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심각한 얼굴로 고충하는 상대에게, 가볍게 톡 하고 손날로 정수리를 두드렸다. 물론 그런 부분에 있어 열심히 사고하는 것은 나쁘지 않고, 필요로도 한다마는. 눈 앞의 여자애는 그런쪽에 있어서 사람을 불신하고 다소 부정적으로 경계하는 편향이 있기에. 환자의 손날로나마 잠깐 생각을 환기시켜줄 필요는 있는 것이다.
"린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신경질적이지. 말했듯, 나는 담당자에게 위협 당하긴 했다만.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엔 충분히 공감했어. 비위를 맞춰주려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어쨌거나 그들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 성심껏 지원 해줬고, 우리는 그에 대한 의리를 갚기보단 불만을 떠올린게 사실이지."
저쪽의 태도가 고압적이거나, 우리에게 말도 안되는걸 시킨 감도 물론 없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부분은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 우린 사실 그다지 '억울한 입장' 이 아닌 것이다. 무언가 의심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려면 먼저, 그 부분의 차이를 해결해야만 한다.
"그게 그렇게 쉽진 않을거야. 왜냐면 거짓말이니까. 그럼에도 하고 싶다면, 당연하지만 UHN쪽 사람과 접촉해서 그런 의사를 전달해봐. 결국 우리가 우리 의사로 일으키는 일들로는 안 돼. 여태 그래와서 여기까지 온거잖아? UHN과 사이가 좋아지려면, 이젠 그 쪽의 의사를 명확하게 들을 때가 온거야. 나처럼 말이지."
톡, 가볍게 머리를 건드리는 느낌에 눈을 깜박인다. 평소의 페이스가 무너지고 잠시 얼떨떨해 하다 뾰루퉁한 표정이 드러났다. 방금 전에 시윤에게 자신을 몰아붙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말했을 때와 같은 눈빛을 하다 서서히 풀리고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시윤군은 가끔 지나치게 오라버니처럼 구세요." 실제로는 전생의 기억을 가졌을 뿐인 복잡미묘한 정신연령을 가진 15살의 소년이면서 그는 그러고서는 안되는 성격인지 어른스러움을 고수할 때가 있었다. 어른인 척하는 애어른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저 아이의 몸에 갇힌 어른이라기도 미묘하다고 해야 할지 강한 의지를 가진 청소년과 수많은 세월을 지난 어른이 혼재된 것만 같았다. 아마 그가 어른스러움에 더 무게를 실음은 치기어린 소년을 세상이 믿지 않음을 알지만 제 뜻을 추구하고자 하는 청소년의 의지가 반영된 걸지도 몰랐다.
그 앞에서 이를 알고서 일부러 더 어리게 학생마냥 굴며 저를 일정이상 드러내지 않는 자신도 자신이지만. 그를 많이 불신해서? 그건 아니었다.
"..." "그런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알겠어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예민해진 것 같아요.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가볍게 미소지으며 이제는 다 마신 음료 병을 집어 일어나 병실 구석의 휴지통에 넣는다. 그들이 자신을 지원해준건 사실이지만 이미 다 잡은것이나 마찬가지인 쥐에게 실험을 행하며 다른 쥐보다 더 좋은 환경과 음식을 제공한다 해서 그에 감사할 바는 아니었다. 그와 별개로 무해한 태도를 보여야 할 필요성에는 동의했다.
시윤이 부모라면 저를 상대로 그들이 무엇을 잡고 있을지는 너무나도 확실했다.
"침착하고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겠네요. 조언 고마워요." 이번에는 진심으로 부드럽게 웃으며 긍정의 뜻을 말한다. //17
나는 딱히 30-40대의 '아저씨'가 아니다. 15세의 소년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와 아이처럼 철없고 순수하게 생각하는 것이 서툴다. 결국 두개가 애매하게 섞여서, 어른스럽지만 다소 감정적이기도 한 지금의 내가 나다.
"내가 네 앞에서 유독 오라버니처럼 구는 이유는, 네가 연기던 뭐던 좋으니까 아이처럼 편하게 있던 어리광을 부리던 해도 좋다는 의미이기도 한거야."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다소 내 어른스러움에 맞춰 아이처럼 구는 것은, 뭐 완벽히 솔직할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는 인물에 대해 그녀가 우호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페르소나에 가까울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관계의 모든 것이 거짓일리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단순히 비지니스와 친절함을 가장하기 위해 병문안을 왔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가끔 드러나는 얼떨떨함이 모두 거짓으로 점철되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과의 인연이란 신기에서, 어떤 형태도 길게 이어지다 보면. 거기서 또 하나의 진실이 피어나기도 하는 법이지.
"영리하니까 공감은 못해도 이해는 했겠지. 이후론 뭐, 잔소리를 안해도 잘하리라 믿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곤, 근처에 널려있던 제복을 착용하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원 주제였던, 신의 접촉인데."
"...."
"그건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쳐들어왔다. 회담을 마치고 에브나에게로 가서 대화를 잠깐 나눴는데, 어느 순간 에브나가 긴장하더군. 그 직후......'방문' 한거야. 이렇다할 전조초자 없이."
안개를 통해 타게팅을 흐리게 한다. 이 부분은 일단 지금 시점에서는 불가. 의념 속성에 대한 고찰도 없고 단순히 '흐리다' 가 '타게팅이 잘 되지 않는다'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야. 자신의 은신 역시도 그럼 불가능하겠지? 혼란이나 방해, 보호막을 걸어준다. 이건 혼란 부분은 모르지만 방해나 보호막을 걸어주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이 캐릭터의 컨셉을 '근접 워리어'라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네가 바라는 플레이 스타일은 근접 워리어가 아니라 '근거리 서포터'의 느낌을 바라는 걸로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