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괜찮은 느낌이다. 다양한 종족의 사람들이 모인 도시는 판타지 소설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고 분위기라서 미하엘은 조금 들떴다. 이곳의 사람들은 친절하고 또 순진했으며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비록 처음 추락해서 도착했던 북쪽 구역의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았고, 순진하지도 괜찮지도 않은 사람들이었지만 다른 구역은 달랐다.
미하엘은 동쪽 구역에 자리를 잡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서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분명 같이 떨어졌을 텐데, 도시가 생각보다 커서 다윈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 도시에 저와 같은 추락자가 있을 거란 확신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만날 장소라도 정해놓을 걸 그랬다. 물론 다윈은 질색했겠지만.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미하엘이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아니다. 이유라면 있었다. 소문. 잡다한 이야기들. 원래 그런 것들은 시장 바닥에서 자주 돌아다니는 법이었으니까.
“흐—음. 별 거 없나—.”
한껏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재미없다며 신발코로 바닥을 툭툭 두드리던 미하엘은 굴러다니던 돌멩이를 뻥 걷어찼다. 누군가 맞을 수도 있었지만, 제 알빠인가! 이렇게 사람들이 있는데, 지나가다 운이 나쁘면 맞을 수도 있는 일 아니던가. 혹시라도 제가 찼다는 게 들킨다면 사과하면 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미하엘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긴 꿈을 꾸었다. 눈을 떴을 땐, 라크의 외투가 몸에 덮여져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아직 한낮이었다. 몸이 찌뿌드드했다. 여전히 나무그늘 아래였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나무에 등을 기대이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외투를 나무 아래 내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잠시 둘러볼 요량이었다.
성벽을 따라 마켓 쪽으로 걸었다. 잠을 잔 것을 보면, 꿈은 역시 아니었다. 지나간 기억을 되짚으면 폐기처분으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버려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
무언가가 날아와 이마를 세게 때렸다. 맞은 자리를 손으로 더듬으니 피가 묻어났다. 어린 시절의 좋지 못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이 날아왔을 방향을 돌아보면 복장이 화려하고 키가 작은 수인이 벽에 등을 기대고 서있다. 발목에 걸린 쇠사슬을 바닥에 질질 끌어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아니 사실 경쾌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미하엘의 두 눈이 놀란 토끼인양 땡그래졌다. 왐마야······. 저도 모르게 작게 소리친 미하엘 앞에 이름 모를 수인이 섰다. 회갈색 머리카락에, 저보다 큰 키. 머리 위에 솟은 동물의 귀······. 퀭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에 주춤할 법도 했으나 그보다는 더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피!”
짧은 외침과 예의 없이 뻗어진 손가락이 너를 가리킨다. 손가락이 가리킨 끝에 놓인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제가 발로 찬 돌멩이에 맞아 난 상처였다. 헉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켠 미하엘이 우왕좌왕하며 제 옷주머니를 마구 뒤적였다.
“어떡해, 진짜진짜 미안! 설마 누군가 맞을 거라고 생각 못했어! 맞더라도 피가 날 거라고도 생각 못했는데!”
제가 잘못한 게 맞으니 사과는 당연했다. 누가 맞으라는 의미로 찬 것도 아니었으니 이어진 말도 맞았다. 그러니 당연히 피가 날 거라고 생각 못한 것도 맞았고. 열심히 주머니를 뒤지던 미하엘이 기어코 주머니 속 깊은 곳에 꾸깃꾸깃 접혀 있던 반창고 하나를 찾아냈다.
“진짜 미안해, 이름 모를 추락자야. 이거 반창고인데······.”
부산스럽게 행동하던 미하엘이 냅다 네 손에 반창고를 쥐여줬다. 두 눈썹을 늘어뜨린 채 온몸으로 미안함을 표현하던 미하엘은 곧 네 발목에 채워져 있는 족쇄에 시선이 닿았다. 온갖 세계에서 오는 추락자였기에 이런 모습이 마냥 신기한 건 아니었지만, 제법 불편하겠다 싶었다. 다시 고개를 든 미하엘이 너와 눈을 마주한다.
부산스럽게 주머니를 뒤적이던 그녀는 반창고를 하나 내밀었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그녀의 입에서 생소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추락자. 이어서 그녀는 발목의 족쇄를 손끝으로 가리키며 풀어주겠다고 했다. 윈터는 왼발을 살짝 들었다 내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거? 이건 내가 알아서 할게."
