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7, 찾는 사람만 찾는 인상의 카페고 인테리어도 케케묵었고 지하에는 수상쩍은 시설이 있고 카페 사장이 냄새나는 아저씨인데다 하나같이 약해빠진 영능력자들이 자꾸만 기어들어오는 장소. 그런 곳의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엎드려선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카운터 쪽을 노려본다. 아까부터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염소(사키라고 몇 번이고 이름을 대고 있지만 염소는 염소니까)가 시야에 들어온다. 딱히 아무래도 좋지만.
그래서 내가 왜 이런 곳에서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가 하면, 유우가가 이 카페 지하에서 망할 애송이랑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난 라이센스라는 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 어? 옛날엔 말이야 그런 종이인지 플라스틱인지 고런 쪼가리 없이도 음양사 할 수 있었다고. 머리아픈 시험이라던가 실기라던가 그런 거 하나도 없고. ...물론 그게 없던 시절엔 뭣도 모르는 초짜들이 요괴잡으려다 역으로 잡아먹히거나 저주받아서 죽거나 그냥 요괴는 놀자고 쳤는데 죽거나(?)하는 경우가 많기는 했지. ...사실 알아. 그런 피와 희생이 쌓이고 쌓여서 이런 라이센스 제도라던가 뭐시기 같은 걸 만든 거겠지. 꼴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연합같은 것도 만들고 말이야. 슬쩍 몸을 일으켜 턱을 손으로 받치며 흥, 하고 한숨인지 콧방귀인지 모를 것을 뱉었다. 어차피 연합이건 뭐건, 난 유우가 아닌 사람은 안 믿어. 인간이란 것들은 믿을 수 없어. 유우가를 죽인 것도 그녀석들이었고.
하지만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지하에서 유우가가 그 망할 애송이하고 단 둘이서만 있다는 거라고!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났다. 아이고, 나도 모르게 그만 가장자리를 세게 쥐어버렸네. 염소도 이건 무시할 수 없는지 이쪽을 보며 '아 아왓 아와와'하고 있고. 아무튼 지하에서 수련이라고 둘이서만 있는데, 엄청 불안하다니까!!! 끝나고 유우가가 나올 때마다 찰싹 붙어서 이상한 짓은 당하지 않았는지 냄새도 킁킁 맡아보고 여기저기 더듬고(사심 400%함유)하긴 하지만은. ....그래도 열받아. 불안해. 이럴 땐 역시——
카페니까 당연히 커피를 마셔야지. 뭘 5잔인데 이제 적당히 좀 하지?같은 말을 하고 앉았어. 그리고 커피값은 망할 애송이가 부담할 거니까 상관없잖아. 오히려 '마셔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절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염소가 반쯤 울면서 커피머신으로 가는 사이, 지하로 가는 입구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유우가인가? 유우가인가봐! 전부 끝났나보네!!! 턱을 괴고 반쯤 누워있던 자세를 파닥 일으켜서 후다닥 달려갔다.
>>597 ...아, 못하겠다. 더 이상은 못 하겠어. 너무 빡세다고. 내가 뛰는지 걷는지 중량을 치는지도 모를 정도로 몽롱했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겨우 끝까지 버티고, 카페로 올라가 에어컨 바람을 쐬는 순간... 약간 감동마저 느껴졌다. 에어컨 바람과 함께 나를 안아오는 좋은 냄새도 그렇고.
"메, 메이사... 나 지금 냄새나니까 너 너무 가까이 오지 마아..."
하면서도 밀어낼 기력이 없어서 그대로 안겨있었다. 엉덩이를 마구 더듬고 땀으로 축축한 배도 문질문질당하고 있지만, 이런 걸 바깥에서 하지 말라느니 풍기문란이라느니 차라리 그럴거면 공원같은 한적한 곳을 찾자 같은 츳코미를 넣을 수도 없었다. 진짜 몸에 열이 펄펄 올라서 죽을 거 같았거든. 얼굴은 새빨갛고 눈은 까뒤집혀서 얼빠진 게, 내 표정은 마치 에로동인에 나오는 엘프의 최후같은 모양새였다. 거대오크족장에게 무슨 일을 당한 건지 의심해볼 정도.
"주... 주글거가타..." - 엄살이다. 오늘 한 건 뭣도 아니고 기본적인 체력증진을 위한 운동이었어. 알고보니 이 녀석 운동이라곤 쓰레빠로 축구한 게 전부였다고. 이건 그냥 괴롭힘이 아니고 이 녀석의 원죄야. - 그리고 이 녀석의 체력이 좋아지면 여우 너한테도 나쁜 일은 아니잖아?
...나도 그래서 암말 않고 있던 거지. 메이사랑 한시간 내내 키스하면 영력이 다 빨려서 밥먹고 자고 일어나야만 그나마 회복이 된다. 그 정도도 경이로운 회복력이라곤 하지만...
게임으로 따지자면 그거지. 최대 피통이 너무 작고 회복력은 좋아서, 지속딜에는 버티지만 한번 들어오는 극딜에는 손을 못 쓰는 상태. 체력을 늘리는 건 영력통을 늘리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듯 하다. 메이사에게는 좋은 것밖에 없는 일 뿐이다.
메이사의 쉴새없이 더듬는 손길을 받으며 땀을 식히자니, 염소양이 떨리는 손으로 바닐라라떼랑 냉수를 내밀었다. "윳유유유유우가사마 부디...!" 하는 간절한 목소리. 마침 필요했겠다 냉수를 받아 벌컥벌컥 마신다. 임금체불 당하면서 이런 서비스라니 염소양은 참 착한 요괴인 것 같다.
"살 것 같다아... 메이사, 안아줘..."
