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는 괘씸한 짓을 적당히 돌려서 지적해줬더니 고마운 줄도 모르고 질색에다가 틱틱대는데다가 냄새나는 아저씨라는 팩트 폭력까지 가한다. 크, 큭 이 녀석 괘씸해 괘씸하다고오 진짜 츳코미를 참을 수가 없어!
"테이블이라니 내 몸을 무생물처럼 여기지 말아줄래?! 이래봬도 옷 아래는 따듯하고 부들부들한 몸이 있거든??! 히다이 주니어도 제대로 거기 수납되어 있.....!!!!!!!!!!!!!!!!"
그래서 신이 나서 츳코미를 밀린만큼 잔뜩 쏟아내다가, 위험한 발언을 했단 걸 깨닫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잠시 어색하게 소강 상태에 머물렀다. 마음같아서는 어디 분주서 구석이라던가 남자화장실 구석에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게 당장의 우리 처지지요.
"...아무튼 간에, 닌 몰랐다고 해도 다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라고. 당장에 니도 내가 어? 니 허벅지 좀 만지기만 해도 🙀 끼뺘~핫! 뭐뭐하는거예요이음흉한오크족장이!희롱이죠?!희롱하는거죠!?이거파워하라에세쿠하라로신고할거니까요!!꺄아경찰이추행을~!!! 🙀 하면서 기겁을 할 거잖아. 아이냐?"
가성을 섞어가며 메이사의 성대모사를 하는 건... 그야 내가 봐도 좀 지나치긴 했지만. 웃자고 한 거다 웃자고. 그리고 좀 닮았다고.
"....엑..." "그, 긋, 그, 그게 무,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구요!!! 이거야말로 성추행이잖아!!!!!!"
수, 수납이라니 그게 뭔데? 잘은 모르겠지만 히다이 주니어라는건 곧... 선배의...... 대충 이해하자마자 기겁해서 파다닥 손을 잡아당겼다. 선배의 손도 따라서 허공에 덜렁거리고 있지만 거기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대, 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게 성추행이라고!!!!!!!!
그리고 이어진 건 웃기지도 않는 성대모사였다. 뭐냐고!!! 난 그렇게 안 한단 말이야!!!
"하, 하, 하지 마요!!! 하나도 안 닮았어요! 내가 언제 그랬냐고요 진짜!!!" "이이이익......."
얼씨구. 이젠 내가 흥! 했던 것까지 따라하고 있다. 나 참. 선배라는 사람이 나잇값도 못하고 이러고 있다니! 내 버디운 너무 나쁜 거 아니냐고!!! 어이가 없어서 입까지 벌리고 쳐다보다가, 나도 다시 흥!하는 소리를 냈다. 흥이다 흥!
"은혜는 무슨 은혜!! 수갑가지고 장난 안 쳤으면 이럴 일도 없었잖아요!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이렇게 외치고 나서야 열쇠를 부러트려 먹은 건 나라는 게 생각났지만, 그치만, 그래도, 맨 처음에 장난 시작한 건 선배니까. 아무튼 선배가 나쁨. 이 아저씨가 나쁜 거라고. 그, ㄱ, 긋... 히다이 주니어를... 만진 손으로 샌드위치만 안 먹였어도오오... 내가 정신못차리고 그렇게 부러트리진 않았, 않, 않았다고오오..... .......그, 그걸 만진 손으로... 으... 으으으으..... 조금 전까지 간신히 망각의 강 너머로 보낸 줄 알았던 그 기억이 히다이 주니어라는 말에 후다닥 달려온 것 같았다. 생각하지 말자고 하면 할 수록 아주 선명해져서......
"...으으으으....."
자유로운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진짜아아아... 싫어어어어...... 더럽혀졌어어어.....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 손목을 자르고 갔다올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알고는 있지만.. 그, 그, 그럼, 화장실 가면.... 나도 따라가야 하는 거잖아 지금 이거. ..........나도 따라가야 하는 거잖아!!! 그것도 바로 옆에서!!!!!! 서있어야 하는 거잖아!!!!!!!!!
