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 다른 말에는 그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도, 두 단어가 나오자 상당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천자. 사자왕.
그 두 단어는 어쩌면 미리내고의 '특별반'이라는 이름보다도 더 이전부터 들려오던 이름입니다. 어쩌면 영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두 사람.
" 그 이름의 무게가 썩 가볍지 않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몸에 나타나는 거품을 털어내며 말합니다.
" 단순한 '이름'만으로는 이제 특별반은 그들에게 밀리지 않고 말입니다. UGN의 협력을 받아낼 정도의 집단. 그정도로도 나름 나쁘지 않은 결과였으니 말입니다. "
그는 그리 말하며 토고의 말을 기다립니다.
>>913 " 카하노 기사단은, 한 바보로부터 시작된 기사단이야. "
바보.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진한 향취에 시윤은 자세를 고쳐잡습니다.
" 멸망해버린 이런 세상에서는 아이들은 점점 메마르기 마련이지. 이런 세계는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보다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게 되기 마련이거든. 그렇게 꿈 꾸는 법을 잊어버리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어떤 바보는 그런 아이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던 이야기를 알려주게 돼. "
동화를 모으는 기사단. 그것이 바로 카하노 기사단의 전신이었을 겁니다.
" 그 바보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자며, 그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기사단을 만들었어. 무모하지만 언젠가 영웅이 되자는 의미로. 우리들의 바보같은 이야기를, 마치 과거의 한 소설처럼 해나가자는 의미로. 그들의 고향인 '카하노'를 따서. 카하노 기사단이라 칭했지. "
그렇게 카하노 기사단이 탄생했습니다.
" 초기의 기사들은... 기사도와 같은 것들보다는 일종의 힘 센 위협에 지나지 않았어. 기사도? 예? 그런 것보단 생존이 우선시되는 세상이었으니까. 살기 위해 사람들을 착복하고, 그들을 이용해 게이트를 토벌하며 벌어먹을 것을 걱정하던 이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서 사람들에게 동화의 기쁨을 주기 위해 무기를 들었지. 그게 바로 카하노 기사단의 기사도야. "
그는 그러면서 다른 이야기들을 털어놓습니다. 새로운 동화를 모으며, 그와 관련된 기사들이 모여들고. 점점 그런 기사들에게 보호받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마침내, 작은 숲을 거점삼아 카하노 기사단의 크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기사도가 세워지고 몰락하던 시기. 카하노 기사단이 전하고자 했던 '희망'은 굳건해보였습니다.
" 그러나... "
그는 쓴 표정을 짓습니다.
이미 시윤도 알고 있을. 그 때의 기억.
" 그때의 나는 그 바보 녀석과 떨어지고 말았어.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으니 그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우리들은 다시금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지. 하지만 녀석은 그런 말을 듣지 않았어. 우리를 보고, 우리를 위해 모여든 이들이라고. 그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고 말했지. 결국 난 녀석과 반목해서... 기사단에서 떨어져 나왔어. 그리고 내가 떠난 동안 그 일이 일어나고 만 거지. "
동화의 밤. 수많은 이들이 죽고, 카하노 기사단의 기사도가 몰락했고. 흑기사가 탄생하고 말았던 밤.
" ... 어쩌면, 내가 그들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
그는 웃으며, 말합니다.
" 진짜 돈 지오테는 유약하고 부드러운 녀석이었으니까. 그 이름을 빌린 나라는 녀석과는 다르게 말야. "
[하하하, 마도의 길을 택한 이상 그래야 할 일도 생기는 것은 어찌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게 싫으면 다른 무기술이나 전투술을 택하면 되었을 일이겠지만...
[이제와서 그러기 싫다고 아주 다른 길로 빠지기에도 너무 멀리 왔네요.]
강산은 장난스레 답장을 쳐서 보내다 아, 하고 시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러고보니 시윤 씨가 예전에 에브나의 스승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었지. 이거 얘기해도 괜찮은건가? 강산은 주문형에게 에브나를 언급하기 전에 괜찮을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정주 주가의 가문원들 앞에 마도에 재능은 있으나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여자아이가 나타났을 때 아이의 의사가 존종받을 수 있는지, 또 그 앞날이 어른들에게 휘둘리진 않을지를...