마음같아서는 카페 27을 바로 뜨고 싶었지만 체력적으로 그럴 수가 없어서, 일단 잠깐 노닥거리다 가자고 떼를 써본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는 하지만 말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하나도 없고, 찰싹 붙어서 더듬더듬 말캉문질하는 나를 밀어낼 기력도 없는 유우가. 얼굴도 새빨갛고 눈도 까뒤집힌게 유우가의 얇은 책에 자주 나오는 종이계집하고 많이 닮은 느낌이 든다. 헉, 그, 그럼 그 종이계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거랑 비슷한 짓을 저 애송이가 아래에서...!!!
뭐, 그냥 체력단련이겠지만. 그래도 은근히 뒤에서 엄살이라고 꼽주고 있는 애송이를 보니 열받아서 일단 한 대 치고 싶다. ....그래도 체력이 좋아지면 나도 좋은 건 맞긴 해서, 맞는 말에 주먹을 날리진 못했다. 나도 양심이 있지. 그래서 대신 유우가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있는 힘껏 들이마셨다. 크흐으으으으. 유우가 성분이 충전된다아.... 아래에 내려가 있는 동안 나 너무 쓸쓸했다구우. 쓰흐으으읍킁킁하고 맡고 있으면 유우가가 슬쩍 물러서려는 느낌도 들지만, 어림도 없지. 꼬리로 칭칭 감아서 꽉 잡고 계속 씁하씁하 들이쉰다. 이대로 30분 정도 충전하면 되니까, 응응. 곧 끝나니까 조금만 참으라구.
"응응, 꼬옥 안아줄게 유우가💕 오늘도 잔뜩 힘냈네~ 착하다~ 나데나데~"
걸을 힘도 없어보이는 유우가를 안아서 집에 데리고 가는 것도 좋지만, 너무 응석을 받아줘도 안 된다고, 그러면 체력도 영력도 늘어나지 않으니 차라리 채찍질을 해서 순보를 쓰게 하라는 애송이의 말이 있었지. 채찍질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감히 유우가한데. 하지만 맞는 말이라 반박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조금 쉬었다가 손잡고 걸어서 가는 쪽을 택하기로 한 거지. 유우가를 이끌어 테이블석으로 가선 일단 내가 먼저 앉고, 내 무릎 위에 유우가를 앉힌다. 그리고 꼬옥 안아서 나데나데하며 달래주기. 이히히... 최고잖아.. 유우가가 나한테 응석부리고 있다구...
"물 더 줄까? 이봐 염소, 냉수 한 잔 더줘!" - 히이이...네에.... "애송이랑 다르게 고분고분해서 좋네~"
꼬리로 허리를 꽉 잡혀서 껴안겨있다. 갓 태어난 염소처럼 후들거리는 팔로는 밀어낼 수도 없고, 스위치가 켜진 메이사를 상대로는 풀 컨디션의 나라도 근력으로 쨉이 안 된다. 요즈음 매일 밤마다 저항해보고 있지만 도리없이 론 당하고 있어서 안다.
결국 고양이처럼 메이사의 무릎에 앉혀져서는 꼬옥 안겼다. 아니, 비주얼로 보자면 내가 메이사를 안아주고 있는 거에 가깝긴 하지. 무릎에 앉은 탓에 메이사보다 커졌으니까. ...나도 모르게 나보다 작고 힘이 약한 메이사를 떠올려보게 된다. 그럴 일은 없지만... 그래도 근육도 붙고 있고, 영력을 좀 더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다면 가능하려나. 메이사를 밀어붙이는 것도...
땀으로 푹 젖은 셔츠를 슬쩍 들어올려 배를 내려다본다. 전에는 여장마이너갤러리에 올려도 손색없던 매끈한 배였지만 지금은 꽤 근육이 붙어서 그래도......
"...메이사, 그렇게 빤히 보지 말아줄래...? 내가 보려고 올린 거거든. 넌 눈 감아."
메이사에게는 그렇게 톡 쏘아붙이고는, 달그락달그락 덜덜덜 떨며 얼음물을 가져왔다가 배를 빤히 보고 있던 염소양에게는 친절히 대꾸했다. "어, 물 고마워. 잘 마실게." 라고. 뭔가 차별 대우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에는 내가 메이사에게 변태치O엉큼한생각만하는모브아O씨 라고 매도하는 게 너무 일상이었어서 몰랐다.
왜...!!! 나한테는 빤히 보지 말라고 눈까지 감으라고 그러고 염소가 보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 건데!!! 마음같아선 '둘이 무슨 사이야? 사이좋네? 죽어'라고 해버리고 싶지만 유우가한테는 죄가 없으니까. 그래. 유우가가 아니라 염소가 뭔가 한 거겠지. 유우가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더 주고, 염소를 노려보며 저주라도 하듯 말했다. 하는 김에 여우불도 살짝 날리고. 아, 염소 머리카락이 그슬려버렸네~ 미안~ 실수했어~
실수라니까? 실수라고.
그슬린 머리카락을 잡고 삐꺄악 하고 우는 염소를 보며 히죽 웃다가, 유우가한테 고개를 푹 파묻었다. 응... 눈 감으라고만 했지 만지지 말라던가 냄새맡지 말라던가 그런 말은 안 했잖아? 그러니까 이건 세이프야 세이프. 유우가가 아직 옷을 올리고 있어서 아주 조금 단단하게 근육이 붙은- 그래도 여전히 말랑매끈한 배에 잔뜩 볼을 부비게 됐지만 뭐어, 어쩔 수 없잖아 이건?
"붑-! 부홉—!!! 부부붑—"
볼도 부비고, 하는 김에 배에다도 잔뜩 츄츄하고 배방구도 해버렸다. 이히히, 행복해~ 이래서야 유우가가 변태치O엉큼한생각만하는모브아O씨라고 해도 반박할 수가 없네~ 그래도 행복하니까 됐나~
"유우가아, 저녁은 뭐 먹을래? 멧돼지 잡아올까?"
