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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인기 찻집이자 카페인 [아후레루]의 특별 부스가 올 해 토키와라 여름축제에도 열렸다. 키리야마 가에서 교토에 카페를 낸 이후부터 매년 축제마다 내는 부스는 딱 이 시기에만 파는 한정판 디저트를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덕분에 축제 기간이나마 토키와라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게끔 해주었으니. 나름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면 되는 그런 영향도 있었다.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아~!"
키리야마 가의 막둥이 스즈네는 올 해도 이 특별 부스에서 열심히 일을 도왔다. 스즈네가 맡은 일은 접객이었는데 시종일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계산해주는 곱게 입은 점원을 보고 흐뭇하게 왔다 가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덕분에 부스에 불을 켠 지 오래지 않아 당일 한정판은 동이 났고 스즈네에게도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치비링~ 오늘은 이제 됐으니까~ 가서 놀다 와~" "정말? 야호~!" "자~ 여기 용돈~ 돌아다닐때 앞 잘 보구 다녀야 해~" "네에~ 다녀오겠습니다아~"
앞치마를 벗고 유카타 단복 차림이 된 스즈네는 꽁꽁 묶어 올렸던 머리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단정히 올린 머리도 좋지만 역시 답답하니 말이다. 잔머리가 푱푱 나왔지만 편하니까 상관 없다. 손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고 언니인 후우린이 챙겨 준 작은 복주머니 가방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게다 소리 달각거리며 부스를 나왔다.
"에헤헤~"
이제부터 놀 생각에 신이 난 스즈네의 얼굴은 마냥 해맑았다. 당장 뭐부터 할까 일단 간식부터 먹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던 찰나. 아! 하고 떠오른 생각에 부리나케 어디론가 향했다. 토도도독. 잰걸음 소리가 경쾌하기도 하다.
"카나쨩~ 카나쨩 있나요오~?"
바삐 찾아간 곳은 축제의 한 부스였다. 정확히는 호시노 가의 부스다. 뭐였더라, 이누네코 놀이터? 대충 그런 곳이었던 거 같다. 스즈네도 링링이를 키우니 놀러 온 건가 싶지만 개나 고양이가 아닌 카나타를 찾는 모습이 다른 용건이 있어보인다.
"카나쨩~ 같이 축제 돌자아~!"
혼자는 심심하니 같이 축제 구경 하며 놀자는 지극히 단순한 용건이 말이다. 몇 번이고 카나타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면 폴짝 뛰며 반가워하는 스즈네가 보였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감의 유카타와 단정한 듯 느슨한 올림머리를 한 스즈네가.
"호시노. 저기 저 고양이가 간식을 안 먹는다는데 어떻게 하면 돼?" "...리카가 간식을 안 먹을 땐 그냥 두면 돼. ...배고프거나 먹고 싶으면 알아서 달라고 할 거야."
반려동물 교류 카페 부스. 그것이 카나타가 연 부스의 이름이었다. 집행부 일도 하기야 하지만, 이렇게 작은 부스를 하나 만든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자신과 친구들이 모여서 만든 부스는 오늘도 사람이 북적북적했다. 대부분이 반려동물을 데리고 왔고, 반려동물이 없어도, 귀여운 동물을 보기 위해서 들어오는 이들도 제법 많았다. 카나타가 입고 있는 시원한 남색 유타카에는 하얀색 고양이와 강아지 일러스트가 크게 그려져있었다. 따로 가게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용돈을 모아 주문제작한 것이었다.
옷깃을 손으로 정리하며 그는 가만히 쭈욱 기지개를 켰다. 슬슬 쉬는 시간이었지만, 바로 들어가진 않고 마지막으로 카페의 동물들을 전체적으로 둘러보며 문제가 없는지, 규율을 어기는 이가 없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눈빛이 매우 날카롭고 재빨랐다. 가만히 눈으로 훑고 지나가던 와중, 부스의 입구가 열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낯익은 이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같은 반 아이인 키리야마 스즈네. 손님으로 온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려는 순간, 자신을 찾더니 냅따 축제를 돌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스즈네에게 다가갔다.
학교에 다닐 때는 같이 이야기를 할 때도 많았지만, 방학이 되고 난 뒤로는 아무래도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던가. 아무렴 어떤가. 집행부 일도 그렇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라서 바쁜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다. 일단 가만히 생각을 하던 카나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지. 어차피 쉬는 시간이고, 자리를 비운다고 해도 급한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할테니까.
"...좋아. 축제 분위기는 좀 보고 싶었으니까. 아..."
이어 그는 잠깐만이라고 이야기를 한 후, 카운터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랍을 열고 부스를 열기 전에 땄던 밀크커러멜 2박스 중 하나를 꺼내고 다시 돌아왔다.
"...먹을래? 사격에서 딴 건데. 커러멜만 2개라서 하나는 어쩔지 고민 중이었거든. ...먹고 싶으면 가져가. 이거."
