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이 쉬운 줄 알았나? 현세에 묶인 넋을 푸는 게 쉬웠으면 귀신은 있찌도 않았겠지.."
너무나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 넋이라는 것이, 한이라는 것이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끄응.. 정신력도 너무 많이 깎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도 송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하고 빠진 뒤에 다시 준비를 갖추고 도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혹은 물리로 해결하거나.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몇몇의 원혼(?)들을 개별적으로 불러내거나 설득하여 성불시키는데는 성공했으나, 절대 다수의 유령들과 그 미련이 남아 깃든 물건들은 아직도 아득할 정도로 많았다. 종교 특성이나 정신계 관련 스킬도 없는 한결과 토고 둘이서 해결하려면 신체적, 정신적 피로는 물론이거니와 정신력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지금도 지끈거리는 두통이 오는 것이, 조금 더 시도하다간 무리가 있을 듯 하였다.
"우선은, 잠시 후퇴했다가 오는 쪽이 낫겠습니다. UHN 캠프 쪽에 들러서 관련된 자문이라도 구해 본다던가..."
배가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이 이야기는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였다. 크루즈 선이 떠다니는 작은 지옥이 되어갈 무렵 실향파는 귀향파를 향해 반기를 들었고, 선장은 끝까지 귀향파로 남아 제압되었으나 결국 망념화했다... 그렇기에 이 게이트가 생겨났다. 그 결과가 곧 이야기에 결말이었다.
"하지만 이 게이트 안에서 누군가는 한 번쯤은 다른 결말을 보고 싶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게임이 끝나고 흩어진 사람들 중 무언가 알고 있는 듯했던 선원을 뒤쫓으면서...강산은 여선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재현형 게이트를 많이 접해본 적은 없지만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 "선생님, 잠시 얘기 좀 하시죠."
선원을 뒤쫓아간 일행이 도달한 어느 한적한 복도.
"...선생님도 요즘 배 안의 불온한 낌새를 눈치채셨지만 딜러 때문에 말씀하지 못하신 것이죠? 저대로 두어도 괜찮겠습니까?"
강산은 선원에게 강산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같은 편임을 어필하려는 듯 운을 떼본다.
-너희는 실향파의 의견에 동조하는 쪽이 아니었나? 그럼 너희랑은 상관없을텐데.
"그것도 일단 사람은 살고 보자는 뜻이었죠. 저희는 무고한 희생을 원하지 않습니다. "
강산은 이번에는 주변에 방어막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과 여선을 가리키며 선원을 설득하려 시도한다.
"저희에겐 힘이 있습니다. 정말로 극단적인 일을 벌여 지금보다 큰 혼란을 초래하려는 자들이 있다면... 저희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라니, 그러면...옆의 아이도 마찬가지인가...?
"맞습니다. 이 친구는 의술을 공부하던 친구이고 치료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미리 안다면 제가 문제를 일으키는 인원들을 제압하고, 혹여나 누군가 피를 보더라도 이 친구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을겁니다."
선원은 강산이 자신들이 각성자임을 밝히며 계속 설득하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잠시 생각하다가 주변을 둘러보곤 다시 입을 연다.
-그래...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얼마전에 배에 같이 탔던 군인들 중 계급이 높은 자들이 밤중에 몰래 모여 뭔가 논의하는 것을 보았네. 선장의 친구들을 인질로 잡고 협박해 배의 통제권을 쥐려 꾸미는 것 같더군. 딜러를 조심하게. 군인들 쪽에 매수된 자이니...
그리고 그 순간 마치 때를 맞춘 것처럼 선내 멀찍한 곳에서 비명소리와 고함소리, 싸우는 듯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총성도 들린 것 같다...
-놈들이 계획이 들통나기 전에 일을 치려고 하는 건가...뒷일은 책임지지 않겠다만, 그래도 행운을 빌겠네. 어디 가서 내가 봤다고 말하진 말고.
애초에 방법적인 접근이 잘못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작정 많은 수를 성불시키고자 하는 것보단 한 사람 한 사람 정성스레 넋과 한을 풀어야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뭐, 지금와서 후회하기엔 늦어버렸지만. 토고는 한숨을 팍 내쉰다.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나중에 시간나면 명상이라도 해야겠다.
- 나는... 내 물건도 찾아줘... - 그딴 게 왜 필요해...? 너희도 우리를 하찮게 보는 거야...? - 쟤보나 내 걸 먼저 찾아...! 찾으라고... 이히히히...
실시간으로 정신력이 야금야금 갉아먹히는 것만 같았다. 처음엔 분명 선의로 시작했던 일이었고, 어느 정도 선까지는 예상대로 진행되는 듯 했으나. 이내 토고와 한결이 몇의 유령들을 성불시키는 것이 유령들 사이에서도 퍼져나갔는지 둘에게 달려드는 유령들의 숫자가 시시각각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이 뻔해, 토고와 나란히 달리며 눈앞의 탈출용 보트를 향해 뛰었다.
