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 한의 말에 조용히 읊어본다. 나에게 자격이란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타인의 삶을 멋대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스승님이라면 내 삶에 대해 뭐라 할 수 있겠지. 그래도 그 분은 굳이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이니까. 내가 선택한 것에 최선을 다 하라고 말하겠지. 그가 십자가 목걸이를 챙기는 것을 본다.
"도와줘서 고맙데이. 니 아니었음 우리 중 누구 더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기다."
그래.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성인과 성기사, 그리고 사제가 죽었다. 천자가 없었더라면 더 많은 죽음이 피어났을 것이다.
>>903 무기가 오감에 따라, 태식의 머릿속은 꽤나 뜨겁게 올라옵니다. 아내를 흉내내고, 아내를 잊지 않았을 때. 나만의 검을 휘두르려고 했을 때. 검은 여전히 이어지고. 나 역시도 그것을 인지한 채로 검을 휘두르고 있을 때.
검은 불꽃을 휘감은 채로 왜 그것을 토해내고 있으며. 나는 왜 그것을 휘두르려 하는가.
" 감정을 잡을 때에는 하나의 감정으로. 불꽃이란 폭발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천천히 무언가를 갉아먹으며 타오르기도 하지. "
이지혜는 그의 불꽃에 불꽃을 맞대며 천천히 속삭입니다.
" 인식해. 네 불은 무엇을 매개로 타오르는지. 어떤 감정을 이유로 타오르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불꽃이 그려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걸 인식하는 게 불꽃을 이해하는 첫 번째야. "
나의 불꽃은 사랑이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불타오를 수 있고 언제든지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서 무언가를 희생시키고 있다. 무엇일까 내가 지금 거대한 사랑을 대가로 잊은 것 살고 싶다는 마음? 아마 그럴거다. 아내가 죽었을때 난 별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았을때도 다른 사람에게, 아이들에게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나 스스로가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든 생명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그 무언가가 없다. 그 모든것이 불타올라 버렸으니까
#살고 싶다는 마음을 불태워서 사랑으로 만들었고 아직 흔적만 남은 사람을 느껴보고 싶어서 불을 지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의 말에 한숨을 팍 내쉰다. 알고는 있다. 머리의 부재가 얼마나 큰지. 하지만? 각자도생하는 특별반을 이끌어줄 누군가 있을까? ....아냐. 눈 앞에 있는 청년에게 니가 머리를 맡아볼래? 라고 말하기에는 토고의 양심이 아팠다. 지금 특별반은 위험한 시기다. 또한 그도 보고 싶은 것이 많이 있다고 했다. 목줄을 차기엔 너무나 아깝다. 그렇기에.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다. 개인 행동을 워낙에 많이 하는 아들이라... 지휘를 맡을 만한 인물이 없다. 빠른 시일내로 구해봐야제... 지휘자를."
머리의 부재. 죽지 않았어도 될 인물이 죽었다. 라는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온다. 결국 이것도 우리가 더 약하기 때문에 이리 됐다는 결과 같아서 조금 아련해진다. 우리들의 약점이 명확해진 지금, 그것을 빨리 보완하는 게 낫겠지.
무력적인 의미도 맞긴 하다고 생각해. 다만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닌게 여태 알렌의 검술은 카티야의 아류였잖아? 캡틴이 계속 '여태까지 처럼은 안된다' 라는 언급을 해줬으니. 무언가 확실히, 여태 형성된 검술 중에 부족한게 있고 그걸 채워서 '알렌의 검술'을 완성시켜야만 한다고 봐. 그러면 무기술 A에 도달하는데 큰 중요성을 미친다는 것도 설명되고.
흠. 그러게. 검의 스승이자 오래 함께 했던 카티야라면 '여태까지의 알렌'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알 수 밖에 없어. 실력이 밀리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손패를 훤히 읽을 수 있다는건 지기가 어려운 환경이지. 그러니까 카티야를 뛰어넘기 위해선, 여기서 '자신만의 검'을 완성시켜서 노선을 달리하는 것이 방법인게 아닐까?
>>28 지금 상황은 외통수입니다! 도망치기 위해서는 부상자들을 추스려야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만 도망친다면 살 수 있지만 시윤은 에브나를 버리고 도망쳐야합니다!
" 또. "
별로 향기롭지 않은 담배를 배우게 된 것은 그 안개따위가 하늘로 이어지며 내 한탄을 담아주는 것 같았던 이유였다. 입에서, 불꽃의 발화점에서 천천히 타올라 오르는 연기를 따라 내 마음속에 있는 불만이 흩어지는 그 감각이 필요해서였다.
" 많이들 죽어나갔군. "
이런 세계에서 사람의 이름보다는 사람의 숫자가 더 쉽게 와닿는 법이다. 생각해보자. 민간인 OOO 사망이라는 문장과 민간인 1명 사망 중, 우리가 더 많이 본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후자의 것일 것이다. 이름. 그 요소가 있음과 없음에 따라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지는지 보통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이름을 알던 이의 죽음이 내게 알려졌을 때. 그것은 좀 더 직관적인 죽음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나는 오늘도 죽어버린 사람들의, 시체조차 남지 못해 겨우 나무토막으로 이름을 기록한 곳에서 눈물을 흘린다.
" ... 년! 소년!!! 정신차려라냐!!!! "
이드는 시윤을 열심히 흔듭니다. 하지만 그 충격마저도 시윤에게는 별로 가까운 감각이 아닙니다. 아니. '당신'에게는 별로 가까운 감각이 아닙니다. 마치 먼 곳에서 서로를 흔드는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감각.
당신은 한 소년을 들춰업고 어떻게든 도망칠 준비를 하는 여인과, 창을 들어올리며 몬스터의 돌진을 막아내려던 기사를 향해 손을 뻗은 여인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이 수가 희생된다면, 그럭저럭 저들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쪽 몬스터들의 구성을 보아할 때. 방어를 맡을 법한 큰 몬스터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화력이 조금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수류탄에 의념을 불어넣어 그것을 던지거나. 아니라면 기름을 가득 먹인 화염병에 의념을 넣으면 그럭저럭 효과를 볼 것도 같습니다. 그 후에 어느정도 적의 움직임을 봉쇄한 후. 2개 분대를 투입한다면 8명 정도 희생을 거쳐 적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후에는 후퇴를 하긴 해야겠지만. 당장 저들에게 모두 죽을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 중위 님.... ' ' 형님..... ' ' 하...... 돌아가면........ '
마치 사인펜으로 마구 낙서해둔 것만 같이 떠오르지 않는 얼굴들.
' 말해주이소. 내가 하믄..... 우리 아는, 아들은 살 수 있습니까? ' ' 괜찮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 오래 남아주지 않았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