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한번 그 무신이라는 이를 만나볼 필요가 있겠다고 유우키는 판단했다. 물론 자신이 둘의 사이에 끼여서 이러쿵저러쿵 할 자격은 없으며,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적어도 어떤 이인지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컸다. 아야나는 저렇게 말을 하지만, 자고로 마음을 뺏기게 되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자신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며 유우키는 한숨을 약하게 내뱉었다. 일단 이 이상 무슨 말을 할 순 없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저는 아야나님을 믿지만, 그 무신이라는 분은 아직 모르겠어요. 딱히 아가씨의 교우 관계나 사적인 관계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을 생각은 없지만... 이것만큼은 제가 직접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을 유우키는 하지 않았다. 염려마라고 했으니 일단 더 이상 무슨 말을 하진 않겠으나... 그래도 며칠 조용히 지켜보긴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말을 마무리지었다.
네코바야시는 역시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협조하는 태도에 조금은 안심이 된다. 얼마나 기다리면 되냐는 물음에는 손목시계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 "십오 분 정도면 될 거예요."라 답하고는 시라카와에게 등을 보인 채 부실 한편으로 걸어갔다.
'빨래, 청소, 요리? 너무 늦으면 곤란하다니 요즘 세상에 무슨 집사도 아니고. 가정적인 면을 어필해서 경계심을 늦출 생각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티포트에 홍차를 우리고 있으면, 풍기위원 일이 힘들지 않냐는 물음이 들려온다. 소녀는 뒤를 흘금 돌아보았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죠. 지각생은 기본이고 월담하는 아이들은 점점 달리기가 빨라져서 잡기가 힘들어요. 담배 같은 반입금지 물품도 압수해야 하고. 특히 체육관 뒤편의 창고 쪽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불량학생들이 제일 말을 안 들어. 학기가 지날수록 불순 이성교제도 늘어서 단속하기 골머리예요."
그렇게나 경계하더니 우는소리를 줄줄 늘어놓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멎으면, 천천히 걸어와 시라카와의 앞에 홍차가 담긴 흰 찻잔을 조심히 내려놓는 네코바야시.
적어도 자신이 카와자토 가로 가서 일을 할 시간에는 늦지 않겠다고 판단하여 유우키는 안도하며 미소를 지었다. 몇 시간이라고 한다면 학생증을 맡기고 갈 생각이었다만, 그게 아니라고 하니 그는 여유롭게 의자에 앉았고 괜히 주변을 구경하듯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옮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선도부 부실 안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볼 생각이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한숨과 함께 그녀에게서 이런저런 한탄같은 소리가 쏟아져나오자 유우키는 절로 팔짱을 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이 많겠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다 유우키는 순간 고개를 갸웃했고 그녀에게 물었다.
"불순 이성교제라고 했는데 우리 학교에 연애금지 학칙이 있는 것은 아니죠?"
연애를 하고 싶은데 그런 학칙이 있으면 어쩌지? 라기보단 그냥 그런 것이 있었나? 정도로 가볍게 묻는 것과 동시에 방금 그녀가 말한 이런저런 일을 괜히 곱씹으며 유우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만 해도 힘들 것 같네요. 특히나 일학년이잖아요? 그렇다고 한다면 잡으려고 해도 말을 안 들을 것이 뻔하고... 힘내세요.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안타깝네요.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적어도 전 책잡힐 짓은 하지 않을게요."
물론 살다보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그 정도로 이야기를 하며 유우키는 그녀가 차를 내오자 작은 감탄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잘 마실게요."
우선 마시기 전에 향을 느끼면서 그는 눈을 조용히 감았다. 고급적이 느낌은 아닐지도 모르나 향긋한 것이 꽤나 좋은 느낌이라고 유우키는 생각했다. 그러다가 조심히 잔을 들어서 한 모금. 그 모습이 꽤나 익숙했으며 잔잔한 기품이 흘렀다. 어설프게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꽤나 익숙하게 마시는 모습을 보이던 유우키는 이내 잔을 아래로 살며시 내렸다.
"어디 차인가요? 이거? 고급적인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가볍게 집에서 끊여서 먹기에는 좋을 것 같은데. 괜찮다면 어디서 파는지 알려줄 수 있으세요?"