그리고 배에서 고개를 살짝 떼고, 조금 전 배방구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것마냥 저녁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카운터로 돌아간 애송이가 질렸다는 표정을 하고 있지만 뭐, 어쩌라고.
옷 아래에 고개를 박고 킁킁대다 못해 배방구까지 북북뿡 해버리는 거에 결국 메이사의 팔을 잡고 끌고 나왔다. 염소양한테 위협을 한 것도 거지만 카페에서 영능력을 쓰는 걸 사장이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더 무서웠고, 풍기문란으로 전기지짐이 당할까 그것도 무서웠다. 다음번 훈련을 분명 곱절로 주겠지, 망할 부전 아저씨가...
"하고 싶으면 집 가서 하면 되잖아 메이사! 저, 저기는 다 보는데 꼭 그래야 하냐고~!! 이 변태! 치O! 엣치치! 뱃살아저씨가!"
매도마다 메이사의 이마를 콩콩콩 쥐어박았다.
"네가 그렇게 대놓고 엉큼하게 구니까 다들 너랑 내가...!" "...그, 그거... 한 줄 알잖아..."
사실이라서 반박도 못하고, 이걸 어떻게 어른스럽게 넘기는 방법도 모르고 그냥 고개만 푹 수그려야 된단 게 부끄럽다. 난 말한 적도 없는데 사장이 귀신같이 알고 있는 것도 어쩐지 내 사생활을 다 까인 거 같아서 부끄럽다. 체력적인 것도 소상히 알고 있는 게, 어른들이 보기엔 이미 견적이 나오나 싶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뭔가 쌓여있던 게 왈칵하고 터진 기분이 됐다. 물론 이건 사춘기 특유의 불안정한 마음 탓으로, 메이사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를 둘러싼 주변이 너무 각박했기 때문이다.
"...메이사는." "너는 내 몸만 좋아하지?"
생각해보면 아니다. 몸이 목적이었으면 찾아오자마자 그냥 꿀꺽 잡아먹어버리면 될 일이지, 굶어가면서 꾹 참고 몇 달을 같이 지낼 필요가 없었지만, 요즘들어 몸도 마음도 힘든 나에겐 그런 사정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너한테 첫 키스도 뭐도 다 뺏겨버리고 이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넌 말로만 좋아한다 그러고 나랑 붙어있을 생각 뿐이잖아...!"
이를 꽉 깨물고 울컥울컥 솟는 두서없는 말을 억눌렀다. 사장이 쉴새없이 쏟아내는 편견어린 말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요괴랑 너무 오래 지내면 사람이 망가진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살 수가 없다, 사람은 사람 안에서 살아야 한다. 요괴들은 인간들과 어울리기엔 아직 한참 멀었다. 여우랑도 너무 깊게 지내지 마라. 그런 말들.
"이런 건 싫어..."
그리고 순영보로 먼저 집에 가버렸다. 메이사의 기분은 생각도 안 하고.
(*🙏🙏 뭔가 미숙한 유우가를 보여주기엔 이 에유가 최적이라... 잇기 힘들면 꼭 말해주시기...😉 꼭 유우가 쫓아가지 않아도 되고 카페에 죽치러 온 2다이랑 이야기하는 그런 방향도 있으니까요)
뱃살아저씨라니! 이제 여자로도 취급 안 해주는 거야!? 딱콩딱콩 이마를 맞다가 마지막에 살짝 태클을 걸고,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문제라고? 왜지?
"그치만 사실이잖아... 나쁜 것도 아니고." "—하아!? 그, 그,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아니라구??"
사실이잖아. 했잖아. 츄츄도 잔~뜩했는걸. 그리고 뭐, 염소는 둘째치고 그 애송이는 전생 유우가의 제자였고, 나랑 유우가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밖에 없었던 위치였으니까. 아마 내가 유우가랑 같이 있는 걸 보고 대충 견적 나오네 이딴 생각부터 했을 걸 저 음침○○○다치는. 뭐 그건 그거고. 그 다음 말은 전혀 이해가 안 됐다. 그, 그야 내가 많이 요구하긴 했지만... 그 그거언 요력의 보충이 필요해서 그런 거고, 유우가가 아닌 사람하고는 절대 싫은 것도 유우가가 좋으니까 그런 거지 유우가의 몸만 원하는 건 아닌데... 애초에 유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좋아하지 않는다면 유우가가 죽었을 때도 그렇게 난리치면서 마을을 괴멸 직전까지 몰아가지도 않았고, 신사에 봉인당할 짓도 하지 않았었다고. 유우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꾹 참지도 않았을 거고, 단순히 요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막말로 지나다니는 인간 아무나 잡아다가, 그것도 영력만 빨아가는 게 아니라 그냥 통째로 으적으적 씹어먹기만 해도 충분하다. 단지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인간이 미워 죽겠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유우가의 영력만 받아가기로 한 건 내가 유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다른 인간하고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랬던 건데.
"아니야, 난 유우가가 좋아서... 아...."
냉수 두 잔에 체력을 회복한 건지, 유우가는 등을 돌리고 저 멀리로 쌩하니 달려가버렸다. 이제 순영보도 잘 쓰게 됐구나. 애써 그런 생각을 꺼내보지만 이미 머리는 조금 전에 들은 말이 꽉 채우고 있어서, 그런 생각은 금방 튕겨져 나갔다.
귀도 꼬리도 추욱 늘어진 채로 터덜터덜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까부터 점거하고 있던 테이블에 털썩 엎드려서 '아무도 다가오지마 다 죽여버릴거야'같은 오오라를 잔뜩 뿜어냈다. 유우가한테 미움받았어. 어쩌지. 지금이라면 다시 살생석도 될 수 있을 거 같아....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하고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것 같아... 그치만, 이렇게 전생의 기억이 없는 유우가는 처음이고, 그 전까진 항상 기억이 있었으니까... 굳이 사랑한다 좋아한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이, 이, 이번엔.. 이젠 어쩌지???
