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키와라 고교 여름 축제 학생 준비위원회, 일명 집행부. 축제 구성에 참여하는 것이 주업무인 그 집행부에 자신이 포함되었다는 것에 대해 카나타는 아무렴 어때. 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은 대학에 별 뜻이 없었기에 다른 3학년들처럼 공부에 치중하는 것이 아닌만큼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다. 물론 지역 대학에 가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순위. 만약 갈 수 없다면 딱히 갈 생각은 없었고, 굳이 여기서 더 노력해서 성적을 올릴 생각도 그에겐 없었다. 그렇기에 축제를 도와주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축제 분위기는 그도 좋아했었기에, 나름대로 여름 축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였다.
"가자. 골든아."
지금 카나타는 자신의 집에서 운영하는 고양이&강아지 카페의 간판스타 중 하나인 골든 리트리버종인 '골든'을 산책시키는 중이었다. 더운 여름 날씨라서 산책을 쉬고 싶을법도 한데, 설사 더워서 죽는 한이 있어도 산책은 빼놓을 수 없다는 골든의 고집조차 카나타에겐 상당히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래도 더운 날씨에 지치면 안되니, 산책 전에 가볍게 차가운 물로 몸을 식혀주고 물기를 닦아주는 것도 그는 잊지 않았다. 이러면 상대적으로 조금은 시원하게 느끼겠지. 그렇게 판단한 카나타는 골든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바닷가쪽으로 가볼까 싶었지만, 오늘은 무난하게 나무가 우거진 휴양림 쪽으로 가서 그늘길을 걷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가는 길에 골든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날때마다 골든은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큰 소리로 멍! 멍! 소리를 내며 응답했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서 그는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휴양림에 도착한 그는 천천히 여유롭게 앞으로 걸었다. 그러다 아는 이가 보이면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 후에 상대를 보고 인사를 했을 것이다. 아마 골든도 상대를 보고 꼬리를 크게 살랑살랑 흔들면서 멍! 멍! 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인 일, 또 누군가는 숙제 감면을 위해, 누군가는 부탁 받았으니까.. 푹푹 찌고 습한 여름의 기간 동안 각자의 이유로 집행부의 일을 받아들였겠지. 미야마 마이는 그중 부탁 받았으니까 라는 이유로 승낙하게 된 케이스였다. 본성이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인데다, 여름 방학 숙제도 없애준다고 하시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안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았고. 문제는 도대체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으으음..."
답지 않게 고민거리를 머릿속에 든 체로 자택인 캠핑장 근처를 걷기 시작했다. 평생을 이 숲과 호수와 바닷가에 안겨 산 만큼 눈을 감고 걸어도 그 길이 훤하다. 물론 눈을 감고 걸으면 넘어지기 쉬우니까 그러지는 않았다.
어쨌든, 생각은 진전되지 않은 체로 걷고 또 걷던 마이의 앞에 금빛 털뭉치가 눈에 보였다. 골든, 카나타의 강아지. 이전까지 지니고 있던 고민은 그 순간 눈 녹듯이 사라져 밝은 미소를 지닌 체 다가갔다.
"골든~"
특유의 힘빠지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카나타의 시야에서는 사람이 걷던 길이 아니라, 아예 야지에서 마이가 툭 튀어 나온 것 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마이는 골든의 앞에 쪼그려 앉아 그 털뭉치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그제서야 카나타가 눈에 보였다.
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그에 비해 골든은 정말로 반가웠는지 꼬리를 크게 살랑살랑 흔들며, 카나타를 이끌려는 듯, 앞장서서 마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카나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골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골든은 이내 마이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달라는 듯이 고개를 숙이는 것은 덤이었다.
"보다시피. ...그러는 너는?"
적어도 자신의 눈에는 사람이 걷는 길이 아니라 야지에서 튀어나온 것처러 보였기에 그는 절로 의문을 갖고 마이에게 물었다. 물론 산책을 꼭 사람이 다니는 길로 가란 법은 없으니, 그녀가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고 해도 그는 크게 이상하게 생각할 마음은 없었다. 조금은 신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그렇고..."
