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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하니 메트로폴리스의 수석 엔지니어가 이리도 가까운 존재였을 줄은. 태오는 정장 차림에 두루마기를 기반으로 둔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고, 라바나라 불린 여인은 상하의가 일체형인 오프숄더를 입고 있었다. 바지 부분은 짧고,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망사 스타킹과 더불어 워커는 굽이 한없이 높았다. 두 사람은 조화로울 수 없었으나 결국 이 장소에서 조화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비사문천, 많이 들었지~ 도박장에서 요즘 안 씹는 애들이 없을 걸~ 그렇지?" "자경단은 늘 그런 법이지요." "자~알 부탁해~"
두 사람의 손등에 선명하게 이식된 뱀 비늘 탓이다. 태오는 노이즈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다 소파에 기대더니 무릎 위에 손을 고이 포개 올렸다. 소파 등받이 위에 누워있던 라바나는 몸을 쭉 뻗어 옆에 놓인 1인용 소파로 건너갔다. 그리고 소파에 웅크리는 모습이 똬리를 튼 뱀 같기도 했다. 순 제멋대로인 움직임을 뒤로 태오는 눈을 서서히 휘었다. 드문 표정 변화였다. 현태오라는 존재가 이렇게 웃을 일이 없는 잿더미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특히 그랬다.
"주인 나리께서는…… 비사문천에게 흥미를 가지셨답니다. 자경단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행동하는 것을 지켜본 바…… 누를 이유는 없으니 말이지요. 외려 귀하를…… 키워 스트레인지에 정착하게 만들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분의 진정한 의중을 내 어찌 알겠냐마는……."
남의 속을 읽을 수 있는 주제에 의중을 모른다 시치미를 뚝 떼는 행동이지만 이 또한 달리 보면 보고 배우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레벨을 모르고 시작할 테니 숨길 수 있다면 숨기고 시작하는 것이 스트레인지에서 좋지 않겠던가.
"스트레인지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결국 바깥에서 한 일로 받아들여질 테지요. 다만…… 맞는 말이에요. 스트레인지가 인첨공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그 물 밑이 어떤지는… 여기 활동하기로 한 이상 봐야지요." "거기다 손 더럽히지 않는 선택지도 있으니까~ 뭐, 그렇다고 해서 다른 선택지를 남에게 안 준다고는 안했지만."
태오는 라바나를 향해 눈짓했다. 라바나는 씨익 웃으며 "틀린말 했어? 어차피 내 몫도 있는 것 같던데." 하고 반문했고, 태오는 "알면 준비나 하시지." 하고 다시금 반박했다. 어찌 되었든 비사문천은 소문만 퍼뜨리면 될 테니. 태오는 눈을 굴려 당신을 쳐다보았다. 짙은 딸기향이 나는 방 안에서 침묵하던 태오는 재떨이를 앞으로 밀어주고는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거절인가, 생각하던 태오는 이내 눈을 서서히 둥글고 큰 곡선을 그어내며 뜨더니만,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흘렸다.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하더니만 자기가 더 미쳤네."
나긋한 웃음 뒤로 태오는 휘어진 눈을 들어 당신을 마주하려 했다. 정확히는 그 노이즈 너머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한 눈치였다. 거슬리던 상황이라 하는 것은 둘째치고,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아가시겠다? 그것도 인명피해가 나는 것을, 스트레인지의 가르침을, 그렇게 끝내 이득을 취해 발을 붙이겠다고? 객성이 결국 자리를 잡을 곳을 찾아가는 건지. 결국 너도 나와 같이 발 걸칠 수밖에 없는 천성을 타고났구나.
"마지막 기회야. 거절할 거면 지금 거절해. 너도 결국 그림자에 발 들이는 거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과 손잡는 것일 테니……. 아니면… 서로 꼰지르지 말고 무덤까지 가져가는 거고. 걸리면 우리 둘 다 시말서로는 안 끝나니까…… 인사를 다시 해야겠지요……."
