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사람들에겐 탓할 것이 필요했던 것일 거다. 미하엘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다면 제법 슬플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도시의 주민들이 지붕 위에 있던 자신을 발견한 건 생각해 보면 미하엘에겐 운이 나쁜 일이었다. 그야 평소엔 하늘을 보지도 않던 이들이 이때 위를 보다가 저와 마주쳤다 하면 그게 운이 나쁜 게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무어라 고성을 내지르는 주민들을 내려다 보던 미하엘은 오늘은 감시하기 좋지 않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감시라고 해봤자 그저 추락자와 주민들 간의 소란을 지켜보는 게 다였지만, 미하엘이 스스로 그 행위를 감시라고 칭하니 감시라고 하겠다.
어쨌든, 미하엘은 턱을 괸 채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네 모습을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 때문인가. 어쩌면 네가 했던 행동을 아는 주민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네 모습에 순간 사위가 조용해졌다. 뒤늦게 너를 발견한 미하엘이 네 인사에 손을 흔들었다.
“안녕, 영원.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네?”
그것도 잘 어울린다며 천연덕스럽게 한쪽 뺨에 고개를 기댄 채 말하는 모습은 느긋하기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주민들을 무시하는 행동과도 비슷했다. 그야, 방금까지 자신들이 고성을 내질렀음에도 반응하지 않던 이가 네 말과 모습에 반응한다는 건, 누군가에겐 무시로 여겨지는 행동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주민들은 고민한다. 네 기행을 본 이들은 네게 해를 끼치기를 생각하지 못할 터다. 하지만 미하엘은 달랐다. 미하엘은 가만히 있었을 뿐이고, 특별히 해를 끼친 것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주민들에게 있어 손쉬운 먹잇감이라는 느낌을 주었으리라.
⋯⋯검불의 나뭇잎이 눈을 자꾸만 찔러서, 조금 더 괜찮은 구덩이를 파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끈기 있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는 이방의 존재들에게 결코 친절한 곳이 아니다. 마을에서 엿들은 이야기를 통해 이미 '추락자'가 경계를 사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아니, '우리'가 쫓기고 있다는 것은 방금 전에야 확실해졌다. 지금 추락자들은, 연행되어 가거나 심한 경우에는 체포되고 있다.
그들이 내가 추락자라는 걸 알아볼까? 아마 아니겠지. 하지만 협박이든 회유든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 다른 추락자를 끌고 와 나를 비롯해 숨어 있는 추락자들을 색출해 낼 가능성은 없을까? 0%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이 사랑스러운 사과를 먹을 수 있는 것도 당분간은 끝이라는 말이다. 골목에서 상인에게 재롱을 부리고 얻은 '신선한 과일'⋯⋯. 이제 이런 걸 구하기도 어려워지겠지. 다음 식사부터는 숲에 숨어서 쥐라도 사냥해 잡아먹어야 할까? 나는 숨을 죽이고, '오독'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송곳니를 밀어넣었다. 달콤한 과즙이 뇌를 자극한다.
그때⋯⋯ 덤불 바깥의 오솔길에서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사과를 문 채로 납작 엎드려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귀보다도 먼저 놀란 것은 영민한 코였다.
킁, 킁킁. 킁킁킁.
결코 유쾌한 냄새가 아니다⋯⋯! 기침이 나오려는 순간 주둥이를 팔로 감싸 소리를 죽였다. 매캐한 향⋯⋯. 독성의 무언가. 궐련? 아편? 무엇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이 주변에서 마주친 적이 없는 종류였다. 타르의 비중이 크다. 말인즉 연소 중인 연기라기보다는 이미 타고 남은 물질, 그러니까 몸에 밴 냄새일 것이다⋯⋯. 한 가지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천천히 발걸음 소리를 분석했다. 보폭이 크다. 나뭇가지를 밟을 때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인간⋯⋯ 남성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50미터쯤 멀리서, 다가오고 있다. 이쪽을 향해서.
한 입 베어문 사과를 풀숲에 숨기고, 길을 가로막듯이 뛰쳐나왔다.
"⋯⋯."
그리고 거리를 좁히지 않고,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도 않은 채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 세계에서 본 적이 없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추락자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곧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적의를 품고 다가온다면 충분히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만일 그가 지금 상황을 벗어나게 해 줄 용사라면, 따라가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
쯧.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회귀자는 경비대와 사람들을 피해 숲으로 빠져나왔다. 관문을 통과할 수 없어 그 높은 성벽을 타고 올랐더니 온 몸이 삐걱삐걱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보수가 잘 되지 않은 성벽은 발 디딜 틈들이 많았고, 성벽의 너머에는 삭은 낙엽들이 쿠션이 되어 주고 있었다.
덕분에 몸이 삐걱대긴 했지만, 특별히 다친 곳 없이 빠져나온 회귀자다. 그는 차박차박 발걸음을 옮겼다. 오솔길을 지나 길이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해.
사실은 경비대와 함께 이동해도 좋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제 ‘경고’를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인 이 때문이었다. 우선은 좀 더 상황을 파악한 뒤 움직여야겠다고, 회귀자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
무언가가 불쑥, 검불 틈을 뚫고 튀어나와 앞길을 막았다. 햇빛과도 같은 금빛의 털, 툭 튀어나온 주둥이와 처진 귀, 그리고 네 개의 발로 땅을 디디는, 이건······.
