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지막 날, 아마노하시다테. 교토에 있는 내내 심기가 불편해 보인 메이사였지만 마지막 날은 특히 심했다. 뭐랄까, 심한 생리통을 내내 참고 있는 것 같은 것이 있었다. 단순히 심기가 불편하다 정도가 아니라, 쿡쿡 쑤셔오는 뭔가를 내색하지 않고 견디고 있는 듯한. 안색이 새파랗지는 않았지만 걱정돼서 미스미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메이사에게 갔다.
"배고파? 졸려? 피곤해? 커피 사줘? 아니면 버스에서 좀 쉴 거야?"
컨디션이 안 좋나 얘야말로 생리인가 싶어서 묻지만 또 무시당했다. 나한테서 벗어나려는 거처럼 빠르게 걸어가는 메이사. 이대로라면 놓치겠지 싶어서 어깨를 잡아당겼다.
"아프면 말을 하라고 이 아가씨야." - ......그냥 냅둬. - 상관 없잖아.
날 보지도 않고 하는 말, 어제 끔찍이 미안해하던 건 결국 잠시 뿐이었나 싶기도 하고. 며칠 내내 메이사와 씨름하는 거로 지쳐버린 나는, 푸후― 하고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어깨를 잡은 손을 놓았다. 마른 세수를 했다.
"그래, 상관없지." "미안하게 됐다, 담당도 뭣도 아닌데 자꾸 참견해쌓아서."
그리고 돌아갔다. 미스미에게로.
버스로 돌아가보니 메이사는 이미 좌석에 눕다시피하고 쿨쿨 자고 있었다. 에어컨을 많이 쐬어 그런지 몸이 차고, 머리를 기대지도 못해서 내 자리까지 침범해 풀썩 누워있었다. 그걸 픽 들어올리고 내 어깨에 기대놓고서 나도 한숨 잤다. 비몽사몽 정신을 못차리는 메이사와 우리 둘 몫의 짐까지 챙기고 다시 열차에 탑승하고 나니까 어느새 도쿄역.
잠이 덜 깨서 침울해보이는 메이사를 맨션까지 데리고 와서, 엘리베이터에서 슬쩍 말을 붙였다.
상관없다고 답한 너는 '여자친구'의 옆으로 돌아갔다. 아, 그야 당연하겠지. 지금 유우가에게 가장 소중한 건 저 사람이니까. 나는 그저 유우가가 츠나지에 두고 온, 그런데도 끈질기게 중앙까지 쫓아와서 귀찮게 구는 녀석일 뿐이니까.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진다. 멀리서 서로에게 무어라 말하고, 속삭이고, 웃는 모습을 보니 비참함은 1분 1초가 지날 때마다 점점 곱절로 늘어만 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분노도 함께 커진다. 중앙까지 쫓아온 나는 안중에도 없고, 다른 여자랑 시시덕거리는 꼴을 보고 있으니 속이 뒤틀린다. 날 버려두고. 버리고 갔으면서. 나는 그렇게 너만을 보고 있었고, 너를 위해서 달렸고, 너를 위해 무엇이든 전부 주려고 했는데. 나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그렇게 내버려두고서, 너는, 너는———
버스로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기억나는 건 그저 내내 손을 꽉 쥐고 있었다는 것 하나. 분노인지 다른 무언가인지 모를 감정으로 덜덜 떨리는 손을 펴보면 손바닥에는 손톱모양으로 깊게 패인 자국들이 가득했다. 약간은 쓰라리다. 하지만 이것보다도 마음 쪽이 더 쓰라렸다. 자국들을 알약으로 가리고, 생수와 함께 목으로 넘긴다. 약기운에 몽롱해지는 몸을 그대로 뉘였다. 눈이 감긴다. 어차피 실패할 걸 알지만 그래도 매번 하던 것처럼, 다시는 눈을 뜨지 않기를 바라면서 잠에 빠져든다.
