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란 사실 두려움의 발전일 뿐일지도 모른다. 단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쳐진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앞으로 뛰도록 하는 것을 허울 좋은 용기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망쳤던 기사는 창을 쥐고 있었다. 가장 추악한 마창을 쥐고, 고통과 상처를 버틴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떨어질 때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것만 같았다. 부드러운 지오에 비하면 자신의 방식은 사람을 후벼파는 것에 더더욱 익숙했다. 그래서 세계의 풍경이 모든 것이 풍화되어 사라지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했을 때 이곳이 자신의 죽음에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진짜 돈 지오테의 악명은 풍화되어 사라지고, 가짜 돈 지오테는 진짜가 될테니까. 그렇게 나는 죽을 것이다. 친구를 두고, 동료를 두고 떠나야만 했던 그 기억은 잊어버린 채로 말이다.
" 남길 것은 없고, 남은 것은 후대로 이어갈 기사 한 명. 그 대가는 카하노 기사단의 명예를 되찾는다. 썩 나쁘지 않은 결과야. "
피를 덕지덕지 붙인 것 같은 마창이 울음을 토해냈다. 약속을 어기고 죽을 셈이냐고 묻는 것처럼. 지금까지 어떻게 죽음을 유보했는지 기억하지 않냐는 소리였다. 확실히 남자는 한 자루의 창에 많은 것을 맡겨왔다. 자신의 고통과 분노,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묻어버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죄책감이라는 바퀴로 움직이고 있는 삐걱거리는 수레.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해도 달도 남지 않은 까닭에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추측할 수 없었지만, 작은 소망이 있다면 지금이 밤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적어도 밝은 해를 보면서 죽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처없이 향하던 발걸음이 멈춘다. 고개를 짓쳐들고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그 방향으로부터, 시야에 담긴 것은 모습이었다. 눈으로 남자는 그 모든 것을 새겨나가기 시작했다. 그림자로 가득할지언정. 강철로 이뤄진 갑옷을 입고, 말을 탄 채로 당당히 검을 쥔 채로 그는 지상을 내려본다. 이런 악취미가 어디 있겠는가. 진실을 알지 못하고 그 모습을 본다면 공포의 기사가 어울릴 법한 모습이었으나 진실은 그저 마지막까지 기사임을 놓지 못한 존재일 뿐이었다.
돈키호테.
망념에 미쳐 결국 스스로 영원한 기사가 되길 택한 흑기사. 세월에 미쳐 결국 끝없는 망집의 기사가 되길 택한 돈키호테.
" 네 마지막을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아냐? "
큭큭거리는 실소를 흘리면서 남자는 창대를 가볍게 회전시킨다. 손 위에서 마치 춤을 추듯 움직인 창이 손을 뻗고 남자의 적을 향했다.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몸을 당긴 채로 남자는 웃는다.
" 마지막까지 너답다. 정말,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데에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
흑기사가 남자를 관측했다. 기수가 말의 머리를 돌렸다. 투레질을 하면서 발을 들어올린다. 당장이라도 돌진하려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기사는 상대를 바라본다. 흔히 기사들의 일기토 앞에 자신을 소개할 시간을 주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것을 보며 남자는 웃었다. 저런 모습으로도 저 녀석은 기사이길 바란 모양이다. 돈 지오테.
- 나에겐 뛰어난 재능은 없지만. 대신 너라는 친구가 있지 않나.
- 네가 기사단의 일번창이 되고, 내가 네 산초가 될테니. 우리. 기사가 되어보자.
그날의 기억을 되짚으며 무릎을 뒤로 쭉 빼고, 썩 우스꽝스런 자세를 잡는다.
" 그래. 망집에 빠진 돈키호테를 되찾아 오는 것도. 그의 옆을 지키는 산초의 역할이지 않겠나. "
그 말과 함께 그는 시윤을 바라봤다. 기사단의 미래. 새로운 카하노 기사단이 될 아이. 그리고, 너무나 많은 짐을 맡기고 떠나게 될 아이를 바라봤다. 다시금 시야를 흑기사를 향하며, 그는 창을 붙잡는다.
" 카하노 기사단. 일번창!!! "
자, 친구여. 고향으로 돌아가자.
" 시온 바라타리아!!! 기사단장 돈 지오테에게 일기토를 청한다!!!!!!!! "
미련과 망집. 그 모든 것을 두고 가자. 스스로 죽어가게 내버려둔 너를 데리러 왔다. 그것이 친구의 역할이고, 기사의 본분이지 않겠는가.
어찌저찌 곤란하던 일 중 하나를 해결하고 나왔고 이곳을 왔다. 항구라, 바다에서 혼자 낚시를 하던 괴인을 본 이후로는 처음인가? 제대로 보는 것은 오랜만인 알렌을 살펴본다. 외모는 별로 달라진게 없지만....무언가 변했다. 원래 이런 분위기였지만 좀 달랐던거로 아는데 시간이 흐른 만큼 바뀐건가
"어쩌다보니까"
신한국에 계속 있으면 언젠가는 1세대 헌터들이 가만 안둘테니 이렇게 밖도 좀 돌아다녀야지.
그것은 폭음과 우뢰. 그 모든 것을 포함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말과 사람이 부딪히고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내면서 한 기사의 창이 허공에서 수없는 선을 그어가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도화지를 그려나가기 시작하는 그의 창이 허공을 찌르듯 한 치 먼저 뻗어나가면 흑기사의 검은 말과 함께 그 선들을 지워나가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접신의 흔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 시윤의 머리는 고통으로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지식을 한순간에 받아들이는 까닭입니다.
