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인간 아닌것이 꺼낸 이야기는 놀라웠다. 하늘에서 떨어졌냐니! 제가 추락한 것 주변에 두발 짐승은 없었는데. 덩굴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인간으로 따지면 양반다리 쯤 되는- 섰다.
"두발 짐승은 보지 않은것도 알수 있나?"
덩굴은 인간 아닌것이 하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여기가 제 고향이 아니라는건 이미 알고있었다. 하지만 다른 세계라니. 세계가 뭔진 몰라도 자생지보다는 넓은 개념인것 같았다. 덩굴은 그저 아주, 아주 먼 곳 쯤으로 이해했다. 눈 앞의 사람은 인간 아닌 것이고, 여긴 인간과 인간 아닌 사람이 섞여있다고. 식물은 인간 아닌 것의 설명을 따라 도시를 눈으로 훑었다. 그러고보면 이 사람과 저 사람들은 무언가 달랐다. 무엇인지 알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었고, 또한 상대와 자신이 '같다'는 감각이었다. 아하, 내가 떨어졌다는건 이걸로 알았구나.
"세계는 몰라. 하지만 알겠어. 너- 떨어졌구나?"
그리고 저 사람이 이런 사실들을 알고있다는건 자신을 만나기 이전에도 떨어진 사람들을 만난적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여러그루야."
인간의 호기심을 계승한 식물은 어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리라고 직감했다.
"좋아, 재밌어. 그런데, 너흰 뭘 해?"
생각해보면 자신이 이곳에 떨어지고서 가장 처음 마주한게 현 상황이다. 떨어진 이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식물은 그것이 궁금했다.
잔이 깨어지는 소리에 점원 하나가 들어와 주방을 살폈다. 그녀는 그다지 곱지 못한 눈초리로 윈터와 칼 두 사람과 눈을 한 번씩 마주치더니 이내 별말 없이 다시 주방 밖으로 사라졌다. 왠지 감시라도 당하는 기분이었다. 윈터는 능청스럽게 깨어진 조각을 발로 밀어 개수대 아래로 치워버린 사내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녀에게는 조금 큰 듯이 너덜거리는 고무장갑에서 비눗물이 뚝뚝 떨어졌다. 윈터는 구역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하는 구역이라는 단어가, 그녀가 알던 세계에서 지역을 구분하는 명칭과 상당히 비슷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EP 지구'에서 왔어. 대륙에 하나 남은 상업도시였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몰라." ... "어떻게 된 일인진 모르겠지만,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세계에서 이곳으로 끌려와버린 거야. 나는 실험대 위에서 약에 절어가고 있었는데..."
윈터는 옛 기억을 떠올리기 싫다는 듯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홰홰 젓다가, 축축한 고무장갑을 벗어 개수대에 걸쳐놓으며 사내 쪽으로 돌아섰다.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지금처럼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부탁을 들어주면 약간의 호의를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우리처럼 갑자기 이곳에 '떨어진'사람들이 더 있다는 거. 그뿐이야." ... "윈터라고 불러. 너는?"
그저 인삿말을 건네었을 뿐인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편안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일변했다. 그는 문득 얼마전에 읽었던 책의 구절 하나를 떠올렸다. ‘서느런 서슬 도사린 듯’이라고 했던가. 그 비유 이제야 무슨 의미일지 알 것도 같아졌다.
동시에 그는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분명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상체의 한가운데가 길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놀란 눈 두어 번 깜빡이더니─ 그뿐이었다. 제법 큰 크기의 손상을 목도했건만 내보이는 반응은 여상스럽기만 했다. 기껏해야 찢어진 옷이 좀 아쉬울 뿐이다. 멈추었던 걸음 내딛으며 한 발짝 더 다가선다. 여전히 반가운 기색 어린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숲이 보고 싶어서 왔어.”
칼에 베이고도 다가갈 생각을 한 것은 무심결이었나 보다. 이제서야 상대의 표정을 살피던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음, 저 사람 기분이 안 좋은가?하고. 갑작스러운 공격─무슨 원리로 베였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직감적으로 이것이 상대의 소행임을 깨달았다─은 대체로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분노와 공격, 그 두 낱말을 떠올리자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지난번에 길에서 자고 있던 사람도 건드렸더니 귀찮게 하지 말라면서 화를 냈더란다. 그렇다면 저 사람도 똑같은 이유 때문일까? 화나게 하기는 싫은데…….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어 그는 제 볼을 가볍게 긁적였다.
인간은 불을 낸다고 했다. 불은 식물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덩굴의 자생지는 뜨거운 해가 모든 물을 증발시키는 곳이었으며, 동시에 그 물이 전부 비가 되어 쏟아지는 곳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에는 마른 땅에 햇빛이 닿아 수시로 들불이 일곤 했다. 덩굴을 포함한 그 지역의 식물들은 내화성을 키우기 위해 줄기와 잎, 껍질 등에 물을 머금곤 했다. 그가 이곳에 떨어진 시점은 건기의 끝자락이었다. 우기동안 머금은 물을 거의 다 소모했을 시점이었고, 이곳에 떨어진 이후로 충분한 양의 물을 머금지 못했다. 그러니 불길이 일어난다면 분명 손상이 크리라.