중간에 깨우고 흔드는 덕분에 잠깐 정신을 차렸다. 그래. 또 운이 나빴던 모양이다. 어쩌면 꼴사납게 겁이 많아 또 적게 먹었던가. ...아, 수학여행이 끝난 모양이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약의 여운에 잠겨 축 처진 채로, 네가 이끄는 대로 걸어간다. ...어지럽고 외우기 힘든 도쿄의 길을 이리저리 지나, 조금은 익숙해진 주변이 보인다. 맨션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자 네가 뭐라고 말을 걸어온다.
"......"
대답 대신에 슬쩍 한 손을 주머니에 넣는다. 미적지근하게 체온으로 덥혀진 금속이 손끝에 닿는다. 이제는 쓰지도 않는, 필요도 없을, 츠나지에서 네가 지내던 집의 열쇠. 차마 버릴 수 없어서 그대로 중앙까지 가지고 왔던 그것의 끄트머리를 손끝으로 더듬는다.
"......재밌었어?"
주어가 없는 질문을 네게 던졌다.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우리가 내릴 층에 도착한 것이었다. 얄궂게도.
잠든 메이사는 얌전했다. 어깨에 가만히 기대서 죽은 듯이 자고, 가끔 끙끙거릴 때면 머리카락을 치워주고, 그러면 또 얌전해진다. 우마무스메가 아니라 소동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지. 늘 이래주면 같이 사는 것도 즐거울 법한데...
...아니, 메이사는 날 좋아하던 때도 얌전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지. 한시라도 조용히 있을 수 없는 녀석이었으니까. 내가 너무 큰 걸 바랬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아주 순탄했고, 메이사를 어깨에 받친 채로 바라보는 열차 바깥의 풍경은... 운치가 있었다.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잠이 덜 깨서 얌전한 메이사가 물었다. 재밌었느냐고.
"재미? 글쎄다. 그냥 일이지 뭐. 애초에 관서에서 좀 큰 대회 있으면 다 교토 아니면 오사카여서 난 그냥 그랬어." "애초에 작년에도 일하면서 갔다온 데고..."
...그래도 완전 일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골칫덩이 누구씨 때문에 일이 많이 늘긴 했지만 도와준 것도 사실이고. 애초에 누구씨의 수발을 드는 건 집에서도 늘 하던 일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한숨 푹푹 찌던 게 바로 엊그제건만 픽하고 웃음이 난다.
"...뭐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았는데."
도착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드르륵, 캐리어와 짐을 들고 나섰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메이사는 얌전할래야 할 수가 없는 녀석. 그 녀석이 죽은 듯이 자고 잠이 덜 깬 채로 내가 오란 대로 따라오고, 눈만 끔벅이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의심했어야 했다. 뭣보다, 메이사가 얌전하면 도리어 그 속은 지옥불구덩이가 되어간다는 거. 그걸 잊어서는 안 됐었다. 시니어 시즌, 우리가 얼굴을 본 마지막 날이 꼭 그랬지. 기묘하게 적막하던 때. 그 속에는―
하지만 나는 그저 돌아보며 물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훤한 전등을 받아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메이사에게.
