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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도사린 악의. 누군가 만들어낸 실험장의 모순적인 구조. 거기에 희생된 아이들이 만들어낸 저주와 절망이 응어리진게 샹그릴라 사건이다. 유한은 그걸 언급하는 태오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도시 전체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구조의 부산물이다. 그리고 유한 본인의 태도 역시 그 도시의 부산물이다. 부산물끼리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판단하는 것이 참으로 우습지 않던가.
- 인두겁 쓰지 않은 주제에 인간이라고 참칭하고 다닌다는 걸 자랑스러이 이야기 하냐고.
능청스러운 것은 거기까지였다. 태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한의 주먹이 날아가 태오의 안면에 꽂혔다. 순간 갑자기 일어난 일에 유한은 본인 스스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어라?"
덜덜 떨리는 손. 유한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무엇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타인을 향해 이렇게 반사적으로 폭력을 날려본 적이 있던가? 아니, 내가 왜 때렸지? 딱히 화가 난 것도 아니다. 태오의 말에 그는 놀랄 정도로 차분하고, 무감각했다. 그런데 몸은 어째서 반응한단 말인가?
- 역시, 우리는 남매구나. 그렇지?
제 누이의 말이 머릿속을 스친다. 왜 이게 갑자기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아니, 지금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길래. 유한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은건 태오인데도 꼭 자신이 한대 맞은 듯 힘없이 터덜거리며 태오를 향해 다가가고는, 그대로 태오 멱살을 움켜쥐었다. 태오 눈 빤히 들여다보는 유한의 눈이 공허하다. 평소의 그 밝고, 가벼운 분위기는 어디갔냐는 듯이.
"태오야. 너 나한테 무슨 짓 한거야?"
유한은 고개까지 살짝 갸웃거리며 물었다. 몸이 멋대로 반응한다. 몸이 이성을 우선하여 움직인다. 태오는 정신계 능력이었으니 분명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게 분명했다. 아니면 가스라던가, 약이라던가. 아무튼 무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럴리가 없다. 정신은 평온하기 그지없는데, 어째서 몸이 극렬하게 눈 앞의 청년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인가.
태어남 자체가 특권인 자가 있으며 개화 자체가 특권인 자가 있다. 태오는 레벨 3으로 개화하여 단 한 번도 계수의 변동이 없었다. 누군가는 태오를 두고 태생이 레벨 3인 녀석이 열등생을 어찌 이해하느나며 쑥덕이곤 했다. 옳은 말이다. 태오는 많은 것을 누렸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사랑하기로 유명한데다 명문으로 알려진 데 마레에서 차별 하나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고, 레벨 3이라는 점으로 지원금도 받았다. 능력을 잘 쓰는 만큼 머리도 비상하여 검정고시를 수석으로 들어왔단다. 능력 없는 학생들 눈에는 현태오라는 인물은 특별한 존재였다.
……거기까지가 남들이 아는 태오였다. 특별하고, 자신들은 절대 이해해주지 않을 고고한 존재. 이제는 레벨 4에다, 점차 더 높은 자리를 향하는 욕심 많은 녀석. 태오는 그 오해를 굳이 정정하지 않기로 했다. 옳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있어 자신은 명문 연구소 출신에, 레벨 3이고, 탐심 가득한 주제에 능력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이따금 이런 능력이 뭐가 좋느냐며 개운하지 못하게 웃는 배까지 부른 녀석이다.
─ 기만자.
태오는 귀를 틀어막고, 아무리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다 한들 원치 않게 들려오는 타인의 속내를 애써 무시했다. 타인의 원초적이고 날것의 속내와 이유 없는 악의, 시도때도 없이 속을 찔러오는 짙은 거짓의 구분, 제어할 수 없는 무능함은 자신만 알면 됐다.
이해란 것은 그런 것이다. 서로 일방적으로 좋을대로 받아들이고 입 닥치는 행위를 곱게 포장한 단어에 불과하다. 태오는 음악의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실전 투입이 처음이기에 뱉을 수 있는 무책임한 말과 함께 생글거리던 새봄은, 의무실 소리에 동월이 동요한 것을 눈치챘지만, 그저 의학적인 단어를 가급적이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말자 생각할 뿐 티를 내지는 않았다.
"얼굴을 보면 큰일나는 초자연적 존재가 적이라는 거네요. 그럼 더 긴장해야겠어요."
말투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가벼웠지만, 표정은 퍽 진지해진 채였다. 멍 때리다간 끔찍한 왕벌레들 밥이 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네, 선배. 선배가 생존자 맞다고 하시거나, 움직이시면 따라서 움직일게요."
그래서 아까 비명소리 들렸을 때도 가만히 있었잖아요. 라고 농담조로 덧붙이면서도 주변을 경계하듯 살피며 동월을 따라가던 새봄은, 그가 1층 휴계실 문을 열며 묻는 말에, 직감했다. 분명 끔찍한 게 그 안에 있었구나. 새봄은 깊이 심호흡을 하고,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참혹한 광경이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이 원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새봄은 희미하게 손을 떨었지만, 방 안의 광경을 직시했고, 이내 눈을 떼어 다시 동월을 바라봤다.
