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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보고 말 사이도 아니니까. 다음 번에 더 잘 보답하면 되는 것이겠지! 료코는 빙그레 웃는다. 새롭다면 새롭다고 할 수 있을만한 인연, 습한 여름과 오렌지 주스. 차차 식어가는 땀방울이 코 끝을 촉촉하게 매만지고 햇볕 아래 발갛게 무르익었던 손으로 이제 별로 덥지도 않으면서 습괸처럼 부채질을 한답시고 몇번인가 파닥거리다가, 옆자리의 선배 그리고…
책상을 힐끔거린다. 사이좋게 앉은 상황에서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을 무럭무럭 피어나기 마련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전에 지나치듯 인사만 사이이기 때문에 이름과 나이같은 것 밖에 모르고… 료코는 니시키리 선배 ~aka 화려한 머리칼의 선배~ 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을 스리슬쩍 꺼내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999 아, 뭐어. 도와달라는데 매몰차게 거절 할 정도로 심성이 못되먹진 않아서. 다소 찝찝하고 귀찮을 순 있어도 이 정도의 인원이면 무엇이 됐든 힘을 합쳐 금방 끝나기 마련이다. 이미 머릿속으로 시간 계산을 얼추 끝낸 마시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마시로가 앉았던 책상 앞에는 한 모금 정도의 말차가 담긴 종이컵이 남아 있었다. 지저분해진 회의 자리를 정돈하는걸 도우며 선생님과 뒤늦게 따라나섰다.
쿠레비야마로 향하는 오솔길에서 나는 숲 냄새가 향기롭다고 생각할 때 즈음에 도착한 작은 헛간.여기저기 수가공에 티가 나는 게 아기자기해서 귀엽다고 생각하길 잠깐, 척 보아도 쌓인 먼지가 지저분했고 말 그대로 정리가 필요했다. 게다가 목적은 저 잡동사니들을 전부 한 곳으로 옮기는 건데.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것 같은 예감에 마시로는 피곤한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 이런 데에 무푼의 인력을 사용해야지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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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그늘지고 시원한 숲속이여서 망정이었지. 한 여름의 땡볕 아래에서 이것을 모두 정리하라고 했다면 정말 집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 해가 져버린 지금도 이미 집에 가고 싶다. 구슬같은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얼추 정리가 되었고, 감당 가능한 크기의 상자 안에 잡동사니들을 차곡차곡 정연하게 넣고서 상자를 들었다. 읏차, 몸을 돌려 움직이자마자 눈앞에 싸리비가 아른거렸다. 하긴. 오밤중의 숲속은 아무리 경로가 단순하다 한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 다만 서둘러주면 좋겠는데. 이 정도로 시간이 걸릴 걸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불러주었으면 싶었다. 해가 졌잖아요, 위험 하잖아요. 책임져 주세요...
“안녕.”
하지만 기대하는 쪽이 바보가 되는 세상이므로 투정 부릴 시간에 서둘러 움직여 말을 듣는 게 낫다. 마시로는 눈치껏 판단한 뒷모습으로 저와 잘 맞을 것 같은 학생에게 붙어 말을 건네었다. 일학년 주제에 건방진 인사다만, 사복이니까 학년 같은 거 알 리도 없고 솔직히 상관없잖아. 도란도란 사소한 얘기를 주고 받으며 되돌아왔던 길을 거슬러 가고 있을 뿐인데, 묘하게 주위가 서늘한게 체감 온도가 떨어진 것 같다. 마시로는 작게 에츄. 재채기하며 당신을 졸졸 따라간다. 빛나던 달빛조차 사라져 주변이 더 어둑하게 느껴진다. 근데, 이쯤 걸었으면 분명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너 길치야?”
상대는 분명 잘못이 없는걸 알지만 괜히 당황해서 분위기가 흐려지지 않게 마시로는 뻔뻔하고도 능청스러운 얼굴로 농담을 던졌다. 아, 그런데 진짜로 길을 잃은 거라면 이거 큰일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접근해도 정말 말도 안되는 기이한 상황에 놓였다는 거니까. 설마 노린걸까, 그 여자.
누구든 함께 있기만 하다면야 즐거운 료코는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으로 와버리긴 했지만. 정리라던가 그다지 야무진 성격이 아니라서, 누군가의 지시없이는 물건을 들고 어쩌면 좋을지 갈피를 못 잡고 어영부영거리지만… 좋은 안내자만 있다면 잘 따를 자신이 있는 지라 자신감을 가지고…
늘 그렇듯 착하게만 굴면 뭐든 잘 끝나는 법이다. 어느새 뜨거운 햇빛이 사라지고 나면 드리워진 어둠 사이로 여름의 바람이 불어오고, 으레 그렇듯이 여름 바람은 풋내 나는 풀 향기와 함께, 살랑살랑 오는 게 …아니었나?
