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어울린다. 그래,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흔히들 생각하는 기사와 나의 이미지가 괴리감이 크다고 생각할 뿐.
긴 이야기가 끝난 뒤에. 나는 강산이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각오를 얘기하는 것을 조용히 들었다.
"괜찮아. 나도 이것저것 시도할테니까. 애초에 쉬운 얘기가 아니란건 알고 있었어. 다만.....일단 내 생각을 말하자면. 당장에 너무 완벽하려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너무 공들이지 말고 즉흥적으로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지금이라면 내 명성에 더해서 이야기에 생명력이 남아있는 시간이니까. 소문을 널리 퍼뜨리는 노래는, 생각보다...불후의 명곡이 아니라, 어쩐지 단순해도 중독성 있는 그런 노래니까. 애초에 시온은 아이들에게 조금은 편한 웃음을. 사소한 재미를 주고 싶어한 사람이었거든."
버터를 밟고 넘어지는 심보 고약한 아저씨라던가, 바람이 불어서 옷이 날아가는 것을 붙잡으러 뛰는 아낙같이. 그가 들었던 예시를 들려주며 나도 조금은 실 없이 웃는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마음이 내켰다면, 해봐.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대단하지 못할 수도 있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늘 완벽한 결과를 가져오지만은 않지."
"실은....시온이 지오의 이름을 대며 행동했던 것도. 카하노 기사단 비극의 날에 대해서도. 밝히고 싶지만. 그래버리면 '돈 지오테'를 희망의 이름으로 남기고 싶어 노력해온 것을 짓밟는 것 같아서....고민 돼."
나는 팔에 턱을 괸다. 그러니 그 부분은 지금처럼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전하되, 노래로 퍼뜨리진 않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다만 마지막은 조금 다른 것 같아."
일단 고민을 뒤로하고, 그의 노래 평가로 돌아온다.
"내가 일방적으로 쓰러뜨린 것 같지만, 사실은 흑기사가 검을 놓은 것은 자의고. 그는 기사로써 쓰러지길 선택했어. 마지막에 소멸했던건 흑기사가 아니라 한 때 희망을 전하려던 기사의 최후야. 이 부분을 빼 놓으면 안되지. 그리고 그걸 생각하면, 앞부분에 흑기사를 소개하는 부분도 부족해. 그가 망념화가 되었음에도 '흑기사' 였던건, 그런 상황에서도 기사로써의 자신을 놓지는 못했단걸 암시하거든."
....나는 어느정도 포인트를 짚으면서 얘기한다.
"지금 버전이 나쁜건 아니지만, 너무 나의 활약쪽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아. 내가 남길 바라는 것은 오히려....지오와 시온의 이야기야. 그들이 세운 카하노 기사단의 이야기가 먼 시간을 돌아 완결되었음을. 여기에 희망이 있었음을 전달하고 싶어."
강산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시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방금 시윤이 말한 것들을 메모장 앱을 열어 기록해두기도 한다. 이건 그의 이야기인 만큼 그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니까.
"그렇군. 손봐야 할 부분이 많겠어...잘 생각해봐야겠네. 말한 대로 더 다듬어보고 오지."
역시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강산은 생각했다. 부족하면 또 연습하고, 다시 시도하면 되지.
"해가 지고 있군."
바다가 노을 색으로 물들어가고, 노을의 반대편은 푸르스름히 어두워져간다.
"시윤 씨는 어느 쪽이랑 협력 중이지? UGN? UHN? 어느 쪽이든 다음에 또 보자고. 기왕이면 나중에 에브나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강산은 주섬주섬 뒷정리를 하며 시윤에게 말한다.
"숙부님이 당신이 제자로 받기엔 곤란하지만 필요하다면 다른 스승을 알아봐주실 수 있다고 하셨어. 근데 그 전에 정말 에브나가 적성이나 흥미가 있는지, 또 마도에도 수많은 분파와 스타일이 있는데 그 중 어느 쪽이 잘 맞고 어느 쪽이 가장 안 질릴지...직접 보고 판단하는 게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예전에 어른들이 이거저거 막 시켰는데 뭘 해도 금방 질려서 좀 헤맸거든."
저렇게 진지하게 고민해준다면, 아마 결과물도 충분히 좋으리라.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 말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쪽이 부탁하는 입장이고, 솔직히 노래에 대해서 조예가 깊은 것은 전혀 아니기 때문에. 강산을 솔직하게 믿는 쪽이 나으리라.
"그러게나 말이야. 슬슬 일어서볼까."
오래 쉬었다. 나는 난관에서 기대던 몸을 잠깐 뗀다.
"일단은 두 쪽 다 아닐까. UHN이랑은 최근 얘기를 나눴고, UGN은 특별임무나 이번일로 도움을 좀 주고 있으니까."
두 조직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진, 생각해보면 꽤 궁금하군...
"그렇다면 혹시 다른 괜찮은 분을 소개해줄 수 있을까? 꼭 마도가 아니어도 돼. 명가가 아니어도 좋아. 내가 네게 소개를 부탁한건 무언가의 이득을 취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아이를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해서였어."
명가출신의 명예, 돈. 혹은 무언가의 전투기법에 구애되진 않는다. 그런건 에브나가 원하는대로 알아서 하겠지. 전위직은 다칠까봐 좀 우려되긴 한다마는....내가 강산에게 소개 받고 싶었던건, 덕망있는 선생님에 가깝다. 에브나의 호기심과 가능성을, 부드러운 형태로 도와주며 성숙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응? 그렇게 치자면 나도 최근에 특수의뢰 끝내고 UHN에 접촉해보는 중이긴 한데...아니아니, 그거 말고. 여기 올 때 어떻게 왔고 누구 배에서 묵고 있냐고. 나는 저어기 길드 연합 함선."
난간 너머의 한 쪽, UHN 캠프가 있는 함선을 가리키며 말한다.
"...시윤 씨가 특별한 이득을 원하지 않더라도, 맡아주는 쪽에서 이득을 취하려고 할 수 있겠지. 아마 그래서 숙부님도 곤란하다고 하신 것 같다. 에브나를 데려가면 다른 가문원 분들이나 그 주변 사람들도 관심을 보이게 될 테니까. 이미 큰 인지도와 명성을 가진 가문인만큼 주변에 잡것이 꼬일 수도 있고(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덧붙였다)."
강산은 에브나의 스승 찾기 건에 대한 시윤의 생각을 듣고 본인도 마땅히 제안할 인물이 더 떠오르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갸웃 기울인다.
"아무튼 그런 거구나...나는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다마는. 우리 삼촌께 여쭤본다면 아무래도 숙부님 지인분들이니까 다 마도사들일테고. 마도 아니어도 괜찮다면 교관진들 중에 괜찮겠다 싶은 분에게도 물어보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