".........하아아아.... 유우가아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애송이가 뭐라 불평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냥 무시했다.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겠지.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고민에 비하면 정말 개미 발톱만도 못한 가치일테니까.
"어라라~ 이게 누구야, 대요괴씨잖아~ 껌딱지는 어디다 떼어두고 혼자 있어? 헌팅해도 돼?" "아니아니 농담, 농담이니까 그렇게 보지 마! 알고 있다구, 그 꼬맹이가 혼자 쌩하니 가버렸단 거 정도는."
그래도 내 알 바 아니겠거니 하며 아샷추나 먹으려 들어왔더니, 여우가 여기서 궁상을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둘이 좋아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싸울 시기가 된 모양이다. 그야 그렇지. 요괴는 기본적으로 인외, 인간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 지금껏 요괴를 배척하지 않았을 거다.
"자자, 유진 하워드 씨의 고민상담 코너를 열어줄테니까 마음껏 말해보라구. 조금 엣치치한 이야기에서부터 사람 죽였다는 고해성사까지 취급한답니다. 아, 참고로 한 시간 삼천엔이야."
내 몫의 아샷추와 헤카땅 몫의 바닐라라떼, 그리고 여우쨩이 자주 마시는 녀석 하나를 여우쨩 이름 앞으로 달아놨다. 그리고 선심쓰듯 제공했다. 응? 약은 거 아니냐고? 아뇨아뇨, 유우럽식-구태여 말하자면 독일쪽이려나-대접이라고.
"그나저나 둘이 식성이 닮았네. 미즈는 요괴도 아닌데. 예전부터 바닐라라떼만 먹더라고? 애기 입맛 특인가, 바닐라 좋아하는 거."
염소가 덜덜 떨며 음료 쟁반을 내려놓는 거에서 미묘한 부분을 캐치했다. 물론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우연의 일치겠거니 하고 넘겼지만.
"자자, 그래서 고민이 뭐야? 늙은 대요괴는 상상도 못할 MZ 인간의 마음으로 다 해설해드리겠다고요~"
그렇게 내가 좌판을 깔고, 바닐라라떼에 녹아내린 여우가 입을 달싹거리자, 저쪽의 사장도 염소도 헤카땅도, 심지어 손님처럼 이야기를 나누던 뭇 마술사들도 귀를 기울이는 게 보였다. 소년은 알려나, 영능력계의 많은 인사들이 둘의 사소한 사랑싸움을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는 거. 그만큼 이레귤러라는 건데... 정작 이 둘은 그런 자각이 전혀 없어보인단 말이지.
뻘하지만 이름 찾다가 시간을 다 허비했네요 🫠 어디다 설정 백업갱신을 해둬야겠어요... 2다이의 일본네임은 아야세 유우 서양이름은 유진 하워드라고...
그리고 정말 소소하게 생각하고 있는 잡설정이지만 🫠 서양권에서는 magickian 마지키안, 보통 마술사, 그들이 쓰는 건 마술, 마나로 번역되고 있고, 이전에는 비하명칭으로 소서러(번:주술사)라고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 그래서 꼰대들은 동양권 영능력자들을 주술사라고 비하해서 부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양권에서는 도교와 선계의 영향을 받아서 도술사 음양사 주술사 등등 여러 명칭이 있었지만... 현대에 협회가 생기고 영능력자로 통합되고 있는 추세라고 생각해요. 예외로 요괴들은 여전히 요괴, 그들이 쓰는 건 요술과 요력으로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2다이가 마술사라고 말하는 건 좀 서양권의 명칭을 버리지 못하는 백인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유우가가 꿋꿋이 영능력자라고 말하는 건 멧쨔도 포용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거다...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어요 아다치 사쵸는 서양마술계와 활발히 교류하던 시기 사람이라 마술사/주술사를 혼재해서 쓸 듯 하네요. 공적인 자리에선 영능력자라고 합니다. 물론 요괴한테는 짤없이 요력쓰는 요괴놈들이라고 하는 꼰대고요 🤔
협회에서 영능력자라는 명칭을 미는 건 그게 기전이 다른 여러 오컬틱한 능력을 포용하는 말이기도 하고, 요괴들도 포용할 수 있는 말이라서 그런다...라는 설정입니다. 요즘 영화에서 인종다양성을 추구하고 포용할 수 있는 대명사를 쓰는 거랑 비슷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요괴는 현실에서 흑인같은 취급이 아니려나 싶네요 🤔 출중하고 특출나지만 좀 범죄자로 인식되는 거랑 비슷한...
물론 이건 제가 이렇게 적어놔야만 기억을 해둘 거 같아서 쓰는 거고 멧쨔주는 굳이 신경 안 쓰셔도 되는 부분입니다 😅 제가 어반판타지를 좋아해서 자꾸 이러고 말이 많아지네요...
