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다리 없이 땅을 기며 마치 굴종하듯 고개 내리고 다니는 짐승에게 주어지는 것은 조롱 밖에 없다. 인간들은 뱀을 보면 땅을 기는 것들이 독을 품었다며 코웃음을 쳤다. 조롱할 처지가 바뀌었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처절하게 망가진 당신은 빈정거렸고, 가장 화사한 태오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기분이 나쁜 걸 표현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태오는 달랐다. 당신을 내려다 보며 상처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판단했다. 조롱이라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조롱이라 느꼈다고 해도 삭막한 감정은 무언가 느낄 새도 없이 금세 흩어져 초연하게 만들었을 것이 뻔했다.
"그런 시답잖은 앙탈은…… 네 정인에게나 가서 말해."
하지만 한 가지는 넘어가기 어렵다. 걱정이라니! 자의로 속을 긁고 싶든, 지친 탓에 아무 말이나 나오는 것이든 납득하기 어려워 당신의 말에 툭 반박했다. 누가 봐도 나 스트레인지랑 연관 있습니다 하는 사람에게 그쪽에서 가장 필요하지 않은 덕목을 걸고 넘어지니 썩 좋게 들리지 않았던 탓이다.
"축하는 해드리도록 하지요. 다만 빨리 끝내고 꺼졌으면 하는 바람이랍니다……."
태오는 당신을 부축하며 USB에 시선을 잠깐 두었다가, 이내 거두었다. 얻긴 얻었구나. 그러면 됐다. 어서 이곳에서 나가길 바랄 뿐이다. 태오는 이내 축축한 옷에 시선을 옮겼다. 당신이 가벼운 건 허약한 태오에게 있어 감사할 일이지만 옷은 영 감사하지 못했다. 이대로 바깥이라도 갔다간 어디 오해받기 딱 좋겠지! 스트레인지 구석에 처박힐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달리 불만을 뱉지는 않기로 했다. 인간의 삶이 언제는 덧없지 않은 날이 있었나.
"……목적지에 도착하면 두고 갈 테니 그리 알아요."
아는 병원이라. 굳이 따라가거나 보호자로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당신도 그걸 바라지 않을 것 같아 적당히 말을 꺼내고는, 흐릿하게 웃으며 꺼내는 말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앞만 보고, 당신이 아닌 가야할 길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내…… 탓할 대상이 없는 게 애석할 따름이군요……. 네 느끼기엔 그런 것일까요."
태오는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네 내가 비꼬길 바라느냐고. 다만 태오는 그럴 마음은 없는 듯싶었다. 실로 그러했다. 인간의 삶은 덧없고 사사로운 것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금세 승화될 감정이었기에 지금도 승화되어 지난 일에 불과하다. 다만 그 깊어진 골은 다시 수복하기엔 시간 걸릴 수밖에 없으니.
"누구도 부축해주길 바라지 않았다는 것도…… 같군요."
이런 것까지 닮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태오는 느릿하게 덧붙이더니 앞으로 계속 걸었다. 이제 보니 태오 특유의 달관한 듯한 무표정에서 귀찮음인지 성가심인지 모를 무언가가 아주 희미하게 서린 것 같기도 하다. 가까이에서 마주해야만 보일까 말까 한 감정도 감정이지만, 향이나 그런 것도 평시와는 다르다. 평상시 태오에게서는 샴푸 냄새를 제외하면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향수 냄새가 드문드문 섞여있다. 태오의 것은 아니었다. 아마 태오도 스트레인지에 볼 일이 있어 온 듯하다. 다행스럽고도 우스운 일이다. 당신을 조롱하고자 쫓아온 게 아니라, 그때처럼 빌어먹을 타이밍이 나빴을 뿐이라는 점이.
사실 처음에는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이름이었다. 리라 개인에게 있어 유익한 정보들이라곤 해도 어디까지나 12년 전의 낡은 기록. 매분 매초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 되는 21세기, 그중에서도 20년은 앞선 첨단 과학 기술의 시작점이자 연구자들의 요람인 인천첨단공업단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는 과거의 이름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많은 정보는 그런 식으로 잊히고 묻힌다. 시간은 무엇보다 훌륭한 망각제니까.
하지만 가끔은, 우연찮은 계기로 하여금 잊혀 마땅할 것을 한번 더 들여다 보게 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디 보자. 로벨, 연지, 마레, 시즈, 알터, 영락... 됐다. 다 옮겨 적었네."
가나다순으로 정리된 연구소들의 이름과 간단한 정보가 적혀 있는 커다란 노트 위에는 색색깔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그곳에는 그동안 리라가 공부해온 연구소들에 대한 정보가 고스란히 옮겨져 있었다. 데 마레, 로벨, 시즈, 알터, 영락... 랩탑의 포스트잇 위젯에 써 있던 내용들은 이제 종이 위로 옮겨져 고전적인 기록지의 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건 타자기와 디지털 기록 방식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는 꽤나 큰 노동이었기에 리라는 포스트잇과 글자로 꽉꽉 찬 종이를 찬찬히 넘기며 뿌듯한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물 흐르듯 글자 위를 지나가며 문장을 곱씹던 잉크 묻은 손가락이 문득 생소한 연구소 이름 위에서 멈췄다. 애시르. 시현의 기록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와 같이 온전히 초면인 단어였지만, 그 곁에 쓰인 메모는 자꾸만 눈길을 잡아끌고 결국 이 부분을 다시 되짚게끔 했다.
[ㅇ] [애시르] 운영 시작 시기: 인첨공 발족 직후 비고: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보육원 존재. 특이사항 없음. 연구 성과는 평범.
주소: 인천첨단공업단지 제 2학구 00로 000길 00 연락처: (12년 전 애시르의 공식 연락처)
비교적 단정한 다른 글자로 쓰여진 옛 기록을 보던 눈동자가 그 아래 유난히 더 날려 쓴 악필로 적힌 추가 메모에 닿는다. 다른 문장들보다 최근에 쓰인 것처럼, 신선한 잉크로 쓰여진 티가 나는 추가 메모.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 생존본능과 능력 계발간의 상관관계 ㄴ발표자는 애시르 연구재단? 신생인 듯 ㄴ이론의 기본 전제가 커리큘럼에 반영할 경우 능력 계발의 대상이 되는 학생에게 다소 위험하지 않은가? ㄴ과거 애시르 연구소와 이름이 같다. 따로 적기 귀찮(해당 부분 줄 그어져 대충 지워져 있음)기록상 편의를 위해서 이곳에 추가 기록. (둘이 관련 있는지는 ?)
두서없이 늘어져 있는 글자들은 제대로 된 기록보다는 혼잣말을 받아적은 느낌에 가까웠다. 리라는 그 부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search: [애시르 연구소]
검색결과 없음. 리라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검색결과가 없지는 않았다. 다만 기껏 나온다는 게 그가 바라는 방향의 정보와 일체 상관없어 보이는 지식들이라서 문제지. 이를테면 인터넷 지식백과의 신화 관련 정보에 붙어 있는 북유럽 신화 신족 애시르Æsir 에 대해서라던가.
"아무리 그래도 이게 끝은 아닐텐데... 으음..."
'연구' 키워드를 넣은 덕분에 뭔가 더 걸리는 정보는 있지만 그뿐이다. 노트에서 확인했던 애시르 연구재단이란 곳은 홈페이지가 존재하는 것 같았지만 이렇다 할 특이사항은 없었고. 모로 보나 유익한 정보값이라고 할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노트에 적혀 있던 위험한 이론이라는 사족이 조금 신경 쓰이는 탓에 창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리라의 손가락이 이리저리 헤매다가 뉴스란을 누른다.
"그래도 뉴스가 있긴 있네?"
마이너 언론사의 글 한두개 뿐이지만. 간략하다 못해 성의 없는 타이틀을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리라는 곧 링크를 클릭했다.
신생 연구재단. 연구소가 조성되는 대로 신임 연구소장을 채용할 예정. 거기까지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다. 이 작은 공간에서 재단이나 팀 같은 것들은 매일 다른 모양으로 피어났다가 사그라들고 융합되길 반복하니까. 그러니 시선은 자연스레 지루한 기사 중 그나마 독특한 대목에 꽂히게 된다.
(생략) ...연구를 위해 부지를 구매했으며 구매한 땅이 스트레인지 내에 있다.
연구소 자리 치고는 신박하다 못해 이상한 장소 선정에 리라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그러나 그 의문이 차마 더 깊어지기도 전에 쥐고 있던 핸드폰에선 요란한 알람이 울린다. 아, 커리큘럼 시간이 다가왔다.
"으으으, 다 좋은데 커리큘럼실이 멀어진 건 조금 불편하네... 찡찡아, 언니 다녀올게. 간식통 꺼내면 안 돼. 알았지?"
노트를 가방 안에 넣고 핸드폰 화면을 끈 리라는 찡찡이의 등을 한 번 쓸어주고 집을 나섰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은 습하지 않아서 곧 계절이 바뀔 거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실감이 난다. 의문도 고민도 해야 할 일들도 잔뜩이지만 새롭게 다가올 시즌은 어쩔 수 없이 철없는 가슴을 뛰게 만들어서.
청산하지 못 한 과거는 언제까지고 뒤를 쫓아옵니다. 그저 눈을 돌렸을 뿐인 현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정에 없던 해수욕을 하고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건 샤워였다. 해안가로부터 집까지 젖은 채 걸어온데다 해수욕을 한 시간도 적지 않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행동의 대가를 치루듯 씻고 나와 취하려 한 잠을 지독한 어지럼증으로 인해 깨고 말았다.
어둑한 시야마저 빙글 도는 것에 설마 하며 이마를 짚자 내 손이 되려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의 열이 화끈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메마른 목에서 심한 갈증이 느껴져, 일단 뭐라도 마셔야겠단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도 어지러운 것이었던가.
고작 방에서 부엌까지 가는데만 한 세월 걸렸다. 겨우 벽을 짚어 도착한 부엌에서 더듬더듬 불을 켜고 물을 따르기 위해 잔을 집어들었으나 그만 놓치고 말았다.
쨍그랑!
당연한 수순으로 깨져버린 컵을 보고 피하려고 했으나 되려 파편 하나를 밟아버렸다. 두꺼운 유리조각이 살을 파고드는게 느껴졌지만 지금 빼낼 재간은 없었다. 멍한 머리지만, 귀찮아 죽겠다고 생각하며 한 발을 질질 끌며 방으로 돌아갔다. 어찌어찌 폰을 켜 유준의 연락처를 누르자 신호음이 울렸다.
뚜르르 하는 소리가 대여섯번 이어지다가 달칵, 받는 소리로 이어졌다. 필시 자고 있었을 잠긴 목소리가 왜, 라고 들려왔다. 나는 필사의 목소리를 끌어 대답했다.
"나, 열 나, 는데... 지금..."
그 말만 했을 뿐인데 바로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화가 뚝 끊어지고 그대로 침대에 기대어 기절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든 건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깊게 박혀 있었는지, 쑤욱 빼내는 순간 신경이 팽팽히 긁히는 고통에 절로 눈이 떠졌다. 덕분에 조금 맑아진 정신으로 자상을 회복시키며 주변을 보자 장갑 낀 손으로 집게를 든 유준이 침대 발치에 있었다.
오자마자 나를 눕히고 유리조각 제거부터 한 모양이었는데, 이걸 참, 고마워 해야 할지...
그 불만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미간을 구긴 유준이 투덜댔다.
"이 새벽에 처불러놓고 표정 봐라. 이걸 확 그냥."
그래봤자 그의 담당 소관인데 어쩔 것인가. 없는 기력 끌어다 오른손 중지를 들어보이자 분에 받쳐 씩씩거리면서도 이내 한숨을 푹 내쉬는 유준이었다.
다시금 잔소리가 목 끝까지 올라온 듯한 유준이었지만, 이번에도 한숨으로 삼켰다. 나는 그런 유준을 별 것 보듯 빤히 보다가 링겔을 가져오는 모습에 잠자코 팔을 내밀었다. 발바닥으로 인한 여파로 팔뚝에 바늘 꽂히는게 둔하게 느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침대 옆에 간이 링겔대가 설치되고, 투명한 수액이 관을 타고 조금씩 몸 안으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지금 시간이... 어, 두 시간 후에 한 대 더 맞출 거니까 얌전히 있어라. 어차피 꼼짝도 못 하겠지만." "어어..." "아프다고 은근슬쩍 말 까네, 이게."
