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말라고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사기를 내뿜어대는 센의 모습에 조금 속이 답답해져 한숨을 내쉬었다. 저거 제대로 알아듣고는 있는걸까. 이런 건 공포를 주입해버리는게 최선의 교육방법이겠지만... 보는 사람도 많고 어디까지 헤집어놓아야 멀쩡한 가치관을 가지게 될지 모르니 그것 역시 난감한 노릇이다. 덤벼드는 모든 이를 죽였다니 무슨 무차별 살인귀나 아귀도 아니고... 요괴라면 조금 더 존재방식에 구애될 필요가 있거늘... 하여간 요즘의 요괴들이란.... 공의 형태로 돌아다니면서 인간에게 신뢰를 보내지를 않나 하물며 이쪽은 사고방식이 쇼와...헤이안이지를 않나... 그래도 둘다 아직은 괜찮은것 같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그 시절은 이해한다만... 지금은 한명이라도 죽였다간 앞으로도 영원히 해를 못보게 될거야."
약간의 경고를 담아 위압만 주려한다. 어느정도가 적절할지는 몰라서 어디까지나 이 아이가 지금까지 뿜어댄것보다 아주 약간 더... 정도면 괜찮으려나. 금방 기운을 거두어들이고 아이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았다. ...잘도 가공했네. 낡은거라 금방 깨질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손재주가 좋은걸까.
"그게 나의 올바른 존재방식이니까 그런거야. 인간도 요괴도 하물며 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위험과 마주하면 신을 찾는 법이지.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찾는 것 처럼."
하늘을 잃은듯 울면서 신을 찾는법이다. 신이기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하기에 신인 존재. ...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스스로도 어쩐지 이 일년사이 많이 변했구나싶은 생각은 들었다. 감상적이 되었다고 할까 사색이 많이 늘었지. 새파랗게 어린애에게 누이니 뭐니 하는 옛벗을 본 탓일까. 아마 그럴지도.
"아직 어린아이가 방황하고 있다면 길정도는 알려줘야지. 너처럼 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같은 아이는 처음이지만."
헤이안 말부터 그 존재는 단 하나의 원칙만으로 살아왔다. 적은 죽인다 적이 아니라면 신경쓰지 않는다. 그 것이 전장의 잔상인 그 존재의 존재 법칙이나 다름없다. 약간의 위압을 주려는 당신에게 그 존재는 무표정하게 바라볼뿐이다. 그정도로는 위협도 안 된다는 것일까. ..실제로 그 존재가 평소에 흘러나오는 것은 '잔재'에 불과한 것도 있지만.
"신을 찾는다라- 내 탄생은 엄밀히 말하면 그 신들이 버린 것들의 모임?이라고 전에 본 퇴마사가 그러긴 했어"
아베노 세이클럽이었던가?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은듯 가볍게 생각하다 이내 떨쳐버립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길이 어딘지도 모르는 것 같은 아이라는 말에는 무표정하게 그러나 어딘가 다른 분위기로 한자루의 검과 같이 냉정히 이야기했다.
그런 방법으로밖에 살아갈 수없는 아이라는 것은 알고있다. 이해와 납득은 별개의 문제인지라 지금의 상황은 일어난 것에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쁜이지만. 죽음으로부터 태어난 존재가 죽음에 이리도 무던하다니. 조금은 감탄마저 느껴질 정도다. 인간의 흔적도 없고 그저 전쟁터의 원념과 저주가 쌓여서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슬프기는 하지만,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다.
"버린것들 말이지."
...실시간으로 잊혀지고 버려지는 여자도 있는데. 이렇게 된다면 근간은 구천을 떠돌던 망령의 부류인가. 그런거라면 대부분은 염을 하면 멋대로 성불하겠지만 이런 느낌이라면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언제라도 이 아이가 온 곳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는 있을지도 모르겠네.
"약속은 언젠가 이루어지는 법이고 그럼에도 너는 살아있을거야."
아니면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고는 이미 지나간 사람을 곱씹으며 살아가겠지. 혼자 시간이 멈춘 세상에서. 그것은 익숙한 경험이었기에 말을 더이상 길게 가져가지는 않았다. 저것은 어쩐지 맹목적으로 느껴졌기에.
