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청을 찢는 포화와 처절한 비명 속을 전전했던 삶이다. 고작해야 불꽃놀이 소리에 귀가 먹을 리 없다. 곁으로부터 들리는 목소리 똑똑히 들었으니 이내 낮은 웃음소리 작게 새었다.
"당연한 소리를."
만일 고개를 들고 무신의 얼굴을 찾는다면, 제법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 한쪽 피식 올린 미소를 볼 수 있었을 테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던 차 신은 한 손을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이내 제 어깨에 기대어 온 작은 온기를 가만히 쓸어내리려 했다. 단 한 차례,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 몹시도 부드러웠으리라.
불꽃은 끝을 모르고 찬란의 절정을 거듭하여 간다. 모두 타오른 뒤의 적막을 필사적으로 외면하듯 가열하게도 외쳐 댄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상징이라 한들 결국 끝은 닥치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 난 모든 생령들이 그러하듯이. 화려한 빛과 열기도 언젠가는 모두 소진되어, 화려했던 빛은 꺼지고 흐릿한 잿더미와 연기만이 남으리라. 연즉 어디에도 영원이란 없다. 그것은 신조차 떨쳐낼 수 없는 불역의 이치라. 감히 영원을 말하며 올곧이 바라보는 눈길에 그는 잠시 말문을 찾지 못했다. 함부로 영원을 입에 올리는구나, 그런 말부터 불쑥 떠오른 까닭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저 저 녀석 제풀에 지칠 때까지 성에 차는 대로 취하면 그만이거늘. 본디 물건을 쓰며 그것이 유파하게 될 언젠가를 떠올리는 것은 무신에겐 걸맞지 않은 청승이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어찌하여 입이 열리지 않았는지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답지 않게도 듣는 순간부터 필연적인 영결 따위를 그려 버린 모양이다. 그것이 못내 우습고, 또 분수도 모르고 영속을 운운하는 어린것도 같잖다. 하, 하하! 하여 무신은 웃었다. 이보다도 더 실없고도 유쾌한 것 없다는 양. 느릿이 손 뻗어 반지가 담긴 작은 함 위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마음대로 하거라. 단 내게 맹세한 이상 그 다짐 허투루 여겨선 아니된다. 나는, 이 ■■■■은 망어와 공담을 결코 용납지 않으리니."
회자會者는 필연히 정리定離하리니 당부한들 무용임을 안다. 서로 만난 이들은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간단한 이치에도 이다지도 뇌동하나니 그예 화문化懣인가 보다. 공연히 다그치면서도 기어이 함 위에 얹었던 손을 물리며 제 손을 아야나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 화희의 끝에 찾아드는 적료를 앎에도, 결국 모두가 그 정채로운 빛에 이끌리게 되는 것처럼.
목적지에 다달라서, 여전히 그의 등에 업힌 채, 야트막한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아야카미 정의 서정적인 야경을 한가득 눈에 담았다. 함께 지나온 상점가와 신사를 에둘러 둥그렇게 늘어선 노란 등불이 반짝반짝 별무리를 이룬다. 무심코 올려본 고요하고 새까만 밤하늘은 아래가 밝은 탓인지, 달도 부끄러워 구름 뒤에 숨었는지 드문드문 떴는 별빛만이 희미하다. 살며시 벤치에 앉혀주고 옆자리에 앉는 그의 얼굴을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피유⸺
새까만 동공에 비친 발광하는 붉은빛이 용이 휘파람 부는 소리보다 먼저 기다란 꼬리를 그리며 하늘로 곧게 치솟았다. 터무니없이 사그라든 불꽃, 잠시간의 정적 끝에 둔탁한 굉음이 귀청을 울렸다.
팜— 파바바밤⸻
번개라도 치는 듯이 온 하늘을 환히 밝히며 민들레 홀씨처럼 셀 수 없이 갈라져 점점이 흩어져나리는 색색의 불덩이들. 화려하고 화려했다. 뒤를 이어 연속적으로 수 개의 작은 불덩이들이 쏘아 올려지고 나서는 제전 가운데에서부터 금빛 폭포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거꾸로 흐르는 금색 불꽃에, 자그마한 손에 쥐여졌던 가느다란 스파클라가 겹쳐 보였다. 그나마의 기쁨으로 남아있는 유년기의 추억이었다.