작년에도 왔었다는 말에 저절로 그려진다. 작년엔 나도 없었으니 더 즐거웠겠지. 내가 없을 때, 너는 그 여자와 즐겁게 보냈을테니까. 내가 너한테 버려져서 방 안에서 썩어가고 있었던 그 때도. 열쇠의 끝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조금 고쳐잡았다.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그랬겠지. 즐거워보였으니까. 둘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을 고른 거잖아. 캐리어를 끌고 있는 네 손에 낀 반지랑 같은 걸 끼고 있는 그 사람을. 시니어 시즌에 그렇게 갖고 싶다고 졸라도 다음에, 내년 생일 지나면, 그렇게 차일피일 미뤄지던 걸 너무나도 쉽게 끼고 있는 그 사람을. 고쳐잡은 손을 꽉 쥔다. 아, 어쩐지 예전 생각이 난다. 그때는 뭐였더라. 내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만 집 열쇠를 줘서, 그걸로 울컥한 내가 너를 찌르는 척하며 열쇠를 넘겨줬던가. 과거를 상기하며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때맞춰서 네가 '안 내려?'라는 말을 던졌다. 그 말을 잡아 돌려주는 일 없이, 한발짝 앞으로 나아간다. 문가에서 버티고 있던 내가 사라지자 엘리베이터에서는 무미건조한 안내음이 나온다. 문이 닫힙니다—
성큼성큼 다가간다. 레이스를 그만뒀어도, 우마무스메가 히또미미보다 빠른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네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나는 예전처럼, 너에게 가까이 따라가 붙었다. 어느샌가 주머니에서 꺼낸 손에는 잘 벼린 칼이라도 되는 것처럼 쥐어져 있었다. 훅 가까워진 너를 향해 그대로 손을 뻗었다. 나를 봐달라고 잡는 것이 아니라, 고쳐 잡은 열쇠가 흉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대로—
—너의 배에 열쇠 끝이 닿는다. 옷과 살의 감촉, 더 이상 파고들면 안 된다고 저항하는 듯한 그 감촉을 무시한 채로, 우마무스메의 완력을 담아 그대로 쭉, 밀어 붙인다. 쭉, 쭈욱.
그리고 푸욱.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멈췄던 예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있는 힘껏 찌른다. 시야 가득히 네 품이 들어오고, 익숙했던 담배냄새를 대신하듯 비릿한 냄새가 섞이는 게 느껴진다. 열쇠를 쥔 손에는 뜨듯한 것이 왈칵, 고동을 따라 솟아나는것도 느낄 수 있었다.
기이했다. 사람을 찔렀다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나 뒷수습에 대한 생각은 뒷전이고, 어쩐지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정말 어째선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때보다도 우리는 가까워져 있었다. 그 사실에 기묘한 환희와 벅차오르는 듯한 감동이 느껴진다. 지금껏 내민 손은 전부 거절당했었는데, 지금 내민 손은 어쩐지 네가 잡아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 어쩌면 나 정말로, 머리가 이상해졌을지도. 불안인지 공포인지 기쁨인지 황홀경인지 모를 뒤죽박죽이 된 감정에 덜덜 떨리는 손을 한층 더 깊숙히 박아넣는다. 우린 이제서야 하나가 됐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멈출 수 없었다.
메이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다가왔다. 잠이 덜 깬 건 네 착각이라는 양 바닥을 딛는 다릿심이 묵직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복싱 중계였다면 분명 여기서 강렬한 스트라이크가 조만간 들이닥치겠지, 생각할 정도로 무겁게 딛는 걸음. 그 어색함을 느끼는 건 순간이었지만, 물러나기에는 늦었다. 아니, 메이사가 너무 빨랐다.
뭔가, 온다. 알면서도 당한다.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가 포착된다. 열쇠? 메이사가 열쇠를 가진 적이 있던가? 우리 집이 열쇠를 쓰던가? 아니, 맨션에는 도어락 뿐이다. 메이사가 열쇠를 가진 적이야 있다. 클래식 시즌의 끝무렵, 그리고 시니어 시즌 때. 내가 미처 수거하지도 않고 급하게 떠나버려서 열쇠 복사비를 추가로 냈어야 했던 기억이 순식간에 부상해 뇌에 꽂힌다.
그래, 메이사가 쥐고 있는 건―
꾸득, 꾸구국...
―내가 메이사의 담당 트레이너고, 메이사가 내 담당 우마무스메일 때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 내 공간에 들어올 수 있도록 조건을 걸고 내어줬던 것. 네가 날 좋아해서, 어쩌면 그런 용도로 쓸 수도 있다고 불길하게 생각했지만, 내가 메이사를 좋아해서 애써 무시하고 건넸던. 츠나지의 열쇠.