엄청 친한 듯이 들이닥치기는 했지만 사실 카나타와 스즈네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알았지만 묘하게 거리감이 있다고 할까. 스즈네는 카나쨩이라고 부르는데 카나타는 아직도 키리야마라고 부르는게 눈에 띄는 거리감이다. 그래도 스즈네는 상대만 잘 해주면 좋았다. 싫은 티 안 내면 상대도 괜찮은 거 아니냐는 조금 제멋대로인 생각이었지만.
"와~ 카나쨩이랑 축제 돈다~ 으응~?"
흔쾌히 얻어낸 동의에 기뻐하던 스즈네는 곧 카나타가 뭔가 가져와 내밀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보았다. 그건 밀크캬라멜이었다. 단 것을 좋아하는 스즈네가 그걸 사양 할 리가 없다. 기쁨으로 눈이 반짝반짝해진 스즈네가 방긋 웃었다.
"먹을래 먹을래~ 고마워~ 카나쨩~!"
스즈네의 양 손이 카나타의 손과 밀크캬라멜을 같이 쥐고 파닥파닥 흔들려 했다. 그리고 박스를 열어 하나 입에 쏙 넣고 우물거리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부스에 있는 내내 팔기만 했지 먹은 건 없었으니 이 작은 캬라멜 하나가 참으로 달콤했다.
"카냐쨩도~ 자~ 놀기 전에 당충전이야~"
볼 한 쪽 볼록하게 오물거리는 스즈네가 캬라멜 하나를 더 꺼내서 카나타에게 내밀었다. 포장을 반쯤 까서 위로 들어 내미는게 입에 직접 넣어줄 셈 같아 보인다. 들어올린 손 뒤로는 마냥 헤헤거리는 스즈네가 있을 뿐이다.
카나쨩이라는 호칭은 이제 와서는 카나타도 굳이 무슨 말을 더 하지는 않는 호칭이었다. 물론 이 나이를 먹고 '쨩'이라고 불리는 것은 조금 부끄러운 것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부르겠다는데 그렇게 부르지 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이 익숙해지면 되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 언제의 일이었더라. 소꿉친구인 츠키와 코하네만큼은 아니지만 이 아이와도 꽤 오래 알고 지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고맙긴. 두 개나 따서 내가 먹을 하나 빼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 중이었거든. 가져간다면 나야 고맙지."
물론 그대로 집으로 가져가거나,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주는 방법도 있겠으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선물로 줘서 나쁠 것은 없었다. 저렇게나 좋아하니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기도 하며 그는 괜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응?"
그 와중에 자신에게 커러멜을 주려고 하는... 정확히는 마치 입에 직접 넣어주려고 하는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며 그는 두 눈을 깜빡였다. 그의 눈동자가 슬쩍, 아직 부스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향했다. 헛기침 소리를 한 번. 그는 그녀의 손에서 커러멜을 챙긴 후에 자신의 입에 쏙 집어넣으려고 했을 것이다. 만약 실패했다면 그냥 순순히 입에 넣어주려고 하는 것을 받아들였겠지만.
"...가자. 그래서 어디에 가고 싶어? 일단 전체적으로 둘러보는 것이 나을까?"
부스를 열기 전에 대충 이곳저것을 둘러보긴 했지만 작년, 그리고 재작년과 크게 차이는 없다는 것이 바로 카나타의 생각이었다. 금붕어 잡기라던가, 사격이라던가, 혹은 먹거리 가득한 부스라던가... 하네이 이나리 신사에 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말하기도 했지만 재차 남는 걸 준 거라는 카나타의 말에도 스즈네는 에~ 나 남은 거 처리반 아닌데~! 라며 히히 웃기만 했다. 남은 거 처리하려고 줬다기에는 아무렇게나 둔 것도 아니었으니까. 알고 지낸 시간이 있는 만큼 말은 저렇게 해도 속 생각은 다를 것을 얼추 아니 웃으며 가벼운 농담으로 넘길 수 있었다. 그래도 조금 얄미우니까 일부러 부스에 보는 눈이 있을 때 캬라멜을 내밀었지만.
"이히히~"
장난기 가득하게 웃은 스즈네는 캬라멜을 가져가려는 카나타의 손을 샤샥 피했다. 평상시 망충해보이면서 이럴 때 행동 하나는 누구보다 날렵하다. 기어코 직접 입에 먹여주고서야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음~ 나 아직 아무것도 못 해봐서~ 다 하구 싶은데~"
카나타는 이미 사격을 즐긴 모양이지만 스즈네는 오전부터 부스를 돕느라 아직 즐긴게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밤이 깊도록 다 돌고 싶지만 카나타의 일정도 생각해야 하니까. 잠시 축제 전경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곤 몇 곳을 추려냈다. 머릿속으로만.
"그으럼~ 가볍게 한바퀴 돌구 신사에 가자~ 제일 먼저 금붕어랑 요요츠리 낚시~!"