태오는 다리를 꼬더니 발끝을 세웠다. 높은 굽이 정강이를 느릿하게 스쳤다. 고이 깍지낀 손은 무릎 위에 정갈하게 포개고, 시선은 올곧게 정면을 향했다.
"한때는 우리를 중개자라 했다마는…… 지금은 이름을 말할 수 없지. 꼬리를 잘랐거든."
양심은 어여쁜 장식에 불과하고, 윤리와 도덕은 미사여구로 붙이는 것이지 실천하지 않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족속들. 뱀들이 모인 곳이자 결국 인간이 될 수 없는 존재들이 모여 생겨난 집단.
"다만, 인첨공의 가장 어두운 곳임은 변함없으니…… 밑바닥에 온 걸 환영해, 캡틴."
이번 거래를 통해 그쪽은 올려주고, 우리는 더 깊이 숨고. 에어버스터에게는 미안하지만…… 인간은 덧없으니 약조는 깨어지기 마련이지 아니한가. 태오는 나지막이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이제 조금 더 친하게 지내자. 라고.
5시 30분에 일어나서 강아지들 한 시간 산책시키고 들어와서, 한 시간은 더 잘 수 있겠다며 잤더니 8시 15분에 일어나버린 서한양. 한양은 멍한 표정으로 욕실로 간다. 몸을 움직이기 귀찮은지, 세면대의 수도꼭지마저 염동력으로 돌린다. 그대로 머리를 세면대에 푹 담그는 한양. 대충 담근 다음에 샴푸통을 움직여서 자신의 머리 위에 뿌리고, 거품마저 능력으로 머리를 움직이면서 낸다. 근데...머리를 감아도 상의는 벗고 감지.. 반팔 다 젖었네. 헤어드라이기를 움직여서 머리를 말리고 칫솔을 움직여서 양치를 하고 나온다.
한양은 욕실에서 나온 뒤에 갑자기 양팔을 벌리는데.. 교복마저 능력으로 입고 있었다. 그렇게 가방을 챙기고 나오는 서한양. 현관문을 나와서 시계를 보니... 8시 26분이다.
" 이 방법 밖에 없군... "
아파트 복도의 창문을 열고는.. 그대로 하늘을 날아서 등교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귀에 버즈를 꽂고, 휴대폰을 띄워서 드라마를 보면서 날아가고 있다. 목이 마른지 물을 마시면서 가는데, 오X어게임의 충격반전을 보면서 입에서 마시던 물을 휴대폰에 뿜어버리는 서한양이다.
[8:29 AM]
결국 1분 전에 교실의 창문을 통해 도착한 서한양. 오늘도 지각은 면했다.
2. 1년 뒤의 모습
두 가지로 나뉜다!
가. 한양의 20살은 그저 놀고먹는 백수의 모습
나. 스토리 후반부에 대학에 다시 뜻이 생기는데.. 혼자 공부하기에는 의지가 약하고, 그렇다고 빡센 재수생활을 원하지도 않아서 희망유급을 해서 목화고를 1년 더 다니는 경우 (현실에서 그랬으면 읍읍...) (어쨋거나 의지박약) 저지먼트는 안 함.
당신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을 금은 놓치지 않는다.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바로 내놓은 답변에, 윙크를 해오는 당신을 바라보는 금의 표정은 달리 사뭇 진지하였을 것이었다.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의 생각으로 가득 찬 이 연하에게는 그런 장난은 또 하나의 기회인 것이다. 극장 안에 고이는 어둠에, 각자의 표정이 어떤지 유심히 살필 수는 없지만. 제 사랑을 느꼈을 당신의 표정이 어떨지는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 좋아한다는 말로도 부족할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말하든 부족한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당신의 목소리는 다른 때와 달리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금은 그런 당신의 말에 소리 내지 않게, 옅게 미소를 짓는다. 시작하는 영화보다 당신에게 시선이 더 가는지라. 이러다가 상영 시간 내내 당신만 바라보다가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고 끝나는 건 아닐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영화가 시작하면 금은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린다. 연한 장미색, 따뜻한 색으로 가득한 장면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으나, 아직 서로를 못 알아보는 두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을 보다가, 금은 손을 더듬어가 당신의 손을 찾으려 했으니. 당신의 손등을 스치듯이 만지다, 부끄럽다는 그 말에 손가락으로 손등을 지그시 눌렀을 것이었다.