옷자락이 열쇠날에 말려들어간다. 애쓰는 완충작용에도 불구하고 열쇠는 나아간다. 나는 뒷걸음질 치지만, 메이사는 놓치지 않겠다는 양 더욱 다가선다. 결국 나는 우리 집 문에 콰당 부딪힌다. 텅하는 빈 소리가 요란하지만 아무도 복도에 나와보지 않는다. 열쇠는 더 물러날 곳 없는 배를 천 째로, 둔탁한 쇠첨으로 억지로 파헤치고 들어왔다. 온몸이 바짝 긴장하면서 식은 땀이 났다. 위기라고 직감한 몸이 피를 펌프질하고, 각성상태에 들어선 팔이 힘껏 메이사를 밀어내지만, 메이사는 멈추지 않는다.
"끅, 끄윽, 헉, 윽, 악......!"
안다, 사람은 이따위 짧은 물건에 찔린다고 죽지 않는다. 많이 봤다. 고작 양아치 싸움에 서바이벌 나이프를 꺼내들었다가 피칠갑으로 끝나버리는 일들을. 그러고서도 사람들은 잘만 살았다.
그러나 주마등처럼 오버랩된다. 메이사네 현관문을 등지고 키스했던 일이나, 내가 애써 밀어내도 강행하던 메이사를. 내가 널 많이 아껴서 더욱 끔찍했던 크리스마스들을.
그때처럼 뺨을 때리면 멈출까. 그런 생각에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손은 허공을 힘없이 가를 뿐이다. 결국은 메이사의 뺨을 갈기지 못하고, 중간에 힘이 빠진 채로 툭 부딪혔다. 그리고 감쌌다. 내 손은 이상하리만치 뜨겁고 메이사의 몸은 죽은 사람처럼 차갑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식은 땀이 머리카락과 엉켰다. 스며나온 피가 셔츠에 잔뜩 배어 몸에 거추장스럽게 달라붙었다. 허벅지가 후들거리다가 결국 미끄러졌다. 문에 겨우 기댔던 몸이 쿠당탕 차가운 맨션 바닥에 처박힌다. 내가 끌어안은 메이사도 같이.
몸이 계속 떨렸다. 아팠다, 아팠는데, 고작 이정도 아픔으로 이렇게까지 몸이 떨리진 않는다. 메이사를 껴안으면 이 떨림이 잦아들기라도 할 것처럼 꾹 껴안았다. 몸이 맞닿아서 두방망이질치는 심장이 더 크게 들렸다. 몸이 이상했다. 이상하다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내가 밀고 들어가는만큼 너는 밀어낸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껏 하나가 되고 있는데 마치 거절당하는 것 같아서. 또 다시 버려지는 것 같아서. 츠나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계속, 계속 날 멀리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더욱 힘을 준다. 밀고 밀어서 현관문에 등을 댄 네가 으스러질 정도로. 그래봤자 손에 쥔 것은 열쇠라서, 칼처럼 크지도 날카롭지도 않아서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어깨를, 팔을 힘껏 밀어내던 네가 결국은 손을 치켜든다. 무언가에 몽롱하게 취해있던 머리가 한순간 각성했다. 시니어 시즌의 마지막, 내가 참지 못하고 달려든 날에 네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눈을 질끈 감는다. 뺨에 곧 찾아올 거라고 각오했던 충격은... ...오지 않았다. 대신 감싸는 듯한 느낌이 들어 눈을 뜨면,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은 손이 내 뺨을 감싸고 있었다.
- 왜, 왜 이러는 거야.
그 물음과 함께 너는 그대로 넘어졌다. 네가 끌어안고 있던 나도 함께 맨션의 차디 찬 바닥을 구른다. 불덩이처럼 뜨거운 몸이 나를 끌어안는다. 그제야 열쇠를 쥐었던 손을 놓고, 나도 너를 끌어안았다. 마치 유성우가 내리던 그 날처럼 우리는 서로 부둥켜 안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바닥에 구르며, 내가 너를 찔렀다는 것. 계속해서 떨면서, 이상하다고 말하는 물끄러미 보다가 그대로 얼굴을 더 가까이 가져간다. 맞아. 이상해졌어. 네가 날 버리고 간 그날부터 난 이상해졌다고. 이건 전부 너 때문이야.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그대로 너에게 입을 맞췄다. 이렇게 있으니까 마치 그때같네. 클래식 시즌 크리스마스. 그때도 무작정 입부터 가져다 댔었지. ....결국 너는 없었던 일로 하자고 그랬지만. 아아, 그렇네. 이것도 결국 없었던 일이 되겠지. 그럼 상관없잖아. 어차피 없던 일이 될 거라면 뭘 해도 되는 거잖아.
