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안 그래도 이미 깊어서 눈이 보일락말락인 상태인데도 아예 얼굴따윈 보이지 않을 생각인지 아이리의 맞장구에 삿갓을 푹 눌러 내려써버리는 메구무 커다란 붉은 눈을 깜빡이며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여자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이어서, 여자의 지나가는 말에 무언가를 또 주섬히 꺼내는 메구무 그것은 밥 ...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제대로 먹을 것이었다 참으로 마음씨 고운 사내가 아닌가 하나는 육포였고 나머지 하나는, 잘 모르긴해도 해초를 말린 것 같았다 문득 먹을 것을 본 여자의 퍼석이는 머리칼은 마치 정전기라도 오른듯 두둥실 부풀어 오른다
"응. 그럼 나는 그거. 다시마, 그게 좋아."
그렇게 잘 모르는 것을 냉큼 받아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더니
"이거 이상한 냄새 나...."
굳이 스스로 먹는다고 해놓고서는 그렇게 말할 건 또 뭔지 더 없이 건강한 맛에 눈이 반쯤 감긴 영 시원찮은 얼굴로 다시마를 씹는다
그러면서도 질겅질겅 씹어서 결국엔 전부 먹었다고 확실히, 못 먹을 맛은 아니었던 셈이다 마지막 조각을 꿀꺽 삼킨 코우는 그제서야 입을 조금 열어본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거야?"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온 이야기 대뜸 다른 세계로 추락한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일테니 막막함만이 느껴지는 시점에, 여자는 허공을 응시하다가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아직 전개 상 제대로 된 전투 상황 같은 건 나오지 않았지만, 영이는 지금으로선 살아있는 상대를 절대 해치지 못할 것 같네요. 다들 존재만으로 너무 소중한걸🥺 만약 윈터가 와서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취객한테 한참 얻어맞기만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슴다... 상처는 좀 늘겠지만 어차피 본인은 딱히 아픈 것도 아니고 몸이 망가져도 언젠가는 다시 고쳐질 테니 큰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날 때리거나 ㅇ/ㅕ/ㅇ으로 만드는 걸로 네 기분이 나아진다고? 흠... 그거 나쁘지 않은데? ←라고 아마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조금 웃어보면... 그러고보니 최근엔 웃을만한 일이 없었지. 아이리를 되돌리려고 전국 각지를 떠돌고, 약을 만들고, 팔러다니고, 그리고 요괴도 퇴치하고. 바쁜 나날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웃을 일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미소보다는 눈물 흘리는 날이 더 많았다.'고 메구무는 생각했다.
그녀가 다시마초절임을 고르자, 메구무는 반대쪽 손에 들린 육포를 입으로 물어 뜯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자, 살풋이 웃으며 말했다.
"첨 묵으면 쫌 이상해도, 나중에 가면 먹을만해진다."
자신이 다시마초절임을 처음 먹었을때를 회상하며 작게 미소 짓는 메구무였다. '그땐 맛도 냄새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됐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자신이 육포를 다 먹을 때 즈음, 그녀가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묻자 잠시 침묵하다가, 코우에게 되물었다.
일단 스튜그릇이며 맥주잔 따위를 들고 손님들 사이를 바쁘게 쏘다니고 있긴 하지만, 아까부터 자꾸만 두 사람 쪽으로 시선이 가서 환장할 노릇이다. 조금 가까이 가서 엿듣기라도 해 볼까 싶으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취객이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질 않나, 주문이 좀 멎었나 싶으면 새로운 손님이 또 들어오고, 얼른 더러워진 테이블을 치우고 손님 안내를 끝냈더니 저 쪽에서 우당탕탕와장창쿵쾅아이 이 친구, 적당히 마시라니까!거 취했으면 얌전히 집 들어가서 잠이나 자지 물을 이렇게 쏟아놓구선, ....저 쪽에서 또 난장판을 피우고.
아이 참, 둘이서 무슨 얘길 하는지 듣고 싶은데!
곤란한 얼굴로 라클레시아와 마시 쪽을 흘끔 쳐다본다. 그러나 터덜터덜, 곧이어 반쯤 풀 죽은 얼굴이 되어 밀대걸레를 들고 어질러진 것을 치우러 걸어가는 뒷모습이 묘하게 쓸쓸하고. 이 사람아, 이거 보게, 애가 울상이잖아!거 미안해요 아가씨, 이 사람들이 원래 안 이러는데 허허 참.맥주! 맥주 한 잔 더!...이 미친 사람이!
..아무래도 이제는 취객 사이에 잘못 낀 것 같다.
"흠, 그래요? 일행들은 다 남자요? 아니면 전부 한 방에 밀어넣기는 좀 그렇지 않겠수?"
어느 방을 내어줘야 하나 고민하며, 여주인은 가볍게 턱을 매만진다. 요리를 할 줄 안다는 당신의 말에는 눈이 조금 반짝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요? 듣던 중 반가운 말이구먼, 최근에 손님이 늘어서 혼잔 좀 정신 없었지 뭐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늘면 나아 좋지! 호쾌하게 깔깔거리는 소리. 조금 억센 듯 망설임 없는 손길이 당신의 어깨를 두어 번 투닥거린다.
"그래요, 이따 일행들이 모이면 그 때 얼굴이나 한 번 비춰 주시구랴."
니아! 시끄러운 가게 안을 꿰뚫는 목소리로 소녀를 부르면, 곧 사라질 것 같이 희미한 목소리를 들었다면, 아마 막 태어난 사슴처럼 파들거리는 팔다리를 하고 발을 질질 끌며 돌아오는 소녀가 보일 것이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는데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새 남은 기력을 쪽 빨려 돌아온 것 같은 몰골이다. …아가씨! 아가씨 미안해요!조용히 해, 이 사람아! 수우우우울!자는 거 아녔어?! 이런 미친!… ...소녀가 뒤로 하고 돌아오는 광경을 보면 아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을지도.
"...무슨 일이 있었니..?! 아니, 일단은.. 이 분께 방을 안내해 드리려무나. 2층 안쪽에 있는 방 두 개야. 알지?"
그러고 나면 좀 쉬다가 들어오고! 황급히 취객들을 정리하러 여주인은 자리를 뜨고. 아마 다시 내려올 때 즈음이면 그들은 자리에서 사라져 있을 것이다. 따, 따, 따라오세요... 소녀는 여전히 종잇장처럼 팔랑대는 팔다리로 윗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낡은 나무판자가 끼익대는 소리를 내며 계단과 복도를 지나면, 조금 구석진 곳에 작은 문이 두 개가 있다. 당신이 문을 열어 본다면, 두 방 모두 두세 사람 정도가 적당히 지낼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방이 보일 것이다. 작은 창이 나있어서 조금이지만 햇볕도 들 것 같고, 나무로 짠 바구니나 짚단더미 같은 것들이 한 쪽에 쌓여 있고, 말린 약초나 손수 만든 소세지 같은 것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내가 알레프를 만나서 데려온 것처럼 윈터도 누군가를 데려올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나 말고도 2명이 있는걸보면 3명, 4명이어도 이상하진 않을테니까. 그래서 좀 더 여유를 생각해서 3개 정도만 부탁한다고 말씀 드렸다. 인원이 더 안모인다면 2개만 사용하고 하나는 도로 반납해도 괜찮을테니까.
" 그렇게 할께요, 아주머니. "
그래도 흔쾌히 받아주실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개 숙여 인사한 나는 주인 아주머니가 아까 그 소녀를 부르는 것을 기다렸다. 그렇게 모습을 보인 소녀는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것 같은데 지금은 기가 전부 빨린 것처럼 발을 질질 끌고 있는 것이다! 이게 대체 뭐람. 하지만 접객이라는게 원래 쉬운 일은 아니니 이해는 할 수 있다.
소녀의 따라오라는 말에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나무 판자에서 나는 끼익거리는 소음은 이 여관이 얼마나 오래 되었을지 가늠하게 해주었지만 또 그것이 이 여관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 방이 생각보다 넓네요. 아늑하기도 하고. "
이 정도면 여기서 머무르는데 충분해보였다. 어차피 사치스러운 삶을 살건 아니니까 말이다. 만족스럽게 방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대로 이 소녀에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선 손을 내밀며 말했다.
" 반가워요. 내 이름은 아까도 들었겠지만 라클레시아 테시어, 노던 엘프 입니다. "
그리고 내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이 소녀와의 독대를 요청한 이유는 바로,
" 당신도 하늘에서 떨어진거죠? 마치 '추락' 하듯이. "
눈을 마주쳤을때 느껴진 느낌. 서로를 끌어당긴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뭔가 아는 사람을 오랜만에 마주쳤을때의 감정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메구무를 따라하듯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정도나 되는 도시다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면 여관 하나 정도는 어떻게든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여자다 추락하기 전의 세계에선 금방 그렇게 하루 정도 지낼 곳은 찾을 수 있었기에 아니라면... 뭐, 치마와리의 힘을 조금 빌리는 수도 있고 빈 방 정도는 만들어버리면 되는 거고
그래서였을지 사내가 결단이라도 내린듯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말에 다시 눈을 커다랗게 뜨고 깜빡일 수 밖에 없었다
"후흥."
그러고서는 왠지 우쭐해진 기색으로 스스로 팔짱을 엮어끼더니 이런식으로 터억 말하는 것이다
"역시 받고 싶은 거지? 불침번―"
아무래도, 메구무가 불안한 나머지 강한 척을 했다고 여자는 생각하는 모양이다 막 전엔 됐다고 사양해 놓고서는 갑자기 말을 바꾸니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을지도 그렇게 뻐기고 있는 사이에 사내로부터 또 무언가가 건네어진다 그가 겉에 걸치고 있던 하오리였다
"메구무쨩 남자네에."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의를 받아들며 키득 웃는 여자는 사내에게 받은 겉옷을 어깨 위에 걸쳐 둘러 쌀쌀해지기 시작한 밤바람을 막았다 그러는 사이에 메구무를 힐끗 보면, 밤을 보낼 만한 곳을 찾는 듯했지만 별로 잘 되가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여자는 마치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듯 우선 잠자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가 마침내 골머리를 썩힐때 쯤 슬며시 다가와서 이렇게 말을 얹었다
"도시 바깥으로 가면 봐둔 곳이 있어. 숲이 싫다면 지하수로로 가는 방법도 있는데."
어엿한 도시라면 모두 갖추고 있는 시설이다
냄새는 좀 나겠지만 그럭저럭 따뜻할거라고도 첨언해주는 모습은, 이런 상황이 여자에게는 퍽 익숙한 것 같았다
배려인지, 아니면 진짜 필요가 없는 것인지. 혼자 앉아서 자는 것 쯤은 익숙하다며 손사래 치고 거절한 메구무지만, 이어지는 코우의 말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곤 무심하게 말했다.
"? 별 말을 다 한다. 그럼 내가 머스마지 가시나가?"
아아... 탄식이 절로 나오는 이 말. 아이리는 지금쯤 검집 속에서 친구의 둔감함에 탄식하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죽을때까지 놀려먹기로 마음 먹었다. 이래야 진짜 친구아이가? 친구의 바보짓은 디질때까지 놀려주는거 말이다.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자 메구무는 아이리에게 왜 웃냐고 물었지만 아이리는 모르는 척으로 일관했다.
"봐둔 곳이 있다고? 진짜가?"
한창 명당을 찾아다녔음에도 수확이 없자 결국 코우가 나선 것에 메구무는 맨 처음엔 창피함을 느꼈고, 뒤이어서는 반가움을 느꼈다. 정말 양립하기 힘든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자 그 기분이 아주 오묘했다. 그는 코우의 제안에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하수로...라... 쫌 드럽지 않겠나?"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일텐데...」 "하... 유치장에 갈 수도 없고..." 「유치장이 먼 여관방이가?」
침구는 나중에 가, 가져다 드릴게요, 흰 손님이 방을 둘러보는 동안 이 곳 생활에 대해 대충 알아 두면 좋을 것들을 작게 조잘거린다. 일을 하시는 거라면 손님이 오기 전에 식사를 끝내 놓으면 좋고, 아침에 세수를 하고 싶다면 미리 방까지 물을 떠 오거나 물 길어 놓은 곳까지 나가야 하고, 그런 사소하기 그지없는 것들. 낯선 사람을 일대일로 대하는 건 여전히 익숙치 않아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기 때문에, 상대가 목소리를 겨우 듣기나 했으면 다행이다. 1층에 기대놓고 오는 걸 깜빡 잊은 밀대걸레로, 가볍게 청소나.. 해 줘야 하나? 멍하니 손님의 등을 보고 있다가.
"....아! 니, 니아.. 니아에요."
마침 등 돌린 손님과 눈이 딱.. 마주쳤나? 얼굴을 마주하고 갑작스레 시작된 자기소개에 횡설수설할 뿐인데. 내밀어진 손을 보고 몸이 살짝 굳었다. 어, 어어, 이거... 악수겠지? 내가 함부로 잡아도 되, 되는 걸까? 망설임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방금 전 마시가 거리낌 없이 그의 손을 잡은 걸 기억하곤 용기를 내서 손을 맞잡았다. ...뭐, 마주잡았다곤 해도 손 끝을 조금 잡고 삐걱삐걱 흔든 거라 어색하기 그지없는 몸짓이다.
"..노, 노던, 엘프....?"
난생 처음 듣는 단어라 그냥 그런 이름의 나라에서 온 사람인가, 아니면 어떤 민족을 지칭하는 단어인가,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덕분에 저, 저는 기억이 없어서, 그래서.. 어디에서 온 진 잘 모르겠고.. 엉뚱한 대답만 늘어놓게 되었다. 말을 뱉고 나서야 뒤늦게 이상한 생각(어라, 이게 아닌가?하는)이 몰려와 마주치고 있던 시선을 저 쪽으로 삐익 돌렸다. 그렇게 진땀 뻘뻘 흘리며 어색한 공기를 견뎌내고 있었다. 그 말이 나올 때 까지는!
"어, 어어, 맞아요..! 갑자기 수, 숲에 떨어져서, 기, 기기, 기억은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 르겠고..."
얼굴을 볼 때마다 느꼈던 이상한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되는 순간! 그렇다는 건 테, 테, 테시어 씨도..? 조심스레 되묻는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여관을 벗어나 발걸음을 내딛으니, 곡조를 흥얼거리며 내키는대로 지팡이를 짚은 채 걸었다.
'허면, 방랑하기 전에... 간단하게 조사부터 해볼까.'
단순히 느긋하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방랑하기에는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어째서 자신은 추락한 것인지, 어째서 자신은 이곳에 오고야 만 것인지. 다른 추락자들은 또 누가 있을지...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는건 사양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다소 귀찮더라도 조금쯤은 움직여야 할 때였다.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심음이 울린다. 발 구르는 소리,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소리, 물건을 배낭에 담는 소리. 육포를 말리는 냄새, 향긋한 과일과 꽃의 냄새. 이따금씩 울리는 경비병의 철모 덜그럭 거리는 소리. 그녀가 말한대로 이곳은 평화로워 보였다. 사람들이 착하다는 말은 이런 말이었을까. 머물기에는 좋아보이는 장소지만... 이곳 바깥의 세계 역시도 알고 싶었다.
흘러가는 구름. 그것만큼 자신에게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우선은 이 도시를 전부 알아낸 뒤 채비를 챙겨 떠나자. 그 편이 좋을 것이다. 어제도 열었던 공연으로 번 노잣돈으로, 사과 하나를 사서 와작하고 베어문다. 과즙이 매끄럽게 입 안으로 흘러내린다. 걸으면서 먹는것은 품위없으니, 어딘가에 조금 앉을까... 주변에 앉을 만한 곳이 있는지 지팡이로 툭, 툭 하고 거리를 짚으며 걷다가 툭, 하고 무언가에 부딪힌다. 심음이 울리는것을 보니 필히 사람이리라. 공손하게 손을 가슴께에 대고, 머리를 가벼이 숙이며 사과했다.
"실레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터..."
"...어라. 혹시-"
천천히, 탁한 눈을 깜빡거리며 그녀가 있을법한 곳을 쳐다보았다. 이 무슨 우연일까. 추락자를 또 다시 만나다니. 그녀의 말이 맞았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에 모여있으리라. 셋을 만났으니 남은것은 세명일까. 가만히 그녀 쪽을 바라보다가 미소지으며 그녀쪽으로 손을 뻗었다.
다윈은 멀뚱히 자신의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 수없이 놓인 별들이 보였다. 누군가 굵고 고운 모래를 하늘에 쏟아놓은 것처럼 별들이 반짝거렸다. 제가 아는 별이나 별자리가 있는지 한참을 하늘과 씨름하던 다윈은 뻐근해진 눈을 지그시 누르며 별 찾기를 포기했다. 길고 긴 은하수 끝자락에 매달리는 것은 생각보다 피로한 일이었다.
‘많아도 너무 많다.’
이 세계에 추락하고 난 뒤부터 다윈이 본 ‘징조’만 열 번을 넘었다. 모든 추락의 징조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어쩌면 그보다 많을 수도 있으리라. 몇 번인지도 모를만큼 많은 추락을 해왔지만, 이런 경우는 단연코 처음이었다. 적어도 아직 기억하는 것 중에서는.
깊은 기억의 바다에서 가까스로 끄집어낸 조각. 가장 많은 것이 네 번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선 그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징조’를 보았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던가.
