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부산스럽게 주머니를 뒤적이던 그녀는 반창고를 하나 내밀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그녀의 입에서 생소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추락자. 이어서 그녀는 발목의 족쇄를 손끝으로 가리키며 풀어주겠다고 했다. 윈터는 왼발을 살짝 들었다 내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거? 이건 내가 알아서 할게."
처음에는 구속복의 속박을 풀었고, 다음에는 족쇄의 쇠공을 떼어냈다. 족쇄를 풀어내는 것은 어쩐지 자신만의 숙제로 느껴졌기에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대신, 건네받은 반창고를 다시 내밀어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손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고. 미안하면 붙여주던가."
무릎을 살짝 굽혀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고, 오른손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겨 생채기 난 이마를 드러낸 채 그녀의 놀 빛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추락자라니. 하늘에서 떨어진 걸 말하는 거야? 너는 이곳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거지?"
손을 들어 귓가를 덮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새의 소음,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울어 대는 짐승들의 울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요할지언정 더없이 생생하게 피력되는 이 모든 것들의 생동과 존재감이 버겁다. 그 오랜 고요를 버틸 수 없었던 주제에 이제 와서는 벅차다니. 앞뒤가 다른 꼴 같잖지만 자조를 할 정신도 없었다. 떨어지고 난 뒤에도 시간은 한참이나 흘렀겠지만 줄곧 혼란스러워하기만 했으니 위치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귀를 찌르는 생소한 소음에 그가 조금이나마 적응했을 무렵, 그제야 주변의 경관이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 울창한 숲 너머에는 탁 트인 드넓은 땅 하나가 보였다. ……아마도 도시일 터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상황에 관해 어떤 실마리라도 얻으려면, 그것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저곳으로 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애꿎게 눈길만 딴 데로 돌리던 순간.
사람 하나를 보았다.
눈에 보인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나서 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낯선 인물의 앞에 서 있는 상황. 무슨 말이라도 할 것처럼 다가갔던 그는 당혹이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으로 제 입을 틀어막기만 할 뿐이다. 이럴 거라면 할말이라도 생각한 뒤에 행동하는 편이 나았겠다. ……사실 그는 무엇이라도 말하려던 참이긴 했는데, 그러나 그가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마지막으로 성대를 써 본 것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지나치게 오랜 시간 침묵해 온 탓에 목이 잠시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
그리하여, 마법소녀의 눈앞에는 시커먼 옷 입은 모르는 사람 하나가 성큼성큼 다급히 걸어와서는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서 있는 상황. 입가의 손을 뗀 뒤로도 미미한 들숨과 함께 입만 작게 달싹이다 다물렸다. 사람이 당황하면 눈부터 저절로 흔들리는 것은 아마 세계 공통인 모양이다. 새까만 눈동자 곁으로 슬쩍 구르며 어색한 침묵만 길어졌다.
미하엘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은 그냥, 혹시나 다윈이 저보다 늦게 추락해 숲에 있지는 않을까 싶어 나온 것뿐이었는데.
웬 어두컴컴한 사람(사실 이런 생각은 실례지만)이 제 앞을 떡하니 막아서지 않는가. 덕택에 도시에서 얻은 과일을 베어 물던 미하엘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아, 이거. 사과처럼 생겨 놓고 맛은 복숭아네. 그런 짧은 생각과 함께.
춘추 특유의 기분 좋은 날씨가 뺨을 훑고 지나간다. 하지만 미하엘과 이름 모를 사람의 사이엔 대화가 흐르지 않았다. 미하엘은 멀뚱멀뚱 상대를 쳐다볼 뿐이었고, 상대는 무언가 말할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다 다물 뿐이었다.
“흐음······.”
미하엘의 눈이 너를 가볍게 훑는다. 생긴 것은 저와 비슷해 보이는데, 워낙 추락자들이 갖은 세계에서 오는지라. 미하엘은 제 손에 묻은 과즙을 툭툭 털어냈다. 그러고도 남은 건 대충 혀로 훑었다. 그러다 네 흔들리는 눈과 마주칠 때면, 미하엘은 무언가 깨달은 듯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혹시 말이 안 통할까 싶어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걱정마, 지금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 언어만큼은 모두 통하거든?”
추락자 특권이라구, 하고 덧붙이는 모양새가 퍽 낙천적이다. 미하엘은 이 능력만 있으면 외국에 나가도 문제 없을 텐데, 같은 말을 재잘거리다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그러니 이제 말해도 된다는 것처럼.
뭐, 미하엘이 알았겠는가. 네가 저와 말이 통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침묵으로 소리 내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창 현재 진행 중인 문제로 인해 어색한 분위기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대화가 이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당혹감만 커진다. 그가 여타 사람처럼 땀을 흘릴 수 있는 몸이었다면 이미 관자놀이까지 땀방울이 흘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상대편 쪽이었다. 그는 도리어 멍하니 듣고 나서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아, 그랬지. 워낙 급하게 다가온 터라 말이 안 통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깜빡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 뒤로 무슨 뜻인지 모를 말이 뒤에 따라붙었지만 시급한 문제가 있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손짓으로 구사하는 언어도 대충 통하려나? 그보단 몸짓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가중된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턱 막힌 목에 강제로 힘을 주어 소리를 내었더니.
“…………────아,”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끔찍한 쇳소리가 났다. 갈사暍死 직전에 처한 사람이 낼 법한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비록 혼란에 빠진 상태일지언정 객관성을 잃지는 않았다. 그는 깔끔하게 발성을 포기하기로 했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게목으로 인해 잃어버린 침착마저 되찾을 지경이었으니 말 다했다. 한결 안정을 되찾은 그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여유를 되찾았다.
