생글 웃는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스산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군요. 소녀는 웃음기 빠진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상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실로 아무것도 아닌 것 역시 맞았다. 참고로 위에서 낮잠을 자려 했을 때, 이 토끼는 잡아다 배에 올려두었다. 이 정도 겨울 날씨는 선선하다 느낄 정도인 상일이나 그래도 사람인지라 온기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토끼를 올려두니 따끈따끈해서 나쁘지 않았다지. 토끼가 도망치지 않겠느냐고? 도망쳐도 상관없고, 당시에는 기절해있었다. 딱히 공을 들인 것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일류 정도만 되도 토끼 정도는 훅! 하고 잡아챌 수 있는 것이다!.
"아하- 확실히 그렇죠."
아니면 아무 말 없이 피하던가. 상일은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역시 책을 그만큼 읽을 수 있다는 건 재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니 상일은 슬쩍 목덜미를 긁적였다.
"하얀 머리 동지인줄 알았더니 무서운 분을 만난 거였습니까.. 거참, 역시 인생이란 모를 일이군요.."
상일은 시선을 슬쩍 피하는 것 같으면서도 줄곧 시아를 신경쓰고 있었다. 당연했다. 경지의 차이가 나는 인물에게서 어찌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겠는가. 오늘 처음 만난 인물. 어느 높은 자리에 있는데다가 경지도 높으니 상일이 잘못걸렸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허나 그건 그거고 궁금한 건 궁금한 거라.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문헌에서 하얀 머리가 어떻게 나오는 지, 말씀이 가능한 선에서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궁금해서."
상일은 참지 못했다. 참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호기심이 상일의 대가리를 후려쳐 구멍을 뚫고 튀어나온 것이다. 그래도 안된다면 단호하게 끊어도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고 실제로 그러했으며, 깊게 파고드는 이야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는, 나름 자세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