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탑의 문. 끝없이 하늘로 이어지는 거탑의 시작점에서- 나는 긴 고뇌에 빠져있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의심 없이 이곳을 들어갔겠지만... '특별반의 현 상황을 알아버렸으니...' 미간을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 기왕이면 당분간은 만나지 않는편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
어느덧 습관이 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벽에 기댄채로 이때까지의 일들을 정리했다. 자기가 바보라고 광고를 하고 다닌 특별반. 위태로운 입지. 그럼에도 아직은 투아웃 정도인 상황.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일반적인 단체였다면 진작 해산되고도 남았을 실수들을 덮어주는걸 보자니, 묘한 기분이 든다. 물론 그렇기에 자신의 아버지 또한 아직 살아있을 수 있는거니...
요즘 여러 사정으로 탑을 오를 기회가 없군. 아니면, 오를 기력이 없던가. 오늘도 입구 근처에서 앉아 탑을 올려다보면서 꼴깍이를 닦는다. 이 다음에는 장비 수리.....사실 결자의 의식도 내구도가 많이 달아있지 싶은데. 30만 GP로는 꼴깍이 정도나 수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눈을 꾹꾹 누르게 된다. 돈도 인맥도 시간도 힘도 싸그리 부족한 기분이 든달까. 이상하다....분명 미친듯이 달려 강해졌을 터인데도, 왜 이런 기분이 다리를 붙잡는걸까.
궁상인걸 알면서도 입구에서 모지리 마냥 그러고 있다보면. 옆에서 중얼중얼 거리더니 꼬였다는 말을 하는 사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정은 몰라도....많이도 꼬였나보군."
시원스러운 외모에 눈매는 피곤에 찌든게, 어떻게 보면 나랑 조금 닮았을지도 모르겠군....
어디 유럽의 귀족 가문 자제가 아니고서야, 신한국에서 미들네임을 쓰는자는 극히 적었다. 그저 멋으로 붙인게 아니라면 필히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일테지. '그 자체로 이력이 생기는 타입이거나, 혹은 무언가의 상징 혹은 증표려나' 머리 한구석으로 헌터 생활을 하며 익힌 지식들을 이리저리 들춰내며 말을 이어나간다.
" 그래. 시윤 형씨 라고 부르면 되겠지? "
정세가 많이 달라져서 놀랐겠다 라는 말에 속으로 헛웃음을 짓는다. '아무렴 놀라고 말고. 뒤집어지는줄 알았다만' 같은 말을 초면에 할 수는 없었기에 옅게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정도가 최선이였다.
목각인형은 덩굴 채찍을 휘두르거나 팔다리를 휘두르며 저항하지만 곧 윤성에 의해 머리가 방패에 처박힌다. 콰직! 그 까맣게 그을려져가는 머리에 큰 금이 간다. 엎어뜨린 목각인형을 보니 덩굴이 목각인형의 안에서 자라나 휘감은 것임이 보였다.
"입학할 때부터 이렇진 않았어."
강산은 윤성에게 답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전투 아직 안 끝났으니까 방심하지 말고."
강산이 '적이 레벨 38 치고는 너무 쉽게 밀리는데.' 라고 생각하던 순간 목각인형의 움직임이 잠시 멎는가 싶더니... 콰콰쾅!! 그 안의 덩굴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목각인형을 깨고 나와 폭발적으로 자라나서는, 그 비대해진 줄기로 윤성을 역공하려 하지만, 큰 피해는 주지 못한다. 윤성의 갑옷 때문도 있지만, 강산의 염동 마도 기술이 덩굴을 뒤로 잡아당겨서 공격이 일부 빗나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덩굴이 본체였나."
기술 - 제 3세계(C) 의념의 흐름을 쥐어 활용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의념의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적에게 강한 대미지를 입힌다. 사용 중 망념이 꾸준히 20 증가한다.
염동 마도는 그의 주특기는 아니었지만 꼭 지금처럼 가끔 필요할 때가 있었다. 어찌되었든...몬스터에게 가해졌던 덩굴의 구속은 시전의 의미가 없어졌지만, 윤성의 방패에 시전된 '도깨비불'은 유지되고 있는 상황.
"곧 버프형 의념기를 쓸 거야. 오래 쓰진 못하지만. 마무리할 수 있겠어?"
강산은 침착하게 윤성에게 묻는다.
//11번째. 정주행하면서 써둔거 먼저 올리기... 원래 이번 턴에서 의념기 쓰려고 했지만 레벨이나 윤성이 기술셋 생각해서 2페이즈로 넘어간 후 의념기를 시전하게 되었네요...!
콘스프를 한입 떠먹으면서 고개를 기울인다. 특별반에서 선하고 순하기론 상위권에 드는 녀석이 엄격하다는 평가를 받는건 잘 이해가 안가는데. 녀석이 정색할만한 상황이라곤, 상대가 자신을 먼저 속이거나 해하려고 할 때 정도일터다. 나는 눈 앞의 소년의 이미지를 다소는 조정했다. 강산이 엄격하게 대한 녀석이라면 평탄하진 않나보군.
"그러냐."
나는 스프를 몇번 더 떠먹으면서 그가 갑자기 펼치는 자기소개를 듣곤, 조금 생각하다가 입을 연다.
"평범한 대화에 안 익숙하지?"
방금 조정한 이미지랑 합쳐서 나는 언제나처럼, 그닥 날카롭진 않지만 덤덤하게 찔러본다.
"왜냐면 맥락이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애초에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네 정보를 주었다고 대답할 의무는 없고....아. 오해하진 마. 까다롭게 구려는건 아니고, 단지."
뭐라고 해야할까. 라고 운을 띄우곤 스푼을 몇번 허공에서 빙글 돌리다가 결론을 낸다.
"그렇군. '내가 무언가 제공받으려면 상대에게 제공해야겠구나' 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시점에서, 상당히 이해타산적인 것 같아서 말이야."
가디언이나 여러 상황이 엮여 있는 상태만 아니라면 좋아 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차세대의 리더를 원하고, 리더에겐 여러 신화가 필요한 법이니까.
- 편한대로. 백색의 기사라고 부르면 좀 부끄러울 것 같지만. " 이명이 다 그렇지. 백색의 기사씨? "
장단을 맞춰 웃으며 답해주곤, 정보를 기억에 새긴다. 40레벨대에 이명을 하사 받는 것 자체는 그럭저럭 있을 법 하지만, 신의 이름을 받는것 까지 합한다면 절대 흔한 업적이 아니였다. '어찌되었든, 특별반의 무력 수준 자체는 그렇게 비관적인 상황이 아니란거겠지.' 반대로 말하자면 무력 수준이 떨어지는 순간, 그대로 버려져도 이상 하지 않을 상황이기도 했다.
" 친해진 사람은 딱히 없지만... " " 소문? 들은거야 많지. "
자신이 들었던, 특별반의 현 상황을 읊으며 무덤덤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이런 말들은- 감정을 담아서는 안되었다.
" ...이 중에서 사실이 아닌게 있나? "
겨울의 의념을 담은 눈동자가, 잠시 눈 앞의 소년을 훑고 지나갔다. 아니, 소년이라고 말하기엔... 청년에 조금 더 가까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