#주문형과 대화를 계속하면서, 에브나를 언급하기 전에 이 행동이 시윤과 에브나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곤란한 결과를 일으키진 않을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필요하다면 잔여망념 30을 사용해 영성을 강화합니다.
" 아니.. 아닙니다. 벌써 수십년도 전의 일이니. 아마 그에게도 사정이 있을 수 있겠네요. "
" 아. 여기 자료가 있네요. "
가디언은 차분히 이야기를 꺼냅니다.
" 공연의 밤 사건 이후. 카하노 기사단은 큰 피해를 입었을지언정 몰락하진 않았었다고 합니다. 물론 단장과 부단장이 실종되긴 했으나 고참 기사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규합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흑기사'라 불리는 몬스터에 의해 기사단의 기사들이 몰살당했다고 하더군요. "
그는 하나의 사진을 시윤에게 전송해줍니다.
소름 끼치는 검붉은 기운, 두꺼운 검을 등에 매고 흐릿한 유령마를 타고 있는 기사가 눈에 보입니다. 얼핏 보기에도.. 아니. 확실히 시윤이 마주한다면 질 법한 적입니다.
" 흑기사는 그 이후로도 유럽에서 종종 나타나 많은 기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패배한 기사들을 사살했다고 합니다. 이따금 승리한다 하더라도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깨어났다고 하네요. 결국.. 지금은 '검은 숲'이라 불리는 침식형 필드에 거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위험도와 특수성 때문에 지역은 봉쇄되어 있다고 하네요. "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면서 얘기합니다.
" 좀... 심상치 않은 소식이긴 합니다만, 흑기사가 다시금 검은 숲을 벗어나 활동하고 있단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
"알고 말고. 가능성이 없으면 입 밖으로 내던지지도 않았지예. 크크크... 실제로, 내 중경 한가의 후원을 받기도 하고.. 자오 한 금마랑 만나가 같이 바티칸의 소동을 정리한 적 있데이."
슬쩍 떡밥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간 생각해온 것을 말해보자.
"내 처음엔 궁금했습니데이. 황서비고도 있꼬, 베니온 아카데미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미리내고에 특별반을 만들었을까... 하고." "근디, 다니다가 이런 저런 일을 겪고 나니까 아! 하고 알게 되더라고예. 미리내. 신 한국의 제주도 말로 은하수 라고 하던데. 그 말이 참이라고." "우리 헌터들의 개개인의 힘은 약할지언정.. 뭉치면 밤 하늘을 수 놓는 은하수가 되지 않습니까? 그 중심이.... 헨리 파웰이고 말입니다." "특별반 프로젝트는 차세대 헨리 파웰을 만들어내는 거지, 용이나 사자왕을 만드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크크... 금마들은 알아서 냅둬도 영웅이 되고 못해도 준영웅이 되는 아인데.. 그럴 '운명' 을 타고난 아로는 헨리 파웰이 못되제." "그래서 내는 이해한기라. 미리내고에 특별반을 만든 이유. 모든 헌터들을 하나로 모아 은하수를 만들어야 하기에 미리내고가 최적이구나 하는 걸."
토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그와 눈을 마주본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진지하게 입을 연다.
"지금 특별반은 UGN에게 협력 의뢰를 받을 정도로 이름 값을 떨치고는 있제. 다만, 그건 UGN의 입장이고. 헌터들은 우릴 고깝게 보고 있는 거 다 압니다. 그러니까 헌터들에게도 특별반의 위상을 드높일만한 일거리. 고거 따악 하나면... 우리 값어치가 헌터와 가디언에게도 증명되는기라."
나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자는 바보의 희망을. 동화를 모으던 기사들의 이야기를. '희망'과 '꿈'에 대한 두 기사의 입장차이. 반목.
동화의 밤.
진짜 돈 지오테.
".........."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몇번 다물었다가 뜬다.
내 앞의 '지오씨' 는. '카하노 기사단의 대종사 돈 지오테' 는 아니다. 아마도, 그는. 지금.....