유준은 내게 꿀밤 먹이려는 시늉만 하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얼핏 보였는데,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집에서나 입을 후줄근한 차림새였다. 평소라면 당연한 거라며 금방 눈 돌렸을 것이 어쩐지 시야에 걸렸다.
나로 인해, 주변의 누가, 얼마나, 저런 상황에 처했었을까.
고열로 끓는 머리는 깊은 생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곧 돌기 시작한 약효로 인해 다시금 의식이 끊겼다.
그녀에게 일차적인 해열제를 투여하고 나온 유준은 거실 한 가운데 서서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본디 저 열병은 가만히 있어도 연중 몇 번 정도 찾아오는 것이기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어쩐지, 문제는 달리 있을 것이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역시, 목화고로 진학하는 것부터 막았어야만 했는데.
너무 늦은 후회가 유준의 머릿속을 스쳤다. 이제와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늦어버렸다는 생각도 함께.
"아흐- 진짜."
방에는 들리지 않게 한숨과 투덜거림을 흘린 유준은 소파에 걸터앉아 폰을 꺼냈다. 생각난 김에 연락이나 보내둬야겠다 싶어서였다. 화면을 켜 한 개인과 연결된 톡방을 열고 망설임 없이 메세지를 작성해 전송하기 시작했다.
>[성운 학생, 이런 시간에 미안하다. 생각난 김에 전해둬야 할 것 같아서. 일전에 혜우의 이상반응에 대해서 얘기했었지. 그것 말인데, 측정된 뇌파를 가지고 모든 데이터 베이스를 뒤졌지만 일치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 겨우 알아낸 것이라곤 측정된 뇌파가 적어도 셋 이상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 내 쪽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뇌파의 개별 분리도 시도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어. 그걸 검증하느라 시간이 제법 들었다. 혹시나 기다렸다면 소식이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는 건 아니었어. 관련 분야에 조언을 구해보니 한 가지 방법이 나오긴 했다. 톡으로 얘기하긴 그렇고 다음 레슨 때 만나거든 직접 얘기하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장문의 메세지 두 건을 보내고 폰을 끄려던 유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 건을 덧붙였다.
>[이건 별개다만 오늘부터 한 사흘 정도 그 녀석이랑 연락이 잘 안 될 거다. 고열에 시달리는 지병 비슷한게 있는데 마침 이번에 터지는 바람에 드러누웠거든. 옮는 건 아니니까 들락거리는 건 상관 없다. 알아두라고.]
"...내가 왜 이것들 연애질까지 중개를 해줘야 하나 싶구만."
전송된 톡을 보며 투덜거린 유준은 폰을 꺼 소파에 툭 내려놓았다. 넉잡아 두시간은 있어야 하니, 잠깐 눈이나 붙이기로 했다.
도착한 커리큘럼실이 평소보다 깔끔하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라는 캔버스나 종이, 색연필이나 물감, 연필, 펜, 팔레트나 물통 따위의 그림 도구가 없는 커리큘럼실 내부를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뭐가 없네요?" "아, 이리라 학생 커리큘럼 스케줄 새롭게 갱신하느라 세팅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오늘은 그쪽 도구들 쓸 일 없으니 신경 쓰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요. 스케줄표 확인하고 들어가죠."
정인의 대답에 리라의 고개는 다시 한 번, 몇십 분 전 기묘한 장소 선정을 한 연구소에 대한 의문으로 기울어졌던 방향과 반대로 기울어진다. 그의 담당 연구원은 주기적으로 커리큘럼 스케줄을 바꿔보곤 했으니 갱신은 딱히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도구들을 쓸 일이 없다는 말은 확실히 의아했다. 저번주부터 진행했던 '도구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탐구'는 이미 막을 내렸으니 오늘부터는 의료용 메스 대신 각종 그림 도구를 손에 쥘 거라고 생각했는데, 쓸 일이 없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건네진 프린트물에 쓰여 있는 커리큘럼 스케줄표를 훑어내리던 옅은 라벤더색 눈동자가 정인의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했다.
".....이거 꽤 오랜만에 하네요?" "네. 오랜만이죠."
고저 없는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딱딱하다. 리라는 안경 너머 냉정한 눈빛을 몇 초 정도 응시하다가 다시 프린트물로 시선을 돌렸다. 전기충격요법, 전극을 활용한 뇌신경 활성화, 창의적 사고 확장을 위한 영상 시청, 집중 스피드 드로잉... 뒤의 두 가지는 최근까지도 해 오던 것들이지만 앞이 문제다. 이건 급격히 레벨이 오르면서부터는 진행하지 않았는데.
"레벨 4로 올라오면서 이리라 학생의 발전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 있다는 얘기는 한번 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때문에 레벨 0에서 2까지 올라올 때와 같은 발전 속도를 끌어내보기 위해서 초기 커리큘럼을 다시 도입했어요." "......이제 안 하는 줄 알았어요." "기본적인 거잖아요. 필요하다면 해야죠."
리라의 시선이 커리큘럼실 한켠의 또 다른 문에 닿는다. 지독한, 지독했던, 비명소리가 사면에 부딪혀 메아리 치던, 어둡고 차가운—
"연구원님은 지금의 저에게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네. 이리라 학생은 아닙니까?" "그!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글쎄요. 전 이제 레벨 4잖아요. 기존 과정대로도 느리지만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었고요." "조금 전에 말했는데 제대로 안 들었습니까? 느린 게 문제입니다. 레벨 0에서 2까지 올라올 때에는 이것보다 훨씬 빨랐어요. 이리라 학생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살짝 굳은 리라의 낯을 응시하던 정인의 마른 입술이 느릿하게 달싹이다가 재차 열렸다.
"이제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건가요?"
실망스럽군요.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귓가에 들려온 책망의 목소리에 리라는 한순간 언어를 잃어버리고 만다.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이리라 학생은 처음부터 야망이 있었으니까요. 자, 이만 들어가죠. 옷장에 있는 옷으로 환복하고 오세요."
게다가 알고 있었다. 어차피 반박해봤자 커리큘럼의 진행 방식은 연구원의 손에 달려있으니까. 잉크 묻은 손가락이 철제 캐비닛을 열자 서늘한 소독약 냄새가 밴 천쪼가리가 그를 반긴다. 입술을 꾹 깨물어 울렁이는 속을 잠재운 리라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캐비닛 안에 넣고 실험복에 팔다리를 꿰었다.
"하지만 정말 자취를 원하는 걸까?라는 질문에는 전혀 답할 순 없었네요." 그 이유는 자취를 시작하고자 하는 요인에 외부의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타인에게 말할 수 있을리가요. 스스로가 깨닫지도 못했는데. 수없이 많은 별이 밤하늘에 수놓아져 있다고 해도. 결국 사람이 인지하는 것....일까요? 그렇기 때문에 수경은 산책을 계속하겠다는 말 대신.
"물 속은 빠져야만 들어갈 수 있긴 해요." "제게 있어서는 그 점이 조금 다를까요." 그런 느낌으로 물수제비처럼 통통 될수도 있을까. 라고 생각해봅니다. 혜우를 바라보면서. 물에 빠져버리면 아프게 될 수도 있나? 라고 생각하지만. 움직이지는 않네요. 그뿐입니다...
목으로 손을 올리며 느껴지던 간지러운 감각을 기분 탓으로 넘길 수 없다. 괜히 머리를 올렸을까. 그렇지만 그냥 풀어두고 있자니 몇번 다듬는 것 외 건드리지 않았던 긴 머리카락은 분명 답답하게 보여질텐데. 생각이 멈춘다. 태연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던 네가 먼저 시선을 돌려서 다행이다. 혜성은 목에 대고 있던 제 손을 내리고 냉동실에 봉지를 집어넣으며 자신이 저 시선을 의식해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니, 그리 덥지 않던 자취방이 갑자기 더워졌다고 혜성은 생각했다.
음료수로 하겠다는 금의 말에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느냐고 혜성은 말로 하는 대답 대신 고갯짓을 해보인다. 평소보다 조금 정리된, 평소와 똑같은 풍경의 자취방에 사람 한명이 늘었을 뿐인데 신경이 온통 등 뒤로 쏠려있는 기분이 생소하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둘이 누우면 좋을 크기의 침대 한켠을 채우고 있는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인형들을 보고 있을까. 음료수를 따르던 혜성은 곧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등 뒤가 신경쓰이는 이유가 금이 때문인지, 아니면 누구도 찾아온 적 없는 자취방에 자신 외의 사람이 있기 때문인지 지금으로선 도통 판단할 수 없다.
주스가 담겨 있는 머그컵을 들고 돌아보면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은 금의 모습이 보여 혜성은 키득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왜 바닥에 앉아 있어. 침대가 불편하면 책상 의자에 앉아 있어도 되는데."
음료가 담긴 머그컵을 건네며 말하던 혜성은 입에 물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더 베어문 뒤 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잠시 눈동자가 도록 굴러간다. 보고 싶었다는 말 때문이고, 제 앞에서만 짓는 웃음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였나. 당연하다는 양 지어보이는 쑥쓰러워하는 미소를, 말로 하지 않더라도 좋아하고 있음을 증명하듯 보여주는 행동이 간간히 떠오르기 시작하던 게.
"보러 와줘서 고마워."
카라멜 맛 스틱형 아이스크림을 베어무느냐고 차가워진 입술까지 열이 오르는 기분이였지만 혜성은 느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입 안이 달게 느껴지는 건 아이스크림 때문이겠지. 금이 앉아있는 방향 침대에 올라가 앉아 말랑거리는 촉감이 좋은 인형 하나를 당겨서 무릎 위에 올린 뒤 혜성은 주스가 들어있는 머그컵을 잘 들고 있는 걸 확인하는 것처럼 시선을 준다.
"잠깐 시간 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금이 네가 찾아와줘서 쉬는 거기도 하고."
금의 등 뒤에서 고개를 들이민 혜성은 금의 뺨에 카라멜 맛이 나는 입맞춤을 아주 짧게 남기려했다.
와, 동월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감탄을 흘렸다. 사람이랑 똑같다니! 물론 평소의 동월이라면 정색하며 '저것과 인간을 동일시하지 마라' 따위의 말을 했겠지만, 이번엔 괴이에 대한게 아니라 귀신에 대해 물은거니. 이 작은 거인은 겁따위 없는게 분명했다! 오늘의 구조는 순조로울 거라고 생각한 동월은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 뭐, 그래도 여기 귀신 놈들은 인간이랑 확실히 다르니까 혼동하지 말고. " " 여기에 '고마운 귀신' 따위는 없으니까. "
멀리서 들린 비명에 동월은 잠시 그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볍게 까딱이며 살금살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좋아. 돌발 상황에도 큰 동요 없이 이쪽의 반응을 기다리는군. 점점 마음에 든다. 저것에 반응하거나 주의를 끌었다간... 어우, 별로 상상하고 싶진 않았다.
" 자, 이거. 쓸 줄 알아? "
동월은 품 속에서 나이프를 한 자루 꺼내서 새봄에게 건네준다. 판단력도 충분한 것 같으니, 무기를 맡겨도 돌발 행동은 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몸을 지킬 무기는 언제나 있는 편이 좋으니까. 벌레 정도야 나이프로 머리를 썰어버리면 죽일 수 있다. 물론 피할 수 없을 경우에만 권장되는 거지만.
아무튼. 동월은 나이프를 꺼내서 자신의 손바닥을 샥, 그었다. 그에 따라 상처가 생기고, 피라 흘러나온다. 흘러나온 피를 휴지에 대충 묻히고 근처에 아무렇게나 던진 다음, 익숙하다는 듯이 혈액응고제와 붕대를 꺼내 상처를 처치한 다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 함정...이라고 해야하나. " " 저것들은 인간 피에 환장하거든. "
벌레 닮은 그것들도 그렇지만, 이 안에서는 인간과 닮은 것들도 많이 나오니까. 모든 괴이는 인간의 피를 좋아한다. 저게 맛있나?