붉은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동자. 일단 나중에 천천히 찾아보면 되겠거니 유우키는 생각했다. 이름이야 어차피 명찰이 있을테니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진 않을테고. 일단 불은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이들을 싹 찾아보면 언젠간 볼 수 있겠지. 혹은 1학년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좋을테고. 찾는 방법은 무수히 많았기에 그는 여유로운 표정을 보였다.
"하하하. 사모하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을 제일 좋아해야죠. 아무튼 고마워요. 아야나님."
물론 그 좋아한다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괜히 그렇게 말하며 유우키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참으로 순수하기 짝이 없는 이였기에 걱정이 들지만, 그런 이기에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유우키는 생각했다. 물론 그 무카이라는 무신을 섬길 마음은 없었지만.
끌어안는 그녀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주나 자신이 굳이 팔을 내리거나 하진 않았다. 어느 정도 안게 해준 후에 그는 그녀를 살며시 떨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제대로 들고서 그는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저는 시라카와 유우키. 당신의 시종이니까요. 아무튼... 오늘은 저녁이 조금 늦어질테니... 방 청소라도 하면서 기다려주세요. 일단 최대한 빠르게 준비할테니까요."
우선 오이무침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겠지. 그리고 그 이외의 오이요리는... 뭐가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던 그는 일단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며 그녀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혹시라도 데이트를 하게 되면 얘기해주세요. 그 분의 취향도 말해준다면... 어느 정도 적용해서 도시락이라도 만들어볼테니까요."
“에에잉 아니와요. 아야나의 가장 소중한 인간은 유우군이와요. 어머니 아버지 그다음 유우군. “
끌어안은 팔을 풀려고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요 가족보다 소중한 이가 없으면 누가 있겠나. 유우군은 아야나에게 있어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먼 옛날부터 시라카와 가와 카와자토 가는 가족처럼 지낸 사이니까. 둘 사이를 가족이라 하지 않으면 정의할 단어가 없으리라. 정말로.
“늦어도 상관없으니 편히 준비해주시는 것이와요~ “
걸어가는 사이 어느새 집 코앞까지 왔다. 아무튼 빠르게 준비해주겠다는 말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데이트를 하게 되면 말씀해 달라는 유우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의 취향은? 잘 모르지만……날고기? 육회 종류가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와요. 뭐랄까 야성적인 취향일 것같은 분이셔서 말이와요. 아무튼 야성적인 음식을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와요. “
유우군보다 앞서 문을 활짝 열어주려 하며 아야나는 후히히 웃었다. 드디어 집이다! 종종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자신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이런 요리가 아닐까라고 유우키는 생각했다. 이것만큼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른 고급적인 선물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만든 것을 자신이 어떻게든 얻어서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리는 온전히 자신이 만드는 것. 정성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는 오늘 요리는 특별히 힘을 쏟기로 했다. 오므라이스에 오이 비율을 늘리고, 케챱으로 아야나의 얼굴을 그려볼까. 그렇게 생각을 해보기도 하며.
"날고기와 육회...말인가요? 기억해둘게요."
무신이라더니 고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러면 와규를 구해볼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나름대로 계획을 짰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있는 일도 아니며, 차후의 일이니 벌써부터 모든 것을 결정할 필요는 없다고 유우키는 판단했다. 사실 그것보단 야성적인 취향이라는 것에 그는 주목했다.
"불에 구웠다고 안 먹겠다고 하는 분이 아니길 바래야겠네요. 야성적으로 도시락이 엎어지면 화가 날 것 같으니까요."
설마 그런 일이 있기야 하겠냐만... 그래도 앞날은 알 수 없는 것. 일단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며 아야나가 집의 문을 열자 유우키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후훗. 방에서 기다리셔도 괜찮아요. 도와준다면... 고맙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번엔 아야나님을 위한 풀코스니까요."
싱긋 웃어보이며 그는 천천히 들어섰고, 저택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인사했다. 아마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아야나의 개인 상에 오이로 만든 온갖 요리들이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나 어설프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아야나의 얼굴을 그려보려고 하는 오므라이스 위의 케챱그림도 포함해서.