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마법에 능통한 엘프라면 마법사가 아니던가. 일종의 겸손일까.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지만, 사내는 의아한 듯 물었다. 자신도 기사라고 소개하지는 않으나 검객이라고 소개할 때는 있었다. 이제야 심검의 초입에 다다른 풋내기였으나, 뭐 어떻단 말인가. 정진함에 있어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으리라.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날 밤, 어쨌거나 소녀는 라클레시아의 도움으로 여관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여관 주인 마시는 여전히 상냥했다. 끝까지 그들을 믿어주려는 듯. 다행스럽게도, 갑자기 돌변해버린 주민들이 추락자들 머무는 여관에 불을 지른다던가 하는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소녀는 은근한 불안에 떨면서 새벽을 지새웠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 식사 시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시의 스튜를 맛보고 난 직후. 소녀는 홀 입구에서, 여관 바깥을 막 기웃대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 누군가 지나가면 화들짝 놀라 숨어버리기도 하며. 불안한 기류 맴도는 와중에도 상황 살피기를 이어나가던 소녀는, 곧 어떤 노인과 시선 마주쳐버린다. 평소였다면 그냥 넘길 일이었음에도 소녀는 잠깐 망설였다. 아무런 기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건대 그는 이곳 주민이었으니까.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노인이 갑작스레 버럭 화를 낸 것이다.
- 저, 저 꼬맹이!
주름 자글자글 잡힌 손가락으로, 노인은 소녀를 향해 삿대질했다. 우려했던 상황에 소녀는 덜컥 겁부터 집어먹었다. 추락자를 향한 도시 주민의 부당한 멸시. 소녀는 어제 자신을 에워쌌던 무리들을 연상한다.
- 네녀석이 놈들이랑 한 패라는 그 꼬맹이로구나!
노인이 소녀 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울퉁불퉁한 돌멩이 하나가 들려있었다. 이쪽을 향하는 짙은 악의에 소녀는 그만 주저앉아버린다.
- 네놈들만 없었으면 전부 평화로웠을 거란 말이다!
노인의 고함과 함께 돌멩이가 날아온다. 던지는 힘은 그닥 세지 않았지만 워낙에 모난 돌멩이인지라. 돌멩이 모난 부분이 소녀의 뺨을 깊게 스치고 지나간다.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 않지만, 소녀는 반사적으로 제 뺨을 감싸쥐었다. 말했다시피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동물이 털 잘린다고 하여 통증을 느끼는가? 그런 것처럼, 창조신에게 소녀의 모습이란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그렇지만, 아프진 않지만, 왠지 모르게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싶어서. 노인은 숨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이쪽으로 향하는 발걸음 멈추지 않는다.
새장 속에 갇혀있던 어린 새는 그린 적 없는 자유를 얻었다. 새장 밖의 세상은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지만, 주인이 주는 모이나 받아먹던 새가,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홀로 세상을 헤매다 처음으로 만난 것이 이 엘프였단 말이다.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살며시 다가오는 기척에, 감았던 눈을 뜬 윈터는 라크가 내민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 왼손을 들어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보았다. 윈터는 자유를 갈망한 적도 없고 행복을 바란 적도 없다. 누군가와 연을 맺어본 적도 없거니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법도 모른다.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개념조차 모를뿐더러 소중하다는 감정마저 결여되어 있다. 그렇기에 더욱 그 손을 잡는 것을 망설였다. 손을 잡자는 것이 단순한 의미가 아닐지 모른다는 의구심 탓에 더 그랬다. 마지막으로 잡았던 손은... 품 안에서 눈을 감던 ■■■는 끝내 웃음 짓고 있었다. 윈터는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그러고는 의자 팔걸이에 손을 얹듯, 라크가 내민 손 위에 툭 하고 얹어놓았다.
"그러던가."
한숨 섞인 목소리였다. 윈터는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을 슬쩍 돌아보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나무에 등을 기대일 뿐이었다.
한창의 소요가 있고서 시간이 지나 밤이 되었다. 도시의 주민들을 피해 몰래 도시 안으로 들어오는데 성공한 나와 알레프는 그대로 여관으로 직행, 다시금 숨어드는데에 성공했다. 다행히도 마시는 아직까지 우릴 믿어주고 있었기에 새벽의 찬바람을 맞으며 잠들 필요는 없어졌다. 그렇게 새벽을 지새고서 아침이 밝았다.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서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 알레프? "
바깥을 보자 어떤 노인이 알레프를 발견하고선 소리를 치고 있는 모양새였다. 아무래도 알레프가 모습을 보인 것 같은데 ... 내려가서 알레프를 데리고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노인의 손에서 돌멩이 하나가 날아가 알레프에게 향했다. 맞았는지는 여기서 보이지 않았으나 주저 앉는 것을 보면 분명히 맞았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외투를 챙길새도 없이 계단을 몇칸씩 뛰어내려간 나는 알레프에게 다가가 지팡이를 들어서 내리치려는 노인의 팔목을 잡아챘다.
" 뭐야? "
예상치 못한 방해에 노인은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나도 추락자라는 것을 알아챘는지 노인의 표정은 더욱 험상궂게 변하더니 잡힌 팔을 떨쳐내려 몸부림치며 외친다. 이윽고 팔목을 잡은 손을 놓친 나는 알레프와 노인 사이를 가로막듯이 서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 니놈들이 도시를 망쳐놨다! 여기서 썩 꺼지란 말이다! " " 하아, 앞뒤 분간이 안가시는건가요? "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며 한숨을 깊게 내쉰 나는 노인을 노려보면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노인은 겁을 먹었는지 내 발걸음에 맞춰서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었고 충분히 밀어냈다고 생각했을때 나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 당신 같은 노인네는 당장 여기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다는걸요. "
아무리 육탄전에 약하다곤해도 노인 하나쯤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 그리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처리할지에 대한 지식도 충분히 갖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앞서서 까부는 꼴은 절대 봐줄 수가 없다는 얘기다.
" 그러니까 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 "
내 협박이 통했는지 노인은 질린 얼굴로 길을 따라 곧장 사라져버렸다. 이래도저래도 우릴 미워한다면 우리도 죽기살기로 저항하는 수 밖에 방법이 없지 않는가. 그렇게 노인을 쫓아낸 나는 곧장 알레프를 향해 다가갔다.
" 알레프, 괜찮아요? 어디 다친데는 ... "
아무래도 뺨을 쥐고 있는 것을 보니 그곳을 긁힌듯 했다. 나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알레프의 앞에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마주치고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윈터는 넓은 세상을 보고싶다고 얘기했다. 나는 아직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에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예전엔 갇힌 삶을 살았다는 것이 아닐까. 자의로든 타의로든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윈터가 손 위에 그녀의 손을 올려놓자 손을 맞잡으려하며 얘기했다.
" 그렇다면 내가 길잡이가 되어줄께요. "
또 다른 추락을 한다면 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그 세계는 그녀에게나 나에게나, 다른 추락자들에게도 분명 낯선 세계일 것이다. 그러니 분명 길을 헤맬지도 모르고 막다른 길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럴때 나는 어느정도는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 물론 나도 헤맬수도 있지만 ... 같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
혼자 있는 것과 두명이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말이다. 나도 윈터처럼 나무줄기에 등을 대고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점점 떠오르고 있었다. 도시는 우리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었다.
" 기대고 있으면 안불편해요? 여기 누워도 되는데. "
나는 허벅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무줄기는 생각보다 울퉁불퉁해서 얌전히 등을 기대고 오랜 시간 있기엔 좀 부적절해보였기 때문이다. 아, 이번에도 파렴치한 소리를 들으려나.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윈터를 바라보았다.
더이상 기사가 아니라는 말에, 페일은 그 얼굴에서 보는 것치고는 꽤 분명한 감정을 드러냈다. 깊이 푹 패인 눈두덩 안에 가늘게 뜨여진 눈꺼풀이, 무언가 아주 뜻밖의 것을 마주쳤다는 듯 살짝 더 열린다. 이것만으로는 아델라이데가 던진 떡밥에 페일의 반응이 어떤지 아델라이데로서는 알기 힘들었겠으나, 페일은, 잠깐 더 뜸을 들이더니 나직이 말을 꺼내어놓았다.
"그대는 기사가 「은퇴」 하거나 「그만둘」 수 있는 땅에서 왔나 보오."
실로 기묘한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그 짧은 말에서, 아델라이데는 아주 희미한, 그러나 그 분명히 묻어있는 부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말에서는 그런 기색이 깨끗이 지워져 있었지만, 그러나 그 말도 기묘한 이야기이긴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기사가 순례를 떠나는 것이 우리 땅의 순리이자 처지요. 오히려 「정주기사」가 드물지."
기사라는 존재가 떠도는 것을 아주 당연한 상식처럼 여기는 발언. 정해진 군주를 모시며 임무를 맡아 그 이름을 걸어둘 곳을 갖는, 기사의 매우 당연한 생활양식을 그는 정주기사라는 별개의 용어로 일컫고 있었다.
"...무용담 따위로 삼기에는 재미없는 이야기요."
아쉽게도, 그가 하는 자기 이야기는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아델라이데와 초대면인 점을 감안하면, 페일의 기준으로서 페일은 이미 쓸데없이 너무 많이 지껄였다. 마경에서라도 왔냐는 말에, 페일은 쓴웃음을 옅게 흘리고는 말았다. 그러다가 페일은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달았다. 감각을 잃은 이들이 다른 감각을 보상발달시키는 것은 흔한 일이나, 아델라이데가 어찌나 자연스레 움직이던지 잠깐 그 점을 놓친 게다.
"아니, 내가 실언했소. 사과하지."
짧은 사과를 끝내고, 페일은 아델라이데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수인이라는 말에, 페일은 엉뚱하게도 윈터를- 아직 그 토끼귀의 주인의 이름이 윈터라는 것도 모르는, 이미 한번 만나본 바 있는 이의 인상착의를 떠올려보았다.
지금의 소녀에게도 노인을 저지할 재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권능을 이용해 단단한 걸로 막아낸다든지, 아예 도망쳐버리든지. 그러나 소녀는 지팡이 휘두르려는 노인의 행동에도 그저 잠자코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두려웠다. 손바닥 뒤집듯,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인간의 이중성이란 게. 예전엔 잘 몰랐지만, 직접 겪어보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위협적인 무기인지 알 수 있어서. 그럼에도 소녀를 막아서는 한 사람이 있었다. "...라클레시아..." 그는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노인은 금세 꼬리 만 개처럼 달아나버렸다. 그리고, 라클레시아가 저와 눈높이 맞추며 괜찮냐 물어온다.
"...응, 안 다쳤어."
소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뺨을 감싼 손을 내려놓았다. 헌데 다치지 않았다는 말과 달리 꽤나 깊은 흉이 져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소녀의 뺨에 묻은 액체는, 척 보아도 피처럼 보이진 않았다. 혈액보다 더욱 점도가 높아보였고 무엇보다 그 색이 오묘한 백색이었다. 마치 빛 받은 프리즘마냥, 무지갯빛 색의 파편이 담긴. 게다가 흘러내리지도 않고 그저 흉에 방울진 채로 맺혀있을 뿐. 다치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저 껍데기가 조금 손상 입었을 뿐이다. 머리카락 자른 인간 보고 다쳤다 하지 않듯이. '상처'에서 흘러나온 건 단순 '속살'이 드러난 것이며, 이는 금세 치유될 터였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라클레시아가 보기엔 어떨지.
"미안..."
어쨌건 아랫입술 잘근잘근 씹으며 사과하는 소녀는 꽤나 풀 죽은 기색이다. 괜한 행동으로 불청객을 끌어들였고, 일행마저 휘말리게 했으니.
망각이 축복이라고 하는 이들은 그 누구도 나만큼의 기억을 쌓아온 사람이 없다. 물론 평생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가는 것도 충분히 괴로운 일이니까 딱히 그들이 건방지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뿐이다. 그리고 아델이 운을 떼자 나는 그의 이야기를 기대했으나, 다음에 얘기해주겠다며 화제를 돌려버린다.
" 조금 기대했는데, 다음엔 더 살이 붙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려는거죠? "
안그런것 같아보여도 당장 어제쯤엔 죽을 것 같은 부상을 입고 들어온 환자였으니 길게 얘기하면 당연히 몸에 좋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약속했으니 그때를 기약하며 나는 아델의 묘사에 의문을 표했다. 마치 얘기하는 것이 신을 얘기하는 것 같지 않은가.
" 아델, 당신은 영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요? "
보통 종교를 믿는 이들이 그렇게 얘기하곤 했다. 의심하지말라, 부정하지말라 같은. 절대적인 믿음이 종교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덕목이니까. 그리고 지금 그가 얘기하는 모든 것이 종교인들이 하는 얘기와 비슷했다. 마치 영을 신으로써 숭배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 ... 아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네요. "
내 나름대로의 가능성은 0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믿음을 깰 생각은 없다.
" 삶이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생각보다 질긴 편이라 조금이라도 이어져있다면 무사히 건널 수 있답니다. "
알레프의 뺨은 무언가에 베인듯이 깊게 갈라져있었다. 아까 그 돌이 스쳐지나간 자국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흐르는, 아니 맺혀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은 점성이 있는듯한 액체는 피처럼 붉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지개빛이 어른거리는 백색을 띄어 자신의 신성을 강렬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녀는 신이 맞는 것일까.
