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입에서는 완결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전해져왔을 때. 나는 숨마저 참고 있던 것을 멈추고, 드디어 입을 벌려 짧게 얼빠진 한숨을 토해냈다. 마치 그렇게 벌려진 입에서부터 그의 마지막 말을 받아 삼키려는 것처럼.
"아.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 "
그러자 한번 열린 입에선 비명인지, 울음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가 몇번이고 튀어나왔다. 가스가 뭉게뭉게 차있어 시큰거리는 가슴속에, 작은 불씨가 들어와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처럼. 심장이 아플 정도로 요동치고. 전신의 혈액이 뜨거울 정도로 달아오르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울린다. 그 폭발이 목구멍으로 역류해 올라와, 마치 증기 기관처럼. 나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눈에선 수도관이 망가진 것처럼 눈물이 흘렀다.
슬펐다. 화났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런 단순한 표현으론 설명하기 힘든 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러니 울지 않으려고 했다. 웃으려고 했다.
그렇다곤 해도, 모든게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네. 나는 그러니까, 손등으로 거칠게 눈가를 쓸어 뿌옇게 물든 시야를 맑게 한다. 언어가 되지 못하고 끓어오르던 소리를, 나의 의지로 변환하여. 나는 눈 앞의 상대를 명확히 쳐다보고, 기세좋게 목청 껏 소리친다.
"기사단장 돈 지오테에!!!!!"
상대는 약해졌다. 갑옷은 깨졌고. 말은 잃어버렸다. 천천히 안개가 되어 흩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승부가 쉬울 이유로는 조금도 되지 않는다. 절대적인 격차가, 다소는 할만하게 바뀌었을 뿐.
"카하노 기사단의 평기사, 윤 재클린 시윤이....!!!!"
원래라면 슬슬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애초에 나는 저격수다. 아군의 원호를 받으며 원거리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할 때 빛을 발휘하지, 일기토엔 그다지 유능하지 않다.' 지금도 딱히 달라지진 않았다. 다만, 전제가 하나 추가되었을 뿐.
나는 기사다. 주어진 시련이 스스로에게 벅차고 맞지 않아도. 내가 믿고 중요시하는 것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겠다.
"일기토를 신청한다!!!!"
그러니까. 천재일우의 첫수. 내게 주어진 선공권. 보법으로 거리를 벌리는 것이 아마도 정석. 역성혁명을 통해 선제 일타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내 선택은..... 의념기. 찰나의 생명.
손바닥 위로 찰나를 상징하는 수 많은 얇은 실들이 나선으로 휘감겨 탄환이 생성되는 이미지. 겹겹히 쌓인 순간들을 모아, 폭발 시키는 단 한발의 탄환.
....이 기술을 쓰려는건, 어느 의미론 고집에 가깝다. 시온씨가 방금 내게 보여줬던 수 많은 찰나를. 지금 이 순간을. 섬광처럼 빛나는 생명을. 지금 여기에 담아두지 않으면, 어딘가 흩어져버릴 것만 같아서.
"헌터와 가디언에게 우리의 가치. 특별반의 가치가 증명되면 길드를 창설하여.. 천자와 사자왕을 영입한다." "그리하여 은하수를 만든다. 어떤데?"
말도 안되는 소리! 진짜로 말도 안되는 소리에 가깝다. 하지만? 이걸 이룬다면? 최강의 길드이자 최강의 헌터들이 모이는 드림팀이 만들어지는 것.
"물론, 이건 먼 미래의 이야기겠지. 당장에 만족할만한 이야기가 아닐거고.. 지금은 발등에 떨어진 불 부터 어떻게 꺼야 할지 더 궁금할긴데..."
토고는 턱을 슬쩍 매만진다. 잠시 딴 곳을 보는 척 하며 상대를 관찰한다. 이야기를 듣는다. 라는 것은 흥미를 보인다. 라는 것. 흥미를 더욱 유도하기 위해선 상대방이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우리를 탐탁치 않게 보는 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는 역시 타인의 불행. 우리의 불행이 곧 저들의 행복이 된다면? 그 불행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우리에게 의념기를 보상으로 의뢰까지 내걸 정도 가디언측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알고 있데이." "실제로 내 마카오에서 정보원과 접선했을 때 듣기로는... 이 모든 일의 배후엔 시체와 칼날의 노래 교단이 있고, 내 예상이 맞다면... 이제 곧 펑~ 하고 터질 때가 됐다." "그 사건을.. 우리 '특별반'이 해결한다면?"