세계는 넓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다르다. 다윈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허공에 손이 짓눌려졌다. 힘을 주면 눌리기는 하나 기어코 뚫지는 못한다. 결국 힘을 빼면 금세 튕겨져 나가는 그런 것. 그건 꼭 수십, 수백의 랩을 씌워놓은 것을 누르는 기분이었다.
이 세계는 여기가 끝이다.
느릿느릿 주변을 둘러보는 다윈의 눈은 제법 무감정 했다. 숲, 발광하는 풀, 어둠 속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 하지만 동물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낮에는 몇 번 토끼나 다람쥐 같은 동물을 보았었는데, 밤에는 어디에서도 그 기척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기이하고 수상하다.
온갖 종족들이 모여 사는 도시. 끝이 있는 세계. 역시나 참으로 수상하기 짝이 없는 세계다. 다윈은 몸을 돌려 도로 도시로 향했다. 결국 이 ‘도시’ 외에 다른 곳은 없는 셈이다. 도시가 세계였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저와 함께 떨어진 추락자—미하엘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세계의 사람들은 알고 있나? 갖은 생각을 정리하던 다윈이 관문을 넘어 다시 도시 안으로 들어섰을 때, 문득 둥근 돔이 씌워져 있던 중앙을 떠올렸다.
중앙은 이질적인 장소였다. 그러고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중앙에 침입 했었다고 했다. 요정의 속삭임도 떠올랐다. 굳이 접근을 금지 시켜놓은 것엔 이유가 있을 거다. 다윈은 일체의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중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176 꺄아악 귀여움라이팅... 귀여움라이팅당한다..(정전기털동물.) 머라고,,, , , !!! 그런 분에 넘치는 영광을 우리 니이가 누려도될까요...!!! 오늘부터 니아 사회성기르기프로젝트 들어가겟습니다. 얘. 니아야. 저기 친구잇잔아. 가봐봐. 저 친구가 곰인형사준대. (극성부모톤)
>>177 !!!!!!! 그렇군요.... 담에 만들 때 함 적용해보겠습니다 오늘 정말 많이 배워갑니다.. o̴̶̷̤ ̫ o̴̶̷̤ 저의. AI스승이십니다...
목 하나 똑바로 가누지 못할 만큼 내 행동이 굼떠지고 내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지자 승냥이 같은 원시인 놈들이 금세 낌새를 챘다. 놈들은 내 몸에 일어난 이변을 깨닫고 만용을 용기로 착각하고 거리를 좁혀 오기 시작했다. 이도 박히지 않을 조잡한 쇠붙이를 흉기랍시고 저마다 손에 꼬나쥐고 우물처럼 검은 공포로 홍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꼬락서니 하고는. 보는 내가 다 안쓰러울 지경이건만 어느 한 놈 포기하는 놈이 없다.
빨간 불도 다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다고 하더니 머저리들 군중 심리에 불이 켜졌다.
……… 망했나.
나는 정말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다리가 천근만근이라 더는 걷는 것조차 여의찮은데 여전히 물리적 위협이 배제되지 않고 내게 성난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악몽과 진배없는 현실에 나는 금방이라도 안구 세정액이 흘러넘칠 것만 같았다. 저놈들 손에 멍석말이나 당할 만큼 내 신세가 처량해졌다고 생각하자 인공두뇌까지 추를 단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저깟 녹슨 칼에 나의 보드라운 피부가 찢어질 것을 상상하자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나는 다짐도 결의도 모두 잊고 겁에 질렸다. 지금 당장 저놈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포장지가 벗겨지는 순간 저놈들이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서 속으로만 앓았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초점이 안정되지 않고 눈의 렌즈가 안절부절못한다.
“후, 후회할 짓 저지르지 마!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도망쳐! 너희 그러다 정말 심하게 다친다고!”
“웃기지 마! 너 정말 바보지! 아니면 놀리는 거냐!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누구를 걱정해!
박살 내버릴 테다 이 망할 놈!”
잘 짖는 개가 겁이 많다지. 서로 짖어대는 모습이 애처롭다. 원시인은 나보다 한술 더 떠 샘솟는 화를 있는 대로 입 밖으로 게워 내면서 격양의 빛을 띠었다.
“더는 못 참아! 쳐!! 죽여버려!!”
주둥이에 거품까지 물면서 소리쳤다. 그들 사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외침에 다른 세 녀석도 각오를 다지고 눈치 싸움을 관뒀다. 그들 가운데 가장 덩치 좋은 녀석이 맥없이 힘 한 번 못 써보고 광장의 벽화로 전업했는데 현실감 부족한 녀석들이 안전불감증 환자처럼 남이 시킨다고 부추긴다고 무턱대고 사지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너희 팔이 부러진 것도 아니잖아!”
일련의 의사 결정에서 합리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맹목자 같으니라고. 나는 분을 못 이겨 소리쳤다. 나 혼자 살자고 윤리 평가 점수를 더 깎아 먹었다가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렇다 해서 저놈들 손에 나를 맡길 수도 없는 노릇. 어떤 선택을 해도 내 살 파먹는 결과로 이어질 거라 갈림길에서 내가 갈팡질팡하고 있자니 나로 인해 소동에 휘말린 원시인이 생각지도 못한 큰 소리를 질러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254 자캐는_자기가좋아하는사람_vs_자기를좋아해주는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그런데 영이의 경우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범주가 '그냥 존재하기만 하면 됨'으로 엄청나게 넓네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싫어하거나 적대하더라도 한결같이 일방적으로 좋아할 수 있고요.
153 자캐의_샴푸_향 솔직히 말하자면 샴푸를 안 쓴지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으아아아악 변론할 기회를 주세요!!! 얘는 생물이 생명활동을 하며 분비하는 각종 체액과 노폐물과 개기름 같은 것도 전혀 없기 때문에 오염물이 직접 묻은 게 아닌 한 안 씻어도 본인의 몸 자체에서 냄새가 나지는 않아요!!!!!(우리애 안 더럽다는 진짜완전필사적인어필)
100 자캐의_주량 술을 마실 수 있는 몸인지부터(생략) 마시더라도 위장만 더부룩해지지 취하지는 못해요~
1. 「넓은 유원지. 가장 먼저 어디로 갈까?」 그냥 정말로 그때그때의 관심 끄는 요소를 따라서 발길 가는대로 가지 않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지금 상태로는 비교적 사람이 적은 쪽으로 갈 것 같네요🤔
2. 「주변사람이 귀찮을 정도로 자신에게 의존한다면?」 주변 사람이 과하게 의존해도 귀찮음을 느끼지 않슴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최선을 다해 챙겨주려 하지 않을까요? 적정선의 기준을 모르기 때문에 옆에서 누가 말려주지 않으면 너무 과해서 독이 될 정도가 되더라도 계속할 것 같네요...🙄
3. 「약속을 한 사람이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원래 이런 일로 화를 내는 성격도 아니고 nnnn년 시간에 비한다면 약속 좀 늦는 정도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할 것 같네요! 언제까지고 기다리다가 정 안 되겠다 싶어지면 수소문해서 당사자를 찾아다닐 것 같아요.
사내의 둔감스런 반응에도 여자는 그저 입가에 미소지으며 아이리를 따라 놀리듯 스쳐지나가듯 그렇게 말할뿐으로 어깨에 걸쳐 올린 사내의 하오리를 추스리며 슬슬 떠날 채비를 했다
"맞아, 더러워.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돈이 없는걸."
그것도 그들 둘 모두 평소에는 마냥 사람 피에 취한 망령 같다가도 이런 부분은 묘하게 현실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퍽 그 여자답다
「1번 개구리는 밟혀죽었고, 2번 개구리는 뱀에먹히고, 3번 개구리는 빠져죽었네♪ 그리고 4번 개구리는...」
그렇게 그 둘은 잠시간 걸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제멋대로의 노랫말을 흥얼거리면서 넘실 걸음을 하는 여자의 뒤를, 메구무가 뒤따르는 구도였다
"역시 있다."
그런 길지 않은 걸음이 멈춘 것은 수로를 따라 내려온 계단 아래의 지하수로 입구 앞에 섰을 때― 그러나 마치 길 잃은 추락자가 이곳으로 걸어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듯이 철창으로 봉쇄 된 격자문은, 단단히 잠겨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여자는 그런 사실에도 아랑곳 않고 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가로막힌 철창을 몇 번 정도쥐고 흔들더니 이내는 열쇠 구멍이 나있는 부분을 향해 손에 들린 칼자루를 내세워 힘껏 가격하는 것으로 한 방만에 부숴버린다 메구무가 말릴 틈도 없는 순간적인 행동이었다 '캉-!' 하고 요란하다 못해 시원스런 소리를 내며 튀는 자물쇠의 파편들
"좋아. 들어가자."
삐그덕거리며 제 역할을 잃게 된 격자문 너머로, 지하수로 안쪽으로 여자는 그렇게 저먼저 성큼 발을 들였다
라클레시아와 함께 있었던 장소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던 소녀는 마침내 그와, 그의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다만 라클레시아의 동행이 다른 이를 데려왔기에 결과적으론 한 사람이 더 늘은 셈이었고. 어쨌든 시간도 늦어가기에 그들은 라클레시아가 잡아둔 여관으로 서둘러 향했다─ 그리고 지금, 야심한 밤 시각. 소녀는 여관 내부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왜 잠도 안 자고 이러고 있느냐면 잠을 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시간을 때워보려 했지만 방에는 컴퓨터나 게임기조차 없었다! (있을 리가 없잖아!) 소녀는 그동안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 창문 밖을 관찰하기도 하고 하여튼 별 짓을 다 했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살던 인간들은 도대체 심심해서 어떻게 살았대?
"심심해─!"
그래서 힘껏 소리 질렀다가, 손님들 다 깨겠다며 여관 주인으로부터 주의까지 들어버렸다. 소녀가 끝내 당도한 곳은 여관 내부 식당이었다. 물론 지금은 텅 비어있다. 지금도 먹을 거 달라고 말하면 좀 주려나? 아냐, 그만두자... 꿍얼대며 식당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집에 가고 싶어...
왠지, 나를 놀리는 것 같은데... 그런 기분이 들어 조금 언짢은 표정을 짓자 아이리는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 라는 듯 킥킥 웃어댔다. 메구무가 휙 째려보니 입 싹 씻고 모르는 척 하며 시치미를 뚝 뗐지만.
꼭 뭔가에 취한 것 같이 가볍고 희한하다가도 이럴땐 현실적이고 예리하다니깐. 메구무는 그녀의 지적에 달리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동전이 든 주머니가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덧없이 느껴졌다. 평소엔 꽤 기분 좋은 소리였는데.
코우를 뒤따르며 그녀의 노래를 듣던 메구무는 가사 한 번 살벌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그녀의 세계에 전해지는 동요인가. 그러나 동요라기엔 아이들이 듣고 부를만한 노래가 아니어 보였고, 아니라기엔 그녀가 너무나 발랄... 아, 그래. 저 여자는 지금껏 항상 발랄했지. 그냥 입 다물고 있자. 메구무는 그녀를 뒤따르는 내내 침묵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니 이런거, 한두번 해본거 아이제?"
아무렇지 않게 시원스레 자물쇠를 부수는 코우의 모습을 보며, 메구무는 조금 당혹스럽다는 듯 그녀를 보며 물었다. 몇번도 아니고 한방에 부수는 그녀의 힘도 범상치 않았다. 그는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이군. 이라고 짧은 평을 남겼다.
"그래. 드가자."
코우가 먼저 문을 열고 걸어들어가자 자신도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래도 되는거 맞나? 이러다 다음날엔 유치장에서 묵게 되는거 아이가...? 어떻게든 빨리 돈을 얻어 여관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메구무였지만 마음 속 한켠으론 코우에 대한 걱정이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
상당히 낯을 많이 가리는 모양인지 아까부터 취하는 모든 자세가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자리가 싫다기보단 그냥 낯을 가리는 것 같은데 이런 소녀가 어떻게 홀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낯 가리는 것과 별개로 멘탈은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악수를 할때도 삐걱이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 소녀의 움직임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 맞아요. 제 종족? 이라고 하면 될까요. "
아무래도 이 소녀는 엘프 자체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엘프라는 종족은 없는 세계에서 건너온 것일까. 아니면 비슷한 종족이 있는데 엘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특징인 뾰족한 귀를 보고도 모르는 뉘앙스인 것을 보면 아무래도 전자 같아 보인다.
" 편하게 라크라고 불러줘요. "
테시어씨라니 정말 옛날에나 들었던 명칭이다. 약간 향수에 젖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는 기억이 없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이 없다라? 추락의 후유증에는 아무래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 모양이다. 기억이 없다면 상당히 불편할텐데 이렇게 일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멘탈도 대단한것 같다,
" 나도 갑자기 하늘로 옮겨지더니 뚝 하고 떨어졌어요. 나 말고도 몇명 더 그런 사람들을 알고. "
그러니까 여기에 그렇게 떨어진건 니아 당신뿐만이 아니라는 사실. 나는 말을 덧붙이며 장난스럽게 윙크를 보여주었다.
약속이 생긴 이상 별달리 갈 곳도 없었던 그는 지정했던 위치에서 가만히 대기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집합한 사람의 수는 그 자신을 제외하고 3명. 여관에 들어서자 더욱 북적이게 늘어난 주변의 머릿수에 경황이 없어져, 그는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경을 가다듬었을 즈음엔 모두가 잠든 이후의 새벽이 되어 있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규칙적으로 들락거리는 작은 숨소리, 때로 뒤척거리며 나는 미미한 소음 뿐. 그제야 마음이 확연히 편해졌다. 그도 적당히 눈치를 보아 가만 누워 부동은 해 보았지만─ 당연하게도 잠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적막과 무엇도 없던 황무지를 걷던 때를 떠올려 보자면 이 정도 시간은 그리 괴롭지도 않은지라. 다시금 해가 뜨고 모두가 눈을 뜰 때까지 그는 이 잔잔한 시간을 감심할 생각이었다. 무거운 야음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쩌렁쩌렁한 외침 뒤에는 그를 나무라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들리다 그쳤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무언가 분주하게 서성거리는 인기척은 계속되었다. ……왜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않고 있지? 호기심이 동한 그는 방을 나왔다. 그라고 해서 어둠 속을 잘 꿰뚫어보는 재주는 없었지만, 청각만은 제법 예민했기에 어렵잖게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로 향하는 사이에도 인기척은 쉴 새 없이 본인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바닥에서.
그는 인기척 곁의 바닥에 조용히 앉아, 그 누군가의 어깨 즈음을 톡톡 건드리려 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는 현재 목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옷을 입어 어둠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으며, 소리를 내지 못해 말을 할 수 없고, 오랜 단독 생활로 인해 이런 상황에 제대로 기척을 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놀란다는 사실조차도 잊은 상황이었다.
주변은 촛불 따위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하기 그지없다. 소녀는 바닥에 드러누워선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말똥말똥한 눈을 데굴 굴리며 천장 대들보 갯수를 세어본다. "하나... 둘... 셋..." 목소리까지 내면서 셀 필요는 없었지만 아무튼...
"흐갸악!"
그리고 돌연 어깨로 전해져오는 감촉에, 소녀는 드러누운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른다. 개구리 뜀뛰는 것 마냥. 이번엔 진짜 놀랐다. 라클레시아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을 때보다도 더 놀랐다. 정체 모를 뭔가가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데, 놀라지 않을 자 없다! 펄쩍 뛰어오른 뒤 그대로 땅에 발 딛고 선 소녀는, 제 몸을 감싸안으며 주변을 휘휘 둘러본다. 그러다 시야에 들어온... 하얀 무언가.
"뭐, 뭐야!"
소녀는 당장에 기겁하며 소리 지른다. 자세히 보니 그건 사람 머리였는데, 몸도 없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냥 옷이 시꺼매서 보이지 않은 것 뿐이다.)
"...머리귀신이다!!"
다시금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나온다. 그리고서 당장에 몸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는데. 극도의 공포를 느끼면 도망도 못 친다는 게 이런 건가?! 소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선 차마 움직이지 못한다. 울상 짓던 소녀의 표정이 점차 공포로 물들어간다.
"...으힉... 살려주세요... 착하게 살게요..."
그러더니 하는 말이란 게... 신인 주제에 같은 신 자 들어가는 귀신은 왜 그리 무서워하는 건지.
그렇게 입장한 지하수로 안 쪽은... 일단 냄새가 났다 전형적인 물이끼의 피부에 들러붙어 오는듯한 눅눅한 냄새였다 터널처럼 뚫린 공간의 수로로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물이 흐르는 소리에 섞여서 저벅거리는 발걸음은 이리저리 튀며 울렸다 천장에서 새어들어오는 달빛은 조명이 할 일을 대신해주고 있었는데 그 덕인지, 들어와선 안 되는 곳에 들어와버린 것도 같은 기분이 물씬 났다 그리고 또... 아무튼 냄새가 났다
"이걸로 공범이네."
여자는 고개를 돌려 뒤에 따라오고 있을 메구무를 곁눈질 하며 슬쩍 그렇게 말한다 당혹스럽다는 듯 묻는 말에도 '비-밀' 이라며 얼버무리고는 앞만 보며 걸을 뿐 마치 그의 불안감을 일찍이 눈치채고서는 거기에 기름을 붓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여자의 발걸음은 한 없이 가벼우니, 더욱 그럴 것이다
"으음, 꼭 그렇지도 않을 거야."