소리만 없을 뿐 홀로의 갖은 내적 부산을 떨었던 그가 마침내 방도를 하나 찾았다. 언어는 통한다 했지. 그는 천천히 아래로 몸을 낮추고 앉아, 손톱이 다 떨어져 나간 손가락으로 땅 위에 글씨를 써 보았다.
딸깍, 딸깍. 의자 위에서 무릎 끌어안은 채 앉아있는 소녀, 연신 마우스를 클릭한다. 이것도 꽝이고, 저것도 별로. 이건 좀 많이 노잼이야. 그 게임 후속작은 언제 나오나? 중얼이던 소녀가 키보드 덜걱이며 웹사이트를 부산스레 돌아다닌다.
할 만한 게임도 없고, 진짜 열라 심심해.
자신에게 아직 창조의 권능이 남아있었더라면... 엄청나게 유능한 그래픽 디자이너를 창조하고, 엄청나게 똑똑한 스토리 작가를 창조하고, 엄청나게 재능 있는 음악가도 창조하고, 또 창조해서... 트리플 A급의 명작 게임을 만들라고 지시했을 텐데. 올해의 게임을 n관왕으로 수상하고, 유저들 사이에서 극찬이 끊이질 않는 갓겜을! 상상만 해도 행복하지만, 결국 공상은 이루어질 수 없기에 공상인 것이다. 소녀는 한숨 내쉬며 키보드에서 손을 물린다.
지루하다. 소녀가 조그만 몸 가누어 의자에서 폴싹 뛰어내린다. 그 뒤로 풍성한 오렌지색 머리칼 질질 끌려나온다. 소녀는 너저분하게 쌓인 짐더미 사이에서 컵라면 한 개를 능숙히 찾아낸다. 그 다음 비닐을 벗기고, 뚜껑을 뜯고, 면 위로 스프 마구 흩뿌린 뒤 책상 옆 커피 포트에 물을 올린다. 이 방에는 창문이 없다. 당연히 외부도 보이지 않고 애초에 그럴 필요조차 없다. 바깥 세상을 접하는 수단은 인터넷 하나만 있으면 된다. 새삼, 인간이란 정말 대단한 존재들이구나 느끼게 된다. 인류가 일구어낸 문명 수준은 창세신인 소녀마저도 놀라게 할 정도였다. 달랑 전기 통하는 선 하나로 다수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건 신들의 시대에서도 불가능한 일이었고...
"맛. 있. 겠. 당~"
어쨌건 소녀는 다 익은 라면을 젓가락으로 휘휘 젓는다. 그리고 면발을 크게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으려는 순간─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
음침하고 어두컴컴한 단칸방이 드넓고 푸르른 창공으로 바뀌었단 말이다. 잘 익었던 컵라면은 물론 면발 집었던 젓가락도 온데간데 없다. 그리고 짧은 시간동안 공중에 체류하던 소녀의 몸이, 빠른 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으, 으에엑! 뭐야 이거! 잠, 잠깐마아아안!!!"
있는 힘껏 악 써보고 몸뚱이 바르작거리지만 그런다고 추락이 멈출리 있나. 결국 소녀는 자유낙하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아직 창조의 권능이 남아있었더라면... 엄청나게 유능한 그래픽 디자이너를 창조하고, 엄청나게 똑똑한 스토리 작가를 창조하고, 엄청나게 재능 있는 음악가도 창조하고, 또 창조해서... 트리플 A급의 명작 게임을 만들라고 지시했을 텐데. 올해의 게임을 n관왕으로 수상하고, 유저들 사이에서 극찬이 끊이질 않는 갓겜을!<<
으아아악 이 권능 저도 갖고싶어요!!! 어떡하지 하찮은 창조신님 너무너무너무 귀여워...😇
>>980 본인 고유의 체취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무취예요! 하지만 외부로부터 밴 냄새는 나는데, 대충... 바싹 마른 건조한 흙, 흙먼지, 외출하고 나면 외투에 배곤 하는 특유의 먼지 섞인 바람 냄새라고 해야할지... 중금속 섞인 공기 특유의 답답한 향 같은 게 나요!
네가 제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입을 열고 소리를 낸다. 내었다. 내었지만, 그건 말이 아니었다. 말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듣기 힘든 쇳소리는 짧게 지나간다. 덕분에 미하엘은 귀를 막지도,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제가 들은 게 무엇인지 판단조차 제대로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 그러니까······.”
다시 침묵이 찾아올세라, 미하엘이 입을 여는 것과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네가 몸을 움직였다. 미하엘은 반사적으로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천천히 낮춰지는 네 몸에 뭘 하려는 건가 싶어 미하엘의 자세도 같이 낮아졌다. 그 덕에 가까워진 거리에 낯익은 것 같으면서도 낯선 냄새를 맡았다.
흙먼지 같은 냄새. 오래되어 묵은 것 같기도 하고, 바람이 머문 것 같은 냄새다. 거기에 숲의 포근한 냄새가 섞였다. 꽤나 특이하다고, 미하엘은 잠깐 생각했다.
그 사이 너는 느릿느릿 땅 위에 무언가를 적어내려갔다. 미하엘의 시선이 써진 글자로 향했다. 악필이니 명필이니 생각할 것은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글자들이 읽혔기에. 이어서 적힌 다른 글자에 앗 소리를 냈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그랬구나! 같은 말은 없었다. 대신 흙바닥을 그었던 네 손을 덥썩 붙잡았다.
“읽히는 게 문제가 아니지! 손가락! 손이 왜 이래? 완전 엉망이잖아—! 이런 손으로 글씨를 쓰다니 미친 거 아니야?”
이어진 으악하는 짧은 비명. 낯선 글자가 읽히고 안 읽히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대부분의 글자는 읽히는 추락자가 아니던가. 미하엘은 제가 다 아프다는 듯이 방방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