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건 없기에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순환이 있기에 모든 것이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순환이 있기에 생명력은 소비가 되어 죽어가는 법. 우리, 아니.. 모든 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어가고 있는 것이죠. 결국 모든 것들은 죽음의 열차를 평등하게 타고 있어요. 저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고 미련없이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이기 직전에 해야 될 일이 많아졌거든요. 하고 싶은 일은 없어도요. 그래서 열차의 속도를 조금 늦추려고요."
아쉽게도 군신과 칠요의 신은 성질이 너무 달라도 다른 것일까요? 이런 점은 대화의 방법에서도 차이가 났습니다. 칠요의 신은 추상적이고 비유적인 반면 군신은 달랐습니다. 모두가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게 명확성과 간결성을 강조했습니다. 방금의 대답도 너무 짧고 간결하게 답하면 상대방이 무안해할까봐, 그나마 부풀려서 어느정도 꾸밈있게 대답한 것이고요. 하지만 어느정도 의미는 이해했을까요? 인간들이 죽음을 존속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얘기였을까요. 어두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고,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발견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은 어떤 고난을 겪어도 포기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죠.
"음..그래요. 그렇게 해보죠."
나오토는 생긋 웃으면서 알겠다고 하지만, 진짜로 행할지 말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적어도 군신의 성격상 여기서 대놓고 "내가 알아서 하겠소." , "그렇게 하기는 싫습니다."라고 말할 성격은 아니었으니깐요. 적어도 앞에 있는 인물에게 무안을 줄 생각은 아니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상대방의 의견이 틀렸느니 마느니 토론을 할 성격이 아니었죠.
"저는 말이죠, 모처럼의 생활을 즐겨보려고 하고 있어요. 누군가 묻기를 그럼 언제는 그렇지 않았나? 라고 묻는다면 아니요 라고 답하겠지요, 이것은 방식의 차이에요"라고 말했을 때, 상대방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반응했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해보겠습니다.
칠요의 신은 모처럼의 생활을 말은 일상에서 특별한 경험을 즐기려고 했나봐요.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이나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죠. "누군가 묻기를 그럼 언제는 그렇지 않았나? 라고 묻는다면 아니요 라고 답하겠지요"라는 말은 일상에서는 편안하고 조용한 삶을 추구하지만, 때로는 변화와 모험을 즐기고 싶다는 뜻일까요? "이것은 방식의 차이에요"라는 말은 상대방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는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건가 모르겠네요. 이렇게 말한 것은 다른 사람과 자신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며, 이는 각자의 방식과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속뜻은 말한 사람만이 알겠죠.
불안을 떨치고 평안을 얻길, 몸 지독히 태우려 드는 열병이 낫길, 제천諸天과 선신과 용왕의 비호 함께하길, 자비심이 깃들어 타자 보호하며 해하지 않길. 미진해진 힘으로도 갖은 수호의 말 모두 쏟아부었다. 지독히도 다사했던 하루, 이 이상 고난 더해지지 않도록. 이 손길에 깃든 성심 스스로는 깨우치지 못한다. 맞닿은 손 놓자 관성으로써 붙어 있던 손바닥도 서로 떨어진다. 류지의 손 진언으로 뒤덮였듯 무신의 손은 타들어간 연재煙滓 되어 시커멓다. 건드리면 부스러지고 재로 화해 사라질 듯하니, 전소된 나뭇더미의 몰골이 꼭 이와 같으리라. 손을 떼어내는 동작만으로도 손의 형상 파삭 무너진다. 풀어낸 손 아래로 내릴 즈음 되어서는 결국 손목이 뚝 부러져 손 하나가 완전히 바스라져 없어지고 말았다. 무신은 손목 아래가 덩그러니 사라진 왼손 잠시 응시하다 난감한 일 되었다는 양 뭉툭해진 손목으로 제 뒷머리 흩었다. 무어, 차라리 이 편이 깔끔해서 나을 수도 있겠다. 이로써 손 하나도 내어준 셈인가. 어차피 손이야 당장 남은 것만 하여도 구백아흔아홉이나 있고 팔다리 날아간 것쯤이야 시간만 들인다면 회복할 수 있다. 해서 그것은 신경쓰지 않고 새겨진 문장 잘 드는지 건너다 보는데, 손 들여다보며 정신 못 차리는 것은 또 무언지.
"듣고 있느냐?"
물어도 얼른 답 나오지 않으니 눈살 찌푸려든다. 잠시간 조용한 끝에 마침내 대답 돌아오자, 고맙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무신의 낯 못마땅하게 구겨졌다. 그러고는 돌연 멀쩡히 남은 손으로 대뜸 류지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려 들었다. 이번만큼은 무신의 격이나 이적 같은 것 조금도 담기지 않은, 시조이며 조모로서의 얼 담긴 평범하게 얼얼한 주먹이었으리라.
"어르신이 하문하면 재깍재깍 대답을 하란 말이다."
무신은 야마후시즈메로서 자신이 발휘하는 공포에는 통달했어도, 땅에 떨어진 이후론 그 이외의 경외와 감개는 좀처럼 접할 경험 없었다. 상태는 분명히 나아졌을 텐데도 류지 녀석 갑자기 말이 없으니 어디가 잘못되기라도 했나 싶었다. 쉽게 말하여 걱정했단 뜻이었지만, 인정人情에 둔감하니 그저 겸연쩍고 제 답지 않은 행동만 한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하여 공연한 심술만 부리다 슬쩍 시선 딴 데로 돌렸다. 기껏 입 열어 덧붙이는 말도 통보보단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됐다. 그 인印 하루만에 풀리는 것 아니므로 내일도 내게 용태 보여라. …그리고 소이치로, 적연한 때에 왔군. 소청掃淸은 너희끼리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