히히.. 그러면 내일 답레를 기대하면서 두근두근 잘 수 있으니까 오히려 좋아입니다 😋 2다이는 저렇게 말해놓고 헷쨔랑 아무 것도 안했을 거란 점이 웃긴wwwwwww 아이보랑 생기는 미묘한 애착관계와 연정같은 거를 알겠냐고wwwww 물론 순애충이니까 유우가한테는 절절히 공감하겠지만...😏
그리고 원본 유우가는 자기랑 자기가 인정한 녀석은 음양사 나머지는 주술사나부랭이 정도로 부르는 광오한 타입일 거라고 생각해요 🤔 거의 일본 은거 3짱 정도로 살았으니까 그렇겠지....... 메이사는... 바보여우 멍청이요괴 치O O골 정도로 부르다가 종종 🥺 메이사... 할 거 같은 느낌 메이사 없는 자리에서는 가끔 내 여우라고 할 거 같아요 😏
히히히...😏 DV해서 밉고 싫은데 정기 달라고 낑낑캥캥해야만하는 멧쨔를 생각하니까 행복해요 이걸 위해서 유우가가 재림한 거겠지... 그리고 벌써 두시 반이니까! 저희 슬슬 자러 가죠! 그리고 내일 느긋이 아침먹고 점심부터 일상핑퐁하는 겁니다 히히... 완전 퍼펙트한 주말 계획같지 않나요? 🤤
저는 그런 고로 슬슬 자러 갈게요 😌 멧쨔주도 푹 쭘시고 좋은 꿈 꾸시길... 앵바앵밤입니다 👋
해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조잘조잘 떠드며 자연스럽게 합석하는 녀석을 보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하지만 그 옆의 미즈라고 하는 녀석은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라고 할지, 냄새라고 할지... 이것저것 섞이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냄새 아래에 짙게 깔린 그 무언가에서 그리운 느낌이 났다. 똑같이 바닐라라떼를 좋아하는 것도 조금 신경쓰였고. 그래서 잠시 킁킁거리다가 그만두고, 유진인지 유전인지 하는 놈을 지- 하고 노려봤다.
"흥, 시간 당 삼천엔이라. 그건 네놈 목숨보전비로 달아놓도록 해라." "......하아아아.... 유우가가 말이지—"
그리고 시작된 대요괴의 한탄쇼. 구구절절 나오는 이야기는 사이사이에 쓸데없는 꼰꼰꼰꼰대적 사고방식과 고댓적 인간들을 그냥 발 달린 고기자루(...)정도로 취급하던 대요괴 여우적 사고방식이 섞여있긴 했지만 요는 그거였다. 난 유우가가 너무 좋고 사랑하고 유우가 말고는 아무도 필요없고 오직 유우가만 보고 살아왔고 유우가가 죽으면 환생할 때까지 수절도 하며 기다렸다가 환생하면 그 즉시 채가서 잔뜩 사랑하고 유우가를 도와주고 그래왔는데 유우가도 항상 그래왔고 익숙할 텐데 이번 생에는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다 이런 건 처음이라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라는 것.
주변에 귀 기울이고 있는 놈들은 나중에 다 삼켜버릴까, 그런 생각도 좀 했지만 그건 굳이 입으로 꺼내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주절주절 쏟아놓고나서, 바닐라라떼가 든 잔을 들고 쭉 들이켜서 원샷을 때렸다. 커피라는 것의 쌉싸름함과 시럽의 달콤함, 그리고 우유의 고소함이 섞여 불타던 속을 좀 진정시키는 것 같았다.
"크하아! 어이 염소! 한 잔 더!"
빈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기 무섭게 추가 주문을 던지고, 다시 이상한 녀석과 미즈를 본다.
"...뭐 대충 그런 일인게다. ...유우가가 저러는 건 처음이라, 어찌해야할지... 이, 이, 이게 말로만 듣던 반항기라는 녀석인가...! 나, 나는 대체 어찌해야...."
우리 아이가 반항기라니!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이의 반항기에 쩔쩔매는 엄마라도 된 것처럼 귀를 푹 숙여선 두손으로 꾸욱 잡았다. 으으으, 유우가아아아....
히히... 요괴 될락말락한 여우시절에 유우가가 도와줬다는 망상을 하게 되네요🤭 은혜 갚으려고 열심히 노력해서 요괴가 됐는데 원시 유우가가 먼저 죽어버려서 🙀먓!? 이 이 이럴수가? 인간은 너무 빨리 죽잖아!!! 하고 환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환생한 유우가(음양사)앞에 팟 나타나서 😼은혜를 갚으러 와줬다 인간!!이라고 건방지게 말했다가 참교육 당한다던가...으히힉... 망상이 안 멈추는.....
"그러니까 여우씨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이런 거잖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우가밖에 없었고 유우가의 평생을 독점해왔고 유우가도 날 좋아하고 나도 유우가를 좋아하지만 안 그런 척 하면서 살아오다가 결혼하기로 했을 때 인간놈들에게 통수를 맞았고? 환생한 유우가를 겨우겨우 찾아가보니 기억도 없고 결혼은 영문도 모르고 잡아먹어주지도 않아서 꾹 참아왔는데 내 마음은 알아주지도 않고 반항하고 있다... 라는 거."
듣는 동안 아샷추를 거의 다 마셔버렸다. 쿠르륵 하는 빨대 소리를 내며 얼음물만 빨아마시다가, 결론지었다.
"그 유우가란 녀석도 만만찮게 이상한데?" "아니아니아니 대요괴씨는 모르겠지만― 난 어디까지나 수명 백년의 평균적인 인간을 상정하고 말하는 거라고?! 들어봐봐!"
"동양에서는 몰라도 서양에서는 그렇게 환생하는 건 거의 편법에 가까워. 보통은 재능이 사라지진 않으니까 나이가 들며 차츰 자기 전생을 꿈이든 계시로든 알게 되는 거에 가깝다고. 근데 듣자하니 그 유우가라는 녀석은 지금까지 이상한 방식으로 환생해온 거잖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쨘, 하고 기억도 능력도 유지한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오다니. 인간 육체의 이치를 벗어난 거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대 인간이 요괴랑 붙어먹는 건 너희가 말하는 선계 녀석들을 척지는 지름길인데 그걸 몇백년이고 해왔다는 건 선계를 무시해도 될 정도의 실력자라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로 말하자면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퍼ㄹ―"
찰싹, 하는 소리가 났다. 헤카가 내 뺨을 때린 거다. 얼떨떨해하고 있자니 말했다.
- 츳코미, 성공적.