토고는 피식 웃는다.
"어마어마한 성과이지 않겠나? 아, 물론 비단 UGN측에게만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이 말은 하기 싫었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성과." "즉, UHN에서 만족할 정도로 성장하지 못한... 썩은 가지를 쳐낼 기회이기도 하다. 그것도 손 하나 안 더럽히고 말이다."
힘이 빠져버린 채로, 한 손을 꽉 쥔 시윤의 손에선 시윤 스스로 만들어낸 초월의 힘이 스며듭니다. 수많은 찰나를 견디는 것으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만들어낸 시윤의 의념기
찰나의 생명
수많은 찰나가 뭉쳐 시윤의 길을 빛내기 시작합니다.
철컥..
느린 움직임으로, 흑기사가 검을 쳐들고, 검을 휘두릅니다. 자비 없이 시윤의 몸에 선명한 검흔이 새겨집니다.
아직이지 않습니까? 당신이 바라는 결과까지 남은 시간. 견딜 수 있겠습니까?
>>372 스승님은 별다른 말 없이 한결을 바라보고, 한숨을 내쉽니다.
" 이런 부분까지.. 날 닮으면 어쩌잔 얘기니. "
그녀는 말 대신 한결의 볼을 사정없이 늘려봅니다. 말랑말랑하지 않은 볼이 알 수 없는 애정의 힘에 의해 늘어나는 기분이군요!!!
" 그가 그래도 너를 긍정적으로 본 모양이구나. 그게 아니었다면 순순한 경고로 지나지 않았을테니 말야. "
경고...? 지금 숨 막히고 침이 줄줄 흐르는 게 겨우 경고라고요? 그런 한결의 생각관 달리 설하는 한결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 쉽게 굽히지 않는 것은 무인에게 훌륭한 자세란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것과 타인을 무시하기 위해 말을 굴리는 건 달라. "
그녀는 한결을 훈계하기보다, 한결의 잘못을 말하고 있습니다.
" 네가 한 실례는 크게는 나에게 위협을 준 것이고, 더 크게는 양양성에 있을 가게들이나 기업,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었던 행동이란다. 만약 배로흑왕이 내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더라면 양양성의 게이트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쓰게 되었을거고, 그 결과로 나는 양양성의 많은 이권을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르거든. "
그때야 한결은 자신의 말 한마디가 무슨 무게를 지니는지 이해하고 맙니다. 그 짧은,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 비아냥 한 마디만으로 '위의 사람'들에게는 명분이 되고 무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설하가 왜 그런 한결을 제지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 언젠가 네가 성주가 되었을 때. 오늘과 같은 경험은 네 방패가 되줄 거란다. 그러니 부디 싫어하지 않으면 좋겠구나. "
타이르기를 마친 듯. 그녀는 한결의 볼을 간지르고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 배는 고프지 않니? "
>>373 가장 불편한 것은 침묵일 것입니다. 차라리 무언가 말을 하고, 반응을 했다면 그의 행동을 예측해보기라도 할 수 있을텐데. 그는 말 대신 침묵으로 토고의 말을 듣습니다.
" 천자와 사자왕을 영입한다. "
곧, 그는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 그 부분부터 어불성설이군요. "
박수를 짝 치면서. 그의 표정이 차갑게 얼어붙어갑니다.
" 좋습니다. 가디언들의 목표. UGN이 원하는 것은 대충 알 것 같군요. 썩 그들에게 좋지 않은 상황인 것은 맞습니다만. 저희들에게도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
그는 토고의 말에 골치가 아픈 듯, 눈두덩이를 누르며 말합니다.
" 요근래 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다윈주의자 사태부터 시작해서 마도일본 해양에 게이트가 폭증한 것도. 예언자가 자신의 죽음을 에언한 것 등등. 왜 가디언들이 저희가 야금야금 뺏기 시작한 이권을 놔두었는지 알 듯 싶습니다. "
하, 하고. 그는 작은 탄식을 뱉어냅니다. 그 감정에는 분명한 짜증과 감탄이 섞여 있었습니다.
