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집이 어디야? ♪ 삿갓에 대한 감사를 전하러 왔다네 ♪ 할아버지 집이 어디야? ♪ 삿갓에 대한 감사를 전하러 왔다네 ♪
노랫소리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마침내 할아버지 집 앞까지 왔습니다. 할아버지가 살며시 문을 열어 보니 할아버지가 준 삿갓을 쓴 지장보살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집 앞에는 설날 떡과 음식이 산더미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끝-
먼지 낀 필터처럼 뿌연 어느 여름 날, 책장이 덮이면 '삿갓보살님 이야기' 라는 글씨가 작은 손뼉에 맞물린다.
그 시절 꼬맹이는 게임기 대신 손떼 낀 책들과 더욱 가까워서. 벌러덩 드러누운 곁에는 언제나 여러 동화책들이 방석처럼 너저분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조금 따분해지면 엄마가 건네주신 얼음 띄운 우롱차 한 잔에 목을 축이며, 책상 앞에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게 일상의 대부분이라. 대화보다는 활자가 때로는 노랫소리가. 소년에게는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복숭아 동자 이야기, 곰 동자 이야기, 온갖 요괴와 신 이야기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삽화와 커다란 활자 가득한 책을 바라보며 언젠가 소년은 어머니에게 물었더랬다. 신은 어떤 존재일까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곤란한 미소뿐이었지.
어머니는 분명 답을 알고 있었을거야. 다만 그때의 아이는 그 의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못했던거지.
여름 바다 쓸리는 소리에 열기가 식어갈 무렵.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다들 들뜬 목소리였고, 그 틈에 낀 꼬맹이도 아쉬울새라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전날 밤 진실게임에서 있었던 일부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에 흠뻑 젖은채로 워터파크에서 하루를 보냈던 이야기, 만찬 같던 저녁 식사까지.. 쉴새 없이 재잘대다보면 선생님의 손뼉소리와 함께 소란스럽던 목소리도 쉬이 가라앉는다.
"아까 거기 맞제? 지금 가모 억수로 어두울낀데. 무서버가 우야노~ 우야노~"
어두컴컴한 수해를 걷는 무시무시한 담력훈련..! 그 설명을 듣고 있다보면 소름이 돋은듯 옆자리에 있던 동급생과 장난스레 꽈악 껴안는척을 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전날 백물어에서 으스스한 이야기를 그렇게 풀어놓곤 바로 무시무시한 밤길로 보내버리다니. 쌤들도 엄청 심술쟁이들이구나-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흘리다보면 어느덧 오솔길을 함께할 이름이 귓가에 다가온다. 그 이름은 바로...
'무카이.... 카가리....?'
둘씩 짝이 갈리고, 이제야 삼림에 접어드는 길목에 닿았을 뿐인데. 어느덧 그 옆에 서면 왠지 모를 담대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숨이 턱턱 막힐듯한 표정이 된다. 이름은 들었지.. B반에 꼭 3학년 슨배임 같은 애가 있다고.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대하는건 처음이다.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요괴가 우왁- 나타나도 무덤덤하게 멱살을 잡을것 같은 저 분위기에 든든~한 기분이 들어서. 오히려 좋은거라고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와아, 입구만 완전 까맣다 그제...? 드가모 아무것도 안보이겠다."
아, 여기까지 오는데 한마디도 안했나. 뭔가 가슴이 옹졸해져서 슬그머니 걸음만 옮기긴 했었지.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기가 망설여지는건 오랜만이라. 이것도 나름 신선한 거라고, 생각해버렸다. 울창한 나무를 바라보며 무카이에게 슬쩍 한마디를 걸어보았다.
조용한 어둠을 밝히는 불꽃이 천천히 흔들렸다. 그 여러 촛불을 중심에 두고 사람들이 둥글게 앉아있었다.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 사이에 유우키 역시 앉아있었다. 이곳은 백물어 현장. 이런 여름날 밤에는 한번은 있을 법한 이벤트였다. 평소 괴담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그였으나 기껏 하는 이벤트인만큼 참여하기 위해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와시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시라카와 가에 전해지는 이야기에요. 저희 시라카와 가문은 원래 다이묘 집안이었거든요. 물론 역사에는 남지 않고, 그냥 저희 집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라서... 솔직히 진짜 다이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쳐요. 그렇다고 하니까요. 어쨌든 당시 시라카와 가문에서 일하고 있던 츠키시마라는 집안이 있었다고 해요. 이 츠키시마라는 분은 상당히 엄하고 무서운 사람이라서 규율을 준수했다고 하거든요. 대체 얼마나 엄하고 무섭게 대하는 것인지 당시 시라카와는 조사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밀정을 보냈어요."