" 그래서 일단은, 실종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안전구역부터 확인해볼까 하는데... 괜찮아? "
아무리 저지먼트의 일원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생소한, 그리고 위험한 곳에서 뭔갈 하기엔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괜찮다고 한다면 이대로 수색을 재개하고, 위험하다고 말하기 충분한 구역을 탐방할 것이다. 아니라고 한다면 일단 탈출을 최우선 목표로 두겠지. 동월은 이런 곳을 매일 다니지만 새봄은 그렇지 않을 테니까.
*인터넷의 바다에 휩쓸리다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참치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본 어장의 관리자는 캡틴이 맡고 있지만, 해당 글은 부득이하게 캡틴이 아닌 다른 참치가 작성한 것을 알려드립니다. **본 글에서는 '참치 인터넷 어장'의 '상황극 게시판'에 존재하는 '초능력 특목고 모카고!'를 즐기기 위한 주의 사항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꼼꼼히 확인하시어 어장 이용에 불편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1.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 그게 뭐야? 여기 마술 쓸 줄 아는 사람 있어? └ 없으니까 몰라도 되는거지. └ 선배에게 말대꾸는 그만두십시오 검도부.
2.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3.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 근데 왜 이렇게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많은 걸까요 └ 우리처럼 스킬아웃 때려잡고 다니나봐. └ 현생 때려잡고싶다...
4.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 '동월' 부원의 ■■차 실험 결과 : 의도적으로 몇 주 간 인사를 기피한 결과, '최은우' 부장의 에어 꿀밤을 맞은 것으로 확인됨 └ 워리형... └ 슨배임... └ 동월아... └ 뭐이씨 칼날 밤꿀 맞아볼래?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 @천혜우 └ 누구야 나와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 맞아요 건전하게 하자구요~ └ 야한아지 └ ٩(`ω´٩ꐦ)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 저지먼트는 법정공휴일이 없나요? └ 법이라곤 쓸모없는 윗대가리가 만든 것 뿐인걸. └ 언니 예쁜말!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 그럼 반응레스 10번 쓰면 훈련 10번 한걸로 쳐주나? └ 천재냐? └ 당장 하자. └ 셋 다 부실로 와.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 ■■■■■■■ └ 이게 뭐야 괴이냐? └ 시트 내려가서 검열당했대요. └ 헉 └ 아니야 그냥 누가 장난친거야...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 뭐야 여기 평행세계였어!?!?!!? └ 은우야 기억소거제 약빨 떨어졌다. └ 그게 무슨 소리에요 부부장님 내 귀에 도청장치ㄱ └ 처리완료.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 이거 달달하긴 한데 진행하기 힘들어보여요 └ 세계 지배의 길이 그렇게 만만할줄 알았더냐 대장 └ 아.
오신분들 모두 안녕이에요~~~ 낙서에 사용된 색깔은, 여러분 위키에 있는 색깔을 채취하여 사용하였습니다 :D 월주의 표현력 부족으로 인해 누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저거 누구야! 라고 물어보시면 친절하게 답해드립니다~~ (근데 혜우 태그한 사람 누군지는 말해줄 수 없습니다)
코까지 막아보이는 애린을 향해 뚱한 표정을 지었다. 뭐 솔직히 말해서 동월이 어둠과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테다. 오히려 어둠 속에 묻혀있다고 생각하는게 좋으려나.
" ......그런가. "
이어지는 애린의 '충고'에, 잠시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동월은 한숨을 내뱉었을 테다.
" 뭐... 말해줘서 고맙다. " " 좋은 결과 기대할게. "
결과가 나왔다면, 동월은 지체하지 않고 결과지를 받아들고서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실종자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은, 지금도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다. 동월의 손으로 더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해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 ....너도 갈래? "
그러니 이런 말이 나온것은,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을 테다.
" 싫음 말고. "
그러고는 애린이 따라오든 따라오지 않든, 검은 양복을 입은 동월은 안주머니에 하얀 돈봉투를 찔러넣고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당도한 어느 집. 초인종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동월은, 이내 결심했다는 듯이 초인종을 꾹 눌렀다.
♪♩♩♩♪♪♩♪
지금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경쾌한 초인종이 울려퍼지고, 곧 수척한 모습의 중년 여성이 문을 열어주었다.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동월을 보고는 놀란 눈치다.
" 실종된 아드님의 수색을 담당하던 사람입니다. " [네?] " 저희가 계속해서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있던 것은 아드님의 '일부분' 뿐이었습니다. " [......] " 정말 죄송합니다.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
그리고 동월은 DNA 검사 결과표와 함께 하얀 봉투를 내밀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곧이어 떨리는 손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들고, 동월이 다시 허리를 피자...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무너지는 여성을 볼 수 있었다.
늘 그렇듯, 동월은 조용히 서서 기다릴 뿐이었다. 그 울음소리는 아주 잠깐은 멈추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의 울음소리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도 슬프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오늘도 행복해지자. 내 행복으로 절망을 끊어, 조금이라도 더 많은 행복을 나누어줄 수 있도록.
해질녘이 다 되어서야 동월은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 끔찍하게 붉은 하늘이네. " " 매일 끔찍하게 붉어라.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예쁘다고 생각할 수 있게. "
아지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겸손한 말을 한다. 칭찬은 부끄러운지 뺨이 조금 빨갛게 된 것 같다. 실제로 친구 관계란 마주 대어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 목화고 학생들이 전부 손바닥을 마주대주는 착한 아이들이라면 전교생과 친구먹기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좋습니다아~"
아지가 팔을 번쩍 들고 즐거워한다. 청윤이 조금 놀란 기색을 보이자 아지는 선풍기를 조종해서 자신에게 돌아오게 해 손에 쥔다. 그러고 해맑게 웃는 것이다.
"더울까봐서요~ 놀랐으면 미안해요 누나아~"
청윤이 일어나자 좋다며 청윤을 따라 나선 아지다. 샐러드바에 가면 제일 먼저 자몽 테마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몽을 곁들인 샐러드가 보인다. 말린 자몽, 자몽 젤리와 다양한 종류의 토스트, 자몽 잼과 딸기 잼, 모과 잼이 있다. 이곳에서 자몽으로 이루어진 것을 찾아본다면 그릇에 덜어 가져올 수 있는 연어 자몽말이, 카프레제, 꿀자몽, 자몽 타르트, 자몽 피자, 자몽 무스 디저트, 자몽 주스와 자몽 논알콜 칵테일 같은 것들이 있겠다. 특이하다 싶은 것은 초콜릿에 찍어먹는 자몽과, 자몽 필링이 들어간 마카롱이 있는데 이것이 꽤 호화로운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카롱 타워)
케이크에도 자몽이 있으며 자몽이 고명으로 얹어진 에그타르트, 자몽이 소량 들어간 크림 파스타... 고를 것이 꽤나 많아보인다. 단점이라면 김치 같은 것은 없다는 점이다.
"그런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비주얼도 사람만 한 왕 벌레니까 쫌...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래야 들 수가 없기도 했구요."
이게 무슨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도 아니고. 숨소리에 가깝게 투덜거리던 것도 잠시, 소년이 신호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자, 새봄은 입을 꼭 다물고 숨소리도 죽인 채 그 뒤를 따랐다. 역시 뛰쳐나가거나 하지 않길 잘했다, 저분은 연배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저지먼트 선배님이신 거 같고, 그런 분이 사람 비명이 들렸는데, 가만 계신다? 돌발행동했다간 한국 누가 캔디 된다는 거지.
"아, 감사해요. 마침 무기도 장비도 뭣도 없어서 막막했는데. 네, 나이프 파이팅도 배운 적 있어요."
소년이 나이프를 건네주자, 새봄은 반색하며 받아서 들었다. 그러다 소년이 느닷없이 자해하더니 휴지에 피를 묻혀 여기저기에 던지기 시작하자 깜짝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곧장 응급처치하는 모습과 부연 설명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시겠다. 여기서 나가면 의무실에서 또 처치 받으셔야겠는데요, 혜우한테 가시거나."
그러다 파상풍 걸릴지도 몰라요. 속닥거리던 것도 잠시 실종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해 보자는 말에, 새봄은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 0에 실전 투입은 이번이 처음이라 폐를 많이 끼치겠지만, 괜찮으시다면 동행할게요. 아, 소개가 늦었네요. 1학년 신새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군기가 바짝 들어간 힘찬 목소리 대신 속닥거리는 목소리로나마 자신을 소개한 새봄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들어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제때제때 해야한다는 것이 아지의 생각이다. 혜성은 가족같은 사이로, 사랑한다는 단어로 오해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애정을 듬뿍 표현했다.
그러고서 속으로 떠올리는 것이다.
그 사람을 믿어줘. 그 사람은 너를 믿고 있어.
휴가날 혜성을 떠오르게 했던 메시지다. 그래서 아지는 혜성을 믿기로 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좋은 쪽으로 풀릴 것이라고, 많이 걱정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젠가는 의존해줄 것이라고, 그렇지 않더라도 혜성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아지는 혜성이 준 간식상자를 소중하게 껴안고서 그렇게 믿었다.
+
아지는 익명의 두 사람으로부터 수제 봉봉쇼콜라와 초콜릿을 받았다.
"누굴까아"
고민하던 아지는 혜우와 수경에게 각각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초콜렛 혜우/수경이가 보냈어~? ߹ㅁ߹)]
왜 하필 혜우와 수경인지는 아지의 비밀이다. 아지는 소예와 여로와 이경이와 경진이와 유한이와 동월이와 한양이와 리라와 랑이와... 그 외의 친구들을 전부 떠올려보다가 많아서 그만두었다.
씌어쓰기 되지 않은 채로 동월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고서 마침 아빠와 함께 공중목욕탕에 있던 아지는 눈을 껌뻑거렸다. 당황스러운 것이 제일 먼저였다. 아지는 탕에 몸을 푹 담그고 목욕탕의 이쪽 저쪽을 살펴보았다. 여기에 있어서 장난 친 건가~? 하지만 워리 형 없는데~
워리 형 앞에서 뭔가 이상한 생각을 했었나~? 그걸 들킬 일이 있었나~? 아니~ 나 이상한 생각 안 했는데에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아지의 얼굴이 점점 뻘개져온다. 뜨거운 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어서인지 열이 오르는 것 같다. 덕분에 이어진 동월의 메시지에도 아지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뭘 추궁하려고...??
그 의문은 운동장 벤치에 몸을 가리고 있던 아지와 동월이 만나고서야 끝이 났다. 여름 집업을 입은채 피크닉을 쫍쫍 빨아먹으며 아지가 동월을 바라보았다.
"분실물이에요~?" "이 사진 친구들한테 좀 보여줘도 돼요~?"
아지가 진지하게 사진을 살펴보더니 물어보았다. 발이 넓고 유명하다는 말에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했지만 말이다.
"되는 데까지는 도와드릴게요~"
횡설수설하는 것 같긴 했지만 아지가 아는 동월은 여학생에게 해코지를 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진을 보여줘도 된다고 했으면 사진을 보여주고 친구를 통해서, 안된다고 헀으면 친구들에게 바디 랭귀지와 외모를 설명해서 가족과 주소를 알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네~ 최근에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는 것 같아요~" "워리 형이 제대로 전해줄 수 있으려나아"
수경에게 연락을 받은 것은 편의점에 들어가서 에어컨을 쐬고 있었던 때다. 아지는 마시고 있던 키위에이드를 버릴 새도 없이 단박에 뛰쳐나갔다. 특수신발을 최고 속도로 가동하고 바닷가에 도착해서 수경과 혜우를 발견했을 때 혜우는 이미 꽤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었다.
"혜우야아아아~"
아지가 신발이 미끄러지든 말든 혜우에게 달려갔다. 물 앞에서는 잠시 멈칫했지만 혜우가 멀리 들어가는 것이 보이니 첨벙첨벙 들어갔다.
"너 어디 가~ 돌아와아~" "거기 위험해븝"
파도 탓에 물을 먹은 아지가 혀를 내밀고 물을 뱉어냈다. 허리를 지나 점점 차오르는 수면의 높이에 아지는 공포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생각이 아지를 덮쳤다. 아지는 고개를 물 위로 올려 악을 썼다.