실상 인간의 팔은 반쯤 땅속에 묻혀있었고, 땅 속에는 불길이 연료삼을 산소가 모자랐다. 그러니 폭발로 인한 충격은 있어도 불길은 일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겉모습만 사람 비슷하게 생긴 풀에게 그런 지식이 얼마나 존재하겠는가. 덩굴이 그의 협박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된 까닭이었다.
"불- 불은 싫은데."
덩굴은 스르륵 의태를 갖췄다. 여전히 뿌리를 내리고 인간을 위감은 채였다.
"내가 궁금해? 이게 대등해. 뱉으면 위험해."
그러니까 자유를 찾은 인간의 바위줄기를 여전히 경계중이라는 뜻이었다. 불길은 위험하지만, 인간이 불을 낼수 있다는 확신이 어디에 있는가. 들불은 태양이 내는 것이었다.
분명히 베었다. 손으로 그러쥔 칼 끝에 감각이 남아있다. 헌데, 가죽을 베는 소리는 들렸으나 피 튀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분명하다. 저것은 불경한 것이리라.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사내는 두려웠다. 자신의 것을 제외하고 들리지 않는 심음이. 들리지 않는 기척이. 혹은- 과거로부터의 기억이.
그것은 숲이 보고 싶어서 왔노라고 말했다. 사내는 이해할 수 없는듯 고요함 속에서 크게 외쳤다. 두려움을 뱉어내려는듯.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불경한 사자, 마족, 이름 담을 수 없는 자여, 내가 마족의 농간에 놀아날 이로 보이십니까?"
"이 숲을, 이 도시를 유린하고자 한다면 나를 먼저 베어야 할 것입니다."
헌데, 지금 이 상황은, 두려움에 젖어 짖는 개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스스로의 나약함에 사내는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배어 나올 때 까지. 침착하자. 침착해야 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두려울 것이 없느니. 신께서 나를 벌하고자 하거든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허나, 나는 나의 기사도대로 움직일 뿐이다.
기사도. 그것은 꺾이지 않는 맹세. 아무리 비루한 곳으로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내겐 맹세한 사명이 있다. 그날로부터 줄곧,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체취도 나지 않고, 피도 흐르지 않으며, 베었음에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 태연히 말을 하는 이가, 어찌 사람일 수 있겠습니까."
"간악한 혀로 나를 희롱하려 들지 마십시오."
상대는 한발 더 다가왔음에도 자신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사내는 일어나, 자세를 갖추고, 검을 그러쥔 채로 탁한 시선을 목소리가 들리는 쪽의 허공으로 던진다.
그래, 두렵다. 불태워질 도시가. 자신의 손으로 지키지 못하는 그 악몽이. 몇번이고 자신을 덮쳤던 그 악몽이 지금 현실로 그려진다. 순식간에 시야가 새카맣게 물들고, 사내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며, 다음에 일어질 일에 대비하듯. 사내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한 줄기 주륵, 흘러내린다.
눈 앞에 나타나 나를 내려다보는 대화가 가능한 식물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치겠군, 만약 조금이라도 더 지능이 높았다면 난 이미 삼켜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허세를 부린게 먹혔고 다시끔 내게 활로가 펼쳐졌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돼... 분명 먹힐거야.'
자신에게 있는 디메리트를 감안하고 도시에서 사냥을 하는 식인식물이었다. 삐끗하면 죽는 것이었다. 이 도시의 환경담당자 나와! 어째서 이런 위험한 바오밥나무 같은 식물이 거주지에 태연히 돌아다니는건데! 그러던 도중 나는 식물의 눈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곳을 보고 느꼈다.
'이 자식, 나랑 같은 추락자다!'
세상에 인간이나 인간 비슷한 것만 보내는게 아니란 말인가?! 아니다, 의태를 하고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데... 뭐 문제 없겠지. 잠시 나를 먹으려는 녀석을 탐색해본 나는 거짓부렁을 내뱉으면 그대로 끝장 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여전히 녀석은 땅 속에 뿌리를 단단히 뻗고 있었으며 나는 땅속에서 상반신만 살짝 내민 불리한 상황이니 말이다.
"너 말이야, 인간에게 역으로 당할 수 있으면서 왜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을 하는거지? 그렇게 배가 고파?"
녀석이 사냥을 하려는 목적은? 영양분 공급이 필요하니까, 성인 남성을 잡아먹는 수준의 영양분을 공급해줄 방법? 당장은 없지만 어쩌면 가능 할 수도 있었다.
"좋은 제안이 있어, 네가 날 잡아먹는 것보다 훨씬 나은 방법이 있으니까 말야."
상대와 대화가 가능해서 정말 다행이다, 그마저 안됐다면 난 분명 이미 해골로 소화가 됐을테니까.
"사냥을 안하고도 영양분을 섭취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오히려 사냥보다 쉽지. 역으로 네가 사냥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영양분을 얻을 수도 있어."
제발 이 식인식물이 내 제안에 혹하길 기도를 했다. 세상에 내 인생에 신에게 기도하는 날이 올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