'흑기사' 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겠지. 그가 찾던 친구. 약속한 친구. 나는 습관처럼 입을 어물정 거리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는다.
"지오씨."
그를 뭐라 부를까 고민하다가, 나는 일단 '지오씨' 라고 조심스레 부른다. 왜냐면 그게 우리의 관계였으니까. 그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해주기 전까진, 나에게 있어 그는 '지오씨' 인 것이다.
"저희가 처음만난 날을 기억해요? 쓴 커피를 마시던 제게, 당신은 각설탕 세 개를 추천해줬어요."
어째서일까. 그렇게도 먼 기억이 아닐텐데, 아련해지는 추억인 것은. 그것은 그 뒤에 농도가 진한 삶을 살아서일까. 혹은, 이것이 '추억'으로 변하기 직전인, 그런 상황이어서일까.
"지오씨는 이런 세상에서 편한 웃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그렇게 얘기했었죠. 그리고 저는 거기에 공감했어요. 믿지 않으셔도 괜찮지만, 제 안에 가득찬 1세대의 잔혹한 세상이. 거기서 울고 비참하게 죽어간 생명들이. 아이가 아이다울 수 없던 환경이. 나는 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심장을 조금 쓰다듬는다. 거기에는 피가 흐르고, 의념이 깃들며, 그리고 더 깊은곳에. 영혼과 의지가 담겨있다.
"확실히, 지오씨의 부탁은 쉽지 않았어요. 나는 그걸 위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의뢰에서 번 공헌도를 전부 다 쏟았습니다. 제가 하겠다고 자원한 것이지만, 커피 한잔 값으론 상당히 비쌌죠. 사람들은 나보고 '바보' 라고 할거에요."
나는 그렇게 말하곤 미소 짓는다.
"그 때, 당신이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무력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지오씨는 그들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계속 바보같이 노력해서, 우연히 만난 바보에게 바보같이 참견해서, 우리는 실 없는 얘기도 죽을 뻔한 위기도 넘어서 지금 여기에 왔습니다. 나를 여기에 이끈건, 바로 당신입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이름과 정체가 달라진다 한들. 그와 내가 보낸 바보같은 시간들은 변하지 않을테니.
"솔직한 심정으론, 죽을 생각은 관두라고 엉엉 울고 싶습니다. 나는 최근에 이미 존경하는 어르신과 이별을 마주했어요. 이제와 친해진 사람의 작별을 다시금 경험하는건, 정말 괴로운 일이겠죠. 그러나 난 그러지 않을거에요. 그게 정말 '지오씨'가 선택한 길이라면, 그게 이 이야기의 종막이라면. 나는 그것을 존중하고 싶으니까."
얘기하다보니, 조금 울고 싶어졌다. 아니, 어쩌면 많이. 아니, 어쩌면 이미 울고 있을지도.
그래도 나는 웃는다. 이런 세계니까.
"그러니 내가 한가지만 부탁하자면. 속죄나, 자책감 같은 것으로 나아가지 맙시다. 당신의 이야기가 긍지 높다고 생각하여 목숨을 걸고 협력한 나를, 바보로 만들지 마세요. 이 이야기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왜냐면......."
".....언젠가, 내가 이것을 동화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 바보같고, 어딘가 가슴이 울리고, 그러나 그 끝엔 웃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로 만들고 싶으니까."
이제 진짜 종장을 향해 나아가는구나.... 알렌은 카티야에게서 벗어나 나아가길 선택하며 그녀의 심장을 꿰뚫고 등을 꿰뚫고 나아가는 하지가사아메처럼 나아가기로 했고 시윤이는 무지막지한 진실을 목도했음에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동심을 유지하기로 했고... 이미 어른 같지만, 누군가의 순수함을 믿고 응원한다는 점에서 동심 같아. 여선이쪽도 부각은 안 됐지만 일반적인 메딕과는 다르다는 떡밥이 드러났고 강산이쪽은 에브나의 처지가 문제네... 공백현상...도 떡밥이 돌았고!
나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렌주가 멋있다고 했으니까 멋있은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