이 나라의 문화를 딥러닝해서 번역 품질을 올리라고 지시했던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멍청하게 뺨을 잡고 헤카를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뺨이 무진장 아프네. 헤카한테 맞으면 이런 기분이구나...
"크흠, 아무튼 그 녀석의 석연찮음은 둘째치고. 우리가 늘상 해오는 통상적인 방식의 환생을 한 거라면 말이지, 나는 그 소년이 무척이나 이해 가." "한창 이성교제에 관심있을 체리보이를 덥썩 보쌈해가서는 자기 좋을 대로 죽기 직전까지 정기를 빼가다가, 어느 날 자기한테 질려버리면? 너 때문에 이제 일반인의 삶을 살긴 글렀는데,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훌쩍 떠나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어?" "미안 유우가, 나 역시 어설픈 소년은 싫어... 이전의 너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듬직한 유진 씨랑―"
찰싹.
"큼큼, 아무튼 그렇게 되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을 거라고. 네가 치O여우이기 때문에 상상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뻔하지. 여우 너 소년이 탈진 직전일 때면 늘 '오늘은 여기서 끝이야?' 라거나, '부족한데...' 같은 티를 냈을 거잖아. 오래 굶었으니까." "내가 그 소년이라면 말이지, 네 식성을 다 충족시키지 못해도 너랑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어떤 로맨틱한 증거를 원할 거라고. 가령..."
- 죽여줄게. "뭔소리래?! 지워 헤카땅! 그런 거 지우라고!!" "아―무―튼, 좀 좋아해라거나, 사랑한다던가, 그런 걸 그냥 담백하게, 손을 꼭 잡고서 눈을 딱 마주보고, 마음이 잘 전해지게끔 듣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라고. 그 나잇대 소년이기 때문에 더더욱."
"하아? 몇 년 지나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나는 이래보여도 네놈의 선조의 선조의 선조의 선조의 선조... 음.. 아무튼 아득히 먼 옛날부터 살아온 존재니까. 유우가가 환생하는 텀은 대충 200~300년이었단 말이다. 그래도 어디서 퍼질러 자거나 놀거나 하면서 보내면 후딱 지나가긴 한다만... 그리고 이번엔 100년 정도긴 했지. 아무튼."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이상한 놈 얘기처럼 석연찮은 구석도 있긴 하다. 기억과 경험을 그대로 지니고 환생한다는 것.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라 매번. ....전생의 기억이 없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정도니까. 어쩌면 이게 일반적이고 그동안은 유우가가 뭔가 손을 써뒀던 걸까? 아주 초창기에 뭔가 들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땐 인간들 주술따위 하급하고 제대로 써먹지도 못할 것들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라 귀담아 듣지도 않았었고. 으음. 이럴 줄 알았으면 잘 들어두는 건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철썩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아니. 그거 츳코미가 아니라 그냥 냅다 뺨 갈긴 거니까. 보통은 뒤통수를 친다고.
"끄응.... 지, 질리지 않는다구우... 질릴 리가 없잖아. 유우가인걸." "그리고 농담이래도 그런 소름끼치는 예시는 들지 말라고...."
찰싹, 헤카가 때린 뒤엔 나도 꼬리를 뻗어 헛소리를 중얼거린 녀석의 머리를 퍽 쳤다. 흥, 꼴 좋다.
"윽... 그, 그래도 나름대로 잘 참았다만..." "....에우....."
손을 잡고 마주보고서 그, 그렇게 말하라니.... 그런, 그런 건... 지금껏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항상 츄츄하기 직전이나 내가 일방적으로 끌어안고 유우가아💕하긴 했어도 그, 그렇게는.... ....그렇게 하는 걸 상상만 해도 얼굴이 새빨갛게 터질 것 같아졌다. 전생을 통틀어서도 한번도 해본 적 없고, 이번에도 해본 적 없는데... 그, 그건... 그런 건....
"그... 그건.... 그런 부끄러운 짓을 어떻게 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두손으로 뺨을 감싼다. 으으, 엄청나게 뜨거워졌잖아아.... 염소 빨리 바닐라라떼 리필 가져오라고오오....
퍼질러 자거나(농장에 굴러들어온 바위가 돼서 그 지역 농사를 오랜 기간 망침) 놀거나(산의 맹수들 기강을 너무 잡아서 먹이사슬을 망침) 하면서 2~300년을 보냈겠지.
...환생을 왜 그 정도로 오래 하지? 통상적으로 마술사들은 육이 쇠해서 영혼만이 남게 되거든 혼이 닳을 때까지 영적인 공간에서 수련하거나 영존재들과 소통하다가 아래에서 몸이 준비되면 내려가는 편이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한달까. 그걸 방해하는 거대한 영사회의 존재따위는 없다. 반면 동양권에서는 선계라는 거대한 영존재들의 사회가 권위를 갖고 체계를 가져서, 환생에도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것으로 안다. 풍토와 정서의 차이 때문에 요괴가 판치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 그 유우가라는 마술사가 선계의 눈을 피해 뒷길로 환생하느라 그런 거라면? 자연적인 루트는 선계가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눈을 속이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 거라면 어떨까.
조금 다르지만, 우리쪽에서도 몇몇 사례는 있어왔다. 기억과 능력을 전부 잃고 새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영손실이 두려운 거지. 0살부터 100살 내내 훈련하면 더 큰 능력을 가질 수 있는데, 기억 없이 인간 틈에서 살다가 회사원으로 취직하고 흘러흘러 살게 된다면? 50살에나 마술사로서의 자각을 하게 된다면? 훈련을 해도 전생의 자신보다 못한 능력만을 가지게 된다면? 그런 공포를 가진 선대 마술사들이 영혼이 갈려가며 실패해왔다.