“개? 아니, 추락자인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것을 경계했던 회귀자는 그와 동시에 저 개가 추락자임을 알았다. 다양한 종족의 추락자와 마주친 자신이지만, 아예 개와 만난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덜 경계할 수 있다. 회귀자는 경계하던 몸에 힘을 풀고 추락자를 바라본다.
“내 말, 알아 듣습니까?”
필시 알아들을 것이다. 말을 걸며 천천히 한 걸음을 뗀다.
“그리로 가겠습니다, 추락자. 내 말을 알아 듣는다면, 가만히 있으십시오.”
방금까지 피웠던 것 때문에 제가 미쳐버린 게 아닌 이상, 저 개는 추락자가 맞다. 회귀자가 다시금 걸음을 뗀다.
추락자다. 개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지만, 그보다도 앞서서 머리가 '깨닫고' 있다. '떨어지던' 순간 추락자에 관한 지식을 머릿속에 통째로 쑤셔넣어졌을 때처럼, 눈앞의 남자가 추락자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동류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게 평화로운 상황이 아니다.
그 '도서관'에서 튕겨나듯 다른 세상으로 떨어졌을 때는 당황했지만, 도서관의 지식이 내게 준 선물이 있다면 바로 어디서나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함과 배짱이었다. 모든 현상은 어찌됐든 충족이유율의 굴레에 속해 있으므로,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오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세계의 방식 역시도, 조금 시간은 걸렸으나, 곧바로 꿰뚫어볼 수 있었다. 동서고금의 지혜를 되짚어 봤을 때, 나불나불 말하는 개가 경계를 살 것이라는 사실은 겪어 보지 않아도 명료한 법. 때문에 '떨어진' 이후에도 줄곧 말할 줄 모르는 평범한 들개 행세를 해 온 나였다. 그 규칙을 깨고, 오랜만에 입을 여는 데는 약간의 용기와 심호흡이 필요하다.
"⋯⋯그보다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머릿속에서 말들의 퍼즐을 짜맞춰 적절한 질문을 생각해 낸다. "선생, 당신이 내 적이 아니라는 걸 이 자리에서 증명해 주세요."
나는 도망칠 기색을 나타내지 않고, 꼬리를 낮게 깐 채로 비스듬하게 섰다. 도움닫기에 필요한 1초 이하의 짧은 시간을 아끼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국면이니까.
'적이 아니라는 사실의 증명'이라. 말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것으로 좋다. 중요한 건 그 내용이 아니라 반응이다. 거짓말을 하는 순간의 시선이나 가식을 지어내는 순간의 망설임⋯⋯. 그만한 단서만이라도 내비친다면 신뢰할 수 있거나 없거나의 확신을 세울 수 있다. 나는, 얼굴의 근육부터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까지 신중히 눈에 담고 있다⋯⋯.
"뭐어? 조, 좋아한다니... 너무 오래 살아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거야? 난 누굴 좋아할 생각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마!"
좋아한단 말을 들은 윈터는 기함할 듯이 놀라며 새된 소리를 내었다. 얼굴이 붉어지는 일은 없었으나, 발을 동동 구르며 애먼 나무를 주먹으로 팍팍 쳐대는 것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에게 등을 보인 채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두어 번. 놀란 마음이 진정되고 나서야 큼큼 헛기침을 하며, 저희가 처음 들어온 동문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관으로는 가지 않을 거야. 숲으로 가자. 내게 생각이 있어."
윈터는 라크를 이끌고 동문 방향으로 향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성벽만 따라가면 되었기에 길 잃을 걱정은 없다. 가는 길에 보이는 민가. 빨랫줄에 널린 수건 두 장을 아무렇지 않게 집어온 그녀는, 그것으로 저와 그의 머리를 터번처럼 둘둘 말아 귀와 머리카락을 가렸다. 특징적인 부분만 감춰도 시선을 피하기엔 충분하단 생각에서였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멀리에 동문 위병이 보일 때쯤, 윈터는 라크를 멈춰세우고 저 혼자 상점가 쪽으로 향했다. 일전의 소란 탓인지,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로 복작이던 상점가는, 지나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고 더러는 문을 닫은 점포도 있었다. 그녀는 태연히 걸어가 어느 점포를 덮고 있는 캐노피를 홱 잡아챘다. 찌익- 천이 찢어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주민들의 시선을 끌었다. 섬뜩한 시선을 느낀 그녀는 빠르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몇몇 주민들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야! 뛰어!"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면, 윈터가 둘둘 만 캐노피 뭉치를 품에 끌어안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제법 다급한 목소리였다.
"아... 아니다. 그냥 가만있어!"
윈터는, 그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를 들어안았다. 그러고는 동문으로 곧장 향했다. 위병 둘이 이쪽을 돌아보는데도 달리는 속도는 오히려 늘어만 갔다. 이상함을 느낀 위병이 두 사람을 가로막으려 창대를 내리는 순간, 그녀가 풀쩍 뛰어올랐다. 사람 키보다 높이 뛰어오른 두 사람은 그대로 관문을 빠져나갔다.
숲 안쪽으로 얼마나 달려왔을까, 풀밭에 대자로 드러누운 윈터는 가쁜 숨을 내쉬며 입가에 흘러내린 피를 손등으로 문대어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