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 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눈물겨운 해방감에 안은 것을 더 강하게 끌어당기며 놓지 않기 위해 애썼다.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 죽지 않게 지켜준 것은 이 존재라고. 어쩌면 16년 생 중의 전부를 보아왔을 수도 있겠다. 조금은, 억울함을 느꼈다. 어째서 나를 그냥 내버려두었냐고. 이럴 때에는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 비슷한 체구이면서, 부드럽게 안아주면서 세상 상냥한 목소리에 하마터면 넋을 놓아버릴 뻔했다. 없는 엄마가 안아주는 것처럼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 묻고 싶은 것이 참 많았지만, 하나만, 한 개만 묻기로 했다.
거짓말, 세상 어떤 누나야가 이래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놓냐고.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마지 못해 웃어버렸다. 그래봤자 어설픈 낯빛을 온전히 가릴수야 없었지만. 딴청을 부리듯 고개나 돌리며 엉망이 된 얼굴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대화 사이 짧은 정적 사이 매미가 울고, 농구대에 절묘하게 끼인 공이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을 가로막는다.
"히, 그렇슴까? 내 엄청 쑥스럽네…~"
달아오르기 시작한 뺨은 두 손 가득 감추어져 흐릿흐릿 손사래를 친다. 체육제를 앞둔 한때, 나란히 시위를 당겼던 두 사람이 또다시 같은 자리에 설줄 누가 알기나 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작은 아이가 우승할 줄 누가 알았겠니. 그때를 다시 떠올리면, 정말 만화같은 일이었다. 시위를 당기면 누군가의 손길이 함께 포개어지는듯 해. 콩닥거리는 가슴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정말로 누군가의..
"아아아아아....... 덥다- 억수로 덥다-!!!"
정말 이상했어요 선배, 그런 이야기는 속에 꺼둔채. 덩그러니 걸린 공따위 어떻게든 되라고, 우와아 소리질러버린다. 예쁘기만 하지 실속은 꽝이네, 라고. 질끈 감긴 끈을 풀어헤치고 시원하게 배꼽을 내놓고 나서야 살것 같다는 표정이 됐다.
테루가 신으로의 승격 희망 여부는 제쳐두고 일단 문득 생각난 건데, 테루 돌 속성 생각하면 요괴 뿐만 아니라 신까지 격 엄청 높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돌과 우주가 결합하면 별이 되잖아. 신격 대체로 지구 범물에 한정하거나 인간에 한정하거나 넓게 봐도 행성 하나 정도에 그치는데 테루 성질이 범용성 되게 넓은 거 같애 솔직히 돌… 개그성으로만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할 수록 되게 낭만적이야 탄생설화도 그렇구
"하지만 명심하세요 중요한 것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야 하는 것을, 괴로움도 기쁨도 결국은 삶이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스스로 옮다고 믿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세요"
"삶은 한번 뿐이라고 했지요, 그렇기에 주저 않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있지 않나요? 어느 길이 너무나 길게 느끼더라도 조금씩이라도 움직여 닿을 수 있다면 결국에는 도달하게 되는 것이까요"
나는 그녀가 풀어지는커녕 더욱 나를 더욱 강하게 접촉하는 것에 그녀가 원하는 만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놓아두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저 그녀를 껴안아 주면서도 상냥하고 조심스럽게 어루만져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물음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이것이 지금 그녀가 바라고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 수 있겠지만 세계에는 나쁜 것들 만큼이나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그래야만 한다면 견디는 방법과 수단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그것들 잘 느끼고 다룰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그녀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 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