"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 눈에 띄어봤자 좋을 것 없으니까. "
나는 일단 알레프의 어깨를 살짝 짚어서 여관 안으로 향하게 했다. 주변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내 행동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함부로 덤벼드는 이는 없었다. 목줄 풀린 미친 개를 건드리려면 마찬가지로 잃을 것을 각오해야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준 것뿐이었다. 그 정도의 판단을 할 이성은 남아있을테니까. 비어있는 테이블에 알레프를 앉힌 나는 마시에게 달달한 음료를 부탁하고선 알레프를 바라보고 말했다.
" 지금은 눈에 띄어봤자 좋을 것 없으니까요. 다음부턴 조심해야해요. "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선은 알레프의 뺨에 가있었다. 저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만약에 내가 있던 세계였다면 그것을 채취해서 성분이 무엇인지 바로 분석하러 갔겠지만 여기는 안타깝게도 그럴만한 시설이 없다. 알레프는 정말로 신이 맞는 것일까, 그 사실을 생각하니 속이 조금 안좋아진다.
" 아, 고마워요 마시. "
그동안 부탁했던 달달한 음료가 나왔다. 따뜻하게 뎁혀져 나왔기에 나는 그것을 알레프의 앞에 놓아주고선 손을 뻗어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려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가장 놀란 것은 그녀일테니까.
이어지는 사내의 말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라, 자신도 모르게 감았던 눈을 떠버렸다. 크게 치켜올라간 눈썹. 당황이 섞인 아, 하는 탄식. 사내는 탁한 눈으로 가만히 그를 바라본다. 실로 기묘한 이야기였다.
"...기사는 은퇴하거나, 그만둘 수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경의 기사도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군요. 실로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사내는 그리 말하며, 제 심장 위로 손을 올려 예를 표했다. 헌데, 그렇다면 어째서, 그의 말에서 아주 희미하게 부러움이 묻어 나왔을까. 사내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크게 얻어 맞은 것 처럼, 둔탁한 충격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동안의 고뇌가 해결되는 것 같은 한 마디였기에.
"실례가 아니라면, 맹세하신 기사도를 여쭙고 싶습니다만."
"아아, 이거, 실례. 제가 맹세한 기사도는... 세가지."
"선한 일을 행하리라. 두번의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악한 자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그리 말하며, 사내는 살풋 미소 지은 채, 이어지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짧게 덧붙였다.
"저는, 왕국을 멸망시켰습니다, 경."
"섬길 주군도 충성을 바칠 왕국도, 나아가야 할 순례길도 없음에, 스스로를 어찌 기사라 칭하겠습니까."
이는 자조적인 말투로, 대답을 기대하기 보단 스스로를 책망하듯 하는 말투였다.
정주 기사가 드물다라.
"같은 기사이거늘, 속했던 세계가 이리 다를 줄이야. 정주기사라는 호칭은 드문 것이라, 처음 들어봅니다."
"순례라면, 어떤 이야기신지."
그러다, 무용담 따위로 삼기에는 재미없는 이야기라는 말이 이어지자, 사내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더 캐묻는 것 역시 실례일 터.
"사과 하실 것 없습니다."
사내는 그리 말하면서 빙긋 웃어보였고, 곧이어 만나봤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에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이런 전개에서 상식적으로 나올 만한 대사다. 작가들이 자신들이 써내리는 글에 개연성과 분량을 더하고자 할 때 으레 삽입하는 전개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이런 낯선 이방인들끼리의 조우에서 나올 법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이 거짓 신과 길 잃은 순례자 사이에서, 길 잃은 순례자는 이 이방인에게 그 말을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자신이 알고 있는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각이, 이 여인이 자신과 마찬가지 처지에 놓여있음을 뚜렷하게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의도했건 아니건 세계선을 이동했고 그 결과─
"당신도 떨어진 거군. 이 세계에."
그것이 경계를 풀 근거로 충분할 것인가? ─모른다.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나 페일은 그러면 가던 길 갑시다,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기와는 달리 자신을 지킬 것 아무것도 없다고 털어놓는 그 여인의 말을 거짓이라 여길 수 없었다. 이 세계가 이방인에게도 친절한 우호적인 세계였으면 모르겠으되, 지금은 저 여인이나 자신같은 이들을 향한 이유 모를 증오가 이 세계에 팽배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마치 세계 자체가 추락자들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기라도 하듯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지킬 수단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페일은 그것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때 윈터에게 날아들던 칼날을 손을 내뻗어 막아내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페일은 횃불을 들지 않은 쪽의 손을 들어 얼굴로, 정확히는 머리에 쓴 투구로 가져갔다. 그리고 잠금장치를 풀고, 볏을 거머쥐고는 투구를 찬찬히 들어올렸다. 아아루와 별다를 바 없는 사람의 얼굴이, 피로에 찌들어보이는 창백한 피부의 남성의 얼굴이 횃불의 불빛 아래에 드러났다.
"...그건 곤란한데. 원인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 세계의 주민들은 왜인지 모르겠으나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을 매우 적대시하고 있소. 모르긴 모르나 당신도 예외는 아니겠지."
페일은 눈길을 힐끗 자신의 발치로 돌렸다. 날카로운 관통 화살촉이 달린 화살이 발목의 갑옷 틈새를 꿰뚫고 있는 것이 보였다. 뽑으려면 언제든지 뽑을 수 있으되, 지금 뽑아버리면 지혈수단이 전무하기에 그는 자신이 숲속에 꾸려둔 캠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소녀는 라클레시아가 이끄는 대로, 고분고분 여관 안으로 따라들어간다. 테이블에 앉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소녀의 뺨을 향하고 있었다.
"아..."
그제서야 소녀는, 뺨의 '상처'를 인지하고 별 거 아니라는 듯 그 부위를 손으로 슥 훔친다. 그러자 액체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흉터마저도 원래 없었던 듯 말끔한 피부로 돌아온다. 놀랐을까? 괜히 쓸데없는 걱정이 든다. 이윽고 머리로 향하는 그의 손길에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인다. 많이 놀란 데다가 꽤나 기운 없는 눈치다. 그래도 쓰다듬어주는 게 싫진 않은지 얌전히 있고.
"분명 다들, 처음엔 친절했는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꺼낸 말은, 현재 상황에 대한 울분과 한탄이다. 그 말대로였다. 그때는 간단한 심부름만으로 고기 완자를 몇 접시씩이나 얻어먹을 수 있었고. 그들이 며칠, 몇 주만에 그리 돌변해버린 이유는 뭘까? 단순히 인간(을 비롯한 인간형 생명체)의 변덕, 이중성 탓인지. 슬그머니 고개 쳐든 소녀는 제 앞에 놓인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시만이 한결같이 친절하구나.
사내는 그리 말하면서 씁쓸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결국 완전한 이해란 불가해의 영역이다. 나 자신도 잘 모르겠거늘 어찌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한단 말인가. 나는 눈 앞의 사내가 어찌 생겼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저 사내 역시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두렵다. 저 사내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영원한 기억. 영생을 사는 하이엘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영원히 그렇게 남을 것만 같아서.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죄 임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너무도 두려웠다. 영원히, 한 왕국을 멸망시킨 죄인으로 기록되는것이. 자신은 또 도망침을 선택한다. 아랫입술을 꾹 하고 깨물다가, 피가 배어나오자 아, 하고 소리내며 행커치프로 슥, 입가를 닦았다. 아무 일도 없던 것 처럼.
"예. 다음번에는 반드시."
싱긋, 미소 짓고. 이어진 의문에는, 오히려 의아한 듯 물었다.
"영 님이 신격의 존재가 아니시라는 말씀이십니까."
화를 내는 말투도, 당혹스런 말투도 아니었다. 그저 덤덤한 말투였다. 사내는 지극히 평온했다. 신이 아니다라. 사내는 오히려 의아한 듯, 가능성이 없는것은 아니라는 말에 질문으로 대답한다.
"그분께서 스스로를 칭하는 말씀을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그것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고대 엘프들의 주문과도 닮아있으나, 한낱 생명으로써는 범접할수 없는 영역. 그 언어."
"그 아가페에. 저는 진심으로, 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미 다른 신이라고 주장하는 이 역시 만나 보았으니."
"영 님께서 신이어도, 신이 아니어도 상관 없습니다... 저는 맹목적이지는 않아서요. 다만."
내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알레프가 뺨을 슥 훑는다. 그러자 상처는 언제 있었냐는듯이 말끔하게 없어지고 본래의 하얀 피부만이 남아있었다. 눈치 못챈 사이에 치유 마법이라도 쓴걸까? 아니, 그랬다면 이전에도 사용하는걸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붙는 것은 마치 뒤집어쓴 가죽을 수선하는듯한 느낌이-.
" 인간이란 원래 낯선 것에 대한 경계가 심하니까요. "
자신들과 다른 것들은 배척하는 것이 기본으로 깔려있는 종족들이었다. 모든 인간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이 취하는 태도는 그러했다. 인간들끼리도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내전이 일어난게 한두번이 아니니까. 그래서 몇번의 역사에선 연이은 내전으로 인간들의 공화국이 그대로 멸망해버린 일도 있을 정도였다.
" 우리는 그들에게 낯선 존재이고 마침 도시엔 불길한 일이 연이어 일어났으니까 ...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
하지만 그것이 너무 갑작스럽다는 것이 문제였다. 보통 그런 일이 있다면 징조라도 있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런 것도 없이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기보단 누군가 뒤에서 조종하는 느낌이 들었다.
" 알레프가 잘못한건 없어요. 그냥 그들이 그런 존재일뿐. "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눈앞의 소녀가 정말로 신이라면 나는 이렇게 평범하게 그녀를 대우할 수 없을텐데도 편안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다. 어쩌면 이것도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신격의 존재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신을 옆에서 돕고 영접까지 했던 나에겐 무언가 다르다는 것만 느껴졌다. 허나 그것은 나의 세계에 있는 신에게만 해당될뿐 영이 정말 신일수도 있었다. 그때는 신성모독이라고 처형이나 당하려나. 어떤 전개던지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난 아델이 하는 말을 덤덤히 듣고 있었다.
" 신이라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신이라는 것인가요. "
나는 그 말에 살짝 웃어버렸다. 그것은 마치 비웃음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표정은 금방 원래의 미소로 돌아왔고 이내 입술에 피가 난 것을 발견한 나는 손을 뻗어 치유마법을 사용해주려했다. 사용할때마다 무언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은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
" 축복을 앉힐 자리가 다 닳아버려서 깃들기도 전에 미끄러질 정도랍니다. 그러니 제 축복도 흘러버리기 전에 당신이 가져가세요. "
눈 앞의 사내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도 어떤 사연이 있을테고 그것은 정말 가벼울수도 정말 무거울수도 있다. 하지만 축복은 그런 것을 가리지 않고 깃드는 법이다. 아직 그에겐 닳지 않은 어떤 곳이 있기를 바라며 축복을 빌어주는 것뿐이다.
" 아, 시간이 다 됐네요. 어디 물건을 가져다주기로해서. "
마침 마시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테이블에서 일어난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 그럼 다음에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델라이데 씨. "
그렇게 나는 부엌쪽으로 향했다. 경비원에게 도시락을 배달해달라는 마시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
그가 그 말을 내어놓은 것은, 실로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하는 아델라이데의 찬사가 끝나고 나서도 몇 초가 지나서였다. 실로 부끄러운 이야기이다만, 그렇다고 묵과하고 넘어가기에는 그것은 너무도, 너무도 잘못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말을 꺼내어놓고야 마는가. 그대가 그대의 이야기를 꺼내어놓았으니, 나 역시 상응하는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
"운명이지."
문득, 바람이 멎는다. 새소리가 멎는다. 그들의 처지를 비웃듯 야속하게 내리쬐며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내리던 햇살이, 일순간 떠가던 구름에 가리어 그들의 사방으로 고요한 그늘이 드리운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저주를 읊듯, 제문을 읊듯 하는 한 마디가, 아델라이데의 귀에 와닿는다.
"노예요, 우리는. 우리는 운명의 노예야."
나직한 말소리가 어떤 언령마냥 되울리는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샌가 되울림이 끝나고, 햇살은 다시금 구름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내리쬐고 있다.
"그에 반해 그대는 그대 스스로 택할 수 있지 않소."
"스스로 자신의 죄악을 마주보고 기꺼이 짊어지고 있지 않소. 도망치거나 내버리지 않고 품고 있지 않소."
"그대 스스로가 버린 이름이나 명예를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소만, 그대에게는 아직 권리가 남아있소. 그대의 운명을 그대가 결정할 권리가."
페일은 문득 새삼스레 헛헛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왜 아델라이데를 부러워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기사란, 결국 세계를 감당하지 못한 죄인들 중에서 세계를 위한 마지막 봉헌을 간신히 허락받은 자들."
"그 덕목은 크게 다르지 않소. 꺾이지 않는 의지. 숭고한 정신. 선을 바라보는 마음. 발끝은 절망에, 시선은 희망에. 지금까지 크게 어기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소."
"그러나 우리가 맹세하는 것은 그 덕목이 아니라, 그런 덕목을 권장하는... 사명이오."
"그것이 우리 불사자들이오."
페일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것이 나를 진정으로 위해주는 말임은 알겠소.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한 말은, 내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비관적 자평이나 자책, 자기연민 같은 것이 아니오."
"죽을 권리마저 내려놓은 우리 죄인들에게 남아있는 권리같은 것은 없소."
"그 앞에는 어두운 나날들만이 있을 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뿐."
"우리에게 허락된 예의는 사명에 충실하는 것뿐이오."