"아니 진짜 무리" "이게 진짜 성희롱이고 성추행이라고요 이 세쿠하라 상사야!!!! 당장 신고할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방방 뛰...진 못했지만 아무튼 무리라고 고개도 막 저어보고 눈도 질끈 감아보고 손으로 밀기도 했지만 그래.... 생리현상인걸 어째... 무한하게 참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먹은 게 있으면 언젠가는 나오기 마련이니까.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어. 애원하는 선배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로 결국, 결국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화장실에 들어가면 선배는 조금 급하게 소변기 앞에 섰다. 나는... 당연하게도 그 옆까지 따라가 서서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니.. 수갑 왜이렇게 짧은 건데? 좀 길게 늘려야 하는 거 아닌가? 채우는 입장에서는 몰랐는데 채워지고 나니까 그런 부분이 굉장히 신경쓰인다. 거, 거의 내 손도 근접...한거잖아 지금.... 벨트를 푸는 찰칵거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움찔움찔 떨었다. 으, 으으, 주먹.. 꽉 쥐고 있긴 하지만.... 잘못 움직이면 다, 닿을지도 몰라아아....
"..햐앗!? 돼, 됐거든요?! 지금 상황에 눈가리개라니 완전 이상한 모습이잖아요!!!!" "그, 그, 그런 짓 할 시간에 빨리 하고 나가자고요!!!!!"
주먹을 한층 더 꽉 쥐었다. 차, 차라리 빨리 끝내라구요!!!! 그렇게 외치면서 나도 모르게 선배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눈도 떠버렸다. 아니, 아직 안.. 안...벗었다고 해야할까, 아직 안.. 안.. 아무튼 나오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근데. 근데에........
....................... .................아, 아까, 저걸... 그렇게...그러고나서 샌드위치를.....나한테....... .......나... 나 저거랑... 간접........
"뺘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빨리! 빨리 끝내! 빨리 치워!!!!!!!!!!!!!!!!!!!!!"
눈을 질끈 감고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 얼굴은 이미 터질 것 같고 귀까지도 새빨갛게 됐을 게 분명했다. 아아악!!!! 진짜!!
...간접 샌드위치 먹어서겠지 하는 환청이 들린 거 같기도. 환청이겠지. 툭툭 털고 다시 좌수납하고 벨트까지 제대로 채우고 나서 세면대로 갔다. 손을 씻다가 문득 찝찝하겠지 싶어서 호시노 녀석의 손도 그냥 잡고 물칠이랑 비누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좀 뺙뺙하는 소음이 있었지만... 그냥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선에서 원만하게 마무리 됐다.
물기를 닦고 화장실을 나오다가, 문득 생각난 농담을 툭 던졌다. 딱히 깊은 생각은 안 했다. 그리고 모든 세쿠하라는 깊은 생각이 없는 데에서 시작하지.
"그러고보니 호시노 니 아까 내 거 열심히 보더라? 그거 성희롱이야. 너 화장실 갈 때 되면 나도..."
바로 반사적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그래. 진짜 반사적이었다. 수갑때문에 선배가 넘어지면 나도 같이 굴러야 한다는 걸 생각하기도 전에 발부터 나간 거니까. 냅다 정강이를 갈기자 선배는 그대로 정강이를 잡고 굴렀고, 나도 같이 엎어져서 주먹으로 정강이를 더 때렸다. 단죄 펀치! 단죄 펀치!!
그렇게 복도에서 한바탕 한 뒤에 다시 분주서 소파로 돌아왔다. 서로 고개도 돌린 채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명백하게 서로 삐진 모습으로. 아휴. 속이 탄다 타. 아까 샌드위치랑 산 커피는 얼음이 다 녹아서 물 반 커피 반인 상태였지만, 속이 끓는 상태라 안 마실 수가 없었다. 다른 커피를 새로 사고 싶어도, 이렇게 서로 수갑차고 사러 가면 분명 이상한 취급 받는다고. 잘하면 체포당한 범죄자, 최악의 경우엔 좀 취향이 색다른 데이트...라던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있어선 절대 안 되고!!! 하여간 끓는 속을 남은 커피물로 때우고 있다보면.....