지금 하고 있는 키스도. 열쇠로 네 배를 찌른 것도. 전부 없었던 일이 될테니까. 내가 너에게 뭘 하든 전부 없었던 일이 될테니까. 내가 너에게 가진 감정조차 전부 너한테는 없었던 일이 될테니까. 나는 너한테....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이 될테니까.
아, 또 비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이것조차 없었던 일이 될테니. 입을 떼어놓고, 나를 끌어안고 있는 너를 뿌리치고 일어섰다. 가만히 서서 그대로 너를 내려다 보고 있으니 그제서야 입을 뗄 수 있었다.
"..............잘 있어. 안녕."
그리고 그대로 뒤돌아서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이 시간엔 아직 인적이 드문 건지, 엘리베이터는 우리가 이 층에 도착했을때 그대로 멈춰있었다. 버튼을 누르고 열린 문으로 올라탄다. 1층 버튼을 누르고서는 계속, 문이 알아서 닫힐 때까지 쭉, 유우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안내방송과 함께 문이 닫힌다. 눈을 감았다.
메이사와 키스한 건 이번이 세번째였다. 크리스마스 때 한 번, 메이사가 멋대로 밀어붙여서 한 번, 그리고 열쇠가 찔린 채로 한 번. 하는 키스마다 번번이 최악이다. 메이사랑 하는 키스는 매번 아팠다. 힘이 잔뜩 들어가서 부드럽기는 커녕 뻣뻣했고, 서툰데 마음만 앞서서는 꾹 입술을 갖다대서 눌린 입술이 불편했고, 앞니가 부딪혀서 아팠다. 종종 깨물리기도 했다. 송곳니에 베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다. 연인끼리 꼭 끌어안고 체온을 나누며 해야하는 거일텐데, 너랑 하면 꼭 나쁜 짓을 저지르는 기분이다. 내가 못할 짓이라도 해버린 거 같다. 분명 내가 아니라 네가 갖다박았는데도.
이번 키스도 꽤나 아팠다. 하지만 왤까, 전보다 힘이 빠져서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이렇게 껴안고 있자니 어쩐지 편안하기도 했다. 어쩌면 출혈 때문에 점점 나른해지는 걸지도. 이대로 눌어붙을 것만 같은 기분일 때, 메이사가 품에서 빠져나왔다. 피에 잔뜩 젖은 셔츠에 바깥공기가 들어와서 서늘하다못해 싸늘했다. 손을 뻗어 옷자락을 거머쥐려 했지만, 나보다 빠른 녀석을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손은 허공을 쥐고, 메이사는 그게 줄 수 있는 전부라는 양 작별을 고했다.
묻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내가 암만 쓰레기처럼 굴었지만 받아주던 네가 왜 갑자기 돌아섰는지. 며칠 전만 해도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히죽 웃었으면서.
왜?
난 아직도 대답을 얻지 못했다. 내가 소독약 냄새에 흠뻑 젖어 있을 때도, 빈 집에서 현관문만 바라보고 있을 때도, 문 바깥에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혹시나 하며 기대를 걸 때도, 오지 않았다.
- 저기, 듣고 있어? "응." - 앞머리 좀 자르지 그래? 답답해보여. 그리고 이 츄리닝은 언제까지 입을 건데? "나중에." - 있지, 네가 마음이 싱숭생숭한 건 알겠는데 말이야. 일단 그것도 몇 달 전 일이고, 좀 털고 일어날 때 되지 않았어? 명목상으로는 네가 내― "그래, 때려치자. 가져가."
중지에서 반지를 빼서 미련없이 내밀었다. 미스미는 당황한 모양새였다. 거기에 괜히 더 열이 받아서 모진 말을 내뱉었다.