그러면서, 건네어져 오는 물음에 짧은 시간 생각하던 여자는 무슨 근거인지 자신만만히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름의 요령이라도 있는 것일까
"메구무쨩이 방 얻어주면 노숙 금방 그만 둘 수 있을지도."
-라고 생각하면 곧바로 농인지 진인지 모를 한 마디도 붙어서 따라온다
얼마 걷지 않아서 벽 한복판에 나있는 코너를 돈다 그러면 마침 아늑하게 하루 정도 드러누워 자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 둘 앞에 타났다 원래는 안 쓰이는 자재같은 걸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는 공간 같았으나 습기 가득한 공간에 굳이 보관해야 할 이유 있는 물건은 없을 것이다 즉, 잉여 공간이다
커다란 비명소리에 그도 덩달아 소스라치게 놀랐다. 헉, 작은 숨 새었지만 비명소리에 묻혀 들리지는 않았을 테다. 몇 초쯤 지난 뒤가 되어서야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았다. 아, 그랬지. 어두운 곳이라 보이지 않았겠구나. 그도 갑작스레 몸을 잡히면 놀라곤 하는 처지라 상대의 심정이 어떨지도 짐작이 되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불쑥 다가가려다 상황을 깨닫고 멈추었다. 아, 옷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구나…….
“…….”
미안한 마음은 커져 가건만 당장 닥친 문제가 왜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아니라 말하는 것만으로도 어찌 설득을 시도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지금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 해서 무턱대고 접근했다간 더 놀랄 것만 같고. 우선은 불을 켜야 무어라 말이라도 전할 수 있을 듯싶다. 불을 켤 만한 도구를 찾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쿵!
마음이 급해 벌떡 일어나려다 그만 뒤편에 놓인 테이블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자질구레한 물건들도 덩달아 넘어지고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들을 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을 꼽자면,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서는 떨어지는 물건들을 주우며 허둥거리는 귀신은 아마 없을 거라는 점 아닐까? ……소녀도 부디 그렇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창황히 이곳저곳을 오가던 붕대 감은 손길이 문득 멈추었다. 그는 물건을 줍다가, 상대방의 눈치를 보다가, 무언갈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목 끝까지 덮인 옷자락을 조금 끌어당겨 내렸다. 둘레를 따라 이곳저곳 파이고 긁힌 상처 자국 있는 목이 드러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냄새가 난다. 지극히 당연하다. 여긴 지하수로니까. 눅눅하고, 습하고, 아무튼 뭐. 하룻밤 묵는 건 괜찮은데 쭉 지내는 건 이쪽에서 거부하고 싶다.
"윽..."
공범... 이러다 다음날엔 진짜 유치장에서 하룻밤 신세 지게 생겼네. 곤란하다는 얼굴로 저벅저벅 걷던 메구무는 코우의 말에 '뭔가 비전이라도 있나?'라고 생각하다가, "메구무쨩이 방 잡아주면—"라는 말이 이어지자 힘이 탁 풀린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곤 말했다.
"미안타. 약이 하나도 안 팔리ㄱ... 아니, 내가 미안할게 아이제. 마, 니 방은 니 스스로 잡아라."
「그래놓곤 쫌 벌리면 저 가시나 몫까지 잡을거면서.」 아이리가 정곡을 쿡 찌르는 말을 하자 메구무는 피곤해서 반박할 힘도 없다는 듯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싸물어라..." 마침 코우가 하룻밤 지내기 적절한 공간을 발견하자 그녀의 안목이 꽤 괜찮다는 생각과, '아무래도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쥐새끼나 악어는 귀여운 수준이지...'
요괴 때려잡다 왔는데 악어가 뭔 대수라고. 그렇게 속으로만 퉁명스럽게 중얼이던 메구무는 털썩 앉더니 벽에 몸을 기대었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이 아이리를 품에 끌어앉았다.
"베게로 쓸만한 건 없다. 하오리라도 잘 접으믄 되긴 할텐데. 그건 이불로 써야할테니깐..."
아쉽게도 메구무의 가방은 각진데다 목재로 만들어져 많이 딱딱했다. 그는 벽에 기대에 눈을 감았다. 추락한지 하루째.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어지간히 피곤했는지 앉자마자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와장창! 한 차례 소란이 일었다. 옴짝달싹도 못하던 소녀는 울상 지으면서도 귀신(?)이 테이블에 머리 박는 꼴 똑똑히 보았고. ...귀신 맞아? 테이블에 머리 박은 것도 그렇고, 잔뜩 당황해선 둥둥 떠있는 머리를 허둥대는 것도 그렇고... 이윽고 귀신이 제 목 아래를 매만진다. 그러더니 상처투성이인 목이 뿅! 하고 나타나는데...
"히익."
여기저기 새겨진 흉터며 자국이 섬뜩해서, 소녀는 다시 숨 들이키는 소리 낸다. ...잠깐만, 몸이 없는 게 아니었잖아? 머리만 둥둥 떠있다고 착각한 건 옷이 온통 검은색이라 그랬던 거고, 마침 주변은 불도 켜지지 않아 어둑어둑했고. 그러니까 애먼 사람을 귀신으로 몰았다는 말이다. 밀려오는 창피함에, 소녀는 발가락만 꼼지락댄다. 방금 전 잔뜩 겁먹고 울먹이며 내뱉었던 말들이 부끄러워서.
"귀, 귀신 아니었구나... 미안..."
눈 앞의 존재를 사람이라 인지하니 그제서야 형상 또렷하게 보인다. 얼굴이며 인상이며 하는 것도 눈에 들어오고. 그는 어딘지 낯익은 자였는데, 길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라클레시아의 일행이 데려왔던 사람이었으니까.
"아까 봤던 사람, 맞지...?"
머뭇대며 물어본다. 그런 뒤, 소녀는 물건을 줍고 있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 자신도 황급히 상체 숙이고 거들기 시작했다.
해질녘이 지나고 밤으로 향해가는 시간이 다 되어서야 여관에서 나왔다. 오늘 하루종일 상당히 바빴기에 몸은 상당히 피곤했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었다. 그곳에 있을때는 이런 경험 같은 것은 전혀 하지를 못했으니까 새로운 기억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불쑥하고 튀어나오는 기억들은 좋은 것들이 많을수록 좋으니까 말이다. 처음 윈터를 만난 나무 그늘로 향한 나는 마침 그곳에 서있는 누군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오늘 몇번이고 여기에 왔지만 엇갈렸는지 보지 못한 그 사람.
" 윈터! "
오랜만에 보는 것도 아니고 아닌데도 왜이리 반가운지 나는 발걸음을 빨리하여 그녀에게 다가갔다. 외투는 여전히 바닥에 놓여있었기에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그것을 줏어 입으면서 윈터를 바라보았다. 빨려들어만 갈 것 같은 분홍색 눈동자, 여전히 인상적이다.
" 여기 몇번 왔었는데 엇갈렸나보네요. 그래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
이대로 가버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냥 말없이 가버리는 것도 그녀의 선택이니 존중해줄 수 있지만 왜인지 아쉬워서. 근데 분명 구속복을 입고 있던 윈터는 어느새 옷을 바꿔입고 있었다. 어디 옷가게라도 가서 바꿔 입은걸까. 나랑 같이 갔을때는 그냥 수선만 했던것 같은데 갑자기 변덕이라도 부렸나보다.
" 옷 잘 어울리네요. 예뻐요. "
살짝 웃으며 얘기한 나는 옷의 어깨부분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았다. 그냥 옷이 그렇게 생긴건가 했는데 올이 빠져있고 끝부분이 단정하지 않은 것을 보면 찢어진 것이 분명해보였다. 어디 긁힌건가 싶어 나는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반사적인 반응에 가깝다시피 기어코 자신쪽에서 사과를했다가 급하게 정신을 차리는 메구무 여자는 거의 넘어갈 뻔한 그를 보며 소리내어 가볍게 웃었다
"후후. 응, 그래."
여자는 자리를 잡아 다리를 모아 앉고, 메구무 또한 벽에 지친 몸을 기대고 앉았다 벽은 서늘해서 몸의 열을 식혀주고, 천장에서는 늦은 밤에도 분주히 움직이는 발걸음이 작은 소음을 형성하고 있었다 곧, 그마저도 곧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밤을 보내려 쫓겨난듯이 누추한 곳에 와버린 것치고는 의외로 잠을 자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결국은 여자의 말대로 '괜찮은 곳'인 셈이었다
얼굴 곁으로 무언가 떨어지기에 반사적으로 잡아채었다. 쇠로 된 투박한 형상의 촛대가 아슬아슬하게 손끝에 걸렸다. 떨어지기 전에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미 소란은 꽤 피울 대로 피웠다 생각은 하지만, 쇳덩어리 떨그렁거리는 소리까지 더해졌다면…… 그는 조금 전 들렸던 여관 주인장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부디 그 사람이 깨지 않았길 바라야겠다.
필사의 설득이 어찌 통한 모양이다! 상대도 간신히 진정한 듯했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에 천천히,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도록 크게 고개를 저었다. 따지고 보면 소리도 없이 으슥하게 나타난 건 제 쪽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어둠에 빛 죽은 와중에도 선명한 빛깔의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보면 이 사람도 일행으로 새로 합류했다고 했지. 그는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싱긋 웃었다. 그 뒤로는 한동안 물건을 집느라 말이 없었으리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고.
촛대를 찾았지만 초는 없었다. 처음에는 잘 꽂혀 있었던 물건이 떨어지는 도중 뚝 부러져버려 밑동만 남아 버린 것이다. 주변을 몇 번 더듬자 길쭉하고 허연 물건이 손에 잡혔다. 이제 불을 켤 만한 도구만 찾으면 될 텐데……. 잠깐. 여기에서는 불을 어떻게 피우지?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간과해 버리고 말았다. 머릿속에 늘 쓰곤 했던 이런저런 도구들이 훌쩍 지나가지만, 여기에도 그것과 같은 구조의 물건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문제 외에도 이곳에는 오늘 처음 들른 참이라 아직 어느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미처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 그는 붕대 감긴 손으로 제 턱을 가만 문지르다……. 알레프의 앞에 초를 들어 보이고는 슬며시 심지를 가리켰다.
혹시… 이거 켜 줄 수 있냐고…….
살아 온 세월이 반드시 연륜과 지혜를 동반하지는 않는다고, 한밤중의 말썽꾼들이 이를 손수 증명하고 있다.
질문에 돌아오는 건 대답 아닌 묵언의 끄덕임이었다, 미소를 동반한. 이상하게도 그는 말이 아예 없었다. 방금 전 소녀가 오해한 상황에서도 말 한 마디면 해결되었을 것임에도. 아니면 혹여 말을 못 하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 들었다. 그, 그치만 난 수화 같은 거 모르는데...! 소녀는 저도 모르게 손길을 멈추곤 상대의 낯을 빤히 바라보았다.
"...응?"
그러다 대뜸 초를 제 눈 앞에 들이미는 그의 행동에, 소녀는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심지를 가리켜보이는 행동에도 그저 멀뚱멀뚱. "...무슨 뜻이야?" 무심코 말해놓고서도 아차 했다. 이 사람은 말을 못 하잖아! "아, 미안..." 실례일까 싶어 퍼뜩 사과하는 소녀. 그의 손짓은 이것 좀 보라는 뜻일까, 근데 특별할 거 없는 초인데... 아니면 주변이 어두우니 불 좀 붙여달라고?
"켜 달라고?"
그제서야 그럴싸한 결론을 낸 소녀가 묻는다. 그것도 잠시 풀 죽은 표정이 되었지만. "난 그런 거 못 하는데." 라이터든 성냥이든 가지고 있는 것도 없고, 불 피우는 능력도 없고. 제게 창조의 권능이 있었다면 그 정도는 만들어냈을 텐데! 이렇게 생각만 하면 눈 앞에 뿅, 하고...
"엑?!"
나왔다! 깜짝 놀라서 다시금 목소리 높인 소녀가 뒤늦게 입을 틀어막는다. 시끄럽게 하면 안 되니까... 하여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녀의 눈 앞 허공에, 새 것 같은 라이터가 둥둥 떠있었으니까! "이거, 내가 만들어낸 거야?" 소녀는 입 가린 손을 찬찬히 내리며 상대에게 흘깃 시선을 주었다. 어차피 그런 질문 해봤자 그도 모르는 일이니 대답할 수 있을리 만무하지만.
미하엘 양이 다섯이나 있다고 했으니, 미하엘 양을 포함하면 여섯, 거기에 나까지 포함하면 일곱. 그중 미하엘 양, 마드모아젤, 나, 코우 양. 이렇게 넷이니 앞으로 셋 남았나. 헌데, 이 반응과 분위기를 봐서는 아무래도 '더 있을지도 모른다' 의 가능성 중 하나이지 싶은데..
"...금 같은것을 모아두시면 어떻겠습니까? 어느 세계든, 그런 것들은 화폐가 될 테니까요."
정말 알지 못하는 세계가 아니라서,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이 화폐가 된다면 그것마저도 소용 없겠지만, 지극히 희박한 가능성이리라. 사람 사는 세계는 대부분 비슷하리라는게 내 생각이다. 지옥같은 마경만 아니라면 아마 금, 은, 보석같은 것들이 다른 세계에서도 화폐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어쩐지 그녀가 축 처진것 같아 위로하려던 차에, 배가 고팠는지 좋다는듯 말해오는 그녀의 반응을 듣고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렇다면 저도 면 요리로 먹겠습니다. 근처의 식당은 아는게 없어서... 같이 찾아보실까요?"
흥, 하고 콧김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위장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갑작스럽게 바뀐 태도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뭐가 되었듯 말을 얹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리라.
"그러셨군요. 멋대로 억측한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가슴께에 천천히 손을 올리고, 다시금 짧게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그 때의 발차기 위력을 보아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거기에 엄한 사람을 해쳐서 좋을 일 없다는 것 역시도 맞는 이야기고.
"그러십니까? 그러시다면 일행 분들이 오실 때 까지, 잠시 곁에 있어도 되겠습니까?"
천천히 생긋 웃으며.
"다시금 힘이 폭주하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드리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으니 말이죠... 또, 같은 추락자로써 여쭤보고 싶은 것도 있으니."
그리고는 어깨가 손바닥으로 찰싹 채이자,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마의 권속은 아닌가. 크게 거짓말같지도 않았다. 평온한 심음. 보통 녀석들은 정체를 들키면 호전적으로 덤벼들거나 하는데. 완전히 정체를 숨기는 극악무도한 녀석이라는 가능성은 배제해두자. 그런 것 까지 일일이 따졌다가는 골치아파진다. 가장 최악의 경우에도- 그래, 그 녀석도 그렇게까지 숨기진 않았으니. 헌데 이어지는 말에는, 조금은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여성분을 여관으로 초대한 것은 조금 경망스러웠을지도 모르겠군요... 허나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미안해? 뭐가? 멀뚱하게 눈 깜빡이다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나 바로 이해하기는 힘들었을까. 두 번만에 곧바로 정답을 맞히자 표정이 밝아졌지만, 곧바로 못한다는 말에 돌아오자 조금 아쉽다는 얼굴이 된다. 하지만 실망이랄 것까진 아니었다. 정 불을 켤 수 없다면 차선책을 택하는 수도 있다. 주변에 다른 광원이 없을 때는 달빛으로도 어느 정도 시야 확보가 가능……
어.
눈앞에 불현듯 나타난 물건보다도, 본인이 더 놀란 듯한 상대방의 목소리에 더 놀랐다. 다행히 그는 지금 소리를 낼 수 없었기에 경악의 비명이 2중주로 겹치는 일만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물건은 뭔지 안다. 지금 상황에 정확하게 필요한 물건, 상대방의 물음에 멀거니 눈을 깜빡이던 그는 주섬주섬 제 옷 어딘가를 뒤졌다. 주머니가 많은 옷은 이럴 때 도움이 된다. 두어 번 쯤 접힌 종이와 펜이 주머니 안에서 부스럭거리며 딸려나왔다.
[ 아마도? ]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은 모르겠지만…… ‘이게 뭐야?’가 아니라 ‘내가 만든 거야?’라고 물은 걸 봐선 본인이 만든 게 맞겠지. 그는 누구든 저마다의 특기가 있는 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윈터가 다수의 사람을 단번에 때려눕히는 무력을 지닌 것이나, 죽지 않는 자신의 경우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리라.
[ 대단하다 ]
그렇게 쓰인 종이를 들어 보이는 눈빛은 새카만 야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초롱초롱 빛날 것만 같다. 아직은 어두워 글자가 잘 보일지는 모르겠다. 불을 켠다면 읽을 수 있을 테니 큰 상관은 없겠지만.
분명 넘어오지 말라고 했음에도 코우가 자신의 우치가타나를 쥐고 구경하는 것을 보며, 메구무는 못 말린다는 양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래, 그렇지... 넘어오지 말라고 했지 칼 갖고 놀지 말라는 말은 안 했으니깐... 미리 말을 안 한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포자기해버렸다.
메구무는 칼날을 코우 쪽으로 비췄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장발의 남성이 코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치곤 친근한 태도를 보이면서.
「하하, 반갑대이.」 "만지지만 마라. 그냥 보기만 하는기다?"
코우가 자신의 칼을 끌어안으며 하는 말엔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손사래 치며 여상하게 말했다. 비록 귀신 들린 검이라도 손에 염주를 둘러가면서까지 떨어뜨리지 않을 검이라면 그녀에겐 많은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괘안타. 안 보여줘도 된다. 내도 글케 궁금하지도 않고..."