키타토리양의 경고. 그리고 유난히 어둠이 깊게 드리워서인가 평소답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료코는 불안해진 마음에 가슴팍에 손을 얹는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어렴풋이 떠올리며… 들숨 후 날숨이다. 가끔은 날숨 후 들숨도 좋다. 호흡을 한다. 후우, 하아, 후우-… 규칙적인 삶을 살듯, 아니. 이는 사실 거짓말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한 번 읇조려 보는 것이다. 천천히 심장의 박동소리가 점차 안정되어가면, 숨소리를 낮추고 가슴팍에 얹은 손을 내리고 아무렇지 않은 웃음을 지으면서. 그러나 완전히 겁을 없애지는 못할 노릇이라.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알수 없다. 만약 그게 보인다고 해도 장담할 수는 없다. 그것이 섣부른 행동이라곤 할수 없지만 가끔은 생각을 흐리게 만들곤 하니까,
"게다가 매번 예상되는 일만 일어난다면 난 지루할거 같아···~"
두렵기는 해도 막상 일어나지 않으면 또 지루해지는 것이 변화였다. 짧게는 신체적인 변화에서 길게는 정신적인 변화까지···
"아무리 먼 거리에 있어도, 아얘 사는 공간이 달라도, 결국 사람이다보니 다른듯 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걸지도 몰라···~ 그리고 그게 평소엔 알지 못하는 무의식 같은거라면··· 어쩌면 정말로 심리적인 이유일지도···~"
물론 서로의 환경이 다르기에 집단의식과는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분명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알아가며 알게모르게 쌓여가는 무의식의 영역이 미약하게나마 공통점을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그 말도 맞네···~ 올해의 여름은 단 한 번 뿐이니까···~"
그녀는 이즈미의 말에 수긍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지금 구워내는 빵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니까.
정말 극도로 세밀한 부분까지 맞추지 않는 이상, 언제나 똑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세밀한 부분까지 오차가 없더라도 그 결과물이 완전히 일치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빵의 절단면에 보이는 미세한 구멍들도, 반죽의 모양도, 트여진 형태도 저마다 달랐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완성되어 찬찬히 식어가고 있는 마들렌과 휘낭시에를··· 사람 한 명 한 명에 대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품어보았을 테다.
"응응···~ 정말 그럴지도···~"
고소한 커피나 우유 같은 것, 그런 것에 곁들여도 좋겠단 이즈미의 이야기에 그녀는 방금 전에도 그러했듯 손가락을 마주치며 조용한 박수를 쳐보였다.
"뭔가 서서히 준비가 다 되어가는 느낌이네···~ 당장이라도 티 파티를 열수 있을것 같아···~"
아오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자 히라무도 마주 손을 폈다. 당연히 비닐봉지를 손에 낀 채로!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인 비닐봉지는 히라무에게 용케 매달려 있었다.
휴일인데 공부하고 있었다니, 역시 아오 군이네. 히라무는 엄마가 나갈 때까지 집에서 뒹굴뒹굴 책이나 보고 게임이나 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아오와 비교하니 약간 한심하다. 히라무도 밖으로 나왔으니 공부라도 하고 가야 자존심이 덜 상했다. 그래도 형은 도쿄 갈 거니까 히라무보다 열심히 하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물론 히라무가 목표로 하고 있는 교토의 대학교도 국립대이고, 비슷하게 커트라인 높지만, 도쿄의 거기와는 아무래도 차이가 없지 않지.
"나도 공부 좀 하다 갈까? 무슨 과목 했는데?"
비닐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가려는데, 아오가 웃음을 띠고 이쪽을 보고 있다. 그야 제대로 가져왔으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아오의 평가는 냉정하고 명확하다. 남는다고? 히라무는 멀뚱멀뚱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가? 만드는 거 보고 있으면 모조리 다져버리니까 많은 양도 적은 양으로 보이던데. 얼마 전에 오므라이스 해먹은 재료도 있다니까 그걸로 충당하면 되긴 하겠지.
"야호!"
웃는 아오에게 마주 웃으며 히라무는 비닐봉지를 부엌에 날라 두었다. 아오가 거실에 에어컨을 튼 모양이다. 히라무는 거실 쪽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널찍한 아오 집 거실에는 사람이 안 보였다.
60. 좋아하는 맛이 있나요? - 단거~ 단거 무지 좋아해~ 커다란 설탕덩어리로 이루어져있으니까~(๑•̑ ɞ •̑๑)
57. 감정 표현은 활발하게 하나요? - 활발하다는게 강도가 아닌 빈도라면 그럴지도~ฅ₍⁻ʚ⁻₎
23. 캐릭터의 눈동자는 어떤가요? - 와~ 이 질문은 뭔가 탁 꽂히네!(っ•ɞ•)っ 적갈색이라고 써두긴 했지만 사실은 오묘한 노을빛이 맞을지도? 동공을 중심으로 은은하게 감싸면서 끝은 살짝 밝은 느낌~ 위로 갈수록 밤하늘처럼 어둡고~ 그리고 눈동자가 그렇게 맑은 편은 아니라서 그런지 살짝 퀭한 느낌도 들어~ฅ₍⁻ʚ⁻₎
너 역시 손을 마주 폈다. 이대로 하이파이브라도 할까, 싶어 손을 내미려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인 비닐봉지가 용케 매달려있구나 싶어 씩 웃으면서 손을 거두었다. "별 일은 없고?" 네게 간단하게 안부를 물으면서.