" 표면적으로 UHN은 UGN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국제 가디언 법령 따위로 헌터의 권한을 UGN이 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죠. "
곧 그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헌터 하나하나의 전력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이후 헌터들의 세대교체가 시작되고, 뛰어난 수준의 각성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헌터의 질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
토고가 따라가기 어려울 법한 내용들. 어지러운 내용들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그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 UHN은 그 결과 폐기되었던 몇 가지 프로젝트들을 들고옵니다. 특별반은 그 중 하나였죠. 우리가 바란 것은 하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발전을 따라가기에 우리에게는 상징이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상징으로 투왕은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그는 UHN의 상징일 투왕을 깎아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대화를 덤덤히 이어갑니다. 솔직히... 따라가기도 버겁고, 정신적으로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신 계통 특성을 보유하지 않은 토고의 정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 말이 길게 돌아가고 있지만, 결국 UHN이 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상징'. 각성자들을 통합하고 새로운 헌터의 시대를 열 수 있는 상징을 필요로 한다는 말입니다. "
그는 한숨을 쉬면서. 얘기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이걸 UGN 모르게 진행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쪽 이야기를 들으니 알겠군요. "
어쩌면 폭탄같을 이야기를.
" UGN. 방관중인 겁니다. 아래쪽 가디언들은 모를 법한. 윗쪽의 영향이 있는 건 분명하군요. "
마치. 한 번 해보라는 것처럼. 이미 '기적의 세대'라는 결과를 낸 UGN은 혹시 헌터들 사이에서도? 라는 것을 지켜보려는 듯 방관하고 있었단 겁니다.
제지하려면 제지할 수 있었음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 따위를 쓰면서 말입니다.
" .... 후. "
곧, 도즈는 머리를 흔들고 토고를 바라봅니다.
" ... 좋습니다. 좋은 정보를 가져다 준 것은 확실하군요. UHN을 대표해서, 감사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
아이고야.. 도박수 실패해부렸구먼, 두 사람을 영입한다라는 초대형 도박수. 그것의 근본부터 부정당했다. 다만, 분위기를 환기 시키듯이 박수를 짝 치는 모습을 토고는 빤히 바라봤다. 차갑게 얼어붙어가는 표정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윽고 시작되는 말.
UGN에게도 UHN에게도 좋은 소식은 아니다. 다윈주의자 사태, 마도 일본, 예언자가 자신의 죽음을.. 뭐?
잠깐, 잠깐... 걷잡을 수 없는 정보가 순식간에 밀려 들어오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건... 정보에 떠밀리는 기분이다. 말을 길게 하고 있지만 결국 상징. 상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UHN에게는. 그리고 그걸 UGN 모르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UGN은 다 알면서 방관했다고?
"...하."
토고는 도즈의 말이 끝난 뒤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따라잡질 못하겠다. UGN은 해볼거면 해보든가 ㅋ 하고 구경하고 있고 UHN은 UGN모르겠지? ㅎㅎ 하고 프로젝트를 몇가지 진행하고 있고...
"내쪽은 뭔 소린지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나는 알겠네... 감사 인사는 잘 받아두고... 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나? 내를 부른 이유. 고거에 대해서.. 아직 못 들은 것 같은데."
강산은 음울한 지배자의 홀을 잠시 바라보다가 인벤토리에 넣었다. 강산의 입장에 놓인 다른 마도사들이라면 진작 탐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불안감이 있었다. 이 무기가 때로는 강산 자신마저 현혹시키려 하는 것이 아닌가. 무기의 이점을 살리고자 한다는 핑계로, 이것이 강산을 진정으로 좋아했던 음악을 외면하고 당장 눈앞의 승리에만 매달리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것이었다.
의식떡매라고 또 특별히 음악계 마도에 특화된 무기는 아니었지만, 강산에게는 음을한 지배자의 홀 수리와 새로운 악기 카테고리 무기의 제작을 동시에 진행할 만큼의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돈이 있는데 굳이 그 녀석때문에 새로운 악기 아이템을 구하는 걸 미루고 싶지도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