그리고 그는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손뼉을 짝, 치고는 코우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는 의미였다.
永: 203 외국어 구사실력은? 일단 살던 세계에 국가가 남아 있었는지부터 물어봐야(이하생략) 추락자가 된 이후엔 자동 번역 기능까지 달렸으니까 배울 필요도 없을 것 같고 말이죠🤔 부럽다...
073 좋아하는 옷과 어울리는 옷이 비슷하나요? 아니라면 옷 입는 스타일은 어떻게 절충하나요? 음~ 지금 입고 있는 옷은 그냥 실용 용도로 선호하게 된 건데, 이것도 좋아하는 거라면 좋아하는 옷이겠네요. 터크웨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한 마디로 좋아하는 옷이랑 어울리는 옷 같습니다!
022 왼손잡이 or 오른손잡이 양손잡이입니다! 글씨를 쓰거나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행동 전반은 왼손으로, 힘을 쓰거나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은 오른손으로 하는 편이에요.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471 자캐가_가장_최근에_타인에게_준_선물은_무엇일까 이제야 사람을 만나기 시작한 터라... 아직 아무것도 주지 못했네요🙄
269 자캐는_꾀병을_잘_부린다_vs_못_부린다 못 부립니다!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애초에 본인이 병에 안 걸리는 몸이다보니 사람이 아플 때 보이는 행동방식이나 양상을 전혀 모르거든요.
if)만약에 꾀병 연기를 꼭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 열 나는 연기를 하려고 체온계를 데웠는데, 체온이 몇 도인지 몰라서 온도가 43도임
272 자캐는_호감_있는_사람에게_적극적으로_다가간다_vs_주위만_서성인다 둘 섞어서 적극적으로 서성거려요 그 뭐냐... 먼저 이런저런 스몰토크 같은 거 던지기도 하는데 소통능력이 그리 좋지는 않아서 중간중간 맥 끊길 것 같고...(?)
“제게는 비루하나마 노래하고 춤추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조금의 여비를 벌었지요. 코우 양 께서 이전에 어떤분이셨는지에 따라, 어떻게 보석류를 구하실 수 있을지, 조금이나마 조언을 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금이 어렵다면 보석을 구하면 된다. 장신구는 언제나 인기가 많으니까. 착용하기도 간편하고, 조금 정이 들어버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건 그렇고, 이 소녀는 어떤 사람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각기 다른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 어떤 조건을 가지고, 어떤 이유로 우리는 이 세계로 추락하였고, 또 다시 다른 세계로 추락하는가.
“하하,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날 때부터 보이지 않던 터라 익숙하기도 하고... 또,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되거든요.“
뭐어, 면 요리 가게를 찾는것은 조금 불편하지만요. 또 다시 옅은 농담을 내비치고는 살풋 웃었다.
메아리가 한동안 광장을 울리고. 푸드덕!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 새들이 대뜸 사내들을 향해 달려들듯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수많은 날개 사이로 새들이 사내들을 쪼아 대거나 할퀴는 모습이 간혹 드러났다가 금방 다시 가리워졌다. 이, 이, 이게 뭐야! 당황한 사내들의 목소리는 수십 마리 횃소리에 손쉽게 묻혀 버렸다. 어떻게든 새들을 쫓아내려 사내들이 팔다리를 버둥거렸지만 그러기에는 수가... 너무 많다. 끄아악! 찢어지는 비명.
무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이, 있는 거지?
일련의 광경을 목격한 소녀는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다. 마치, 도와달란 소리에 반응이라도 한 것처럼.. 혼란스러운 얼굴로 목 안쪽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그 어디께를 바깥에서 더듬는다. 한참 이어진 날갯짓은 사내들이 각자 손에 쥐었던 날붙이며 몽둥이 따위를 떨그렁, 떨어뜨리고 줄행랑을 친 후에야 겨우 멎었다. 일을 마친 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광장 곳곳으로 흩어져 땅에 떨어진 곡식낱알 따위를 쪼아댔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 사.. 사, 살았다⋯"
제일 먼저 확인한 건 당연하게도 소년의 안위다. 여전히 딱딱히 굳어있는 걸 제외하면.. 잘못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나니 다리에 힘이 탁 풀려서 엎어지듯이 털썩 주저앉았는데, 아이쿠, 하필이면 바로 근처에 사내 중 하나가 떨어뜨린, 날 선 쇠붙이가 있을 건 또 무언가.
"⋯꺄아악⋯⋯"
흙바닥 짚은 두 손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손 잘못 짚었다가 닿기라도 할까 괜히 식겁해선 엉덩이 걸음으로 황급히 물러난다. 어린아이에게 들이대기엔 너무.. 날 선 조각이다. 게다가, 자, 자, 잘못됐으면 나, 나나 나도, 삽시간에 시퍼렇게 질리는 안색이 선명하게도 보인다. 이, 이이, 이, 이젠 무리에요〰〰, 진정 기절할 것 같은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는 와중에 다가온 비둘기 한 마리가 가볍게 손 끝을 콕콕 쪼아 대더니..
[괜찮아졌어?]
말을 건다. 또, 또 동물이 말을 한다.
"...〰〰〰〰!!!"
새, 새새새가 또 말, 말을, 말을, 지 지금 들었, 경악한 얼굴로 이르기라도 하듯이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에게도 새의 목소리가 들렸을까? 저만 그런 게 아닐 거라고 작은 희망을 품지만.. 소년의 귀엔 비둘기의 작은 울음소리만 구구, 들렸을 뿐이겠지.
어색한 악수를 어찌어찌 잘 끝내고 나자, 손님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마, 많이 어색했나? 괜히 의기소침한 맘에 잠겨 긴장감에 땀 배어난 손바닥을 앞치마에 묻었다.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였나 봐⋯ 으, 으으, 연신 발 끝만 더듬는 소심한 시선.
종족!
사람에게 종족이란 말을 붙이는 건 아직도 낯설었지만, 이 세계에서 생활하려면 얼른 익숙해져야 한단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들을 때마다 아직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걸. 처음 세계에 떨어졌을 때 보았던 온갖 생김새의 사람들을 떠올린다. 동물 귀, 동물 꼬리, 이상한 모양의 물건 머리. 비록 테시어 씬 그런 사람들보단 좀 더 자신이 아는 '인간' 모습에 가깝기는 하지만, 막상 다른 종족이란 말을 들으니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 그렇군요⋯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해 보아도, 긴장감에 무의식적으로 앞치마 끝자락이며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는 버릇은 차마 숨기지 못 하고.
"그, 그, 그치만 처음 본 부, 분한테 제가, 어떻게 편하게..."
우물쭈물. 맞잡아 깍지 낀 손가락을 옴직거리며 눈치를 살핀다. 뒤따르는 사소한 중얼거림은 덤이다. 하, 하, 하지만 테시어 씬 저보다 훨씬, 어, 어어, 어른같아 보, 보이고... 어린 사, 사, 사람이 어른 이름을 함, 부로 부르는 건 버, 버버 버릇없는짓 아닌지... 혼잣말같은 중얼거림은 점점 기어들어가더니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릴 것 같은 속삭임으로 변했다. 그 속삭임마저 희미해져 들리지 않게 될 즈음에, 바닥을 기던 시선이 아주 잠간 힐끔, 당신을 향했다. 눈이 마주쳤을지 어떨지는 모를 일이다.
"떨어진 사, 람이... 한둘이 아, 아닌 건가요..?"
그, 그러면 말씀하셨던 일행, 들도...? 조심스러운 물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다니, ...이건 어쩌면.. 단순한 우연으로 볼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닐까? 저 혼자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얻었다가, 뒤따르는 생각에 문득 불안해졌다.
너와 처음 만났던 나무 아래. 윈터는 라크가 제게 덮어주었던 외투를 만지작거렸어. 점점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올려다봐. 옷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겠지.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을 상정하며 마음을 놓아.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해는 이미 저물었는데. 어디 가서 죽기라도 한 걸까. 윈터는 남몰래 라크의 외투를 끌어안고 냄새를 킁킁 맡고 있었어. 그런데 쫑긋 솟은 귀가 까닥까닥. 저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어.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밝게 빛나는 알비노 다람쥐. 라크였어. 그의 인영을 눈에 담자마자 끌어안았던 외투를 휙 던져버려. 그러고는 풀밭에 그대로 드러누워 제 무릎을 끌어안고 자는 척을 했어.
들키지 않았겠지...
"어디까지 갔다 온 거야."
방금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연기하면서,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예쁘다는 말을 똑똑히 들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좋아하는 기색을 참아내면서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려버려.
이거 내가 만든 거야, 진짜로? 권능이 다시 생긴 걸까, 그치만 여기로 떨어지기 전까진 정말 없었는데. 혹시 추락하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소녀는 불현듯 어떤 것을 느꼈다. 몸이 축 처지고 기운이 쭈욱 빠져나가는 듯한...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걸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소녀는 피곤에 절은 낯을 한 채, 무심코 입을 크게 벌려 소리를 내었다... 그냥 하품 한 번 했다는 얘기다.
"에?"
나 방금 뭐 한 거야? 하품까지 해놓고서 어리둥절한 표정 짓는 소녀. 그 와중 검은 옷의 존재는 어디선가 종이와 펜 꺼내 글씨를 썼는데, 주변이 어두워서 무어라 적혀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이럴 때가 아니다. "...아!" 소녀는 퍼뜩 정신 차리고서 라이터를 집어들었다. 게임에서 보면 이걸 이렇게 하던데... 잠시간 라이터를 붙잡고 끙끙대던 소녀는 결국 불 피우는 것에 성공했다. 은은한 불빛에 주변이 조금이나마 밝아진다. 그제서야 종이에 휘갈겨진 글이 눈에 들어왔다. '대단하다'!
"...헤헤."
불 켜진 라이터를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마냥 쥔 채, 소녀는 말간 낯으로 히죽댔다. 비록 스스로도 놀랐긴 했지만 이는 분명한 자신의 권능이니까!
아이리와 닮지 않았다는 말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무심히 말했다. 나와 아이리가 가족인 줄 안걸까. 물론 알고 지낸 세월이 진짜 피가 이어진 가족보다도 더 오래되었으니 정말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메구무도 어느정도 인지하는 것 같지만, 그는 제 3자의 시선으로 봤을때 진짜 가족보다도 아이리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에 말이다.
"...안 궁금하다."
그녀가 자신을 떠보듯 말하자 메구무는 마찬가지로 그녀의 붉디붉은 동공을 응시하며 직감했다. '궁금하다고 했다간 순식간에 저승행이겠군.' 메구무, 잊지 말거라. 지금 눈 앞의 여성은 귀신 들린 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목숨이 아깝거든 무조건 거절하거라. 뭐지? 이거 누가 말 하는거야? 할아버지? 어찌되었건 메구무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무심한 말투로 거절했다. 애초에 그리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래... 니도 오늘 고생 많았다. 푹 자그라..."
하품을 하며 졸린 눈 사이를 손으로 꾹꾹 누르던 메구무는 아이리를 품에 꼭 끌어안고 코우에게 잠자기 직전 밤인사를 건넸다. 내일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 방을 잡아야겠다... 그렇게 다짐한 메구무는 그 뒤로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70 미하엘은 휘청휘청 몸을 일으켰다. 이내 쭈욱 기지개를 켠다. 뻐근한 곳은 없었지만, 습관 같은 행동이었다. 미하엘이 똑바로 서서 너를 바라보았다. 완전하게 상실한 감각이 돌아온 건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판단할 정도까진 돌아왔다. 이 정도면 움직여도 괜찮겠지. 적어도 인지하는 방향과 같은 곳으로 움직이긴 할 테니까.
“그으래—, 영웅님. 한 번 영웅은 영웅이다, 이거잖아.”
멋진 일이다. 비록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 세계에 추락하더라도, 영웅은 영웅이겠지 싶었다. 영웅님 하며(비아냥거리는 투는 아니었다.) 헤죽 웃던 미하엘이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 로시테아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뭐, 그런 거 있잖아? 아까 자신의 가게로 와달라고 했던 사람을 찾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식사를 하러 간다던지, 그런 것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이렇지 않았는데 이 소녀는 계속해서 낯을 가리는 것인지 손을 가만두지 못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거리낌 없이 대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알레프도 처음엔 겁을 먹고 말도 잘 안했으니까.
" 앞으로 여관에서 자주 볼텐데 서로 편하면 좋지 않을까요? "
여관이 여기 하나 뿐이니 추락자들은 점점 이 여관으로 모여들 것이다. 내가 본 추락자들 이외에도 분명 여럿 더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벗어나는 것보단 여기를 주요 거점으로 삼아서 움직이는게 훨씬 이득일 것이다. 그러니 서로 오래 봐야할테고.
" 하지만 강요는 아니에요. 그게 편하면 그렇게 부르셔도 괜찮답니다. "
그렇다고 부르기 힘들어하는 호칭을 강제하는 것도 서로의 관계에 좋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사실 날 어떤 식으로 부르던 상관은 없는데 너무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라 좀 어색해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리고 니아가 나를 어려운 어른으로 생각하는 것 같으니 그것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을듯 싶다.
" 꽤 많아요. 내가 아는 것만 2명이고 더 있을걸로 추정 되니까요. "
내가 만난 2명, 거기에 니아까지 3명이 끝이라면 하루만에 이렇게 만난게 기적일 것이다. 그러니 도시 내부의 다양한 지역에 더 많은 추락자가 있을 것이란 예상. 그리고 그들이 하나 둘씩 여기로 올 것이란 예상도 있다.
" 니아는 인간인가요? "
외모 갖고는 종족을 쉽사리 판별하기 힘들다.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처럼 외형을 한채 살아가는 이종족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 더 자주 올껄 그랬나보다. 그러면서 나는 알레프를 만난 사실과 추락자가 더 있을 것 같다는 예상, 그리고 밤을 보낼 여관 방까지 구했다는 사실을 얘기해주었다. 그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던것 같은데 중간중간 도시를 탐방하느라 시간이 늘어지긴 했다.
" 찢어졌으면 상처라도 난거 아니에요? "
걱정스런 표정으로 윈터를 바라본 나는 아까 본게 떠올라서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아까 그녀가 쓰러졌을때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손에서 희미한 빛이 나더니 윈터의 옷이 찢어진 부분을 감싼다. 찢어진 부분이 고쳐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상처가 있었다면 어느정도는 아물었을 것이다.
" 치유마법을 배워왔어요. 누가 쓰는걸 우연히 보게 되어서. "
이번엔 제대로 잘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얘기했다. 그런데 무언가 줄어드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느낌에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원인은 알 수가 없어서 의문은 잠시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 먼저 간게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어디 가버렸으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
밝은 미소와 함께 얘기한 나는 점점 밤이 깊어지는 것 같아 입고 있던 외투를 다시금 벗어서 윈터의 어깨에 걸쳐주려하며 말했다.
한순간만에 눈앞이 확 트인다. 제대로 작동까지 된다는 뜻이었다. 기세 좋게 활활 치솟는 작은 불꽃을 바라보던 그는 그곳에 심지를 가져다 대었다. 끄먹끄먹 꺼질 듯 깜빡거리던 불이 천천히 옮겨붙었다. 초는 아래가 뚝 부러져 버렸지만, 촛대의 스파이크가 길어 무식하게 다시 꽂기만 해도 고정은 대충 될 듯싶다. 무사히 고정까지 마친 그가 조금 떨어진 곁에 촛불을 내려두었다. 회색빛 머리칼, 검은 복색, 혈기 식은 살결. 온통 빛 죽었던 무채색의 형상이 은은한 주홍 불빛 너머로 번히 물들어갔다. 이제야 눈앞이 보이는 기분이다. 환히 웃는 상대의 얼굴에 그도 부드러이 입매를 끌어올렸다. 종이를 바닥에 내려둔 채 몇 번쯤 펜을 놀린 후, 상대에게 스윽 밀어서 내밀었다.
[ 조금 전엔 놀라게 해서 미안해 ] [ 바닥에서 뭐하고 있었던 거야? ]
생각해 보면 도중에 걸음소리라도 제대로 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혹여라도 상대가 저와 같이 수면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르니, 왜 잠들지 않았느냐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식사 때가 지나 정리된 식탁 위에는 그리 많은 물건이 놓여 있지 않았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잘한 물건 몇 정도만 주섬주섬 주워 올리는 것으로 정리 거리는 끝이 났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눈앞의 자그마한 일행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고 일어나라는 뜻일까? 손에 감은 붕대는 종일 활동하며 마무리가 조금 흐트러진 부분도 있을 테지만, 한 차례 붕대를 감은 덕에 흉하게 상한 부분이 잘 보이지는 않았으리라.
밝아졌다! 망막으로 곧장 들이쳐오는 불빛에 소녀가 눈을 두어번 끔뻑인다. 그리고 뒤늦게 상대의 행색 살펴보고, 쓰임새를 다한 라이터를 뚜껑 곱게 닫아 주머니에 쑤셔넣었고. 그 손짓 묘하게 나른하고 기운 빠진 기색이었다.
"어, 그게... 천장 기둥 세기?"
검은 옷의 존재가 내보인 질문에 소녀는 정직한 대답을 내놓는다. "심심해서 그랬어." 그런 일을 한 이유가 뭐냐며 다시금 물어올까, 냉큼 몇 마디 덧붙였다.