"...이쯤하지. 모쪼록 양해를 바라오. 모든 세계가 다 그대가 온 곳과 같지는 않으니."
왠지 갑옷을 입은 이와 마주한 것 같다. 눈앞의 이 기사는 갑옷을 입고 있지 않다. 알 수 있다. 신발도 그저 평범한 부츠 소리고, 갑옷 부딪는 절걱절걱 소리도 없다. 그러나 아델라이데의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왜인지, 눈앞의 상대가 칠흑과도 같은 육중한 갑옷을, 운명의 관과도 같은 갑옷을 짊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전해주는 것이다.
"여관인가. 큰 도움을 받았소. 내 꼭 한번 찾아가겠소. 그러면 당신도 여관에 머물고 계신 거요?"
"그렇습니다. 나의 세계에서는 살아 숨쉬는 인간들이 즐비했습니다. 뛰노는 어린 아이들. 노래 부르는 여인들. 땀 흘려 일하는 사내들."
"엘프와 드워프, 수인과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계. 크고 작은 다툼 즐비했으나 평화롭던 세계."
"허나 마족의 침략으로 세계는 불타기 시작했고, 그 위협은 뿌리까지 자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지하 속에 숨어 우리의 약점을 찾듯 기회를 노리던 세계."
"세계를 감당하지 못했다는게 무엇입니까.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경은, 어떤 세계에서 오셨습니까."
사내는 참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긴 한숨에 짧은 숨 내뱉는 소리가 뒤섞인다. 불사자. 자신 앞의 사내 역시 불사자임을 칭하는가.
"기사는, 죄인이 아닙니다."
사내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피에 젖은 행커치프를 꺼내어 그의 뺨을 노리고 던졌다. 정확히 맞았다면 짝, 소리가 울릴 정도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사내는 나무등치에서 천천히 일어나 지팡이를 그에게 겨눈다.
"그 어떤 세계에서 왔건, 기사란!"
"죽을 권리마저 내려놓은 죄인이 아니며!"
"남아있는 권리같은것은 없다고 말 할수 있는 존재 아닐지며!!"
"그 앞에 어두운 나날이 있다고 헌들 희망을 향해 걸어가는 등불같은 존재!!!"
"나, 아델라이데 세인트 바울, 멸망한 왕국의 기사단장으로써 그대에게 대련을 청하는 바입니다."
"검을 들으십시오, 경. 그대에게 기사란 무엇인지 직접 몸으로 깨닫게 해주겠습니다."
사내는 큰 도움을 받았다며, 이어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탁한 눈으로 사내를 쳐다보다 지긋이 눈 감았다.
"경의 말이 전부 사실임은 알고 있습니다. 어떤 심정으로 그리 대답하는 지 역시."
"허나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겠습니다. 기사 된 자로써 그런 말을 뱉는다는 것. 제가 가진 죄책감과는 결이 다른, 결코 기사로써는 해서는 안될, 기사도에 어긋나는 그 태도를."
"제가 직접 고쳐드리겠습니다, 경. 검을 들으십시오."
사내는 분노했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분노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내는 그랬다. 더없이 유약하도다. 감정에 휩쓸리며 멋대로 천둥치고 비를 내린다. 흘러가는 구름 처럼 살고 싶으나 그 마음과는 달리, 뜻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곤 했다.
사내는 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자기 자신의 유약함을. 멋대로 단정짓고 멋대로 분노하니, 이 어찌 가여운 인간이지 않으랴. 사내는 발버둥친다. 자신의 죄악감으로부터.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자신의 죄로부터. 사내는 그렇게 멋대로 눈물 흘린다. 제 눈 앞의, 화풀이 대상이 된 그에게 속죄하듯.
>>143 ㅋㅋㅋㅋㅋㅋㅋ 페일주도 재밌게 즐기고 있으면 좋겠네~~~ 나는... 도파민을 쫓는 불나방 같은 사람이라....(?)
헉 그렇구나~ 페일이랑 아델이랑 은근 닮은 점 많은 것 같네 :3 아델도 나름대로의 죄책감을 떨쳐내려고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으니까...
Q : 그래서 아델 왜 이렇게 변했나요?
A : 만나자마자 '님악인?' 묻는건 미하엘과의 첫 만남 이후로 거의 오피셜로 정해져버린 부분이네~ 그때 아델은 신비로움을 미하엘에게서 느꼈고, 동시에 '정말 다른 세계로 떨어졌구나' 같은 실감을 느끼면서 어느정도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만나는 추락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데다, 다른 세계에서 왔으니, '자신이 지은 죄' 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묻는 느낌.
추락자인것은 만나면 느낄 수 있는데, 뭘 믿고 저 사람과 친하게 지내려나? 믿었다가 배신당한다면? 또 다시 내버려두어서 세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같은게 두렵고, 결정적이 된건 윈터와의 첫 만남이겠네! 구해주듯 한 상황이 예전에 마족 꼬마아이를 구해준 상황과 겹치면서 지금의 상황이 확정적이 되었달까.
그러다 영을 만나서 '님악인이죠?' 하고 마구마구 베었는데 알고보니까 어마어마한 아가페를 가진 사람이었고... -> '아니 죽은사람이 살아있던건 내 세계에선 언데드나 마족같은 애들뿐이었고, 다 나쁜 애들이라서 하던대로 베었는데 아니네?' -> '그럼 내가 여태까지 베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착한 사람 있던거 아님?' -> '그럼 난 기사 된 사람으로써 선을 행한다고 믿었는데 사실 내가 나쁜사람이었던것? 와! 샌즈!' -> '그럼 이제 뭐함?'
의 플로우로 자기혐오가 겹치기도 하고~ 이래저래 생각도 많고~ 그러던 차에 페일이랑 만났는데 페일은 자신과 같은 기사이지만 죄의식을 가지고 있고, '기사도에 어긋나는 말' 을 하면서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여 지금의 배틀 플로우가 되었다...
라는 스스로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며 약간의 TMI 방출........ 그렇습니다.... 아델은 과연 앞으로 어떤 캐릭터가 될까? 저도 모릅니다.....(눈물) ; ;)
>>169-170 헉... 그럼 대충 내 예상이 맞는건가....(아무말입니다아무생각이없는불나방일뿐입니다....) 힝.. 그치만 아직 안 졸리기도 하구~ 그러면 나도 답레만 쓰고 자도록 노력해볼게 ;3
>>171 헉 그런가 하긴... 광장에 사람 대여섯명만 되어도 너무너무 많아서 안간다고 한거 나 유튜브에서 본것같애...(?)
>>172 헤헤 판타지 듀오 너무 즐겁다구~~ 페일주도 즐거워해서 기뻐 ;3
>>173 캡틴.... 나랑 밤새 놀래.....??(안됨)
>175 헤헤 그래도 난 되게 즐거웠어~ 어린아이 취급도 받기도 하구... 소녀같지만 어른스러운 윈터의 면모도 볼 수 있어서 좋았는걸~ 헉 윈터주 다음 만남에 어떤걸 생각하고 있는건지 나 너무 궁금해..... 빨리 윈터주를 망태기로 납치해야겠어...... 헤헤 그치만~ 너무 즐거운걸 ;3
454 누군가_자캐에게_노래_불러줘_라고_하면_자캐는_어떤_노래를_부르는가 아는 노래가 없어요.....🙄 음... 그래도 만약 부른다고 하면 이번 세계에서 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다른 추락자에게서 들은 노래를 따라할 것 같네요! 근데 전에 풀었던 것처럼 노래 실력은 좋지 않을 것 같슴다...
445 자캐에게_더_잘_어울리는_말은_지켜줄게_vs_지켜줘_vs_지킬필요없어 지켜줄게/지킬필요없어 둘 중에서 고민을 했는데, 우선은 '지켜줄게'에 더 가깝네요! 어어 저번에 진단 답변으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 남들을 지나치게 약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무력적인 의미에서의 약함이 아니라, 언젠가는 스러지고 마는 생명으로서의 약함이라는 측면에서요. 위에 있는 말처럼 모든 생물을 연약하게 여기는 편입니다. 아무리 무력이 강하고 자기를 순식간에 토막낼 수 있는 강자라 해도, 결국 죽는 존재라면 연약한 거라고 봐서... 그래서 자기보다 더 강한 상대들 대신 몸빵하려고 나서는 경우도 은근히 많네요. 앞으로도 자기 몸을 써서 상황을 넘기려는 짓도 많이 할 것 같고...🙄
47 자캐가_좋아하는_색 없습니다! 그동안 그런 걸 생각해 볼 이유가 없었거든요. 그래도 그나마 선호하는 거라면 검정색...? 그동안 시커먼 옷만 입느라 그 색이 제일 익숙해서래요~
>>180 헤헤 그래도 내일 오후 3시 면접이니까.. 괜찮지 않을까...???(너무 신나서 이상해짐)
>>181 헉 영이 진단 너무 맛있다....
영주 근데 나 진짜진짜 전부터 궁금했던건데 약간 몸빵 얘기 많이 하잖아~ 그러면 그런 상황도 생각해두고 있는거지...???? 다들 지켜줘놓고서 '만나서 반가워.' 라고 허공에 글 쓴다던지..... 그런 찌통 상황.....(생각만해도 머리아픔)(쥐어뜯음)(근데맛있음....)
>>181 영이의 지켜줄게 이게 정말... 하지만 만약 영이처럼 죽지 않는다면? 불사의 사람에게도 지켜준다는 말을 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182 어 그런거면... 3시에 자도 10시간은 잘 수 있어..! (?)
>>183 어라 이건 생각을 안 해봤어. 중무장한 기사를 기준으로... 하기에는 미하엘이 그냥 자신의 몸을 허공에 띄우고 아예 주변을 짓눌러 버리면 되니까 크게 차이 없을 것 같고... 비슷한 능력을 지닌 사람하고 비교해 봐야할 것 같은데... 음. (고민) 미하엘 스스로도 자기 힘이 어느 정도인진 파악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 일단은 능력의 페널티가 그렇게 센 편이 아님+그렇게 강하게 힘을 쓸 일이 없었음+애초에 힘 쓰는 타입이 아님. 이라. 스으읍. 뭐랑 비교해야 될지 모르겠네. (;) 적당히 전투력 있지 않을까?
536 자캐에게는_소중한_사람을_지킬_수_있는_힘이_있는가 "...내게 주어진 힘은 사명을 다하기 위한 힘일 뿐." "감히 그런 것이 내게 허락될 리는 없다."
460 자캐가_생각하는_이상적인_삶이란_어떤_삶인가 "단 하나, 우리와 같은 불사자들도 다른 필멸자들과 다름없는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곳에 오를 수 있다면, 끝나지 않는 저주를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
387 자캐는_여행계획을_세울_때_꼼꼼하게_세우는_편_vs_틀만_정하는_편_vs_아무것도_정하지_않는_편 "틀만 정하는 편이다. 순례길에 뭐가 있을지 모르므로. 가끔은 그 틀마저도 정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 "긴말할 것도 없다. 너도 나도 추락자가 되지 않았나. 운명의 앞에, 사람이 세운 틀이란 것은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와 다를 바 없다."
12 자캐는_고통스러운_기억을_단번에_잊을_수_있다면_잊는다_vs_그럼에도_간직한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타입. 강제로 간직하게 되겠네. 하지만 막상 정말로 잊을 수 있다면 망설일 거야.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선택하는 게 어떤 것이든, 다윈에겐 행복한 길은 아닐 거라 생각해.
83 자캐의_가족관계 ▶중산층 집안의 차남임. 형 하나, 부모님. 그리고 자신.
145 현재_자캐의_삶은_오르막길인가_내리막길인가 ▶평지일 거 같은데? 근데 앞으로의 이야기 진행에 따라 오르막이 될 수도 있고, 내리막이 될 수도 있겠지.
다윈, 이야기해주세요!
585 누군가_자캐에게_변하지_않는_것이_무엇이냐고_묻는다면_자캐는 ▶정한 답은 있지만, 대답은 하지 않을 것 같네.
67 자캐의_인생에서_가장_힘들었던_순간은 ▶이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패스.
124 자캐가_솔직해질_수_있는_사람은 ▶글쎄, 아직까진 없는 듯? 좀 더 진행하고 일상하다 보면 생기지 않을까?
라클레시아의 이야기 잠자코 듣던 소녀가 혼잣말하듯 중얼인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감정적이고, 때로는 상냥하고... 때로는 이기적인 자들. 그것이 인간이었다. 모니터 너머에서 배운 것과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으응..."
소녀가 고개 끄덕이며, 그제서야 음료를 홀짝인다. 쓰다듬는 손길이, 달짝지근한 음료의 맛이 썩 포근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다윈이라는 자는 추락자들이 세계로의 추락을 반복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앞으로 추락하게 될 세계에서도, 주민들이 지금과 같은 반응 보이지 않으리란 보장 없다. 만약 그런 세계에 저 혼자 떨어진다면... 걱정 애써 떨쳐내려는 듯 소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기, 있잖아, 누가 그랬는데... 지금처럼, 추락자들이 같은 세계에 모이는 건 엄청 드문 일이래."
"하나 묻겠소. 그대는 지금 이 곳만큼이나 햇빛이 당연한 시대를 살았소?" "별들이 이치에 따라 정해진 궤도 위를 움직이며, 별자리가 있는 세상을 살았소?" "우리들의 세계에서 햇빛은 지난 시대의 전설이었소."