"다들 처음에는 길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해. 지금이라도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무난하게 살아가는 법을 생각하는게 좋을거야."
다를것이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오지않는 구원에 지쳐 기도가 원념으로 바뀐이들. 어느정도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저 안에 얼마나 많은 혼이 있을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절망에 몸부림치고 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으나, 스스로의 대표가 저리 완고하니. 내가 해줄수 있는것은 없다. 억지로 보내버리려 한다면 할 수 도 있겠지만.
"그렇게 살아봐야 끝에 얻을 수 있는건 진득한 절망 뿐인데."
이제야 겨우, 깊었던 어둠에서 한줄기 광명을 찾았다. 지금까지 역할에 얽매여서 누군가의 대역을 서고 있던 내가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리석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저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기에.
"...뭐 네가 할 생각이 없다면 됐어. 차라리 평생 지금모습 그대로 있어줬으면 좋겠네."
어느새 비어버린 잔을 어디론가 보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안주나 삼을까 했는데 괜히 안좋은 이야기를 들어버렸어.
꼬맹이는 답지 않게 무서워 보이려 비범한(?)듯한 표정과 함께 속삭이듯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도 하루가 지났다. 창밖으로는 조용히 야경이 흐르고. 하루를 지날때마다 나는 하루를 죽는다. 난간에 기대어 허공에 몸을 맡기는 일을 상상하면서. 그렇다면 '아, 얼마나 편해질까?' 라고 매일 그렇게 중얼거리고 마는 허무한 일상.
시계는 이미 자정을 지났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두 눈은 더욱 또렷해지고. 베개에 뺨을 기대면 반사적으로 흐르는 눈물에 한 시간, 한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위에 덧대이는 수건이 한장, 또 두장. 그러다 지쳐 눈을 감으면 잠이 다가오는 순간. 두 귀는 먹먹해지고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녀져 내리는 그때. 내 몸은 굳고. 느껴지는 누군가의 시선. 그리고 소름 끼치게 뺨을 훑는 따뜻하면서 축축한 감각. 누군가가 나를 핥고 있다고. 확실하게 느낄 수 있지만. 나는 그저 탁자 위에 놓인 약의 부작용 따위라고. 그렇게 치부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도. 그 다음날이 되어도. 약을 끊어도 계속되는 악몽에. 불현듯 소름이 끼치고 말아. 피곤함도 잊어버린채 무서운 마음에 눈물 조차 나지 않던 어느 날의 자정. 잔뜩 긴장했음에도 평소보다 우울함이 덜해서인지 이상하게도 잠은 더욱 빠르게 찾아왔다.
그 몽롱한 호흡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상하다. 오늘은 느껴지지 않네. 역시나 약이 문제였던걸까.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이번에는 이불 밑. 다리쪽에서 뭔가 간질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의 머리카락? 짐승의 털..? 그게 아니라면...
까맣게 물든 시선 속에서도 이불 밑에서 꿈틀이는 정체불명의 존재에 쌓여왔던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쏟아 내리듯 했다. 그럼에도 그 날은 전날처럼 어김 없이 무력한 나날이었기에. 오들오들 떨다 지쳐 잠에 드는 것이 전부였다. 대체 꿈 속에 나타난 '그건' 무엇일지...
아. 그런 일도 있었지.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몇차례 계절이 지나. 아픈 상처도. 현실의 괴로움도 어느정도 사그라 들어 나는 오랜만에 깊은 단잠을 잘 수 있었다.
그날은, 아주 오랜만의 꿈이면서도 평소와 다른 꿈을 꾸었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이사 오기 전 방 안의 천장. 나는 기억 속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때. 잊고 있었던 감각이 또다시 내 이불 속에서 살랑이기 시작한다. 마치 나를 간지럽히듯. 저를 알아봐 달라는듯. 아니면 내가 두렵기를 바란건가? 괘씸한 악몽이네.
아, 잠깐동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왠지 오기가 생겨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그리고 내 발치 밑으로 향한 시선에는...
