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가볍게 머리를 건드리는 느낌에 눈을 깜박인다. 평소의 페이스가 무너지고 잠시 얼떨떨해 하다 뾰루퉁한 표정이 드러났다. 방금 전에 시윤에게 자신을 몰아붙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말했을 때와 같은 눈빛을 하다 서서히 풀리고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시윤군은 가끔 지나치게 오라버니처럼 구세요." 실제로는 전생의 기억을 가졌을 뿐인 복잡미묘한 정신연령을 가진 15살의 소년이면서 그는 그러고서는 안되는 성격인지 어른스러움을 고수할 때가 있었다. 어른인 척하는 애어른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저 아이의 몸에 갇힌 어른이라기도 미묘하다고 해야 할지 강한 의지를 가진 청소년과 수많은 세월을 지난 어른이 혼재된 것만 같았다. 아마 그가 어른스러움에 더 무게를 실음은 치기어린 소년을 세상이 믿지 않음을 알지만 제 뜻을 추구하고자 하는 청소년의 의지가 반영된 걸지도 몰랐다.
그 앞에서 이를 알고서 일부러 더 어리게 학생마냥 굴며 저를 일정이상 드러내지 않는 자신도 자신이지만. 그를 많이 불신해서? 그건 아니었다.
"..." "그런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알겠어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예민해진 것 같아요.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가볍게 미소지으며 이제는 다 마신 음료 병을 집어 일어나 병실 구석의 휴지통에 넣는다. 그들이 자신을 지원해준건 사실이지만 이미 다 잡은것이나 마찬가지인 쥐에게 실험을 행하며 다른 쥐보다 더 좋은 환경과 음식을 제공한다 해서 그에 감사할 바는 아니었다. 그와 별개로 무해한 태도를 보여야 할 필요성에는 동의했다.
시윤이 부모라면 저를 상대로 그들이 무엇을 잡고 있을지는 너무나도 확실했다.
"침착하고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겠네요. 조언 고마워요." 이번에는 진심으로 부드럽게 웃으며 긍정의 뜻을 말한다. //17
나는 딱히 30-40대의 '아저씨'가 아니다. 15세의 소년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와 아이처럼 철없고 순수하게 생각하는 것이 서툴다. 결국 두개가 애매하게 섞여서, 어른스럽지만 다소 감정적이기도 한 지금의 내가 나다.
"내가 네 앞에서 유독 오라버니처럼 구는 이유는, 네가 연기던 뭐던 좋으니까 아이처럼 편하게 있던 어리광을 부리던 해도 좋다는 의미이기도 한거야."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다소 내 어른스러움에 맞춰 아이처럼 구는 것은, 뭐 완벽히 솔직할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는 인물에 대해 그녀가 우호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페르소나에 가까울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관계의 모든 것이 거짓일리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단순히 비지니스와 친절함을 가장하기 위해 병문안을 왔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가끔 드러나는 얼떨떨함이 모두 거짓으로 점철되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과의 인연이란 신기에서, 어떤 형태도 길게 이어지다 보면. 거기서 또 하나의 진실이 피어나기도 하는 법이지.
"영리하니까 공감은 못해도 이해는 했겠지. 이후론 뭐, 잔소리를 안해도 잘하리라 믿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곤, 근처에 널려있던 제복을 착용하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원 주제였던, 신의 접촉인데."
"...."
"그건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쳐들어왔다. 회담을 마치고 에브나에게로 가서 대화를 잠깐 나눴는데, 어느 순간 에브나가 긴장하더군. 그 직후......'방문' 한거야. 이렇다할 전조초자 없이."
안개를 통해 타게팅을 흐리게 한다. 이 부분은 일단 지금 시점에서는 불가. 의념 속성에 대한 고찰도 없고 단순히 '흐리다' 가 '타게팅이 잘 되지 않는다'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야. 자신의 은신 역시도 그럼 불가능하겠지? 혼란이나 방해, 보호막을 걸어준다. 이건 혼란 부분은 모르지만 방해나 보호막을 걸어주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이 캐릭터의 컨셉을 '근접 워리어'라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네가 바라는 플레이 스타일은 근접 워리어가 아니라 '근거리 서포터'의 느낌을 바라는 걸로 보여.
웃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리다가 네에 그리 싫지는 않아요. 라 순순히 답한다. 어느 순간 정립된 미온적으로도 보이는 관계가 싫지 않으며 이제는 썩 괜찮음을 지금에 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면 시윤씨의 어리광은 누가 받아주나요? 열다섯 살이 열 아홉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건 조금 이상하잖아요." 딱히 큰 뜻 없이 가볍게 농을 건네듯 말을 하며 다시 일어나려 하는 것처럼 제복을 걸치는 상대를 살짝 힐난하듯 바라본다.
"여선양께서 안정을 취하라 말하셨어요. 저는 메딕에게 왜 환자를 보지 않았냐라는 말을 듣기는 싫어요." 특히 여선은 은근히 트릭스터같은 면모가 있어서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기에 더더욱 그랬다. 물론 여선이 그런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방금전만 해도 죽어가던 사람이 나가려고 한다면 막았을 것이니 지금 린이 거짓말을 고한 것인지 진실로 여선이 안정을 더 취해야 한다고 말한 것인지는 오리무중이다.
"사실 이번 사건자체가 전조없이 일어났으니 무어라 말하지는 못하겠어요. 에브나양은 괜찮은가요?" 말이나마 상성인 신을 모시는 자로서 축복을 드리겠다 하고 싶지만, 하지만 시윤씨는 신을 믿지 않으시니까요라 어쩔 수 없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끝을 맺는다. //19
1차적이고 근본적인 캐릭터의 모티프는 <모모>에 나왔던 회색 신사들이었습니다. 그러면 기본적으로 의념 속성이 시간과 관련되어야 할텐데, 이건 시트스레 정주행 도중 애로사항이 많다고 판단되어 기각했습니다.
그러면 애초에 무투계 워리어를 고르면 되는 것 아니냐, 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요. 마도의 다재다능도 다재다능이지만, 상황에 맞는 유연함과 유틸리티를 통해서 전통적인 근접 무투계 캐릭터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조금 더 기동적이고 전략적인 근접전이 가능한 워리어 캐릭터. 라고만 상정했습니다. 사실 캡틴 말씀대로 정확한 전투 스타일이나 사용 기술들이 어떤 것이냐. 에 대해서까지는 확립을 못 한 부분이 있네요.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든 일들이 계속 일어나네요. 마치 신화에서 운명이 재주를 부리고 신이 기적을 행사한 것처럼요." 에브나의 일에대해서는 정말 유감이라 덧붙인다. 기사 재전이 단순한 마을 축제도 아니니 꽤 넓은 지역에서 행사가 진행되고 있을텐데, 이를 다 침식할 정도의 규모라면 시윤의 말대로 초대형 게이트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어머나 저를 환자를 전장으로 보내는 매정한 사람으로 만드시고 싶으신가요?" 이제는 눈빛은 다를 것 없이 입꼬리를 올려 입만 웃는 얼굴로 기어코 나가겠다 말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하여간 말을 듣는 사람이 없다. 솔직하게 지금 당장이라도 독을 쓰거나 환각으로 시윤군을 막거나 기절시킬 수도 있겠지만이라 일부러 한탄을 하듯 중얼거린다.
"하지만 해결방법이 그 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겠네요. 나가고 싶으시다면 지금 가세요 저도 여선양이 왔을때 시윤씨를 놓쳤다고 말할 핑계거리가 필요하니 대충 방을 꾸며야 해서요. 라 말하고서 린은 뒤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