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하는 꼴 보고서야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무신이 미미하게 입꼬리 한쪽 픽 올렸다. 저보다도 한참은 어린 손주를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다니, 그동안 먹은 나이는 죄다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다. 류지와 소이치로에게 청소를 시키고 저만 쏙 빠져서 놀 작정은 아니었다. 신은 신대로 카운터에 박힌 흔적 살피며 가게에 남은 문제를 해결하려 걸릴 시간을 가늠하고 있는데, 문득 들려온 물음에 시선 다시금 류지에게 향했다.
"방금 보았잖느냐? 손이라면 차고도 남느니라."
뭐, 큰 문제는 아니라지만 듣고 보니 생활이 편하려면 돌려놓기는 해야겠다 싶다. 염려할 필요 없다는 듯 부러 사라진 손 들어서 보여주었다. 곧 조금 전 천수千手 펼쳐졌을 때와 같이, 무수하던 손 중 하나의 형상이 사라진 손의 자리에 겹쳐졌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비었던 손목에 오지五指 모두 멀쩡한 손이 붙어 있었다. 부품을 갈아치우기라도 하듯 남는 팔 중 하나를 바꿔 끼운 것이다.
"잘리더라도 새로 자라고 말이다."
그리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고는 마저 청소나 하라는 듯 빤히 쳐다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놈 나를 걱정하는 건가?'하고. 걱정을 받는 쪽은 언제나, 필연히 약자의 몫이기 마련이다. 항시 그리 생각했기에 그는 약한 체 결코 하지 않으며, 선의의 염려일지라도 받게 되거든 극히 노하곤 했더란다. 한데 저 얼빵한 얼굴 보고 있자니 이번만큼은 썩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 까닭 무언지. ……젠장, 답지 않게 무슨 궁태람. 괜히 기분 탐탁지 않아져서 회복한 손으로 류지의 곱슬머리 거칠게 흐트러뜨리려 들었다.
겨울은 분명 끝났는데 여전히 해가 저문 뒤의 한기에는 적응할 수 없었다. 얼마나 더 많은 겨울을, 얼마나 더 많은 여름을 지나가야 나는 잊어버릴 수 있을까. 저 높은 곳에 계신 분들께서는 지상의 일 따위 모른다는 듯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그 오만한 모습에 반해서. 언젠가는 울어버렸던가. 비틀거리는 아이를 부축해가며 입구까지 옮긴다. 기타를 그렇게 함부로 다루다니 밴드맨으로는 실격이네. 너는 노래나 불러. 그게 더 어울리니까. 그냥 울고 한탄하는 것 만으로도 괜찮다. 마음을 선율에 담아 전할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너는 훌륭한 보컬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의 걸음은 입구에서 멈추었다. 품에서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인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가늘고 길게 뿜어냈다. 하늘 위로 뿌려지는 희뿌연 연기에는 복잡한 감정과 날숨이 섞여있다. 어두운 하늘 위로 흐릿한 구름 한 줄기가 사라진다. 하늘 위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붉은 빛을 깜빡이는 별들이 날아간다. 이런 도시에서 별이 보이지는 않으니까, 어딘가로 향하는 비행기의 충돌 방지등 이겠지. 이 땅 위에서 바라보는 일그러진 하늘 위에 점멸하는 적색등은 어쩐지 밤하늘에 세워진 도시의 야경처럼 보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나는, 어떤 답을 줘야 할까. 바보같이 남의 인생을 대신해서 살아갈 뿐인 존재이기에. 너에게 필요한 말을 하지는 못한다. 신이라고 불리는 주제에. 내가 조금 한심하게 느껴진다.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 있는 말을 하자. 눈물 흘리며 슬퍼했던 너에게.
발갛게 달아오른 뺨에는 여름 저녁의 서늘함이 스쳤다. 여름의 밤하늘은 높았다. 아직 가을이 오지도 않았건만, 올려다 본 하늘은 끝을 알 수 없었다. 멍하니, 발을 움직여 근처에 놓여있던 고장난 앰프 위에 앉았다. 이리저리 남아있는 상처가 세월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서늘한 공기를 느끼고 있자니 허전함이 강하게 다가온다. 분명 전에는 그 어두컴컴하고 눅눅한 지하에서만 하늘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짧았던 순간이 강렬하게 남아서 일까.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식어가는 것이 기분 좋다.
완곡한 거절. 그걸로 되었다. 어긋나버린 인생에 관여하는 것은, 결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테니까. 이야기를 중얼거리듯, 감정을 느끼기 힘든 잔잔한 목소리였다. 조금은 한탄하는 것 같은 목소리. 이 세상에는 아직 아름다운 것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야요이, 너는 왜 그런 꿈을 꾸었던 걸까. ‘나’의 안에 묻어두고 사라진 너의 감정이 조금씩 불어난다. 사람은 어렵고, ‘나’를 아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니까, 전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단 하나의 답 밖에 없다.
무심코 들고 나와버린 기타를 들었다. 진짜, 이게 뭐야. 마지막이라고 그렇게 말했던 주제에. 그렇게 눈물 흘리던 아이의 눈 앞에서 쓸모 없는 이야기를 하려한다. 그저 텅 비어버린 무언가가 나와 비슷해 보여서.
“…다음엔 라이브하우스로 와.”
멀어지는 아이자와의 뒷모습을 보고 돌아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조금 달아오른 탓일까. 오늘 마지막이 될 연주를 시작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이룰 수 없다면 죽어도 좋다고. 소녀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빌었다. 만약 그것이, 내가 아니라 올바른 신이었다면.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을까.
왜일까. 노래를 멈출 수 없다. 적막이 내려온 골목길, 어두운 가로등의 불빛에 의지해 부르는 노래는 나의 감정을 담아 멀리 퍼져간다. 아픈 것은 싫다. 차가운 것은 싫다. 어두운 것은 싫다. 형태를 갖추지 않고 퍼져나가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나의 분노와 절망을 담는다. 조용하게, 적막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냥 흰 우유일 뿐인데, 조금 구겨진 미적지근한 상품 가치 없는 것인데. 이토록 기뻐하는 모습은 이질적이다 싶지. 그래도, 웃는 얼굴에 침 날릴 수 없다고. 마주 웃어 보이면서 살짝 찜찜한 마음을 허리 뒤로 감췄다. 우유와 마주 바꾼 돌멩이를 가만히 내려보면서, 희미한 미소 지으면서. 그것을 가방에 쏙 집어넣고는.
"오늘은 이만 봐줄게요. 정리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요. 저는 교내 순찰을 마저 해야 하니까."
교실 문으로 항하면서 살짝 돌아보는 얼굴,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얹었다.
"모노리 군."
//히히 막레당 앞서 질질 끌어서 미안행 나중에 이 돌멩이로 이야기 하나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은뎅 이만 물러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