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축제 관련으로 뭘 하던가. 특별히 기획하고 있는 것은 없었다. 누군가는 카페에서 관리하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쓰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떻냐고 말했지만 카나타는 그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카페에서 관리하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도록 할 생각은 그에겐 없었다.
어쨌든 조금 더 조용히 생각을 하던 카나타는 뭔가를 떠올렸는지 마이에게 이야기했다.
"...축제 관련은 아니지만, 가끔은 카페에서 돌보는 강아지들을 나눠서 산책시켜줄 사람은 가끔 필요해. ...카페에서 일하는 알바생도 있긴 하지만, 아직 혼자 맡기기엔 조금 불안해서."
이름이 아마 호리이였던가? 같은 반 남자애들 사이에서 가끔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듣기도 했고, 자신의 카페에서 실제로 알바를 하는 아이였기에 이름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 있어선 아직은 불안불안한 알바생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애와 함께 산책을 시키는 것을 부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마이에게 이야기했다.
"강아지들은 산책을 시켜주면 좋거든. 엄마와 아빠도 하고, 나도 시키지만 역시 가끔은 손이 모자랄 때도 있어서... 그리고 미야마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으니까. 축제 관련은 아니니까 집행부 일과는 상관없지만."
이어 그는 조금 길게 침묵을 지키다가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마이에게 이야기했다.
>>825 좋아! 그럼 소꿉친구만! 그렇다면 반은 다르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래야 아무래도 다양한 관계성이 나올 수 있을테니까! 2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가 올해는 다른 반이 되었다 루트 괜찮을 것 같아!
코하네가 날씨가 좋다고 수업을 빠지자고 하면 카나타가 한숨을 쉬면서 오히려 옷소매를 잡고 교실로 질질 끌고 가는 루트가 나올 것 같은데...ㅋㅋㅋㅋㅋㅋㅋ
"3학년이잖아. 공부해야지." "...나처럼 가업 이을 거 아니면 대학 가는 것이 좋잖아."
이런 느낌으로 말이야. 카페의 장식 구해줬다는 거 괜찮겠다! 그렇다면 강아지&고양이 카페에서 필요한 물건이나 애들 사료 같은 것을 코하네네 잡화점에서 아예 계약을 해서 구입을 하고 있다라는 느낌은 어떨까? 그래서 가끔 카나타가 물건 구입하러 찾아가기도 하고, 코하네 집 쪽에서 좋은 물건이 있으면 코하네에게 부탁해서 카페로 배달을 보낸다던가 그런 느낌으로!
미야마 마이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마이의 얼굴은 무슨 생각이 그 안에서 흐르고 있는지 알지 못 할 법한 맹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 안에서 그 어떤 생각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의 심상은 오롯한 개인의 것이고, 타인은 그것에 침범하거나 엿볼 수 없으니까. 허나 확실한 것은 마이는 마이 나름 대로 부탁 받은 것에 대한 생각을 해 보고 있는 중이였다.
"응?"
거절을 못 해서 도움을 준다니. 아 맞아. 예전에 친구중에 "너는 맨날 하겠다고만 하더라." 정도의 말을 한 것은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카나타가 지금 하는 말은 그런 의미일까.
"잘 모르겠지만, 나 강아지 좋아해. 사람 도와주는것도. 도움을 받아서 카나타가 기쁘다면 나는 그걸로 좋아. 강아지도 산책 많이 하면 좋아하잖아?"
물론 못 본 사이에 카나타의 카페에 아주 아주 빨리 달리는 덩치 큰 강아지가 생겼더라면 마이로는 무리겠지만, 그런 소식을 들은 적은 없었다. 어차피 남는 것이 시간인 시람이 미야마 마이였다. 그렇지? 하고 다시 쪼그려서 골든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골든에게 의향을 물어본 것인데, 이야기를 알아 들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때에 맞추어 작게 짖는 소리를 내었다. 우후후 하고 웃으며 잠시 골든의 정수리를 긁어주고는 그 자세 그대로 카나타를 올려다 보았다.
마이에 대해서 그가 정확하게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은 들은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당사자가 직접 강아지를 좋아하고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자신이 그쪽으로 더 생각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게 카나타는 결론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선에서 축제를 준비하는 이를 찾아서 도움을 주면 된다고 생각해."