........그렇다. 들어간 이상 나오는 것은 필연이니까. 이 말을 아까도 생각해놓고(사실 다른 말이었을지도몰라 난 지금자세히생각할 그럴정신이없어)바보같이 있는대로 마셔대니까아아.... ....어색한 침묵을... 어색하게 깨본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사실, 아까 정강이 찰 때부터 조금, 조금 가고 싶긴 했는데. 근데 뭔가 그 좀 그래서 말 안하고 있다보니 지금은 진짜 좀 위기인 그런 상황이라고 할까.....
"제.. 제발....." "......저를 위해서 손목을 잘라주세요......"
하지만 역시 여자화장실은 선배라도 무리고. 같은 칸에 들어가야 한다니까? 남자 소변기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이건? 그래서 부들부들 떨면서, 나름대로 정중하게-물론 씨알도 안 먹힐-부탁을 해본다.
그리고 당연히 안 먹혔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사이좋게... 여자화장실에 들어와있다. 젠장. 당장이라도 빨리 해치우고 싶은 본능과, 그래도 역시 무리이이이잇!!!하고 외치는 이성이 팽팽하게 겨루는 중이다. 미치겠네... 바지춤을 부여잡고 한참을 망설이면서 선배를 향해 말했다.
뻐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보기 좋게 복도에 넘어져선 한 명은 구르고, 한 명은 끌려가면서도 정강이에 냥냥 펀치를 맥이는 진풍경을 연출하게 될 줄이야. 오늘 분주서에 아무도 없어서 정 말 다행이라니까. 미스미가 봤다면 분명 그 목소리에 노기를 잔뜩 담아서 "둘 다 꺼져..."라고 으르렁거렸을 게 뻔하다.
...난 아내 이후로 걔가 제일 무서워. 호시노는 어떻냐고? 걘 딱히 안 무섭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너도 꼬꼬마구나 싶을 때가 많아서. 이럴 때라던가.
그걸 말로 뱉으면 또 단죄 펀치 당할 거 같아 얌전히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동안 힐끔힐끔 보고 있자니 저 녀석, 커피를 물처럼 마시고 있는데 저래도 괜찮은 걸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아니나 다를까, 나에게 손목을 자르라는 무수한 요청이.
"싫은데? 내가 왜? 보러 갈 건데? 파하학―"
쳐맞았다. 그러느라 시간은 더 지체됐고, 결국 못 참겠던 호시노가 날 끌고 급하게 화장실 대변기 칸으로 들어왔다는 전말인...데.
'이거 좀 엣치치하네.'
"예이 예이, 귀 막고 코.. 아니 눈 막으라고. 그랴."
건성건성 엄지로 귀를 막고, 네 손가락으로 눈을 가린 웃긴 상태. 오, 그래도 이러고 나니까 전혀 안 들려.
"야 호시노 니 볼일 보는 소리 진짜 하나도 안 들린다야." "뭐라는지도 안 들리거든 하하하하." "아, 근데 이러고 있으면 니 혼자서 닦을 수는 있나? 내가 한 손은 내려줄까? 파하하학."
어차피 안 들리고 안 보이는 거 마음껏 놀렸다가, 뭔가 당기는 느낌이 들어서 수갑이 채워진 손만 살짝 내렸다. 귀도 거기만 살짝 풀어주고.
"...왜?"
휴지가 없나? 아니면 급하게 시작되기라도 했나? 그게 아니면... 화장실에 다른 녀석이 들어오기라도?
이렇게 대놓고 말해도 딱히 반응이 안 돌아오는 걸 보니까 진짜로 안 들리나 보네. 안심하고 볼일 봐도 되겠다. 비록 귀를 막는 바람에 내 왼손은 치켜올라간 상태지만, 그래도 어차피 왼손 잘 안쓰니까... 근데 이 아저씨 왜 이렇게 시끄러운거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하긴 지금은 우리말고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슬 시작하려던 찰나—
- 그러고보니 또 불법 마작판 얘기 나오던데 - 단속해도 신기하게 잘 빠져나가니까. 미꾸라지 같은 녀석들이야.