...고작 한 명의 개인이 그럴 수가 있다고?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다 못해 불가능에 가깝지. 그러니까 이 의혹은 말하지 않도록 하자. 인간의 환생 텀이 기본적으로 100년 정도고, 2~3백년은 명백히 이상하단 걸 이 여우가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이 둘이 서로의 외도를 의심하면서 분열하는 것보다, 협회의 골칫덩이로 존재해주는 게 내 목적에는 더 부합한다. 이 진실을 함구하는 건 머리를 때린 데에 대한 복수...라고 하자.
"아니, 너네 결혼하자 했다며? 그러면 그 전에 사랑한다 좋아한다 너만을 영원히 사모한다 뭐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했을 거 아냐." "설마... 안 했어?"
- 윳 유유유유우가사마는 그런 말 아, 안 하실 분일걸요...
덜덜 떨면서 바닐라라떼와 아샷추를 갖고오는 염소. 무슨 자동리필기같다. 임금체불 당하고 있으면서 왜 이리 성실할까.
- 유우가 사마는 고, 고압적이구 오만한 제왕의 자질이 있으시니까 그 그런 범인같은 말은 하지 않으실 거라고 새 생각해요 힛히히... - 저, 저한테는 느껴져요 지금은 모르시지만 그 안에 잠들어있는 고슈진사마가 힛히히히후... 후히힛...
"그, 그런 건 안했어...." "어느 쪽인가 하면.... 치고받고 싸운 게 시작이었던가. 내기를 했던가... 엄청 옛날이라 가물가물하네."
슬슬 목이 타는데, 싶은 순간 염소가 바닐라라떼를 들고 왔다. 흐흥~ 역시 고분고분하면 좋구만. 그리고 염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만한 음양사. 유우가를 표현하기엔 딱 좋은 말이다. 아, 물론 전생의 유우가 말이다. 지금은 좀 다르지.
근데 염소 이자식 왜 이렇게 음흉하게 웃지? 아까 유우가가 염소한테 잘해준 것도 그렇고. 너네 혹시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지? 그렇기만 해봐라. 당장 염소고기로 만들어서 저 옆에 하천에다 던져버릴거니까.
"하여간 그런 낯간지러운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어. 그냥 치고받고 싸우다보니 정들고 그랬던 거지. 뭐, 나 정도 되는 대요괴가 아니면 그런 오만방자한 녀석 받아주는 여자도 없었겠지!" "애초에 혼처랍시고 마을에서 들고 오는 것도 전부 그 녀석을 묶어두기 위한 족쇄나 다름 없었지만. 하, 인간들이란. 밥먹고 잔머리 굴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겐지."
결국 자기네 뜻대로 족쇄를 차는 일도 없고, 그 상태로 백귀야행까지 쳐부수고 나니 환대한답시고 독을 탄 술을 먹여서는 유우가를 죽여버렸지. 망할 마을 녀석들. 이곳의 영능력자는 태반이 외부에서 온 녀석들이다. 애초에 이 마을엔 선조 대대로 살았다는 유서깊은 집안도 몇 없다. 유우가를 그렇게 죽인 놈들을 내가 거의 다 죽여버렸으니까. 유우가의 제자였던 저 애송이가 팔 하나를 버려가며 필사적으로 방해해서 전멸까진 못 시켰다만. 카운터에 있는 애송이를 노려보다가 흥,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흥, 뭐 이런 얘기까지 꺼내게 하고 있어. ..이봐 염소. 케이크도 가져와."
짜증나는 걸 기억해내서 기분이 나빠졌다. 아, 이럴 땐 역시 단 걸 먹어서 리셋해야지. 그나저나 현대의 이 디저트?라는 것들은 굉장하다니까. 예전에는 꿀이나 잘 익은 감 정도가 단맛의 최대치였는데, 요즘은 그 정도는 우습다는 듯이 단맛이 그득하고 가득한 것들이 정말 많다니까. 이 커피라는 것도, 시럽을 넣어서 얼마든지 달게 만들 수 있다니 최고라고!
느껴진다... 가정폭력의 냄새가... 성격 만만찮은 여자랑 그 녀석을 휘어잡는 인자강이...... 아, 연관되기 싫어졌어. 이런 걸 너무 오래 접하면 정상적인 연애를 못하게 된다...
"백귀야행... 그러고보니 들어봤어. 불온한 요괴들의 행렬이랬던가. 이번에 협회 차원에서 토벌지원사업을 펼칠 정도로 경계하던데.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 백년? 백이십, 년? 그 전쯤요... 여, 여기서요...
째릿 노려보는 여우에게 겁을 먹은듯 쟁반을 꼬옥 껴안고 도망치는 염소.
"그게 백년 만에 다시 돌아오다니 어지간히 불온한 지역인 모양이네 여긴~ 난 백귀야행 시즌이 되기 전에 빠질란다."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말해보자면, 여우씨 당신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접할 일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말이야. 지금의 유우가는 이전의 오만방자하던 유우가씨랑은 다르다고." "평범하게 태어나서 소학교 중학교를 나오고, 애들이랑 축구하는 게 일상의 행복인 녀석이 오만해봤자 얼마나 오만하겠어? 공부를 잘하게 생긴 것도 아니던데." "예전처럼 널 찍어누르는 거로 음험하게 좋아할 녀석도 아니거니와, 그런다 하더라도 지금은 순진해 빠져선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에 헤롱헤롱이 될 나이라고. 나도 사춘기 땐 그랬었지~ 좋을 때야."
찍어누르는 거로 음험하게 좋아한다... 내가 말하고서도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지만, 아직 구체화 하기엔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 그, 그그 여우 씨이... 케, 케이크는 제가 먹어야 해서 안되구... - 대신 멋, 머핀 갖구왔어요...
눈치없는 폐급 띨띨이를 여우가 구박해대는 걸 보다가, "아무튼 한시간 끝났으니까 난 간다~" 하고 카페를 나왔다.
