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부름을 받는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린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것이 슬퍼해야 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 더 이상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의 삶에 불만은 없었고 오히려 이렇게 되는 것 마저 예정대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바라건대. 신이시여. 나만을 구하소서. 주위를 살펴보니 어둠이었다. 익숙하다. 밤이나, 우주. 저 너머에 비추는 것. 뺨을 스치는 은은한 밤바람과 저 멀리에 보이는 은색 점. 내가 편안 속에 잠들 수 있는 유일한 어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닦인 바닥에 은은하게 달빛을 반사하는 벽은 유선형으로 천장까지 뻗어나가 있었으나 그 재질의 종류조차 알 수 없다. 적어도 내가 있던 곳에서는 볼 수 없던 양상. 목재인가? 아니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만들 수는 없다.
허나, 알 수 있다. 머나먼 옛날 이 [극장]에 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모르겠군. 기억이 혼탁하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이 섞여서… 이건… 주변을 둘러보자.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은… 어디지? 통로다. 하늘이 열려있다. 유리로 되어있는… 돔형의 천장. 그리고 그 너머에 보이는 어둠 속에는 은색 실이 꿰어 있어서…
“우주…?”
낮은 목소리의 신음이 흘렀다. 나의 것은 아니었으나 어째서인지 익숙한 목소리다. 왜 아직 여기에 남아있는 거지? 왜 이곳을 그녀가 알고 있지? 어째서, 나는 분명…
[신의 부름을 받았지.] [앞으로 와, 제일 안쪽 방에 있어.]
불분명함으로 일그러진 머리 속을 헤집고 끈적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온다. 마치 내 안의 어딘가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 무명신의 부름이다. 내 안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을 뿐. 그렇다면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다.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떨어져나간 발목을 질질 끌며 안쪽으로 향한다. 한 절음을 걸으면 하나의 별이 사라진다. 한걸음, 한걸음. 그리고 길도 무엇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겨우 문하나만이 눈앞에 보였다.
문을 열자 그곳은 극장이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편하게 있어.”
목소리가 극장 전체에 울려퍼진다. 편하게 있기를 종용하는 그것은 무대 위에 설치된 거대한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의자 밑으로는 어딘가 망가진 것 같은 모형들이 이리 저리 흩뿌려져 있었고 그녀를 중심으로 펼쳐진 의자와 테이블은 어림잡아도 수백 이상이었다.
그것은, 그저 완전한 흑. 다른 색을 용서하지 않은 채로 피의 붉은 색만을 몸에 허락하고 있다. 이형의 여자는 심해의 저편보다도 깊은 오른손을 뻗고 미소 지었다. 동시에 주변이 변하기 시작했다. 극장에서 무언가로. 아마 이곳의 원래 모습일 터인 그것으로. 천장이 무너진다. 잔해들은 중간부터 조금씩 삭아 바닥에 떨어질 때 즈음에는 가루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하늘은 우주를 비춘다. 그것은 이미 완전한 어둠.
“나에게 바쳐진 것을 축하해. 다시 한번… ‘나’에게 바쳐진 걸 축하해.”
“이제부터 너는 죽어서… 그래, ‘나’의 일부가 되어 이윽고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거야.”
여자는 슬프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머리가 그녀를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시작하기 전에 잠깐 이야기해볼까. 앞으로 인지의 멸망까지는 함께 할 테니까. 서로 이해 정도는 하는게 좋겠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웃으며 옥좌에서 내려와 나의 곁에 앉는다. 그녀의 발이 땅에 닿는 것과 동시에 옥좌도 무대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우주의 일부만이 그 너머로 보였다. 마음 편히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렇게 있는 것 만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입을 열어야 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뭐 글쎄. ‘무엇이든’이 아닐까. 그보다는… 음, 뭔지 모르겠네. 나는 그냥 과거의 잔재 같은 거야. 너와 대화하기위해서 꺼내온 가장 ‘인간적’인 인격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뭐 인격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당신은 계속 이곳에서…?”
“글쎄? 몰라 그런 거. ‘이곳’은 ‘내’안에서도 이질적이거든. 여러 공간이 꼬였다고 할까, 아니면 전부가 늦춰진다고 할까. 적어도 내가 알던 것들이 있는 시대가 지나고 너의 시대가 왔지만 나는 이곳에 있어. 그리고 여전히 ‘내’가 누군지는 모르지. 아마 이것보다 더 큰 좌절은 없을걸?”
알고 싶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령, 자기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가벼운 어조의 이면에 숨겨진 무언가가 조금 건조해보였다.