"혜우는 무슨 생각인 거야~!!" "그러다 큰일나~!"
그리고 혜우가 큰일나면 내가 슬퍼. 여기까지는 말도 하지 못하고 살짝 미끄러져 또 물을 제대로 먹었다. 그 와중에 혜우를 붙잡았는지 어땠는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안 되겠다 싶은 수경이 텔레포트를 해서 도와주었는지 어땠는지, 정신차렸을 때는 온몸이 물에 푹 젖은 채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손에는 혜우의 옷자락을 찢어질 듯이 움켜쥐고, 말도 못하고 한동안 물을 토했다.
호감도 0 > 하? 어쩌라고 호감도 40 미만> 일단 사정을 들어주고 형식적인 위로를 건넨다. 호감도 40~60 > 귀찮지만 티내지 않고 어느 정도 어울려준다. 호감도 60 초과 90 미만 > 으이구 귀찮은 자식이라고 투덜대면서도 기분 전환 될 만한 걸 하러 데려간다 호감도 90 초과 99 이하 > 차분하게 달래준 후 나중에 조용히 그 원인을 조지러 간다. 호감도 100 > 설명이 필요한가?
안경쓴_자캐의_안경벗은_모습
혜우는 안 썼으니까 쓴 모습 되려 까칠해질 지도? https://picrew.me/share?cd=NKj9cfGvl9
자캐에게_좋아하는_사람에_대해_묻는다면
혜우 : 그걸 왜 묻는지 모르겠는데. 혜우 : 좋아하는 사람, 그거면 충분하잖아? 혜우 : 내가 못 미더우니까 여러모로 미안한 기분도 들지만 혜우 : 언젠가는, 전부 털어놔야겠지만... 혜우 : 뭐가 어찌 되건 좋아한다는 마음은 진심이야. 혜우 : 내 생애, 딱 한번 뿐일 테니까.
>>0 "아아... 여기가 양자의 바다인 검까..." [그냥 흔하디 흔한 인천 앞바다거든?] "...유라는 가끔은 여자의 기분을 알아야 함다." [뭐래. 오히려 여성스럽지 않은건 너거든?] "유라는 오따꾸의 마음을 넘 몰라여." [그게 뭔데, 오타쿠야.]
물론 시기상 바다에 방문한 것도 있겠지만... 정말 즐기기 위해서라면 이미 수영복 차림일테고, 여러사람들이 똑같은 차림으로 줄지어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검까... 그냥 멱이나 감고 싶었을 뿐인뎅..." [애초에 놀러온게 아니란건 너가 더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거든? 오히려 속은건 나거든...] "하지만 왔지?" [...선생님만 아니었으면 연구소 안에서만 있었을 거거든...] "그러니까 밖으루 꺼낸 거에여. 그러다가 히키코모리 되어버림다?" [이미 히키였거든? 뭘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며 뭔가 특이한게 있는지 찾아보던 그녀는 이내 바로 옆에 있는 여학생의 옷깃을 잡아당겼고, 무력하게 끌려갈 정도로 낭창낭창한 여학생은 뭔가 싶어서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이 굳고 말았다.
"WA! x즈!" [뭐래... 그냥 떠밀려온 평범한 물고기 뼈거든...] "평범한 물고기인지 아닌지는 분석해보믄 아는 검다!" [오히려 여기서까지 기계를 들고와서 대조하는게 더 신기하거든... 보통은 샘플을 재취해서 연구소에서 분석할텐데...] "에헴...!" [...마치 너라서 가능한 것처럼 으스대는 행동 같거든...]
>>387 증오가 모자란 경우가 있을까? 증오는 누굴 향하든 독이면 독이지 약은 안 될 거 같은데... 근데 에이 레벨4더러 무능하다고 하면 레벨 0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능하다고 해도 언젠간 부실을 과자집으로 만들고 말테야!!!! 그니까 성운이도 화이팅이야><
>>0 그 날로, 경찰서에 찾아가는 것은 청윤의 일상이 되었다. 다만, 너무 자주 찾아가면 이상하게 볼 것은 당연하니, 주변에 있는 가게나 은행 등을 찾아가면서 그 빌어먹을 자식의 위치를 늘 관측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허탕이었지만, 증오하는 사람의 모습은 의외로 하루에 한두번은 볼 수 있었다. 유독 다른 경찰관들보다도 자주 나가는 점도 있었지만.
"이건 너무 비효율적인데.. 좋은 방법..이..?"
버스에 올라탄 청윤은 잠시 고민하더니 얼마 가지 않아 버스벨을 공기탄으로 누르곤 버스에서 내렸다. 스트레인지, 아무래도 오늘은 이곳에서 물건을 사야할 것 같다.
"이거 대박인데요 형님?" "하하하..그러게! 그 레벨4니 뭐니하던 녀석이 된통 깨진 덕분에 약들 팔아치우기가 훨씬 편해졌다니까."
누군가가 죽고 다친 안티 스킬은.. 글쎄, 높은 사람이 막지 않더라도, 급격히 부실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돈다발이 그들의 손에 가득 쥐어져 있었다. 그때, 모시호는 더욱 육중해보이는 철문을 힐끔 쳐다봤다.
"잘만 하면..여기서..?" "여긴 무슨 문이죠? 제대로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뭔가 훨씬 더 위험한게 들어있지 않겠어?"
유한은 조용히 태오를 바라보았다. 태오가 입을 열 기미가 없는 것처럼, 유한 역시 입을 열 기미가 없었다. 태오와는 다른 이유로, 유한은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이 저질렀던 일은 잘못조차도 아니다. 아니, 애초에 일상을 벗어난 일도 아니며, 그저 수많은 평범한 일상의 한 조각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날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특별한 일은- 청윤이가 기절하여 1학년 후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태오의 바램과는 정 반대로, 유한이 꺼낸 것은 말이 아니었다. 식물의 잎을 말려 돌돌 말아 필터를 낀, 희고 긴 그것이었다.
"...하아. 조금 낫네."
그래서 그는 태오를 앞에 두고도 당당하였기에, 여느때와 같이 태연하게 담배를 한 입 물었다. 아니 여느때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소 태오가 먼저 권하는게 아니라면 입에도 대지 않던 그가 먼저 꺼냈다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그가 평소와는 상태가 다르다는 반증이었다. 태오와 이런 밀실에서 독대하는 것이 긴장되기라도 했나?
연구원은 갑작스럽게 확 차감되는 서한양의 계수를 보고 있었다. 서한양 본인 역시 낮아진 계수를 보고는, 염동력의 힘이 전보다 훨씬 강해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현재 가벼운 스트레칭 삼아서 염동력으로 조종하고 있던 덤프트럭. 가벼운 수준이 아니라, 과장을 좀 보태자면 애들 장난감을 드는 것처럼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마치 불시에 옆구리라도 푹 찔린 듯한 반응에, 성운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굳이 마음을 읽지 않아도 이 녀석이 자신의 농담에 태오가 기분나빠하는 반응을 보인 것을 흡족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되도 않는 아재개그를 갈기고는 극혐 표정을 짓는 상대방을 보고 뿌듯해하는 심리랄까. 그러나 그 얼굴에 서린 그 웃음도, 이내 조금 씁쓸한 것이 되었다.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뒤를 따라왔다.
“시답잖은 앙탈 부리기엔 혜우 컨디션이 좀 많이 안 좋아서요.”
성운의 목소리에, 그 모습이 묻어나온다. 시시각각 무너져가고, 시시각각 깨어져가는, 한때 태오를 오라비라 불렀던 짙은 푸른 머리의 소녀가. 그리고 그녀가 그런 꼴이 되는 데에 일조한 태오에 대해 아직도 남아있는 옅은 분노와, 의구심과, 하지만 이것은 내 선배되는 이에게 부당한 취급이다, 그가 의도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옅은 분노를 차분히 내리누르는 견고한 합리가. 그런데 뭐··· 딱히 태오가 알 바는 아니다.
“같은 바람이라 다행이네요. 그게 맘대로 안 돼서 그렇지.”
성운은 다시 지퍼 앞섶을 잠그고는, 태오에게 몸을 맡겼다. 그래, 나으리에게 성운은 뭔지 모를 그것을 내어준 게 다행히도 헛된 일은 아닌 모양이다. 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녀석이 또 자기 정체를 숨기겠다고 능력도 안 쓰고 냅뜨다가 원래라면 벌레 짓누르듯이 짜부라뜨릴 수 있었을 실뱀 나부랭이에게 된통 물려 이 꼴이 나기야 했다만, 이 역시 태오 책임은 아니고. 대충 두고 가겠다는 태오의 말에,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쪼록 편하신 대로.”
그리고 태오는 어쩌면 순간 섬찟했을지도 모르겠다. 성운의 말에 실려, 알터의 의료시설로 가면, 다음 집합 전까진 완치되겠지··· 하는 말 뒤의 소리가 태오를 스쳐갔기 때문이다. 기껏 화사하게 차려입고 나온 날에 태오를 첫 친구로 여기는 그것과 조우하는 것이 태오에게 그렇게 썩 바람직한 일은 아니겠다. 그렇지 않은가? 천만다행이라면,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그 끔찍한 것이 자기 친구를 마중나온 것 같은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일까.
“뒤집어 말하면, 딱히 누군가 선배를 탓할 사람도 없는 거죠. ···그러게요.”
딱히 주의를 기울여 읽을 가치도 없는 사사로운 착잡함이 스쳐지나간다. 성운은 문득 태오의 옆얼굴을 보며 뭐라 말을 꺼내려다가, 입을 다물고 만다. 입을 다물었기에 말도 나오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읽을 수 없다. 사실 뭐 그렇게 대수로운 말도 아니다만. 당신이 어쩐 일로 여기에 왔는지같은 거 알아서 뭐하겠나.
노란색 연기가 갑자기 막 화악하고 퍼지는데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닿기만 해도 바로 찌릿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고, 신경이 마비되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며... 본격적으로 들이마시면 연기 안에 있는 입자들이 몸 속으로 들어가 신경 쪽에 달라붙어서 뇌에서 전해지는 전기신호를 다 차단하고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숨도 잘 쉴 수가 없고, 막 절로 경련이 일어나고...대충 그런 효과가 있는 생체병기랍니다. 방독면과 맨 살이 닿지만 않게 조치하면 대처할 수 있지만요.
바깥에 나와 가장 먼저 느낀 것이 있다. 일상과 업무의 경계가 흐려지며 비일상과 이성의 경계가 선명해진다. 어떤 순간에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됐던 스트레인지와는 다르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스트레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이것도 좋게 쳐주면 그렇다는 거지, 태오가 느낀 것은 조금 더 음습하고 꼬인 면이 있었다. 당신은 바깥과 스트레인지도 구분 못하는 주제에 저지먼트를 참칭하고 있다. 남들이 볼 때는 짐승인 주제에 그걸 당연히 여긴다. 사냥 당하면 어째서 자신을 사냥하냐고 억울함을 호소할 것 같다. 태오는 지금이라도 당신이 뭐라도 뱉길 바랐다. 뭔가 얘기를 하면 지금 상황을 납득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세상은 태오의 편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태오는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부딪고, 직접 세상을 조율해야만 했다. 마치 지금처럼.
"꺼."
밀랍인형처럼 올곧은 자세를 유지하고, 굳게 다물렸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권하던 주체까지 바뀔 정도로 어딘가 이상한 상황 속에서, 니코틴과 타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던 태오가 당신에게 무려 담배를 끌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아니, 명령에 가까웠다. 담배에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레벨 3은 권총에 비견되는 법이지요."
대화의 서두를 뗀 순간부터 태오는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다. 심장은 다시금 뛰기 시작했고, 속은 뒤집어지기 시작하며, 눈은 타인처럼 대하는 것이 아닌 당신을 대하는 듯한 시선으로 변했다.
"총기가 사람을 해쳤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부실의 분위기는 어떠하겠고."