행커치프가 처덕 하고 얼굴에 붙었다가, 천천히, 거인의 옷깃을 거쳐 땅으로 툭 굴러떨어진다.
"세계석이 무너진 세계가 어떤 꼴로 전락하는지 그대는 본 적이 있소?" "언어나 생각을 통해 전염되는 역병은?"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이들과 전쟁해 보았소?" "금빛의 밀 대신 형용할 수 없는 색채로 뒤덮인 들판은?" "이대로 필멸자의 최후를 맞이하느냐, 아니면 그 최후마저 뒤로하고 원죄를 짊어지느냐에 대한 선택을 해본 적이 있소?"
"역병. 전쟁. 기근. 죽음." "그것이 우리 시대의 인간들의 원죄요. 비단 기사들만이 아닌, 모든 인간을 위한 단 하나의 죄."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계속 걸어가는 것뿐." "희망을 담아 타오르는 횃불 하나를 쥐고서."
"그러니 그대의 지금까지의 발언에 단 한 마디. 그 한 마디에만큼은, 십분 동의를 표하겠소. 그것이 희망의 교회의 교리이기에."
그 순간, 아델라이드는 얼굴에 와닿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저 앞에, 저 거인이 있는 곳에, 선명하고 따스한 빛을 띈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다. 페일은 횃불을 꺼내어든 채로 아델라이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아색의 횃불이 타오르는 그것은, 횃불이라기보단 철퇴에 더 가까웠다. 자루랄 것도 없는 나무몽둥이 끄트머리에 새장이나 감옥의 가시창살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가시투성이 케이지가 비명처럼 씌워져 있었고, 그 케이지 안에서 상아색의 불길 한 줌이 애처롭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죄는 곧 우리의 사명." "그대는 지금 그것을 너무도 가볍게 괄시하고 있소." "그대의 세계에서 그대가 살아온 방식대로, 그대의 잣대에 입각해서."
철커덕. 갑자기 불기운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쇠 부딪는 소리가... 아니, 쇠사슬 부딪는 소리가 대신하였다.
"희망의 교회의 성기사, 보복의 기사 페일이 아델라이데 세인트 바울 경의 대련 신청을 받아들이오."
모든 질서와 예의는 사내의 앞에 섬세하나 단단히 나열된다. 아델라이데의 그런 행동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아아루는 어떠한 기시감을 느낀다. 마치... 마치...
"어찌하여..."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그 표정은 누구를 위해 짓는 표정입니까. 그러나 내밀어진 모든 질문에 해답을 찾을 즈음엔 이미 그는 코앞으로 다가온 뒤다. 곧 내밀어진 손에서 얼굴로, 말소리를 따라 시선이 올라간다. 그제야 아아루는 두 번의 제스처ー 혹은 힌트에도 목도할 수 없었던 진실을 접하게 된다. 아아, 당신. 어찌 이리 잔혹할 수가!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구원을 바라는 자들이란 으레 간절함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고통에서... 그것이 병에서 비롯되었든 가난에서 비롯되었든 죄에게서 비롯되었든지 간에.
알레프는 추락자들이 이렇게 같은 세계에 모이는 일이 드물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그것은 나도 처음 들은 것이긴 했지만 그런 말을 해줬다는건 추락을 여러번 겪은 자들이 있다는 것이겠지. 같이 있지 못할수도 있을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분명 같이 있을 수 있을꺼에요. "
하지만 분명 드문 일이라고 했으니 말대로는 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다. 물론 혼자서 둔다고 잘못되지는 않겠으나 내가 보아온 알레프를 생각하면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게 거짓말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풀어서 알레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 이거 알레프 줄께요. 달려있는건 노던 엘프의 상징인 전나무에요. 일종의 부적 같은거라고 생각하고 걸고 있으면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꺼에요. "
노던 엘프는 종족 자체가 악세서리를 많이 달고 다니는 편이었다. 나는 종족 평균에 비해선 적게 하고 다녔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달고 있는 편이었다. 반지는 손을 쓸 일이 많아서 주머니 같은 곳에 넣어다니고 있지만.
" 인연이란 생각보다 튼튼하니까요. 만약 다음 세계에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계, 다다음 세계에서라도 만날 수 있을거에요. "
별 탈이 없다면 나도 그녀도 영생을 살테니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목걸이는 그에 대한 보증인 셈이고. 그리고 알레프가 그걸 가지고 있으면서 나에 대한 기억을 잊지 말라는 뜻이기도 했다. 나야 기억을 잃지 않으니까 상관 없고.
"나는 따스한 태양을 본 적이 없습니다. 흘러가는 구름도 내리는 비 조차도 본 적이 없습니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도, 일렁이는 모닥불도."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얼굴도, 나를 사랑하던 동료들의 얼굴도 보지 못했습니다."
"허나 나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스러져 버릴 것이라고 하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행커치프 천천히 바닥에 툭,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사내는 지팡이를 그러쥔채 자세를 가다듬는다.
"수많은 불경한 것들을 베었습니다."
"여덟개의 이기어검을 쓰던 마족. 천둥을 쏘며 불과 바람을 지배하던 마족. 거대한 폴암으로 한번 벰에 만명을 학살하던 마족."
"살려달라며 발버둥 치던 동료들의 단말마를 짓밟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불타고 무너져버린 도시 속에서 제 젖먹이를 감싸고 함께 타죽은 어미의 시체를 짓밟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경, 저희들은 비슷한 처지입니다. 알고 계시잖습니까. 저희가 닮았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다른 점은."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당신은 스스로를 죄인의 틀에 묶어두었다는 것."
"나는 고뇌하며 끝까지 발버둥 칠 것입니다. 그것이 기사니까. 선을 행하며 악을 베리라. 두번의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그것이, 내가 맹세한 기사도니까."
"기사도란, 결코 흔들리지 않는 신념. 꺾이지 않는 창. 나는 기꺼이 고뇌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아무리 더럽혀지고 진흙탕을 구른다고 하더라도 내겐 숭고한 신념이 있습니다."
"기사는, 결코 원죄를 짊어지지 않습니다. 그 발걸음 숭고하리라. 그 내딛는 걸음에 한 점의 후회도 없으리라."
사내는 얼굴에 닿는 열기를 느낀다. 불을 쏘는가. 아니란것을 깨닫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사내는 몸의 정중앙선을 노려 그대로, 명치를 향해 빠르게 지팡이를 찔러냈다. 그 뒤에는 미끄러지듯 호선을 그리며 심장을 베리라. 피하거나 막지 못했다면 크게 베였을 터.
"기사를, 기사도를 괄시하는 것은 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경의 잣대로 하여금."
철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기운이 사라지고,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리깨인가. 사슬낫인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베고자 하면 무엇이든 벨 수 있으니. 사내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반월을 그리듯 지팡이를 미끄러트리며 크게 팔을 휘두른다. 단단하게 땅에 발걸음 내딛고, 허리를 휘두르며 반바퀴를 돌아 번개를 그리듯, 탈력을 이용해 검격을 쏘아낸다.
드문 일이라는 건 반대로 말하자면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뜻. 그러나 소녀는 늘 그렇듯 으레 걱정부터 하고 본다. 잔에 담긴 음료를 멀거니 바라보던 소녀는, 라클레시아가 건네는 목걸이를 보고서.
"나 주는 거라고?"
짐짓 놀란 듯 눈 휘둥그레 뜬다. 타인에게 무언갈 받아본 적 없기도 하고. 그러니까 선물인가? 목걸이 조심스레 받아든 소녀가 손 끝으로 장식을 매만진다. 이 선물에 담긴 의미를 전부 이해할 순 없지만, 그래도 기분만큼은 썩 나쁘지 않았다. "응, 그럴 거야." 소녀는 활짝 웃으며 크게 고개 끄덕였다.
"...근데, 라클레시아는 왜 나한테 잘해줘?"
그것도 잠시, 소녀는 금세 표정을 바꾸었다. 근심 있는 것마냥 가라앉은 낯빛, 자신감 없는 목소리. 그와의 첫 만남에서 그가 보였던 반응을 소녀는 아직도 기억한다.
"라클레시아는 신 싫어하는데, 나는 신이구..."
어제 자신을 데리러 온 것도 그렇고, 방금 전에도 끼어들어 중재해줬고.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그저 제가 같이 다니겠다 고집을 부려서 별 수 없이 받아주는 게 아닐까 싶어.
>>406 아...! F5버튼을 누르면 새로고침 버튼처럼 위로 땡겨지지 않는구나... 꿀팁 감사해요 :) >>408 아기염소 정말 귀엽죠! 하얗게 잘 씻겨놓고 털이 마르면 부들부들해서 바로 쓰다듬고 싶어지는데 ✪ ω ✪ >>411 그럼요! 편하실 때 천천히 쓰셨으면 해요
모든 것이 괜찮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목격한 인간 따윈 없었고,제 '사냥하지 않는 척'은 순조로웠다. 이곳은 기적적으로 인적이 드물다못해 없다시피한 구석이었음에도 햇빛이 잘 들었다. 정정, 모든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이 괜찮았다. 몇가지 문제는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일단 배고팠다. 이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본래 자생지에서 오랫동안 사냥감이 나타나지 않는 일이야 일상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진짜 문제는 두번째에 있었다. 그래, 심심함. 인간의 호기심을 계승하며 함께 얻어버린 습성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 그가 인간의 흔적이 남은 폐허에 자리잡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무너진 바위-아파트-더미를 누비며, 남은 기록을 뒤지고, 뭐라도 이해하고자 하던 것.
그러니 식물은 지금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덩굴의 상태에서는 뿌리를 거두고 돌아다닐 발이 없었고, 인간의 모습으로 의태하여 돌아다니자니 적대 개체가 많아 번거로웠다. 그런 와중에 근처를 조심히 지나가는 '떨어진 인간'은 꽤 반가운 것이었다.
tmi. 식물이 사실은 인간을 너무 쉽게 죽일수 있는 사람이라 심의상(?) 일부러 그런 상황을 다루지 않고 있어. 덩굴의 형태고 힘이 세니까. 목만 졸라도 인간은 휙휙 죽어버릴걸. 게다가 그냥 일반 풀인척 할수 있으니 완전 기습도 가능하고. 식물이 특성상 도덕관념도 없어서 잘못하다간 정말... 심의상 여러 문제가
윈터는 그가 손을 잡아오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다만 제 쪽에서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는 윈터의 길잡이가 되기를 자처했다. 늘 오퍼레이터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했던 그녀에게 있어선 퍽 신선한 제안이었다.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수행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협력하는 상호적인 관계라고, 그녀는 해석했다.
"좀 헤매면 어때. 우리가 가는 곳이 곧 길인걸. 그리고 넌 다음부터 몸 쓰는 일은 하지 마. 그쪽은 내 전문이니까."
지켜주겠다는 의미로 한 말이지만, 역할분담으로 선을 그어버릴 뿐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윈터는 잡혔던 손을 시큰둥하게 빼내어 팔짱을 끼고,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라클레시아. 나도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라고. 오늘따라 왜 그래?"
퉁명스러운 목소리지만, 화를 낸 것은 아니었다. 윈터는 그의 허벅지를 찰싹 때리려 했다. 그러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냈다.
목걸이가 없어진게 좀 허전했지만 맘에 드는 목걸이는 어디던 가서 구하면 그만이다. 저 목걸이는 내가 꽤나 오랫동안 끼고 다니던 것이니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물론 정말 소중한 것은 줄 사람이 따로 있으니 외투 안쪽 주머니에 고이 넣어두었다. 절대 빠지지도 않게 잘 고정해두기도 했고. 허나 이어진 알레프의 질문에 내 표정은 잠시 굳어버렸다. 어떻게 대답해줘야할지 난감한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 음 ... 알레프는 귀여우니까? "
살짝 웃어주면서 반쯤 농담으로 말을 던진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선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 제가 신을 싫어하는건 사실이에요. 내 세계의 신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고 ... 그들의 목적도 잘 알고 있으니까. "
별로 말을 하고싶지는 않은 얘기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알레프에겐 들려주어야할 것 같았기에 큰 맘 먹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에겐 조금이라도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도 떠오르게 되었기에 지금도 그것들이 생각나서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 저번에 말했었죠? 나는 무엇도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기억은 사슬처럼 서로 이어져있어서 연관된 것을 조금이라도 떠올리게 되면 저절로 딸려오는 것들이 많아요. 나는 신을 떠올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의 신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죠. "
하지만 그것은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그것들에 의해서 고통 받을 수 없으니까. 만약 이런 고통마저 그것들의 의도라면 난 그 의도를 철저히 부숴줘야만 하는 의도가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알레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 근데 신이라는 기억이 가져오는 것이 알레프에 대한 것이라면 ... 난 그런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요? "
망각이라는 지대한 축복을 받지 못한 나에게 차선책이란 이런 것뿐이다. 누군가를 이용해 내 기억을 덧씌우는 것뿐. 사실 덧씌우는 것이 아닌 더 많은 양으로 채워버리는 것이지만 ... 그것마저 불가능했다면 나는 아마 살아갈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
" 그런 미소, 그런 행동 모든 것이 나에겐 행복한 기억이에요. 좋은 추억으로 내 기억을 덧씌우다보면 언젠간 내가 어떤 것을 떠올려도 고통스럽지 않을테니까요. "
그래서 나는 알레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 그런 의미에서 알레프가 날 도와줄 수 있을까요? "
첫만남에선 내가 알레프를 도와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알레프가 날 도와줄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니 지금 그녀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나는 영 식욕이 없지만 슬슬 밥 먹구 와야겠다. 만두 간단하게 구워서 대충 먹어야지.... ;3
마자 혹시 페일주 오면, 이 레스 한번만 앵커해줄수 있을까~?