"니는 사랑한 적 없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몇 달 전의 일이니까 털고 일어나서 명목상의 관계, 계약 사항에 충실하라고 사람을 내몰 수 있는 거라고." "내 기분따위는 평생 모르겠지. 니는 맨날 그딴 식이니깐은. 사람이 쓸모있는지 없는지만 따져가 친해지고, 쓸모없으면은 금방 모른 체 해삐고 마 니는 글렀다. 내도 니랑 지내기 싫다 이젠. 질린다." "잔소리는 느그 사수한테 가서 해라, 내는 인제 모르겠다."
그렇게 트레센의 유일한 지인과도 절교해버렸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울릴 시간도 없었으니까. 매일 메이사를 찾아서 츠나지로 갔다가, 그 근방의 소도시를 갔다가, 또 휴양지로도 가보고 평생 연도 없던 SNS에서 메이사의 흔적을 찾느라고.
이번 주말은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에 가야 이 무력감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지. 소파에 누워서 배를 매만지다가, 문득 떠올렸다.
- 니는 사랑한 적 없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내가 사랑이라고 했던 건가. 무성애자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던 미스미의 속을 파헤치려고? 아예 컴플렉스를 헤집어놔서 절교를 하려고? 아니,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똑똑한 사람도 아니지.
그럼 나는 왜, 아니. 메이사를 좋아는 하지만. 그보다 나는... 가족을...
결국 밤을 꼬박 새워 고민하다가 아무데나 가는 기차로 몸을 실었다. 역무원에게 어디 편히 휴양할 곳 없느냐고 묻고, 나도 모르게 바깥쪽 좌석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다가, 내가 안쪽에 앉혀놓고 어깨를 내어주던 메이사가 없어서.
밖으로 나온 건 좋지만, 옷에는 핏자국이 가득하고, 당장 집을 빌릴만한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옷가지도 전부 두고 나와서 당장 걸치고 있는 것과 핸드폰이 소지품의 전부. 지갑조차도 가방 안에 넣어놨고, 그 가방은 유우가의 옆에 뒹굴고 있을테니 가지고 오는 것도 무리. 츠나지로 돌아가야하나, 하지만 돌아가기가 무서웠다. 사람을 찌르고 멀쩡하게 돌아가도 되는 걸까, 하는 것도 있지만... 지금 돌아간다면 츠나지에 남아있는 추억들에 짓눌려 부서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대로 비틀거리며 정처없이 돌아다니다 공원에 도착했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다보면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츠나지를 떠날 때, 마마가 조심스럽게 건네준 쪽지에 적혀있던 연락처. ...아마 할머니..정확하게는 외할머니겠지만, 어쨌든 할머니의 연락처였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누른다. 신호음을 들으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입 안에서 말을 정리해보다가 풋 웃음이 나왔다. 얼굴도 모르는 가족에게 처음으로 전화하는 게, 이런 일 때문이라니. ....진짜 이상하지.
그것도 벌써 몇 달 전의 일이다. 그렇게 연락이 닿은 할머니— 마마의 친가는 생각보다 엄청난 곳이었다. 어째서 츠나지에서 작은 밥집 하고 있는 건데!? 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진짜 눈이 돌아갈 정도로 부잣집이었다. 뭐어, 왜 츠나지로 갔는지라던가 이런저런 사정은 할머니에게 전해들었으니 지금은 알고 있지만. 안 그래도 슬슬 마중을 보낼 생각이었다던가, 좋은 선자리가 많이 들어왔다던가 하는 말도 충격적이긴 했지만. 아마, 마마도 이래서 쪽지를 줄 때 얼굴이 그리 좋지 않았던 거겠지. ....그래도 당장 나에게 필요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고, 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 도착했어, 어때? 괜찮은 곳이지? ".......그러네요."