"있잖아요."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불꽃은 안중에 없고, 반쯤 내려감은 눈으로 아래를 바라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심히 운을 떼었다. 괜히 눈물이 새 나와서 손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감히 짐작하지도 않아도 알 수 있건대, 영원을 감히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유한자有限者의 몫이다. 신은 영원히 불멸할 수 있고 마땅히 불멸일 지어나 인간이나 요괴는 그렇지 못하다. 인간과 달리 불로한다 할지어도 불사까지는 얻지 못한 자가 요괴일지어니. 모든 감정에는 끝이 있고 감히 영원을 담기엔 특히 이른 것이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요괴는 감히 영원을 다짐하겠다는 말을 입에 올렸다. 감히 당신의 소유물이 되겠다고 입을 맞춰올 때도, 연모하고 있다는 말을 해올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참으로 맹랑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저 건방질 정도로 천진하게 웃고 있는 낯을 보라. 바보같을 정도로 순진한 낯이다. 자신이 어떤 늪에 빠지고 있는 지도 모르고.
본래 강이 때로는 범람하고 때로는 잔잔하게 흐르며, 연못이 고여있되 때로 넘쳐흐를 때가 있다면, 늪은 끝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한번 발을 딛는 순간 벗어나기란 포기해야 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봐야 한다. 한번 들어간 순간, 한 발짝 앞으로 디디어도, 물러서려 해도 오직 아래로, 끝없이 아래로 들어가는 길 뿐이니. 무카이 카가리, ■■■■은 늪과 같은 존재였다. 한번 쥔 제 것을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스러지기 전까지 취하고 끝없이 취하고 또 취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재가 되기 전까지 타오르는 불길처럼. 그러니 이 어린 것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는 보나마나 뻔한 길이었다. 적어도 이 증표를 손에 들고 제 주인의 손에 끼워주려 하기 전까지만 해도 조금이라도 벗어날 방법은 있었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벗어나려 할 수 있을 방법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금일부로 그 길은 없는 것이 되었다. 더 이상 이 어린 개구리 살아서든 죽어서든 벗어날 곳이란 없고, 제 주인의 품만이 유일한 낙원이요 안식처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그 또한 이 어린 요괴가 고른 선택인 것을.
제 신의 왼손 약지에 증표 끼우는 손길 한없이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떨고 있는가? 아니 전혀 떨고 있지 아니하다. 되려 기쁜 낯으로 증표를 끼우고 있다. 아쿠아마린이 박힌 은반지가 달빛 아래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꼭 제 주인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물기 어린 눈빛과 닮은 색이다. 강 밑바닥이 다 보일만치로 맑은 강물과 같은 빛. 이로써 오롯이 당신만이 닮은 형태로라도 이 물빛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지금 이순간부로, 당신만이 강의 주인이시니. " "이 아야카에루, 오직 카가리 신님의 말씀만을 따르고 복종하겠나이다. "
가볍게 손등에 입을 맞췄다 떨어지는 태도 제법 정중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제 왼손을 주인의 손 위에 올려보이는 것이니.
별빛이 가득한 하늘 위에 꽃이 피었다. 빨간색, 파란색, 녹색, 보라색, 하얀색. 참으로 아름다운 꽃들이 밤하늘에 아름답게 피어올라 그 모습을 강렬하게 뽐냈다. 허나 그 꽃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고 이내 서서히 밤하늘 속에 녹아내려 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채우듯 또 다른 색색의 화려한 꽃들이 강렬하게 피어나 그 한순간을 화려하게 빛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제 존재감을 보였다. 한순간에 사라지는 꽃이었으나 그 강렬함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지 않았을까. 적어도 유우키는 그랬다.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꽃이 한송이 피어오르다가 지고,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민들레 홀씨가 밤하늘 멀리멀리 사라져 우주와 하나가 되었고,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금색 폭포가 은하수를 가리며 새로운 강줄기를 만들어냈다. 같은 페턴의 불꽃이 아니라 다양한 페턴의 불꽃은 검은 도화지 위에서 여러가지 그림을 그려내며 공터에 있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불러일으켰다.