자신은 그냥 개인적인 부탁이었지만, 축제를 준비하는 이들 중에선 잔심부름을 필요로 하는 이도 있을테고, 함께 하려는 이를 찾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그녀 주변에서도 그런 이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카나타는 넌지시 그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였다.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이제 와서 괜찮다고 말할 생각은 카나타에겐 없었다.
자신의 카페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자신이 마다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골든은 자신의 정수리를 긁어주자 괜히 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하지만 딱히 앞발을 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옆에서 카나타가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를 3번 읊은 탓이었다. 말 그대로 기분이 좋아도 달려들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렇게 골든을 어느 정도 진정시킨 후에야 카나타는 자신의 앞머리카락을 정리한 후 차분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네가 시간이 될 때라면 언제라도. ...여름방학이잖아. 지금."
즉, 네가 오고 싶을 때 오면 된다라는 의미였다. 물론 바쁘거나 일정이 있으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말을 덧붙이며 카나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야기했다.
"...운이 좋다면 알바생도 볼 수 있을 거야. 그 애도 우리 학교 아이니까... 축제 관련으로 뭘 할지도 모르는 거고."
확실히, 집행위원의 일을 도와주는 것 또한 축제를 위한 일이겠다는 판단은 내릴 수 있었다. 스스로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없다면, 그런 만듦을 해나가는 이들을 옆에서 돕는 것도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마이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표류하던 여름방학에 목적지가 생긴 것이다.
카나타가 기다리라는 말에 잠시 멈추었다가 골든을 향한 말이라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양 손을 탁 탁 털고 다시 일어났다.
"지금? 좋아."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강아지들은 있나 찾아보았다. 언제라도, 여름방학이잖아, 지금. 이 말을 지금 도와 달라는 의미로 알아들은 것이다. 골든 하나 뿐이지만 길을 잃으면 찾아 줄 수는 있겠다며 덧붙였다. 사람의 말에서 문맥을 잘 짚지 못 하고 말머리나 말꼬리만 떼다가 이해해 버리는 것 또한 미야마 마이가 종종 보이는 행동이었으니, 카나타에게 아주 낯선 반응은 아니었을 것이다.
설마 여기서 지금이라고 말할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카나타는 살짝 당황했다. 물론 낯선 반응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당황하는 것은 또 별개의 일이었다. 다음에는 좀 더 확실하게 날짜를 지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카나타는 생각했다. 사실 지금 당장만 아니라면 언제 와도 상관없었기에 굳이 더 말을 하는 일은 없었다.
"한 달 정도 되었을거야. 내 기억에는 그래. 여자애고."
아직은 불안불안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을 하는 애니까 언젠가는 조금 더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와중 카나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었다. 애초에 지금 카페의 점장은 자신이 아닌데 왜 자신이 이걸 걱정하는지. 자신이 카페를 물려받은 후에도 그 애가 알바로 일하고 있다면 그때 걱정해도 괜찮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었다.
"덧붙여서 1학년. 호리이 하나요. 카페에 왔을 때 키 작은 여자애가 있으면 그 애야."
자신이 있으면 소개를 해주면 되겠지만, 자신이 없을 때 마이가 올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렇기에 그 정도로만 이야기를 하고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골든은 그 휘파람 소리에 귀를 쫑긋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카나타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소원. 이루고 싶은 거 있어?"
여름 축제에서 어떻게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라는 말은 학교에서도 꽤 유명했다. 과연 눈앞의 이 여자애는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을까. 그런 호기심이 들어 그는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질문했다.
새벽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여명은커녕 하늘 한 켠 푸르러지지도 않은, 어둠이 완연한 토키와라. 화려한 도시의 야경은 저 지평 너머에서나 그 끄트머리를 조금 반짝이고 있고, 모두가 잠든 토키와라를 비추는 것은 길을 따라 드문드문 늘어선 가로등들뿐이다. 그 어둠을 애처로이 가로지르는 하얀 가로등 아래에, 소년 하나가 길을 잃고 서 있었다.