페일주 페일주, 먼저 불편하게 만들어서 미안~ 페일주가 혐관 안좋아하는지 몰랐어. 개인적인 욕심으로 배틀 페이즈로 끌고가버리더니 이렇게 만들어서 미안해~ ; ;) 불편한걸 강요하고 싶진 않아서, 결투 신청 이후 부분 없던 일로 하고, 그 부분부터 다시 내가 답레 줬으면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아아. 그 긴 비행을 어찌 추락이라 부르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라고, 그녀는 짧막한 대답을 돌려준다. 농담이 통할 이로 보였다면 세계에서 쓸모 없어진 자의 말로로는 적당하지 않습니까. 하고 자조적인 장난을 치겠으나... 아아루 눈앞의 이는 전혀 그런 부류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모를까.
"곤란... 입니까."
어째서?라는 의문보다 시선이 옮겨지는 것이 빠르다. 올려다보아야 하는 페일의 얼굴이, 시선이 자신이 아닌 더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을 아아루는 기민하게 캐치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화살 또한.
"아아..."
신이시여!
"누군가의 실수도, 본의 아닌 휘말림도 아닌... 사람의... 사람의 남을 해치고자 하는 악의에 이리 상처 입으셨습니까."
갑작스레 나타난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이유 모를 적대마저도. 그래도 이리 폭력을 가한다는 것은... 몰아치는 상념에 아아루는 잠시 눈을 감는다. 저도 모르게 모아진 두 손 위에서 자그마한 빛무리가 생겨나 누군가의 마음을 대변하듯 요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 엄숙하게 그려내지고ー 마침내.
"단 한 번만, 당신의 믿음을 저에게 주실 수 있으십니까."
삽시간에 켜켜이 쌓인 환상은 머지않아 마치 실현되질 것만 같아 그리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533 >>535 미하엘은 일단 튀고 다윈은 순순히 따라가는구나....(메모) 앗 다윈 왜 멍해!! 음~ 영이도 아직까지는 순순히 따라가는 쪽일 것 같네요🤔 미션을 실행하기 전에 일상을 돌려버리면 제가 나중에 독백을 쓰기 귀찮아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서(🤦🏻♀️) 피해 입기~경비대 찾아오기 전 시점이 좋을 것 같아요!
날카롭게 찔러넣은 지팡이 끝의 궤도. 베었으나 얕았나. 역시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은 지금, 심검을 쓰고 싶지는 않은데. 더더군다나 상대는 불사자다. 아무리 베어도 죽지 않는 것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 허면 어디를 베어야 하는가. 두터운 갑옷으로도 막을 수 없는 곳. 움직이는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 그런 곳을 베면 된다.
허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은 사도, 마족의 검이지 기사의 검이 아니다. 나는 분풀이로 이 사내에게 대련을 신청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휘둘러야 할 검은, 기사의 검.
사내는 우직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다시금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딛는다. 한 번의 휘두름 보다, 한 번의 발자국이 더 많은 이점을 가져오나니. 그리고는 다시 밑에서부터 지팡이를 올려치며 사내의 목을 노린다.
"두번다시 실수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내가 한 맹세입니다."
"결단코 오만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있는 속죄입니다. 그래야만..."
"나는,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으니까."
"경, 모든것을 포기한다면 삶이 무슨 의미입니까. 기사된 자로써, 아니, 인간으로써. 심장이 뛰고 영혼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나는, 속죄하고, 죄를 지었음에도 앞으로 나아가며 우상이 되어야 한 단 말입니다. 그것이 설령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도!!"
"그 거짓말을, 진실로 이룰 수 있으리라 믿고 있으니까!!!"
그는 물러서고. 도리깨인가! 쇠사슬이 지팡이에 차르륵 하고 감겨든다. 베어낼 수 없었다. 까드득,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무엇이지. 이것은 이빨이라도 된단 말인가. 지금 내 지팡이를 씹어 먹고 있기라도 한단 말이냐. 사내는 탓, 하고 지팡이를 놓은 뒤에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났다. 짧게 숨을 내뱉으며, 호흡을 가다듬었고.
"내 영의 눈은 신의 가호로 빛나고 있으니, 어둠뿐인 세계에서도 다시금 한 줄기 빛이 비치리라 믿고 있습니다."
"내가 저지르는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으나 그것을 부정하는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입니다."
"경!!!"
아델라이데가 소리친다. 사내의 목소리가 바뀐다. 갑옷을, 입었는가.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까. 저 역시도 희망의 등불을 짊어지고 불사자라도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제게 알려주십시오. 저는, 노력하고 있단 말입니다..."
"나의 죄를 직면하도록."
무거운 공압이 얼굴 앞으로 덮쳐온다. 방패인가. 까다로운 상대다. 급히 피하려 했으나, 철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뻑, 하고 그대로 정통으로 얻어맞고는, 나는 멀리 날아간다. 나무를 부러트리며 한참을 날아간 나는 털퍽, 하고 땅에 쓰러진다.
"커헉."
간신히 땅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손을 그러쥔다. 무엇인가를 잡듯.
"하늘 위로 붓을 달려 글씨를 쓰듯 그곳에 검이 있다고 믿고 휘두르면 아아, 무엇이든 벨 수 있으리라."
"심검."
사내의 손에서 파즈즈, 하고 빛무리가 모여든다. 어느새 그 빛무리는 검의 형태를 띄었다. 바스타드 소드임이 분명한, 한손 반 길이의 손잡이. 허나 그곳 위로 뻗은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순한 막대기를 쥔것과 다를 바 없는 형태.
"발경."
사내는 탁한 눈을 뜨고서는, 페일이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검을 뽑듯 그리며 횡으로 검을 휘두른다. 그리고, 거대한 검격이 종으로 날아간다.
>>540 아직까지는 이라는 건 순순히 따라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구나! (이거 아님) 다윈은 하. 어쩌다 이렇게 됐지. 얌전히 있었던 것 같은데. 하는 멍함일 거 같아. ㅋㅋㅋㅋㅋㅋ아~ 영주의 뭔가를 알아버렸다. 좋아좋아. 피해 입기~경비대 찾아오기 전이면 도시에 있으려나? 아니면 피해 때문에 숲으로 튀어 있기? 상대는 미하엘로 할까? 상황적으로 보면 다윈보다는 미하엘이 편해 보이긴 하거든. (우다다)
>>54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이분이~!!!! 하지만 전개를 쓰면서 정하는 편이라 어쩌면 그렇게 될 수도...? 다윈 현타 온 것 같잖아요 어유 귀여워🫳🫳🫳🫳 그리고 네...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리셨군요...🔪(?)
음~ 영이 성격이라면 어느 쪽에 있어도 상관 없을 것 같으니까~ 다이스로 정해보죠! .dice 1 2. = 1 (도시/숲) 그리고 미하엘 좋슴다!! 만난 김에 스타일 바뀐 것도 보여줘야죠(・ω<) 그러면 선레는 어떻게 할까요? 다이스로 갈까요? 아니면 캡틴 지금 하고 계시는 일 있다고 하셨으니까 제가 쓸까요~ 편한 쪽으로 해주세요!
>>559 하긴 다윈은 가만히 있....아니 생각해보니까 다윈 중앙에 쳐들어갔잖아!!!!! 난 아무 잘못 안 했는데<가 아니라 조심했을 텐데 잡혀가다니< 이거의 현타인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아요~~ 좀 걸릴 것 같으니까 느긋하게 기다려 주시기~~ 미하엘은 요즘도 감시하면서 지내는 중인가요?
그녀의 웃음. 메구무가 돌이켜보기를, 코우는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그것을 신경쓰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사람같달까. 주변에 잘 휘둘리지 않는 사람같았다. 오히려 사람을 휘말리게 만드는... 아, 이건 그냥 메구무가 휩쓸리기 쉬운 인간상이어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마, 그건 와 물어보는..."
당황하여 아이리에게 따지려던 찰나, 그녀에게서 답이 돌아오자 잠시 놀란 기색을 보이다 덤덤히 받아들이는 메구무였다. 어찌보면 칼에 피를 묻히고 손을 피에 적신 것은 그녀나 자신이나 비슷한 점이 있었으므로.
육체파와 두뇌파 중에서 고르라면 나는 두뇌파쪽이니까 아무래도 몸을 쓰는 일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다. 물론 오랜 시간 살면서 몸을 아예 안쓴것도 아니니까 체력이나 근력은 평균 이상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 평균보다 조금 위 수준인 것이다. 본격적인 윈터랑 비교하는 것조차 실례일만큼.
" 원래 좋아하는 사람한텐 어필하고 싶은 법인데요? "
허벅지를 때리자 조금 아파하며 대답한 나는 윈터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력은 어느정도 돌아왔고 격한 움직임만 아니라면 움직일만 했다. 마찬가지로 흙을 털어낸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 어떻게 할까요? 일단 여관으로 다시 돌아가는건 밤이나 되어야할 것 같고 ... 도시 안에 계속 있는건 리스크가 있는데. "
차라리 숲으로 가있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도 방법일지도 모른다. 숲도 물론 주민들의 왕래가 있지만 숨을 곳이 많고 애초에 숲까지 나오는 주민들도 적은 편이니까 말이다.
아마, 자조적인 농을 던졌더라면 마찬가지로 자조적인 농이 돌아오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비슷한 처지일 필요는 없는데, 하고.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닐 텐데."
평생을 전쟁 속에서 살아왔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과 싸우며, 무고한 자들을 악과 재난에서 지키고, 그 희망을 나누어받아 횃불의 불씨를 돋구며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는 오히려 이해할 수 있는 이들과의 전쟁이 더욱 힘겨웠다. 무너진 세계에서 입에 넣을 것 한 점, 걸칠 넝마 한 조각, 하릇밤을 보낼 안전한 잠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선인도 악인도 없이 비참한 이들만이 있는 인간들끼리의 전쟁 역시도 그가 지나온 순례길에 있었다. 그런 이해할 수 있는 이들간의 이해할 수 있는 전쟁에서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페일은 자신을 공격한 이들에게 단 한 번도 맞서싸우지 않았다. 그저 자리를 피했을 뿐. 페일은 아아루에게 짧게 경고했다.
"그대도 당할 수 있는 일이오."
아아루에게는, 참으로 기묘하고도 낯선 경고일 것이다. 페일은 아아루의 속사정을 한 치도 모르기에 그 사실을 모르겠지만. 이 무심한 철갑 거인은 그저 아아루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페일이 치켜들고 있는 횃불의 불빛을 초라하게 만드는 광채를 생기없는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576 머핀이 겉보기에는 그냥 개라서 주민들에게 쫓기고 있지는 않을 듯한데, 말하는 걸 본 주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일단 골목 같은 데 최대한 숨어 있을 것 같거든요... 추락자끼리는 알아볼 수 있다고 했으니 쫓기는 중에 야생의 머핀이 튀어나와서 합류하는 상황은 어떨까요?
여관 앞의 소란이 있었던 그날 이후 도시의 주민들은 나름대로의 하한을 확실히 한 듯했다. 유독 극렬한 폭력성에 휩쓸렸던 지난날처럼 목숨이 위험해질 만한 공격을 공공연히 가하지는 않게 된 것이다. 그의 행동이 의외로 효과가 있었던 덕분인지도. 아무렴 칼부림이 횡행하는 쪽보다야 덜하니 나아진 구석은 많다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하여 그들이 가해를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누군가는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돌에 맞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늘로써 폭언을 들으며 가게에서 내쫓기는 경험을 수 차례 겪고, 음지에서는 살해당하기까지 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어느 곳에서 베테랑 추락자가 곤경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도시가 어수선하거나 말거나 언제나처럼 유유자적 길을 걷던 중, 그는 한 곳에 몰려 웅성이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요즘에는 모두들 화가 나서는. 시끄러운 소리에 민감한 그도 사람들이 저렇게 소리를 질러 대는 풍경에는 이제 꽤 익숙해졌다. 하지만 오늘은 무언가 이상했다. 그들에게는 대체로 명확한 표적이 있었는데, 다른 때와는 달리 하늘을 가리켜 대며 고성을 지르는 모습에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묻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겠지.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성난 시민들의 사이에 불쑥 고개부터 들이밀었다.
”뭐해?”
너무도 태연하게 끼어든 모습에 누구도 말문 열지 못한 사이. 그가 주민들의 시선이 향하던 곳을 따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안녕, 미하엘.”
그제야 그도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됐다. 그런데 지붕 위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고개를 기울이면서도 우선은 손을 들고 반갑게 흔들어 주었다.
사람들에겐 탓할 것이 필요했던 것일 거다. 미하엘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다면 제법 슬플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도시의 주민들이 지붕 위에 있던 자신을 발견한 건 생각해 보면 미하엘에겐 운이 나쁜 일이었다. 그야 평소엔 하늘을 보지도 않던 이들이 이때 위를 보다가 저와 마주쳤다 하면 그게 운이 나쁜 게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무어라 고성을 내지르는 주민들을 내려다 보던 미하엘은 오늘은 감시하기 좋지 않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감시라고 해봤자 그저 추락자와 주민들 간의 소란을 지켜보는 게 다였지만, 미하엘이 스스로 그 행위를 감시라고 칭하니 감시라고 하겠다.