"...?"
있잖아요. 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유우키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히나를 바라봤다. 불꽃을 보지 않는 그녀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손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리는 그녀의 모습이 저 화려한 불꽃보다 더더욱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주기적으로 그와 그녀의 얼굴색이 바뀌었다. 붉은색, 푸른색, 녹색, 보라색, 하얀색, 그리고 또 붉은색. 환호성이 주변을 덮으며 그 둘의 모습은 그곳에 있었으나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기대는 히나의 어깨 위에 유우키는 손을 살며시 올렸다.
"고맙다는 것은 내가 할 말이야. 난생 처음으로 1:1로 여성과 불꽃놀이를 보는 거거든. 이거. 아. 아야나님은 예외야. 뭐, 성별로는 여자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여자라기보다는 아야나님이니까. 뭐, 아무 여자나 좋은 것은 아니고 사귀는 너니까 좋은 거지만."
그녀는 아마도 다른 곳에서 제 연인과 불꽃놀이를 보고 있겠지. 허나 어디에 있는지는 그다지 떠올리지 않았다. 오늘은 카와자토가 아니라 그녀에게만 집중할 생각이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이미 다 해버렸어. 지금 이순간까지 참을걸 그랬나. 하지만 후회는 안해. 그때는 그렇게 말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무엇보다 시라카와가의 사람은 후회따위는 하지 않아."
물론 살면서 어떻게 후회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의 일에 대해선 유우키는 후회하지 않았다. 말을 아끼기보단, 필요할 때 하는 것이 더 좋을테니까. 어쩌면 이렇게 불꽃을 보는 미래 자체가 없었을테니까.
"솔직히 난 연애는 너무 서툴러. 집안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이것저것 보좌를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그렇기에 솔직히 네 눈에 안 맞는 것도 있을테고, 가볍게 싸울 수도 있고, 서로 토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하. 차라리 이런 것도 가이드가 있거나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을텐데. 이런 것은 어디에서도 안 가르쳐주거든. 하지만 너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고 언제나 솔직할 생각이야. 소홀히 하지 않고, 당당하게 너도 카와자토 일가를 모시는 이 자리도 다 손에 쥐고 싶어. 시라카와 가문의 사람은 욕심쟁이라던데, 그게 맞나봐."
자신의 어머니도 그랬고, 아마 그 위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하늘 위에서 연쇄적으로 다섯 송이의 꽃이 펑 펑 펑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아름답게 피어올랐고 그 뒤로 공작 날개가 화려하게 차르륵 펼쳐졌다.
"앞으로도 익숙해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고, 장담할 순 없지만... 앞으로도 쭉 나랑 사귀어줄래? ...연애를 해보고 싶어서 하는 것을 넘어서서 정말로 주역이 되어서 해보자. 나는 네코바야시 히나의 남자친구가 되어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자친구이고 싶어. 너도 시라카와 유우키의 여자친구가 되어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여자친구이지 않아줄래?"
일곱색의 무지개가 곡선을 그리면 차르르륵 검은 도화지 위에 그려지다 일제히 터지며 여기저기 홀씨를 만들어 밤하늘과 하나가 되어 검게 물들었다.
"...나랑 사귀어줘. 내 여자친구로 있어줘. 쭈욱. 히나."
환호성 속에서도 그 목소리만큼은 조용히 들리지 않았을까. 그만큼 둘의 사이는 가까웠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독립되어 따로 있었으니까.
유우키의 손이 살며시 그녀의 턱으로 향했다.
"이건 내가 가져갈게. 다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도록."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하나가 되는 것을 그녀가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 숨소리는 이내 하나가 되어 조용히, 조용히 환호성 속에서 제 모습을 감춰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