의미 그대로 [특별 관리]가 필요한 대상이 입원하는 병동이었지만 그 [특별 관리]라는게, 일반적인 의료의 범주를 넘어가는 것이 대다수였다.
예를 들면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킨 학생이라던가, 예를 들면 어느 사건에서 '주워 온' 악인이라던가.
"흐흠-"
오늘은 그 특별 병동에서 커리큘럼을 치르는 날이었다. 요근래의 연구 성과를 위해 직접 실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뭐, 유별난 일도 아니었다. 본래 어떤 약이든 시술이든 '임상실험'을 거쳐서 완성되지 않는가? 그것이 인간에게 밀접한 것이라면 더더욱-
"인간으로 실험을 해 봐야 하겠지요. 안 그래요? 진윤태 씨."
나는 싱긋 웃으며 마취 상태로 수술대에 누운 그를 바라보았다. 적절히 투여한 약효 덕분에, 강제로 반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그를.
"꽤나 좋은 표정을 하고 계시네요. 진윤태 씨. 이게 그렇게나 두려울까요? 스스로 마취약인지 마비약인지 모를 것을 잘도 주사하시던 분이?"
산뜻하게 말하며 손에 든 것을 까딱였다. 묵직하고 차가운 기계- 의료용 전기톱이 언제든 모터를 가동시켜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N차 절단, 시작합니다-"
드르륵 위잉!
시작 신호와 함께 톱의 모터를 가동시키자 금새 손 안이 진동으로 가득 찼다. 힘차게 돌기 시작한 날카로운 톱날은 아주 깔끔하게 다리와 팔을 하나씩 해치웠다. 제법 거친 시술이었으나, 생각보다 많이 튀진 않았다. 그에 대한 약물 시술 역시 완벽하게 처치를 해두었으니까.
"음- 오늘도 아주 깔끔하게 잘렸어요. 혈류도 적당하고, 그럼 카메라를 이 쪽으로 당기고-"
미리 수술대 옆에 대기시켜둔 카메라를 끌어 절단면에 포커스를 맞췄다. 세포가 회복되고 접합되는 모든 순간이 담기도록. 세팅을 마친 후, 잘린 팔다리를 제자리에 대고 회복을 시작했다.
혈관을 잇고 근육을 잇고 신경을 잇고 뼈와 뼈 사이를-
손상된 절단면이 온전하게 치료되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상세히 떠올리며 능력을 사용했다. 마침내 피부의 세포 하나까지 전부 이어졌을 때, 식은땀을 주륵 흘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 늦지 않게 주변 기기의 신호들을 기록했다. 잠시 분주해진 후, 온전한 사지를 되찾은 그를 바라보며 다시금 웃어보였다.
"실험 종료입니다-."
나는 작게 흥얼거리며 카메라를 정지시키곤 적정 온도로 보관 중이던 수혈팩과 수액팩을 가져왔다. 그것들을 차례대로 그의 팔에 연결한 뒤, 투여량을 조절 후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수술대 가장자리에서 떨어진 피가 이제 바닥이 아닌 내 무릎 위로 떨어졌다. 개의치 앉고 선혈 낭자한 수술대에 팔을 기대 턱을 받치곤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그랬었지요. 심심풀이로 저지먼트에 대해서 조사했다고. 내 배다른 남매들에 대한 것도 알고 있다고 했죠, 아마? 나는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에 대한 우열인 듯 참 기뻐보이던데, 그런데- 당신, 나에 대해서는 뭘 얼마나 알았다고 그렇게 자신만만 했을까요?"
