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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을 박차고 들어온 성운을 보며 유준은 어떤 반응도 없었다. 흔한 놀람조차 없이, 오히려 결국 이런 날이 오고 말았다는 듯 체념한 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성운의 혈액형을 묻고 가볍게 붙여진 환자용 침대와 침대 사이로 수혈 기기를 배치했다.
시시각각 검붉게 식어가는 나와 피만 덜 흘렸지, 비슷한 몰골을 한 성운의 각기 다른 두 팔을 한 줄기 수혈관으로 잇고 그 중간에 피가 오가는 수혈용 팩을 두었다.
그리고 각각 얄팍한 이불 한겹씩 덮어주는 것을 끝으로 병실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그 흔한 시계 하나 없는 병실에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각이 모호해졌다. 특히 이 특별 병동은 그 모호함이 심했다. 마치 잠시 현실과 멀어진 듯한 그런 이질감까지 들었다. 그런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제일 먼저 그것을 느낀 건 유준이었다.
"...습, 쯧..."
직접수혈을 진행시켜놓고 잠깐 쉬려 앉는다는게 그만 그대로 졸고 말았다. 목이 뻐근해질 정도로 기울어진 채 졸았으니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유준이 잠 덜 깬 눈으로 수혈관과 수혈팩을 살펴보니 별 문제는 없었다. 새삼 철렁였던 심장을 쓸어내리며 두 학생을 번갈아 보는데 분명 잘 자고 있는데 뭔가, 뭔가 위화감이...
"...어?"
한 번 보고, 다시 보았을 때 성운의 몸이 줄어있었다. 정확히는 처음 봤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고 해야 하나? 옷은 그대로인데 몸만 줄어 있었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느슨해진 옷을 짚어보자 꽉 차 있었던 옷이 푹 꺼졌다. 그 아래 보이는 작고 가느다란 체형의 실루엣에 유준은 기함하려는 입을 막았다.
대체 무슨 커리큘럼을 받길래 신체가 이렇게 순식간에 변형될 수 있는 것인가.
유준이 그것을 깊게 생각하기 전에 내 정신이 돌아왔다.
"ㅇ,윽..."
힘겹게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뜨자 새하얀 조명이 눈을 찌르듯 비추었다. 조명에 놀라 파르륵 떨자 뒤늦게 몸 여기저기서 통증들이 느껴졌다. 정말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파 무심코 몸을 감싸려 팔을 움직였다가 유준에 의해 왼팔이 붙들리며 움직임이 저지당했다. 딱 내가 못 움직일 만큼 꾹 누르는 것에 고통이 더해져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침대를 두드리자 피곤에 찌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에 수혈관 꽂았으니까 가만히 능력이나 돌려. 그리고 눈부터 제대로 뜨고."
피로에 찌들었으나 그 속에 묘한 분노와 같은 감각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나는 잠자코 능력을 전개해 내 몸부터 회복시켰다. 그제서야 근육이 풀리고 덜 아문 상처들이 나으며 조금 후에는 다시금 눈을 뜨고 빛에 시야를 적응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 눈을 뜬 내가 가장 먼저 본 건 내 얼굴로 날아오는 큰 손바닥이었다.
철썩.
유준의 입장에선 가볍게 휘두른 팔이었겠지만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골이 흔들릴 정도의 타격이었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나는 유준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아 불만을 표하려 입을 열었으나 유준이 옆으로 비키며 보이는 옆 침대의 모습에 거기 누워있는, 작은 소년의 모습에 그만, 입을 벌린 채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 째서...?"
얼마 지나서 겨우 내뱉은 말은 고작 그거였다. 어째서, 성운이, 어떻게 , 저 모습으로, 왜, 여기에. 차마 말로 나오지 않는 의문들을 꿰뚫어 본 듯 피곤한 유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불렀다. 너 이 꼴 났는데, 저번처럼 대충 아팠다고 둘러댈 재간이 없어서 그냥 오라고 불렀어. 어차피 수혈용 혈액도 필요하던 참에 잘 와줬지. 그래, 온 건 내가 불렀는데, 왜 저렇게 됐는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이유는 알지."
신체가 급격하게 변할 정도의 과격한 감정 변화. 나는 일찍이 그걸 본 적이 있었고 그 이유도 알았다.
나 때문이야.
"네 탓이다."
유준의 진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 퀭한 눈이 꼭, 그의 눈처럼 보여 그 책망의 시선이 꼭, 그가 보내는 것 같아 호흡기 속 잇새가 다다닥, 울렸다.
"네가 감당 못 할 일을 벌였기 때문에, 네가, 책임도 못 질 사람을 곁에 들인 까닭에, 너로 인해 저 아이까지 망가져 가고 있는 거다. 천혜우."
담담한 선고에 시야가 흐려졌다. 호흡기를 착용했는데도 가빠지는 숨결이 참을 수 없이 아팠다. 분명 상처는 다 나았고 더 아플 곳도 없는데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이 되어갔다.
내가, 내가 어리석은 탓에, 내가 멍청해서, 내가 이런 인간이라서...
"...미안해, 미아, 미안해, 성운아, 미안해..."
수혈관이 꽂힌 팔을 들어 성운에게 닿으려 했다. 그러나 내 팔은 원하는 대로 들어지지 않았고 유준이 들어서 성운의 손에 닿게끔 해준 후에야 작아진 그 손을 쥘 수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내 손을 감싸주던 큼지막한 손이 지금은 내 손 안에 감싸일 정도로 작아졌다. 그 작은 손의 감각으로부터 두 번이나, 원치 않는 변화를 겪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밀려와 소리 죽여 울었다.
나 역시, 내가 그토록 경멸한 인간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는게 너무나 한심하고, 지리멸렬하고, 끔찍해서...
"미안해... 미안해, 내가, 미안해..."
성운의 손을 꼭 쥔 채 필사적으로 성운의 몸을 회복시켜주며 울었다.
그렇게 난리를 칠 때는 하나도 안 아팠는데 지금은 다 나아서 아플 곳도 없는데 울음으로 인해 몸이 떨릴 때마다, 숨이 들썩일 때마다 누가 내 살을 저미는 듯이 고통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