"세계사."
무슨 과목 했는데? 라는 물음에는 짧게 대답했다. "도쿄대 가려면 열심히 해야지." 덧붙이는 것 잊지 않고. 도쿄대에 가고 싶었다. 굳이 도쿄대가 아니더라도 괜찮았지만, 갈 수 있다면, 목표는 높게 잡는게 좋았으니까. 사실 조금 불안불안하기는 했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넘쳐났으니까. 이즈미 씨 라던지. 그에 지지 않기 위해서, 응. 열심히 하고 싶었다.
"밥 먹고 그러면 공부나 같이 할까. 오랜만에."
싱긋 미소지으면서 네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고, 곧이어 네가 멀뚱멀뚱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보자 물끄러미 널 바라보았다. "설마 그걸 다 쓴다고 생각한거야?" 짧게 물으면서. 정말, 요리 못한다니까. 쿡쿡거리면서 다시금 웃었지.
너는 비닐봉지를 부엌에 두었고, 곧 이어진 물음에는.
"응. 아버지는 가게 보고 계시고, 유키는 잠깐 나갔어. 친구 집에 놀러간대. 누나는... 제발 일본 안에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게… 있었던가. 료코는 머릿속을 더듬어 보지만 그래봤자 별로 생각 나는 건 없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 기억에 담아둔게 아닐 거라고. 가볍게 스치듯 생각을 마치며 고개를 흔들거리는 것이었다. 뭐가 되었든 궁금한 것도 풀렸겠다, 속 시원해진 얼굴로 웃으면서. 아니 후배 좋다는 게 뭐겠는가, 써먹기 좋다는 뜻이다.
“아니 오늘 날씨가 좋아서 오는 길에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날엔 뭘 하는 게 좋을까요?“
선배는 평소에 뭐 하고 지내세요? 저는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가끔 요리도 좀, 영화도 자주 보는데… 그러고 보니까 곧 무슨 영화가 나온다던데 보실 생각 있으세요? 아 무슨 영화냐면 머론이라는 주인공이 사람들 뇌에 칩을 심어서 인터넷에 연결 시키려고 하는 내용인데… 뇌가 클라우드에 업데이트 되면 재밌겠죠? 전 인류가 하나의 전자 뇌를 공유하는 미래가… 순식간에 딥해자는 대화… 그렇다… 오타쿠는 원래 젛아하는 이야기만 꺼내면 말이 많아지고 마는 것이다… 긴장감이 풀리고 조금 편해지고 나니 쏟아지듯 말을 부어낸다. 원래 이렇게 까지 많은 편은 아닌데, 처음 제대로 대화해본 학교선배인데다 음료와 간식거리까지 대접받고 있는지라.. 그래도 좀 과하긴 하지만.
히라무도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3인칭으로 호칭할 때는 엄마라고 제대로 부르는 편이었지만, 아오 정도 편한 사이에선 평소 부르는 버릇이 막 튀어나오곤 했다. 뇌에 힘 줘서 바꾸지 않는 이상은 이렇게 되고 말기가 태반이었다. 이렇게 말해도 그러려니 알아듣고 뭐라고 하지도 않으니까. 물론 어렸을 땐 조금 잔소리 듣기는 했지만. 언제쯤 포기했더라, 초등학교 고학년?
세계사?
히라무는 눈이 번쩍 뜨였다.
"나도 할래. 어느 파트? 중세? 근대? 아니면 1차 대전 즈음?"
책 읽고 다큐멘터리 보는 것과 문제 푸는 건 다르지만, 머리 아픈 공부보다는 재밌게 할 수 있는 공부가 낫다. 수학 문제를 푼다고 해도 풀었겠지만 마침 하고 있던 공부도 재밌는 거라 잘 됐다. 토키와라에도 똑똑한 사람들은 많았다. 아오도 그렇고 이즈미도 그랬다. 가끔 같이 공부를 하면 히라무도 많이 배웠다. 이즈미상에겐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아오는 어디를 목표로 하는지 알고 있다. 교토로 갈 생각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아오의 마음은 확고했지만.
"있잖아 형, 도쿄대 가면 뭐 할 거야?"
머리를 쓰다듬어지면서 히라무는 물었다. 중학교 들어올까지는 형이 손을 나무 가지 하나만큼은 뻗어야 히라무 머리에 얹었는데, 이제는 겨우 발가락 만큼 차이도 나지 않는다.
아마 이 시간이면 아저씨는 외출하셨을 테고. 유키쨩은 방학이니 집에 있을 터인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과연 아오에게 듣자 하니 놀러 나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