어째서 가장 낮은 전투를 점의 전투라 하는가. 그것은 부딪히고, 닿는 것에 목적을 두기 때문입니다. 휘두르고 치는 법을 모르는 이에게 공격의 방향이 어떻고 어떻게 발을 딛고, 그런 것을 가르쳐봐야 그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닿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뒤의 세계를 선이라 하는 것은 닿는 것에서 확장하기 때문입니다. 몸을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무기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이용할 것인가. 그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금 시윤이 머물고 있는 선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앞에서 이뤄지는 전투는 명백히 두 세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전투입니다. 나의 수단을 펼치기에 앞서 상대의 선을 볼 수 있는 세계. 그로 하여금 거대한 도화지에 자신의 경로를 그려내고 그를 통해 상대방의 도화지를 오염시키거나 찢어낼 수 있도록 하는 세계. 왜 가디언 이상의 적들을 상대할 때 우리들이 이렇게 밀려날 수밖에 없었는가. 그 진리가 바로 이 대답에 있습니다.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먼저 도달한 면의 세계에, 우리들은 선으로써 쫓아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시윤은 실소를 터트리고 맙니다. 정말 많이, 자신의 삶을 모두 통틀어서라도 가장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더 높은 세계가 아직도 남아있었단 사실과, 이 세계에 도달할 정도의 재능이 이전에도 있었더라면 하는 욕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욕심으로 한껏 세계를 쫓기 시작합니다.
흑기사의 검이 들어올려지고, 그 검이 탁하게 물듭니다. 그리고 수 개의 바람이 거대한 풍차를 마주한 것처럼 강렬한 검풍을 마구 흩날립니다. 피가 튀어오르고, 상처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시온은 그것을 감당한 채로 창을 바닥에 강하게 후려치곤, 순식간에 솟아오르는 창을 온 몸으로 찔러넣습니다.
우자의 일격愚者之 一激
마치 온몸을 그대로 창으로 부딪히는 듯한 공격과 함께 그 검에 선명한 의념이 맺혀갑니다. 의념 발화가, 그 형체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콰아아아아아앙!!!!!!
소리가 따라가기 어려울 격돌들이 들리고, 그 후의 소음들을 귀로 듣습니다.
캉, 카드드드드드득.
연붉은 감정을 담은 듯한 의념의 실체가 춤을 추며 흑기사의 갑주를 노리고 날아듭니다.
촤악!!!!!!!!
그 검에 붉은 피가, 가슴을 중심으로 깊게 터져나오고, 시온의 시야 일부가 붉게 물듭니다. 새빨간 세상 속에서도 검붉은 기사를 바라보며.
" 안테!!!!!!! "
마창은 자신의 주인을 향해, 토라진 듯한 울음을 토해냅니다. 마치 말괄량이 아가씨 같은 창은 그 부탁에 따라 남자의 고통과 우울을 삼킵니다.
빠르게 아물기 시작하는 상처를 보지도 않고, 시온은 발을 들어올려 흑기사의 말을 발로 걷어찹니다. 말이 휘청거리기 시작할 때. 그는 바라보지도 않고 그대로 창을 찔러넣습니다.
- ....!!!!!!!!!!!!!!!
말이 고통스러운 울음과 함께, 그 그림자를 터트리며 흩어집니다. 바닥을 구르는 흑기사를 향해 시온은 그대로 창을 들고 찔러넣습니다. 수 걸음을 관통한 채로 내달리던 시온은 그대로 창을 바닥에 내꽂으며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 합니다.
그 순간. 흑기사의 그림자가 모여듭니다. 그 검이 그림자를 집어삼키고, 그림자로 이루어진 검기가 시온의 팔에 선을 그어냅니다.
선은 점점, 상처를 오려내고. 마침내. 찢어버릴 때.
" 안테!!! "
시온은 다시금 소리를 지릅니다.
그 후로도 수 번, 수 번, 수십 번. 마침내...... 안테도 그 상처를 더이상 수습할 수 없을 때.
상처 투성이로 찬 몸을 겨우 움직입니다. 창은 겨우 지지대로 사용할 정도의 체력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망념 역시 마지막 장을 두어장 남기고, 거칠게 다음 장을 탐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 하, 하아....... "
그는 눈앞의 친우를 바라봅니다. 수많은 그림자가 떨어져나가고, 그림자가 천천히 새어나며 보이고 있는 그 얼굴. 유약한 듯 싶으면서도 굳은 심지를 펴고 있는 듯한 그 얼굴.
" 그래... 아직 쓰러져선 안 되지 않겠냐. "
아직. 해가 떠오를 시간이 아닐텐데. 시온은 몸을 비척거리며 자신의 창을 바라봅니다.
" 부탁한다 안테. "
안테는 울음을 토해냅니다. 그것은, 단순한 울음이라기보단 진짜 사람이 우는 것처럼. 자신의 사용자가 죽는 것을 슬퍼하는 것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미 시온이 졌던 모든 고통을 안테는 사용한 까닭입니다.
" 아니... 아니지 않냐... 하나. 단 하나가 남아있어... "
시온은 창을 들어올리고.
푸욱!!!
자신의 심장을 찔러냅니다. 눈물을 토해내면서도 안테는 그 고통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내기 시작합니다.
마지막으로, 최선의 상태로 돌아가는 시온이었지만, 그의 가슴에는 더이상 느껴져야 할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단 찰나. 오직 그 찰나에만 숨쉴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미련과, 고통, 부정적인 것들의 근원일 삶 자체를 안테에 먹이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바친 까닭입니다.
" 결판을 내야지 않겠나. 흑기사!!!!!!! "
그럼에도 시온은 더 당당하게 웃습니다.
거대한 의념이 그를 향해 스며들고, 기꺼이 그는 창을 붙잡습니다.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가장 큰 세계인 삶을 휘두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