"그럼 너는? 여기 뭐 하러 왔어?"
배고파서 밥 먹으러 왔나? 이유를 대강 추측해보던 소녀는, 불쑥 내밀어지는 손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한다. "응?" 악수하자는 걸까? 이윽고 소녀는 저도 손을 마주 뻗어 그의 손을 붙잡고, 악수하듯 위아래로 흔들었다... 처음 만난 거나 마찬가지니까, 인사하자는 건가봐! 손 잡고 일어나라는 뜻인 줄도 모르고... 상대가 의도한 바도 제대로 알아먹지 못한 주제에 방실방실 웃는다.
>>504 tmi도 겟( •̀ ω •́ )✧ 확실히 미카엘보다는 미하엘이 조금 더 귀여운 어감이기도 하고~ 미카엘은 천사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서 미하엘 쪽이 더 찰떡이긴 하네요!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푸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윈이 유튜브 먹방 찍는 거 상상해버렸어요....
방금 주입이라고 한 거 같은데. 미하엘의 눈이 짐짓 가늘어지다가 곧 파하, 하고 터지듯 웃음소리를 뱉었다. 어쨌든 베풀어지는 호의를 무시하진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흐응, 자유롭게라는 거지? 나쁘지 않네.”
하긴,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해서 정을 쌓는다는 건 생각해 보면 슬픈 일이다. 결국엔 헤어진다는 것이니까. 그러느니 자유롭게 이곳저곳 누비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연은 짧게, 그러나 자유는 넓게. 물론 네가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닐 수도 있지만.
미하엘은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어떻게 할 거냐는 듯 묻는 듯한 눈빛에 잠시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어차피 무언가 한다고 해봤자 이 도시 내에서 있을 거였고, 굳이 목표가 있다고 하면 자신과 함께 추락했던 다윈을 찾는 건데······. 꼭 그래야만 할 것도 아니다. 그 외의 다른 목표가 있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글쎄? 뭐든 하지 않을까? 뭐 밥을 먹든, 잠을 자든, 사람을 돕든, 쉬든? 왜? 내가 뭘 할지 궁금해?”
천장 기둥 세기? 그 말에 그도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다. 특별한 점은 없는 것 같은데. 그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다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큰 의미는 없는 행동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만한 생각은 조금 더 이어질 모양이다.
[ 그걸 하면 재밌어? ]
그렇게 하면 지루함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지 순전히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면 그는 지금껏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날이 변하는 것 없는 무료한 생활에 익숙하여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도 했고.
[ 소리가 들려서 와봤어. ] [ 너는 안 자도 괜찮아? ]
그렇게 보여주고는 잠시 종이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손을 내밀어 상대방을 일으켜주기 위해서였는데, 그러나 이번에 어리둥절해진 쪽은 그였다. 마주 잡힌 손이 위아래로 살살 흔들린다. ……이게 무슨 뜻이지.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산 세월이 한참,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예법이나 격식 같은 무쓸모한 정보는 이미 망각의 저편으로 넘어가 버린 지 오래다. 함께 일어서려 했던 마음도 종잇장처럼 어색하게 접어 두고, 그는 눈높이를 맞추려 다시 바닥에 앉았다. 상 위에 놓았던 종이도 같이 집어 왔다.
무리, 라고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술이 입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야 하는 이유라도 있지 않는 이상에는 이어서 사내가 성인이맞냐고 물어오자, 그 여자는 눈썹을 조금 들썩이고는
"비-밀."
마치 그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으음, 조금 쓰고. 허전하기도 하고. 아무튼 굉장히 심심스러운 맛."
즐겨 마신다는 우롱의 맛에 대해 여자는 그런 식으로 평을 내렸다 그 말대로라면 어느 구석하나 마시는 보람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 아닌가 곧 아델의 뒤를 이어 이번에도 샌드위치와 굳이 다시 우롱을 주문하지만 낯선 추락자를 위한 우롱은 없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금세 또 시무룩해지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그냥 물 줘."
둘이 시킨 샌드위치와, 맥주와... 그리고 물은 기다릴 필요도 없다시피 할 정도로 금방 내어져 나왔다 여자는 물이 가득 담긴 잔을 들어올려 아델을 향해 치켜들고는 말했다
갑자기 던지는 tmi! 현실에서는 오랜 고립 생활을 하다 보면 언어능력이 쇠퇴하고 사회성을 잃는 등의 문제를 겪게 되죠. 그래서 이런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여 상상 속의 친구를 만들거나,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생기거나,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을 길들여 데리고 다니는 식으로 자신의 인격과 정신을 지키곤 합니다. 하지만 영이는 nnnn년 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도 딱히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이유는.. 아무리 그래도 언어능력을 상실했다는 설정으로 굴리는 건 너무 어려울 듯해서 적당히 타협한 결과...🙄 그나마 타협해서 일시적으로 목소리가 안 나오고, 말은 할 수 있어도 예법과 비언어적 표현은 잘 모르는 상태라는 설정으로 가기로 했슴다. 그마저도 비언어적 표현은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되찾고 있는 중이고요.
그리고 평범한 인간과 일대일로 대응시킬 수 없는 인외성을 지닌 것도 원인이라 할 수 있겠네요.(본인은 그다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불사신 정도면 살짝 인외가 아닐까요?🤔🤔) 영이가 지닌 '쇠락하지 않음'의 특성은 몸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해당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감정적 혼란을 겪을 수는 있을지라도 병리학적 영역의 정신질환이나 기능 장애에까지는 미치지 않거든요.
판타지적 설정이지만 약간의 현실성을 지향하는 중이라서 이 부분이 셀프로 좀 신경쓰였답니다...(。。) 아무튼 드디어 풀었다!
"어... 응. 나도 사람을 하나 데려오긴 했는데 말이야. 우리와 같은 추락자야. 해가 저물 때쯤에 여기로 오라고 했는데..."
윈터도 라크와 마찬가지로 미하엘과 만나서 새 옷을 얻은 것과 영을 만났던 이야기 등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줄줄 늘어놓았어. 중간에 다툼이 조금 있어서 상처를 입은 것까지는 말하지 말까 했는데 먼저 알아보고 손길을 내미는 라크를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가리려고 했어.
"별거 아니니까..."
걱정해 주는 손길을 마다하려 했는데, 라크의 손에서 희미한 빛이 일더니 어깻죽지에 남아있던 통증이 씻은 듯 사그라들어. 윈터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라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어.
"나도 걱정했다고. 네가 나 버리고 갔을까 봐."
다시 고개를 내린 윈터는 이어지는 말이 없었어. 라크가 외투를 어깨에 걸쳐주면 그것을 가만히 가슴께로 끌어당길 뿐이야.
재미없다고 말하더니 표정이 안 좋아진다. 심심한 게 그 정도로 싫었던 걸까. 시무룩해진 얼굴이 조금 안쓰러웠다. 이야기라도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얼른 종이를 보여주었다.
[ 안 자고 깨어 있는 것 같길래. 뭘 하는지 궁금해서 나와봤어 ]
응, 소리.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듯 그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는 간접적인 함의를 잘 포착하지 못하여 말을 액면 그대로만 믿는 편이었는데, 그런 성향이 지금의 상황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흔히 오해하듯 어려 보이는 소녀가 잠자기 싫어 밖으로 나왔다는 뜻으로 넘겨짚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 나도 그런데. ]
마주보는 얼굴에 웃음이 서린다. 잔잔하게 오른 입꼬리와 소리 없이 휘어지는 눈. 그는 꽤 기뻐 보였다. 생색 없는 얼굴은 여전하게도 창백했으나 한편에서 비치는 형촉의 빛이 은은한 혈기를 대신해주었다. 이 감정의 결이 명확히 무엇인지까지는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동질감은 그만큼 값진 것이었다.
그러나 곧, 환히 피었던 표정에 무안함이 섞여들었다. 다시금 급격하게 시무룩해진 상대의 얼굴에 그가 급히 한 마디를 더 써내려갔다. 서두르는 마음 만큼이나 필체가 자연스럽게 휘갈긴 모양이 되었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돌아온 대답은, 그렇구나 따위의 평이한 대답이 아니었다. 되려 자기도 그렇다며 그가 말갛게 웃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소녀는 잠깐 머뭇거리다, 곧 마주 웃어보였다. 왠지 모르게 기뻤다. 자신과 비슷한 존재가 있다는 것이. 그는 자신과 같은 신일까, 아니면 그저 불멸성 지닌 인간일까.
"아..."
악수가 무언지 잊어버렸다. 뒤이어 짧게 내뱉는 감탄사는 탄식도, 경악도 아니었다. 상대의 처지 이해한다는 뜻에 가까웠다. 하기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소녀도 하계에서 지상으로 막 기어나왔을 땐 그야말로 모든 걸 망각한 상태였으니. 소녀는 그새 풀 죽은 표정을 풀고서 쿡쿡 소리내어 웃는다.
"그랬구나. 그러니까 악수는... 인사 같은 거야." 설명 마친 소녀는 가볍게 몇 마디 덧붙인다. "넌 이름이 뭐야? 난... 알레프."
안녕? 내 인생을 잠깐 설명해줄까 해서 이렇게 대화를 할 자리를 마련했어. 대화하기 싫다고?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봐, 여기 네가 좋아하는 차도 한잔 마시면서 말이야. 별로 궁금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누군지는 알아야 나와 이야기 하기 편하잖아?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나... 난 어린 시절 빈민가에서 태어나 힘겹게 살았어. 맨발로 폐지 주워본 적 있어? 그런 경험은 안해보는게 좋을거야. 온갖 쓰레기와 오물, 벌레들이 득실거리는게 실수로 뾰족한 쓰레기 한번 밟으면 그날로 생사가 오락가락하거든.
항생제 같은걸 먹으면 안되냐고? 에이, 농담도 참... 빈민가에 그런게 어딨어? 어린아이에게까지 맨발로 돈을 벌어오라 하는 곳이 이 곳인데 말야.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배고프다고 해서 움직여봤는데 정신차려보니 내 주변에 있던 또래 아이들은 하나 둘 씩 사라졌고 결국 난 자그만한 리어카 한대와 너덜거리는 신발 한 켤레 가질 수 있게 되었어. 그때 어린 마음에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신 나간 소리였네...
당장 배가 차서 안심을 했더니 그새를 못참고 다른 놈들이 내 것을 뺐어가기 시작했어. 삶은 감자 한 알이 그날 저녁 전부였는데 나쁜 놈들 때문에 진흙탕에 떨궈봤어? 내가 가진 모든 걸 잃어버리는 느낌이더라구 남들 같았다면 그대로 객사했거나 울분을 못참고 달려들었을텐데 난 조금 다르게 생각했어.
어쩌다가 이렇게 된걸까? 왜 뺏기는 구조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는걸까? 정답은 하나야~! 이 세상은 누군가에게 뺐어야하는 구조로 되어서 돌아가고 있고 나는 그 뺐는 방법을 부모에게서 배우지 못한거야. 어떻게 보면 너무 불쌍한거지, 생존본능처럼 처음부터 알았어야 하는 것을 빼앗기고 나서야 알아차리다니... 그나마 다행인건 늦지않게 내가 이 세상의 구조를 알았다는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난 그 도둑놈 무리의 두목에게서 그의 신발을 닦으며 배워가기 시작했어, 대신 잔심부름 등 모든 것을 도맡아했지. 뼈가 부러지고 손가락이 사라질 뻔하기도 하고 했지만 나쁘진 않았어. 보상이 아예 없거나 적긴 했지만 내가 배운 것은 내 머릿 속에 남아서 그 누구도 뺐을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 되어가고 있었거든.
처음에는 멋 모르고 뺐기만 했다가 뒤통수를 옴팡지게 맞았는데 그걸 또 기연이라고 해야하나? 그때 만난 거물에게서 또 다시 난 배우게 되었어. 다른 사람들도 나랑 똑같았던거야, 부자든 가난하든 누구나 뺐고 싶어했어. 그랬기 때문에 그 뒷수습을 잘해야 내 뒤통수가 안전하단 것도 말야. 점점 나는 남들에게서 뺐고 빼앗긴 이들에게 어르고 달래는 법을 배웠어. 물론 이번에는 실전이어서 그런지 강의료가 비싸긴 했지.
이거봐, 내 팔이 반짝여서 멋져 보이지? 나름 내가 제일 아끼는 것 중 하나야. 내 치열했던 삶의 증표 같은거지. 이런 멋진 걸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 난 왜 이렇게 높은 곳에서 한없이 떨어지고 있냐고?
다 좋았는데 마지막에 아끼고 아꼈던 놈이 내 뒤통수를 너무 빨리 쳤지 뭐야... 나름 내 인생의 은퇴 때 모든 것을 물려주고... 정말이야~! 다 물려줘야지 일부만 주면 이인자가 만족하겠어? 물론 일인자가 갖는 디메리트도 전부 떠넘겨주려고 했지만... 하여튼 내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내 후계자가 날 배신했어. 덕분에 쫒기는 신세가 된 나는 한탄과 함께 남겨진 돈을 가지고 빠른 은퇴를 할까 하다가 내가 못받은 은퇴선물을 받고 싶었어. 맞아, 배신자의 머리지. 결과적으로는 그래, 놈은 나보다 어렸고 더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내가 했던 것처럼 내게서 배워갔기 때문에 내가 이기기 힘들었지.
젊은 혈기가 내게도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번아웃이 좀 쌔게 왔나봐? 난 결국 복수하려다가 역으로 당하고 힘겹게 도망을 쳤지. 분명히 마지막 기억으로는 지하철 게이트에서 의자 등받이에 기대서 잠을 잤는데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고 잠에서 깨버린거야.
정신을 차려보니 잠깐 잠든 사이에 놈에게 당한 건지 저 하늘에서 밑으로 떨어지고 있네?
이야... 신박하게도 끝장을 낸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대화하는 순간이 내 마지막 주마등으로 인한 것일 수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해.
그런데.... 저 아래 저거 뭐야? 설마 도시야? 이야, 이 정신나간 놈 같으니... 사람들 많은 곳에서 날 공개처형하겠다고 하늘에서 떨군거야? 좋아, 마지막이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살려줘! 난 평범하게 누워서 죽고 싶어!! 이렇게 짓이겨진 피자처럼 죽는 건 싫어!!
그냥 넘어지는 듯한 충격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게 뭐야? 왜 내 몸이 멀쩡한거지?
"이건 그냥 넘어진 수준인데?"
이미 죽어서 천국에 온걸까? 이거 신입 대접이 너무 심하잖아! 이런 장난질을 하다니 말이야... 주변을 둘러보면서 일어나니 아무래도 내 눈 앞에 있는 이 도시가 내 의문증을 해소 해줄 것 같아보이네.
'이 곳이 내가 원하던 평온한 삶을 위한 장소일까? 아니면 복수를 위한 반석을 만들 장소일까?'
먼지 묻은 부분을 손으로 털며 한숨을 내쉰 나는 우선 도시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여기도 돈이 필요한가?"
어쩌지? 나 들고 있는 건 전부 크레딧인데... 금이나 보석 같은걸로 좀 바꿔둘걸 그랬네...
테이블을 지붕 삼고 아른아른한 촛불 곁에 나란히 앉아 숨죽여 이야기하는 모습은 우스우면서도 소소한 만흥이 있다. 아른아른한 새벽의 따스한 조명 곁, 세계에 이끌린 두 불멸자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지루함을 싫어하는 알레프와는 달리 그는 주변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재미없는 인물이었지만, 긴 새벽을 함께 지새울 말벗으로는 썩 괜찮은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도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라면 언제나 환영이었다.
조금 전 맞잡혔던 제 손으로 물끄럼 눈길이 향했다. 인사 같은 것이라고. 그러고보면 그동안 만난 다른 사람들과는 이렇게 격식을 갖추어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첫 추락, 첫 대화, 그리고 첫 인사. 그 무엇도 변하지 않는 고립무원의 세상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이토록 모두가 새로워서, 이제는 새삼스러울 웃음만 소리 없이 연신 흘렀다.
[ 알레프 ]
잘 들어두었다는 듯 되받아 쓰고는 그 아래 밑줄까지 쭉 친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리던 그는 무릎을 세우고 제 다리를 받침 삼아 종이를 올렸다. 조금 전 식탁에서 떨어뜨렸던 빈 나무 쟁반을 뒤에 받쳐 가며 글씨를 쓰는데, 앞선 문장들보다도 또박또박 정성스레 쓰는 티가 났을 테다.
[ 나는 永̭̞̙̞̞̣̹͒̊̂̒͗̓̚이라고 해. ]
어김없이 겹치고 나열되며 이지러지는 문자. 종이 위에 쓰인 단 한 토막의 공간과 찰나의 사이, 불측하리만치 무수한 세상들의 관념과 어휘가 스쳐 간다. 알 수 없을 글을 쓴 그라면 이 틈새를 바로 볼 수 있었을까. 신이라면 이 만변의 순간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을까? 그것만은 모르는 일이다.
나처럼 윈터도 추락자를 만났고 그 사람과 동행하기로 했나보다. 알레프의 동행에 대해 별 말 없는 것을 보면 그녀도 암묵적인 동의를 한다는 것일까. 새 옷를 만들어준 미하엘이라는 소녀는 여러번 추락을 겪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언젠가 이 곳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일까.