"비위가 나빠도 좋아져야죠, 저지먼트인데. 보기엔 저 안에는 생존자가 없는 것 같은데, 제가 잘 본 게 맞나요?"
그렇게 묻는 새봄의 얼굴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굳어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산만한 흔들림 없이 동월의 새하얀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역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다르다. 짐승이라 한들 그 깊이가 다르다는 뜻이다. 태오는 명백하게 자신이 ─라고 생각했다. 결국 악의가 도사리는 존재고, 한결같이 악독한 존재라고. 그렇기 때문에 짐승의 언어로 울부짖고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만 대화할 수 없는 존재라고 믿었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몸이 바닥에 떠밀렸다. 머리를 헐겁게 쪽진 볼펜이 어딘가로 굴러가고, 먼지 쌓인 바닥에 나뒹굴었다. 시야가 아찔하다. 익숙한 고통과 만족감을 느꼈다. 보아라, 너는 이래야만 옳다.
"흐-"
태오는 뒤로 넘어진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을 굴려 당신의 표정을 힐끔 바라본 태오는 바람이 빠지듯 숨을 뱉었다. 웃음은 한 번에 불과했고, 명백한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처음 당신을 만났던 날이 떠오른 탓이다. 한 대만 맞았지만 입안이 터진 것 같다. 비린 피가 고였지만 이가 빠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바닥에 뱉을 수 없어 대충 찝찌름하니 비린 것을 삼켜내고는 손등으로 대충 입술을 훔쳤을 적, 당신이 멱살을 움켜쥐자 눈을 정확히 마주했다. 공허한 눈동자를 꿰뚫을 듯하다가도 색채 옅은 눈동자가 가느다란 호선을 그었다. 온전하게 그였으니 이 또한 웃음이다. 보아라, 결국 너 또한 동물이다.
"내가? 뭐를?"
보아라, 이는 단천한 탐심의 말로이니 나 또한 금수이다. 태오는 고개를 마주 기울였다. 길게 풀어헤쳐진 머리가 얼굴을 일부 덮지만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여전히 평온하고 담담하다. 빌어먹을 만큼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다. 웃음을 지었지만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 순간을 더없이 기다렸다는 듯, 진득한 악의가 꿈틀거리고 있는 사람이라기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네게 뭘 했다고 생각해……? 네 본성을 일깨우도록 마법이라도 걸었을까? 뇌를 갈라 그 속을 들여다 보았을까? 새삼스럽게 당연한 것을 물어……."
기운 없는 목소리 사이로 날카로운 문장을 둥글게도 쏘아 뱉었다. "짐승답게 굴게끔 응원이라도 했나……?" 그리고 몸이 파르르 떨렸다. 흐- 하고 다시금 웃어 보였지만 웃음을 표출하기에 지나치게 무뎌진 사람이었기에 지어낸 것이 썩 보기 좋은 웃음은 아니다. 외려 달뜬 표정에 가깝다. 탄식에 가까운 숨을 한 번 뱉고는 눈을 흘겼다.
"주제도 모르고 인간이라고 설치다가…… 네 주제 일깨워주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지, 그치? 그런데…… 네가 인간 탈 고쳐 쓰지 않았으면서 왜 나를 탓해."
추잡한 감정이었다. 열등감이라기엔 근본부터 지나치게 뒤틀렸다. 가소로움이라기엔 오만함이 부족하다. 동정이라기엔 지나치게 야유스럽고, 동질감이라기엔 그 차이가 명확하다. 너 또한 짐승이나 나와는 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너는 아무리 범죄에 손댔다 한들 나만 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자비의 손 뻗어주어 한 번이라도 길들여진 짐승은 야생의 것이라 할 수 없으니까. 그 빌어먹을 자경단 말이다. 순간 감정 하나가 울컥 스민다. 너는 자비의 손길이라도 있었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내 이리 추잡스레 군다. "지금도 이리 구는 주제에, 어떻게 뻔뻔스럽게 나를 탓해……?"
아지는 청윤의 이야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다고 믿기보다는 그렇다고 믿고싶은 것으로 보였다.
"~~"
낑낑대는 게 강아지 소리 같은 것을 내면서 아지는 맛이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청윤을 바라보았다. 어찌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눈빛이다.
"네에 분명히 맛있을~ 맛... 괜찮을 거예요~!"
두 숟가락 분량의 스프를 바라보며 아지는 자리로 청윤과 함께 돌아온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고서 배시시 웃는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아~"
식사자리에서 보는 청윤의 모습이 참 좋다! 학교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어쨌거나 아지는 요거트 자몽 샐러드를 조금 집어 먹기 시작했다. 요거트의 시큼함과 자몽의 쓴맛이 서로 어우러지는 듯 덮어주고 있었다. 열심히 야채를 씹는 아지의 근처에서 동물이 샐러드를 먹는 듯 삽삽 소리가 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