도움을 받은 만큼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그런 의무감으로 맞선 상대들의 사진을 보다가, 유우가랑 비슷한 얼굴인 사람의 사진에서 손을 멈췄었다. 그걸 놓치지 않은 할머니의 주선으로 만나게 된 그 사람은 역시, 유우가랑은 달라서. 무심코 '네가 아니야'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억지로 웃었다. 찌른 사람을 이제와서 그리워하고, 어차피 없던 일이 되었을 감정을 아직도 품고 있는 내가 바보같아서, 조금은 진심으로 웃었을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만나다 보면 좀 괜찮아질 거라고, 할머니도 그렇게 말하셔서. 억지로 쥐어짜내는 웃음과 함께 몇 번이고 만나는 사이에 알게 됐다. 괜찮아지긴 커녕 더 심해지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짜내던 웃음도 점차 시들해지고, 만나는 것도 귀찮아지고. ...확실하게 다르다. 유우가랑 있을 땐 같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는데. 이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닿으려고 하고, 귀찮게 군다. 이번 여행도 그런 귀찮은 일 중 하나였다. 별로 오고 싶지 않았지만... ...가기 싫다고 할 명분이 마땅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야. 온천도 꽤 유명하고. - 좋은 료칸을 예약해놨어. 노천탕도 있대. 메이사 요즘 피곤해 보였으니까, 거기서 푹 쉬면 좋겠어. "헤에."
좋은 료칸을 예약해놨다고 하는 상대의 눈에서 얼핏 느껴졌다. 아, 이녀석. 그냥 같이 혼욕을 하고 싶을 뿐이잖아 같은 그런 감이. ....남의 말을 할 처지는 아니네. 나도 유우가랑 같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항상 그랬으니까. 이럴 때마다 하나하나 떠오르는 추억을 곱씹으면서, 상대에게는 적당히 대꾸하면서 기차에서 내린다. 숙소로 가기 전에 어디부터 둘러볼까 묻는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역을 돌아보다가— 문득 그리운 얼굴을 본 것 같아서, 고개를 홱 돌려 다시 봤다.
시간이 벌써 한시 반이라 답레는 내일 느긋이 써보겠습니다 😌 그러면...🤔 멧쨔가 료칸여행 다 즐기고 😿 그냥 이녀석도 찔러버릴까 커찮내... 싶을 즈음에 돌아가는 열차에서 마주치는 거려나요 🤔🤔 유우가는 그때 도착했을지도요 멧쨔는 이제 부르주아돼서 평일 여행해도 되고 유우가는 사축이라서 주말여행밖에 못해.......🫠 (음해)
히히히... 사실 왼쪽 사미 가운데 마사바 오른쪽 멧쨔로 해서 꼬꼬꼬로도 먹을 수 있고요😏
맞아요 완전 명곡.. 큿소 미호요놈들 왜이렇게 노래를 잘 만드는거야...🫠 저는 매번 캐릭터 전용 브금이랑 애니메이션 PV브금에 낚여서 가챠를 지르곤 합니다... 갬성에 약하면 사람이 이렇게 되는... 무시무시한..(????) 이히히히.. 진짜 >>0에 들어갈 문장들 마구마구 무한리필되는 중인wwwwww 열쇠지아 왜이렇게 룽한거죠...😇😇😇😇😇 너무 좋아... 누군가를 찌르는 일상은 이렇게 룽하고 맛있는 거였구나😏
도쿄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세시간 반이면 오이시다 역에 도착한다. 거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10분이면 그럭저럭 번화한 시내, 오바나자와시. 딱 츠나지 정도의 인상이다. 높아봤자 3층 건물, 그 외에는 드넓은 아스팔트와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그 정도.
예약도 하지 않고 와버렸다. 어쩌면 신사 아래에서 자야 할지도 모르겠네, 친절한 아저씨가 도와주지는 않으려나. 쓴 맛이 나는 농담을 속으로 생각하고는, 이내 여관을 검색해 찾아갔다.
저렴한 가격에 조식까지 먹기로 하고, 늘어선 히나 인형을 지나쳐 반질반질한 복도를 딛고 들어간다. 다다미 여섯 장 정도의 아담한 방에 혼자 앉아있으려니 괜히 울적해진다. 거실로 나와 TV 지방방송을 멍청하게 보다보면 주인이 말을 걸었다. 일정 있느냐고. 없으면 저기 온천이랑 공원에 들러보라고.