첫날이 지났어요.
ㅡ츠키시마의 아들이 반찬 투정을 한 것 때문에 반성문을 10장 쓰게 했습니다.
둘째날이 지났어요.
ㅡ츠미시마의 아들이 도자기를 깨뜨린 것 때문에 반성문을 10장 쓰게 했는데 글씨가 엉망진창으로 바뀌었다는 모양입니다. 현장을 보진 못했으나 방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로는 왼손으로 쓰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 같았습니다.
셋째날이 지났어요.
ㅡ츠키시마의 아들이 평소보다 검술 훈련 성과가 빈약하다 하여 반성문을 또 10장 쓰게 되었는데 글씨가 더욱 엉망진창이 되고 방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츠키시마가 어째서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냐고 이야기를 하자 차후에 반성문을 쓴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고 아들이 말했습니다.
넷째날이 지났어요.
ㅡ츠키시마의 아들이 밥 먹는 모습이 너무나 천박하다 하여 반성문을 또 다시 10장 쓰게 되었는데 글씨는 이제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며 그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시라카와는 츠키시마를 내쳤고 그 누구도 츠키시마의 밑에서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고 최후에는 결국 자기 부하에게 암살당해 목숨을 잃었다고 해요. 고작 반성문 10장을 3번 쓰게 한 것으로 오버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글쎄요."
의미심장한 웃음소리를 내며 유우키는 살며시 촛불을 들어올린 후에 창고로 천천히 향했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어둠속에서 촛불이 천천히 흔들렸다. 창고로 향하는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가 조용히 울리는 것 같았으나 유우키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창고를 향해 나아갔다.
덜컥.... 후우....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규율을 지키지 않고 몰래 잠을 자지 않는 이들이 너무나 많구나. 너도 반성문 10장 한번 써보겠느냐.
" 아, 그렇지, 류지가 나를 닮긴 하였어_ 짜증나는 시댁의 그 어떤 부분도 안닮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 "
말끝을 흐린 레이나가 쓰게 웃으며, 옆에 흐르는 강물에 시선을 두었다. 지금도 흐르는 강물에 둥둥 떠있는 듯, 자신의 큰 아이가 억울하게 눈을 감지 못하고 자신에게 구해달라 손을 뻗는 것 처럼 보이는데 낭인의 부탁 따위가 아니었다면, 눈 앞에 있는 지네신 따위 결코 만나지 않았을텐데
물론 그녀 역시, 사토 가문이 멋대로 정한 가풍으로 죽은 레이지 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눈앞에 존재하는 무신은 그런것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이해는 하지만, 납득 할 순 없다. 그게 어미 아닌가?
그렇기에 파공음과 함께 쏘아진 우산이 자신의 옆을 스쳐지나갔을 땐 올게 왔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사토 레이나는 뱀과 같은 눈을 번들거리며, 눈 앞의 갑충을 바라보았다.
" 처음뵙겠습니다. 본녀는 고사기에 八俣遠呂智 라 적혀 그리 불림 당했으나 , 타케하야스나노오노미코토 로 부터, 그 목을 베여져 이제는 과거의 악명을 잃고 현재는 자매들과 함께 치수를 다스리는 그 편린이라 볼 수 있는 존재 " " 이러니 저러니하여도, 지금은 사토 레이나라 불리고, 칭하고 있습니다. "
여름의 열기가 강하다 하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낮의 이야기일 뿐, 해가 저물고 난 뒤의 해변에서는 불쾌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들켰겠지. 진실게임이 끝나고 얼마 뒤 선생들의 인도를 따라 많은 학생들이 숙소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남아 밤공기를 즐기고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천년전만 하더라도 취해버린 히데미를 데리고 숙소로 들어갔겠지만 아무래도 요즘같은 세상에 남학생들이 자는 숙소에 대놓고 가는건 시선이 그다지 좋지 않을것 같았기에 별도로 잡은 개인실의 호수를 슬쩍 메모에 적어 주머니에 넣어주었을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뭔가 할일이 없어진 탓에 부숴지는 파도 소리를 안주삼아 원컵 사케를 몇잔이고 비워댔다. 그렇다고 취하지는 않았지만. 딱히 지금은 취하고 싶어서 마시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상 조건반사에 가깝겠지.
"...아."
익숙한 붉은 머리가 보였다. 내 기억으로는 입이 아주, 아주 가벼운 요괴였던걸로 기억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