가볍게라는게 스즈네의 기분이라면 카나타는 각오해야 할 지도 모른다. 알 지 모르겠지만 스즈네는 체구에 비해 체력이 철철 넘치는 타입이니까. 렛츠 고~! 한 걸음 타닥. 앞으로 나선 스즈네가 휙 돌아서더니 카나타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멋진 유카타 입었는데 잔뜩 놀지 않으면 손해라구~ 카나쨩~ 얼른 가자~"
조그만 가방 든 손을 붕붕. 흔들면서도 남은 손은 카나타에게 내밀었다. 잡으라는 것 같은데 안 잡아도 그만일 것이다. 어쨌거나 게다 달각거리며 낚시 부스로 향하는 것은 같을 테니.
선물이야. 선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카나타는 그와는 별개로 딴 커플 키홀더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두 개 다 자신이 가질까.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 줄까. 차후에 천천히 생각하면 되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서 커러멜을 받아가려는 순간, 그녀가 손을 피하자 그는 응? 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스즈네를 바라봤다. 기어이 먹여주고 말겠다는 그녀의 행동에 그는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일단 받아먹었다. 딱히 어린애도 아니고 이 정도로 부끄러움을 타진 않았다. 물론 나중에 돌아온 후에 방금 그거 뭐냐고 묻는 질문공세는 받아야 할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기어이 그는 또 적당히 결론을 냈다.
"...전부? 시간이 되려나. 휴식시간 끝날 때까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자신에게 주어진 휴식시간을 어떻게든 전부 활용하면 깊게는 아니어도 가볍게 전부 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민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덥썩 잡아주며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다음에는 비번일 때 이야기해줘. ...그쪽이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잖아. 아무튼 금붕어와 요요츠리? ...좋아. 실력을 보여줄게."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지만, 어쩌면 하나도 낚지 못하고 끝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말이라도 자신감을 넣어보려는 듯, 그렇게 이야기하며 카나타는 미소를 조용히 지었다.
"아마 저쪽일거야. 가자."
부스를 열기 전에 대충 둘러봤기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낚시 부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그는 가만히 근처에 있는 다른 부스들도 조용히 바라봤다. 참으로 이것저것 다양하게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애초에 돌아가는 데 성공한 적이 있기나 한가. 항상 발을 들였다 하면 깊어지기만 하는 마음 속의 늪. 초점 잃은 눈과 히죽 웃는 얼굴. 일순간 흐르는 두 사람 사이의 정적. 농담을 주고받았다기엔 어두침침한, 어딘가 조금 비뚤어진 청춘의 찰나가 잠깐 스쳤다. 미카즈키는 다시 또렷이 스즈네를 바라보며 "그러면 곤란한데요." 하고, 무덤덤한 무표정으로 말한다. 농담의 반응이라기엔 심히 정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맞장구친다고 쳐준 거다. 끔찍하게 못 칠 뿐.
낮잠이라. 밤잠도 제대로 이룬 지 오래된 미카즈키에겐 꽤 낯선 단어다. 괜찮겠는걸, 하고 생각은 해보지만, 누구나 쉬이 하지는 못하는 그것. 어딘가 잘 가지 않는 길이나 초행길을 건너다가 저 식당, 저 가게 괜찮겠는걸, 하고 생각해보고는 그냥 지나치는 것처럼. 스즈네가 찻잎바구니를 들고 들어오자, 미카즈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즈네에게서 찻잎바구니를 받아들어주려고 했다. 스즈네가 내어준다면 어디 놔두면 되는지 물어보고 거기 두었겠고, 내어주지 않는다면 얌전히 물러났을 것이다.
그리고 미카즈키는 스즈네가 내미는 하얀 마스크를 얌전히 뒤집어썼다. 그리고 스즈네의 설명을 차근차근 들으며, 스즈네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집중력과, 집중력을 발휘할 때 함께 발휘되는 관찰력은 미카즈키가 마운드 위에 올라서는 원동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는 스즈네의 지시대로 손을 맷돌 손잡이 위에 얹었다. 그리고 그 손등을 포근한 손바닥으로 짚을 때, 스즈네의 손 안에 다시 한 번 느껴지는 우악스러운 손아귀.
"재채기는 걱정 마세요."
스즈네가 재채기를 언급하자, 미카즈키가 대답했다.
"외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게 있거든요. 재채기가 나올 것 같으면, 혓바닥을 입천장과 위쪽 앞니 뒤에다 붙인 뒤에, 입천장과 앞니를 당기듯이 빨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면 재채기가 멈춘다고."
...? 이상한 재주다.
"혹시 재채기 때문에 투구 타이밍 놓치거나 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셨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미카즈키는 스즈네가 시범을 보여준 대로 조심스레 주걱으로 찻잎을 퍼다가 맷돌 구멍에 소르륵 부어넣고는 스즈네를 따라 천천히 맷돌을 돌리기 시작했다. 도로록. 도로록.
스즈네가 돌리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박자, 똑같은 느낌의 똑같은 소리를 내며 맷돌이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