—바로 누군가가 들어와버렸다! 어째서!! 그 와중에 이 아저씨는 왜 자꾸 혼자 뭐라뭐라 말하고 있는 거야! 들킨다고오오!!! 왼손을 팍팍 땡겨서 신호를 주자, 그제야 한쪽 귀를 풀고 왜?하고 물어보는 선배에게 소곤거렸다.
"바, 밖에 사람, 들어왔어요 좀 조용ㅎ—" "...아... 으...으으........"
사람이 들어와서 놀라고, 선배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땡기고, 아무튼 그러느라 그, 여기 온 목적은 잠시, 진짜 열심히 참고 있었는데. 이제 진짜로 한계가 와서. ....지, 진짜로 무리라서어.....
더 참지 못했다. 대변기칸 안을 물소리가 채운다. ...쓸데없이 청량했다. .................하필 선배가 귀도 안 막고, 살짝 돌아보고 있을 때...... .........죽을까......
"......."
얼굴이, 얼굴이 터질 것 같아... 아니 차라리 진짜 터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심장이 얼굴에서 뛰는 것 같아. 그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식겁해선 손을 내리고 바깥에 의식을 집중한다. 확실히 자박자박 타일을 딛는 소리랑 문이 콰당 닫히는 진동, 달그락 잠그는 소리까지 들렸다. 내, 내 목소리 안 들렸겠지...
경계하며 시선을 도로 돌려 놓았다가 보고 말았다. 하, 하긴 바지 풀고 앉았다가 급하게 일어섰을 테니까... 아니, 이해해. 이해하지. 딱히 그렇게까지 의식도 안... 안 한다고? 나는 일단 기혼자고? 아내도 있었고? 응응. 진정 좀 해야지. 지금은 하필 눈높이 때문에 절 대 들키면 안 돼. 슬픈 생각할까, 슬픈, 슬픈...
눈을 질끈 감고 내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일을 생각했다. 그러자 조금 침착해지는 게 느껴졌다. 거기에 찬(?) 물을 끼얹어주는 청명한 물소리까지. 그래 그래, 요즘 4기수 편성되면서 밤샘잠복하고는 하루를 통째로 자느라고 보냈었지... 그래서 자기관리도 못하고. 그래서 그런 거야. 아내가 죽은 후로는 영 개운치 못했으니까...
좋아, 완전 진정됐다. 아직 중간이었으니까 티도 안 났을 걸. 그렇게 안심했다. 그나저나 이거 좁은 데에서 서있으려니 불편하네, 잠깐 저쪽다리로 균형을 옮겨볼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어수선한 일들로 까먹고 있었지만, 거긴 아까 호시노한테 엄청 얻어맞은 곳이었으니까. 그 녀석 다릿심도 그렇거니와 그냥 힘도 대단한 편이고, 찌릿하고 올라오는 통증에 그만―
"윽...!!"
넘어질 뻔 했다가 벽을 가까스로 짚었다. 다소 와당탕하는 소리랑 아픔을 참는 목소리가 샜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소음이랑 물소리에 묻혀서 안 들렸을 거고. 십년감수했네.
'호시노, 괜찮ㄴ...'
속닥거리며 고개를 아래로 내렸을 때 보인 표정에... 아까 했던 슬픈 생각의 효과가 전부 날아가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쏴아 하고 손을 씻고 나설 때까지, 우리는 숨을 꾹 참은 채로 어색한 아이컨택을 하고서... 모두가 나간 후에야 나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겨우 말할 수 있었다.
"................미안해. 그, 오해는 하지 말고. 알아서 잘... 할게. 아,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게 할 테니까...!"
젠장, 엄청 더워...
"...이, 일단 그... 눈 감고 있을 테니까 바지 좀." . . . 결국 한가해진 사이버팀 사키쨩이 절단기로 뚝 끊어줄 때까지, 우리는 진짜진짜진짜로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말 한 마디도 나눌 수 없는 그런 시간이었다.
우당탕하는 소란에 자연스럽게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고개를 든 내 앞에는.......
