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최대 15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진행 때에는 #을 달고 써주시면 됩니다. 진행레스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색깔을 입히거나, 쉐도우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도 모두 오케이입니다. 스레주가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쁘게 꾸며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레주도 무협 잘 모릅니다...부담가지지 말고 츄라이츄라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적용하며, 이에 기속됩니다.
사천당가의 무인들이 같은 하늘을 두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역겨운 이들을 일컬는 최악의 멸칭이다. 고독蠱毒. 수백의 독충과 독수를 항아리 안에 넣고 죽고 죽이게 만들어 한 마리만을 남게 하고, 그 최후의 맹동을 이용하는 지독하기 짝이 없는 사술(邪術). 그것의 인간판에 처넣는다고 하니, 그 말에 서린 흉흉한 독기를 짐작할만하다. 그러나 그 단어 뒤에 있는 사천당가의 비사(祕史)를 아는 이는 적다. 아니, 몇몇 원로들은 알고 있다 하더라고 논하기를 무서워해 감히 입에 담지 않는다. 사천당가가 막 가문으로서 정립되었을 머나먼 옛날이었나. 고(蠱)라 불라는 남자가 있었다. 정쟁에 휘말려 음독자살한 어미의 배에서 벌레 마냥 기어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고는 자신의 태생부터 함께 해온 독에 깊이 매료되었다. 사람을 매료하고, 괴롭게하고, 결국에는 죽게 만드는 독. 수백 수천의 독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고 당가는 독공의 대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나 고는 그런 명성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언제나 독. 사람은 시험대요, 전장은 시험장소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기에 당가 사람들도 고를 두려워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당가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했으나, 그를 찾지는 않았다. 무서웠으니까. 그러나 당가의 가주만은 그의 행적을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따르는 소수의 추종자들, 그리고 중원 전역에서 수집해온 괴이한 것들을 이끌고 몰래 떠나갔다는 것을. 그리고 가까스로 그 행적을 따라가 보니, 이름을 모를 골짜기에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모를 혈(穴)이 있다는 것을. 가주는 깨달았다. 고가 스스로의 몸으로 고독을 행했음을. 그는 혈을 온갖 술식으로 봉하고, 모든 기록에서 고의 이름을 지웠다. 마치 내용물을 알고 싶지 않은 항아리를 봉한채 버리듯이. 그러나 오늘, 아득할 정도의 침묵을 깨고서 혈의 봉인이 풀렸다. 풀리고야 말았다. 보고를 들은 당가의 가주는 단숨에 혈으로 달려갔다. 대체 어떤 고수가 그 겹겹이 쌓인 수백의 봉인을 풀어냈단 말인가. 그러나, 혈 앞에 놓여진 한 장의 짤막한 서신을 보는 순간 가주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봉인은 푼 자는 외부인이 아닌, 혈 안에 있는 누군가였다. 혈 앞에 놓인 짤막한 서신의 내용이 그 사실을 고하고 있었다.