새파란 타일로 이루어진 작은 수술실은 아무리 나즈막한 목소리라도 깊이 있게 울렸다.
"당신이 알아낸 건 기껏해야 내 태생, 내 이력, 그것 뿐이었겠죠? 낳아준 부모에겐 두 번이나 버려지고 그나마 잡은 것조차 빼앗기고 남겨겨진, 태생 버러지였던 '천혜우' 밖에 몰랐을 거에요. 뭐, 당신은 제법 유능하니까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도 알았을지 모르죠. 아, 아니다. 그건 몰랐을까요? 알았다면 나를 그렇게 도발하지 않았겠지. 고작 두 번, 내 심기를 건드린 대가로 이런 꼴에 처할 줄 몰랐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안 그래? 진윤태 씨."
하하! 짧고 높은 웃음이 공기를 찢듯 퍼졌다.
"나 역시 '바다'의 자식임을 간과하지 말았어야지. 당신. 가만히 있는다고 아무 생각도 안 했을까? 하려는게 고작해야 치졸한 명목의 복수 뿐이었을까? 심장 전문의라서 모든 심리를 꿰뚫을 수 있을 줄 알았을까. 참으로 어리석어.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심리도 있음을, 영리하게 알고 있었어야지."
푸른 타일 위로 회백색 조명 하나 비추는 수술실은 심해 한복판에 아귀의 초롱 드리운 듯 어슴푸레 하며 푸르렀다. 그에 맞춘 듯이, 진녹색 수술복에 검푸른 머리카락 길게 늘어뜨린 나는 피 묻은 손으로 마스크를 끌어내렸다. 여지껏 눈으로만 비췄을 웃음이, 하얀 얼굴에 함뿍 담기었다.
일렁이는 푸른 눈동자와 함께.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희생을 실천함으로서 그 말을 성립시킨다죠. 앞으로도 무수한 희생, 기대하고 있을게요. 진윤태 씨."
나는 웃는 얼굴로 주사기를 꺼내 그의 팔에 찔렀다. 담겨있던 내용물을 전부 주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나랑 언니께 드디어 호신술을 배울 기회가 생겼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고생은 같이 하는 거라 우겨서 연구원이랑도 같이 갔다. 언니는 어딘지 쑥스러운 기색이면서도 어느 방향에서 붙잡히냐에 따라 반격하기 좋은 급소를 가르쳐 주었다. 근데 언니가 몇 번이고 차근차근 보여 줄 때는 알 것 같다가도, 막상 따라하려고만 하면 몸이 안 따라 줬다. 연구원이 붙드는 역할을 맡아 주면서 날 어찌나 놀려먹던지...;;; 인생은 실전이라더니 이래서 나랑 언니가 위험을 예지하는 능력을 지니고서도 격투술은 격투술대로 익히셔야 했던 거구나. 위험을 먼저 감지하는 능력도 찰나에 공방이 오갈 땐 무소용인데 내 능력은 말할 것도 없겠다고 실감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능력을 쓰는 속도를 높이는 훈련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라면 상관없겠지만, 첩보 영화에서처럼 급한 상황에선 1분 1초가 아쉬울 거고, 일전의 꿈에서처럼 못 캐내고 들키면 수박 되잖아...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연구원한테 앞으로는 정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정보를 캐내거나, 비슷한 정보라도 더 빠른 시간 안에 캐낼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짜 달라고 부탁했더니, 연구원은 (일전에 상담 쪽 커리큘럼을 구해 달라고 했을 때처럼) 놀라서는 호신술 배우다 머리가 어떻게 됐냔다. 나라고 의욕 없는 사람만은 아니란 건 지원금 나오면서부터 알았을 텐데,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