급히 꿰어입은 트랙팬츠와 운동용의 딱 붙는 반팔 티셔츠. 제대로 옥죄지도 못한 운동화 끈은 진작에 풀어져 발목에 널부러진 꼴이 되어있고, 까치집을 겨우 면한 머리는 딱한 꼴로 늘어져 흐트러져있다.
누가 보더라도 확신할 수 있는, 그래, 흉몽에 쫓겨 도망나온 꼬락서니. 어디로든 나왔으나,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머물지도 못하는, 그래,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
나는 왜 길을 잃은 걸까. 여기는 내 고향. 내가 나고 자란 곳. 우리 동네인데. 한시도 잊지 않았던, 내 기억에 무엇보다도 뚜렷이 남아있는, 지금까지 내내 돌아오고 싶었던, 내가 돌아올 곳, 분명히, 이제 집으로 돌아왔는데. 토키와라로. 계속 그리던 집으로 돌아온 건데......
─낯설다 역시, 낯설다
분명히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골목 모퉁이의 잡화점도 여름의 녹음도 매미 소리도 집 뒷편 오솔길 따라 올라가면 있는 작은 연못도 책가방 메고 자박자박 걷던 마을 길도 그 위로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도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었던 것처럼 자신이 기억하던 자신이 나고 자란 토키와라 그대로였는데
마치 여기에 처음 발을 들이는 이방인이나 되기라도 한 것처럼 낯설다
마치 자신을 두고 모든 것이 변하기라도 한 것만 같은, 그런 기분에 미카즈키는 문득 공포에 질렸다
어리석기도 하지, 변한 것은 미카즈키 자기 자신뿐인데- 그 풍경이 소년을 책망하는 것만 같아,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어서는 입 밖으로 단말마처럼 변명을 내뱉어버리고 만다
이렇게 크고 작은 소통에서의 불편은 마이에게 있어선 자주 있는 일. 하지만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었기에 쑥쓰러운 듯 자신의 귓볼을 만지작거렸다.
미야마 마이는 조용히 카나타의 말을 들었다. 작은 1학년 친구, 후배겠지? 이름은 호리이 하나요. 기억했다. 아마. 휘파람 소리에 골든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나타의 곂으로 간다. 부럽네. 마이도 강아지를 기르고는 싶었지만, 캠핑장인 만큼 어떤 손님이 올 줄 몰라 섯불리 기를 수 없었다. 그리고 휘파람 부는 것도. 미야마 마이는 휘파람을 불 수 없다.
"음~ 내가 소원을 빌 기회가 올 지는 모르겠어서, 잘 생각 안 해 봤어. 분명 나보다 간절히 소원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테니까."
신님이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자신보다는 다른, 그러니까 더 절실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무엇보다 소원까지 필요한 일이 현재 마이에게는 없기도 했고.
"딱히 상관없잖아. 한 사람의 소원만 들어주는 만화도 아닌걸. 다른 사람의 소원이 어떻건, 소원이 있으면 그냥 빌면 돼."
지금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오직 한 명의 소원만 들어주는 세계가 아니었으니 소원을 품고 비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카나타는 생각했다. 물론 자신의 소원을 빌지 않겠다는 이는 그 자체로도 딱히 상관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또한 개인의 의지였으니까. 말을 마친 그는 살짝 무릎을 굽힌 후에, 골든의 턱을 살살 만져줬다.
"...있어."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기적이고, 일부 마을 사람들은 정말로 싫어할지도 모르는 그런 소원이 그에겐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 소원을 품는 것을 그는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이기적이면 어떤가. 자신의 바램인걸.
"...일부 사람들은 싫어할지도 모르는 소원이지만, 하나 있어. 뭔진 비밀이야."
소원을 말하게 되면 소원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카나타는 그녀에게 물을 때도 소원이 뭐냐고 묻진 않았다. 있냐고 물었을 뿐이지. 이어 잔잔한 미소를 머금던 그는 다시 다리를 편 후에 마이를 제대로 마주했다.
"대신 소원까지는 아니지만, 불꽃놀이는 보고 싶어. 올 여름 축제 때."
이나리 신님을 본따서 만든 불꽃이 터졌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하면서 그는 저도 모르게 밝은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