너였구나. 천사 같은 작은 털뭉치. 그 아이는 몽실하면서도 짧뚱한 꼬리를 살랑거리며 내 다리 밑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 맞아. 이곳은... 그때 이 아이와 함께 살았던 옛 장소. 그리고 난 항상 이 자리에서 잠을 청했다. 매번 꿈에 나타나 저 자그마한 꼬리로 내 다리를 간질이고 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너무 반가워 손을 뻗으며 이름을 불러버리면. 눈을 감고 있던 녀석은 단추 같이 작은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내 품으로 달려와 마른 뺨을 혀로 핥아준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바보같이 엉엉 울어버렸다. 그러자 그 아이는, 뺨을 타고 흐르는 내 눈물을 혀로 핥아준다. 익숙한 것처럼. 그래, 너였어. 너였다구. 나는... 어째서 몰랐던걸까. 너는 예나 지금이나 나만을 바라봐주고 있었구나. 그런 너에게 나는....
오늘도 하루가 지났다. 창밖으로는 조용히 야경이 흐르고. 하루를 지날때마다 나는 하루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꿈만 같았던 그 포근한 작별을 기억하며. 이제는 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씩씩하게 살아가볼게. 오늘도 그렇게 다짐했다.
그 아이는 그 날 이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현실에 순응하고,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평범이라는 단어를 좇기 위해 부리나케 달리고 있다.
아가야. 내게 있어 너란 이름은 정말 특별한 존재였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내게 영화처럼 다가와 소중한 기억들을 선물해주고 떠난 너. 미안해, 이젠 정말 혼자라고 생각해서. 난 널 잊으려고 노력했는데. 너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구나. 더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젠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누비며. 좋은 곳에서 편히 보낼 수 있도록 바랄게. 안녕
"...이렇게 이야기는 끝- 뒷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이래저래 이별의 아픔도 잘 견뎌내고 잘 살고 있을기라고. 내는 그래 생각한다- 그라모 해피엔딩 아이가? 히히... 아.. 근데 정말로 내 혼자 가야하나? 밖에 어두운데..."
이야기가 끝나면, 꼬맹이의 손에 길다란 촛대가 쥐어지고, 심지에 불씨가 머금어진다. 으스스한 이야기가 오가는 밤에 어두운 폐창고로 떠나는 길은 상상만 해도 어깨가 파르르 떨려오지만. 결국 규칙은 규칙..! 울며 겨자먹기로 방을 나서게 되었다.
그래. 어차피 가야할 거. 단칼에 해치워버리자- 라고, 꼬맹이의 와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쿵쾅쿵쾅 요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린다.
사실, 그 존재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가 어리석었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부러 외면하고 있었다. 그것의 처음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유에서부터였다. 비루했던 유년기를 구태여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으나, 발단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말이지. 떨어져 나간 마음의 조각으로 가면이라는 것을 만들어 현실에 위안 삼았고, 그 아래 떨어진 부스러기를 꽁꽁 뭉쳐서 내 편을 하나 만들었다. 쉽게 말해서 상상친구를 만들었다. 스스로 정신병을 불러왔다 욕해도 할 말 없다. 그런 망상을 떠올릴 만큼 끔찍이도 외로웠으니까.
처음에는 그것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그것이 말한다고 상상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아픔과 슬픔을 공감해 주었고 살아갈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세상에 혼자 남았는 듯한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각난 마음은 점점 더 이지러져 돌아보면 낯간지러운 가면이라는 이름의 껍데기가 하나 둘 늘어가더니 그것의 크기도 함께 불어나서 그것이 눈에 보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어버렸다. 작금에는 흑백의 반전된 스스로의 허상의 모습으로 그림자에 붙어 다니며 악의에 가득 찬 말들을 쏟아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단 말이다.