어쨌든, 미하엘은 턱을 괸 채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네 모습을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 때문인가. 어쩌면 네가 했던 행동을 아는 주민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네 모습에 순간 사위가 조용해졌다. 뒤늦게 너를 발견한 미하엘이 네 인사에 손을 흔들었다.
“안녕, 영원.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네?”
그것도 잘 어울린다며 천연덕스럽게 한쪽 뺨에 고개를 기댄 채 말하는 모습은 느긋하기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주민들을 무시하는 행동과도 비슷했다. 그야, 방금까지 자신들이 고성을 내질렀음에도 반응하지 않던 이가 네 말과 모습에 반응한다는 건, 누군가에겐 무시로 여겨지는 행동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주민들은 고민한다. 네 기행을 본 이들은 네게 해를 끼치기를 생각하지 못할 터다. 하지만 미하엘은 달랐다. 미하엘은 가만히 있었을 뿐이고, 특별히 해를 끼친 것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주민들에게 있어 손쉬운 먹잇감이라는 느낌을 주었으리라.
⋯⋯검불의 나뭇잎이 눈을 자꾸만 찔러서, 조금 더 괜찮은 구덩이를 파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끈기 있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는 이방의 존재들에게 결코 친절한 곳이 아니다. 마을에서 엿들은 이야기를 통해 이미 '추락자'가 경계를 사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아니, '우리'가 쫓기고 있다는 것은 방금 전에야 확실해졌다. 지금 추락자들은, 연행되어 가거나 심한 경우에는 체포되고 있다.
그들이 내가 추락자라는 걸 알아볼까? 아마 아니겠지. 하지만 협박이든 회유든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 다른 추락자를 끌고 와 나를 비롯해 숨어 있는 추락자들을 색출해 낼 가능성은 없을까? 0%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내가 이 사랑스러운 사과를 먹을 수 있는 것도 당분간은 끝이라는 말이다. 골목에서 상인에게 재롱을 부리고 얻은 '신선한 과일'⋯⋯. 이제 이런 걸 구하기도 어려워지겠지. 다음 식사부터는 숲에 숨어서 쥐라도 사냥해 잡아먹어야 할까? 나는 숨을 죽이고, '오독'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송곳니를 밀어넣었다. 달콤한 과즙이 뇌를 자극한다.
그때⋯⋯ 덤불 바깥의 오솔길에서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사과를 문 채로 납작 엎드려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귀보다도 먼저 놀란 것은 영민한 코였다.
킁, 킁킁. 킁킁킁.
결코 유쾌한 냄새가 아니다⋯⋯! 기침이 나오려는 순간 주둥이를 팔로 감싸 소리를 죽였다. 매캐한 향⋯⋯. 독성의 무언가. 궐련? 아편? 무엇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이 주변에서 마주친 적이 없는 종류였다. 타르의 비중이 크다. 말인즉 연소 중인 연기라기보다는 이미 타고 남은 물질, 그러니까 몸에 밴 냄새일 것이다⋯⋯. 한 가지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천천히 발걸음 소리를 분석했다. 보폭이 크다. 나뭇가지를 밟을 때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인간⋯⋯ 남성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50미터쯤 멀리서, 다가오고 있다. 이쪽을 향해서.
한 입 베어문 사과를 풀숲에 숨기고, 길을 가로막듯이 뛰쳐나왔다.
"⋯⋯."
그리고 거리를 좁히지 않고,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도 않은 채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 세계에서 본 적이 없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추락자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곧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적의를 품고 다가온다면 충분히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만일 그가 지금 상황을 벗어나게 해 줄 용사라면, 따라가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
쯧.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회귀자는 경비대와 사람들을 피해 숲으로 빠져나왔다. 관문을 통과할 수 없어 그 높은 성벽을 타고 올랐더니 온 몸이 삐걱삐걱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보수가 잘 되지 않은 성벽은 발 디딜 틈들이 많았고, 성벽의 너머에는 삭은 낙엽들이 쿠션이 되어 주고 있었다.
덕분에 몸이 삐걱대긴 했지만, 특별히 다친 곳 없이 빠져나온 회귀자다. 그는 차박차박 발걸음을 옮겼다. 오솔길을 지나 길이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해.
사실은 경비대와 함께 이동해도 좋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제 ‘경고’를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인 이 때문이었다. 우선은 좀 더 상황을 파악한 뒤 움직여야겠다고, 회귀자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
무언가가 불쑥, 검불 틈을 뚫고 튀어나와 앞길을 막았다. 햇빛과도 같은 금빛의 털, 툭 튀어나온 주둥이와 처진 귀, 그리고 네 개의 발로 땅을 디디는, 이건······.
“개? 아니, 추락자인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것을 경계했던 회귀자는 그와 동시에 저 개가 추락자임을 알았다. 다양한 종족의 추락자와 마주친 자신이지만, 아예 개와 만난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덜 경계할 수 있다. 회귀자는 경계하던 몸에 힘을 풀고 추락자를 바라본다.
“내 말, 알아 듣습니까?”
필시 알아들을 것이다. 말을 걸며 천천히 한 걸음을 뗀다.
“그리로 가겠습니다, 추락자. 내 말을 알아 듣는다면, 가만히 있으십시오.”
방금까지 피웠던 것 때문에 제가 미쳐버린 게 아닌 이상, 저 개는 추락자가 맞다. 회귀자가 다시금 걸음을 뗀다.
추락자다. 개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지만, 그보다도 앞서서 머리가 '깨닫고' 있다. '떨어지던' 순간 추락자에 관한 지식을 머릿속에 통째로 쑤셔넣어졌을 때처럼, 눈앞의 남자가 추락자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동류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게 평화로운 상황이 아니다.
그 '도서관'에서 튕겨나듯 다른 세상으로 떨어졌을 때는 당황했지만, 도서관의 지식이 내게 준 선물이 있다면 바로 어디서나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함과 배짱이었다. 모든 현상은 어찌됐든 충족이유율의 굴레에 속해 있으므로,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오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세계의 방식 역시도, 조금 시간은 걸렸으나, 곧바로 꿰뚫어볼 수 있었다. 동서고금의 지혜를 되짚어 봤을 때, 나불나불 말하는 개가 경계를 살 것이라는 사실은 겪어 보지 않아도 명료한 법. 때문에 '떨어진' 이후에도 줄곧 말할 줄 모르는 평범한 들개 행세를 해 온 나였다. 그 규칙을 깨고, 오랜만에 입을 여는 데는 약간의 용기와 심호흡이 필요하다.
"⋯⋯그보다 먼저 자기소개를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머릿속에서 말들의 퍼즐을 짜맞춰 적절한 질문을 생각해 낸다. "선생, 당신이 내 적이 아니라는 걸 이 자리에서 증명해 주세요."
나는 도망칠 기색을 나타내지 않고, 꼬리를 낮게 깐 채로 비스듬하게 섰다. 도움닫기에 필요한 1초 이하의 짧은 시간을 아끼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국면이니까.
'적이 아니라는 사실의 증명'이라. 말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것으로 좋다. 중요한 건 그 내용이 아니라 반응이다. 거짓말을 하는 순간의 시선이나 가식을 지어내는 순간의 망설임⋯⋯. 그만한 단서만이라도 내비친다면 신뢰할 수 있거나 없거나의 확신을 세울 수 있다. 나는, 얼굴의 근육부터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까지 신중히 눈에 담고 있다⋯⋯.
"뭐어? 조, 좋아한다니... 너무 오래 살아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거야? 난 누굴 좋아할 생각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마!"
좋아한단 말을 들은 윈터는 기함할 듯이 놀라며 새된 소리를 내었다. 얼굴이 붉어지는 일은 없었으나, 발을 동동 구르며 애먼 나무를 주먹으로 팍팍 쳐대는 것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에게 등을 보인 채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두어 번. 놀란 마음이 진정되고 나서야 큼큼 헛기침을 하며, 저희가 처음 들어온 동문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관으로는 가지 않을 거야. 숲으로 가자. 내게 생각이 있어."
윈터는 라크를 이끌고 동문 방향으로 향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성벽만 따라가면 되었기에 길 잃을 걱정은 없다. 가는 길에 보이는 민가. 빨랫줄에 널린 수건 두 장을 아무렇지 않게 집어온 그녀는, 그것으로 저와 그의 머리를 터번처럼 둘둘 말아 귀와 머리카락을 가렸다. 특징적인 부분만 감춰도 시선을 피하기엔 충분하단 생각에서였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멀리에 동문 위병이 보일 때쯤, 윈터는 라크를 멈춰세우고 저 혼자 상점가 쪽으로 향했다. 일전의 소란 탓인지,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로 복작이던 상점가는, 지나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고 더러는 문을 닫은 점포도 있었다. 그녀는 태연히 걸어가 어느 점포를 덮고 있는 캐노피를 홱 잡아챘다. 찌익- 천이 찢어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주민들의 시선을 끌었다. 섬뜩한 시선을 느낀 그녀는 빠르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몇몇 주민들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야! 뛰어!"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면, 윈터가 둘둘 만 캐노피 뭉치를 품에 끌어안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제법 다급한 목소리였다.
"아... 아니다. 그냥 가만있어!"
윈터는, 그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를 들어안았다. 그러고는 동문으로 곧장 향했다. 위병 둘이 이쪽을 돌아보는데도 달리는 속도는 오히려 늘어만 갔다. 이상함을 느낀 위병이 두 사람을 가로막으려 창대를 내리는 순간, 그녀가 풀쩍 뛰어올랐다. 사람 키보다 높이 뛰어오른 두 사람은 그대로 관문을 빠져나갔다.
숲 안쪽으로 얼마나 달려왔을까, 풀밭에 대자로 드러누운 윈터는 가쁜 숨을 내쉬며 입가에 흘러내린 피를 손등으로 문대어 닦았다.
엉뚱할 정도로 태연스러운 태도에 응수하는 답변마저도 똑같이 천연덕스럽기 그지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작위적인 연극이라도 하는 듯 보일 만큼이나. 머리모양이 바뀌었다는 말에 그는 길게 늘어진 옆머리를 가볍게 쓸어내었다.
“자를 시간이 없어서 계속 이렇게 지내고 있어.”
처음에는 갑자기 길어진 길이에 적응하지 못해 제 머리카락을 몸으로 깔거나 어딘가에 엉켜 버리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그것도 지내다 보니 익숙해지기는 하더라. 그렇단들 그가 느끼기엔 여전히 짧은 편이 더 편하지만서도. 여하간 서로 안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도 마땅히 돌려줄 말을 찾기 위해 미하엘을 보았으나…… 몇 주라는 짧은 시간만에 크게 달라진 점은 보이지 않았다. 작금의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겠다.
“목적지는 딱히 없어. 너는 뭐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서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민들의 분위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감정은 잠시 방향을 잃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당혹감이 가신 자리엔 질척한 적개심이 서서히 차오른다. 그도 그것을 분명히 느꼈지만,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양 태연하게 있을 뿐이다. 생자에게 가장 중요한 생리와 안위의 욕구가 무용함이란 이렇다. 누가 무엇을 한들 제게 해가 되지 못하니 위기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 그에겐 자약할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미하엘은? 어째서 저토록 여유로울 수 있나.
“올라가고는 싶은데…… 좀 높네.”
그는 한 발짝 물러나며 지붕의 높이를 가늠하다 이내 주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밟거나 붙잡고 올라갈 수 있는 구석이 있는지 살피려는 것이다. 특출나게 강력한 힘은 없더라도 험지를 홀로 떠돌 재주만은 있었으니, 내버려두어도 어찌 올라갈 수는 있을 테다.
" 에, 꿈 정도는 꿔도 되잖아요? 야박해라. 그리고 거의 몇만년 만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쉽게 포기할 수 있을리 없잖아요. "
흥분된 반응을 보이는 윈터를 향해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저 그녀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무언가 얘기하려다 숲으로 가자는 윈터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 무슨? "
나는 그녀를 따라 동쪽의 성문으로 이동했다. 그녀는 가는 길에 민가에서 수건 두장을 가져와 머리에 감아서 귀를 가리는데 이용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귀가 눈에 띄는 편이니까 탁월한 선택이다. 그리고 위병들이 보일 무렵이 되자 그녀는 또 근처의 점포에 가더니 덮고 있던 커다란 천을 부욱하고 찢어서는 나에게 뛰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뛰려고하자 갑자기 가만 있으라는 소리와 함께 나는 엉겹결에 그녀에게 안겼다.
" 엥? "
상황판단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나를 안은채 높이 뛰어올라 위병들까지 뛰어넘고선 그대로 숲으로 진입하는데에 성공했다.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멀어지자 그녀는 나를 내려놓고선 풀밭에 대자로 뻗어버린다.
" 괜찮아요? "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본 나는 치유 마법을 써주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횟수는 두어번 남았으니까 이번에 쓰면 딱 한번 남는 것이다. 그러다 야영할줄 아냐는 윈터의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지형탐사 기록 같은걸 남기려면 실제로 야영도 했어야하니까요. "
아무래도 이 천은 지붕으로 삼기 위해 들고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만 기둥으로 삼을 나무는 당연하게도 튼튼해야하니까 떨어져있는 나뭇가지로는 어림도 없는 상황이긴 했다.
" 도구가 없으니까 땅을 파고 그 위에 천을 덮거나 ... 아니면 어디 적당한 곳에 천을 걸쳐두고 불을 피우거나 둘 중 하나겠네요. 좋은 생각 있어요? "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저 인간, 미친 걸까? 하고 생각할 법한 상황이었으나, 추락자라는 공통점 아래에선 미친 것은 아니었다. 회귀자는 추락자(어쩌면 추락견)를 바라본다.