벼, 벽을 짚고, 그, 나, 나를 더 더더ㅓ더 덮치는 것 같, 같은... 서, 선배, 선배가..... 당장이라도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다행히 내적비명으로 그쳤다. 대신 입을 좀 덥석덥석거리긴 했지만. 아, 아직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숨을 꾹 참고, 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비록 내 눈 앞에...... 그....... 윽... 미쳤냐고 이 사람!!! 왜 이런 상황에!! 뭐하는 거야!!!!! 죽어!!!!!
'안...괜찮아요.... 죽어.....'
결국 못참고 그렇게 속삭였다.
밖에서 손을 씻는 물소리가 그치고, 발소리가 저 멀리로 멀어진 다음에야 숨을 팍 내쉴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어색한 분위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냥.... 모르겠다. 이제 이거 그냥 현실감이 없는데. 나 완전 악몽꾸는 중인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런 생각을 산산조각내는 선배의 개미만한 목소리가 들렸다.
".....익, 윽..... 어, 어, 어떻게 하려고요. 수갑도 아직.... 안 풀렸는데......."
알아서 잘.. 한다고? 내, 내가 아무리 애같아도!! 이런 지식이 아예 없진 않으니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대충 알고 있고! 그, 근데 지금은 수갑도 못 풀고 있는데 그, 그런, 그런 방법을 쓰면...!! 괜히 짜증을 섞어서 말하다가, 뒤이은 말에 얼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이이이익!!!!
"뒤돌아 있으라구요!!!!!"
그렇게 성질을 내면서 화장실을 나온 뒤, 사이버팀 사키쨩에게 구원받기 전까지, 우리는 분주서에서 엄청 어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실 수갑이 풀리고 나서도, 지금도 어색하다.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벌겋게 손목에 남은 자국을 손가락으로 더듬다보면, 점심이나 같이 먹고 가자는 말이 들린다.
".......선배가 사면요." "저 스트레스 받으면 매운거 먹거든요. 엄청 매운 탄탄면 먹으러 가죠." "그리고 그 다음엔 디저트로 팬케이크. 생크림이랑 과일이랑 이것저것 다 추가해서요."
뭔가 끄덕끄덕하며 납득하고 가는 사키쨩. 뭔가 들뜬 기색인 것도 같았지만... 워낙 4차원인 녀석이라 잘 모르겠다. 턱을 쓰다듬으며 '그러면 아까의 그건... 생각보다 건ㅈ...' 하며 혼자 중얼중얼거리는데, 난 저 녀석이 중얼거리는 거 전혀 못 알아듣겠더라. 가끔 혼자서 하남자공이라느니 유혹수라느니 402와 404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느니 하는데 이게 MZ란 건가.(아니다.)
"탄탄면인가, 좋지. 나는 평범하게 미소라멘 곱빼기... 에?" "너 엄청 뻔뻔하구만― 이번에 너 식비가 얼마나 나온지 알아?! 예산 초과라고! 가뜩이나 박봉인 형사의 간을 내어먹고 있네! 있잖냐, 니는 순사장이고 나는 경부보라고는 해도 봉급 차이 얼마 안 나거든?!"
거짓말이다. 사실 할 일 없어서 돈이 남아돈다. 이래봬도 난 수사 1과 엘리트에다가 이 나이에 경부보를 단 진짜배기 엘리트니까. 라고 해도, 보험이며 저축이며 부모님께 부쳐드릴 돈이며 월세며 하면 막상 남는 건... 이 녀석 식비로 꽤나 털리고 있는 실정. 내 지갑사정을 이 녀석은 알려나 몰라. 속으로 앓는 소리를 내며 슬쩍 흘겨본다.
...그래, 그래. 나도 저 때는 진짜 돈 없었지. 쟤가 몇살이더라? 그때쯤이면 30만? 아이고 숨막혀. 그래, 사주고 말지. 아까 본 것도 있고 하니...
"알았어, 사주면 될 거 아냐. 아― 제기랄, 대식가 파트너가 잘못 걸려서 지갑 쫑나게 생겼네." "탄탄멘이고 팬케이크고 다 사주마. 근데, 대신..."