" 그래도 숙녀의 피부에 흉이 있는건 보기 좋지 않아요. "
장난스런 웃음과 함께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주면서 해준 말이다. 아까와 다르게 내가 치유마법을 쓸 수 있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 같아 나는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능력을 말해주기로 했다.
" 나는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고 따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어요. 이것도 아까 지나가면서 본건데 이런 마법 같은건 곧잘 따라할 수 있답니다. "
물론 그 성능은 열화 되어서 나타나지만요. 적어도 내가 있던 세계에서는 엄청 편리한 기능이었다. 새로운 마법이 개발 되면 그것을 사용하려 노력할 필요 없이 내가 바로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마법의 구동 방식과 전개 과정도 아카이브에 기록 되는 요소 중에 하나이다. 치료를 마치고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윈터의 말이 들려왔다.
" 난 당신과 같이 다니고싶은걸요? 그러니까 절대 당신을 떠나지 않아요. 나는 영생을 사는 주시자, 당신이 설령 눈을 감더라도 끝까지 옆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
그러니까 외투도 여기에 두고 갔잖아요. 떠날 것이었으면 진즉에 외투 챙겨서 떠났을 것이다. 중간중간에 와서 기다릴때도 외투를 챙기지 않은 이유는 혹여 윈터가 오해할까봐 그랬을뿐이다.
" 더워도 하고 있어요. 감기 걸리는 것보단 나으니까. "
여기는 까마득한 타지. 걸어서는 나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감기에 걸려 아프다니 그것보다 서러울 수는 없다. 나도 그녀도 여기서 기다릴 사람이 있는듯하니 나는 아까처럼 내 옆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그만 불빛을 사이에 두고 대화 나누다 보니 낯설었던 이에 대한 경계심도 수그러든다. 비록 한바탕 소동이 있긴 했어도 해프닝에 그쳤을 뿐. 난생 처음 마주한 세계며 존재를 눈 앞에 두고도 편안하다 느낀 적은 처음이다. 누군가와 이리 얼굴 맞대고 얘기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구나. 소녀는 신들의 시대에서도, 인간의 시대에서도 줄곧 혼자였었다.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기를 스스로 거부했었기에. 그러나 억지로 끌어내려진 타향에서 소녀는 비로소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혼자가 아니기에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무수했다. 앞으로도 분명─
제멋대로 상념에 잠긴 소녀를 깨운 건, 종이 부스럭대는 소리였다. 그가, 아마도 스스로의 이름을 적어내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내밀어진 종이. 검은 잉크로 또박또박 쓴 문자가 일그러지고 뭉개져있다. 노이즈나 모자이크를 끼워놓은 것처럼. 그럼에도 소녀는 이를 요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안개 낀 듯 흐리멍텅한 글자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의미가 와닿는다. נֶצַח.
"네차흐."
소녀는 그의 '이름'을 곱씹듯 한 번 입 밖으로 내어본다. 그가 써내렸던 '이름'은 단순 고유명사 따위가 아니었다. 소녀가 엘로힘─신─을 뜻하는 문자 그 자체를 이름으로 삼았듯, 그도 영원이라는 개념을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예쁜 이름이네, 네차흐." 소녀는 빙긋 웃었다. 어린아이처럼 말간 웃음꽃이 만면에 퍼져나간다.
앞으로 자주 볼 텐데 서로 편하면 좋지 않겠느냐? 당연했으나 인지하지 못 했던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그렇구나. 테시어 씨랑 다른 사람들도 여관에 묵는다면 자연스럽게.. 쳐다보던 시선이 다시 발 끝으로 내려온다. 담긴 것은 고민, 아니면 그와 비슷한 색의 갈등. 여전히 초조하게 꿈질거리던 손가락은 테시어의 배려 섞인 말을 듣고 난 뒤에서야 겨우 얌전해졌다. 그제서야 긴장이 좀 풀린 모양이지.
"그럼.. 조, 조금 더 편해지면, 그, 그, 그 때에..."
작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나마 추후에 그리하겠다는 뜻을 전한다. 머쓱한 기분에 두 팔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벽에다 세워 뒀던 밀대걸레만 다시 괜히 손에 들어 본다. 적어도 팔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고민할 필요는 사라져 조금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대로 방 청소를 해 드리는 게 어색함을 떨치기엔 오히려 나을까... 생각하던 중에.
"....와..."
감탄이라기보단 놀라움에 가까운 소리. 저, 정말 많네요... 이 여관에 모이게 된 것만 자신을 포함해 4명이라면, 이 세계엔 얼마나 더 많은 '떨어진 사람들'이 있을지. 열 명? 스무 명? 문득 추락한 첫 날 만났던 소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테시어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각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하다 싶었더니, 그 소년을 보았을 때 들었던 감각이다. 나날이 적응하는 것에 바빠 그만 깜빡 잊고 말았던 모양이지. 아, 그렇다면 걔도... 중얼거리는 혼잣말. 무언가 생각하다가 퍼뜩 이어지는 말에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든다.
"네, 네, 인간......이, 죠............... ... .. ....?"
....그러고 보면, 난... 인간이 맞나?
차분하게 맺으려 했던 말 끝이 삐끗 올라가고 말았다.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진 것 같다. 그야 지금까지는 딱히 눈에 띄는 특징도 없겠다, 너무나도 자연스레 인간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통 펴, 평범한 인간은..... 동물이랑, 말 안 하지...?
........ ... ..
나, 나는.... 인간이 아니었던 걸까......?!
걸레를 들고 선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세계에 떨어지기 전 떠오르는 행적이 전혀 없으니 짐작가는 바가 하나도 없다! 기억을 더듬으려 할 수록 느껴지는 것은 혼란, 혼란, 혼란 뿐! 머릿속에서 최대한 자신이 인간이라는 증거를 찾아내려고 했지만 부옇기만 해서 딱히 떠오르는 것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없다. 어쩌면 기억을 잃기 전에 인간 모습으로 변했다가, 돌아가지 못 하게 된 다른 무언가면.. 어떻게 하지? 퍽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다시 대답한다.
"사, 사실...그것도, 잘 모, 모 모르겠어요.. 어쩌면 다른 조, 종족이었을 수, 도 있고..."
영원, 영, 네차흐. 빛의 분광 만큼이나 각색으로 나뉜 조음들을 다시금 곱씹어 본다. 알레프가 받아들인 이름은 그렇구나. 그리 생각하던 차에 들린 말. ……무엇인지 모를 기분이 들어와, 다문 입을 우물거리며 시선만 연신 종잇장과 알레프를 여러 번 오갔다. 일반적으로는 ‘간질거리는 느낌’ 따위의 형용으로 표현했을 그 감정은 아마 수줍음이었으리라. 이름을 정할 때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이 듣기에 어떨지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않았었는데, 사람들은 영원이란 말을 꽤 좋아하는 듯싶다.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그가 곧바로 말을 더했다.
[ 알레프는 무슨 뜻인데? ]
글을 쓰기 위해 바짝 세워 둔 무릎이 조금 낮아졌다. 펜과 종이를 든 자세도 서서히 풀어져 간다. 알레프의 질문에 몇 남지 않은 무의미한 기억까지 되짚어 가며 심고하기 위함이었다. 이것만큼은 이전부터 종종 취했던 습관이었는지, 펜의 뒤쪽으로 턱을 짚는 모습이 꽤 자연스러웠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마침내 펜을 바로쥐었다.
[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 [ 내가 뭐였는지도 잊어버렸거든. ]
쓰인 내용에 비해 필체는 제법 경쾌했다. 아무리 되짚는단들 낱낱이 부서져버린 잔 부스러기 사이에서 유의미한 파편을 찾는 일은 불가능했다. 지금으로서는. 세월의 흐름을 따라 자연히 잊혔는지, 사망의 부작용으로 소실된 것인지, 혹은 스스로 잊고 싶어 지워버린 것일지, 이제는 가정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졌다. 그래도 지금은 대화를 하는 중이니 제대로 대답해주고 싶은데. 꽤나 골몰하는 모양인지 그는 골치 아픈 신음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했다.
[ 그래도 기억나는 건…… ] [ 언젠가부터, 눈을 뜨니 거기에 있었어. 내가. ]
그때의 기억만은 지금도 선연하게 떠오른다. 붉은 땅. 광활한 대지. 아래에 선 존재를 짓누를 것만 같은 굉대한 하늘과, 메아리조차 죽어 버린 괴괴한 묵음. 그것들이 어디까지고 펼쳐져 있었다.
자신이 어떤 종족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소녀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기억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어떤 종족인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과거를 모조리 잊어버린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추락의 후유증일까 아니면 추락하기 전부터 그랬던 것일까. 만약 전자라면 나도 추락하면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까? 망각의 축복이 나에게도 과연 찾아올 수 있을까?
" 사실 니아씨가 인간이던 인간이 아니던 상관은 없어요. 니아씨는 니아씨니까. "
종족이 그 사람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종족의 대표적인 모습을 갖고서 첫인상을 가져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 개체마다 다른 법이다. 그것을 가지고 완벽하게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니 종족은 사실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대책없는 신뢰, 뒤없는 혐오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힘든 것이기도 하다. 그 자체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 어떤 색안경도 존재해선 안되는 것이니까.
주시자로 있던 시절엔 다양한 종족들이 주시자가 되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선 내가 스테레오 타입처럼 생각하던 종족들도 있었으나 막상 그들을 만났을땐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개체들이었다. 그때부터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 맞아요. 한명은 수인이고, 한명은 신, 이라고 하더군요. "
신이라고 하면 믿으려나. 나도 처음부터 신이라고 했으면 믿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녀가 신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 다만 본인이 그렇게 말하니까 신이라고 얘기해줄뿐이다. 만약 거짓말이라면 나중에 들통이 나거나 본인이 스스로 이실직고하겠지. 일단 내가 봤을때는 아직 좀 미심쩍긴하다. 신으로써 위엄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신. 그러나 이는, 과거 신들의 시대를 살았던 여타 엘로힘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알레프란 제일 처음에 오는 문자를 이르는 말이니 그야말로 최초이자 시작이었으며. 최초의 창조신인 소녀를 칭하기에 알맞은 단어였다. 그와 별개로 묻는 말에 답하는 소녀는, 약간 미심쩍어하는 투로 그의 눈치 보기 바빴다. 혹여나 그도 신에게 적대감 가진 존재는 아닐지 걱정되어서였다. 비단 라클레시아와의 일 때문만은 아니고─추락하기 전에도 느낀 거지만, 인간들은 으레 신을 싫어하곤 했으니까.
"그렇구나."
네차흐의 말에 소녀가 담담히 말 끊어낸다. 스스로가 누군지를 잊는다는 건, 생각해본 적 없지만 분명 복잡한 심정이겠지. 그럼에도 그의 필체는 우울감도 뭣도 없었다. 그러니 동정도, 연민도 하지 않기로 헀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지금은 그저 일행이자 말동무, 라는 의의 하나면 충분했다.
단순히 자신이 인지한 것에서 그치는 것과 그것을 남에게 토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다르더라. 입 밖으로 빠져나간 말이 맴돌아 다시 마음에 쿡 박혀서, 아, 나는 정말로 많은 걸... 잊어버렸구나. 훅 다가오는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의기소침해졌다. 겨우 들었던 시선이 또 다시 바닥을 기었다. 적응하기 바쁘다는 핑계로 제쳐 놓았던 수많은 고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머릿속을 장악한다. 잃어버린 기억은 어떻게 찾나, 원래 세계에는 어떻게 돌아가면 좋나, 얼굴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더는 감출 수 없을 만큼 짙어졌을 때,
"저, 저는 저..."
니아는 니아.
우르르 떠오른 질문 중 어느 것 하나에도 명확한 답이 되리라곤 할 수 없었으나, 기묘하게도 떠들썩했던 마음이 일순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다. 중얼거릴 때마다 점차 기분이 안정되는 것 같아서 나는 나, 나는 나, 주문이라도 외는 것처럼 몇 번을 읊었다. 어디에 있더라도 내가 나로 있으면, ...혹시나 인간이 아니라도, 내가 나로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구나. 드리웠던 그림자도 어느샌가 사라졌다. 그러고 나니 손님을 앞에 두고 혼자 난리를 쳤던 게 뒤늦게 부끄러워 뺨이 홧홧하게 달아오른다. 가, 가, 가감사해요, 테시어 씨, 그래도 냅다 도망치지 않고 감사인사는 해야겠어서.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맞장구를 쳤다.
"수, 수인, 이랑.... ....시, 시시, 신, 이요..?!"
어째 이 세계엔 놀랄 만 한 거리가 끊이질 않는지. 그보다, 신도.. 종족으로 쳐줄 수 있는 걸까? 별 이견 없이 받아들이기엔 아직까지 소녀의 식견은 너무나도 좁다. 하지만 신이라면.. 보통 전지전능한 존재를 떠올리게 되기 마련인데. 그런 존재가 '떨어졌다' 라니? 그보다 이 마을에 직접 '존재한다'..라니?! 머릿속에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어서, 어.... 오.... ...우아. 의미 없는 감탄사만 흘러나오고. 저, 정말 알 수 없는 일 투성, 이네요..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밤에 데려오시는구나. 방 안쪽에 난 창 밖을 슬쩍 바라본다. 뉘엿거리던 해는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얼굴을 감춣 것 같다. 정확히 언제쯤 일행들이 들이닥치게 될 지는 모르겠으나, 끽해야 한두 시간 정도겠지. 그렇다면.... 손에 들었던 밀대걸레를 꽉 고쳐 쥐고.
……그래, 뭐. 종교와 신앙도 사람이 존재해야 성립되는 개념이다. 절대자나 신비에 대한 믿음조차도 그에겐 불필요한 개념이 된 탓에 잊었거나, 혹은 이전의 세계나 그가 별달리 신앙심이 투철하지 않았는지도. 하지만 들어 오는 기분이 묘한 걸 봐서는 이 개념이 아주 기본적인 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알레프의 낌새가 이상해진 상황이 더 신경쓰였다. [ 왜 그래? ] 그렇게 물은 그가 붕대 감긴 손으로 제 턱을 짚었다. 목이 온전했더라면 무의식적으로 흐음, 하는 침음성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스스로 영원하기에 제 이름을 영이라 정했다. 그렇다면 알레프도 비슷하게 이름과 연관 있지 않을까?
[ 너는 신이야? ]
지체 없이 곧장 찔러 버리는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조심성이 없기론 어떤 의미에서는 마찬가지다. 순수하다고 할지,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할지. 그는 저 자신에 관해서는 꽤나 무심한 구석이 있었다. 자신의 일로 인해 상처를 입지 않기에 타인도 그러하리라 여기는 것이다. 짤막하게 되돌아온 반문에 그가 답했다.
>>747 통증이 없는 것과는 별개로 감각은 있어요! 국소 마취를 하고 나면 칼을 대도 아프지는 않지만 거기를 꾹 누른다거나 뭔가 건드린다는 느낌은 나잖아요? 국소 마취 상태에서 둔한 감각+마취 부위 운동 능력 저하라는 부작용만 뺀 상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겠슴다 하지만 간지럼은 안 탈 것 같군여....(재미없음)
음... 그러면 이번에는 윈터주 차례!! 언젠가 윈터라는 캐릭터로 이런 전개만은 특별히 해 보고 싶다!라거나 이런 관계를 만들어 보고 싶다!라는 희망사항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ω •́ )✧
의외의 반응에 말꼬리 흐려진다. 신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는 걸까. 소녀는 신으로 태어났기에, 네차흐의 반응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신 없는 인간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도 신의 뜻만큼은 인지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아니야!"
이내 맑게 웃으며 소녀가 손 내젓는다. 적어도 그에겐 신을 꺼려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으니. "그니까, 신은... 불멸하는 초월자야." 그러더니 짧은 설명 덧붙이는데 간략해도 너무 간략하다. 하지만 인간의 시대에 와서 정립된 신의 종교적 면모라던가, 하는 건 잘 알지도 못했고. 뒤이은 신이냐는 물음엔 짧은 끄덕임으로 대꾸한다.
"예전 세계 말하는 거였구나." "나는, 인간들이 잔뜩 있었던 곳. 거긴 재밌는 것도 많았는데..."
소녀는, 무릎 끌어안은 손을 꼼지락대며 회상에 잠긴다. 여기도 사람이 잔뜩 있긴 하지만 재밌는 거라곤 거의 없었다. 그만큼의 기술력도 없어 보였고. 그렇지만 이렇게 동행, 말동무라도 생긴 게 어딘가.
군데군데가 구멍 투성이기에 무엇이든 불명확하고 확신할 수 없는 것 투성이라지만, 마냥 일관적일 것만 같은 기억의 공백에도 나름대로의 규칙성은 있었다. 한때 알았던 정보나 자주 행하곤 했던 경험이 있는 일에는 기시감과 유사한 감각이 들곤 했다. 정확한 검증을 거친 적은 없어도 그가 대략적으로 느끼기엔 적어도 그랬다.
신은 무엇인가? 천착하자면 지독히도 철학적일 질문에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이런저런 결을 쳐낸 답변은 간단했지만 과연 명료했을지는 모르겠다.
[ 나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 [ 우리 비슷한 점이 많네 ]
혈기 없는 뺨을 대신해 말간 눈 정기 생생히 빛난다. 설풋 지어지는 미소에 일순 갖가지 감정이 스쳤다. 더없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럽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을 앞서는 것은 지극한 기쁨과 환희, 그리고 어쩌면─ 희망이다. 너만은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을 수 있겠구나. 다시금 모두 사라져 홀로 남게 되더라도, 너만큼은. 알레프가 정의한 ‘신’은 그에게는 사람의 분류 중 하나라는 정도로만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자신 역시 불멸하면서도 그 이상의 신통한 재주는 없는 존재이니, 신이라 해서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걸까.