...일정이야 당연히 있겠지, 여행을 왔는데. 아닌 것처럼 보이나? 내가 뭐 목이라도 맬 거 같은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냥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긴잔 온천 유명하기도 하고.
아침 일찍 씻고 조식을 먹어치우고 출발했다. 10월인데도 도호쿠는 금방 추워진다. 츠나지에서는 이 무렵에 슬슬 외투를 꺼냈었는데 도쿄에 있다보니 사람이 무뎌졌다.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다. 셔틀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보다보면 점점 단풍이 눈에 들어온다. 이윽고 도착한 온천 마을은 완전히 빨간색이었다.
절경이네, 메이사랑 같이 보면 좋았을 걸.
그런 마음과 함께 공원부터 둘러봤다. 생각없이 걷고 걷고 걸으면서, 단풍을 보면서 생각했다. 난 메이사를 얼마나 좋아했던 거지, 언제부터였지, 시니어 때 받아줬다면 좀 바뀌었을까. 잘 모르겠는 것들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닌데다 둔감해빠졌으니까.
한참을 걷고 폭포도 보고, 진이 빠진 마음이 어떤지를 살폈다. 여전히 무기력했다. 메이사를 찾아서 하는 여행이 늘 그렇다. 절경에다가 좋은 구경,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도 쓸쓸하다. 외로운지도 모르겠다.
당일 온천에 몸을 푹 담갔다. 내 꼴이 영 못미더운지 문신은 없는지 꼭 물어보고, 들어가기 전에 씻으라고 당부를 했다. 아니, 그냥 면도를 좀 안 했을 뿐이거든요... 미스미가 앞머리 자르라고 하던 게 그냥 잔소리는 아니었나보다. 이렇게 취급이 달라진 걸 보면.
아무튼 푹 담궜다. 45분 꽉 채워서. 물이 좋은지는 모르겠고 복잡한 마음이 좀 멍해지긴 했다. 거리에 놓인 온천수도 손대보고, 족욕하는 데에서 발 담그고 멍도 때리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해질녘이다. 주변에 산이 있으니 더 일찍 지는 모양이다. 가스등이 하나 둘 켜지는 걸 올려다 보고, 따듯한 물 아래에서 발을 꼼질거리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메이사가 보고 싶다고.
여관의 좁은 이불 안에서도 메이사의 공간을 남겨두고 잔다. 눈을 뜨면 언제나 반 사람의 몫만 차지하고 있다. 식사를 할 때도 내 그릇을 정리하고 무심코 맞은 편을 본다. 그릇이 없는 걸 아는데도. 차 표를 사다가도 성인 2명을 눌렀다가 취소한다. 내 습관 하나하나가 외롭다.
메이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기분따위 몰랐을 텐데. 적당히 몸 맞대고 살면 그게 사랑인 거겠지 생각하고, 내버려지면 떠돌아다니다 또 누가 주워가는 대로 살았을 텐데. 날 믿어주지도 않고, 한 사람 몫을 하길 유구히 바라는 가족이 내 전부다 생각하며 거기에 온 마음을 쏟고 살았을 텐데.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다 망쳐졌다.
난 메이사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재기불능이 되어버린 인생따위 철도에 내던지고 싶다. 날 이렇게 만들었는데 책임조차 지지 않고 떠나갔다. 평생 없어지지 않을 흉터까지 만들어놓고. 질나쁜 복수다. 의도했다면, 넌 진짜, 정말, 나쁜 녀석이다.
맛점하고 돌아왔습니다 😋 여담이지만 유우가가 묵었던 숙소는 오모타케라는 민박...여관...? 으로 생각하고 있구요 https://maps.app.goo.gl/yn2vLkz8UoQPUaYq8 메이사는 후지야 료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 여기는 프라이빗 탕을 원하는 만큼 대여해서 쓸 수 있단 게 완전 완전인ww https://www.fujiya-ginz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