유우가는 유우가인데, 그럼 예전의 유우가도 이랬던 시절이 있었던 걸까.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내가 모르는 유우가는 낯설고 어색하지만, 몰랐던 부분까지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나아지는 것 같기도. 이상한 녀석의 충고를 듣는 건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지만, 뭐 어때. 오늘은 관대하게 멀쩡하게 돌려보내주는 김에 의견 참고도 해보지 뭐.
"하아? 그럴 땐 '제가 머핀을 먹을테니 위대하신 대요괴 메이사님은 부디 이 케이크를 드셔주십시오'하고 가져와야할 것 아니냐고!!!"
조금 나아지던 기분은 케이크 못주고 머핀 먹으라는 염소의 말에 와장창 박살이 났다. 염소에게 삿대질로도 모자라 멱살을 쥐어잡으며 뭐라고 하는 사이에 이상한 녀석과 그리운 냄새가 나는- 미즈인지 헤카인지 모를 녀석이 카페 밖으로 사라진다. 둘이 멀어지고 나서, 나도 염소의 멱살을 탁 놓았다. 그래. 여기서 이러고 있기보단 유우가한테 가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낫겠지.
"그럼 나도 이만 간다. 다음엔 케이크 넉넉하게 준비해놔. 홀케이크로."
집에 돌아와보면 현관엔 유우가의 신발이 있었다. 어딜 나가진 않은 것 같다. 나갈 체력도 사실 안 남아있겠지만. 슬그머니 거실을 지나 유우가의 방 앞으로 다가가면,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바로 열고 들어가거나, 잠겨 있어도 그냥 힘으로 열고(?) 들어갔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가볍게 주먹을 쥐고 노크를 했다. 너무 힘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서. 문을 부수면 완전 역효과가 날 것이 분명하니까.
"...유, 유우가아... 들어가도 돼...?"
그리고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일부러 내려던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온 거지만. 귀와 꼬리가 나와있었다면 그야말로 축 처져서는 끼히잉...하는 효과음까지 붙어있을 그런 모습이었다. 이런 한심한 모습 유우가가 아니면 절대 보여주지 않으니까...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갈기고 침대에 누웠다. 몸이 천근만근이고 안 아픈 곳이 없다. 그렇게 노곤한 몸에 져서 눈을 살짝 감았다가... 똑똑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눈을 떴다. 아직 커튼 사이로 빛살이 들어오고 있는 걸 봐선 오래 잠든 것 같지는 않았다.
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저녁 6시 정도. 부모님은 주말을 맞아 둘이서 식사하고 올테니 형제들끼리 알아서 먹으라는 톡도 와있었다. 늘어져라 하품을 하다가 결리는 몸을 끌고 문으로 다가갔다. 손잡이를 당기자마자 보이는 처량한 얼굴에 움찔한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메이사를 두고 혼자 와버렸었지. 고단해서 완전 잊고 있었다. 얼굴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무슨 일이야...?' 라고 물을 뻔 했지만, 아까의 일이 있으니 가만히 있었다. 마음이 좋진 못했다.
이런 때에 어떻게 대해야 하지, 친구도 많지 않았고 싸우지도 않은데다 화해도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있었어도 몰랐겠지. 같이 사는 여자애한테 '너는 내 정기만이 목적이지' 라고 일방적으로 화내고 도망쳐온 다음에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이 나잇대에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아 젠장, 떠올리고 보니 너무, 너무 애같은...! 젠장, 애도 아닌데. 얼굴이 다시 화끈해지는 것만 같다.
"배고파? 내려갈까?"
그래서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메이사를 지나쳐 복도로 나섰다. 2층 복도는 어두웠고, 1층에는 누나가 있는지 거실의 훤한 빛이 계단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가다보면 이 얼굴도 가라앉으려나. 밥까지 먹고나면 이 어색한 것도 좀 사그라들겠지. 그러면 다시 전처럼 대화할 수 있을 거다. 아마.
유우가, 괜찮나... 아까 화내고 가버린 모습이라던가, 이상한 녀석이 말해준 거라던가.. 이것저것이 머리에서 뒤섞여서 쉽게 말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바보같은 대답을 해버린 채로 유우가를 보면, 유우가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서 복도로 나섰다. 복도는 어두워서, 그리고 유우가가 빠르게 스쳐지나가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화가 난 걸까. 내가, 유우가의 정기만 원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유우가, 잠깐만...!!"
어쩐지 이대로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어서 유우가의 팔을 살짝 붙잡았다. 지, 진짜로 살짝. 살짝이라니까? 사실 뭐라고 말해야할지도 머리 속에서 정리가 안 됐지만, 그래서 횡설수설 할 것 같지만... 일단 입을 떼었다.
"아, 아까... 카페에서 그렇게 해서 미안해...." "그치만 나 유우가의 몸만 목적인 건 절대 아니니까... 그, 난, 유우가를 좋아해서 그랬던 건데... 미, 미안해...." "유우가를 좋아하니까 환생하는 것도 기다렸고, 유우가가 아닌 사람하고는 닿는 것도 싫고오, 그래서.. 저기..." "마, 말로는 잘 못했지만 정말로 유우가를 좋아해. 그러니까 이제 유우가가 싫어하는 일은 안 할테니까아...."
끼히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어느새 튀어나온 귀를 머리 뒤로 딱 붙이고, 유우가를 봤다.
"그, 그러니까아... 싫어하지 말아줘어...."
유우가가 날 싫어하게 되면 난 견딜 수 없을 거야.. 너무 슬프고 괴로워서 미쳐버릴지도 모르지. 상상만 해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쥐고 있던 유우가의 팔을 슬쩍 놓고 내 눈가를 꾹꾹 눌렀다. 우우, 유우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