[ 대신에 대가가 있지만. ] [ 그래서 잊어버린 게 많아. ]
그도 알레프를 따라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지루해 했었지. 기억하는 선 안의 모든 생애를 무상한 풍경과 함께해 온 그로서는 알레프의 무료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술이 입에 맞지 않는다면 그걸로 좋았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것 역시 기사도에 반하는 일이었으니. 곧이어 성인이 맞냐는 말에 비밀이라고 들려오자, 깜짝 놀라서는.
"혹시 성인이 아니신겁니까? 이런, 정말로.. 큰 실례를 범해버렸군요. 답례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많이 시장하신 것 같은데, 마음껏 고르시지요."
농담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채로 이야기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달콤한 다과와 잘 어울릴것같은데, 꼭 한번 마셔보고 싶군요."
홍차와 백차와는 또 다른 맛일까.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생각하고는, 곧이어 금방 내어져 온 음식을 받고, 맥주를 천천히 들어 잔을 부딪히려 하며-제대로 닿았을까는 모르겠다만- 건배, 작게 속삭였다. 한 입 마신 맥주에서는 좋은 맛이 배어나왔다. 씁쓸하면서도 기분 좋은 보리의 맛. 청량함. 기분 좋은 탄산의 소리. 아아, 기분 좋구나.
>>799 시체 썩은 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상상만 해도 입맛이 떨어지는 냄새다. 물론 지금 느껴지는 냄새는 맛있는 냄새 뿐이지만. 미하엘은 네 답에 고개를 끄덕인다. 줄을 서야할 것 같긴 했지만, 이쪽 구역의 날씨는 봄 정도로 쾌청했기에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로시테아. 영웅이면 다른 동료들도 있겠네? 어떤 사람들이야?”
영웅이라고 불릴 정도면 성품은 나쁘지 않을 테다.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미하엘은 네 이전 동료들에 관하여 물었다. 딱히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뒤에 “혼자 다닌 건 아니지?”하고 덧붙였다. 흥미로 가득한 눈동자가 빛났던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기억상실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사람의 자아와 성격은 살아가며 겪은 여러 경험과 기억을 통해 고착되곤 하는데, 영의 경우엔 그 데이터가 주기적으로, 불규칙한 범위로 리셋되니 말이죠🤔 실제로도 그동안 성격이 여러 번 바뀌었어요. 지금은 그랬었다는 걸 본인도 기억하지 못하지만요. 여담으로, nnnnn년의 삶 중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이었던 시기도 있었답니다...◠‿◠
168 타인과 싸웠을 때 화해의 방식은? 본인이 사과하지 않을까요? 자기 잘못이 아니더라도 사과는 꼭 할 것 같네요... 이런 일로 자존심 상해 하는 성격도 아니고, 누군가가 조금만 감정이 상하거나 아파 보여도 걱정을 심하게 하는 편이라서 그렇습니다🙄 남들을 지나치게 약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무력적인 의미에서의 약함이 아니라, 언젠가는 스러지고 마는 생명으로서의 약함이라는 측면에서요.
264 활동량은 많은 편인가요? 아주 많아요! 전에 풀었던 것처럼 기본 체력이 좋아서 말 그대로 '며칠동안' 내내 쉬지 않고 걸을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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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게 드리는 오늘의 캐해질문!
1. 「싸움판이 벌어졌다! 구경하는 쪽? 아니면 싸우는 쪽?」 어... 둘 중에서 골라야 한다면 가만히 구경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차라리 싸우는 쪽이 더 어울리겠네요. 물론 싸우는 쪽이라고 해도 본인이 적극적으로 공격할 리는 절대 없고 맞기만 하는 쪽일걸요... 16대 1에서 1을 담당하는 편(윈터랑 했던 일상 봄)
2. 「길을 걷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볼썽사납게 넘어진다면?」 몸의 손상 정도를 잠시 확인한 뒤에 갈길 마저 가요. 딱히 부끄럽다는 생각은 없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넘어지는 게 부끄러운 건지도 잘 모름!
3. 「자신의 노력이 아무런 평가도 받지 못했을 때의 반응은?」 다른 사람에게 평가를 받지 못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이라서... 아무 생각 없을 것 같슴다
나는 지금 눈앞에 있는 소녀의 감정을 모른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말아 어느날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하지만 그것만 생각하면 어째서인지 묘한 쾌감이 몰려온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백지 상태는 정말로 기분 좋을 것 같으니까. 어쩌면 나는 지금 니아라는 이름의 소녀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
아무래도 내 말이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어두워지던 표정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는걸 보고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니아만큼은 딱 겉으로 보이는만큼의 소녀 같았다.
" 물론 자기가 직접 신이라고 얘기하는거고 니아가 생각하는 그런 신은 아닐꺼에요. "
좀 더 작고 귀엽고 아이 같은 이미지다. 흔히 신하면 생각하는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그런 이미지는 절대 아니니까. 그렇다고 수많은 거짓말 중에 굳이 신을 고를 이유도 없고 거짓말하는 기색도 없었으니 아마도 알레프가 주장하는게 맞지 않을까?
" 우리가 머물 방이니까 우리가 직접 해야하는게 맞는건데 ... 도와주신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 "
안그래도 창고로 쓰던 방이라고 해서 청소를 한번 싹 할 예정이었는데 도와준다니 나로썬 반가운 일이다. 그래도 아예 일임하면 좀 미안하니까 나도 같이 도와주겠다 말하며 팔을 걷어붙였다.
" 니아는 언제쯤 떨어졌나요? 여기서 일하고 있을 정도면 나보단 먼저 떨어진 것 같은데. "
그래도 오래되진 않아보이는데 이렇게 엄연히 일자리를 구한 모습을 보면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미력함을 잘 알고 있었다. 무너진 것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도 죽어나간 목숨들을 다시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그저 사라지지만 않을 뿐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던 신세, 살아감에 목적을 가지는 것조차 할 수 없어 그저 끝없이 표류하던 삶. 괴로운 심뇌의 끝은 언제나 도망으로 귀결되곤 했다. 망각은 종종 도피의 수단이 되기도 하므로. 그는 문득 그 사실이 우스워졌다. 늘 더는 디딜 곳 없는 벼랑까지 내쫓겨 달아난 끝에─ 기어이 그 세계로부터 도망친 셈이라.
[ 그래서 만약에, 언젠가 널 잊어버리게 된다면 ]
이 지점에서 잠시 손놀림이 멎었다. 그 뒤로 쓸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리는 시간이 다소 길었다. 자신에게는 지극히 당연했던 현상이 다른 이에겐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었다.
[ 너무 놀라지는 말아줘. ]
그리 마치는 그의 기색도 그리 침중하지는 않았을 테다. 알레프의 늘어진 어깨 만큼이나 그의 표정도 안타까운 빛으로 조금쯤 시들어갔다.
[ 그걸 여기에 가져올 수는 없어? ] [ 아까 물건이 나타났던 것처럼 말이야. ]
그가 이곳에 떨어진 지는 아직 오래지 않았지만, 적어도 알레프가 보여주었던 수준의 라이터가 있을 만한 세상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게임도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알레프의 힘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물론 적절한 망각이 도움될 때도 있으니 그의 말을 아주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마저 잊어버리는 건, 무척이나 괴로울 것 같다고. 소녀는 지레짐작한다.
"으응."
소녀의 목소리가 일순 내려앉는다. 내보여진 문장은 썩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소녀가 상상하던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러나 정작 글 쓴 당사자는 그리 무겁거나 어두운 기색도 아니었으니, "네차흐가 전부 잊어버려도 내가 알려줄게!" 소녀도 침울해하긴 커녕 되레 힘차게 단언한다.
"...아?" 뒤이은 필담에 문득 소녀가 탄식 내뱉는다. "그러네!" 하기야 그렇다, 방금 전 라이터도 만들어냈으니. 소녀는 앉은 자세를 퍼뜩 바로하곤 확인 차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주머니에 고이 넣어뒀던 라이터는... 온데간데 없었다!
"앗... 없어졌네, 라이터."
제한 시간이 있는 건지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사라진 건지. 소녀가 담담히 사실을 고한다. 그런데 알아서 사라진다고 해도, 그런 (이 세계 기준) 오버 테크놀로지같은 물건을 만들어도 되는 걸까? "음......" 고민하는 침음이 길다. 그치만 게임이라도 안 하면 정말 지루해서 쓰러질지도 몰라.
>>815 "동료는 당연히 있었지. 그것도 매우 뛰어난 녀석들로, 약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어."
이제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말이야.
"전통...비스무리 한 거 때문에 이름은 말 못하지만. 언제나 전위에서 우리를 지켜주던 드워프, 장난기가 꼬마 정령에 버금가지만 사격 실력은 뛰어난 엘프 왕녀랑, 콧대 높지만 머리 하나는 좋던 마탑의 마녀, 드래곤 대ㅁ...가 아니라 여신에게 선택 받은 성녀랑 용사까지. 전부 나보다는 뛰어난 녀석들이지."
윈터의 능력은 아무래도 신체 강화 능력인것 같았다. 그렇게 단단해보이던 족쇄를 손으로 풀려고 시도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힘을 쓰려고 했을때 피가 났다고 했다. 예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것처럼 얘기하는걸 보면 여기에 와서 생긴 일종의 패널티 같다. 아직 한명의 이야기만 들어서 확신하기는 힘들지만.
" 함부로 하는 얘기 아니라구요? "
슬쩍 웃어보인 나는 이젠 석양이 몰려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떨어진 곳, 그녀가 떨어진 곳, 모두가 떨어진 그곳. 무언가 얘기를 하려고 입을 열려고 했을때 나는 그녀에게 손목을 잡혔다. 상점가로 가자는 말과 함께 이끌려간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기다리는 알레프나, 윈터가 기다리는 그 사람이나 아직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잠깐 놀다 오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상점가로 향하면서 나는 윈터에게 말했다.
" 나는 몇천년의 세계를 몇십번은 지켜봤어요. 수없이 멸망하는 세계를 지켜보는건 ... 너무 힘든 일이에요. 심지어 내가 본 모든 것들을 절대 잊을 수 없어요. "
지금도 눈을 감으면 다양한 상황이 생생하게 스쳐지나간다. 일부러 무시하지 않으면 더 자세한 내용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날 괴롭힌다. 역사에 남는 굵직한 사건들은 결국 많은 이들에게 비극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 고통이 나를 잠식해가는 느낌은 더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
" 그래도 여기 와서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당신의 눈은 내가 절대 잊을 수 없으니까요. 난 이런 기억들을 좋아해요.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 그런 기억들을 차곡차곡 넣다보면 언젠가 안좋은 기억들보다 더 많이 떠올릴 수 있을테니까. "
하지만 이건 강요는 아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 물론 윈터가 싫다면 그걸로 괜찮아요. 이 잠깐의 순간도 나에겐 가치가 크니까요. "
지금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만큼 아름답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그렇게 윈터의 손을 잡은채 상점가로 들어갔다. 미하엘, 윈터에게 옷을 선물해준 사람이라는 것 같다. 윈터와 비슷하게 수인인데 윈터가 말쪽에 가깝다면 미하엘이란 소녀는 영락없는 고양잇과의 수인이었다. 거기에 마법소녀라는 것 같은데, 복장은 딱히 그렇게 화려하진 않은 느낌인데. 모자라 보인다는 말에 흠칫하여 미하엘 쪽을 눈치를 보았지만 딱히 기분 나빠하진 않는 것 같아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 상자가 ... 큰데? "
이건 혼자서 들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거기에 윈터가 드는 것을 보면 무게도 꽤 나가는 것 같고. 이렇게 무거운데 크기까지 크면 자세가 나오질 않아서 드는 것부터 힘들다. 근데 윈터의 윙크가 나에게 보인다. 아, 도와달라는거구나. 말없이 다가가 반대쪽을 들어올렸다. 들자마자 헉, 하고 소리가 나온건 착각이다. 약도를 받았으니 길을 잘못 가진 않겠지만 뭔가 이상한 곳으로 가는 느낌이라 일단 쉬어가기로 했다. 무거워서 슬슬 팔에 힘이 없어질때도 되었고. 석양도 이젠 다 사라지고 밤하늘이 점점 몰려오는 그런 시간이다. 얼른 배달하고 돌아가야하는데 ... 그러던중 윈터가 상자를 열어보려고 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럼 안된다고 말하려는 순간 상자의 문이 열리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근데 이 흩어지는 범위라는게 상자 근처가 아니라 그냥 하늘로 뻗어서 날아간 것들도 존재했다.
" ... 윈터 옆에 그거 뭐에요? "
그리고 어느새 날아온 분홍색의 불꽃이 빠직하는 마크를 띄운채 윈터의 옆에 떠있었다. 아무래도 상자를 열어서 화가 났다는 것 같은데, 분홍색인것을 보면 아까 그 미하엘이라는 소녀가 보낸건가 싶었다.
모든 것이 유실되어 버릴지라도 다시 쌓아올릴 수 있다는 말은 어찌나 멋진지. 그 모습 하염없이 지켜볼 할 사람의 마음은 그저 모르는 채로, 씩씩하게 외치는 말에 싱긋 입매가 오른다. ……참, 놀라지 말라 하니 알려 두어야 할 게 생각났다. 알레프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에게도. 다 쓴 종이를 한 장 넘기고는 잠시 뜸을 들인다. 조금 전의 소동 중 잠시 드러냈던 목 언저리는 다시 옷자락을 끌어올려 가린 채였다. 그 위로 손이 향했다.
[ 나중에 놀랄 수도 있으니까 이것도 미리 말할게 ] [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목소리가 나올지도 몰라. ] [ 그냥── 목을 너무 안 써서 이렇게 된 것 같거든 ]
글을 쓰면서도 한 손으로는 피부를 덮은 천 위로 제 목을 연신 매만진다. 미하엘의 앞에서 사람 같지 않은 쇳소리를 낸 것이 발성의 마지막이긴 했지만, 특별히 망가지거나 상한 곳이 생기진 않은 듯싶다. 꾸준히 쓰다 보면 괜찮아지리란 직감이 막연하게 들었다. 언제 연습을 해야 할지가 문제이긴 하지만……. 지금은 제 발성보다도 중요한 일이 따로 있었다.
어쩌면 라이터가 사라진 것도 이곳에 맞지 않는 기술력 때문이었을까? 그도 진지한 기색으로 함께 고민을 해 보았으나, 그저 생각만 한다 해서 알아낼 수도 없는 종류의 상황이었다. 이럴 때는 몸으로 부딪쳐가며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기억하는 온 평생 모르는 것이 있다면 육신을 소모하고 부숴가며 알아내는 방법만 고수해 온 그다. 그는 당연하게도 정공법을 주장했다.
[ 일단은 다른 물건들부터 만들어 보는 거 어때? ] [ 그걸로 먼저 시험하면서 알아 보자 ]
로시 살던 세계에는 마경이라는 마물이랑 마족 사는 독립된 세계? 같은게 있어요 로시는 거기랑 로시 세계 바로 사이 땅 다스리는 변경백이었고 마경에서 사람들 죽일라고 쳐들어오는 마물이랑 마족 죽이는게 일이었는데 어느 날 여신에게 선택 받고 세계를 모험하는 용사랑 성녀가 찾아와서 "너 내 동료가 되어라"를 시전합니다. 여신의 뜻이라는데 그냥 까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나쁜 일 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계속 세계를 여행하고 동료도 늘어나고 사람도 구하다가 용사가 문득 이런 말을 합니다
용사:우리 이제 엄청 강한데 마경 가서 마왕들 죽이고 와도 될듯? 성녀:그 또한 여신님이 인도하시는 고난이겠죠 마녀:...님들 미침? 하지만 마경에는 나도 흥미가 있지 드워프:크하하 좋구만 좋아 엘프:재밌겠는데? 로시:당장 가자
이러고 진짜로 마경의 마왕들 대부분 죽이거나 봉인시키고 옵니다 제국이 힘써도 마경 넒어지는거 막는게 고작이었는데 6명이서 마왕들 대부분을 잡아 족쳤으니 당연히 영웅 대접 해줘야죠 제/국 되기 싫으면
메구무와 아이리가 이 도시에 온지도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처음엔 안 팔리던 약도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고, 심부름의 대가로 받은 물건들도 돈과 바꾸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여관방을 잡을만큼 돈이 모였다. 며칠 정도 묵을 돈이지만 이거라도 어디랴. 메구무와 아이리는 일단 방을 잡은 뒤 밖으로 나가 돈벌이를 하면서 방세를 충당하기로 결정했다.
"근데 이상하지 않나? 이렇게 큰 도시에, 여관은 딸랑 1개라는게. 싸구려 여관방이라도 몇 개는 더 있어야하지 않나?" 「글킨 하다. 다들 집이 있어가 여관은 필요없는거 아이가?」 "그래도 쫌 요상~하다. 여행객이 없는 것도 아인데. 여관 주인이 무서버가 딴 집이 여관을 못 하는 거 아이가?" 「맞나.」
그렇게 그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이 거의 코 앞으로 가까워질때, 아이리가 농담 삼아 한 마디 던졌다.