처음에는 구속복의 속박을 풀었고, 다음에는 족쇄의 쇠공을 떼어냈다. 족쇄를 풀어내는 것은 어쩐지 자신만의 숙제로 느껴졌기에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대신, 건네받은 반창고를 다시 내밀어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손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고. 미안하면 붙여주던가."
무릎을 살짝 굽혀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고, 오른손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겨 생채기 난 이마를 드러낸 채 그녀의 놀 빛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추락자라니. 하늘에서 떨어진 걸 말하는 거야? 너는 이곳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거지?"
손을 들어 귓가를 덮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새의 소음,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울어 대는 짐승들의 울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요할지언정 더없이 생생하게 피력되는 이 모든 것들의 생동과 존재감이 버겁다. 그 오랜 고요를 버틸 수 없었던 주제에 이제 와서는 벅차다니. 앞뒤가 다른 꼴 같잖지만 자조를 할 정신도 없었다. 떨어지고 난 뒤에도 시간은 한참이나 흘렀겠지만 줄곧 혼란스러워하기만 했으니 위치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귀를 찌르는 생소한 소음에 그가 조금이나마 적응했을 무렵, 그제야 주변의 경관이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 울창한 숲 너머에는 탁 트인 드넓은 땅 하나가 보였다. ……아마도 도시일 터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상황에 관해 어떤 실마리라도 얻으려면, 그것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저곳으로 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애꿎게 눈길만 딴 데로 돌리던 순간.
사람 하나를 보았다.
눈에 보인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나서 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낯선 인물의 앞에 서 있는 상황. 무슨 말이라도 할 것처럼 다가갔던 그는 당혹이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으로 제 입을 틀어막기만 할 뿐이다. 이럴 거라면 할말이라도 생각한 뒤에 행동하는 편이 나았겠다. ……사실 그는 무엇이라도 말하려던 참이긴 했는데, 그러나 그가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마지막으로 성대를 써 본 것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지나치게 오랜 시간 침묵해 온 탓에 목이 잠시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
그리하여, 마법소녀의 눈앞에는 시커먼 옷 입은 모르는 사람 하나가 성큼성큼 다급히 걸어와서는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서 있는 상황. 입가의 손을 뗀 뒤로도 미미한 들숨과 함께 입만 작게 달싹이다 다물렸다. 사람이 당황하면 눈부터 저절로 흔들리는 것은 아마 세계 공통인 모양이다. 새까만 눈동자 곁으로 슬쩍 구르며 어색한 침묵만 길어졌다.
미하엘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은 그냥, 혹시나 다윈이 저보다 늦게 추락해 숲에 있지는 않을까 싶어 나온 것뿐이었는데.
웬 어두컴컴한 사람(사실 이런 생각은 실례지만)이 제 앞을 떡하니 막아서지 않는가. 덕택에 도시에서 얻은 과일을 베어 물던 미하엘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아, 이거. 사과처럼 생겨 놓고 맛은 복숭아네. 그런 짧은 생각과 함께.
춘추 특유의 기분 좋은 날씨가 뺨을 훑고 지나간다. 하지만 미하엘과 이름 모를 사람의 사이엔 대화가 흐르지 않았다. 미하엘은 멀뚱멀뚱 상대를 쳐다볼 뿐이었고, 상대는 무언가 말할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다 다물 뿐이었다.
“흐음······.”
미하엘의 눈이 너를 가볍게 훑는다. 생긴 것은 저와 비슷해 보이는데, 워낙 추락자들이 갖은 세계에서 오는지라. 미하엘은 제 손에 묻은 과즙을 툭툭 털어냈다. 그러고도 남은 건 대충 혀로 훑었다. 그러다 네 흔들리는 눈과 마주칠 때면, 미하엘은 무언가 깨달은 듯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혹시 말이 안 통할까 싶어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걱정마, 지금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 언어만큼은 모두 통하거든?”
추락자 특권이라구, 하고 덧붙이는 모양새가 퍽 낙천적이다. 미하엘은 이 능력만 있으면 외국에 나가도 문제 없을 텐데, 같은 말을 재잘거리다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그러니 이제 말해도 된다는 것처럼.
뭐, 미하엘이 알았겠는가. 네가 저와 말이 통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침묵으로 소리 내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