그랬기에 당신이 하는 말에 헛웃음을 터뜨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었기에. 여러 추락자와 만난 회귀자의 입장에선 같은 추락자가 적이 아님을 증명하기는 제법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기이한 일이다. 어떻게 같다는 이유만으로 경계를 하지 않는지?
“나는 다윈입니다. 그리고 내가.”
회귀자가 다가가던 것을 멈추고 느리게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당장 적이 아님을 증명한들, 이후에 적이 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습니까?”
“단언컨대, 불가한 일일 겁니다. 그러니 나는 내 목숨으로 이야기하죠. 내가 그쪽을 해하려 든다면, 그러니까 적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즉시 물어 뜯으십시오.”
인간의 육체는 약하다. 회귀자 또한 마찬가지다. 회귀라는 특수성을 제외하고서, 그는 평범한 인간보다 조금 더 신체능력이 좋을 뿐, 그 외의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당신은 다르다. 개의 송곳니가 늑대인양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 뜯는다면, 하다못해 허벅지나 종아리라도 물어 버린다면 제법 큰 상처를 남길 것이다.
회귀자는 타자를 설득하는 능력따윈 기르지 않았다. 그러니 그저 진실되게 말하는 수밖에 없는 거지. 보라고, 저는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적어도 우리는 적이 되지 않을 거라고. 지금은 그럴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다가가도 되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지나치기라도 하고 싶군요.”
확실하게 쫓기는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쫓길 수도 있기에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 한복판에 서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걸 당신도 알아주기를 바란다.
귀엽게 양갈래로 묶는 거야.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투로 말하며 미하엘이 헤죽 웃었다. 자르는 건 자신이 없지만, 묶는 건 나름대로 할 자신이 있었다. 추락자가 되기 전에는 친구들 머리도 만져주곤 했었으니까.
너와 미하엘의 사이에는 특별한 방해물이라곤 없는 것 같았다. 주민들이 웅성거리기는 했지만 그뿐이었고, 미하엘도 너도 거기에 신경 쓰지 않으니 더더욱 그랬다. 미하엘은 여전히 턱 괸 채 네 말에 반응한다.
“나는 사람들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 말이 트리거라도 되었나. 웅성거림이 더욱 더 커지더니 사람들 사이에서 험한 목소리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미하엘은 저들이 자신을 해칠 수 있으리라곤 조금도 생각지 않는 눈치로 너를 바라보다 네가 이곳이 높아 올라오지 못한다는 듯 얘기하자 고개를 기울였다.
“도와줘? 대신 잠시 동안은─.”
무어라 더 말하려던 미하엘의 말은 주민 중 누군가가 던진 돌에 잘려나갔다. 던져진 돌멩이는 픽 하고 미하엘의 눈 아래 뺨을 스치고 지나갔고, 그제야 미하엘이 놀란 눈을 했다.
“우왁─! 아야야, 아프잖아!”
나라고 너희들한테 뭐라고 못할 줄 아는 거야? 미하엘이 손등으로 뺨을 훔쳐 냈다. 핏방울이 손등에 긴 줄을 내었다. 으와, 흉 지면 누가 책임 질 거야. 투덜거리는 것도 잠시 뿐이다. 한 번 던져진 돌멩이는 어째서인지 가까이에 있는 너보다 높은 위치에 자리한 미하엘에게 더욱 향했고, 미하엘은 그 돌을 일일이 피할 수 없으니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 사이 네가 주변의 쌓인 나무 상자 따위를 발견했을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괜찮을 거다. 미하엘이 널 올려줄 테니까.
인간들은 종종 '동물은 거짓말을 알아본다'고 하지. 그러니까,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인간을 제외한 짐승으로서의 동물 말이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나 같은 개들은 기본적으로 순진하고 단순해서, 눈으로 본 것들을 그대로 믿는다. 단지, 더 잘 볼 뿐이다.
그런 연유로⋯⋯ 이 남자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알아챘다. 아니면 완벽하게 무덤덤한 태도를 가장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크흠!" 나는 주섬주섬 풀숲에 숨겨 둔 사과를 꺼내 왔다.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경험에 따르면, 낯선 곳에서는 누구도 믿지 않는 게 좋다더군요⋯⋯. 뭐가 됐든 일단 확신을 얻어 놓는 게 좋지 않겠어요? 더구나 이렇게 각박한 시기에는요. 그나저나, 제 이름은 머핀입니다."
경계를 풀었다는 의미로, 나는 꼬랑지를 보였다(인간 기준으로 표현하자면 등을 보였다).
"이름의 뜻은, 제가 온 세계에서는 식사용 빵이라는 뜻이고요⋯⋯." 아, 금방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게 내 결점인데⋯⋯ 여기까지 와서 폼 재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 "⋯⋯일단 안전한 데로 갑시다. 그게 피차 좋은 일이겠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이야기를 들어야겠어요."
나 말고도 같은 세계, 같은 도시 내부에 추락자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동안 잠행하며 그들을 마주친 적은 없었으니, 어쩌다가 추락자들에 대한 이런 박해가 시작되었는지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설마 개를 의심하겠어' 하고 방심하고 있다간 자는 도중에 칼날에 목을 내주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니 대로 한가운데를 걷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방금까지 숨어 있었던 덤불로 뛰어들어, 그 뒤로 나 있는 오솔길에 서서 남자를 뒤돌아보았다.
묶어주겠다는 마음에 곧장 표정이 편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히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그래줄래?”
헤아릴 수조차 없는 긴 시간을 살아왔어도 제 머리 자기가 정리하는 것만은 여전히 쉽지가 않아서 말이다. 양갈래라는 말에도 그다지 발끈하는 반응은 없다. 아마 그런 머리모양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잘 모르는 것 아닐까. 사실 알았더라도 그라면 여전히 신경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내, 간신히 일상의 선을 유지하던 대화에 금이 가고 만다. 허공으로 느린 팔매선을 그리며 오르는 돌덩이. 그것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돌이나 물건을 던져 대며 노호의 아우성이 인다. 바로 곁에 있는 자신보다 미하엘만 노릴 거라고는, 사람들이 무언가 할 것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는 성난 사람들을 둘러보며 눈을 깜빡거리다가.
……하고 싶어 한다면 하게 두어야지. 그는 분명 따스하지만 동시에 어느 지점에서는 무심하기도 한 사람이었다. 사실 막으려 한들 그에겐 그럴 힘도 없었고, 지난번과 같은 방법을 마구잡이로 남용했다간 역효과가 날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든 탓도 있었다. 말리는 대신 그는 사람들이 위쪽에 정신이 팔린 때를 이용해 인파 사이를 자연스레 걸어나갔다. 한쪽으로 빠져나와 트인 시야로 보니, 마침 적당한 발판이 하나 보였다. 그는 슬며시 뒤쪽의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고는 천천히 상자를 딛고 올라섰다. 그리 오래지 않아 지붕 위편에 손 하나가 불쑥 올라왔으리라. 예전과는 달리 깨어지거나 찢어진 데 없는 매끄러운 맨손이었다─장갑은 아직 좋은 것을 구하지 못해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차라리 맨손이 나았다─. 이어 힘으로 훅 올라온 그는 끄트머리에 몸을 걸친 뒤 지붕 위로 마저 몸을 당겼다. 먼지 묻은 손을 탁탁 털며 그가 미하엘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여기 계속 있을 수 있겠어? 나는 상관없지만, 너는 맞으면 아플 텐데.”
묻는 와중에도 잘못 튄 돌 하나가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머리 한쪽에 맞고 떨어져나간 돌멩이를 물끄럼 바라보았다. 운이 좋게 피부가 찢어지지는 않았다. 맞고 떨어져나간 돌멩이를 물끄럼 바라보다 머리카락한 대충 털어내었다.
>>681 회귀자는 눈 앞의 추락견이 풀숲에서 베어 먹힌 사과 한 알을 꺼내오는 것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차라리 먹을 걸로 설득을 할 걸 그랬나? 하고. 뭐, 이미 지난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자신의 이름을 머핀이라고 소개한 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빵실한 꼬랑지까지 보이는 걸 보니 경계는 풀린 모양이다.
“그렇습니까. 제가 지내던 세계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였을 겁니다. 초콜릿이나 건포도 등을 넣기도 하고요.”
당신을 보면 이 친구는 체다 치즈 같은 것이 들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그렇게 생각하니 배가 고파지는 것 같아 회귀자는 괜히 머쓱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에 안전한 곳이 어디있는지 알 수는 없네요. 이 세계는 지금 보이는 저 도시와 이 숲이 전부라서요.”
회귀자는 며칠 전 자신이 파악한 사실 중 일부를 이야기 했다. 세계의 끝은 숲의 끝과 닿아 있으며, 이 세계는 생각보다 좁고 폐쇄적인 곳이라는 것까지. 회귀자는 당신이 향한 오솔길을 확인하더니 그 뒤를 따랐다. 안전한 곳이 있고 없고를 떠나 움직일 시간이긴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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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런 상황에 안녕을 물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가 알기로 안녕은 평화롭고 무탈한 때를 말하는 거라던데. 만사에 둔감한 그라고 해서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흉흉하게 물건 날아드는 주변을 둘러보다 결국 물었다.
“……지금은 안녕이라고 해도 괜찮을 때야?”
괜찮다 하면 곧장 믿겠지만 말이다. 안 아프냐는 말에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말하자마자 또 다시 돌덩이 하나 날아와 옆구리를 퍽 치고 떨어졌다. 서로 태연히 대화하고는 있지만 역시 돌이 날아드는 지붕 위는 담소를 나누기엔 좋은 자리가 아닌 듯싶다. 그러고 보면 조금 전에도 미하엘이 무언가 말하려 하다 자꾸만 말이 잘리지 않았던가. 돌 맞는다 해서 기분은 이상해지지 않지만─사실 “어떻게 이상해야 하는데?”라고 묻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대화를 편히 하고 싶다는 욕구 정도는 그에게도 있다. 튀자는 말에 곧장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래서다. 장애물 달리기가 정확히 어떻게 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기도 전─ 말이 끝나자마자 당장 이끌려 달려나가게 되었다. 처음 얼마간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정신은 금세 들었다. 제법 적응력 좋은 성격이라, 크게 휘청거리는 일 없지 끝까지 잘 달리지 않았을까.
팔매질로도 닿지 못할 만큼 먼 곳에 도착해서야 달음박질이 멈춘다. 휘날리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쭉 당겨 정리하며 그가 물었다. 여전하게도 숨은 조금도 고르지 않는 채다.
저벅, 저벅─. 걸음 하나 옮길 때마다 풀잎이 짓이겨진다. 흙을 밟는 감촉이 퍽 괴이하다. 물기 없이 메마른 공기가 뺨을 스치우고 지나간다. 뜨거운 햇살에 피부가 바싹 말라온다. 주변엔 온통 아름답고 푸르른 식생이 자라있음에도─ 아까 전부터 줄곧 숲을 활보하고 있던 청년에게는 이 광경이 생소하기만 할 뿐이다.
"─하아."
청년이 갈라진 숨을 내쉬었다. 낯선 환경의 식생들, 처음 보는 형태의 짐승들. 드넓은 대양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딜 보나 이곳은 그의 고향 땅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딘가의 별세계라도 된다는 것인가. 다른 세계라는 게 정말 있다면 말이지만─ 이 청년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창공을 누비고 있었다. 아니, 누볐다기보단 추락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추락 이전에는 심해를 유영하고 있었고─
"─건조해."
거친 목소리가 성대를 긁어대었다. 바다 야수는 뭍에서 오래 머물지 못한다. 바다 야수를 닮은 청년도 그런 기질을 조금이나마 물려받았다. 바다 야수와 달리 해수(海水)에 몸 담그지 않는다 하여 죽진 않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건조하다. 청년은 제자리에 멈춰서 숨을 골랐다. 와중 멀지 않은 거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곳의 토착 생명체인가. 그의 반쪽짜리 시선이 기척의 근원지를 향했다.
윈터는 가까이 다가오는 라크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손을 내저었다. 전력 질주를 했을 때에 가슴과 목구멍이 따끔거리는 정도의 통증일 뿐이다.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했기 때문으로, 이 정도의 소량 객혈은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녀는 옆으로 돌아누워 눈앞의 풀때기와 흙을 만지작거렸다. 풀은 봄 날씨의 것이고, 흙은 부드럽고 촉촉하게 젖어있다.
"하기야 그 정도로 오래 살았으면 안 해본 게 뭐가 있겠어. 천막은 거추장스럽고 불은 안 돼. 너무 눈에 띄잖아. 여기가 산지도 아니고, 저기 망루에서 내려보면 곧바로 보일걸? 네 말대로 땅을 파고 그 위에 캐노피를 덮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고 안전하겠지."
구시대적인 참호전은 그녀도 몇 번 경험한 적 없지만, 야전에서 몸을 숨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참호만 한 것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이 들어갈 만한 땅을 파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땅을 파낼 도구가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흙을 한꼬집 쥐어 라크의 다리께로 장난스럽게 던졌다.
"손으로 팔까? 아니면 다시 들어가서 삽이라도 훔쳐 올까. 어차피 지금부터 야영할 건 아니니까. 내가 잠깐 들어갔다 오는 건 일도 아냐."