바깥으로 온 자들에겐 불문율이 있다. 굳이 지키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어찌 되었든 지키면 고마울 불문율이. 가죽을 벗어 본모습 드러내지 않을 것. 인간들은 짐승을 싫어해서 배척하고, 때로는 사냥하기 때문이다. 드러낸 자가 사냥 당하는 것은 스트레인지 출신 특유의 본인 명줄 먼저 챙기는 성정 탓에 자신과 일절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이곳이 저지먼트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간 흉내는 내어야 한다.
"스트레인지의 스킬아웃에게… 양지의 저지먼트, 그것도 엘리트에 대한 인식을 해쳐 득 될 것이 무엇이 있는지도 나는 의문이더군요. 이곳은 분명 바깥일진저. 네 아직도 굴 안의 짐승 아닐 터인데."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가죽을 벗은 주제에 인간이랍시고 설치며, 자신에게 지당한 일상이노라 속삭인다. 실로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태오는 그 사실이 불편했다. 불편할 것 하나 없을 만큼 많은 감정이 희미하고, 체념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오늘따라 이 사실이 답답했다. 저것 또한 짐승인데 어째서 인간이랍시고 구는 건지 모르겠다. 불쾌하다. 가죽을 벗어도 인간이라고 믿음을 주는 누군가에게 구원받은 것 같은 그 모습이 불쾌하고 속이 뒤집힌다. 너는 고작 짐승에 불과한데, 선처 받고 이젠 나 같은 짐승에게 자신은 인간이지 않느냐고, 당연한 것이라 넘기면 그것은 기만이 아닌가?
"권총에 비견되는 힘에 그리도 도취되어 일상과 비일상의 선을 자연스럽게도 넘나드니…… 너라면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는지 묻고 싶군요……."
레벨 0이었던 너인데 스킬아웃 위치 정도는 깨달을 줄 알았건만 그마저도 못 하느냐, 그런 느낌 다분하다. 태오는 자신이 레벨 시스템에서 지금껏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깨닫고 입을 바로 다물었지만 굳이 말을 정정하진 않았다. 엎질러진 물 따위 누가 주워 담겠는지!
>>84 ㅋㅋㅋㅋㅋㅋㅋㅋ 풍선껌 핑크색 경진이야? 사족 없이 한마디만 띡 하고 가는 것에서 엄청난 캐릭터성이 느껴졌다 동월주 나보다 경진이 잘 아는듯 ;0 재밌게 잘 읽었다 하 월주 맛있는 캐해썰 계속 들고오면 가둬놓고 썰만 찌게 할거다 조심해 이래놓고 저거 경진이 아니면 창피하니까 아니더라도 내말 맞는척 해
>>489 오너적으론 패러사이트가 더 무서운데 그래도 캡다운은 (악깡버한다면) 움직일순 있잖아 아니다 우리애들 이제 다 고랩이라서 고통에 몸부림치나 어
크리에이터:용서? 크리에이터:....(피식) 크리에이터:아직 용서와 배려, 그 외 다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아저씨로는 신기하구나. 크리에이터:올거면 철저하게 마음을 차갑게 식히고 오렴. 크리에이터:너희들이 상대하는 것은 어설픈 능력자가 아니야. 인첨공에서 5번째로 강한 아저씨라는 것을 잊지 마렴. (싱긋) 크리에이터:이 아저씨. 어설픈 마음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상대는 아니거든. (실눈 살짝 뜨기)
>>549 대박 나죽음 아니......... 허..... 나 태오주의 채색법이 너무 좋다.... 수채화같으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크아악 저 섬섬옥수 현재태오는 확실히 이무기 같은 느낌이네... 저 눈 마주치는 순간 얼어버릴거 같아 휴 음기미남치파오? 귀하다. 아기태오도 너무 귀여워 근데 누가 아기에게 힐을 신겼는가!! 예쁘지만 발목 나갈까 걱정되는구만... 후... 귀여워 예뻐 단발 조아
할미 볼 한입 먹기. 행복해요 고마워요 헤헤
>>551 😬😬 크윽 안전가옥에서 쎄함을 느꼈을 때 보라를 잡고 늘어졌어야 했는데(?) 만약 리라가 따라가겠다고 했으면 어찌됐을까... 허락도 안해주긴 했겠지만 ......그러고 보니 선혜는 어떻게 됐어...?
>>567 주그면 안대 (뽁뽁 보듬보금) 눈 마주치면 비얌 쉭쉭 소리 날 것 같지...😏 나는 리라링이 하나하나 짚어주는 그 점이 넘 좋은 것 같아....... 그림 세밀하게 봐주는 것 같아서 기쁘고 부끄럽구 막 음기미남치파오... 양기미녀치파오.... 리라랑치파오......(갑자기) (나리 봄) 나리가 신겼대요 혼내조
는 악!!!(볼 사라짐) 힝잉이🥺🥺🥺 그치만 요걸로 쪼끔 덜 아픈 하루 보냈음 좋겠어야...
>>571 조오의 유부남녀 컬렉팅을 아십니까? 크리에이터 당신도 표적이 될 수 있다 조심하라. (절대아님)
완전...... 하아...🥹 고져스뱜미야~!!!! 이렇게 홍콩느와르st 분위기가 어울리는 음기미남이라니 나는 나는... 해헤헤 헤헤 헤헤헤 기쁘다니 나도 기쁘구만 귀한 그림은 찬찬히 뜯어봐야 제맛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리라 치파오...🤔 언젠가 그려볼까... 양기녀 치파오도 못참지 태오한테 갓 찐 만두 쥐여줘야만
그리고 뭐시? 생각해보니 코르셋도 있는거 같고 전에 본 그 썰 기반인가 나으리 애기 발은 소중하다고요 떽이다!!!!!🔥
끄라는 말에 조용히 담배를 물고선, 내뱉지 않고 그대로 담배를 물고 있던 유한은 태오의 말을 조용히 들을 뿐이었다. 태오의 말에 무작정 반항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끄자니 이러한 상황이 어색하여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이해라는 말이 나오자 그의 눈빛이 조금 바뀐다. 동시에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빼어물고는 조용히 손으로 담배를 짓누르며 담뱃불을 꺼버렸다. 담뱃불이 꺼지는 소리와 함께 약하게 살이 데이는 소리가 난다.
"내가 왜?"
명백한 적대감. 아니, 악의라고 해도 좋을 것이 살짝 내비쳐졌다. 자신이 왜 이해해야 하냐는 눈빛이 태오를 향해 번뜩였다. 유한은 조용히 들이마셨던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그들을 때린게 너무 지나치다. 과잉진압이다. 이러한 말들은 유한이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라니? 심지어, 태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자신과 같이 스트레인지에서 몸 담았으면서 그들을 이해하라는 말이 나오다니? 납득할 수 없다. 내가 왜, 그들을 이해해야만 한단 말인가? 내가 가장 힘없을 때, 그들이 나를 이해해줬던가?
"반대로 묻겠는데, 엘리트에 대한 인식을 해친다고 손해볼게 뭐 있어?"
바깥이라. 이곳이? 인첨공 안은 결국 전부 다 짐승굴 아니었던가? 유한은 실로 의문이 들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강경진압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안과 밖을 나누겠다니. 너무 늦지 않은가?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자경단을 기억한다. 그리고 과거의 저지먼트도 기억한다. 스킬아웃 시절도 기억한다.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어도 큰 틀은 같지 않던가? 이 빌어먹을 도시에서 어른들은 방관하고 아이들은 서로를 물어뜯을 뿐인데도.
"내게 뭘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알잖아. 나는 처음부터, 나였다고."
일상과 비일상의 선. 레벨 0과 레벨 3의 입장차이. 태오가 그런 말을 하는게 웃음이 나왔다. 그 자신은 과거에 만났을 때 이미 레벨 3이었다. 반면 유한 자신은 최근까지도 레벨 0의 열등생이었다. 하지만 자경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는 한번도 바뀐적 없다. 단 한번도. 이제와서 권총의 힘에 도취되었다니, 우습지 않은가?
태오는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달관한 사람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 달관의 틈을 정확히 찔러 들어왔고, 태오는 하필이면 당신 같은 사람이 그 끔찍한 농담을 던졌다는 사실에 넌더리가 났다. 갑자기 굴러 들어와 스트레인지를 쑥대밭으로 만든 녀석이, 이제는 스트레인지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을 농담을 던지며 낄낄 웃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루 빨리 당신이 사건인지 뭔지를 해결하고 영영 발 붙이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여기는 인간이 올 곳이 아니다.
"그래서 나한테 그딴 되도 않는 앙탈을 부렸다니, 실로 괴롭군요……."
혜우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도 태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7년의 시간이 지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주제에 지금 와서 오라비 노릇 하기에 늦었음도 알거니와 해서도 안 된다. 옅은 분노, 의구심이 속을 헤집는다. 태오는 속으로 일소했다. 하나만 할 것이지, 같잖은 합리화나 하고 있으니 굳이 더 파고들고 싶지 않다. 증오할 것이면 증오만 하길 바랄 뿐이다. 인간에게 합리화는 바라지 않는다. 잠투정도 다른 존재들이 대체 무얼 이해한다고.
"……."
태오는 걷던 도중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당신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큰 떨림이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다. 무의식 깊숙한 곳에 각인된 두려움은 자신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알터. 당신을 싫어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노골적으로 싫어할 수 있는 이유다. 누군가 자신에게 너무 심하지 않느냐 일갈한들 절대 뜻을 굽히지 않을 명백한 명분이다! 2학구는 끔찍한 곳이고, 알터는 그 많은 연구소 중에서 궤를 달리하는 곳이다. 이 녀석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스트레인지 바깥으로 던져버리고 굴로 기어 들어가고 싶었다. 알터의 연구원을 마주한다면 아마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미치는 수준이 아니다. 약을 먹일 것이다. 효과도 없는 약을. 그리고 자신을 다시 그 미친 소리 속에 던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안승환 그 작자처럼 같잖은 사과를 건넬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싫다. 끔찍한 족속들. 다행스러운 점은 아직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거지만, 조금이라도 들릴까 두려워 걸음을 재촉했다.
"네 그리 받아들이면…… 그런 것이겠지요."
네 선택일 뿐이다. 그리 받아들이고 뻔뻔한 낯짝으로 다시 선배라 임하머 홀로 승화시킬 것이면 그리 하든지, 탓할 것이면 탓하든지, 사과할 것이면 하든지. 어차피 지난 일이다. 태오는 당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흘겼다.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은 고양이나 그 과에 속하는 동물 보다는 파충류를 더 많이 닮았고, 제법 눈치가 좋은 건지 눈을 반개했다.
"……왜요, 내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한가요?"
태오는 나오기 직전까지의 순간을 떠올렸는지 드물게 표정을 구기는가 싶더니 하, 하고 짧은 한숨에 가까운 웃음과 함께 시선을 정면으로 두었다.
"내 껍질 벗긴 사람 있기에 적당히 장단 맞춰주다 바깥 소음에 분위기 식어서 다시 주워입고 나왔답니다……. 실로 영양가 없는 소리지요."
기실 나리께서 문화센터 사건 직후, 태오의 난데없는 자해 소동으로 호출하여 네가 벌인 짓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혼냈다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던 순간에 사건 터진 것이지만. 누구라도 큰 오해를 하며 기함할 천박한 말이 태오의 입에서 우수수 쏟아졌다. 주변에 사람도 없겠다, 검열 없이 쏟아진 말은 저게 금욕적인 선배 입에서 나올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경박했다.
훈련 결과가 맨날 곤죽엔딩으로 끝나는 건 역시 물이 들어가는 레시피를 써서일까,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에 오늘은 초심으로 돌아가 가장 작고 간단한 디저트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건 바로 지우개로 머랭 쿠키 만들기. 머랭쿠키는 힘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지 만드는 방법도 심플하고 식재료의 구성은 은근 간단하다. 재료를 볼에 넣고 섞어서 굽는다. 끝! 이런 간단한 거라도 성공할 때까지 해봐야 늘지.
