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 하늘에서 빙빙 돌고 있는 하피 나이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떠오르는 건 있었다. 알렌을 위로 집어던져 하피에게 충돌시키는 것 이었다. 그 뒤 알렌이 하피를 상대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면 어찌저찌 되지 않을까 ? 하지만 문제는 알렌을 어떻게 집어 던지냐 인데...
"알렌씨 저 엄청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어째서 8층의 시련이 하피나이트 상대였는지 전부 알아넀습니다. "
윤성은 알렌을 속이기로 하였다!
"6층의 시련 기억나십니까? 절벽을 타고 오르는 것 이었죠? 저희는 은연중 상대방이 유리한 환경에서 싸우며 그 환경을 극복하는 것을 주제로 계속 시련을 돌파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거친 혼란과 혼돈이 이어졌다. 사람이 죽는 것은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오래된 통조림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 더 큰 가치를 지녔다. 그런 세상에서 서로의 배신이나, 목숨을 건 도박 따위가 이어지면서 우리들은 천천히 살아남았다. 많은 것을 포기한 결과로 얻은 생존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게이트가 열렸을 때. 아이들이 도망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고 몬스터를 향해 돌부리를 던지며 시선을 끌려 하는 모습들에 물었을 때. 아이들은 답했다. 이것이 당연한 것이지 않냐고.
짧은 삶. 그런 아이들에게 삶 전체는 살아남기 위한 역사였을 것이다. 단지 하루를 먹어 살 수 있으면 다행인 시대에 태어난 대가로 아이들은 살아간다는 것을 살아남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 말이 우리의 가슴을 옥죄었다.
우리들이 행복을 꿈꿨을 때. 아이들에게 가진 기대는 단 하나였다. 이런 시대가 지나간 후 아이들만은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랐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단지 우리보다 조금 더 잘 살아남을 아이들만 남기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이 미친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쉴 곳이 필요했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더 나은 하루를 바라고, 이 하루가 지치더라도 내일은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곳. 단지 살아남는 것 뿐만 아닌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곳. 무기를 잡을 이유가 생긴 이들이 무기를 들기 시작했다.
『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겪은 시대는 우리들을 안주한 시대라고 볼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쌓아낸 시대 위에 피어날 새로운 시대는 우리들을 미련한 희생자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상해보라. 처음으로 문이 열렸을 때 우리의 마음에 남아있던 희망은 언젠가 우리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대로 꺾이고, 무너지게 되었을 때. 우리 뒤에 남을 이들은 무엇을 받게 될까. 단지 무너진 세상을 지켜보며 이런 세상이라고 알아버리진 않을까? 영원히... 우린 사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다 사라지진 않을까? 』
혼란은 점차 이해로, 또한 안정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들은 몸 눕혀 쉴 곳이 없었다. 게이트와 대적할 힘이 생긴 이후. 우리들은 이런 세상을 단지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게 옳을까?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만족해야만 할까? 그렇다면, 우리들은 성공한 것일까? 아니다. 결국 우리는 사회를 그리워한다. 사람과 사람이 엮이며 살아가던 그 시대를 그리워했다. 그 시대가 주던 안정감을 그리워한다. 물론, 그 시대가 주는 불안과 문제점 역시도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그렇다 한들 누구도 멸망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들 뿐일 것이다. 우리 뒤로 태어날 아이들은 이 멸망한 시대를 바라보며 자라게 될 것이고, 그런 아이들에게 사회란 실패란 이론에 속할 뿐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만 남는다. 이 투쟁의 시대에, 다시금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뿐이었다. 더 나은 미래가 없어도 좋다. 그러나 멸망한 시대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보단 더 복잡한 세상을 바라보며 살 자격을 내 뒤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