이제 조금은 행복해도 되나 싶었는데. 선도부에 들어가고 친구를 사귀고 시라카와를 만났는데. 그녀가 그들이라 칭하는 것을 보면, 역시, 이것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 몸을 빼앗으려는 질 나쁜 요괴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미움받기 두려워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다만 단순히 어리석은 망상에 의한 마음의 병이다면 마음을 다잡고 견뎌내는 것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그들과 같은 비현실의 괴이한 존재다 해도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일지가 두려운 의문이었다. 절망이 그들의 삶이고 먹이니 그것이 없다면 굶주리고 이내 숨을 거두겠다는 그녀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두려움에 절망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지켜봐 주었던 신 되는 존재가 곁에 있고, 사랑하는 남자친구인 시라카와 유우키가 있고,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까. 질 나쁜 요괴 따위, 절대로 절망해 주지 않아서 말려 죽여버릴 테다.
야생을 전전하며 살았던 태생이자, 자연이 천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시절이며 한때는 천상의 경관까지 눈에 담았던 신에게는 이 섬의 무엇이 그리 특별한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어린 인간 녀석들은 하나같이 신이 나서는 이동하는 차에서부터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내려서는 바다를 보며 소리를 질러 대고, 온종일 신이 나서 뛰어놀다 못해 밤에는 저들끼리 모여 끝도 없이 쑥덕거리기까지……. 제아무리 무신이라 한들 연배에서 비롯한 정신적 기력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가뜩이나 타자의 곁에서 무방비하게 잠들게 된 판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차라리 밖으로 나가 야숙을 할까 하던 참이었다.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실천으로 옮기기 직전. 당장이라도 본연의 야생성을 따르려던 무신을 멈춰 서도록 한 자는 유독 활달하게 떠들어대던 학생 하나였다. 보다 정확히는,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발 디디자마자 뒤에서 들려온 말이─.
"야, 지금 4층에서 백물어 할 사람 모은대. 재밌겠는데 나도 갈까?"
탁. 기세 좋게 내딛은 걸음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황당함이 정도를 넘어서 말문이 막히고 가려던 길도 잊은 것이다. 겁 없기도 하지. 아니, 이건 무겁 담대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경계境界와 경계境界조차 잊은 아둔함이라.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옛 시절의 위명을 잃은 것은 신뿐만이 아닌 모양이지. 실질적인 공포로서 자리매김했던 요귀가 이제는 어린 청춘들의 하룻밤 놀잇거리로 전락한 셈이다. 하지만 그렇단들 무모한 짓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곳은 마냥 경각 없이 휴양을 즐기며 놀기엔 음험한 곳이다. 무언가가 벌어지기엔 최적의 조건 아니겠는가? 멋모르는 인간이 제 목숨 자기가 내버리는 우행 쯤이야 아무래도 좋다. 그러다 시끄러운 녀석들이 영영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더욱 좋을 테다. 하여 무신은 문간에 선 채로 짧게 고민했다. 무슨 불상사가 벌어지든 상관 않고 가만 둘지, 참. 그러고 보면 사귀를 포살한 지도 오래다. 모처럼이니 옛 시절의 역을 행하여 볼지.
결국 '화문제천'이 어느 쪽을 택했을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 없겠다.
*.
─훅.
옅게 내쉰 숨결에도 가녀린 불꽃 위태로이 뒤흔들린다. 어둑한 방 안에 채 성숙하지 못한 소년少年들이 혹여라도 불이 꺼질까 제각각 촛불을 지켜 가며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짙은 암중에 자그마한 불꽃 흔들흔들 빛나고, 모두가 그 빛만 좇으며 두 눈에도 아롱아롱 불꽃 새긴다. 그 광경 제법 기묘하여 어쩐지 그것이 넋 빼놓는 귀신의 불 같기도 하다. 홀려버릴 것만 같은 빛을 응망하며, 신은 고요히 서두를 떼었다.
"백 개의 이야기를 마친 뒤에는 이 자리에 있던 인원 중 누군가가 사라진다는 전승도 더러 있지. 사람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일이라 하면 영霊의 소행이라고들 한다는 것쯤이야 모두 알리라. 하니 이 나는 카미카쿠시의 이야기를 하겠노라."