우선 준비물을 상상한다. 이번에는 조리도구 빼먹지 말기! 볼, 휘퍼, 짤주머니, 깍지, 계란, 설탕, 바닐라 익스트랙, 아 오븐도. 아, 근데 하필 전동휘퍼 말고 그냥 손거품기를 상상했네. 어쩌겠어, 힘으로 떼워야지. 볼에 계란을 깨서 흰자만 넣고 노른자는... 급하니까 껍질안에 넣어놓자. 그리고 젓는다. 끝없이, 뿔이 올라올때까지, 근데 얼마나 저어야 했더라? 평소엔 한이 선배한테 맡겨서 기억이 잘...
"앗차거!"
이번엔 손 위로 거품이 생기다 만 계란 흰자가 흥건하다. 그래, 곤죽엔딩이 안 나면 신새봄이 아니지. 그래도 언젠간 곤죽엔딩없는 신새봄이 될 날도 올거야! 그리고 그 날이 오면 꼭 과자집을 만들어야지, 히히.
의무실이라는 단어는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단순히 못들었나 싶었지만, 몸이 조금 떨리는게 보일 것이다. 의무실이나 병원 같은 단어는 언급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흐릿한 시선으로 중얼거린다. 퍼렁 살쾡이(혜우)는 다쳐서 찾아갈 때 마다 일단 한 대 쥐어박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항의하고 싶어도 어쨌든 치료는 해주니까. 얌전히 한 대씩 맞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2학년 동 월. 실전... 이라 하기엔 좀 빡셀걸. " " 사람도 아니고 초자연적 존재들이랑 싸우는 거니까. " " 그래도 뭐, 사람처럼 생겼다고 얼굴 보고 그러지만 않으면 나름 괜찮을거야. "
이렇게 경고해도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정신 이상이 생겨 발광하는 생존자들을 본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새봄이 고개를 꾸벅이는 것에 피식 웃으며 손을 두어번 내젓는다.
" 명심해. 내가 생존자라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사람처럼 생겼다고 도와주러 간다거나 부르거나 하는거 금지야. "
생존자들은 괴이와 달리 대부분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이곤 하지만, 이 썩을 것들이 학습을 했는지 지능이 높아졌는지... 생존자의 모습을 모방하는 경우가 생겼다. 맨 처음 잘못알고 말 걸었다가 곤욕을 치렀었다.
" 자, 그럼 1층 휴게실부터. " " 아참, 물어볼게 있는데, "
조용히 말하던 동월은, 1층 휴게실의 문을 열며 새봄을 돌아보았다.
" 비위는 괜찮은 편? "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면.... (자극적이고 고어적인 묘사에 주의) 마치 사람이 터진 듯이 육편이 이리저리 튀어, 방 안에 피칠갑이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을테다.
여로가 갈림길에 도달했을 때, 깔끔한 쪽의 문으로 다가가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동월이 난전을 펼치고 있었다. 촉수처럼 생긴 여러 개의 손을 동월에게 찔러대는 그것과, 간신이 칼을 휘둘러 그것을 막아내고 있는 동월. 어느 쪽에게 우세인지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동월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지만 그것은 숨을 쉬지도 않았으니까.
" ...뭐? "
불운? 그런게 작용할 수 있는건가? 아무리 불합리한게 괴이라곤 하지만, 그렇다고 갈림길애서 불운이 작용할 리가 없었다. 단지 자신의 시야를 믿지 말고 끔찍하게 생긴 쪽을 고르면 되는걸. 하지만 더 생각하기도 전에 촉수가 동월에게로 뻗어진다. 동월은 정신을 차리고 칼을 일자로 휘두르지만.... 갑자기 내부가 암전되며, 눈앞에 있던 그것도 사라져버린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 ......X발. "
얼굴이 하얗게 질린 동월이,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한다. 얼마 달리지 않아 문 앞에 서있는 여로가 보였다.
" 성여로!!!!!!!!!!!!!! "
여로가 뒤를 돌아 동월을 보았다면, 그의 바로 뒤에서 밀려오는 무수히 많은 손들이 보일 것이다. 동월은 빈혈기로 인해 점점 어지러워지는 머리를 강제로 깨워내며 필사적으로 달려, 여로를 덮치듯이 문 밖으로 다이빙을 하려 했다.
" 문 닫고 걸어잠그고서 절대,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있어!! "
최소한 최악은 피하려고 했던 말이다. 그렇게 여로를 방 안으로 밀쳐내고 자신도 몸을 밀어넣으려 한 순간에,
이해.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을 태오는 알고 있다. 같은 곳에서 머리를 맞대고 잠들어도 잠투정도, 꾸는 꿈도 다른 것이 인간이다. 이해라고 해봤자 서로 적당히 맞춰주며 속으로는 다른 것을 생각하는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할 정도로 태오는 이해라는 단어에 회의적인 감정을 느낀다. 이런 말이 입에서 나올 수 없을 사람이지만, 지금은 뱉어버리고 말았다. 당신이 그 구실을 하는 척이라도 했으면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속내를 헤집고, 껍질을 벗겨 본색을 드러내게 만들고 싶은 악독한 마음 때문이다. 살 지지는 소리가 들려도 태오는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속내를 뒤집고 싶다는 악의가 꿈틀거렸다. 당신이 그렇게 불태우다 결국 폭발했으면 한다. 그렇게 본성과 더불어 만 천하에 너 또한 동물임을 드러냈으면! 마침 상황이 알맞다. 당신 또한 악의를 내비치며 맞섰기 때문이다.
"저지먼트니까."
맹수 같은 눈빛이다. 금빛 시선이 번뜩여도 세로로 찢어진 동공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 당신은 스트레인지에서 겪은 당신의 삶을 인정하나, 태오는 스트레인지에서의 모든 삶을 인정한다. 약한 자가 잡아먹히고, 사냥 당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을 그저 받아들였다. 그들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겼다. 거스르는 자가 있다면 그 또한 이해했다. 자신도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삶은 죽음으로, 죽음은 탄생으로, 탄생은 삶으로. 그 삼각형과 같은 순환구조를 일찍이 깨닫고, 당신이 자신을 죽이려 들었던 앙금도 어떻게든 누르며 이해하려 들었다.
"샹그릴라 사건이 왜 일어났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지금은 하나의 진득한 악의가 되어 도사렸다. 마치 엉겨붙은 피 같다. 삼각형의 구조가 뚝 끊겨 그 속에 있던 응어리가 일부 흘러 나왔다. 샹그릴라를 언급하며 열등생이 어째서 먹고 엘리트를 공격했는지를 은유적으로 물었다. 남들에겐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이었다.
"너는 그러니까 왜……."
태오는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깍지 낀 손의 손톱은 잘 다듬어졌지만 날카롭다. 손등에 감긴 붕대는 오늘도 풀릴 기미 없다. 비색 시선이 희미하게 움직여 호선을 그을 듯 말 듯하다. 당신은 안다. 일상에서 감정을 희미하게 죽이고 사는 태오에게 있어, 이것이 최대한 웃는 표정이란 것을.
도시에 도사린 악의. 누군가 만들어낸 실험장의 모순적인 구조. 거기에 희생된 아이들이 만들어낸 저주와 절망이 응어리진게 샹그릴라 사건이다. 유한은 그걸 언급하는 태오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도시 전체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구조의 부산물이다. 그리고 유한 본인의 태도 역시 그 도시의 부산물이다. 부산물끼리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판단하는 것이 참으로 우습지 않던가.
- 인두겁 쓰지 않은 주제에 인간이라고 참칭하고 다닌다는 걸 자랑스러이 이야기 하냐고.
능청스러운 것은 거기까지였다. 태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한의 주먹이 날아가 태오의 안면에 꽂혔다. 순간 갑자기 일어난 일에 유한은 본인 스스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어라?"
덜덜 떨리는 손. 유한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무엇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타인을 향해 이렇게 반사적으로 폭력을 날려본 적이 있던가? 아니, 내가 왜 때렸지? 딱히 화가 난 것도 아니다. 태오의 말에 그는 놀랄 정도로 차분하고, 무감각했다. 그런데 몸은 어째서 반응한단 말인가?
- 역시, 우리는 남매구나. 그렇지?
제 누이의 말이 머릿속을 스친다. 왜 이게 갑자기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아니, 지금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길래. 유한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은건 태오인데도 꼭 자신이 한대 맞은 듯 힘없이 터덜거리며 태오를 향해 다가가고는, 그대로 태오 멱살을 움켜쥐었다. 태오 눈 빤히 들여다보는 유한의 눈이 공허하다. 평소의 그 밝고, 가벼운 분위기는 어디갔냐는 듯이.
"태오야. 너 나한테 무슨 짓 한거야?"
유한은 고개까지 살짝 갸웃거리며 물었다. 몸이 멋대로 반응한다. 몸이 이성을 우선하여 움직인다. 태오는 정신계 능력이었으니 분명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게 분명했다. 아니면 가스라던가, 약이라던가. 아무튼 무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럴리가 없다. 정신은 평온하기 그지없는데, 어째서 몸이 극렬하게 눈 앞의 청년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인가.
태어남 자체가 특권인 자가 있으며 개화 자체가 특권인 자가 있다. 태오는 레벨 3으로 개화하여 단 한 번도 계수의 변동이 없었다. 누군가는 태오를 두고 태생이 레벨 3인 녀석이 열등생을 어찌 이해하느나며 쑥덕이곤 했다. 옳은 말이다. 태오는 많은 것을 누렸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사랑하기로 유명한데다 명문으로 알려진 데 마레에서 차별 하나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고, 레벨 3이라는 점으로 지원금도 받았다. 능력을 잘 쓰는 만큼 머리도 비상하여 검정고시를 수석으로 들어왔단다. 능력 없는 학생들 눈에는 현태오라는 인물은 특별한 존재였다.
……거기까지가 남들이 아는 태오였다. 특별하고, 자신들은 절대 이해해주지 않을 고고한 존재. 이제는 레벨 4에다, 점차 더 높은 자리를 향하는 욕심 많은 녀석. 태오는 그 오해를 굳이 정정하지 않기로 했다. 옳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있어 자신은 명문 연구소 출신에, 레벨 3이고, 탐심 가득한 주제에 능력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이따금 이런 능력이 뭐가 좋느냐며 개운하지 못하게 웃는 배까지 부른 녀석이다.
─ 기만자.
태오는 귀를 틀어막고, 아무리 시끄러운 음악을 듣는다 한들 원치 않게 들려오는 타인의 속내를 애써 무시했다. 타인의 원초적이고 날것의 속내와 이유 없는 악의, 시도때도 없이 속을 찔러오는 짙은 거짓의 구분, 제어할 수 없는 무능함은 자신만 알면 됐다.
이해란 것은 그런 것이다. 서로 일방적으로 좋을대로 받아들이고 입 닥치는 행위를 곱게 포장한 단어에 불과하다. 태오는 음악의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실전 투입이 처음이기에 뱉을 수 있는 무책임한 말과 함께 생글거리던 새봄은, 의무실 소리에 동월이 동요한 것을 눈치챘지만, 그저 의학적인 단어를 가급적이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말자 생각할 뿐 티를 내지는 않았다.
"얼굴을 보면 큰일나는 초자연적 존재가 적이라는 거네요. 그럼 더 긴장해야겠어요."
말투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가벼웠지만, 표정은 퍽 진지해진 채였다. 멍 때리다간 끔찍한 왕벌레들 밥이 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네, 선배. 선배가 생존자 맞다고 하시거나, 움직이시면 따라서 움직일게요."
그래서 아까 비명소리 들렸을 때도 가만히 있었잖아요. 라고 농담조로 덧붙이면서도 주변을 경계하듯 살피며 동월을 따라가던 새봄은, 그가 1층 휴계실 문을 열며 묻는 말에, 직감했다. 분명 끔찍한 게 그 안에 있었구나. 새봄은 깊이 심호흡을 하고,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참혹한 광경이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이 원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새봄은 희미하게 손을 떨었지만, 방 안의 광경을 직시했고, 이내 눈을 떼어 다시 동월을 바라봤다.
"비위가 나빠도 좋아져야죠, 저지먼트인데. 보기엔 저 안에는 생존자가 없는 것 같은데, 제가 잘 본 게 맞나요?"
