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앞으로 자주 볼 텐데 서로 편하면 좋지 않겠느냐? 당연했으나 인지하지 못 했던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그렇구나. 테시어 씨랑 다른 사람들도 여관에 묵는다면 자연스럽게.. 쳐다보던 시선이 다시 발 끝으로 내려온다. 담긴 것은 고민, 아니면 그와 비슷한 색의 갈등. 여전히 초조하게 꿈질거리던 손가락은 테시어의 배려 섞인 말을 듣고 난 뒤에서야 겨우 얌전해졌다. 그제서야 긴장이 좀 풀린 모양이지.
"그럼.. 조, 조금 더 편해지면, 그, 그, 그 때에..."
작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나마 추후에 그리하겠다는 뜻을 전한다. 머쓱한 기분에 두 팔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벽에다 세워 뒀던 밀대걸레만 다시 괜히 손에 들어 본다. 적어도 팔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고민할 필요는 사라져 조금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대로 방 청소를 해 드리는 게 어색함을 떨치기엔 오히려 나을까... 생각하던 중에.
"....와..."
감탄이라기보단 놀라움에 가까운 소리. 저, 정말 많네요... 이 여관에 모이게 된 것만 자신을 포함해 4명이라면, 이 세계엔 얼마나 더 많은 '떨어진 사람들'이 있을지. 열 명? 스무 명? 문득 추락한 첫 날 만났던 소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테시어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각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하다 싶었더니, 그 소년을 보았을 때 들었던 감각이다. 나날이 적응하는 것에 바빠 그만 깜빡 잊고 말았던 모양이지. 아, 그렇다면 걔도... 중얼거리는 혼잣말. 무언가 생각하다가 퍼뜩 이어지는 말에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든다.
"네, 네, 인간......이, 죠............... ... .. ....?"
....그러고 보면, 난... 인간이 맞나?
차분하게 맺으려 했던 말 끝이 삐끗 올라가고 말았다.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진 것 같다. 그야 지금까지는 딱히 눈에 띄는 특징도 없겠다, 너무나도 자연스레 인간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통 펴, 평범한 인간은..... 동물이랑, 말 안 하지...?
........ ... ..
나, 나는.... 인간이 아니었던 걸까......?!
걸레를 들고 선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세계에 떨어지기 전 떠오르는 행적이 전혀 없으니 짐작가는 바가 하나도 없다! 기억을 더듬으려 할 수록 느껴지는 것은 혼란, 혼란, 혼란 뿐! 머릿속에서 최대한 자신이 인간이라는 증거를 찾아내려고 했지만 부옇기만 해서 딱히 떠오르는 것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없다. 어쩌면 기억을 잃기 전에 인간 모습으로 변했다가, 돌아가지 못 하게 된 다른 무언가면.. 어떻게 하지? 퍽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다시 대답한다.
"사, 사실...그것도, 잘 모, 모 모르겠어요.. 어쩌면 다른 조, 종족이었을 수, 도 있고..."
영원, 영, 네차흐. 빛의 분광 만큼이나 각색으로 나뉜 조음들을 다시금 곱씹어 본다. 알레프가 받아들인 이름은 그렇구나. 그리 생각하던 차에 들린 말. ……무엇인지 모를 기분이 들어와, 다문 입을 우물거리며 시선만 연신 종잇장과 알레프를 여러 번 오갔다. 일반적으로는 ‘간질거리는 느낌’ 따위의 형용으로 표현했을 그 감정은 아마 수줍음이었으리라. 이름을 정할 때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이 듣기에 어떨지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않았었는데, 사람들은 영원이란 말을 꽤 좋아하는 듯싶다.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그가 곧바로 말을 더했다.
[ 알레프는 무슨 뜻인데? ]
글을 쓰기 위해 바짝 세워 둔 무릎이 조금 낮아졌다. 펜과 종이를 든 자세도 서서히 풀어져 간다. 알레프의 질문에 몇 남지 않은 무의미한 기억까지 되짚어 가며 심고하기 위함이었다. 이것만큼은 이전부터 종종 취했던 습관이었는지, 펜의 뒤쪽으로 턱을 짚는 모습이 꽤 자연스러웠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마침내 펜을 바로쥐었다.
[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 [ 내가 뭐였는지도 잊어버렸거든. ]
쓰인 내용에 비해 필체는 제법 경쾌했다. 아무리 되짚는단들 낱낱이 부서져버린 잔 부스러기 사이에서 유의미한 파편을 찾는 일은 불가능했다. 지금으로서는. 세월의 흐름을 따라 자연히 잊혔는지, 사망의 부작용으로 소실된 것인지, 혹은 스스로 잊고 싶어 지워버린 것일지, 이제는 가정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졌다. 그래도 지금은 대화를 하는 중이니 제대로 대답해주고 싶은데. 꽤나 골몰하는 모양인지 그는 골치 아픈 신음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했다.
[ 그래도 기억나는 건…… ] [ 언젠가부터, 눈을 뜨니 거기에 있었어. 내가. ]
그때의 기억만은 지금도 선연하게 떠오른다. 붉은 땅. 광활한 대지. 아래에 선 존재를 짓누를 것만 같은 굉대한 하늘과, 메아리조차 죽어 버린 괴괴한 묵음. 그것들이 어디까지고 펼쳐져 있었다.