"하아?! 대식가라뇨?! 이 정도는 보통이라고요?? 원래 디저트배는 따로 있는거니까!!!"
진짜 많이 먹는 사람을 못 만나 본 건가? 나는 소식가라고 소식가! 대식가는 탄탄면에 선배의 미소라멘까지 다 뺏어먹고 팬케이크로도 모자라 와플 크레페 파르페 등등등 하여간 끝없이 먹어대는 쪽이고! 나 정도면 엄청 조금 먹는 건데!!
"그리고 오늘 하도 놀라고 그래서 칼로리가 엄청 필요하다고요. 누구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흥!하고 또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다 사줄테니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해달라는 말이 들렸다. ...바, 바라던 바라고... 나라고 이런, 그, 오늘처럼, 이것저것 보고, 보여지..고오오... 그런 거... 할 수 있으면 다 잊고 싶거든요오오....
"......그, 그러죠 뭐... 저, 저도 빨리 잊어버리고 싶거든요 이런 끔찍한 날은...." "그니까 그냥.. 얘기하지 말죠 우리....."
좀 전에 발끈했던게 무색할 정도로 추우욱 가라앉으면서 말했다. 아니 진짜로. 완전.. 그냥.. 없었던 걸로 하고 싶어. 아니. 없었던 걸로 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나랑 선배의 기억마저 뽑아서 분쇄기로 갈아서 저기 도쿄만에 뿌려버리고 싶을 정도.
"어차피 오늘 있던 일... 자세한건 우리말곤 아무도 모르니까. 우리만 얘기 안 하면 다들 모를 거고...."
....근데 아까 사이버팀에서 와서 수갑 잘라준 사람, 뭔가 엄청 중얼거리면서 의미심장하게 이쪽 보고 가던데. ....바, 발소리도 어디선가 비슷한 걸 들었던 기분이.... ......어디였지... 화장실...? ..............아니아니 설마. 아니겠지. 응. 나 귀는 좋지만 가끔 착각하는 일도 많으니까. 분명 착각일거야. 응. 고개를 붕붕 저으면서 불길한 느낌을 털어냈다. 그래! 이런 건 탄탄면으로 털어내버려!! 소파에서 팍 일어섰다.
>>110 ㅇ와 우와 이거 완전 진짜 우와 헤카땅이잖아...🥹 엄청난 노래네요... 좋은 노래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히히히... 그리고 사키쨘... 눈치깠구나😏 히메이는 서로 없던 일로 하자고 했는데 사키쨘이 슬쩍 흘려서 결국 4기수 전체가 알게 된다던가 해도 재밌을 거 같아요 히히힉....
히히... 원래는 자연발생한 헷쨔였다가 2다이랑 만나고서부터 어느샌가 집에 빛바랜 가족사진이 걸려있다던가 옷장 근처로 가면 몸이 떨린다던가 기억 한구석에서 부모님이 반겨주고 있다던가 해가 일찍 지는 겨울 무렵 문을 열고 들어온 금발의 강도가 언뜻언뜻 2다이랑 겹쳐보이기 시작하는 헷쨔
👿 이건 내가 아니야. 난 이런 기억없었어 👿 ....하지만 나야.. 기억도.. 어느샌가 생겼어... 하고 떨리는 손으로 가족사진을 만지는 헷쨔...히힉... 2다이가 옆에서 나데나데해줘서 간신히 만져보는 중일거 같아요🤔 어쩐지 그냥 헷쨔는 이거 뭐야 싫어 이상해 이러면서 안 보고 회피했을 거 같기도 하고🤔
2다이가 한 번 보기라도 하라고 내밀었는데 싫다고 뿌리쳤다가 액자가 떨어져 깨지는 걸 본 거 같아요 근데 그렇게 깨진 액자틀에 숨겨졌던 부분에 사실 멧쨔가 자매처럼 같이 찍혀있어서 헷쨔가 발에 조각 박히는 것도 상관 안 하고 다가와서 떨리는 손으로 사진 주워드는 거라던가...🙄 그런 광경이 스쳐지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