그렇게 묻는 새봄의 얼굴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굳어있었지만, 눈동자만큼은 산만한 흔들림 없이 동월의 새하얀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역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다르다. 짐승이라 한들 그 깊이가 다르다는 뜻이다. 태오는 명백하게 자신이 ─라고 생각했다. 결국 악의가 도사리는 존재고, 한결같이 악독한 존재라고. 그렇기 때문에 짐승의 언어로 울부짖고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만 대화할 수 없는 존재라고 믿었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몸이 바닥에 떠밀렸다. 머리를 헐겁게 쪽진 볼펜이 어딘가로 굴러가고, 먼지 쌓인 바닥에 나뒹굴었다. 시야가 아찔하다. 익숙한 고통과 만족감을 느꼈다. 보아라, 너는 이래야만 옳다.
"흐-"
태오는 뒤로 넘어진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을 굴려 당신의 표정을 힐끔 바라본 태오는 바람이 빠지듯 숨을 뱉었다. 웃음은 한 번에 불과했고, 명백한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처음 당신을 만났던 날이 떠오른 탓이다. 한 대만 맞았지만 입안이 터진 것 같다. 비린 피가 고였지만 이가 빠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바닥에 뱉을 수 없어 대충 찝찌름하니 비린 것을 삼켜내고는 손등으로 대충 입술을 훔쳤을 적, 당신이 멱살을 움켜쥐자 눈을 정확히 마주했다. 공허한 눈동자를 꿰뚫을 듯하다가도 색채 옅은 눈동자가 가느다란 호선을 그었다. 온전하게 그였으니 이 또한 웃음이다. 보아라, 결국 너 또한 동물이다.
"내가? 뭐를?"
보아라, 이는 단천한 탐심의 말로이니 나 또한 금수이다. 태오는 고개를 마주 기울였다. 길게 풀어헤쳐진 머리가 얼굴을 일부 덮지만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여전히 평온하고 담담하다. 빌어먹을 만큼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다. 웃음을 지었지만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 순간을 더없이 기다렸다는 듯, 진득한 악의가 꿈틀거리고 있는 사람이라기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네게 뭘 했다고 생각해……? 네 본성을 일깨우도록 마법이라도 걸었을까? 뇌를 갈라 그 속을 들여다 보았을까? 새삼스럽게 당연한 것을 물어……."
기운 없는 목소리 사이로 날카로운 문장을 둥글게도 쏘아 뱉었다. "짐승답게 굴게끔 응원이라도 했나……?" 그리고 몸이 파르르 떨렸다. 흐- 하고 다시금 웃어 보였지만 웃음을 표출하기에 지나치게 무뎌진 사람이었기에 지어낸 것이 썩 보기 좋은 웃음은 아니다. 외려 달뜬 표정에 가깝다. 탄식에 가까운 숨을 한 번 뱉고는 눈을 흘겼다.
"주제도 모르고 인간이라고 설치다가…… 네 주제 일깨워주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지, 그치? 그런데…… 네가 인간 탈 고쳐 쓰지 않았으면서 왜 나를 탓해."
추잡한 감정이었다. 열등감이라기엔 근본부터 지나치게 뒤틀렸다. 가소로움이라기엔 오만함이 부족하다. 동정이라기엔 지나치게 야유스럽고, 동질감이라기엔 그 차이가 명확하다. 너 또한 짐승이나 나와는 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너는 아무리 범죄에 손댔다 한들 나만 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자비의 손 뻗어주어 한 번이라도 길들여진 짐승은 야생의 것이라 할 수 없으니까. 그 빌어먹을 자경단 말이다. 순간 감정 하나가 울컥 스민다. 너는 자비의 손길이라도 있었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내 이리 추잡스레 군다. "지금도 이리 구는 주제에, 어떻게 뻔뻔스럽게 나를 탓해……?"
아지는 청윤의 이야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다고 믿기보다는 그렇다고 믿고싶은 것으로 보였다.
"~~"
낑낑대는 게 강아지 소리 같은 것을 내면서 아지는 맛이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청윤을 바라보았다. 어찌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눈빛이다.
"네에 분명히 맛있을~ 맛... 괜찮을 거예요~!"
두 숟가락 분량의 스프를 바라보며 아지는 자리로 청윤과 함께 돌아온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고서 배시시 웃는 것이다.
"잘 먹겠습니다아~"
식사자리에서 보는 청윤의 모습이 참 좋다! 학교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어쨌거나 아지는 요거트 자몽 샐러드를 조금 집어 먹기 시작했다. 요거트의 시큼함과 자몽의 쓴맛이 서로 어우러지는 듯 덮어주고 있었다. 열심히 야채를 씹는 아지의 근처에서 동물이 샐러드를 먹는 듯 삽삽 소리가 나는 것이다.
수경은 나를 잡을 여지가 없어 보였으니 방해 받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대로 첨벙첨벙 앞만 보고 들어갔다. 이미 서너번인가 무사히 잠기고 떠오르기를 반복했는데 이 다음 한 번에야 무슨 일이 생길까 싶었다.
발목에서 무릎, 무릎에서 허리, 허리에서 명치, 그리고 어깨-
순차적으로 검푸른 바닷물에 잠기고 있는데 이 자리에 없을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 설마, 라며 기분 탓이라고 넘기려 했다.
그러나 계속 들려오는 목소리와, 내 것이 아닌 첨벙거림에 뒤를 돌자 소매가 훅 끌리는 감각이 들며 동시에 깊은 물 속으로 잠겼다. 고개를 돌리자 어두운 물 속에서 유백색의 긴 머리가 나부끼는게 선명히 보였다.
...바보가 따로 없다니까.
물살을 거스르고 발장구를 쳐 해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지가 잡은 팔로 아지의 어깨를 잡고 남은 팔로 등 뒤를 붙들고서 그대로 단숨에 해변까지 끌어올렸다.
다시 입수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온 나는 물을 잔뜩 먹은 아지가 제대로 토해낼 수 있게 고개를 돌려주거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아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대뜸 말했다.
"너 바보냐? 제대로 준비도 안 하고 무작정 따라들어오면 어쩌자는 건데. 하여간 한아지, 생각 없이 움직이는 건 알아줘야 해."
딱히 타박도 비난도 아니었다. 그냥 평소처럼, 한아지 또 한아지 했냐, 그런 담담한 말투였다.
아지의 상태를 추슬러 준 후에는 수경에게 텔레포트를 부탁하거나 부축해서 기숙사로 데려다 주려고 했다 어느 방법이건 헤어지기 전에 그렇게 말했다.
"한아지, 네 눈에 내가 바다에 빠지는 것처럼 보였으면, 다음엔 따라오지 마. 다음에도 오늘처럼 운이 좋을 리는 없을 테니까."
차갑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을 끝맺곤 젖은 몸으로 내 집을 향해 걸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다음날 오후 즈음.
내 열병은 하룻밤 보낸 후가 절정이었다. 온종일 40도에 가까운 고열을 몇 번이고 맞이하다가 기절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 해 링겔로 포도당 수액 맞는게 전부였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 식염수를 몇 모금 넘겨보지만 그마저도 반은 게워내서 상태가 더욱 엉망이 되어갔다.
문제가 비단 몸 뿐이면 상관 없었겠지만 고열은 일시적인 지능의 퇴화 현상까지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면, 내가 아직, 데 마레에 있는 시절인 줄 알게 된다거나.
"이잉... 선샌니... 더어여... 에어컨..." "너 열 나서 그래. 안 돼." "여얼 아닌데에... 더우은 건데에..." "아니야. 열이야. 너 지금 엄청 아프니까 얌전히 있어." "흐이이... ...선샌니이..." "왜." "히-야는 어딧서여...? 히-야... 손 시어언한데에... 오며언 안대여...?" "...그것도 안 돼. 여기 없어. 못 불러." "애여어... 그으런 태애-느은...?" "태, 뭐?" "태애... 태우으... 내... 모으티저스..." "...걔도 없어. 못 와." "으에에... 다 어디갓서여... 다..."
지난 몇 년간 내 열병의 치다꺼리를 해 온 유준의 말에 의하면 해마다 그 주절거림은 늘어갔다고 했다. 마치 그 시절에 갇혀 헤매이는 것처럼.
"...우, 으, 흐으으..." "...하, 왜 또 울어." "흑... 다... 사라져서... 히야도... 태으ㄷ..." "아니야. 학교 가면 다 있어." "거짓말... 업서어... 다... 나마안... 두구 갓서... 나만... 여어기 두구우... 우으으..." "지금 울면 탈진하니까 울지 마. 뚝 해, 뚝!" "히이잉..."
짜증 팍팍 담아 한숨을 내쉬며 땀과 눈물 범벅인 내 얼굴을 닦은 유준은 이불 밖으로 내 손을 빼 손바닥 가장자리와 중지의 끝을 메스로 가볍게 그었다. 나는 작게 윽, 하는 소리를 냈고, 짧고 얕게 베인 상처에서 금새 피가 베어나왔으나 곧 서서히 멈춰갔다. 병원이 아니었으니, 느리지만 확실히 능력이 전개되는 걸 확인함으로서 어느 정도 뇌의 상태를 가늠해보는 셈이었다. 유준이 내 손을 다시 이불 속으로 넣을 때, 나는 다시금 중얼거렸다.
“되도 않는 언사이기로는 피차일반인 것을. 세상살이 뭐 하나 제대로 되어먹는 게 있긴 한가요.”
처음에 자신을 더러 쥐새끼 소리를 했던 걸 보고 하는 것이다. 참으로 가당찮다. 쥐새끼라는 말이 얼마나 그를 가리키는 데에 적절한 말인데. 스트레인지에 대해 쥐뿔도 모르고, 무엇 하나 철이 들지도 않았고, 그 사고는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으며, 무모하고, 아는 것 없어 어리석고, 스트레인지며 이 세상이 얼마나 차갑고 냉혹한지도 모르고 본인 손에 쥐인 것만 생각하고 들입다 뛰어드는 꼴이 우습기 짝이 없다.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이라곤 세상살이 제대로 되어먹는 게 없다는 것 하나 정도야 잘 알고 있다는 것 하난데.
그런데 무엇이 이 소년을 이리로 이끄는가.
나는 당신처럼 무심하고 싶지 않아.
성운의 말 뒤에 들리는 그 한 마디가 무엇이기에, 이 태오에 비해 한참을 모르고 한참을 덜떨어진 열등한 것을 이렇게까지 천둥벌거숭이 짓을 하게 만드는 것인가.
─그리고 당신의 머리에 와닿는 사실. 서헌오 박사, 그리고 서성운. 이 아이는, 서헌오 박사의 아들. 무능한 주제에 무언가 해보겠다는 의욕은 넘치는 게 참 그 아비에 그 아들이다. 당신이 움찔하자, 성운은 태오에게로 눈을 돌려 태오에게 뭔가 이상이 있는지 훑어보았다. “왜 그러시나요?” 능력 연산이 중간에 끊기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갑자기 내 몸무게가 확 실리거나 한 건 아닐 텐데. 그리고 성운이 아직도 태오와 알터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단 한 치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 확고해진다. 태오가 화제를 돌리자, 성운은 점잖게 거절했다/
“···그렇게 티가 났나요? 딱히 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선배 바쁘신 일이 있으시겠죠─”
그러나 성운이 뭐라 하건 말건, 그 마음의 소리가 그의 말과 생각이 일치함을 알려주건 말건, 태오의 입에서는 결국 그 소리가, 앞뒤 문맥 딱 잘라놓고 보면 엄한 오해 하기 딱 좋은 소리가 쏟아져나오고 만다. 그런데 상대가 안 좋았다.
“그런가요.”
하는 무미건조한 반응. 십대 소년이라면 다 갖고 있다는 비밀의 폴더 하나 있어본 적이 없는, 무지하다 못해 천의무봉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성운이다. 최근에 접한 가장 자극적인 모먼트라고 해봐야 그 정인 되는 이의 애교뿐이다. 그러니 그런 뉘앙스 같은 걸 알아들을 턱이 있나. 껍질이라는 말에, 성운의 눈은 팔의 이거 이야기하나? 하고 자신의 몸을 떠받치고 있는 태오의 팔에 새겨진 비늘에 시선이 가는 것이다. 자기를 두고 던진 그 말이 얼마나 경박하고 음험한 것인지 성운은 단 한 단어도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성운은 태오의 말을 아무튼 뭔가 다른 일 보다가 우연찮게 총소리 듣고 왔겠거니, 정도로만 들어버린 것이다.