자신이 어떤 종족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소녀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기억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어떤 종족인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과거를 모조리 잊어버린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추락의 후유증일까 아니면 추락하기 전부터 그랬던 것일까. 만약 전자라면 나도 추락하면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까? 망각의 축복이 나에게도 과연 찾아올 수 있을까?
" 사실 니아씨가 인간이던 인간이 아니던 상관은 없어요. 니아씨는 니아씨니까. "
종족이 그 사람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종족의 대표적인 모습을 갖고서 첫인상을 가져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 개체마다 다른 법이다. 그것을 가지고 완벽하게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니 종족은 사실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대책없는 신뢰, 뒤없는 혐오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힘든 것이기도 하다. 그 자체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 어떤 색안경도 존재해선 안되는 것이니까.
주시자로 있던 시절엔 다양한 종족들이 주시자가 되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선 내가 스테레오 타입처럼 생각하던 종족들도 있었으나 막상 그들을 만났을땐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개체들이었다. 그때부터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 맞아요. 한명은 수인이고, 한명은 신, 이라고 하더군요. "
신이라고 하면 믿으려나. 나도 처음부터 신이라고 했으면 믿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녀가 신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 다만 본인이 그렇게 말하니까 신이라고 얘기해줄뿐이다. 만약 거짓말이라면 나중에 들통이 나거나 본인이 스스로 이실직고하겠지. 일단 내가 봤을때는 아직 좀 미심쩍긴하다. 신으로써 위엄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신. 그러나 이는, 과거 신들의 시대를 살았던 여타 엘로힘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알레프란 제일 처음에 오는 문자를 이르는 말이니 그야말로 최초이자 시작이었으며. 최초의 창조신인 소녀를 칭하기에 알맞은 단어였다. 그와 별개로 묻는 말에 답하는 소녀는, 약간 미심쩍어하는 투로 그의 눈치 보기 바빴다. 혹여나 그도 신에게 적대감 가진 존재는 아닐지 걱정되어서였다. 비단 라클레시아와의 일 때문만은 아니고─추락하기 전에도 느낀 거지만, 인간들은 으레 신을 싫어하곤 했으니까.
"그렇구나."
네차흐의 말에 소녀가 담담히 말 끊어낸다. 스스로가 누군지를 잊는다는 건, 생각해본 적 없지만 분명 복잡한 심정이겠지. 그럼에도 그의 필체는 우울감도 뭣도 없었다. 그러니 동정도, 연민도 하지 않기로 헀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지금은 그저 일행이자 말동무, 라는 의의 하나면 충분했다.
단순히 자신이 인지한 것에서 그치는 것과 그것을 남에게 토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다르더라. 입 밖으로 빠져나간 말이 맴돌아 다시 마음에 쿡 박혀서, 아, 나는 정말로 많은 걸... 잊어버렸구나. 훅 다가오는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의기소침해졌다. 겨우 들었던 시선이 또 다시 바닥을 기었다. 적응하기 바쁘다는 핑계로 제쳐 놓았던 수많은 고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머릿속을 장악한다. 잃어버린 기억은 어떻게 찾나, 원래 세계에는 어떻게 돌아가면 좋나, 얼굴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더는 감출 수 없을 만큼 짙어졌을 때,
"저, 저는 저..."
니아는 니아.
우르르 떠오른 질문 중 어느 것 하나에도 명확한 답이 되리라곤 할 수 없었으나, 기묘하게도 떠들썩했던 마음이 일순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다. 중얼거릴 때마다 점차 기분이 안정되는 것 같아서 나는 나, 나는 나, 주문이라도 외는 것처럼 몇 번을 읊었다. 어디에 있더라도 내가 나로 있으면, ...혹시나 인간이 아니라도, 내가 나로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구나. 드리웠던 그림자도 어느샌가 사라졌다. 그러고 나니 손님을 앞에 두고 혼자 난리를 쳤던 게 뒤늦게 부끄러워 뺨이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가, 가, 가감사해요, 테시어 씨, 그래도 냅다 도망치지 않고 감사인사는 해야겠어서.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맞장구를 쳤다.
"수, 수인, 이랑.... ....시, 시시, 신, 이요..?!"
어째 이 세계엔 놀랄 만 한 거리가 끊이질 않는지. 그보다, 신도.. 종족으로 쳐줄 수 있는 걸까? 별 이견 없이 받아들이기엔 아직까지 소녀의 식견은 너무나도 좁다. 하지만 신이라면.. 보통 전지전능한 존재를 떠올리게 되기 마련인데. 그런 존재가 '떨어졌다' 라니? 그보다 이 마을에 직접 '존재한다'..라니?! 머릿속에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어서, 어.... 오.... ...우아. 의미 없는 감탄사만 흘러나오고. 저, 정말 알 수 없는 일 투성, 이네요..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밤에 데려오시는구나. 방 안쪽에 난 창 밖을 슬쩍 바라본다. 뉘엿거리던 해는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얼굴을 감춣 것 같다. 정확히 언제쯤 일행들이 들이닥치게 될 지는 모르겠으나, 끽해야 한두 시간 정도겠지. 그렇다면.... 손에 들었던 밀대걸레를 꽉 고쳐 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