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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노노 나 환자임. 울 아부지한테 혹사당하는 중. 에효, 빨리 노동청에 신고해줘..”
죽을맛이야 죽을맛. 표정을 잔뜩 찡그리고 죽상을 부렸다. 항상 뒤통수나 팡팡 갈겨대고. 그러니까 머리가 나빠지는거라고! 개기면 또 추가로 날아들고.. 바람 잘 날이 없다. 꿀같은 주말에 어디 놀러나가지도 못하고. 늦잠이나 퍼질러 자려고 했더니 발로 뻥뻥 차대면서 깨우질 않나. 아무튼 이 드러운 집구석 빨리 나가든지 해야지. 그래도 나 없으면 누가 아부지 같은 사람하고 같이 일하냐고. 오늘도 정신승리하면서 하루를 그렇게 버텨나간다.
“야 그 꼬맹이랑 같이 다니면 재밌냐? 하긴.. 라떼도 그렇게 놀았지~ 송충이 잡고 장수풍뎅이 잡고.”
얼렁뚱땅 마이를 끌고 가게로 돌아가는 길. 생강 포대에서 폴폴거리는 흙가루에 가볍게 켈록이며 마이의 지난 얘기에 동참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머리나 빡빡 밀고 동네 돌아다닐때 별것도 아닌거에 하루 보낸적이 여럿 있었다. 그때는 자잘한 쿠소 개그에도 눈물 빠지게 웃어대곤 했는데. 이쑤시개를 옴뇸뇸 씹어대며 잠시 옛 생각을 하다가 아차 싶었다. 그때 그 시절. 콩알만한 양파머리가 이 기운 없는 꺽다리 여자애를 와악 괴롭혀대던게 생각나서. 하.. 말 잘못 꺼냈다고 괜히 먼산을 바라본다.
>>112 후,,제 아픈부분을 찌르시다니 일요일은 진짜리얼마지플래그분쇄해서라도 뭔가...뭔가 해보아야겠습니다 제 소박한 투두리스트...첫 일상하기 ㅋㅋㅋㅋㅋㅋㅋㅋ겉으로 보기엔 intj인 마시롱이 tf가 왔다갔다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지영 히라무도 n 쫌 된다고 말하면 아무도 안...믿어주나? 반성 요
뒷말은 자르고, 앞말의 "나 환자임" 부분을 듣자 그곳에만 정신이 팔려 타케루의 앞길을 가로막고는 상대를 위아래로 살핀다. 어디가 아픈거지..? 우선 눈에 보이는 환부는 없다. 그럼 열이 나나? 자신의 손을 타케루의 이마에 가져다댄 마이는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대, 대장 열나잖아!"
아니다. 마이가 방금 전 까지 냇물에 손 담그고 노느라 차가워진거다.
"재밌었지? 요즘은 대장 바빠서 자주 못 노니까-"
정확히 왜 바쁜지는 모르지만, 다들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바빠지고 이곳저곳 자신의 할 일을 찾아 부딪힌다. 미야마 마이는 자신이 언제나 서 있던 곳에 가만히 서서 언젠가 생활반경이 맞닿는 순간을 기다리며 그들을 응원할 뿐이다. 아련한 타케루의 질문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마이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124 “어 나 팔 박살났어 사고나서. 몰랐냐? 그래서 고베 있다가 다시 올라왔잖아.”
이마 위로 스윽 올라오는 손길에 '얘 왜이래?'라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냇가에 담갔다 빼서 그런지 촉촉하고 차가워서 살짝 움찔했다. 아, 말 안해줬나.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한쪽 팔을 못쓰게 돼서 운동 접었다고. 대충 지나가듯 말해줬다. 그래서 지금 포대 지고 있는 어깨도 멀쩡한 쪽이잖아.
“잠깐 숨통만 트러 나가도 아부지가 뻘짓거리한다고 끌고간다야.. 다시 집 온뒤로는 가게에 거의 살다시피해.”
송충이 하니까 생각난다. 길다란 나뭇가지에 오동통한 녀석 하나 태우고 얘 코 앞에 들이밀어댔었지. 지금 생각하면 엄청 유치한데 왜 그랬지. 아, 기억 못하는 척 하는건지 아니면 진짜 기억 못하는건진 모르겠지만 말 안나와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대충 생각하고 넘겼다. 십여 분을 걸어 아스팔트 도로가 나올즈음 적당히 멀리 보이는 가게 문구. 오만상을 찌푸리며 포대를 짊어진 어깨를 한번 들썩인다.
“아. 너 우리 가게 온적 있었나?”
아직 오픈 전이라 조용한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며 막연히 물었다. 노포 느낌 물씬 풍기는 내부는 음식 냄새가 베어서 오묘하게 미소, 간장, 생강이 섞인 쿰쿰한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고 벽과 테이블에는 통일성 없는 여러 장식들이 빈 공간을 차지했다. 불이 꺼져 약간 어둑한 주방 입구에 포대를 던지듯 내려놓고 손을 탁탁 털며 넌지시 물었다.
확실히 마시로가 예상한 대로, 이 빌어먹을 놈의 야구공은 한번 놓쳤다고 아주 신나라 나잡아보쇼 하고 도망간 모양이다. 일단 아무리 짧게 갔어도 이 수풀 건너편은 들여다보아야 되겠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아주 괴상망측하기 그지없는 형태로 찾아온 비상사태 때문에.