거기서 말을 잠시 끊은 카나타는 가만히 마이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이 애는 축제때 뭘 준비하는 것이 있나? 만약 있다면 그것을 돕는 것이 자신의 일이었다. 물론 의무는 아니라지만, 역시 이런 일이 있으면 그냥 도와주는 것이 적성에 맞다는 듯, 그는 다이렉트로 그녀에게 물었다.
>>799 니시키리네 어르신이랑 입씨름을 하는ㅋㅋㅋ 작은 이야깃거리도 좋은 일인걸요. 주책할배가 이리와가 팔 좀 주물러봐라 같은 말 하고(용돈주려는 목적) 이즈미가 주물러주려고 오는데 의외로 근육통이나 그런 아플 법한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서 꾸욱 눌러서 주무르면 시원하게 느끼실지도 몰라요?
골든이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카나타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기분 좋아하는구나. 골든. 나중에 집에 가면 나도 긁어줄게. 거기. 그런 속마음을 굳이 내비치진 않으며, 그는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어느 순간 돌아갔다. 그 와중에 들리는 말. 고민. 뭔진 모르겠지만 고민이 있다고 하니 그 관련으로 들어보는 것이 좋겠거니 생각을 하던 그는 그녀가 일어서는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는 와중,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마이의 입에서 답이 나왔다. 집행부로 뽑혀서 뭘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는 말. 그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집행부?"
집행부. 집행부라고 하면 역시 토키와라 고교 여름 축제 학생 준비위원회. 그것 밖에는 없었다. 이 아이도 집행부인 것일까. 그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눈을 뜨고 특유의 무덤덤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뭘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여름 축제를 구성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물론 자신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었다. 집행부가 된 것은 자신 역시 처음이었고, 자신도 정확히 뭘 하면 좋은지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자신이 왜 뽑혔는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이런저런 일을 불만없이 수행한다는 소문이라도 들은 것일까. 티 많이 안 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표정은 다시 원래의 표정응로 돌아갔다.
"네가 하고 싶은 부스가 있다면 일단 열어도 될테고.. 도움이 필요한 이가 있으면 도와줘도 된다고 생각해. 나처럼."
>>809 어제 동갑이 아닌 소꿉친구를 구했으니 이후엔 동갑인 소꿉친구도 구해보자! 라는 느낌으로 찾고 있었거든! 셋 다 좋으면... 다 섞어도 나는 상관없어! 맞아. 나도 토박이라는 거 보고 살짝 거론한 것이기도 해서! 반대로 카나타가 코하네의 잡화점에 찾아가서 언제까지 그렇게 잘 거냐고 넌지시 잔소리를 하는 그림도 그려지는걸! 막 졸고 있는 거 보이면 눈앞에서 박수 짝짝을 칠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토박이라면 자연스럽게 가족들도 쭉 토키와라에서 지냈을테니까 부모님들끼리 아는 사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마을이 그렇게 큰 것이 아니니까 사실 어릴 때부터 놀았던 인연이 지금도 이어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으니 둘 다 합치는 것도 괜찮다!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 카나타를 향해 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하는 시선을 카나타에게 두면서도 자신의 발밑에 있는 골든을 향해서 자꾸만 시선이 내려갔다.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캠핑장에 오는 다른 사람들의 애완동물들도 쓰다듬고는 하는데, 오래 보아온 골든을 보면 그러한 마음을 억누르기가 특히 힘들다.
"뭐든지?"
저 북방의 초원에는 지평선의 끝부터 끝까지 탁 트인 밤하늘을 보고 온 세상이 자신의 것과 같다며 시원함을 느끼는 사람과, 그 무게감에 도망치고 싶은 사람 모두가 있다고 했다. 만약 마이가 갔다면 후자일 것이다. 평소에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의욕이 높은 사람이라면 이 집행부라는 직책을 통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면 되겠지만. 마이는 오히려 그 광오함에 길을 잃었다. 잠시 스쳐가는 카나타의 씁쓸한 표정을 보았다. 하지만 금세 원래의 표정을 짓길래 마이 또한 잊으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