정신을 차린 뒤에 보게 된 것은 낯선 정경이다. 던전에서도 본 적 없을 이름 모를 나무가 우거진 숲. 순간 던전 브레이크로(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으로) 일대의 던전화가 진행되었나 싶었지만 이런 종류로 구현이 되는 던전은 노련한 S급 헌터인 태빈에게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갑자기, 딴 세상에 홀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가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낯선 숲으로 떨어지기 직전에는 분명 나는 □□□의 □□를_
“윽-”
그저 숲에 오기 전 기억을 되짚어보려 했지만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혼란스러워 주저앉아 머리를 부여잡고 찡찡거려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지. 이해했다. 이번엔 이곳에서 살아남으면 되는 거지?
태빈은 멀지 않은 거리에서, 영문모를 동질감이 느껴지는 바다와 눈이 마주쳤다. 단순히 다가오고 있을 뿐인데 해일이 자신을 덮치고 있다는 감각. 평소라면 이런 기척이 느껴지는 자에게 말을 걸지 않았겠지만.
토착 생명체로 추정되는─ 그럼에도 기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생명체가 청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키 크고 화려한 장식을 군데군데 두른 남자. 청년은 말끄러미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는 제게 익숙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말뜻은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청년은 깊은 생각에라도 몰두한 양 대답하지 않았다. 기다란 뱀 꼬리를 좌우로 휙휙 흔들기만 할 뿐이었더라.
"현지인? 아니, 난 이곳 사람이 아니야."
머지않아 적막을 깨어내는 건조한 음성. 어떤 감정조차 실리지 않은 무미건조한 울림이다. 그보다,
"─헌터?"
낯익은 단어였다. 청년은 한쪽 손을 들어 제 턱을 매만졌다. 비늘 돋아난 손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당신은 작살꾼이야?"
헌터는 사냥꾼, 사냥꾼이란 곧 바다 야수를 사냥하는 작살꾼을 말한다. 그리고 이는 청년이 한때 내세웠었던 직업이었으며─ 그러나 눈 앞 남자의 생김새는 무척 이질적이었다. 자신과 같은 부류라기엔 너무나 거리감 있었다는 의미이다. 해인의 외형적 특징이 드러나지 않은 건 물론이고 바다 내음 풍기지도 않았으니─ 게다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발음의 이름은 또 무언가. 배, 태, 빈. 청년은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며 조용히 그 이름 곱씹었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듯이 괜찮다며 손을 저어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윈터를 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객혈을 하는 것을 보고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다만 움직이는 것을 보면 정말로 큰 상처는 아닌것 같아서 일단 손은 내려놓았다. 누워서 흙을 만지작이던 윈터는 땅을 파고 천을 덮자는 제안을 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게 눈에 안띄고 좋은 방법이긴 할 것이다.
" 다시 안에 들어가는건 리스크가 좀 있을 것 같네요. "
윈터가 던진 흙이 발 아래에서 흩어진다. 그녀는 다시 들어가서 삽이라도 훔쳐오겠다지만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당장 가게의 천을 훔쳐서 경비병 위로 점프해서 빠져나온 참이다. 경계는 당연히 강화 되어있을테니 다시 들어갔다가 잡힐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보였다. 물론 윈터의 신체능력이라면 가뿐할지도 모르지만 괜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 근처에 두꺼운 나뭇가지들이 많으니까 이걸로 파면 어느정도 파질꺼에요. "
다행히도 여기는 숲이니까 땅을 팔만한 두께의 나뭇가지들은 지천에 널려있었다. 만약 부족하다면 근처 나무에서 꺾어도 되는 것이고. 다만 나뭇가지로 땅을 파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인데 두명이 들어갈 정도의 땅을 파려면 아마 꽤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결국 하나였다.
" 그리고 저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험한 곳으로 혼자 보내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
부드러운 미소를 띈채 얘기한 나는 내가 먼저 적당한 나뭇가지를 집어들고선 땅을 파기 시작했다. 표토는 나뭇잎들이 썩어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아서 부드럽게 파지지만 어느정도 파내려갔을때부턴 힘을 주어야 제대로 파지기 때문에 체력이 중요했다. 내가 체력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구덩이를 만들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 아닐까 싶긴하다.
" 너무 넓게는 못만들겠네요 ... "
삽이 있어도 천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어서 둘이서 딱 붙어서 앉는 정도가 한계이지 않을까 싶다.
⋯⋯건포도? 식빵인 머핀에 건포도라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설마 상식이 통하지 않는 괴이인 건가! 위험해⋯⋯!
라고 생각하며 멈춰서려던 순간,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다 건너 나라에서는 컵케이크를 머핀이라고 불러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언어의 장벽뿐만 아니라 태어난 세계 자체가 다르니 표현이 다른 것은 당연할진대, 그럼에도 이렇게나 놀라 버리다니⋯⋯. 음식에 대한 상식의 붕괴는, 아무리 지식이 많은 나 같은 존재라도 흠칫하게 만드는 위력이 있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방금 대화를 통해 알아낸 것이 있다면, 이 남자의 세계에도 '카카오'나 '포도' 등, 내가 '살았던' 행성과 동질적인 식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초콜릿'이나 '건포도(레이즌)' 같은 형태로 가공해서 먹는다는 것 또한 내 원래 세계의 '정보'와 동일하다. 비슷한 문화와 문명은, 비슷한 사고방식을 암시하기에⋯⋯. 요지는, 이 남자의 행동을 내가 원래 지닌 상식으로 재단하고 예상하는 일이 '그나마' 쉬워지리라는 것.
⋯⋯인간을 비롯한 지성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자기 우주와 문명이 오로지 혼돈스러운 발전의 결과로 만들어진, 복잡하고도 유일한 존재일 거라는 착각이 잠들어 있다. 그래서, '다른 세계의 존재'라고 말하면 그들이 분자 구조의 근간부터 자기들과는 다른 무언가일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말지. 방금 내가 '건포도 머핀이라니 있을 수 없다'고 놀란 것처럼.
그러나 이 세계에 떨어지고부터 눈치챈 것은, 문명이란 건 결국 비슷비슷한 형태로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무리 낯선 곳이라고 해도 자신의 상식을 믿으면 나아갈 수 있다⋯⋯.
"초콜릿이랑 건포도라⋯⋯." 그것들은 분명히, 내가 평생 맛볼 일 없는 단맛이겠지. "잠깐만, 세계에 「끝」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닫힌 계'의 의미로? 아니면 우주의 물리적인 한도가 정말로 도시 하나 크기라고요?"
처음 듣는 정보다. 지금까지는 도심에서 멀리 나가지를 않았으니까⋯⋯. 그러면, 무한정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782 네 말에 미하엘이 비싯 웃는다. 안 될 건 뭐가 있겠어~ 다소 여유롭기까지 한 대답을 내보이며 날아드는 돌에 짧게 으악 소리를 냈다. 역시 안 되겠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던지 해야지.
그리하여 때아닌 지붕 위 장애물 달리기가 시작 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재미있기보다는 조금 불안했다. 지붕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고, 미끄러질 수도 있었다. 물론 마구잡이로 험악하게 넘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사람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위치에 달하고 나서는 미하엘은 아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재미있어서가 아닌, 상황이 마냥 우습기 때문이다. 아까 보았느냐며, 지붕 위로 올라오지도 못하던 주민들이 돌이나 열심히 던져대던 것이 웃기지 않느냐며 말하곤, 숨을 열심히 골랐다. 그 와중에도 네 숨은 평소(그걸 평소라고 할 수 있다면)와도 다름이 없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아까? 처음 만났을 때? 아니면 지붕 위에서? 아니다.”
미하엘은 찰파닥 주저앉았다. 능력 쓰던 것을 멈추자 눈앞이 뱅글뱅글 돌았다. 코끼리 코를 하고 열 네 바퀴를 돈 것만 같은 어지러움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도와주면 네가 내 길잡이를 해줘야 한다는 거였고, 지붕 위에서는 튀면 된다고 말하려던 거였어~”
와하, 어지럽다~ 까르륵 웃는 것이 여간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다. 미하엘은 네게도 옆에 앉으라는 듯이 바닥(정확히는 지붕 위지만)을 팡팡 내리쳤다.
>>845 아! 어프로치! ㅎㅎㅎㅎ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귀여운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캐릭터가 sl 지향이라 연애 쪽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괜히 앞서 밝히는 이유는, 라크가 싫어서 자꾸 튕기는 게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이후에도 그렇게 하는 건 상관없으니 편하게 대해주세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 그 단어를 읊은 상대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신비한 외견을 지녔다. 자신과 같이 팔과 다리가 한쌍을 이루는 이족보행 생명체이지만. 인간의 것이라 보기엔 뾰족한 귀와 꼬리, 뺨과 손등에 마치 용의 것과 같은 검은 비늘이 돋아있었다. 그저 헌터로 각성을 좀 특이하게 했구나 싶어 평소처럼 덤덤하게 넘겼는데.
“나 역시 이곳 사람이 아닙니다. 헌터라는 직업은 세계 각지에서 나타난 던전에서 쏟아져나오는 괴생명체를 토벌하고 인류를 지키는 직업이지요. 작살꾼이라는 것도 그렇다면, 제가 당신의 세계에서 나고 자랐다면. 전 작살꾼이 되었겠죠.”
그러니 지금 눈앞에 그가 드물게 지능을 가진 몬스터라면. 던전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존재들이 즐비하고. 때론 의심을 확인하지 않아 죽음으로까지 이를 수 있는 전장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 '난 이곳 사람이 아니야'라고 했으니. 이곳 사람이 아니라했지, 사람이 아니라곤 하지 않았잖아?
“선생님은, 사람이... 인간이 맞으십니까? 선생님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동질감이 느껴져서요. 이 낯선 세상에서 난 당신이 인간이길 바랍니다.”
멈춘 뒤에는 붙잡았던 손도 놓아진다. 서로 닿았던 부분에 가만히 눈길이 머물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갓 추락했던 당시에는 누구와 닿아 있었던 것만으로도 불안스러울 정도로 답답하고 어색했는데, 그때에 비하자면 많이 나아졌다고. 아직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엔 바짝 놀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주변에 다가드는 인기척이 없는지 가볍게 확인한 후에야 졸래졸래 미하엘에게로 다가갔다.
“맞은 데는 괜찮아?”
처음에 스친 상처에 더해 달리던 도중에도 날아온 돌에 맞았을 수 있으니.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다고나 할까, 낭랑하게 웃는 미하엘을 보고 그도 마주 웃어주었다. 재미있었던 건가 보다. 틀린 오해를 하고 말았지만, 미하엘이 즐거웠다면 그도 즐겁다 느꼈다. 그러나 이내 미하엘이 풀썩 앉아버리자 헤실거리던 낯 놀란 토끼 눈이 된다. 그는 우선은 순순히 곁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표정이 알쏭달쏭하니 생각이 복잡한 모양이다. 몸을 가누기 힘든 듯한 모습인데, 그러는 동시에 유쾌하게 웃고 있으니 어떤 상태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홀로 하는 심각한 고민의 끝에 결론이 났다. 당사자는 정작 태연해 보이니 아마도 곧 회복되는 증상이리라 짐작해 본다. 가벼운 기침만으로도 중병을 의심했던 옛적에 비하자면 이 또한 장족의 발전이라면 발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전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라, 조심히 고개를 기울이며 그가 물었다.
식물이를 굴리는데 좀 고민이 있네. 얘 설정상 다른 캐릭터들과 접점이 생길만한 상황이 너무 한정적인것 같아서. 기본적으로 남에게 큰 관심도 없고 그냥 풀인척 구석에 쳐박혀있을때가 많으니까. 일상을 돌릴때마다 시작점을 몆가지 복붙해서 돌려쓸순 없잖아? 바쁜것도 있지만 그런것때문에 요즘 일상을 구하기 망설이게 되는것 같아.
숲을 지나온 청년의 앞에 드러난 건─ 도시였다. 인위적으로 지은 건축물들이 모인 문명의 흔적─ 청년은 그 안으로 발을 들이려다가 잠시 머뭇거리고 말았다. 그의 고향에서 바다 야수를 닮은 자는 환영받지 못한다. 그 까닭에 그는 줄곧 인간을 피해다녔었다. 이 도시의 주민들도 자신을 반기지 아니할까. 고민은 몹시 짧았다. 생이란 덧없는 것이며 고뇌는 불필요한 것이다. 언제까지고 멈춰서있을 순 없으니까─ 청년은 도시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일순 밀어내는 느낌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도시 내부는 꽤나 한산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인지했다. 그저 한산한 것이 아닌 폭풍 전의 고요 같다고─ 한편 건조하고 텁텁한 공기는 여전했으며─ 거리를 지나는 행인을 보고 있노라면 제 마음까지 답답해졌다. 알 수 없는 거리감에서 비롯된─
"─콜록, 콜록."
공기가 잔뜩 메말라서인지 잔기침이 멎질 않았다. 청년은 입가에 손 대어놓고 연신 콜록대었다. 물이, 바다가, 소금기가 그리웠다.
악~~!!! 레비주 안녕하세요~! 제가 없던 사이에 귀하디 귀한 신입분들이 이렇게나 들어오셨구....(˵ ͡° ͜ʖ ͡°˵) 감사합니다.. 요 2주정도 갑자기 해야 하는 일들이 와라락 들이닥쳐가지구 그렇게 됐네요,, 그래두 일단은 지금 해야하는 건 다 쳐냈으니까 당분간은 완전 여유~! 괜찮아요! 감사해요 ദ്ദി ( ᵔ ᗜ 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