"먼저 타십쇼...!"
그래도 어쨌든, 한결은 워리어(지망생)이었다. 그 말인 즉슨 적어도 토고의 뒤를 지킬 정도는 되었다는 것이었고.
한결은 토고가 먼저 보트 위에 타도록 유도한 뒤, 그걸 밀어 바다에 띄우고 뒤따라 뛰어내릴 생각이었다.
토고는 보트 위에 올라타고는 시동을 건다. 쿠르르릉.. 쿠르르르르릉.. 아오.. 이거 왤케 안 걸리는교... 몇 번의 씨름 끝에 시동이 마침내 걸렸꼬 토고는 위를 올려다보며 "내려온나!" 하고 소리친다. 그가 내려온다면 토고는 보트를 몰며 배에서 빠져나가려고 할 것이다.
"와씨, 영적인 존재들은 걍 다 불태워야 할련가 모르겠다. 내는 UHN캠프 소속이니까 그쪽에다 이야기를 해보겠는데.. 니는 소속이 어디고? UGN쪽이면 그짝에다가 한 번 말해봐라. 이런 건 그짝이 전문가일지도 모른데이."
보트를 밀어 바다에 먼저 띄우고, 토고가 시동을 거는 동안 위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물리적인 저지가 안 먹히니 말 그대로 그냥 줄행랑치며 돌아다녔다) 시선을 돌린 다음. 한결은 본인의 신속을 믿고 무식하게 뱃갑판에서 뛰어내려 보트 뒤편에 안착했다. 순간 보트가 출렁- 거리며 안쪽으로 바닷물이 덮쳐들었으나 다행히 보트가 뒤집힐 정도는 아니었다.
"그 쪽에서 계획을 꾸밀 시간을 벌기 위해 목격자를 미리 쓱싹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네."
강산은 중간중간에 여선이 잘 뒤따라오는지 확인하며 총성이 들린 방향으로 향한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지금도 나고 있으니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가보니 아랫쪽에서 의식을 잃은 듯 몸이 축 늘어진 사람들 몇 명이, 군복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이 보인다. 얼굴은 머리에 뒤집어씌워진 포대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인질들 중에 총상을 입은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아 강산 일행이 들은 총성은 위협사격인 듯 했다. 대놓고 군인들이 사람들을 잡아서 끌고 가고 있는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웅성거리기만 할 뿐 차마 막지 못한다. 군복을 입은 자들은 총과 칼로 무장한 상태였고, 바다에 뜬 크루즈선 안에 고립된 이상 비각성자들이 이들에게 저항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인질을 빼내긴 힘들어보이는군. 일단 따라가보자."
강산이 여선에게 조용히 제안한다.
"지금은 우리끼리 상대하기엔 적이 좀 많다."
지금 인질 구출을 시도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군인들이 인질을 빽빽히 둘러싸고 있는데다가 공간이 좁아서 교전 중에 인질이나 다른 무고한 사람들이 다칠 위험성도 있어 보인다. 각성자의 피지컬을 활용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군인들을 뒤따라가보면 이들이 창문이 없는 인사이드 객실이 모인 구역 중 하나로 향하더니, 어느 방 하나에 인질들을 가두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능력이라면 마취가스까지 따로 안 구해와도 적당히 유인하거나 기절시킬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즘 의료계들 다 의념으로 마취한다 아니야? 아니다...그런 건 오히려 비각성자한테는 안 통하려나...? 그렇지만 반대로 각성자라면 마취가스에 저항할 가능성이 있을테지."
여선의 제안을 들은 강산이 여선의 제안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가늠해보다가...곧 장난스레 눈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해볼만한 방법 같군. 일단 마취가스 뿌리고 반응을 보자. 각성자라서 안 들으면 내가 틈을 만들고 네가 의념으로 바디 트레멀이든 고르돈의 올무든 걸면 되겠지. 아, 아니면 너 그거도 쓸 수 있었지? 어페어런트 데스. 그걸 쓰는 방법도 있겠군. 약품을 구하러 가자."
인질 구출 작전의 일환이지만, 그래도 간만에 장난질을 할 생각에 강산의 목소리가 살짝 들떠있다. 의무실에서 약품을 빼오거나 하는 식으로, 인질이 갇힌 방 앞을 지키는 보초 두 명에게 마취가스를 만들어와서 뿌리면....
- 뭐야?! 기습이다!
"이쪽이 각성자군. 내가 막지!"
보초 한 명이 마취가스에 픽 쓰러지자 다른 한 명이 바로 총을 꺼내들고 쏜다. 그러자 공격에 대비하고 있던 강산이 바로 방어막을 시전해 총알을 막으면서, 멀티 캐스팅으로 작은 폭발을 일으켜 보초가 총을 놓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