「여기 손님들 다 우리처럼 추락자면 쫌 웃기겠디.」 "근데 니 말이 틀린 말은 아닐기다. 죄다 돈 좀 있으믄 여기로 모였겠지." 「근가... 근데 그간 만난 추락자들, 하나같이 희한한 사람들 밖에 없어가 니 괘안겠나?」 "...? 와 내를 걱정하는데? 니나 잘 해라."
자신의 사회성과 친화력을 걱정받자 눈이 휘둥그레 해지더니 아이리를 바라보며 퉁명스레 말하는 메구무였다. 그런데 그때, 퉁—. 메구무는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더. 정신이 팔리가..."
그 순간 메구무는 자신이 시야가 상대방의 눈이나 정수리가 아닌 더 높은 곳에 있음을 깨닫고 심상찮음을 느꼈다. 메구무도 키와 체격이 꽤 되는 편이기에 누굴 올려다보는 삶은 익숙치 않았다. 그렇게 자신과 부딪힌 사람의 얼굴을 본 메구무는
여자는 입으로 웃으면서 (어차피 그는 보지 못하겠지만) 농담임을 밝히는 대신 사내의 결례를 사해주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마치 넉살 좋은 척이라도 하는 양
"우하아- 조타아-"
물을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목이 풀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잔에서 입을 땐다 술을 마신 건 아델인데 정작 요란을 떠는 건 여자였다 그런 여자는 이어서 샌드위치를 양손에 들고 입 안에 와구와구 잔뜩 베어물었다
"궁금한 거? 으음."
그렇게 문득, 허우대 곧은 사내에게 물음이 건네어져 오자 코우는 붉다란 눈을 깜빡이며 허공을 응시했다 허공에는 아직 파란 하늘, 그리고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이 산재하고 있었다 떨어져 내린 세계에서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할까 그러나 여자의 눈은 그 무엇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는 생각난 듯이 눈알을 도륵 굴려서, 아델을 쳐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벌써 이 세계에 떨어진지 며칠이 흘렀을까. 사내는 방랑하고 싶었다. 어째서 이 세계에 떨어진 것일까? 알 수 없다. 떨어지는 조건은? 알 수 없다. 다음 세계로 떨어지는 때는?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자리잡는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이상 관련되고 싶지 않았다. 여유로운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흘러가는 구름이 비를 머금듯한, 사내의 성격 때문이리라. 사내는 두려웠다. 또 다시 무엇인가에 관련된다는게. 자신에게 머물 곳이 허락된다는것이. 그렇기에 술 한잔 기울이며 노래하고 싶었다.
그렇게 사내는 방랑했다. 거리를 떠돌며 마음이 내키는대로, 발걸음 닫는 대로 지팡이를 짚으며 걷다가, 어이쿠. 이번에도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사내는 이런 우연한 만남, 해후는 싫어하지 않았다. 천성적으로 유약한것이 아니었기에, 사람과의 만남은 제법 즐기는 편이었으니. 사내는 오른손을 가슴께에 대고서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저야 말로 눈이 안보이는 탓에, 실례하고 말았군요."
그리고는 이어지는 말에 살풋 미소지었다.
"그렇습니까? 키가 큰 지는 잘 모르겠군요... 헌데, 이것 역시 우연이군요. 아델라이데라고 합니다. 추락자, 십니까?"
또 다시 느껴지는 기운. 이 무슨 우연이란 말인가. 거리를 방랑하고 있으면 꼭 추락자와 마주하고는 한다. 이거, 미하엘 양의 말 보다 제법 추락자가 많을지도 모르겠어.
괜찮다는 말에 살풋 웃었고, 잠시 여유로운 한때를 음미했다. 샌드위치의 바삭거리는 식감. 안에 들어있는 야채가 기분 좋게, 싱그럽게 입에서 터지고, 고기의 쥬시한 육즙이 흘러내린다. 입 안을 꽉 채워 먹는것은 경박하지만, 한입 크게 베어물고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길게 숨을 뱉었다.
"하하, 이 한잔이.. 또 여행의 묘미죠. 맛있는 것을 먹고,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때로 노래를 부르고 하면, 근심 걱정같은것은 없어지곤 한답니다."
그리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곧이어 베어도 되는 사람? 이라는 물음에, 시선을 그녀 쪽으로 돌린다. 자신을 쳐다보는게 명백한 시선.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면서.
"코우 양, 세상에... 베어도 되는 사람이란 것은, 없답니다."
근면성실한 대답, 그 자체였다. 그러면, 어떻게 나올까, 그녀는. 잠시 그녀의 반응을 살피기라도 하듯, 보이지 않는 탁한 눈으로 그녀 쪽을 응시한다.
멋쩍은 얼굴로 어색한 미소를 짓던 메구무는 눈 앞의 남성이 말한 '추락자'라는 말에 다시 표정을 굳히고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역시나.' 이 도시에 와서 마주치는 인간들은 다 나와 같은 추락자구만. 그의 외모에서 느껴졌던, 이 도시와의 위화감이 드디어 해소된 것만 같았다.
"예. 추락자 맞심더. 며칠 됐지예. 돈 좀 벌어가 여관방이라도 잡으러 여기 왔십니더."
돈이 든 주머니를 손에 쥐고는 말하는 모습이 꽤나 의기양양하다. 뭐, 그럴만도 했다. 이제 며칠간 노숙은 하지 않아도 됐으니깐. 메구무는 눈 앞의 남성에게 말했다.
"아델라이데... 지는 후지마 메구무. 약사입니다. 약도 팔지예. 뭐라고 부르면 되겠심꺼? 지 이름은 맘 가는데로 부르이소."
아델 TMI.. 뭐가 있을까.... 🤔 비 오는 날에는 비 맞는걸 즐길 정도로 운치있는걸 선호하지만, 눈은 사실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거? 펑펑 폭설이 쏟아지는 날에 왕도가 멸망했으니까... 그리고 다들 아마 알겠지만~ 관계 맺는걸 좀 어려워 한달까. 그때 배신당한것 때문에 윈터랑도 처음에 '구해지는 방식' 으로 연을 맺는것도 굉장히 좀 꺼려하지 싶었구! 그 외에는 질문을 받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신은 아닐 거라고? 이야기를 들어도 여전히 긴가민가한 얼굴이다. 신이란 존재는 애초에 어떻게 생겼을지조차 깊이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뭔가.. 근엄하고, 자애롭고, 엄청난 분위기일 것 같고, 그렇다면...? 머릿 속에 수염 달린 인자한 할아버지같은 인상이 잠깐 뭉게뭉게 피어올랐으나ㅡ 잠깐, 그런데..... 남자인 건 맞나?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느낌의 신이 아니'라면, .....이거랑 반대로? 방을 안내하긴 했으나, 묵게 될 일행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들은 바 없어 아리송할 뿐이다. 그 때부턴 덜컥, 상상력에도 제동이 걸리고 말아서 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포기해야만 했다.
"그, 그래도 신이라니, 어, 어어엄청난 손님을 바,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서..."
여, ..역시 청소를 열심히, 해야겠어요. 걸레를 고쳐잡으며 결의(?)를 다졌다. 혹여나 잘못 청소했다가 신께 무례하다면서 벌이라도 받으면 어떻게 해. 빗자루질을 먼저 해야 할지, 벽면을 채운 짚단이며 상자 따위를 먼저 치워놓는 게 좋을지 고민하며 방 안을 두리번거리고.
"저, 저도 오래 되진, 아, 아 않았어요... 아직, 어..."
헷갈리는지 잠시 손가락으로 셈을 하더니,
"한 달도, 아, 안 되었을 걸요."
테시어 씬.. 떨어진 지, 얼마나... 되, 되신 건가요? 그래도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는지, 처음과 비교하면 당신에게 다시 질문을 건네는 데에 제법 망설임이 없다. 당신이 질문에 대답을 내어 준다면 그, 그렇군요... 하, 한날 한 시에 가, 같이 떨어진 건... 아, 아아 아닌가 봐요, 따위의 시답잖은 말을 해 대고는 빗자루를 가지고 오겠다며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할 테다.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돌아와선 문 틈새로 고개만 쏙 빼고,
"그런 약이 있으면 을매나 좋겠심꺼? 그런데 지는 말입니더. 진짜배기 약사라서 그런 사기꾼이 만들 법한 약은 안 만듭니더. 만든다고 해도 쉬운 일도 아니고예."
꽤 진지하게 이야기했지만, 곧이어 농담이란 말이 들리자 괜시리 창피해지는 메구무였다. 아이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메구무, 니는 너무 진지한게 탈이다. 그저 아델이라고 부르면 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는, 아델이 자신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 하자 처음엔 영문을 몰라 눈을 치켜뜨곤 되물었다.
"누군가? 귀신이예? 세상에 그런게 어딨습니꺼?"
아이리는 또 속으로 생각했다. 메구무, 니는 너무 진지한게... 하... 됐다. 주변을 살피던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아이리 쪽을 보고는 아델이 말한 것이 혹시 아이리인가 싶어 놀라움과 경계심, 의문이 찬 눈을 하고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말했다.
595 꾸중_들은_어린_자캐의_반응 > 일단 뿌앵 울고, 잘못했습니다 박고, 착한 아이가 됩니다....(??) 간혹 고집부리던 때도 있긴 했습니다만 대부분 자기만 큰 코 다치고 끝났던 일이 대부분이라,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빠르게 수긍하고 어른들 말처럼 얌전히 구는 게 제일 덜 위험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13 자캐가_자주_꾸는_꿈 > 최근에는 어두운 밤에 숲을 헤매는 꿈을 자주 꾼다네요.
446 자캐는_수영을_할_줄_아는가 > 애초에 깊은 물에 들어가 본 적이.. 딱히 없을 것 같긴 한데.... 막상 배우게 되거나 해야만 하는 때가 오면 몇 번 꼬르륵 꺄아악 꼬르륵 우아악 하다가 생?존하기 위해서 딱 물에 빠져 죽지만 않을 정도로() 하게 될 것 같단 이미지는... 있네요.. ◔̯◔ 개헤엄 비스무리한 야매수영일 뿐이고 정석적인 느낌은 아니겠지요.
1.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의 이름을 말하라고 하면?」 > 달리아. 라클레시아 다음으로 들어온 주시자이자 사실상 그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친구. 그의 이해자에 가장 근접한게 달리아가 아니었을까?
2.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결국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 라클레시아는 자신이 두려워하던 일이 몇번이고 이루어졌고 염려하던 일은 이루어지기 직전까지 갔었어. 그래서 낙관적인 생각은 잘 하지 않는 편이야. 항상 Plan B 가 있고.
3.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라클레시아는 그의 세계에서 신에 가장 근접하게 있던 존재야. 그리고 당장 옆에도 주홍빛 머리의 히키코모리 신님이 같이 있잖아? (웃음) #당캐질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1079210
>>952 라클레시아가 자존감 올려주기 잘해 앞으로 아침마다 찾아와서 자존감 올려주는 문장 100선 해달라고 하면 하루에 한문장씩 해줄것! ㅋㅋㅋ 고집부리는 니아도 왠지 귀여울 것 같고 ... 수영은 빠졌을때 물고기 같은 애들한테 살려달라고하면 수영 못해도 알아서 물 위로 둥둥 뜨게 해줄 것 같은데 :3
>>953 (그 때... 저 멀리.. 음흉하게 웃으며 망태를 쥐고 아델주와 아델을 지켜보는 자가 잇엇으니...)
>>95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일상 하면서도 엄청 느껴지거든요 안그래두,,, 지금 니아 자존감 20%정돈 올랏습니다,, 라크 완전 최고의 카운셀러... 최고의 자존감지키미.... ....!!!! !!! 그 생각은 1도 못했는데요.... 그치만 갑자기 물에 풍덩촤악해서 정신 없어지면 말 걸 생각도 못할 것 같으니까... 수영.. 배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죠 ദി ᷇ᵕ ᷆ )
>>961 고된 현대인의 하루하루를 자존감 높여주는 영상 < 이거랑 위로해주는 플레이리스트 < 이런 걸로 어찌어찌 붙들면서 살 것 같은 느낌.... 그래.. 난.. 소중한 사람..!! 내일도 힘내자.,...! 하고 다음날 나갔다가 으.. 으으. 으 난 쓰레기.. 난.난 구제불능. 하면서 귀가하고.... 무한반복의 굴레 밟을 것 같죠.... 알레프는 유튜브를 본다면 어떤 영상을 주로 보나요? 역시 게임방송 쪽이려나... ◔̯◔
멋쩍어하는 알레프를 따라 그도 비슷한 느낌으로 웃음을 흐렸다. 너무 말을 안 하는 바람에 목이 심하게 잠겨 버렸다는 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꽤나 황당해서……. 여하간, 자신만만한 선언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소리를 되찾아야겠다 생각했다.
무얼 만드냐라. 그러게. 제안한 것은 그였지만 그라고 해서 뚜렷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다. 잠깐 고민하는 사이 알레프는 스스로 물건을 떠올린 듯했고.
[ 피자가 뭐야? ]
……몇 초를 더 기다려봤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라이터를 만들어낸 것과는 딴판으로 말이다. 나타나게 할 수 있는 물건에는 제약이 있는 걸까? 기준은 뭐지? 우선은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의 종류부터 파악하면 될 듯했다. 탐구의 맥을 잡았으니 곧장 제안해 보았다.
[ 혹시 이건 만들 수 있어? ]
글로 쓴 내용을 보여준 뒤, 그는 종이 뒤에 받쳤던 나무 쟁반만 따로 들어 알레프에게 보여주었다.
>>976-977 그러게~ 아마 엄청엄청 경계할것같아. 움직이는 사자 = 마족 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짜고짜 검을 몇번 휘두를지도 모르겠네. 아마 엄청 경계할것같아~ 심음으로 사람을 파악하기도 하고, 기척도 잘 안느껴지고 할테니까 되게... 되게 당황해한다던지, 화가 잔뜩 난 야생 고양이같은 반응이려나~
사내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한걸음씩, 한걸음씩 더 그에게 다가간다. 심음이 울린다. 사내가 칼자루에 손을 뻗는 소리까지 생생히 귀에 담긴다. 주변 행인들의 발걸음 소리, 구름 흘러가듯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러고보니 코우 양이 내게 말했던가. '보이지 않는 것은 불편할 것 같아.' 어쩌면 당신의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면 요리 간판도 볼 수 없으니 찾을 수 없고, 숙녀분을 쉽게 에스코트 할 수도 없죠. 악수하고자 손을 뻗으면 다른 곳으로 손이 향하는 일도 부지기수. 허나, 저는 이런 방면에서는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보이는것 보다 더 잘 보인다고,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내는 다시 한걸음씩 더, 심음을 향해 다가간다. 숨 쉬는 소리까지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부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마십시오, 경."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르다고 생각했죠. 다른 마족과 다르다고... 아직 어린 아이일 뿐이라고. 우리와 같이 지내면, 인간답게 살 수 있으리라고. 인간과 마족, 무엇이 그리 다르겠느냐고. 사람 사는거 전부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사내의 입가에서는 한기라도 피어오를듯, 날 서린 말들이 뱉어진다. 지난날의 후회로 점철된 말들이 얼음처럼 맺혀 뚝, 뚝 떨어진다.
"살인자의 아들도 그리 말하겠지요. 가족이라고... 경, 부디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저주를 받은 이의 말로를, 말입니다."
어느덧 더욱 가까워져, 발 끝이 닿을법한 거리에서 그는 멈춰섰다. 그리고는 엄숙하게 이야기했다.
"저는 신도 부처도 아닙니다.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경의 앞을 막아서지요. 신이나 부처라면, 그저 지나갔을 겁니다..."
>>987 >>진짠데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오늘중 가장 크게 웃었다 아 ㅋㅋㅋㅋㅋㅋㅋ 메구무주... 내가미안해.... 그치만.. 혐관 맛있지...? ; ;)
>>989 헉 대흥분모먼트라니 나도 두근두근해지는걸~!!!! 우리 순진한 영이는 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서 나도 대흥분모먼트..... 헉 근데 근데 있잖아 아직 영이가 말 못한다고 그러지 않았나, 저번에? 그러면 한쪽은 눈이 안보이고 한쪽은 말을 못하니까 대화 성립이 안되는거 아 냐....??? 나 이거 반드시 보고싶어졌어 (버킷리스트에 작성함)
진짜 어쩌라고... 이쯤되면 메구무는 답답해졌다. 어떻게 하면 이 미친놈에게 아이리의 무고함을 전할 수 있을까. 아이리도 손에 피를 묻혀보진 않은 건 아니다. 나와 같은 요괴퇴치사였으니까. 그러나 맹세코, 아이리는 검이 된 이후 몸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리가 자신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나는, 나는...
"아이리도 내랑 같이 요괴를 퇴치했다. 아이리는 니가 말한 마경에 물들지 않고 요괴한테서 사람들을 지켜냈다. 손에 피를 좀 묻히긴 했지. 디지믄 우리 둘 다 나락에 갈기다. 하지만, 아이리는 피에 굶주린 그런 미친놈은 아이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다시 한 번 경고하듯,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 경고라는 듯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꺼지라켔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짐을 느꼈다. 그러나 분노한 메구무에겐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까 니가 말했제?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그럼 니네 동네 저주랑 우리 동네 저주도 좀 다르지 않겠나? 그래, 저주만 풀면! 아이리는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 저주만 풀면! 그 간단한 걸 못 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