【 천혈단주 홍련마 검하언】 교국 외당 서열 2위, 천혈단의 단주이자 초절정의 끝자락에 서있는 고수. 40대 후반의 나이로 젊은 나이에 굉장한 성취를 이루었다. 사천분타주, 외당주, 청해단주에 이어 외당에서 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 천강단주와는 선의의 경쟁 관계로 서로 서열이 자주 바뀌는 편이다. 어릴 적 교주가 정정할 때 검하언의 검을 보고는 마치 붉은 연꽃이 피는 것 같다 하여 홍련마라는 별호가 붙었다. 본인은 이 별호를 매우 마음에 들어한다. 교국십대가문인 광부검가의 일원이며, 가주의 친남동생이다. 의학에 제법 일가견이 있어 가끔씩 봉사활동을 나오기도 한다. 온화하고 잘 웃지만 냉정하고 차가운 면모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검하언을 대하기 어려워한다. 몇 해 전 일급무관으로 임관한 딸 아이가 하나 있는데, 상당히 아끼는 편이다. 신유월은 검하언의 딸을 일급무관으로 키워냈고 그 인연으로 지금껏 친분을 유지중이다. 호감도 : 4
【이십만진군병한귀곡갱二十万秦軍兵恨鬼哭坑】 때는 한고조와 초패왕이 겨루던 초한지의 시절. 남쪽 땅에서 일어나 파죽지세로 온 천하를 점령해가던 역발산기개세의 패왕에게 항복한 한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장한(章邯). 영정이 세웠던 진(秦)의 명장이었던 장한은 자신과 자신의 군대는 초패왕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과 다른 정치적 이유로 초패왕에게 항복하였고, 이내 진이 멸망된 이후 옹왕(雍王)으로까지 임명되었습니다. 허나, 그 임명의 순간에 그가 이끌던 이십만의 군대는 함께 할 수 없었지요. 이유는 초패왕의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장한이 항복한 이후 그를 믿지 못했던 일부 병사의 불온한 움직임 때문이었을지, 아니면 군량이 부족하였다던가 하는 등의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며,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 장장 이십만의 군대가 신안성(新安城)의 남쪽에 그대로 '묻혀'버렸다는 것이죠. 이십만의 군대가, 무인이, 그대로 묻혀버렸으니 얼마나 원통할까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수만 이십만, 일만을 스무번 곱한 수였으니 초군(楚軍)이 죽인 것은 한줌의 한줌이었고 매장당한 자들의 대다수는 살아있어 생매장이었습니다. 또한 이십만을 묻을 땅을 파는 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니 묻힌 곳은 물 흐르는, 음기 가득한 계곡이었고 스스로 몸을 던져서, 혹은 던져저서 '매장'당하는 병사들은 떨어지며 생각했습니다. '원통하다, 밉다! 초의 원숭이도! 우리를 버린 장군, 아니 장(章)가 녀석도! 모두!' 그렇게 그들이 '매장'당하고 시체의 산으로 채워진 그 계곡에서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떨어져서 '낙사'하고, 계곡물과 아래로 쌓인 핏물에 '익사'하고, 시체의 무게에 '압사'하고, 시체의 사이에서 '질식사'하고, 시체 사이에 껴 옴싹달싹 못해 그대로 '아사'하고, 떨어지며 흘린 피가 부족하여 '출혈사'하고, 시체가 썩어서 나온 시독에 '독사'하고 '병사'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한명'까지 죽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십만의 시체가 모이고, 이십만의 죽음이 모이고, 이십만의 원한이 모인 장소에서 누구 하나 명복을 빌어주는 자 없이 시간이 흐르니 온갖 부정한 것들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계곡 아래에 부정한 것들이 고이자 떠나야할 자들이 떠나지 못하고, 흐르는 썩은 계곡 물에 담구어진 주검들은 자신들을 잊게되었습니다. 그렇게 수년, 수십년, 수백년. 그들을 죽인 초가 무너지고, 초를 무너뜨린 한이 무너지고, 이내 한이 세 나라로 나뉘는 시점에도 계속, 그들은 스스로를 잊고 오직 한 맺힌 귀곡성(鬼哭聲)만을 내뱉었습니다. 계곡에 오려 하는 자가 생겨도, 너머에서 들리는 귀곡성에 사람이 오지 않으니 이 악순환은 계속되었으나... 수십 년 전,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거대한 지진으로 인해 계곡이 무너지고, 구덩이가 새로 생긴 것입니다. 계곡에서 흐르던 귀곡성은 이제 구덩이 안에 갇혀서 나오지 않으니 점차 귀곡성 울리던 계곡의 소문이 잊혀지고, 몇년 전부터는 드물긴 하지만 사람이 지나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드물게 사람이 지나다니는 하남성, 낙양 근처 신안의 남쪽. 묻힌 구덩이에서는 오늘도 계속 묻혀버린 사자(死者)들의 귀곡성이 메아리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