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갱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고 쓰잘데기 없는 논쟁이 끝나자 그 존재는 손에 든 행인 두부를 마무리합니다. 어느새 다 먹은 것일까요. 그것조차 모를 속도로 사라진 것을 신경쓰지 않듯 타코야끼를 포장한 비닐봉지를 쥔 손을 바꾸는 것이다.
"외부인이 와서 팔수도 있는 것 아니야? 두부는"
'축제 기간'이라면 보통 마을 내에 있는 이들도 이벤트를 곁들인 장사를 하는 것도 많지만. 외부에서 푸드 트럭 등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넘어오는 이들도 많다고 TV에서 봤다. 두부 꼬치같은 것도 팔려고 하려면 충분히 팔겠찌. 계란과 같이 지져서 간편하게 먹게 할 수도 있읕테고
강도질을 배운 적 없는데도 잘만 앗아가면서 왜 멈추는 법은 저절로 터득하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바르게 살아가는 순간 끝이 날까 무서워서. 또 어쩌면 내 몫이 아님을 알아서. 이유야 많지만 결국 요지는 그거다. 미지를 소유했을 때 일어나는 정복과 쾌감. 또는 결핍의 극복. 부족함이든 모자람이든 내 삶에서 무언가 결여됨을 깨우치는 찰나 그 인생은 영락없이 궁핍해진다. 차라리 갈증에 부지했다면 목마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듯 박식은 축복이라지만 이따끔은 독이다. 사제들이 죽어라 읊어대는 어느 설화만 봐도 그렇다. 그곳에서 말하기를 인간은 사과의 맛을 깨닫고부터 고행길에 올랐다고 한다. 복음에선 그들이 살았던 동산을 지상 낙원으로 포장하지만 그 실체는 이브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브가 지적 탐구심에 눈이 먼 멍청한 년이라고들 하나, 사실 존나게 똑똑한 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뱀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청산유수의 아가리를 갖고 있었다거나. 뱀치고 아담보다 얼굴이 뛰어났다거나. 여하튼 지랄 맞을 정도로 아는 게 많았던 이브는 결국 결핍을 깨달았고 하늘을 욕망해서 인생이 망했다. 나는 이제껏 우미 스미레가 세상에서 제일 딱한 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재고해보니 사과 하나 먹었다고 타락의 상징이 된 이브가 최고로 불쌍하다. 아담이야 남자 새끼라 뭔 짓을 하던 관심 없다.
결핍을 몰랐다면 욕망이나 원죄를 잉태하지 않았을 테고, 낙원에서 잘 먹고 잘 살았을 거다. 암만 이브를 씹고 동정해봤자 내 세상살이 역시 그녀를 비난할 형편은 못 된다. 뜨거운 격이 네겐 사약이었나. 영생을 줘도 못 먹던 인간 년, 그게 뭐라고 그땐 그렇게나 좋았는지 도통 의문이다. 생에 다시 없을 행복이라 여겼으나 돌아보면 저주였다. 그년 죽고서 욕망을 이해했고, 그 탓에 죄짓는 삶을 살고 있으니 정말 뱀 같은 년이다. 그 가운데 득달한 점이 있다면 내게 결핍은 상실이었고 곧 사랑으로 직결된다는 것. 생사의 기로에서 외려 본능은 날카로워진다고들 하니, 나는 스스로가 기특하게도 알아서 생존법을 터득했다. 가장 예쁜 한 송이를 꺾어 삶의 낙이라 명명하고 사랑한다. 시들면 잠시 앓고 일어난다. 거푸 찾는다. 꺾는다. 또 괴로워 눕는다. 거듭.... 굴레를 돌다 종장에 우미 스미레를 만났다. 나는 늘 결핍하지만 실상 아픈 게 제일 싫다. 네가 유일하지 않다면 상실에도 내 속은 멀쩡할 것이다. 대체는 지천에 널렸으니 너 죽으면 곧장 환승할 자신이 있었다. 그뿐이겠나, 네가 영위할 철에도 언제든─── 나는 이브가 질투할 정도로 지혜로운 새끼라 우미 스미레 지척에서 또 하나를 습득했다.
우미 스미레는 내 생에서 두 번째로 뱀 같은 년이다. 그나마 온정으로 나를 꾀었던 최초의 뱀과 달리 독만 쏴대며 사람 홀리는 말솜씨라곤 전무하지만 그랬다. 혀 깨물면 다 끝나는 형국임에도 너는 내 반경에 머물러 있었다. 명줄 남의 손에 붙들린 인생은 종속됨이 당연하다 해도, 나는 그 속에서 명을 갈망하는 희망을 봤다. 결핍을 타개. 상실을 해소. 영원을 안위. 숙원을 갈취하기 전엔 무릇 죄를 씻을 필요가 있다. 네게 고해하면 혹여 전부 용서해주지 않을까... 함께 영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은 꿈에 살면 안 되는데. 나는 또 헛꿈을 꾸며 너를 욕망한다. 너는 내 것이다. 너와 영원하고 싶다. 너를 대체할 것은 없다. 그러니 뱀의 술수에 열매 따먹은 그년처럼, 나도 네 존재에 이끌려 죄를 덧댔다. 애당초 두 번이나 세치혀에 넘어갔으니 나는 성결과 거리가 멀다. 고해하고도 죄를 거듭할 얄팍한 신실이라면 뉘우치는 대신 악이나 행하는 게 옳다. 그러니 나는 네가 애착하는 것을 불태우고, 죽이고, 약탈하고, 빼앗고, 짓밟아 나 또한 너의 유일을 차지할 것이다. 나는 개새끼고 너는 병신이다. 나는 머저리고 너는 개년이다. 결론은 서로 좆같은 새끼들이다. 구더기보다 못하다. 세상에 남아봤자 해만 끼친다. 그러니 우리 둘이 더불어 저 밑바닥에서 영영 같이 살자.
"그거 헛짓이야. 네가 굳이 애 쓰지 않아도 나한테 남은 건 너뿐이거든. 저주할 시간에 입술이나 더 줘. 어차피 사랑이란 게 다 본능이잖아. 괜히 이성에 기인해서 살려고 숨 빼앗지 말고. 망가트리고 싶다며? 그럼 살 생각 말고 나 죽일 궁리만 해. 그게 네 본능 아냐? 저 새끼 숨통 막다 보면 언젠간 뒤지겠지, 같은 거. 너도 알면서 뭘 그래. 그러니까 본능에 맡겨 그냥. 그게 서로 속 편해."
크게 들숨 마셨다. 단시간에 거듭 겹쳐갔다 한들 여전히 호흡은 넉넉함에 갈무리가 필요도 없었다. 다시 길게 맞추고 뗐다. 폭우가 한창인데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네 숨소리만이 내가 경청할 수 있는 유일이다. 밀어내려는 저항도 한 때의 불평이라 치부하고 외려 네 손목을 붙잡았다. 빨간 음영은 여즉에도 네 손목서 한 자리 잡아 길게 발 뻗은 채다. 상흔 세게 쥐면 붉은 것이 살색으로 돌아온다. 틈 없이 전부 아문다. 벽에 닿게 네 어깨를 뒤로 꺾었다. 너는 이제 내 허락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한다.
"내 마음 알지? 사랑해."
포개지기 직전에 멈췄다. 말랐던 입술은 네 숨이 닿아 눅눅하다. 네 몫은 남겨놨으니 겹치던 씹던 알아서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