“조금 슬프지만, 아마 니가 이곳에 섞이고 나면 나는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아. 당장 내 직전의 나도 그렇고. 그 전의 전의 전도 그렇겠지. ‘우리’가 바깥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해. 다행히 ‘누에’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어느 정도의 여유를 만들어 둔 상태지만. 알잖아?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야. 애초에 그 아이도 ‘나’에 대한 건 어머니라고 불렀을 뿐 ‘누에’라고 부른 건 마지막 순간뿐이잖아? 남겨지게 되는 건 이름뿐이라는데, 우리는 그걸 남기지 못해. 억지로 기워 붙이는 거야. 매 순간순간을. 아마테라스가 동굴에 숨은 그 시절부터.”
“그러면 저는…”
“아마도 이 이후에는 다시 다음을 기다려야 할거야. 몸을 바쳤으니까. ‘다음 번’이 오면 너도 이쪽으로 오게 되겠지. 표면이라는 건 중요하니까.”
조금씩, 인식이 희미해진다.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이 가족의 이름이 조금씩 옅어진다. 떠오르는 기억을 천천히 침잠 시킨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 순수했던 두려움과 기쁨의 대비가 번갈아 가면서 뇌 속을 헤집어버리고 이윽고 얼마 남지 않은 기억이 자신을 한입에 삼켜버릴 것처럼 입을 열었다. 잃어버린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지만 소리는 이윽고 진동에 삼켜진다. 테이블이 있었다. 다리가 짧은 작은 테이블로 자주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 가지 않게 되고, 집에서 나가는 일이 줄었다. 거듭해서 오는 연락을 무시하며 매일같이 하고싶은 것만을 거듭한다. 고난을 거듭해온 이전까지의 삶도 이제는 돌아보지도 못할 기억의 그림자가 되어 있을 뿐이다.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창문이 있었다. 건너편은 보였지만 갈 수는 없다. 하늘의 색이 변하는 것을 그저 의자에 앉아 영원히 바라보고 싶었다. 자줏빛으로 어두워지는 하늘 위로 지독한 담배의 연기가 흩뿌려졌다. 나는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었지만 그 공간은 평소와 달랐다. 누군가의 손이 더해진 것인지 시야에 보이는 것이 전혀 다르고 냄새도 소리도 달랐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도 말 할 생각은 없지만. 나 자신조차도 나를 알지 못할 테니까. 그저, 낡은 경첩이 내는 비명을 뒤로하고 방 안에 들어온 소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포인트 없이 검기만 한 세일러복, 치마 아래로는 쭉 뻗은 새하얀 다리가 슬쩍 보이고 있었다. 조명 탓인지 조금 푸르게도 보이는 단발이 귀여워 보였다. 하지만, 알 수 있다. 저런 옷을 입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저것은 학생이 아니다. 인간으로도 느껴지지 않는데 어쩐지 조금 안심되는 것 같기도 했다. 확실히, 저런 세라복을 입은 학교는 없지. 아마 그런 업소에서라면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여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움직였으나, 때때로 마치 버그가 난 게임의 NPC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럴 때에는 어딘가 한 구석을 조용히 응시했다. 나와 눈을 마주치듯이.
“정말이지.”
혼잣말이었다. 말을 그 이상 이어가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말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자신의 말이 가진 씁쓸함을 음미하는 것처럼. 무어라 말하고는 있었으나 그 이상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이곳에 있었으나 서로의 말이 닿지는 않는다. 그녀가 하는 말을 이해했을 수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이제 아무런 가치도 효과도 없는 말을 할 자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없는 내면의 우울 속 깊은 곳에는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과 고독이, 슬픔을 중심으로 뭉쳐 덩어리가 되어 있다.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다음’이 그녀에게는 없다. 변화한 환경에 대한 괴로움과 고뇌, 경험한 어떠한 외로움이나 지루함. 부정적인 감정의 덩어리보다도 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거늘.
아, 이런 거구나. 누군가가 말했다. ‘다음을 기다리게 된다.’ 기억의 틈새에서. 이미 버린것들을 마주하면서. 억압해오던 많은 감정들은 지금의 삶도 과거의 삶도 스스로 부정해야한다. 어리석게도,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몸을 바쳤으니까. 무심코 입에 담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는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나의 실수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와 눈이 맞았다.
“네가 어떤 삶을 바라는지는 모르겠지만…”그녀는 누군가에게 말했다. “’나’는 겁쟁이야. 너는 그런 것에게 부탁한거야.”
몇 분이 더 지난다. 그리고 나는 일어서, 문 밖으로 향했다. 다시 한번, 방 안으로 들어오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차분하게 정리해둔 검은 머리는 비를 맞아서인지 조금 축축해 보였다. 넥타이도 풀어졌다. 피로감을 버티지 못하는지 그녀는 지쳐있는 얼굴로 짧은 바지를 풀어헤치고 있었다. 곧 바지는 골반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로 조금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평소의 분위기가 돌아왔다. 눈빛은 창문 너머로 비춰오는 도시의 빛을 반사해 광채를 되찾고 조금 뻣뻣해 보였다.
단순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그저, 죽으려고 했던 그 다음 날. 나의 ‘이름 모를 신’과 만난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