"응."
제대로 약이 올라, 마치 억지로 발톱을 깎이고 난 고양이만큼이나 성이 난 표정으로 이쪽을 째려보며 너 멋대로네, 하고 마시로가 던진 타박에 미카즈키는 무덤덤하다 못해 얼굴에 철판 깐 수준의 노가드로 대응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시로가 뻗은 손길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뻔뻔하게 마시로의 손길을 피했다는 게 아니라, 무덤덤하게 그냥 마시로가 모자를 벗겨가던지 말던지, 마시로 성질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볼캡 챙이 하얀 손끝에 팩 나꿔채이고, 그 아래로 새하얀 얼굴이, 여름 뙤약볕 아래에 놓인 야구부 아이의 얼굴이라기에는 창백한 얼굴이 드러난다. 표정 없이 가만히 마시로를 바라보는 얼굴이, 그 얼굴 가운데서 이젠 가리는 것도 없이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어디선가 본 것만 같다. 그도 어쩌면 마시로에게서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그러나 그보다, 소년은 왜 유난이야, 하는 마시로의 앙칼에 원론적인 대답만을 내어놓을 뿐이다.
"그만큼 다쳤는걸."
무릎만 깨진 게 아니잖아. 이 원론적인 대답의 가장 골치아픈 점은 맞는 말이라는 점이다. 모래와 자갈이 까슬까슬한 시골길이 입힐 수 있는 상처를 얕보고 있는 마시로의 발언에, 미카즈키의 대답은 반박의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시로를 안아든 미카즈키의 발길은 비탈길을 오르지 않았다. 대신에 때마침 저만치 있는 가로수 그늘이 드리운 벤치로 향했다. 무슨 심경으로 그리했는지는 모르지만, 남에게 보이면 퍽이나 무안할 지금 이 모양새를 저 비탈길 위에 한가득 몰려있을 야구부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마시로에게는 호재라 할 만하다.
미카즈키는 마시로를 벤치 위에 앉혔다. 끄집어올릴 때 그따위 식으로 우악스럽게 뽑아내듯이 들어올려놓고는, 내려놓는 움직임은 같잖게도 조심스럽다. 그는 주머니에 푹 찔러넣어놓았던 구급낭을 꺼내서는 얄팍한 비닐에 포장된 위생 물티슈부터 먼저 꺼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마시로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먼저 톡톡 두드리며 닦아내기 시작했다. 마시로가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면, 미카즈키는 두 장째의 물티슈를 꺼내들어 마시로의 다친 쪽 무릎을 닦아주기 시작했을 것이다.
발을 내리고는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본다. 정말 들어본 적이 없는건지, 아니면 그저 마이가 잊은 건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잠시 그러다 위를 올려다본다. 그렇구나. 그럼 저 포대가 얹혀 있지 않은 어깨가 아픈 어깨구나. 마이는 다시 묵묵히 타케루의 뒤를 따랐다.
"타케루네 아버지, 엄하시니까."
같이 놀 때 저 멀리서도 타케루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 적이 많았다. 그만큼 괄괄하고 목소리가 큰 아저씨. 하지만 가끔 가면 맛있는 것도 해주셔서 아주 나쁜 기억만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만일 그 송충이가 들이밀어진 기억을 기억하냐 물어본다면 미야마 마이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독충이라 닿으면 큰일난다고 우와악! 하고 도망치다 넘어진 것도 기억한다.
"으으응- 한 번 도 없어."
이자카야는 밤 늦은 시간에 주로 여니까. 마이는 그 시간에 자고 있기 때문에 통 들려볼 일이 없었가. 타케루의 뒤를 따라 들어간 장소에는 장향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방금 생강포대를 떨궈서, 바닥에서 흙내와 생강냄새도.
정말 온적 없나. 머리를 긁적이곤 쭈그려 앉아 포대를 깐다. 모두가 잠든 시각 가게 문을 열고 모두가 깨어난 시간 문을 닫으니. 아버지의 밤낮은 우리 같은 사람들하곤 다르다고. 불이 꺼져 어둑한 가게에 전등을 켜고 지난 날 정산하지 못한 영수증 무더기를 옆으로 치워버린다.
“안덥냐? 메론소다라도 한 잔 타줘?”
아. 잠시 할일에 정신이 팔려서 마이쪽은 쳐다도 안봤네. 직업병 때문인가. 가게 입구 문지방을 밟은 사람들은 전부 손님으로 보이니까 저렇게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이 왠지 불편하게 느껴져서 아무말이나 툭 내뱉는다. 당장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이미 몸은 주방쪽으로 기울었다. 뭇 킷사텐에서 매출 기둥을 든든하게 잡아주는 주력메뉴중 하나. 가게 메뉴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가끔 술을 못 마시는 손님들을 배려해서 서비스로 나가고 있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흙먼지 가득한 손은 깨끗하게 씻어주고. 예쁜 컵에 메론 시럽을 담고 차가운 얼음과 탄산수를 한 캔 따서 부어주면 끝. 바닐라 아이스나 체리 같은 장식을 올려준다곤 하지만 이런 쌈마이한 오마카세에선 그런건 사치다. 타케루는 잔 안에 담긴 음료를 하이볼 스푼으로 휘휘 저어 대충 빨대를 꽂아 마이에게 건넨다. 이게 바로 ‘파닥파닥표 공짜 메론소다’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