무츠陸奥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마을에 살던 오코우란 처녀가 하룻저녁에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어느 곳을 뒤져보아도 여인의 흔적을 전연 찾지 못하여, 이인里人들은 입을 모아 오코우가 카미카쿠시를 당했음이라 결론을 내렸지. 영적인 존재가 데려간 것이라면 범인들로만은 해결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마을은 외진 변읍이었기에 고명한 법사를 모시기에도 여의치 않은 판이었다. 포기해야만 하나 생각하던 차에 때마침 야마부시山伏 하나가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인간들은 곧바로 그 야마부시에게 도움을 청했느니라. 야마부시는 승낙하였다. 그러나 요건을 대길, 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했지. 그는 굳게 약속한 뒤 폭포에 가 예고한 시간 만큼 내리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21일이 지난 때, 야마부시는 돌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폭포를 나오며 수행을 끝마치나 싶더니 홀연히 폭포 옆의 못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인간들이 아연실색하기도 전, 이내 야마부시는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팔 안에는 3주간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오코우가 붙들려 있었지. 여인은 이미 숨이 멎고 몸뚱이마저 차게 식어 있었으나 몸을 따뜻이 덥혀 주자 다시금 되살아날 수 있었다.
오코우의 몸은 조금도 상한 곳이 없었으나 단 하나만은 돌이키지 못했느니라. 저편에서 돌아온 후, 여자는 말을 잃었다. 목소리를 빼앗긴 것인지 넋이 나간 것인지 그 실종 이후로는 일평생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지. 무어, 이승에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지만 말이다. 여하간 그리하여 오코우는 자기를 구해 준 야마부시와 혼인하여 이후론 범상한 삶을 살았다 한다.
다만 그자가 노병이 들어 죽기 직전 한평생 다물렸던 입이 그제야 열렸다고 하는데, 오코우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러했다.
'너무도 새까맣고, 추웠다.'
…마을의 인간들도 강이나 못 안을 뒤지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3주가 지난 후에야 그 자리에서 나타났는지, 이미 끊어진 숨은 어찌 되돌아왔는지. 무슨 일을 겪었기에 마지막 순간에야 한평생 다물렸던 입이 트였고, 최후의 유음마저도 '신이 숨긴 동안 '의 이야기밖에 하지 못했나? 공포인가, 외경인가, 황홀감인가? 그 한 마디 말에 담겼던 감정은 과연 무엇이었을는지.
여인은 신의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촛불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두운 길을 걷는 것도, 불길한 이야기에 이끌린 음한 것들도 무신에게는 하등 두려울 것 없는 일이다. 홀로 좁을 길을 걷는 걸음엔 망설임이 없다. 삐걱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 들고 온 촛불을 가볍게 불어 꺼뜨렸다. 그렇게, 암전. 그러나 무신은 깜깜한 그늘이 드리운 방을 나가지 않고 어둠 속에 오래도록 섰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어둠은 그저 고요할 뿐이다. 안개 같은 연기만이 뿌옇게 피어 오르며, 회명과도 같이, 야음과도 같이, 암흑만이 있다.
그저. 불경한 무광無光.
. . .
……이내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스며나온다. 암중에 거미처럼 도사린 채 호시탐탐 입맛을 다시던 것일 테다.
"과약 뒤져 보니 하나 정돈 나오는군."
히죽 웃던 낯이 뒤틀린다. 표정 따위의 문제는 아니었다. 늘상 뒤집어 썼던 인간의 태가 우그러져 온갖 것이 우글거리는 흉상凶狀으로 변모한다. 어느덧 서슬처럼 시퍼렇게 곤두선 턱으로써 신이 고했다.
"네 명줄은 질겼으면 좋겠다."
흔연한 기색 만연한, 즐거운 웃음기 서린 목소리였다.
*.
무얼 하느라 그리 꿈지럭거렸는지, 무카이 카가리의 귀환은 왜인지 늦었다. 그러나 찌푸린 표정 흉흉하여 누구도 차마 이유를 묻진 못했다. 촛불을 끄며 검댕이라도 만졌는지 옷자락 끝이 조금 시커멓고, "젠장, 고작 툭 쳤다고 죽어 버린다고…?" 같은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긴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궁금해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