당신은 겁대가리 없는 희멀건 실험 쥐면서, 제 처지를 부정하고 있다. 태오는 당신의 반응에 짧게 생각하고는 하나 더 덧붙이기로 했다. 처지 부정하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라고. 단지 달갑지 않은 것을 쉬이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쪽으로 자랐을 뿐이다. 아직 인첨공의 불합리한 현실에 물들지 않았음을 똑똑히 보여주는 당신과 섞일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당신도 섞이는 건 바라지 않을 것이다. 남의 속내 읽고 다니며 현실을 덧없다 느끼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음침하기 짝이 없는 녀석과 친하게 지낼 이유가 없으니까. 물론 누구라도 그렇게 자라고 싶은 건 아니겠라 변호할 수 있겠지만, 일단 태오는 그렇게 자라고 싶어 자랐다. 어리석고 비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마…… 사람이 닿았다고 근육이 놀란 듯싶군요……."
맥이 뛰는 온기가 닿아 질색하고 있다. 좋은 대답은 아니다. 사람을 멀리하고 사회성 나쁘다는 걸 드러내는 말이니까. 하지만 당장 치솟던 끔찍한 질문 대신 꺼내기엔 아주 안성맞춤인 변명이다. 네 아버지가 벌인 짓은 알고 있나요? 불쑥 꺼내 묻는 만큼 음침한 짓이 어디 있을까! 아무리 자신이 모자란 사람이라도, 남의 머리를 읽었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닐 만큼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대신 태오는 더 비슷한 얘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해 천박한 발언을 입에 담았고, 눈을 흘기다 당신의 순진무구한 반응에 시선을 돌려버렸다. 인간이란 퍽 덧없는 존재구나…….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
하지만 삼켜도 황당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유통과정은 알 법한 녀석이 정작 생산과정과 통용되는 업계 용어도 모르는데 어떻게 연애를 하고 살지? 다시 생각해 봐도 황당하다. 스트레인지에서 살며 별의별 것을 다 듣고 보았다. 그 삶에서도 지금 달관한 자신이 돌이켜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사람이 손에 꼽을 만큼 있었는데, 그 영광의 자리에 당신이 추가될 것 같다. 아니, 자신이 구제불능의 천박해빠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아니, 그……. 만일 태오가 아주 약간이라도 감정이 덜 희미했거나, 붙임성 있는 사람이었다면 당신에게 막힘없이 물었을 것이고, 심연을 알려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중에…… 혜우에게 물어봐요."
대신, 이 악독하기 짝이 없는 선배는 여기에서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고 지금쯤 끙끙 앓고 있을지도 모르는 혜우에게 크나큰 시련을 주기로 했다. 네가 선택한 순진무구한 정인이다. 태오는 평이하게 걸음 옮기다가도 비늘에 시선이 닿자 눈을 좁히며 잠시 걸음을 멈췄다. 어느덧 골목 중반까지 도달했지만 아직 걸음이 남았음을 알면서도. 드물게 미간에 작은 주름이 생기고, 팔에 이식된 비늘 일부가 신체 반응에 맞춰 찌르르 소리를 내듯 일어났다 서로 맞부딪쳐 작은 소리를 냈다.
"그거, 빤히 쳐다보지 말아요……."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이딴 곳에 써먹은 덕분이다. 태오가 평소 붕대를 감은 이유는 이 인간답지 않은, 트랜스휴먼이라고 봐도 좋을 모습 때문도 있는 것 같다. 교내에서 팔을 드러내면 입묵도 입묵이지만, 저 비늘 탓에 욕하면 욕했지 절대 고운 시선을 보내지는 않았을 테지! 그리고 다시 걸음 옮겼을 것이다. 다만 화가 나거나 불쾌한 것은 아닌 듯싶으니, 당신이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스트레인지의 비늘 달린 사람 이야기를 넌지시 물어도 좋을 듯하다. 아니면, 어르신이라든지.
날씨는 좋은데 바빠서 즐길수가 없는 새봄주 갱신하고 가기>< 메타적 새봄이: (선배들 대화 제 4의 벽 너머로 구경하다가) 우리 엄마들도 야한 거 안 하시지만 부부로 엄~청 금슬 좋으세요! 연애하는 커플같구 가끔은 눈꼴시리다니까요! 히히~ 다음 훈련 땐 사탕 만드는 상상 하면서 엄마들 러브러브 모드 상상해볼까나~ 그럼 엄청 달텐데!
아지가 잘먹겠다고 인사하는 것을 보곤 청윤도 잘 먹겠다고 말한 뒤 자몽 시나몬 스프를 한숟갈 뜨...려다가 빠르게 샐러드를 먹었다. 원래는 수프를 추천했다지만 일단 빈속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이거라도 먹어둬야 할 것 같았다. 자몽답게 좀 시긴 해도 그렇게 달지 않아서 청윤이 딱 좋아하는 맛이라 청윤은 어느새 샐러드를 거의 다 먹었다. 뭐, 애초에 얼마 안 들고오긴 했지만.
"그럼 먹어볼까..?"
청윤은 한숟갈을 떠 천천히 먹어본 자몽 시나몬 스프의 맛은..
"으으음.. 확실히 매콤하고.. 씁쓸한데.. 모르겠네 조금 미묘하다고 해야하나.."
확실히 매운 맛이었다. 그리고 쓰고 셨다. 청윤이 싫어하는 맛은 아니었지만 맛들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으음.."
고개를 갸우뚱하며 남은 에피타이저들을 천천히 먹은 청윤은 자리에서 다음에는 뭘 먹을지 잠깐 고민했다.
>>871 고통스럽군요... 혜우가 눈앞에서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든 뻗었던 손도 못 잡았을 거고... 손을 거둔 뒤에 멍하니 있다가 실탄 장전하고 죽인 사람에게 쏴갈기려 들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이 말리려 들어도 그래도 어디서 난지 모를 힘으로 뿌리치면서 어떻게든 죽여버리려 하고 그것조차 안 된다면 무릎 털썩 꿇으면서 조금만 더 일찍 말할걸... 하고 후회하다가
당신의 모든 면이 좋았다. 편하게 -물론 자신이 온다고 준비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있는 그 모습조차 매력적이었다. 연인을 바라보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이전 당신에게 자신이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라. 당신이 돌아서면 애써 다시 시선을 두지 않으려 해도, 당신에게 시선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바닥에 왜 앉아 있냐며 당신이 물으면 금은 당신을 바라보며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그냥... 바닥이 편해서요."
당신만의 비밀스러운 공간. 모든 것이 생소하며 모든 것이 자신의 관심을 끌었지만. 그렇다고 기분에 따라 멋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장소가 주는 분위기 때문에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어색하고 떨렸기에 이런 말만 하게 되는 걸까. 보러 와줘서 고맙다는 당신의 그런 말에는 서서히 긴장이 풀렸다. 자신이 찾아온다고 했을 때 당신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면서도 차마 그 사실을 물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불현듯 당신이 자신의 볼에 입을 맞추면 금은 놀란 것처럼 당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을까. 금세 부드러운 표정으로 금은 손을 들어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제 볼을 덮는다. 차가운 느낌이 오랫동안 볼에 남아있다.
"그래도... 바쁜데 어리광으로 귀찮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잔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한 금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푸른 눈동자는 당신에게 고정된 채, 내려다보고. 금은 천천히 당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귓가에 머물며 얼굴에 닿을 듯 말 듯 . 가까워지던 손길은 당신의 어깨로 내려갔으니. 이번에는 침대에 놓여있는 인형 하나를 당신을 따라 손에 쥐고서 금은 당신의 옆으로 붙어 앉는다. 그리고서 당신을 돌아본 채, 다정한 목소리로 묻는다.
머리가 묘하게 어지럽지만 통증은 없다. 거울을 마주보면 관자놀이에 남은 보기 싫은 자국이 보이지만 이 또한 많아봤자 이틀에서 사흘 내로 사라질 거다. 인첨공의 기술력이란 그런 거니까. 때맞춰 제대로 처치받는다면야 웬만해서는 죽지 않고 흉도 남지 않는다.
관자놀이에 밴드를 붙여 자국을 가리고 오랜만에 꺼내든 우쿨렐레의 현을 튕기고 있으면 찡찡이가 무릎에 와서 앉는다. 리라는 고양이의 치즈색 털을 부드럽게 쓸어준 뒤 연주를 시작했다. 적어도 하루는 과하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으니 잔잔한 취미생활로 심신의 안정을 꾀할 셈이었으나, 아쉽게도 한 곡을 끝낸 후 밀려오는 두통으로 간만의 취미생활 또한 이르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경진 학생, 요즘 뭘 하고 다니길래 커리큘럼 빼먹고 다닙니까. 그쪽 능력은 대체제 많으니 도태되기 쉽다고 말했잖아요."
경진의 담당 연구원은 사탕발린 말을 할줄 모르는 여성이였다. 깐깐한 인상에 늘상 남을 업신여기듯 내리깔린 눈은 그녀의 유하지 못한 성격을 광고하는 메뉴판이였고, 그녀의 행동은 생김새를 결단코 배신 못했다. 쓴 혀와 눈빛에 경진은 무덤덤한 목소리 내었다. "힘들어서요."
"솔직하긴." 연구원은 혀를 차는 소리를 내더니, 펜과 종이의 마찰음이 그걸 바로 이었다. 사족도, 변명도 한 줌 없는 그 짤막한 답에 연구원은 더는 질문을 않았다.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나고, 가지런히 놓인 경진의 손 앞에 확인 서명이 그어진 서류가 들이밀어졌다. 커리큘럼의 일시적정지 요청에 대한 승인을 담은 내용이였다. 푸른 펜으로 그어진 깔끔한 사인을 눈에 담다, 연구원이 자리에서 일어서는게 시야의 모서리에 담기자 경진은 자연스레 그녀 쪽으로 고개를 살짝 들어보았다. 빠른 반응속도 무색하게도, 눈이 그녀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기도 전에 품에 끌어당겨져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리고 그녀가 등을 두들겨 쓰담어 주는 것에 표정은 평소의 담담한 것으로 돌아갔다.
"자랑스러운건 별개지요?" "네." "협업 수고 많아요. 경쟁률 치열했다고 들었는데." "연구원님이 신경 써 주셔서 붙은 겁니다." "훈련 재개하고 싶을때 연락해." "네, 감사합니다."
오늘의 훈련은 약간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능력을 사용하고 푸는 것을 반복하되, 그 사이에 무언가 한가지 동작을 넣는 것. 예를 들면 주먹을 지른다던가, 회피 동작을 넣는다던가 하는. 물론 이것이 실전에서 사용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제 누이가 시키는 것이니 따를 뿐. 담당연구원이란 그런 것 아니던가.
>>956 여자애 방 같지는 않은데 여자애 방은 맞음. 올 화이트 베이스에 푸른색이나 그런걸로 포인트 줘서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 지금 일상에서도 나왔듯이 너저분하진 않은데 손 많이 닿는 곳에 있는 물건들은 좀 어지럽고,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장식품, 인테리어 용품, 인형으로 꾸몄다 그리고 또 뭐 있나?
>>956 일단 기본적으로 은우와 세은이의 방은 둘 다 깔끔한 편이에요. 다만 은우의 방은 전체적으로 녹색 분위기가 강하고, 세은이의 벽은 분홍색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은우의 방에는 여러모로 책이 좀 더 많고, 요리 관련 서적도 많은 반면에 세은이는 인형이나 달콤한 디저트류가 많이 놓여있는 것이 특징이랍니다!
>>956 예전엔 언제 방을 빼야 할지 몰라서. 대강 박스에 물건들 담아서 내려놨으니, 귀찮아 정리를 안 해 몇몇 박스는 지금도 그대로두고 쓸까요. 무채색의 방에 침대는 없이 매트리스만 뒀을 테고. 가구도 딱 최소한으로 유지하겠네요. 디자인도 단순할 거고, 깔끔한 편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